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2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김춘미 옮김 / 비채 / 201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노년의 건축가를 존경하는 젊은 건축학도인 ‘나’의 꿈과 사랑, 숲속 여름 별장에서의 일상을 담담하게 그린 소설. 건축을 비롯해서 자연, 조류, 곤충, 식물에 대한 작가의 해박한 지식과 묘사가 돋보이나 이야기가 너무 잔잔하고 묘사가 가슴에 와닿질 않아 중간에 많이 지루했다. 조금 실망.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태풍의 계절 암실문고
페르난다 멜초르 지음, 엄지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태풍의 계절>은 멕시코 작가, 페르난다 멜초르(Fernanda Melchor 1982 ~ )가 2017년에 발표, 2020년 맨부커 국제부문 최종 후보에 오른 작품이다. 작가는 멕시코의 베라크루즈(Veracruz)에서 태어나 베라크루즈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하고 저널리즘 기사와 소설을 쓰다가 작가가 되었다. 


이 작품은 베라크루스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마녀 살인 사건에서 모티프를 얻은 소설로 총 8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이들이 놀고 있는 강에 죽은 이의 부패한 얼굴이 떠오르는 것으로 시작하는 소설은 첫 페이지부터 음습한 기운을 강하게 퍼뜨린다. 


소설은 마녀라 불리던 여인이 살해된 사건에서 시작한다. 마녀라고 불리지만 치명적인 매력으로 남자를 홀리거나 주술을 써서 사람들을 해치는 그런 마녀는 아니다. 그저 동네에서 따돌림 당하고 외롭게 사는 그러나 뭔가 알 수 없는 비밀에 둘러싸여 있어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주는 그런 존재일 따름이다.


이야기는 각 장(章) 마다 마녀 주변의 인물들이 한 명씩 등장하면서 사건의 진실에 다가가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같은 상황이라도 누구의 입장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기 때문에 독자만이 진실에 다가갈 수 있다. 그러나 정보가 부분적으로 제공되기 때문에 독자도 정확한 사실을 알기는 쉽지 않다.


이 소설은 '누가 마녀를 죽였는가'의 문제보다는 마녀와 얽혀있는 주변 인물들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가난하고 무지하며 몇몇은 폭력적인 데다가 늘 약에 취해있다. 성교육도 받지 못해 여자아이의 경우는 십 대 초반부터 임신과 출산에 노출되고 남자아이들은 그저 동물적 본능에 끌려다니는, 그야말로 삶의 희망이라고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그런 인생들이다. 가난과 무지는 이들의 마음 속에 분노의 씨앗을 심고, 그 분노는 삶에서 폭력으로 피어난다. 살인, 마약, 빈곤, 섹스, 강간, 동성애, 차별, 폭력, 빈곤, 증오, 문란함... 책을 읽다가 노트에 적어본 이 책의 키워드들이다. 


NPR(National Public Radio)은 이 책을 두고 '어둠의 중심으로부터 퍼져 나오는 곰팡이 같은 작품'이라고 평했는데, 이 평은 절대 과장이 아니다. 장이 바뀔 때마다 곰팡이는 점점 퍼져나가고 마지막에는 곰팡이가 내뿜는 악취에 숨을 쉴 수 없게 된다. 


소설은 8장, 시체 안치소에서 시체들과 대화를 나누며 그들의 영혼을 달래는 노인의 이야기로 끝난다. 


["아무 걱정 마시오. 겁낼 것도, 초조해 할 것도 없으니까, 거기 편안하게 누워 계시오. 이제는 비도 당신을 괴롭힐 수 없을 거고, 어둠도 영영 계속되지는 않을 거요. 보셨소? 저 멀리서 반짝이는 빛, 마치 별처럼 보이는 저 작은 빛 말이오. 여러분이 가야 할 곳은 바로 저기요. 저기가 바로 이 구덩이에서 빠져나가는 길이오." (p.356)]


그들의 유일한 희망은 죽어서나 만나는 '저 멀리서 반짝이는 빛'인 것일까? 세상의 가장 어두운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작가가 보내는 위로의 말 같기도 한 이 마지막 문장은 소설의 가혹함에 지친 나에게도 위안으로 다가왔다. 


