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왜 나보다 덜 내는가 - 불공정한 시대의 부와 분배에 관하여
이매뉴얼 사에즈.게이브리얼 저크먼 지음, 노정태 옮김 / 부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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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많은 나라는 경제가 어려우면 가장 먼저 하는 정책이 법인세 인하였다. 낙숫물 효과 운운하며 기업이 잘 살아야 가정이 잘 산다는 말로 포장했고 법인세를 인하해주곤 했다. 생각하면 기업의 전기 사용량이 월등히 많지만 산업을 위한답시고 가정에만 엄청난 누진세를 적용한다. 경제가 어려우면 개인이 더욱 힘든데 정부는 개인보다기 기업만 우선시한다. 기업이 더 많이 벌지만 세금은 더 적게 내는 이 현상... 과연 많이 벌면 많이 내는 게 세금의 진리가 맞는 걸까?

『그들은 왜 나보다 덜 내는가』의 저자 이매뉴얼 사에즈와 게이브리얼 저크먼은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캠퍼스 경제학 교수로 경제적 불평등과 조세천국 문제 전문가이다. 이들은 부자들이 오히려 여러 방면으로 세금을 감면하는 현실에 경종을 울리며 이 불합리함을 어떻게 타개할 수 있는지를 모색한다.

저자는 먼저 힐러리 클린턴과 트럼프의 대선을 치루던 당시를 회상한다. 힐럴 클린턴이 억만장자 트럼프의 탈세를 공격하자 트럼프는 절대 기죽지 않았다. 오히려 의기양양하며 힐러리에게 말한다.

"그래서 내가 똑똑한 거요."

자신의 탈세를 떳떳하게 인정하며 딩딩힌 트럼프를 통해 조세 정의가 사라진 미국의 실패라며 이 실패의 원인에 대해 파악해나간다. 저자는 미국인의 평균 소득과 노동계급의 평균 소득을 거듭한다. 평균 소득이 7만 5천 달러이지만 실제적인 미국 노동계급의 평균 소득은 평균 소득에 못 미치는 1만 8500달러이다. 미국의 상위 1%의 소득은 날마다 고공행진하지만 나머지는 밑바닥을 이어고 있는 부의 분배의 불평등이 중요시된다.

많이 버는 자가 많이 버는 게 세금의 정석이다. 하지만 저자가 파악한 소득집단은 보통 25~30%를 세금으로 내지만 슈퍼리치들은 20% 정도만을 내는 누진세가 아닌 역진세가 적용된다. 중산층까지만 해도 올라가던 소득세율이 최상위 400명에 도달하면 세금이 떨어져 버리는 현상. 저자는 트럼프 일가, 저커버그, 워런 버핏 등을 주목한다.

특히 트럼프가 공격한 적은 세금으로 워런 버핏을 공격하고 워런 버핏이 이에 맞받아쳐 자신이 세금을 잘 내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저자는 워런 버핏이 어떻게 탈세에 성공하고 있는지 주목하며 워런 버핏의 헛점을 공격한다.

저자가 강조하는 많은 부분 중 가장 인상깊었던 건 바로 "자본에 붙는 세금"과 "노동에 붙는 세금"의 차이가 현저히 크다는 점이다. 워런 버핏이 주장한 '버핏 룰'에서 "자본소득과 노동소득"의 세금의 격차가 크다는 점을 강조한다. 사람의 노동에는 많은 세금을 부과하지만 자본에 붙는 세금은 절감되어 오히려 더 많은 자본축적을 불러 일으키는 현실 그리고 이를 적정하게 부과하기 위해서 우리가 그 적정 세율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여러 이론을 제시하며 해결해나가고자 애쓴다.

이 불합리함을 타파하기 위해 저자는 자본에 붙는 소득이건 노동으로 얻는 소득 상관없이 동일한 소득액에 동일한 세금을 부여하는 국민소득세 신설을 주장한다. 모든 이에게 단일한 세율을 적용하여 불공정한 역진세를 대체하자고 주장한다.

