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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물고기
J.M.G. 르 클레지오 지음, 최수철 옮김 / 문학동네 / 199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아랍어를 쓰는 아프리카, 프랑스의 식민지를 거친 곳...
대충 이런 곳이 소설의 배경이 된다.
주인공 여자아이의 성장소설인 이 책은 어린 시절 유괴되어 자신의 뿌리에 대해 알지 못하는 한 소녀가 다양한 사람과 마주치게 되고 그들과 엮어지고 관계를 맺고 헤어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영국인과 프랑스 인의 부모를 둔 작가가 소외된 나라의 소외된 사람들의 삶에 초점을 맞춘 소설을 썼다는 것이 의외로 받아들여진다. 대체로 글이란 자신의 경험이 그 토대가 될 지언대 이 여자 주인공 소녀의 삶을 그는 어떤 위치에서 지켜볼 수 있었단 말인가. 하킴의 할아버지 엘 하즈가 작가의 위치였을까 짐작해본다. 그는 자신의 손녀 마리마의 여권을 라일라에게 남김으로써 그녀의 잃어버린 신분을 찾아준다. 물론 엘하즈 이전에 그녀를 자신의 집으로 불러들였던 병원의 여의사도 라일라의 신분증을 만들어주었지만 그녀는 그것을 자신이 갖지 않았다. 프랑스인이 만들어준 신분은 그녀가 바란 자신의 삶이 아니었던 것이다.
소녀는 억압받고 갇혀지내는 생활에 익숙하지만 대범하기도 하면서 자신의 삶을 마치 물고기가 헤엄쳐 나가듯이 쭉쭉 앞으로 헤엄쳐 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녀가 만나는 다양한 계층의 다양한 문화속의 사람들은 그녀의 삶에 영향을 주면서 한 여자의 모습을 만들어간다. 그녀가 만난 서구인은 친절을 가장한 뒤에 음흉한 모양새가 감춰져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예쁘장한 황금색을 탐내는 문명의 이기심으로 상징되는 것이다.
르 클레지오의 문체역시 물속을 자유롭게 헤엄쳐가는 물고기를 연상시킨다. 그의 글은 미끄러지듯이 소녀 라일라의 일상과 새로운 만남을 쑥쑥 그려내고 있다. 그의 사실적 묘사는 거의 사건의 전개와 연결되어 박진감 넘치는 라일라의 여정을 따라가며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라일라가 만나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은 바로 다양한 우리네 독자 자신들이기도 하다. 파리와 보스턴을 거쳐 니스에 도착해 다시 그녀가 돌아간 곳은 바로 자신이 탈출한 아프리카 그곳이었다.
90년대 초반 서유럽을 여행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잠시 들린 파리에는 검은 색 피부의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우리 일행이 탄 코치 버스를 운전한 기사도 아프리카에서 온 것으로 보이는 흑인이었다(그들은 미국이나 남미의 흑인과는 다른 인상이었다). 프랑스는 아프리카에 많은 식민지를 둔 나라였다. 까뮈의 이방인의 배경이 되는 알제리도 그렇고 프랑스어가 공용어가 되어있는 세네갈같은 나라를 생각하면 프랑스에 사는 아프리카인의 삶에 대해 그런저런 생각이 들게 된다.
우리가 중국인 교포의 삶을 다룬 소설을 쓴다고 할 때 우리는 조국이란 상징성으로부터 크게 자유로워질지 못할 것 같다. 르 끌레지오의 소설을 보면서 소설은 애국심이란 이데올로기와도 전혀 무관할 수 있고 지구 어느곳의 인간의 삶도 포용될 수 있는 소재이자 공감의 표현대상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