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루세 미키오와 미조구치 겐지의 영화를 좋아할 수밖에 없다. 대표작(들)이 거의 완벽에 가까운 영화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면 절반만 솔직한 것이다. 진짜 솔직한 나머지 절반은 여배우들 때문이다. 나루세 미키오와 미조구치 겐지는 유난히 여자의 이야기를 많이 다뤘다. 그래서! 그들의 작품에는 여배우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것도 예쁜 여배우들이. 그들은 하나같이 연기도 잘할뿐더러, 나루세 감독과 미조구치 감독은 그들을 화면에 아름답게 담아낼 줄 안다. 더구나 두 감독의 대표작은 대부분 흑백 영화이기에 흑백 명암으로 묘사된 여배우의 얼굴은 그 자체만으로도 예술이다.
그렇다고 나를 덕후로 생각하지 말지어다. 안타깝게도 난 덕후가 될 자질이 부족한 사람이다. 일단 끈기가 부족하고, 집중력이 떨어진다. 게다가 사람 이름을 지독히 못 외운다. 일본사람 이름은 더욱 그렇다. 일본 여배우의 이름을 줄줄 외우는 것은 구구단을 거꾸로 외우는 것 만큼이나 힘들다.
이름 못 외우는 것은 핑계일 뿐이고, 실은 일본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호기심과 명성에 현혹되어 본 영화들이 전부다. 뭐 그 유명한 기타노 다케시 영화나 이와이 순지, 미이케 다카시, 구로사와 기요시 등... 아니면 싸구려 호러물이나 폭력물, SF물, 괴수영화, <카우보이 비밥>같은 애니메이션 시리즈 혹은 ‘살색영화’에 잠시 빠져든 것이 전부다. 내가 본 일본영화는 너무 작가적이거나, 너무 싸구려였다. 양쪽 모두 흥미로웠지만 그건 우리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색다른 맛에 대한 탐닉이었을 뿐 일본영화에 대해 존경은 들끓지 않았다.
어쩌다 만나는 일본 고전영화도 솔직히 별 재미가 없었다. 그들이 자랑하는 위대한 일본감독 4인방의 영화를 몇 편 보았지만 ‘참 좋은 영화다’하는 생각만 들었을 뿐 묵직한 파토스가 나를 사로잡지는 못했다. 아마도 시간의 간극과 문화적 차이를 뛰어넘어 발가벗고 끌어안기가 쉽지 않았나 보다.
묘하게도 일본영화, 그것도 일본의 옛날영화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한국영화 때문이다. 우연한 계기로 50,60년대 한국영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 결과 세상의 모든 옛날영화가 예뻐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나 40,50,60년대 일본영화는 한국영화와 매우 밀접한 ‘역사적 크로스오버’가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은 후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 사귀고 있는 여자에게서 옛 여자의 모습을 보는 듯한 느낌이랄까? 묘한 흥미로움(?)이 격하게 도사리고 있더란 말이다. 그래서 그 관심에도 없던 일본의 옛날영화가 요즘 보고 있다.
암튼 나루세 미키오나 미조구치 겐지의 영화 한편을 골라 이야기해보려고 했는데 사설이 길어졌다. 그건 다음으로 미루고 엉뚱한 이야기로 잡담을 마무리한다.
어디선가 읽었더라? 개화기 무렵 서양사람이 우리나라에 와서 크게 놀란 것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한국사람들이 밥 먹는 모습이었다. 작은 체구의 조선사람이 자기 머리통만한 밥그릇에 밥을 가득 담아 깨끗이 비우는 모습이 가히 충격적이었다는 거다. 생각해보니 이건 할머니나 큰아버지 세대도 종종했던 이야기다. ‘우리 때는 밥을 고봉으로 먹었어!’
증거 사례.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 신상옥)에서 김진규가 먹는 밥(위 사진)을 보라. 나루세 미키오의 <밥>(1951)에서 하라 세츠코의 밥그릇(아래 사진)과 비교해 보면 고봉(그러니까 산봉우리처럼 수북이 쌓아)이란 말이 실감난다. 남녀차이를 감안하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들보다 많이 먹었다. 고로 우리는 한때 ‘위대’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