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철리 여자 동서 미스터리 북스 46
로스 맥도날드 지음, 김수연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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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철리 여자>와 <소름>은 마치 쌍둥이 같은 작품입니다. 두 작품에는 로스 맥도널드의 팬들이 말하는 특징이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미국 상류층의 탐욕과 위선을 소재로 하고 있고, 그것은 언제나 부메랑처럼 되돌아와 파멸과 가족붕괴라는 결과로 끝맺습니다. 루 아처는 그 과정을 치밀하고 냉정하게 추적하여 실타래처럼 뒤엉킨 추악한 진실들을 하나씩 밝혀내죠. 단 두 편을 읽었을 뿐인데 로스 맥도널드가 즐겨 다루는 소재와 갈등 유형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 주인공 루 아처는 정말 매력적인 탐정입니다. 썰렁하고 자조적인 농담으로 상황을 묘사하고, 치밀한 관찰과 분석으로 사건의 이면에 접근합니다. 그리고 선을 넘지 않는 정의감을 가진 인물이기도 합니다. 다만 조금 강박적이라고 할 정도로 지나치게 열심히 사건에 몰입하고 집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위철리 여자>와 <소름> 모두 사나흘 동안 벌어진 일들입니다. 그 와중에 루 아처는 밤낮없이 동분서주하며 사건을 추적한답니다. 그러다 괴한에게 얻어맞기도 하고요. 이건 루 아처가 겪는 ‘단골 시츄에이션’이라죠?

** 저는 <소름> <위철리 여자> 순으로 읽었습니다. 비슷한 설정과 비슷한 트라우마를 지닌 인물들이 등장하는 두 편을 기왕에 읽으시겠다면 <위철리 여자> <소름> 순으로 읽으시길 권합니다. 사건을 뒤엎는 결말의 강도가 <위철리 여자>보다 <소름>이 더욱 둔중한지라 순서를 거꾸로 읽었을 경우 <위철리 여자>가 상대적으로 밋밋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저처럼 손해 보지 마세요.
참고로 <위철리 여자>는 1961년작이고, <소름>이 1964년작입니다.

** <위철리 여자>의 루 아처는 <소름>보다 한결 여유 있고 활달한 느낌입니다. 똑같이 썰렁한 상념(정확히 말하면 ‘로스 맥도널드식 유머’)을 늘어놓지만 <소름>의 경우는 어쩐지 <위철리 여자>보다 더 냉소적입니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소름>을 먼저 읽고 루 아처의 캐릭터를 파악한 뒤여서 인지, <위철리 여자>에 등장하는 루 아처의 썰렁한 입담이 더욱 재미있었습니다.

** 루 아처의 냉소적이지만 귀여운 입담을 하나 소개하자면 이런 식입니다.

  스탠리의 전화가 있은 뒤 벌써 한 시간 반쯤이 지났다. 여자와 나는 다시 한 시간 남짓 대합실에 앉아 있었다. 나는 구인광고에 이르기까지 신문을 구석구석 읽었다.
  그랜트 거리에 사는 익명자가 단 한 장밖에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진짜 사진을 팔며, 대출에도 응한다는 광고가 있었다. 나는 지루한 나머지 이 사람에게 연락해볼까 하는 생각까지도 했다.(<위철리 여자>, p.238~239)

** 솔직히 주인공(혹은 작가)이 구시렁구시렁 하는 이런 식의 썰렁한 상념을 즐기는 편입니다. 소설읽기의 잔재미를 더해주고, 작품의 묘한 분위기를 돋우는 듯 하거든요. 사건전개만 스트레이트하게 진행되는 소설은 어쩐지 읽고 난 뒤에 알싸한 뒷맛 같은 게 없어요. 다행히 이제 막을 읽은 로스 맥도널드의 두 편의 소설은 전자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계속 읽어보려는 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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