『그들은 왜 나보다 덜 내는가』는 미국을 기준으로 쓰여졌지만 한국 또한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다. 선거철마다 있는 사람들을 위한 정책만을 펴내는 정치인 또는 정책입안자들에게 이 책을 꼭 권하고 싶다. 또한 전기 누진세 소송 등을 생각하며 이 불합리함을 타파하기 위한 사회 구성원들의 연대가 필요하다.

저자가 꿈꾼 '국민소득세'처럼 우리도 정의를 위해서 비범한 상상력을 생각하고 제시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라며 이 책을 읽고 함께 토론하며 불합리함을 개선해 나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을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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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읽고 쓰기 - 건강한 미디어 생활을 위한 미디어 리터러시
이승화 지음 / 시간여행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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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SBS에서 폐지된 드라마 <조선구마사>가 논란이였다. 역사적 인물 왜곡, 작가의 상상이 너무 가미된 배경, 중화사상을 불러일으키는 설정 등은 대중의 분노를 일으켰고 이는 결국 2회만에 폐지되는 비운을 맞게 되었다.

이 사건은 프로그램 제작진들에게 각성하는 계기가 되었고 많은 대중들의 눈높이가 예전과 확연이 달라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였다.

『미디어 읽고 쓰기』는 이 사건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생각되는 책이다. 텔레비젼, 라디오에 국한되었던 미디어가 이제 SNS, 유튜브 등 다양해지면서 미디어가 넘쳐난다. 미디어가 풍부해지면서 1인 미디어가 되는 시대가 되었지만 또한 거짓 뉴스와 방송 조작 등 품격을 떨어뜨리는 미디어 또한 난무한다. 생각하지 않는 독자들은 주체적인 생각 없이 미디어에 끌러 가며 잘못된 생각을 양산하게 된다. 『미디어 읽고 쓰기』의 저자 이승화씨는 미디어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 주체적인 해석법을 강조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미디어 리터러시'란 용어를 제시한다. '리터러시'란 '읽고 쓰는 능력'이란 의미의 Literacy와 미디어가 합쳐진 말로 '미디어가 전달하는 메시지를 이해하고 표현하는 능력'이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먼저 읽을 수 있어야 한다. 바르게 읽을 수 있어야 하고 저자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미디어 역시 마찬가지이다.

저자는 미디어를 이해하는 능력을 키우는 데 먼저 '주체적으로 미디어 읽기'를 제안한다.


질문을 누군가 설정한 의제를 재구성할 힘이고,

누군가의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원동력이 됩니다.

비판적 사고의 기준이 되고, 창의적으로 생각을 확장할 수 있는 날개가 됩니다.


주체적으로 미디어 읽기를 향상하기 위해서 저자는 구체적인 질문하는 법을 알려준다. 우리가 저자의 의도를 생각하며 책을 읽듯이 "이 미디어의 의도는 무엇인가?" 또는 육하원칙에 의하여 미디어를 읽고 보게 하며 제작자의 관점 등 다양한 질문법을 제시하면서 주관적인 기준과 객관적인 기준을 분리하는 법 등 보는 법을 심화해준다.

이 책의 장점은 미디어의 종류에 맞게 이해하는 법을 제시해 준다는 점이다. 소셜 미디어, 게임, 웹툰, 뉴스 등 각각의 미디어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주어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또한 미디어 읽고 쓰기를 통해 퍼스널 브랜딩으로 갈 수 있는 방법까지 제시해주어 자기계발에서도 실용적인 팁을 얻을 수 있다.

