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주 동서 미스터리 북스 88
데스몬드 배글리 지음, 추영현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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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주>는 제목만큼이나 속도감있게 전개되는 첩보물이다. 정말이지 살아있는 동안 한번 가볼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낯설고 먼 나라 아이슬란드의 곳곳을 주인공 앨런은 밤낮없이 뛰어다닌다. 마치 TV시리즈 <24>의 주인공 잭 바우어처럼.
그러고 보니 냉정시대의 첩보전이 주요내용이라는 것을 빼면 <24>와 크게 크게 다르지 않다. 이중 삼중으로 조여오는 적들, 적과 동지를 구분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의지할 것은 라이플과 스미스 앤 웨슨 뿐. 아, <본 아이덴터티> 시리즈의 제이슨 본도 떠오른다.

<질주>의 가장 큰 미덕은 속도감있는 전개와 낯선 이국땅인 아이슬란드의 풍광이다. 특히 아이슬란드의 풍광은 소설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는 내내 마치 눈으로 보는 듯 생생하게 떠오른다. 작가의 글솜씨는 물론 작가가 아이슬란드에 대해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초중반의 흥미로운 전개에 비해 결말은 다소 싱겁다. 사건을 둘러싼 음모가 다소 ‘썰렁’했기에 더욱 그러한데, 죽음을 넘나들며 분발한 주인공 앨런의 노고가 ‘호들갑’으로 변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래도 ‘호들갑’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의 첫머리는 매우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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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의 비극 동서 미스터리 북스 38
엘러리 퀸 지음, 이가형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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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의 비극>은 그 유명하다는 탐정소설의 대가 앨러리 퀸의 작품이다. 그리고 내가 읽은 앨러리 퀸의 첫 작품이다. 앨러리 퀸이나 애거서 크리시티 류의 정통 추리소설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한 이유는 건조하기 때문이다.

그간 접해본 몇몇 전통 추리소설 작품들은 한결같이 사건 해결을 위한 플롯에 집착하다보니 등장인물의 심리묘사는 상대적으로 등안시하곤 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인물의 내적 갈등은 옅어지고, 마치 수학 교과서의 방정식 유도처럼 딱딱하게 느껴졌던 것. 그러니까 범인이 누구인지에 대한 호기심이 크지 않다면 지루한 책읽기가 될 수 밖에.
개인적으로 누가 죽였는지 보다 왜 죽였으며, 죽이기 직전 혹은 죽인 이후 심리적 상황이 어떠했는지에 더욱 호기심을 느끼며 몰입하는 나로서는 재미가 덜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이른바 하드보일 류의 탐정소설이 책읽기 취향에 맞는 편이다.

<X의 비극>은 예상했던 대로였다. 살인사건의 범인을 더듬어가는 퀸의 이야기 솜씨는 발군이다. 탁월한 짜임새와 인물 구성은 수십년이 흐른 지금도 전혀 빛을 잃지 않는다. 귀머거리 탐정 도르리 레인의 캐릭터도 흥미롭다. 단 한편만 읽어도 앨러리 퀸이 왜 최고의 추리소설 작가로 칭송받는지 알수 있다.

그런데 말이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X의 비극>은 건조하다. 등장인물과 살인사건을 둘러싼 촉촉한 질감이 부족하다. 탐정과 범인은 마치 역사 다큐멘터리 속의 등장인물처럼 생동감이 없다. 즉 범인이 저지르고, 탐정이 수사하는 살인사건은 숨겨진 비밀에 대한 흥미를 유발시키지만 감정을 이끌어내지는 못한다.

한가지 더 딴지를 걸자면, 작품의 길이가 길다. 불필요한 상황 묘사는 작품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기보다 지루하게 만든다. 마치 깔끔한 단막극으로 농축할 수 있는 내용을 16부작 미니시리즈로 늘려놓은 느낌이다. 이는 상대적으로 짦은 작품을 주른 쓴 심농과 좋은 대비를 이룬다. 물론 그렇다고 <X의 비극>이 범인검거의 순간을 포기할 만큼 지루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어차피 장르소설이고, 문체나 행간에 담긴 작가의 문학적 성취가 목적이 아닌 바에 좀더 빠르게 사건을 전개시켜도 되지 않았을까하는 말이다. 

최근 깨달은 것은 의식적으로 이야기전개에 집중하는 게 전통 추리소설을 즐기는 요령이라는 것이다. 또한 비슷한 설정과 패턴으로 구성된 작품들을 비교해가며 읽는 것이 이 장르를 즐기는 비결인 것 같다. 장르 소설의 관습에 익숙해지고, 그것을 작가들이 어떻게 변주하며, 혹은 좀더 진일보한 아이디어를 찾아냈는지를 살펴보는 것 말이다. 탐정소설을 쓰는 작가들은 호기심 많은 이야기꾼이지 사색하는 예술가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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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간 바람이 되어라 1 - 제자리로!
사토 다카코 지음, 이규원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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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순간 바람이 되어라’ 정말 멋진 제목이지 않나요? 제가 만약 고등학교 육상부원이라면, 그리고 누군가 제게 이렇게 말한다면 가슴이 먹먹해질 겁니다. 그래 당신은 달리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구나. 나는 정말 한순간 바람이 되고 싶어. 그래서 달리는 거야. 트랙을 달리는 내 발걸음이 바람처럼 가벼웠으면 좋겠어!

