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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인
이혁진 지음 / 민음사 / 2023년 11월
평점 :

해원은 냉정한 비즈니스 세계에 잘 투자해서 많은 돈을 번 회사원이다. 부유한 사업가지만 난폭한 아버지와 피해의식으로 천박해지고 아들인 자신에게 매달리는 어머니 사이에서 자란 해원에겐 어느 곳에서도 안식처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런 그에게 40이 넘도록 그에게 마음을 주는 관계, 심지어 여성과의 관계에서까지 마음을 주는 곳이 없었다.
안 해 본 걸 해보자고 한 결심에 플루트 수업을 받기로 한다. 여자 강사인 줄 알았는데 강사는 남자인 준연이었다. 돈을 벌기 위한 수업이 아닌 좋아서 하는 준연의 방식에 해원은 마음이 맞는 친구를 만난듯하다. 그들의 수업이 길어질수록 수업상의 비즈니스 관계가 아닌 개인적인 고민까지 나누는 친한 친구 사이로 발전한다. 해원은 이 모진 사회에 순수하게 예술의 혼을 태우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신선함을 느끼고 준연은 선뜻 어머니의 치료비를 건네며 도와주는 해원의 호의가 고맙기만 하다.
동성 사이에 우정을 유지하는 건 쉽다. 지켜야 할 선을 지키면 된다. 서로 조심할 것만 조심하면 된다. 순수한 둘 만의 관계만 신경쓰면 된다. 하지만 다른 누군가가 끼어든다면? 그러면 복잡해진다. 그것도 두 사람의 연모 대상인 이성이라면? 준연과 해원 사이에 준연의 오랜 친구인 하진이 이 둘의 관계에 끼어들면서 셋의 관계는 서로 다른 이름을 갖게 된다.
준연과 해원의 관계는 친구에서 사랑의 경쟁자로..
해원과 하진의 사랑은 사랑에서 광적인 소나타로 변하게 된다.
그들의 사랑이 너무 진실되기에 순수한 사랑이 어떻게 광적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소설 속에 나오는 해원, 준연과 하진 중에서 이 셋의 차이는 무엇일까?
소설에서 피아노를 전공했지만 아버지 사업을 물러받아 위스키를 만드는 하진은 해원을 선택한다.
하지만 뭐가 문제였을까?
나는 전업 투자자다운 해원의 특질과 준연과 하진의 예술가적 특질의 차이가 아닐까 생각한다.
원인과 이유가 분명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목표를 향해 맹렬히 다가가는 해원은 전략적이다.
하지만 준연과 하진은 다르다. 준연은 가난할지언정 예술에 대한 사랑 그 자체가 소중하다. 이는 하진 또한 마찬가지다.
좀 더 성장할 수 있는 위스키를 끝까지 자신만의 방법으로 성장시키려는 그 열정을 해원은 이해하지 못한다.
갖고 싶으면 전략적으로 따서 쟁취해야 하는 투자의 세계와 그 자체가 힘들지라도 사랑을 지켜야 하는 예술가적 사랑을 갖고 있는 준연과 하진의 방식. 해원은 그들의 방식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기에 둘의 삶의 방식을 끊임없이 질투한다.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을 가진 이들에게 사랑의 방식은 같을 수 없다.
전략적으로 생각하는 해원에게 사랑은 서로가 일순위가 되어야 하고 준연과 하진에게는 계속 키워야만 하는 존재이다.
주식과 돈을 소유하고 불리는 데 우선순위인 투자의 세계이다. 하지만 예술은 그 자체, 더 아름답게 지켜가야 하는 그 자체에 있기 떄문에 충돌할 수 밖에 없다. 사랑한다면서 왜 자신을 온전히 따라주지 않는지. 사랑한다면서 왜 쉬운 방법으로 하지 않고 왜 자신이 일순위가 되지 않는지 해원은 답답하기만 하다. 사랑하는 건 자신인데 하진의 방식을 이해하는 건 오랜 친구 준연이다. 그게 바로 해원을 미치게 한다.
해원에게는 전략적으로 사랑을 쟁취해야 하는 데 비해 사랑을 지키는 게 중요한 하진과 준연의 방식은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관계다. 그 사랑이 소중해야 하기에 방식이 중요한 하진에 비해 해원은 갖지 못하면 모두 흙투성이가 되는 모 아니면 도의 세계이다.
그래서 셋의 관계는 더 복잡해지고 순수했던 사랑은 책 소개글처럼 광기로 치닫는다.
전략적으로. 치밀하게.
사랑이 어떻게 사랑일 수 있는가.
소설을 읽으면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모든 것에 공감하게 한다. 하지만 결국 소설은 해원이 사랑의 본질을 깨닫게 되면서 끝내 자신만의 방법으로 사랑을 지켜낸다. 그것도 사업가다운 자신의 방법으로.
사랑이라는 것. 그것만으로 완전할 수 없다. 하지만 완전하지 못하다고 해서 사랑을 포기할 수 없다.

그 사랑을 어떻게 지켜내는가, 그 사랑의 방식이 어떠해야하는지를 이 소설에서는 말해주는 듯 하다.
그리고 서로의 방식을 어떻게 이해하는가가 끝까지 사랑을 할 수 있는 자격을 주는 것인가가 이 소설은 말해준다.
이혁준 작가의 소설 『광인』은 해원, 준연 그리고 하진의 사랑 이야기이지만 결국 우리 모두의 사랑 이야기이기도 하다.
준연의 어머니의 사랑,
난폭적인 해원 아버지의 사랑, 맹목적이어서 더 무서운 해원 어머니의 사랑,
하진의 위스키에 대한 사랑, 불행 속 맞닥뜨린 하진 동네 사람들의 사랑 등등을 통해 우리 삶에서 벌어지는 사랑들이 어떻게 한 순간에 광적으로 변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모든 사랑이 다 이해되기에 지금 나의 삶에서의 사랑을 돌아보게 만든다.
거의 700페이지에 육박하는 소설이지만 사랑이 광적으로 변해가는만큼 이야기 또한 광적으로 몰아치는 소설이다. 그래서 이 소설을 끝내기가 쉽지 않았다. 이야기의 회오리 속에 빨려 들어갈만한 이 광풍은 나를 쉽게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아서 한 페이지씩 넘기기가 겁이 날 정도로.
사랑이야기지만 삶의 방식을 이야기해주는 소설이기도 한 소설 『광인』
내 사랑이 과연 사랑인가를 진지하게 되물어주는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