현명한 저자가 현명한 독자를 만들지만 무엇보다 독자가 똑똑해야 좋은 질의 미디어가 나온다. <조선구마사>가 폐지된 배경에는 역사의식이 있는 대중이 있었다. 미디어가 방송해주는 걸 재미로만 보지 않고 생각하며 보는 현명한 독자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최근 방송된 모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방송 조작 또한 의문을 제기하며 보는 대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좋은 미디어를 보고 만들기 위해서는 미디어를 제대로 이해하고 배워야 한다. 이 책은 미디어를 제대로 볼 수 있고 실천할 수있게 해 주는 기본 초석이 될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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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히틀러의 아이였습니다 - '레벤스보른 프로젝트'가 지운 나의 뿌리를 찾아서
잉그리드 폰 울하펜.팀 테이트 지음, 강경이 옮김 / 휴머니스트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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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은 중요하다.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없다면 그 혼란은 말할 수 없다. 하물며 자신이 잘못된 역사에서 만들어졌다면 더욱 혼란스러울 것이다.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타인의 죄악에 의해 모든 것이 조작되었다면 그 충격을 한 개인이 온전히 감당할 수 있을까? 그건 아마 큰 고통일 것이다.

《나는 히틀러의 아이였습니다》의 저자 잉그리트 폴 욀하펜은 바로 그 역사의 존재이다.

자신만 혼란스러운 정체성, 그리고 그 잘못된 정체성을 찾아가며 느끼는 혼란과 분노, 그리고 마침내 온전히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기까지의 기록이 담긴 책이다.

《나는 히틀러의 아이였습니다》의 저자는 히틀러 치하의 독일이 아닌 히틀러가 패배하고 연합군의 점령한 혼란기의 독일 시대를 산 인물이다. 나이차가 많이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남동생 네 명이서 불안한 상황 속에서도 식생활에 큰 불편함은 없었다. 하지만 소련군과 유럽 연한군의 강간과 같은 전쟁 폭력은 모두에게 유효했다. 무엇보다 저자는 자신의 부모님에 대한 설명을 자주 한다. 자식인 저자와 남동생을 남보듯이 하는, 아주 최소한의 역할만 하는 어머니의 태도는 저자에게 빈 구멍을 남겨놓았다.

잉그리트 폰 왈하펜은 어린 시절을 어머니의 짧은 일기에서 추정해간다. 자세한 설명이 아닌 짧막한 몇 줄로 자신의 역사를 상상해간다. 소련 치하의 독일을 탈출해 영국 치하의 독일로 탈출했건만 당장 보육원으로 보내버린 엄마의 행동, 자신을 데려가달라고 편지를 여러번 쓰지만 철저하게 거절당한다.

차가웠던 부모님의 태도는 남동생 디트마어가 위탁동생이었다며 갑자기 친부모에게 가는 모습부터 저자의 혼란이 시작된다. 그리고 아버지와 함께 살며 치료를 받으러 병원에 가던 중 자신의 이름 '잉그리트 폰 왈하펜'이 아닌 '에리카 마트코'의 이름이 자신의 본명이라는 것을 알게되며 저자의 혼란이 시작된다.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자신은 모르고 있었던 그 진실 앞에 저자의 혼란은 성인이 되고 중년이 되어서도 계속되었고 마침내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하게 되며 '레벤스보론 프로젝트'라는 나치의 만행과 마주하게 된다.

'레벤스보론 프로젝트' 독일인의 순수한 혈통 '아리아' 인종을 우선시하며 그 인종에 기준되는 아이를 납치하여 독일화시키고자 하였던 나치의 만행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더 큰 고통은 이 만행으로 인하여 납치되었던 아이들의 삶은 전쟁이 끝난 지 60년 아니 70년이 지나도 결코 지워지지 않는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이었다.

전쟁은 끝났지만 어느 누구도 이 잘못된 아이들의 삶에 책임지려 하지 않았다. 아이들의 혼란과 분노는 오로지 아이들의 책임이었고 감당해야 할 짐이었다. 저자 또한 자신의 정체성을 알아가며 분노했지만 막상 실체를 알게 되었을 때는 어느 누구도 도와주지 못했고 저자 홀로 감당해야 했다.