사토 다카코의 이 소설은 착하고 재미있는 성장소설입니다. 읽히는 속도는 단거리 육상경기만큼이나 빠르고, 건강하게 성장하는 주인공들은 초여름 아침 풀잎에 맺은 이슬처럼 풋풋합니다.
작가는 꼼꼼한 취재를 바탕으로 육상경기의 매력을 섬세하게 보여줍니다. 초보 육상선수인 신지가 이야기가 흘러가는 동안 육상의 참다운 매력을 하나 둘 깨우쳐가듯 독자들도 자연스레 육상의 매력에 젖어들죠. 마치 육상을 매개로 주인공과 읽는 이가 함께 성장하고 눈 뜨는 듯한 느낌입니다.
  
주인공 신지와 렌, 그리고 육상부 동료들은 마치 순백의 구도자처럼 트랙을 달립니다. 신지와 친구들이 ‘구도자’같다고 한 것은 그들이 달리는 이유 때문입니다. 그들은 단지 즐겁다는 이유로 달립니다.
내 딛는 발에 체중을 실어 바닥을 박차고 달리는 그 순간을, 땅바닥이 내딛은 발을 퉁겨내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달립니다. 자기보다 빠른 상대와 겨뤄보는 것도, 상대방의 등을 보며 결승점에 들어갈 것이 뻔한 경기일지라도, 달릴 수 있다면 큰 기쁨입니다. 패배는 과정일 뿐입니다. 자기가 가진 모든 에너지를 그 순간 쏟아낸 것만으로도 흡족해합니다. 자기가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한순간 바람이 되어라>의 작가 사토 다카코는 가장 단순하고 원시적이며 첨예한 경쟁이 극대화된 기록경기인 육상에서 승패를 뛰어넘은 순수함을 찾습니다. 달리고 싶다는 본성에 충실하여 자기를 단련하는 고등학교 육상부 신지의 모습은 정말이지 착하고 건강합니다.(실제로 이 작품에는 악당이 등장하지 않아요.) 단순하고 맹목적인 순수함을 넘어서 몰아의 경지에 이르는 깨달은 자의 모습이 언뜻 보이기도 하니까요.

솔직히 이 소설이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하는 꿈과 용기는 위험할 정도 순진무구하고 유아적입니다. 이런 순수함은 무자비한 현실과 맞닥뜨렸을 때 무참히 깨어지기 십상이죠. 하지만 가끔은 이런 환타지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무섭도록 혹독하고 냉혹합니다. 그러니 때론 꿈과 용기를 주는 착한 소설을 읽고 위안과 희망을 얻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비록 마지막 페이지를 넘긴 후 책장을 덮는 순간 책 속에 담긴 순수한 꿈이 신기루처럼 흩어지더라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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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베이 2008-02-02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참 잘 쓰시네요. <한순간 바람이 되어라>의 느낌을 제대로 표현하셨습니다.
 
여섯 번째 사요코
온다 리쿠 지음, 오근영 옮김 / 노블마인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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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 유명세를 거머쥔 작가의 해 묶은 데뷔작을 읽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입니다. 특히 재능이 만개하여 초절정의 필력을 뽐내고 있는 현역작가이고, 그 작가의 작품을 아직 한 작품도 읽지 않았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여섯 번째 사요코>는 최근 각광받고 있는 온다 리쿠의 데뷔작죠. 기대 반, 필요(?) 반으로 온다 리쿠의 데뷔작 <여섯 번째 사요코>를 읽었습니다.
그럼 소감은? 실망입니다! 다만 작가의 처녀작이기에 작가에 대한 판단은 뒤로 미루렵니다.

** <여섯 번째 사요코>는 성장소설입니다. 여기에 약간의 환타지와 괴담이 섞여있죠. 그런데 결과는 성장소설, 환타지, 괴담 그 어느 것도 성공하지 못한 듯합니다. 제법 잘 어울릴 듯한 세 요소는 그냥 느슨하게 공존하는 정도죠. 설정은 매력적입니다. 성장소설, 괴담, 환타지 어떤 것으로 풀어도 흥미로울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는 어디에도 안착하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끝나고 맙니다. 아쉽게도 말이죠.

** 네 명의 주요 등장인물 중 어느 누구에게도 감정을 이입하기 힘들었습니다. 고3 수험생인 주인공들은 입시에 대한 부담, 미래에 대한 불안, 우정과 사랑, 그리고 불가사의한 ‘사요코 전설’ 때문에 고민합니다. 그런데 전혀 고민스러워 보이지 않았습니다. 명석하고, 건강하며, 공부도 잘하고, 친구들과의 관계도 좋고, 집안 문제도 없고, 마침내 목표로 했던 대학까지 전부 합격합니다. 도대체 뭐가 문제죠? ‘사요코 전설’이요? 글쎄요...
하긴 밋밋하고 재미없는 인물설정은 비단 주인공들뿐만 아닙니다. 선생님이나 학부모같은 어른들도 마찬가지더군요.