참으로 충격적이면서 강렬한 소설이다. 나는 이런 책을 처음 읽는다. 코맥 매카시의 <핏빛 자오선>도 매우 강렬한 소설이었으나 이 소설만큼 악취가 진동하지는 않았다. 내가 이렇게 느낀 이유는 아마도 이 소설이 진짜 리얼한 멕시코의 삶을 저널리즘의 문체로 보여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용과 묘사가 너무 노골적이라 중간중간 눈살을 찌푸리게 되지만, 소설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도 좋았고 무엇보다 문장의 흡입력이 강해서 중간에 책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나는 이 소설이 어느 정도 과장된 내용을 담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멕시코 베라크루즈에 살았던 한 독자는 리뷰에서 "나는 그곳에 살았었고, 이 소설에 묘사된 폭력은 전혀 과장돼 있지 않다."라고 말해 놀랐다. 또한 이 책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족장의 가을>과 카포티의 <인 콜드 블러드>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을유문화사의 '암실문고'는 세상의 어두운 이야기를 담는 시리즈인데, 암실문고 책은 처음 읽었지만 아마도 <태풍의 계절>이 가장 어두운 책이 아닐까, 싶다. 지금까지 암실문고에서 나온 책들을 눈여겨 보니 작품 하나하나가 다 심상치 않아 보인다. 그래서 이번에 <코펜하겐 삼부작>도 구입했다. 더 사고 싶은 책들이 있지만 일단 참으려고 한다. 

올 여름 정말 잊을 수 없는 독서를 했다.

한 무더기의 검은 뱀들 속에서 거무죽죽한 빛깔의 가면처럼 꿈틀거리는 그 얼굴은 웃고 있었다. - P13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물감 2024-08-15 08: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러고보니 멕시코 작가의 글은 본 적이 없었네요. 이 작품은 어쩐지 옛 아프리카 문학하고 비슷해보이는데, 나름 절제된 아프리카 문학보다 좀 더 리얼한 것 같기도 하고요. 어쩐지 쉽게 읽기 어렵네요.
그나저나 쿨캣님의 길다란 리뷰 오랜만에 봅니다요 ㅎㅎㅎ 역시 할 말이 많은 작품을 만나야 하는건가요 ^^

coolcat329 2024-08-15 08:47   좋아요 2 | URL
저도 멕시코 작가 책은 처음이에요. 아프리카 문학을 잘 몰라서 어떤지는 모르겠는데, 아 이런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구나! 많이 놀랐습니다. 처음엔 100자평으로 쓰다가 모자라서 이렇게 쓰게 됐네요. ㅎㅎ

레삭매냐 2024-08-22 18: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꾸역꾸역 책은 사고 있는데...

미처 읽는 속도가 사대는 속도
를 쫓아가지 못하고 있네요.

coolcat329 2024-08-22 19:35   좋아요 2 | URL
저만 하실까요 ㅠㅠ 책 구입을 자제하다 요즘 다시 사대고 있습니다. 9월부턴 또 책읽을 시간이 부족할 거 같은데 마음이 무겁습니다.
 
아라비아의 로렌스 - 전쟁, 속임수, 어리석은 제국주의 그리고 현대 중동의 탄생 걸작 논픽션 12
스콧 앤더슨 지음, 정태영 옮김 / 글항아리 / 2017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중동에서 아랍 군대를 이끌고 전장을 누빈 T. E. 로렌스(1888~1935)의 이야기이다. 저자는 미국의 국제 분쟁 전문 기자인 스콧 앤더슨(Scott Anderson)으로 이 책은 로렌스의 출생부터 유년기, 옥스퍼드 재학 시절을 거쳐 전쟁에서의 활약, 전쟁 후 트라우마와 불행한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균형 잡힌 시각으로 다룬다. 


저자는 주인공 로렌스 외에 자국의 이익을 위해 활약한 다른 세 명의 젊은이를 등장 시켜 당시 중동의 정세를 입체적으로 조망하고, 왜 현대 중동이 지금과 같은 난장판이 되었는지, 그 씨앗을 뿌린 자들이 누구인지 수많은 자료를 토대로 객관적으로 밝혀낸다. 