인종에 대한 무작위한 차별과 혐오는 그 순간으로 끝나지 않는다. 평생을 짊어지고 가야 할 상처이다. 인종 또는 지역 학벌 등에 차별이 팽배한 이 때 우리는 그 당사자에게 평생을 안고 갈 짐을 주게 되는 것임을 이 책은 알게 한다.

저자는 오랜 세월, 할머니가 되어 버린 지금에서야 잉그리트 폰 욀하펜이라는 독일 이름도 에리카 마트코 라는 자신의 본명도 받아들인다. 누가 뭐래도 자신은 자신이기 때문이다. 이 당연한 진리를 철저히 거부당했던 저자의 생은 과연 우리가 무엇이 중요한가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인간에 대한 존중, 모든 걸 넘어서 한 개인으로 온전히 바라봐 주는 것부터 우리에게 필요함을 철저히 깨닫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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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에 있다는 것 (양장)
김중미 지음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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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괭이부리말 아이들』 출간 이후 20년이 흘렀다.

인천의 빈민지역인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삶은 달라졌을까. 20년이 흐른 지금 그들의 삶은 나아졌을까.

김중미 작가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곳>의 은강을 배경으로 은강이라는 빈민가에서 살고 있는 지우, 강, 여울의 삶을 통해 우리가 과연 좋아진 걸까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소설 『곁에 있다는 것』에서는 세 명의 중심인물이 나온다. 고3 친구인 지우, 강, 여울의 이야기가 순차적으로 펼쳐진다. 재개발지역에서 소외된 사람들, 갈 데 없어 거의 버려진 동네에서 마지못해 사는 사람들, 열심히 살려고 발버둥쳐도 갈 곳 없는 이들의 녹록지 않은 삶이 무거움을 더한다.

지우는 선생님과 진학 상담을 한다. 자신의 바램인 역사 또는 사회학과를 말하지만 선생님의 일방적인 유아교육학과와 사회복지학과를 가라는 강권. 부모님이 열심히 학원 강사 일을 하지만 항상 경제난에 힘들어하는 부모님, 영화 감독이라는 꿈을 가난이라느 현실 앞에 과감히 포기하며 안정적인 공무원을 생각하는 언니, 이들은 힘들게 살지만 사회는 여전히 이들을 외면한다.


영화 속 어디에도 피해자가 된 우리 동네 사람들의 삶은 없었다.

영화가 아무리 인기를 끌어도 세상은 그 엄청난 사기 사건의 피해자인 노인, 주부, 가난한 사람들의 삶에는 주목하지 않았다.

우리의 삶은 영화에서처럼 끝이 정해져 있지 않았다.

아무리 구차하고 힘들어도 도망갈 곳이 없었다.

그래서 하루하루를 이 악물고 사는 수밖에 없었다.


가난은 모든 것들을 앗아간다. 자존심도, 꿈도, 희망도 앗아간다. 하루 하루가 전투인 그들에게는 버티는 것만으로도 힘들었다. 버티다 못해 쓰러지면 그 뿐이었다. 아무도 주목해 주지 않는 삶. 바로 가난의 비극이였다.

『곁에 있다는 것』에서는 학부모의 민원에 시달리고 임대 주택에 산다는 것만으로 차별받아야 하는 현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무엇보다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복지를 받아야 할 사람들이 소외되는 모습 등을 통해 한국의 복지의 현실을 보여준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자녀를 버리고 재가함으로 보육원에서 자라야 했던 영민과 정민 형제는 어머니가 여전히 호적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장학금 혜택을 거부당한다. 강 또한 마찬가지였다. 할머니와 단 둘이 살고 있는 강은 몇 년 째 연락도 끊고 감감무소식인 외삼촌으로 인해 복지를 거부당한다. 국가로부터 최소한의 도움을 받기 위해 자신의 가난을 증명해야 하는 책임은 오로지 가난한 자들의 몫이다.

