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의 비극>은 그 유명하다는 탐정소설의 대가 앨러리 퀸의 작품이다. 그리고 내가 읽은 앨러리 퀸의 첫 작품이다. 앨러리 퀸이나 애거서 크리시티 류의 정통 추리소설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한 이유는 건조하기 때문이다. 그간 접해본 몇몇 전통 추리소설 작품들은 한결같이 사건 해결을 위한 플롯에 집착하다보니 등장인물의 심리묘사는 상대적으로 등안시하곤 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인물의 내적 갈등은 옅어지고, 마치 수학 교과서의 방정식 유도처럼 딱딱하게 느껴졌던 것. 그러니까 범인이 누구인지에 대한 호기심이 크지 않다면 지루한 책읽기가 될 수 밖에. 개인적으로 누가 죽였는지 보다 왜 죽였으며, 죽이기 직전 혹은 죽인 이후 심리적 상황이 어떠했는지에 더욱 호기심을 느끼며 몰입하는 나로서는 재미가 덜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이른바 하드보일 류의 탐정소설이 책읽기 취향에 맞는 편이다. <X의 비극>은 예상했던 대로였다. 살인사건의 범인을 더듬어가는 퀸의 이야기 솜씨는 발군이다. 탁월한 짜임새와 인물 구성은 수십년이 흐른 지금도 전혀 빛을 잃지 않는다. 귀머거리 탐정 도르리 레인의 캐릭터도 흥미롭다. 단 한편만 읽어도 앨러리 퀸이 왜 최고의 추리소설 작가로 칭송받는지 알수 있다. 그런데 말이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X의 비극>은 건조하다. 등장인물과 살인사건을 둘러싼 촉촉한 질감이 부족하다. 탐정과 범인은 마치 역사 다큐멘터리 속의 등장인물처럼 생동감이 없다. 즉 범인이 저지르고, 탐정이 수사하는 살인사건은 숨겨진 비밀에 대한 흥미를 유발시키지만 감정을 이끌어내지는 못한다. 한가지 더 딴지를 걸자면, 작품의 길이가 길다. 불필요한 상황 묘사는 작품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기보다 지루하게 만든다. 마치 깔끔한 단막극으로 농축할 수 있는 내용을 16부작 미니시리즈로 늘려놓은 느낌이다. 이는 상대적으로 짦은 작품을 주른 쓴 심농과 좋은 대비를 이룬다. 물론 그렇다고 <X의 비극>이 범인검거의 순간을 포기할 만큼 지루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어차피 장르소설이고, 문체나 행간에 담긴 작가의 문학적 성취가 목적이 아닌 바에 좀더 빠르게 사건을 전개시켜도 되지 않았을까하는 말이다. 최근 깨달은 것은 의식적으로 이야기전개에 집중하는 게 전통 추리소설을 즐기는 요령이라는 것이다. 또한 비슷한 설정과 패턴으로 구성된 작품들을 비교해가며 읽는 것이 이 장르를 즐기는 비결인 것 같다. 장르 소설의 관습에 익숙해지고, 그것을 작가들이 어떻게 변주하며, 혹은 좀더 진일보한 아이디어를 찾아냈는지를 살펴보는 것 말이다. 탐정소설을 쓰는 작가들은 호기심 많은 이야기꾼이지 사색하는 예술가가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