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럼독 밀리어네어 - Q & A
비카스 스와루프 지음, 강주헌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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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럼독 밀리어네어>는 무척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주인공이 퀴즈쇼의 우승자가 되어 어마어마한 상금을 탈 수 있었던 것은 이 책에 실려 있는 열세 가지 에피소드 때문입니다. 소년의 파란만장한 삶이 퀴즈의 정답을 가르쳐 주었던 겁니다. 엄청난 행운을 거머쥐기 위해 소년은 적어도 열세 가지의 아픔과 좌절, 고통을 맛보았지만 해피 엔딩의 주인공이 됩니다.

작가는 시종일관 유쾌하고 낙관적인 시선으로 주인공의 삶을 쫓습니다. 이는 작가의 시선이기도 하고 주인공의 시선이기도 합니다. 어떤 비극 상황 앞에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희망을 잃지 않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자연스럽게 마음이 따뜻해지고 흐뭇해집니다. 동시에 가난하고 못 배운 어린 고아인 주인공이 더욱 사랑스러워지는 순간입니다.

<슬럼독 밀리어네어>를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철저하게 가해자(강자)와 피해자(약자)로 나뉜 세상(인도)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대부분 가해자는 남성입니다. 반면 피해자는 여성, 어린 아이, 고아입니다. 지위와 계층을 막론하고 나약하고 가난한 사람들 틈바구니 속에서도 남성은 여성 위에 굴림하고, 여성과 아이들은 늘 착취의 대상입니다. 밑바탕에는 늘 그렇듯 물욕과 성욕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더욱 끔찍한 건 이 작품 어디에도 반성이나 책임, 대안이 없다는 겁니다. 비슷한 상황이 반복될수록 ‘그냥 현실이 그렇다는 겁니까?’라고 작가에게 묻고 싶어집니다.
 
이런 끔찍한 현실마저 이는 밝고 희망찬 시선으로 바라보는 작가의 태도를 어떻게 받아드려야 할까요? 진정한 깨달음일까요? 대책 없는 낙관주의일까요? 아마도 후자가 아닐까 싶은데... 작가의 프로필을 보니 남성이자 부유한 집안에서 좋은 교육을 받았으며 외교관 출신이라고 하네요. 너무 삐닥하게 보는 걸까요?

아무튼 비카스 스와루프는 매우 영리한 작가임에는 분명합니다.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열세 가지의 이야기가 실린 단편집이나 다름없습니다. 각각의 이야기는 따로 때어놓고 보아도 무방한 이야기들이거든요. 이것을 작가는 퀴즈쇼라는 설정으로 한데 묶어놓았습니다. 퀴즈쇼라는 설정이 없어도 열세 편의 이야기는 충분히 흥미롭거든요. 이야기의 화자인 람 모하마드 토마스의 존재를 슬쩍 지워버려도 말입니다.

퀴즈쇼 전략은 무척 성공적입니다. 덕분에 독자들은 퀴즈쇼라는 큰 틀 속에서 각각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따라갑니다. 작품에 더욱 몰입하게 만들죠.  동시에 유일한 해피 엔딩 스토리인 퀴즈쇼 이야기가 시작과 끝을 장식하고 있기에 그간 보았던 눈물겨운 역경은 행복의 과정으로 곱게 포장됩니다. 열세 가지 비극이 담고 있는 씁쓸한 뒷맛을 말끔하게 제거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죠. 작품의 ‘대책 없는 낙관주의’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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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i 2009-04-22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빈민이고, 여자이며, 아이이고, 무직자라면 책 쓰고 읽을 여가도 없겠죠...;; 돌아다니는 책들의 한 70%는 저자가 중상위층 지식인 남자...인 것같아요. 거기에 더하면 제1세계인 미국, 유럽, 그리고 일본작가들일까요. 그들의 시야로 재구성되어 보는 세계, 하는 생각도 들때가 있어요. ^^;

lazydevil 2009-04-22 13:34   좋아요 0 | URL
ㅎㅎㅎ 그렇군요. 저도 그들의 시선으로 재구성하는 세계에 빠져들고, 가끔은 어쩔수 없는 남성이기에 안도할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내키낸대로 읽고 불평할 수 있는 상황이니 영광인 줄 알아야 겠네요^^;;
 
슬럼독 밀리어네어 - Q & A
비카스 스와루프 지음, 강주헌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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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문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나를 자극한 것은 냄새였다. 방부제 냄새가 더러운 병동 곳곳에 배어 있었다. 즐거운 표정인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것도 내게는 충격이었다. 녹색 침대에 누운 환자들은 끙끙대며 괴로워했고, 간호사와 의사까지도 어두운 표정이었다. 그러나 가장 충격적인 것은 무관심이었다.-95쪽