설사 가난을 증명해 혜택을 받지만 수입이 있을 경우 혜택이 바로 정지되기에 변변한 아르바이트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복지 시스템은 없는 자들을 가난의 벼랑끝으로 몰고 간다.


영민 오빠를 보면서 가난한 사람들이 국가의 도움을 받으려면

가난을 벗어나려 애쓰는 대신 가난을 유지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돈이 돈을 번다면서 고착화된 부와 가난의 대물림 속에 아이들의 삶은 더욱 궁지에 내몰린다.

지우의 외할머니부터 어머니 그리고 지우까지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이곳의 아이들의 삶은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아르바이트를 하고 비정규직이 되고 있는 자들을 위한 도구가 된다.

작가가 보여 주는 현실이 허구가 아닌 현실이기에, 그리고 이 아이들이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이기에 소설은 쉽게 읽히지 않는다. 읽을 때마다 아이들의 삶과 어른들의 삶이 마음이 아파온다.

그리고 한 가지 질문에 마주하게 된다. "과연 우리는 나아지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그럼에도 이 소설이 빛나는 건 결코 쉽지 않은 현실 속에서도 서로의 손을 놓지 않는다는 것이다.

잃어버렸던 권리를 위해 끝까지 싸우는 지우 외할머니와 이웃들을 챙기며 돕는 지우 부모님, 그리고 함께 고민하며 곁에 있어주는 지우와 강, 여울 그리고 마을 사람들. 비록 현실은 바꾸지 못하지만 이들의 함께라는 의식은 서로를 따뜻하게 해 주었다.

코로나로 많은 사람들이 더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정작 잃은 건 여행이나 마스크 없는 일상이 아닌 함께 하는 공동체 의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비록 힘들지라도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을 이 은강 마을 사람들을 통해 배운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건 바로 함께라는 마음이 아닐까. 그 마음을 잃어버려서 더욱 힘든 것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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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두리 로켓 야타가라스 변두리 로켓
이케이도 준 지음, 김은모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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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변두리 로켓』 시리즈 마지막편이 출간되었다. 로켓 발사 실패 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쓰쿠다 제작소를 운영하는 쓰쿠다와 직원들. 로켓 벨브 제작부터 농업 트랜스 미션까지 바람 잘날 없는 쓰쿠다 제작소 직원들의 대망의 마지막 도전기가 펼쳐진다.

쓰쿠다제작소는 로켓 벨브를 납품하는 업체이자 여러 업체에 소형 엔진 및 벨브를 납품한다. 높은 기술력을 자랑하지만 가성비를 따지며 비용 효율을 중요시하는 업체들은 쓰쿠다제작소의 제품은 애로사항이 되기 쉽다.

세 번째 이야기인 『변두리 로켓 - 고스트』 편에서도 제품은 좋지만 비용 절감을 추구하는 업체들의 기술 앞에 쓰쿠다제작소는 항상 기로에 놓인다. 이익을 포기하고 가격을 낮출 것인가. 기술을 양보할 것인가.

하지만 쓰쿠다와 직원들에게 기술 개발의 양보는 멈춤을 뜻한다.

전작인 『변두리 로켓- 고스트』에 이어 마지막 이야기 『변두리 로켓 - 야타가라스』는 변두리 공장으로서의 연대를 지향하며 트랜스미션 업체인 '기어 고스트'회사를 도와주었지만 '기어 고스트' 대표인 이타미가 데이코쿠 중공업에 대한 보복심으로 쓰쿠다를 배신하면서 위기에 처한 쓰쿠다제작소의 모습으로부터 시작된다.