이 책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중동에 불어 닥쳤던 서구 열강의 탐욕과 그로 인한 싸움을 생생하게 보여주는데, 그들의 상식을 뒤엎는 쟁탈전은 절로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영국은 맥마흔-후세인 서한으로 아랍인들을 자신들의 전쟁에 이용했고, 사이크스-피코 선언으로 프랑스와 함께 아랍인들을 배신했다. 거기다 밸푸어 선언으로 시온주의자들에게 팔레스타인 땅을 약속하기까지 했으니, 영국이 얼마나 오만한 나라인지 알 수 있다. 영국의 이런 대책 없는 플레이의 결과로 지난 100년 간 중동에 어떠한 일들이 있었는가, 생각해보면 화가 난다.

종전 후 영국과 프랑스는 팔레스타인과 이라크, 시리아를 나눠 갖고 중동 영토에 자기들 마음대로 선을 그어 현대 중동을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만들었다. 


처칠은 로렌스의 죽음을 두고 "나는 그가 동시대를 살았던 가장 위대한 존재 가운데 한 명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어디서도 그와 같은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이제 아무리 원해도 그와 같은 인물을 두번 다시 만날 수 없을 것 같아 두렵다"(p.814) 라고 말했다. 


로렌스를 두고 제국주의의 하수인, 자아도취적 이상주의자, 희대의 영웅 등 여러 엇갈린 평들이 있지만 아랍의 독립을 위해 싸운 그의 마음은 진심이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역사에서 이처럼 신비롭고 매력적인 인물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나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8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이지만 로렌스라는 인물이 워낙 매력적이고 놀라워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다. 책을 읽는 내내 '어떻게 이런 사람이 있을 수 있지?'라는 생각이 끊이질 않았다. 중동이 어떻게 지금과 같은 혼돈과 고통의 땅이 되었는지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데이비스 린 감독의 1962년 작 영화 <Lawrence of Arabia>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삭매냐 2024-08-22 18: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우 영화가 무려 62년이나 되었군요.

아라비아의 로렌스, 영화로도 한 번
만나 보고 싶네요.

책의 두께가 어마무시하네요.

coolcat329 2024-08-22 19:31   좋아요 1 | URL
유툽에 영화가 있어요. 오마 샤리프, 안소니 퀸도 나오는데 무엇보다 사막의 영상미가 정말 강렬합니다. 대작 중의 대작이에요~
 
렛미인 1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0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 지음, 최세희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2살 외로운 소년과 뱀파이어 소녀의 사랑과 우정이 중심 이야기지만 소설은 주변 소외된 이들의 삶도 다룬다. 모두가 먹고 살기 위해 각자도생해야 하는 삶, 뱀파이어도 예외는 아니다. 인간의 피를 먹고 살지만 그 누구보다 그 세계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흡혈소녀의 간절한 부탁, “들어가도 되니?”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Falstaff 2024-08-02 09: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같이 더운날 딱이겠습니다!

coolcat329 2024-08-02 09:31   좋아요 2 | URL
읽은 지 좀 됐는데 이제야 100자평을 썼네요. 저 지금 폴스타프님 리뷰 읽고 <태풍의 계절>읽고 있는데 정말 문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에 더위도 잊고 있답니다. 😅

잠자냥 2024-08-02 09: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잉 이거 영화 강추입니다!

coolcat329 2024-08-02 09:35   좋아요 1 | URL
잠자냥님 오랜만이에요. 영화 좋다는 얘기듣고 찾았는데 없더라구요. 참으로 매혹적인 소설입니다.

물감 2024-08-05 17: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쿨캣님 잘 지내시죠?? 서재에서 오랜만에 보네요 ㅎㅎ

coolcat329 2024-08-05 17:35   좋아요 1 | URL
물감님~오랜만이에요. 이렇게 안부인사 주시고 감사해요.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물감님도 건강히 잘 지내시겠죠? 요즘 조금 여유가 생겨 알라딘 방문하고 있는데 올 말까진 좀 많이 바쁠 거 같네요.
그래도 틈틈히 들어와서 글 남길게요! 더위 조심하세요!
 
카사노바의 귀향.꿈의 노벨레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57
아르투어 슈니츨러 지음, 모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바로 내가 카사노바인데, 그 보잘것없는 늙음의 법칙이 왜 내게도 적용돼야 하는가‘ 나이들어 성적 매력이 사라져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53세의 카사노바와 겉으로는 화목해 보이는 한 부부의 숨겨진 욕망을 통해 결혼과 에로스적 욕망 사이에서 방황할 수밖에 없는 인간 존재에 대한 이야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