마누라를 때리고 딸을 강간하는 것은 뭄바이 집단주택 단지에서 흔히 있는 일이야. 그렇다고 말리는 삶은 아무도 없어. 우리 인도 사람은 주변의 고통고 불행을 보면서도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 고매한 능력을 가지고 있단 말이야. 그러니까 뭄바이 사람답게 눈을 감고 귀를 막아라. 입도 다물고. 그럼 너도 나처럼 행복할 수 있을 게다.-103쪽

기차는 때때로 철로 옆에 더러운 머리띠처럼 길게 늘어선 빈민가를 지났다. 발가벗다시피 한 아이들이 블록한 배를 내밀고 우리에게 손을 흔들었고, 그들의 어머니는 하숫물로 그릇을 닦았다. 우리도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131쪽

우리의 삶을 사실적으로 보여준 영화이기는 했지만 그런 영화를 만드는 이유가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 길 건너편 이웃집에서 언제라도 볼 수 있는 일을 영화에서까지 봐야 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3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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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i 2009-04-17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부분은 저도 읽다가 포스트잇으로 표시해뒀던 부분이예요. ^^ 발리우드의 감수성이 정말 저런 거겠죠. 그래서 영화도 그렇게 엄청난 환타지 해피앤딩으로 끝나도 하나도 안 거슬리더군요...^^

lazydevil 2009-04-18 00:04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이 작품에서 발리우드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반복되더군요. 작가의 의도든 아니든 발리우드는 인도의 사회와 문화를 엿보는 중요한 코드인 거 같아요~~^^ / 제가 요즘 뒤늦게 장르소설에 빠져드는 것도 인용글과 비슷한 이유가 아닐까..... 자가분석중이죠^*^
 
스티븐 킹 단편집 - 스켈레톤 크루 - 상 밀리언셀러 클럽 42
스티븐 킹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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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의 작품집 <스켈레톤 크루>는 국내 출판사의 마술과 같은 편집 기술 덕분에 상하 권 합계 900 페이지가 넘는 괴물과 같은 부피로 출간되었습니다. 그중 상권은 220 페이지가 넘는 중편 ‘미스트’가 포진되어 있어 그 몰골이 더욱 기괴해졌습니다.
 
본제목보다 더 큰 ‘스티븐 킹의 단편집’이라는 부제만 믿고 <스켈레톤 크루>의 상권을 집어 들었다가는 입맛만 다시고 말게 될 겁니다. 이 책은 중편 ‘미스트’가 절반가량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작품성 짐작할 수 없는 스티븐 킹의 시도 한 편 실려 있습니다.
게다가 단편치고는 비대한 분량인 ‘원숭이’가 60 페이지 이상을 갉아먹고 있는데, 솔직히 상권에 실린 작품 중 가장 처지는 작품인지라 스티븐 킹의 단편 솜씨를 구경할 수 있는 기회는 여섯 편 정도에 불과합니다. 참, 어정쩡하고 모호한 짧은 단편 ‘호랑이가 있다’도 열외 시키면 ‘진짜’ 단편은 다섯 편뿐일 겁니다. 이런 상황이니 스티븐 킹의 진짜 단편을 읽는 것이 목적이라면 하권을 펼치는 것이 현명할 겁니다.

두 권으로 분권된 덩치 큰 작품집을 탄생시킨 이 출판사 특유의 ‘뻥튀기 편집 정책’은 이전부터 못마땅했습니다. 하지만 같은 출판사에서 ‘미스트’보다 적은 분량의 <아임 소리 마마>가 단행본으로 나와 가격마저 뻥튀기 된 것을 생각을 오히려 고마울 지경입니다. ‘미스트’가 분명히 좋은 작품이지만 단행본으로 쪼개서 출간되었다면 아마 쉽게 손이 가질 않았을 겁니다. 영화를 먼저 봐버렸거든요. 그리고 영화가 원작을 워낙 충실하게 각색했다는 소문도 들었으니까요.(아마 이건 독자를 생각하는 출판사의 배려가 아니라 저작권 문제로 애초에 독립출판이 불가능하지 않았을까요?ㅡ.ㅡ*)

이런 저런 이유로 480 페이지짜리 단편집 아닌 단편집을 읽게 되었는데 뜻밖에도 건질 게 많았습니다. 거대 중편 ‘미스트’는 스티븐 킹의 전형적인 스타일을 보여주는 흥미진진한 작품이었고, 앞서 언급한 ‘원숭이’와 ‘호랑이가 있다’를 뺀 단편들은 대부분 수작이었습니다.
특히 ‘토드 부인의 지름길’은 예전에 읽은 ‘사다리의 마지막 단’(또 다른 단편집 <나이트 시프트>에 실린)과 함께 스티븐 킹의 가장 빼어난 단편이었습니다. 이 작품들은 죽음, 악마성, 신체훼손, 피, 암흑의 공포, 괴물, 강박관념 등 스티븐 킹의 즐겨 다루는 소재에서 벗어난 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작가의 글솜씨가 최상으로 드러난 작품들입니다. 같은 이유로 ‘결혼 축하 연주’ 역시 돋보입니다.
반면 ‘뗏목’, ‘조운트’, ‘카인의 부할’은 일찍이 다른 작품에서 보았던 스타일의 변주이고 반복입니다. 작품 자체만 놓고 보면 흥미롭지만 너무 많이 봐온 터라 신선하지는 않더란 말이죠.

