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학교 학부모 공개수업이 있었다. 반차를 내고 학교에 갔다.

아이가 그린 성장동화가 생각보다 예뻐서 대견스러웠다.

공개수업이 끝난 후 남편과 함께 식사를 하고 남편이 데려다 주어서 회사에 편히 도착할 수 있었다.

마침 이사님과 사장님 모두 출장 중이셔서 한가로운 날들이었다.

평안했던 하루였다.






SNS 피드를 보던 중 세월호 유족 유민아빠 김영오님의 페이스북 피드를 본다.


나에게는 평안한 하루지만 누군가에게는 제일 슬픈 날로 기억되는 하루..

벌써 12년이 지났다. 그럼에도 자식을 바닷가에 떠나보낸 억울한 죽음에 대한 슬픔이 사라지겠는가.

누군가는 말한다.

이제 그만 할 떄도 되지 않았느냐고.

이제 떠나 보내고 새 출발해야 한다고 말이다.

마침 이제야 시인의 <슬픔의 펼침면>의 '오늘의 여력'이라는 시 한 구절이 들어온다.

골목을 지나다 낡은 의자에 앉은 소년을 봅니다.

소년도 자장가를 들으며 자랐겠지 생각하면 애처롭지 않습니다.

서로가 모르는 슬픔은 자주 쉽게 해석됩니다.

불면증을 겪는 사람과 춘곤증이 시작되었다는 사람을 견주어봅니다.

겪는 것과 시작되는 것 중에 무엇을 먼저 위로해야 할지에 대해

시차 없이 비슷한 고통에 대해

오늘의 여력 / 이제야


이제 그만 할 떄도 되었다고 하는 사람은 슬픔을 쉽게 해석하는 사람이다.

각각의 슬픔은 개인만이 해석할 수 있는 것을 사람들은 모르면서 자꾸 해석하려고 한다.

슬픔을 해석하고 자기 식으로 해석할 수 있도록 지켜주어야 한다.

슬픔을 해석할 수 없다면 옆에서 어느 조언도 해 줄 수 없다.


누군가는 그 해석이 빠를 수도, 느릴 수도 있다.

그 해석은 설사 100주년이 된다 하더라도 지켜주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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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물리학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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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이야기하지 않는 시대에 꼭 필요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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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물리학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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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장편소설 『슬픔의 물리학』 은 첫 장부터 독자를 미궁으로 몰아간다.

책의 첫 문장은 나의 존재를 알린다.

나는 1913년 8월 끝자락에 남성 인간으로 태어났다.

하지만 한 단락이 끝난 후 '나'의 존재는 달라진다.

"나는 해가 뜨기 두 시간 전에 초파리로 태어났다." 로 갑자기 초파리가 되고 또 다른 단락이 시작되면 1968년 1월 1일 남성 인간, 또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존재가 되는가 하면 언제나 태어나 있는 존재가 된다.

끊임없이 달라지는 '나'라는 존재에 대해 그렇다면 '나'는 무엇이란 말인가? 카멜레온처럼 상황에 맞게 변하는 존재인 것일까? 라는 혼란에 빠진다. 그 답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다르다. 내가 다른 여러 존재가 될 수 있는 이유는 나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들어가 이입될 수 있는 '병적 공감' 혹은 '강박적 공감- 신체화 증후군' 이기 때문이다.

병적 공감. 타인의 이야기를 듣고 그 사람이 되어 느낄 수 있는 존재이다.

나는 어려운 시절 버려졌던 할아버지의 세 살의 모습으로 돌아가서 울 수도 있으며 그리스 로마 신화의 미노타우로스의 슬픈 현실에 통곡할 수 있다. 타인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재능도 어른이 되어가며 공감능력이 점점 쇠퇴한다. 글을 쓰는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수집해나간다.

『슬픔의 물리학』 은 그래서 슬픈 이야기들의 집합체이다. 부모의 잘못으로 태어나 영원한 미궁 속에 갇힌 미노타우로스를 비롯하여 옛날 유행하던 전자 다마고치등 지금은 잊혀져 가는 것들을 모은다. 이제는 쓸모 없는 것들. 이야기되지 않거나 또는 잊혀져 가는 것들을 모은다. 없어도 상관없는 이야기들, 잊어버려도 아무 영향 없는 것들을 찾기 위해 옛 신문이나 잡지를 찾는다. 왜 그게 중요할까?



정말 소중한 것은 잊혀지기 쉬운 것이기 때문이다.

죽는 것. 썩는 것. 부서지기 쉬운 것. 그것은 무엇인가. 바로 인간이다. 나와 너의 존재다. 즉 우리의 이야기다. 여기서는 타인의 슬픔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람은 죽고 썩어 사라지기 쉬운 존재이기에 타인의 이야기를 찾아 기억해야 한다.

