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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쩡함과 광기에 대한 보고되지 않은 이야기
애덤 필립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마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정신이 말짱하다는 것, 다시말해 정상이라는 것은 미쳤다는 것과 어떻게 다를까? 제정신으로 살아간다는 말은 도대체 뭘 말하는 걸까?
영어권 최고의 산문 스타일리스트라는 저자 애덤 필립스는 이런 질문에 답하고자 두꺼운 책 한 권을 썼다. ’Going Sane’ 이것이 이 책의 원제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광기에 대해 다양하게 살펴보는 것을 놓치지 않았고 심지어는 유아기와 청소년기의 광기적 증상에 대해 아주 심도있게 통찰하고 있지만 결국 이야기의 결말이자 종착지는 멀쩡함의 본질에 관한 것이다.
분명히 말해 저자는 진정으로 제정신이라는 것은 어떤 상태를 말하는 것인지 굉장히 먼 우회로를 따라 독자가 따라오기를 기대한다. 예상과 달리 성인들의 일반적인 현상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저자는 인간의 성장과정을 영사기를 돌리듯 자세하게 더듬어가면서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게 만든다. 과거의 자신과 또 현재의 자녀들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말이다.
원래 광기란 나쁜말이 아니다. 그것은 무수한 예술철학자들과 예술가들에게 창조적 에너지로 받아들여졌다. 또 때로는 광기는 진정한 멀쩡함으로 가는 여행이기도 하다. 무조건 순응해야하는 사회안에서 거짓 멀쩡함속에 살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광기는 인간의 생명줄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찰스 램이 말하기를 오로지 천재만이 광기를 살아남을 수 있게 만든다고 했는데 저자는 예술가의 광기가 진정한 멀쩡함이 되기위한 조건으로 램의 천재를 인용했다. 천재는 광기를 뭔가 다른 것으로 바꾸는 재능이며 두려움을 위안으로 바꾸는 재능이다.
도킨스의 사고는 저자에게 멀쩡함을 생각해보게하는 또다른 발단이다. 도킨스는 막을 수 없는 혼돈의 파도로서 우주의 운명과 자기 삶의 희망을 연계시키는 우를 범하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그는 멀쩡한 사람이라면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했다. 저자는 으스스한 세상에서 멀쩡함이 우리의 생명줄이라고 해석했다. 혼돈과 엔트로피에 맞설수 있는 버팀목으로서의 멀쩡함. 이렇게 볼 때 저자는 도킨스의 과학적으로 계몽된 현대인의 멀쩡함에 반은 회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혼돈에 무릎꿇지않고 희망을 가질 수 있게하는 것이 저자는 멀쩡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과학은 우리의 소유물이며, 우리가 전통적으로 가지고 있던 모든희망을 무너뜨려 문화와 물리적 우주는 물론이고 심지어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별시켜주는 언어까지도 우리를 광기로 몰고간다고 우려한다. 그래서 멀쩡하다는 말이 쓰여질 때는 벼화와 은폐를 의도한 것인지 갈등해결을 의도한 것인지 그 의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입장은 또한 어떤 것인지 문맥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아무래도 도킨스의 주장에 대한 간접적인 의견피력의 시도로서 멀쩡함에 대해 생각해본 것은 아닌지 궁금해졌다.
그런데 진짜 멀쩡함의 이야기 전개는 다듬어지지 않은 유년기와 청소년기의 충동으로서의 광기에 많은 부분 할애하고, 정신적 장애 세가지(자페증, 우울증, 정신분열증)에 대해 고찰한 뒤, 돈에 대한 집착의 근거를 탐색한다. 이상의 문제제기를 거쳐 그는 다음의 결론에 도달한다.
진정한 멀쩡함이란
1)자발적으로 협조하는 것이다. 그냥 유순한 멀쩡함은 광기이다. 침착하든 분노하든 창의적이든 우둔하든 기계적이든 능동적이든 논란에 늘 개방적이다.
2)환경이 우리의 모든 것을 결정하지는 않으며 세상을 뛰어넘는 어떤 것이 우리 내면에 있다고 믿는다.
3)불평하지 않고 실제로 행동하게 한다. 불만족은 도피처라기보다 영감의 원천이 된다.
4)이해받는 욕구가 불필요한 것처럼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도 불필요하다. 인간관계에서 종속되지 않는 관계가 가장 이상적이다.
5)자신을 아는 것과 다른 방식으로 타인을 안다고 주장할 수 있지만 그것이 반드시 좋은 방식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6)요즘의 방식으로 하자면, 어떤 아이디어를 독점하지 않는 것, 모든 사람이 자신의 관점에서는 옳다는 생각을 출발점으로 삼는 것, 모든 사람이 겉으로 드러난 모습보다 훨씬 더 혼란에 빠져있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7)다른 이에게 굴욕을 안겨주는 것은 최악의 행동이다. 굴욕을 예방하기 위한 모든 자원이 진정한 멀쩡함이다.
겸손하다거나, 중용의 도리를 지켜야한다거나, 타인을 배려한다거나, 관용을 베푼다거나, 불의를 그냥 넘기지 않는다거나 하는 말들은 이제 시대착오적인 교훈이 되어가는지 모르겠다. 간사해질대로 간사하게 진화한 현대인들에게 맞는 말은 우리 다함께 제정신으로 살아보자는 말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신선한 충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