솔직히 ‘미스트’와 ‘토드 부인의 지름길’, ‘결혼 축하 연주’를 읽은 것만으로 충분히 가치를 느꼈고, ‘조운트’, ‘뗏목’ 등도 즐겁게 읽었으니 큰 불만은 없습니다. 하지만 480 페이지 분량을 읽고도 단편집 특유의 포만감이 들지 않는다는 것은 아쉽네요. 공복감을 극복하려면 결국 <스켈레톤 크루>의 하권을 펼쳐들어야겠죠?  

** 덧붙임, 휴우~ 하권을 마저 읽었습니다. 하권이야 말로 단편집의 위력을 보여주더군요. 머릿말에 작가가 정말 단편 쓰기를 즐긴다는 고백은 거짓이 아니었습니다. 스티븐 킹 덕분에 신나는 성찬을 즐긴 기분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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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베이 2009-05-09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게 읽은 책이에요.
저는 상권보다는 하권이 훨신 좋았다는ㅋㅋㅋ

[스티븐 킹의 진짜 단편을 읽는 것이 목적이라면 하권을 펼치는 것이 현명할 겁니다.]
이 부분에서, 초공감 했습니다^^ 역시 lazydevil과 통합니다^^

lazydevil 2009-05-10 10:55   좋아요 0 | URL
ㅎㅎㅎ 이 단편집을 읽고 스티븐 킹이 다시 좋아지기 시작했답니다.
글구 쥬베이님 서평 먼저 읽고 주문했답니다~~~~^^
 
유혹하는 글쓰기 - 스티븐 킹의 창작론
스티븐 킹 지음, 김진준 옮김 / 김영사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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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하는 글쓰기>는 스티븐 킹의 그 어떤 소설 못지않게 재미있습니다. 솔직히 구태의연하고 매너리즘에 빠진 몇몇 작품보다 훨씬 재미있습니다. 정작 국내에서는 그의 소설보다 글쓰기 안내서인 이 책이 월등하게 많이 팔리고 있는데,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책은 글 쓰는 방법 혹은 작가가 되는 안내서, 즉 실용서 쯤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도 이 책이 소설 못지않게 재미있는 이유는 이야기꾼으로서의 진면목이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스티븐 킹은 자신의 개인사를 때로는 소설처럼, 때로는 서면 인터뷰에 응하는 것처럼, 때로는 회고록을 쓰듯 술술 풀어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실용서보다 성공한 작가의 에세이에 가깝다는 거죠.

실제로 이 책에는 자신의 과거 경험들을 손바닥 소설 형식으로 스케치하고 있습니다. ‘이력서’라는 챕터 제목을 달고 말입니다. 이 장이 무척 흥미로운데, 작가의 술회하는 과거 속에 각 작품의 탄생 비화와 배경이 소개됩니다.
스티븐 킹은 알콜 중독과 마약 중독에 시달리던 시기에 대해서도 짧게 언급하는데, 그 시기 쓴 작품들을 돌이켜보면 당시 작가의 심리 상태가 작품에 고스란히 반영되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잔뜩 예민해진 신경증 환자 같은 인물이 등장하거나, 쉴 새 없이 맥주를 해치우는 무지막지한 술고래 캐릭터 말입니다.
재미삼아 <유혹하는 글쓰기>와 스티븐 킹의 소설 한 권을 병행해서 읽었는데, 작품 이면에 뒷이야기를 한꺼번에 듣는 듯 하여 퍽 흥미로웠습니다.

본격적인 글쓰기에 대한 잔소리를 들려주는 챕터인 ‘연장통’과 ‘창작론’ 역시 단순히 글쓰기 교재 이상의 재미로 줍니다. 특히 스티븐 킹이 틈만 나면 주워섬기는 작가와 작품들에 대한 정보는 한편의 독서 가이드로 꾸며도 손색이 없습니다. 그가 뛰어난 작가라며 이름을 들먹인 사람들은 순수문학에서 대중소설 작가까지 다양합니다.
넬슨 드밀, 윌버 스미스, 수 그래프튼, 하퍼 리, 유도라 웰티, 제임스 미치너, 제임스 조이스, 엘머 레너드, 바비라 레너드, 레이먼드 챈들러, 코맥 매카시, 어네스트 헤밍웨이, 윌리엄 포크너, 데프니 듀모리에, 찰스 프레이저, 프랭크 노리스, 존 치버, 토마스 해리스, 존 그리샴 등등... 수많은 작가들이 스티븐 킹의 수다 속에 등장합니다.
참 본문에서 언급하지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작품도 부록처럼 열거 해놓았더군요. 모두 영미권 작가들입니다.