어둠 속에서 훌쩍거리며 성냥을 켜는 것. 그건 희망이 아닐까. 나가 모으는 슬픔의 이야기들 속에서 빛을 발견해내는 것. 그것이 슬픔이 존재하는 이야기이다. 그러므로 『슬픔의 물리학』 의 저자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는 '슬픔'에 집착한다. 희망은 기쁨 속에서 돋아나는 것이 아니라 슬픔 속에서 찾아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은 빠르게 변한다. 하루만 지나도 휙휙 변하는 세상이 이제 한 시간, 아니 1분 간격으로 SNS에 새로운 소식이 들려온다.

이야기들이 쉽게 묻히는 세상. 그 세상 속에서 우리가 타인의 이야기를 대하는 방식은 어떠한가.

땅에 묻히든, 페이스북과 같은 SNS에 글을 쓰든 90퍼센트 이상이 영원히 상실되는 수많은 이야기.

그것들이 잊혀지지 않기 위해서 저자는 캡슐의 좌표를 담은 '엄마 캡슐'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누구나 말하려고만 하는 시대에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고 남기는 사람, '엄마 캡슐' 과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걸 이 소설은 말해준다.

그래서 소설 속 나는 '사라진 존재'를 모은다.

잊혀진 다마고치, 옛날의 삐삐, 비디오카세트, 테이프 녹음기..

사라진 존재는 그냥 그런 시절이 있었지라는 추억팔이용만으로 끝내야 할 것인가? 그럴 수 없다. 그렇다면 그건 소설 속 '나'가 이야기를 모으는 이유가 될 수 없다.

그 많던 다마고치는 다 어디로 갔을까?

그 많던 옛날의 삐삐 곁으로.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많은 죽음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173p

슬픔을 모으는 것. 그건 우리 인간의 존재를 알기 위해서다. 인간이 살아가는 한 세상은 가장 슬픈 세상이 될 수 밖에 없다.

그 슬픈 세상에서 살아가는 법. 그것이 바로 슬픔의 물리학이다.

현대는 슬픔을 이야기하기 거부하는 시대이다. 먹고 살기도 힘든데 굳이 힘든 이야기를 꺼내나며 이야기를 기피한다.

그렇다고 피해야만 하느냐. 그럴 수 없다. 이 세상에서 희망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슬픈 이야기들이 필요하기 떄문이다.

슬픔이 이야기되지 않는 시대는 희망이 생겨날 수 없다.

『슬픔의 물리학』은 읽기에 쉬운 책은 아니다. 이 책은 독자들을 여러번 미궁 속에 빠뜨릴 것이다.

낯선 불가리아의 역사, 그리스 로마신화의 지식, 또는 여러 지적호기심까지도 자극하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더 독자들을 쉽게 헤어나올 수 없게 할 것이다.

슬픔이 이야기되지 않는 시대이다. 하지만 이런 시대에 슬픔을 이야기하는 이 책이야말로 꼭 읽어봐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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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왜 전쟁을 멈추지 못하는가 - 트럼프와 1조 달러 전쟁 기계의 야망
윌리엄 D. 하텅.벤 프리먼 지음, 백우진 옮김 / 부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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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현실을 이토록 자세하게 보여준 르포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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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왜 전쟁을 멈추지 못하는가 - 트럼프와 1조 달러 전쟁 기계의 야망
윌리엄 D. 하텅.벤 프리먼 지음, 백우진 옮김 / 부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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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쟁광들을 몰아낼 것입니다. 그들은 늘 전쟁을 하고 싶어합니다. 

왜 그럴까요? 미사일 한 기는 200만 달러입니다. 이게 그 이유입니다. 

그들은 전 세계에 미사일을 떨어뜨리기를 좋아합니다. 


미국과 이스라엘 연합과 이란의 전쟁이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빠른 시일 내에 이란을 무릎꿇릴거라 예상했던 트럼프의 확언과 달리 이란은 쉽게 전쟁을 끝내지 않는다. 뉴스에서 이스라엘도 전력이 거의 소진되었고 미국에서도 군비로 수많은 예산이 지출되고 있다고 한다. 막대한 비용이 줄줄 새고 원유는 최고가를 올리는 상황에서도 트럼프는 이란 다음에 쿠바 차례라며 미국의 군사전쟁이 계속 될 것임을 알렸다. 


왜 트럼프는 전쟁을 멈추지 못하는가? 국제경찰역할을 마다하던 트럼프가 왜 평화를 외치며 다른 나라들을 공격하는가?  그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책이 나왔다. 바로 윌리엄 D. 하텅과 벤프리먼의 책 《미국은 왜 전쟁을 멈추지 못하는가》 이다. 


윌리엄 D. 하텅과 벤 프리먼은 퀸시책임국정연구소의 외교 정책 민주화 프로그램 책임자로서 군수산업등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이다. 


먼저 이 책의 부제는 '트럼프와 1조 달러 전쟁 기계의 야망'이지만 두 공동 저자들은 단지 '트럼프'라고 하지 않는다. 