설상가상으로 데이코쿠 중공업에 납품하기로 하던 농기계 트랜스미션과 소형엔진이 데이코쿠 중공업 차기 사장을 노리는 마토부 이사와 제조부장인 오쿠사와가 자체 제작을 결정하며 쓰쿠다제작소는 그야말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다.

목표가 사라지면 뱡향을 잃기 쉽다. 쓰쿠다 제작소의 입장은 더 이상 트랜스미션을 해야 할 명분이 사라져버렸다.

기어 고스트는 의리를 져버린 후 발주를 취소했고 데이코쿠 중공업은 자체제작으로 욕심이 가득한 소수 임원들에 의해 의도적으로 제외되었다. 쓰쿠다제작소는 진행되어온 개발을 계속할 것인가 멈출 것인가의 기로에 선다.

그리고 쓰쿠다 제작소의 선택은 당연히 개발이었다. 제품의 끊임없는 개발만이 그들에게 살 길이었다.



개발 없이는 미래도 없다.

지금은 인내할 때로군요.


『변두리 로켓 -야타가라스』는 데이코쿠 중공업에 대한 보복심으로 똘똘 뭉친 무인 농업 로봇 "다윈 프로젝트"와 자이젠의 선의로 시작한 프로젝트가 마토바의 출세의 도구로 전락하며 벌어지는 사내정치의 현실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기업의 정책을 두고 자신의 정치에 이용하려는 정치인들의 술수, 언론으로 이슈몰이를 하며 갑과 을의 대결로 몰아가려는 '다윈 프로젝트'의 꼼수는 과연 기술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를 진지하게 되묻는다.

기술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다윈 프로젝트'의 이타미와 시게타의 목표에는 오로지 데이코쿠중공업의 침몰에 있었다.

자이젠의 기획안을 자신의 기획안으로 돌리며 출세용 도구로 만든 마토바 이사 또한 마찬가지였다.

무인농업로봇이지만 그들의 목표에는 사용자인 농민들에 대한 생각보다는 보복심, 또는 출세가 이들의 목적이었다.

그래서 이 마지막 권은 이 싸움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 더욱 빛이 난다.

트랜스미션을 납품할 기회를 빼앗겼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는 쓰쿠다제작소.

자신의 기획안을 빼앗겼지만 초심을 잃지 않고 책임을 놓지 않는 자이젠.

자율 주행 기술이 이용당하는 현장에 분노하면서도 농민들을 돕기 위해 끝까지 함께 하는 노기 교수.

이들에게 기술은 바로 사용자에게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였다.

제조에 필요한 것은 기술이나 효율만이 아니다.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의의다.

무엇을 위해 만드는가.

그 취지에 동감해 대상에 열정을 퍼붓지 못하면

성취를 이루지 못한다.

그리고 제조는 사회에 공헌해야 한다는 것이

쓰쿠다의 지론이었다.


기업은 치열한 전쟁터이다. 하청업체들은 공급사의 결정에 따라 단순간에 휘청거린다. 이제까지 『변두리 로켓』 시리즈는 하청업체의 고뇌를 잘 보여주었지만 마지막 권인 『변두리 로켓 - 야타가라스』 편이야말로 변두리 기업의 고통과 사내 정치의 치열함을 가장 실감나게 보여준다. 항상 위기에 직면하고 쉴 새 없는 기업 운영이지만 쓰쿠다제작소의 쓰쿠다와 직원들은 기술은 결코 이기적인 목적으로 쓰일 수 없으며 함께 도울 때 진정한 가치가 있다는 점을 실천해나간다.


이케이도 준. 그는 [한자와 나오키]에서 박력 넘치는 사이다 오피스 활극을 보여주었다면 『변두리 로켓』에서는 뭉클함과 감동을 선사해준다.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라는 진지한 질문을 마주하게 하며 일의 의의를 생각하게 한다.

『변두리 로켓』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만 어디선가 쓰쿠다 제작소가 실제로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이케이도 준이 다음 번외편을 만들어주길 팬심으로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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