<유혹하는 글쓰기>는 작가 스티븐 킹의 참모습이 거의 대부분 담겨있는 스티븐 킹 입문서입니다. 그의 입담, 강박관념, 직업관, 소설관, 유머, 사생활 등... 작가의 주특기인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필력 빼놓고는 모두 맛 볼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니 재미있지 않을 수 있겠습니다. ‘글쓰기의 실제’라는 부담스러운 주제를 슬쩍 미뤄놓아도 <유혹하는 글쓰기>을 읽는데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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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i 2009-04-15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 책을 스티븐킹 책 중에 제일 재밌게 봤어요. ^^
공포소설을 읽어도 전혀 무서워하지 않는 체질탓에 스티븐 킹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요, 이 책보고는 소설은 둘째치고 왠지 작가에게 호감이 좀 생겼더랬죠. 유년기를 험난하게 보내지 않으면 인기작가가 못되나봐요. 좋은 글은 역시 고통에서 나오는 것인지도요..^^

lazydevil 2009-04-15 12:38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사람 소설을 무섭다기보다 흥미롭게 읽는 편이에요. 요즘 9시 뉴스가 더 무서워요.^^; 암튼 스티븐 킹 입담 하나는 정말 대단한 거 같아요. 거기에 천성적으로 대중 친화적 소재를 좋아하니 3억부 씩 팔아치울 수 있었던 거 같습니다.
 
아임 소리 마마 밀리언셀러 클럽 44
기리노 나쓰오 지음 / 황금가지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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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의 강력한 위력을 생각하면 <아이 소리 마마>는 기리노 나쓰오의 ‘실패작’인 듯 합니다. 그럼에도 독자를 불편하게 만드는 작가의 개성은 충분히 드러난 작품이고, 숨가쁘게 책장을 넘기게 만드는 마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불쾌하고 음습하며 그로테스크한 악취미를 충분히 즐기기에는 모자란 감이 듭니다.

일단 <아임 소리 마마>는 장편이라고 하기엔 민망할 정도의 적은 분량입니다. 페이지 수 가지고 시비 거는 것이 아닙니다. 후반부에 접어들 즈음 어째 서둘러 마무리하는 기색이 역력하더니 결국 황망하게 이야기를 끝냅니다. 이렇게 끝나도 되는 건가? 그간 동분서주했던 인물들은 도대체 뭐야? 무시무시한 괴물의 활약을 더 보여 달란 말이야~! 책을 다 읽고 난 후 허전한 기분으로 얄팍한 책을 만지작거리게 만들더군요.(솔직히 본전 생각도 쫌 하면서 만지작거렸더랍니다.)

좀 심하게 불평하면 작가의 안일함이 느껴질 정도로 후반부의 손길은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아웃>에서 독자를 쥐락펴락하던 작가의 엄청난 힘과 카리스마는 어디로 갔을까요? 아니 독자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작가의 카리스마는 여전한데, 끈덕지게 작품을 마무리하는 두터움이 실종되었습니다.(이렇게 날림(?)으로 작품을 마무리한 데는 무슨 흥미로운 사연이 있지 않을까요?) 다른 작품이라고는 <아웃> 밖에 읽어보질 않아 단언하긴 그렇지만 역량 있는 작가의 태작이 아닐까 싶습니다.

작품의 완성도가 이러니저러니 해도 기리노 나쓰오가 만든 아이코라는 인물은 정말 굉장합니다. 아이코는 실로 무지막지한 반사회적 살인마입니다. 너무나 끔찍한 나머지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죠. 이런 인물이 실제로 있을까요?
그런데 작품을 읽다보면 아이코라는 괴물이 피부로 느껴질 정도로 현실감을 획득합니다. 아이코가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는 듯 한 기분마저 들어 불쾌해질 정도입니다. 그 유명한 호러 캐릭터인 제이슨이나 프레디 따위는 비교할 바가 아닙니다. 그들은 가짜 티가 팍팍 나는 영화 속 가상의 캐릭터라면, 아이코는 진짜로 존재할 것 같은 극악한 아줌마입니다. 어느 날 TV 뉴스에서 아이코의 사진을 볼 수 있을 거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아임 소리 마마>는 분명히 실망스러운 태작이지만, 그것이 작가에 대한 실망으로는 이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다른 작품을 기대하게 만드는 이상한 태작입니다. <아웃>을 읽고 난 후 나가떨어진 것과는 전혀 다른 ‘독후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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