** 솔직히 읽는 내내 소설이라기보다 만화책을 읽는 듯 했습니다. 등장인물이며, 대사며, 설정이며... 만화를 우습게 보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기대했던 최소한의 무게감조차 느낄 수 없었기에 이런 느낌이 들었나 봅니다.

** ‘사요코 전설’이 실제 사건과 형상화되는 집단 연극무대는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그게 다예요.

** 온다 리쿠의 작품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검색해보니 일년 남짓 한 기간 동안 무려 열여섯권이 번역 출간되었더군요. 작가도 내심 놀랐겠죠? 뭐 싫지만은 않았을 겁니다. 손해 보는 것보다 득이 되는 것이 많을 테니까요. 하지만 독자인 저로서는 썩 개운치 않은 모양새 같습니다.
암튼 작가의 역량에 대한 평가는 함께 주문한 <삼월은 붉은 구렁을>을 읽고 난 뒤로 미루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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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철리 여자 동서 미스터리 북스 46
로스 맥도날드 지음, 김수연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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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철리 여자>와 <소름>은 마치 쌍둥이 같은 작품입니다. 두 작품에는 로스 맥도널드의 팬들이 말하는 특징이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미국 상류층의 탐욕과 위선을 소재로 하고 있고, 그것은 언제나 부메랑처럼 되돌아와 파멸과 가족붕괴라는 결과로 끝맺습니다. 루 아처는 그 과정을 치밀하고 냉정하게 추적하여 실타래처럼 뒤엉킨 추악한 진실들을 하나씩 밝혀내죠. 단 두 편을 읽었을 뿐인데 로스 맥도널드가 즐겨 다루는 소재와 갈등 유형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 주인공 루 아처는 정말 매력적인 탐정입니다. 썰렁하고 자조적인 농담으로 상황을 묘사하고, 치밀한 관찰과 분석으로 사건의 이면에 접근합니다. 그리고 선을 넘지 않는 정의감을 가진 인물이기도 합니다. 다만 조금 강박적이라고 할 정도로 지나치게 열심히 사건에 몰입하고 집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위철리 여자>와 <소름> 모두 사나흘 동안 벌어진 일들입니다. 그 와중에 루 아처는 밤낮없이 동분서주하며 사건을 추적한답니다. 그러다 괴한에게 얻어맞기도 하고요. 이건 루 아처가 겪는 ‘단골 시츄에이션’이라죠?

** 저는 <소름> <위철리 여자> 순으로 읽었습니다. 비슷한 설정과 비슷한 트라우마를 지닌 인물들이 등장하는 두 편을 기왕에 읽으시겠다면 <위철리 여자> <소름> 순으로 읽으시길 권합니다. 사건을 뒤엎는 결말의 강도가 <위철리 여자>보다 <소름>이 더욱 둔중한지라 순서를 거꾸로 읽었을 경우 <위철리 여자>가 상대적으로 밋밋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저처럼 손해 보지 마세요.
참고로 <위철리 여자>는 1961년작이고, <소름>이 1964년작입니다.

** <위철리 여자>의 루 아처는 <소름>보다 한결 여유 있고 활달한 느낌입니다. 똑같이 썰렁한 상념(정확히 말하면 ‘로스 맥도널드식 유머’)을 늘어놓지만 <소름>의 경우는 어쩐지 <위철리 여자>보다 더 냉소적입니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소름>을 먼저 읽고 루 아처의 캐릭터를 파악한 뒤여서 인지, <위철리 여자>에 등장하는 루 아처의 썰렁한 입담이 더욱 재미있었습니다.

** 루 아처의 냉소적이지만 귀여운 입담을 하나 소개하자면 이런 식입니다.

  스탠리의 전화가 있은 뒤 벌써 한 시간 반쯤이 지났다. 여자와 나는 다시 한 시간 남짓 대합실에 앉아 있었다. 나는 구인광고에 이르기까지 신문을 구석구석 읽었다.
  그랜트 거리에 사는 익명자가 단 한 장밖에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진짜 사진을 팔며, 대출에도 응한다는 광고가 있었다. 나는 지루한 나머지 이 사람에게 연락해볼까 하는 생각까지도 했다.(<위철리 여자>, p.238~239)

** 솔직히 주인공(혹은 작가)이 구시렁구시렁 하는 이런 식의 썰렁한 상념을 즐기는 편입니다. 소설읽기의 잔재미를 더해주고, 작품의 묘한 분위기를 돋우는 듯 하거든요. 사건전개만 스트레이트하게 진행되는 소설은 어쩐지 읽고 난 뒤에 알싸한 뒷맛 같은 게 없어요. 다행히 이제 막을 읽은 로스 맥도널드의 두 편의 소설은 전자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계속 읽어보려는 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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