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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 단편집 - 스켈레톤 크루 - 상 ㅣ 밀리언셀러 클럽 42
스티븐 킹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5월
평점 :
스티븐 킹의 작품집 <스켈레톤 크루>는 국내 출판사의 마술과 같은 편집 기술 덕분에 상하 권 합계 900 페이지가 넘는 괴물과 같은 부피로 출간되었습니다. 그중 상권은 220 페이지가 넘는 중편 ‘미스트’가 포진되어 있어 그 몰골이 더욱 기괴해졌습니다.
본제목보다 더 큰 ‘스티븐 킹의 단편집’이라는 부제만 믿고 <스켈레톤 크루>의 상권을 집어 들었다가는 입맛만 다시고 말게 될 겁니다. 이 책은 중편 ‘미스트’가 절반가량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작품성 짐작할 수 없는 스티븐 킹의 시도 한 편 실려 있습니다.
게다가 단편치고는 비대한 분량인 ‘원숭이’가 60 페이지 이상을 갉아먹고 있는데, 솔직히 상권에 실린 작품 중 가장 처지는 작품인지라 스티븐 킹의 단편 솜씨를 구경할 수 있는 기회는 여섯 편 정도에 불과합니다. 참, 어정쩡하고 모호한 짧은 단편 ‘호랑이가 있다’도 열외 시키면 ‘진짜’ 단편은 다섯 편뿐일 겁니다. 이런 상황이니 스티븐 킹의 진짜 단편을 읽는 것이 목적이라면 하권을 펼치는 것이 현명할 겁니다.
두 권으로 분권된 덩치 큰 작품집을 탄생시킨 이 출판사 특유의 ‘뻥튀기 편집 정책’은 이전부터 못마땅했습니다. 하지만 같은 출판사에서 ‘미스트’보다 적은 분량의 <아임 소리 마마>가 단행본으로 나와 가격마저 뻥튀기 된 것을 생각을 오히려 고마울 지경입니다. ‘미스트’가 분명히 좋은 작품이지만 단행본으로 쪼개서 출간되었다면 아마 쉽게 손이 가질 않았을 겁니다. 영화를 먼저 봐버렸거든요. 그리고 영화가 원작을 워낙 충실하게 각색했다는 소문도 들었으니까요.(아마 이건 독자를 생각하는 출판사의 배려가 아니라 저작권 문제로 애초에 독립출판이 불가능하지 않았을까요?ㅡ.ㅡ*)
이런 저런 이유로 480 페이지짜리 단편집 아닌 단편집을 읽게 되었는데 뜻밖에도 건질 게 많았습니다. 거대 중편 ‘미스트’는 스티븐 킹의 전형적인 스타일을 보여주는 흥미진진한 작품이었고, 앞서 언급한 ‘원숭이’와 ‘호랑이가 있다’를 뺀 단편들은 대부분 수작이었습니다.
특히 ‘토드 부인의 지름길’은 예전에 읽은 ‘사다리의 마지막 단’(또 다른 단편집 <나이트 시프트>에 실린)과 함께 스티븐 킹의 가장 빼어난 단편이었습니다. 이 작품들은 죽음, 악마성, 신체훼손, 피, 암흑의 공포, 괴물, 강박관념 등 스티븐 킹의 즐겨 다루는 소재에서 벗어난 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작가의 글솜씨가 최상으로 드러난 작품들입니다. 같은 이유로 ‘결혼 축하 연주’ 역시 돋보입니다.
반면 ‘뗏목’, ‘조운트’, ‘카인의 부할’은 일찍이 다른 작품에서 보았던 스타일의 변주이고 반복입니다. 작품 자체만 놓고 보면 흥미롭지만 너무 많이 봐온 터라 신선하지는 않더란 말이죠.
솔직히 ‘미스트’와 ‘토드 부인의 지름길’, ‘결혼 축하 연주’를 읽은 것만으로 충분히 가치를 느꼈고, ‘조운트’, ‘뗏목’ 등도 즐겁게 읽었으니 큰 불만은 없습니다. 하지만 480 페이지 분량을 읽고도 단편집 특유의 포만감이 들지 않는다는 것은 아쉽네요. 공복감을 극복하려면 결국 <스켈레톤 크루>의 하권을 펼쳐들어야겠죠?
** 덧붙임, 휴우~ 하권을 마저 읽었습니다. 하권이야 말로 단편집의 위력을 보여주더군요. 머릿말에 작가가 정말 단편 쓰기를 즐긴다는 고백은 거짓이 아니었습니다. 스티븐 킹 덕분에 신나는 성찬을 즐긴 기분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