  대선 당시 군수산업비를 줄이겠다고 공약하던 트럼프가 취임 이후 국방비를 줄이기는 커녕 더 늘려가고 전쟁을 확대하는 추세에 대해서 곁들어 설명할 뿐이다. 


두 저자들은 트럼프 뿐만 아니라 모든 미국의 대통령들 즉  미국 역사상 공화당과 민주당을 막론하고 모든 대통령들이 지속적으로 전쟁과 군비를 늘려 왔음을 설명한다.  심지어 노벨 평화상 수상한 버락 오바마도 예외가 아님을 강조한다.  

왜 정치색 이념이 전혀 다른 양당구조에서도 군사주의 정책은 같은 기조를 유지하는가? 그 이유에 대해 이 책은 깊이 파고든다. 

먼저 우리는 이 이유에 대해서 명확히 알고 있다. 바로 '돈'이다.  그 '돈'을 가져가는 사람은 누구인가? 


뻔하다. 방산업체다. 저자는 이들이 가져올 위험을 처음부터 경고하고 '군산복합체' 라는 용어를 만든 사람이 바로 아이젠하워 대통령이라고 말한다. 그 때부터 위험을 경고했건만 그들의 움직임은 이미 기울어진 권력인 아이젠하워의 경고에 귀담아듣는 사람들은 없었다. 


그렇다면 그 '군산복합체'의 주체는 누구인가? 


현재 미국 방산을 주름잡고 있는 '빅5' 록히드 마틴, 레이시온, 보잉, 제너럴 다이내믹스, 노스럽 그러먼이다. 

그리고 신기술을 앞세운 후발주자 방산업체 팔란티어, 스페이스X, 안두릴 인더스트리스 등이 있다. 

아이젠하워는 이 방산업체들을 '군산복합체'라고 불렀지만 저자들은 이 책에서 이들을 '전쟁기계'라고 부른다. 




국방부가 이들 기업에 쏟아붓는 모든 부서의 예산을 전부 합친 것보다 많은 돈들을 업체와 계약에 쏟아붓는다.

저자들이 궁금한 건 한 가지다.

전쟁기계에 쏟아부은 이 돈들이 과연 평화에 기여했습니까?

전쟁기계들은 과연 이 나라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미국인의 삶의 질을 높였습니까?


특히 전쟁기계들이 주구장창 외치는 '무기 수출은 곧 미국 일자리' 라는 메시지는 현실에 맞는가?

저자들은 방산시설이 있는 곳을 추적하던 중 중요한 사실을 발견한다.

그들이 '미국 일자리'를 외치던 방산 시설이 있는 곳이 바로 미국에서 빈곤율이 가장 높다는 사실이다.


방산업체들의 로비스트들에 의해 좌우되는 미국 국방정책, 그리고 우리에게 <힐벌리의 노래>로 잘 알려진 대표적인 흑수저 J.D 밴스가 대표적인 금수저 트럼프의 손을 잡게 된 데에는 팔란티어 등 군수업체의 든든한 뒷배경이 있는 사실까지 이 책은 시원하게 폭로한다.

이 책을 읽다보면 미국의 전쟁기계를 멈출 수 있는 대통령은 없을 듯 하다. 이미 의회에는 로비스트들이 온갖 압력을 가하고 있고 대통령은 방산업체들이 주머니를 채워주고 있다. 여기에 AI 기술의 개발로 전통적인 빅5 방산업체와 테크 방산업체의 대결로 국방 예산을 둘러싼 싸움은 갈수록 치열할 듯하다.


이 책에서는 그 대안을 '평화 네트워크'로 꼽지만 사실상 가능해 보일 것 같지 않다. 전쟁 기계의 배를 채워주기 바쁜 미국의 현실에 대해서 매우 정교하게 설명해 주지만 해결책은 너무 요원해 보이는 바램처럼 느껴지는 부분이 아쉽다. 하지만 이미 깊숙이 침투한 방산업체의 쓴 뿌리를 바로잡기에는 힘이 들 수 밖에 없다는 한계를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제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다. 그 전에 트럼프는 이란과의 전쟁을 끝내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전쟁을 끝낼 수 있는 건 트럼프가 아닌 미국 국민들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민들이 단지 분노하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닌 명백한 '전쟁 반대'의 슬로건으로 나아갈 때 트럼프와 전쟁 기계들을 잠시 멈출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한다.

이슬아 작가는 '팔짱을 낀 채로는 응언할 수 없다'고 했다. 팔짱을 낀 채로 전쟁을 반대할 수 없다.

잠시라도 멈추기 위해서는 팔짱을 풀고 똑바로 외쳐야 한다. 비록 느리지만 역사를 만들 수 있는 건 저자가 외친 대로 미국 국민들의 평화 네트워크가 아닐까 생각된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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