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트 플레이스
세라 핀스커 지음, 정서현 옮김 / 창비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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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 핀스커의 《언젠가 모든 것은 바다로 떨어진다》 에 이어 두 번째 책 《로스트 플레이스》이다.

미국 SF문학작가인 세라 핀스커는 네뷸러상, 휴고상을 수상한 화려한 이력을 가진 작가이지만 아직은 한국에 낯선 작가이기도 하다. 성소수자이기도 한 작가 세라 핀스커의 소설은 한국 SF소설과 달리 더 기상천외하고 상상력이 풍부한 작품이기도 한다.

두번째 단편집 《로스트 플레이스》에는 12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세라 핀스커의 특징을 뭐라 말 할 수 있을까. 첫번째 소설집 『언젠가 모든 것은 바다로 떨어진다 』 에 이어 두 번째 책을 읽어나가면서 느낀 점은 미래의 세계에 대해 강한 비판과 강한 희망을 그린다는 점이다.

<언젠가 모든 것은 바다로 떨어진다>에서 수록된 <열린 길의 성모 >에서 아날로그를 지키려고 하는 무리들은 갈 곳을 잃어갔다. 자율주행자, 홀로그램이라는 플랫폼에서 편하게 노래하는 아티스트들, 모바일 신분증으로만 대체되는 미래의 모습에서 옛 것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은 있을 곳을 잃어간다. 어디 그 뿐인가. 시간을 여행하기도 하며 지구를 떠나 돌아오지 않는 편도 우주선을 타고 유랑하는 무리들도 있다. 그들은 어린 세대들이 왜 자신의 미래에 필요도 없는 과거의 것들을 배워야만 하느냐는 어린 세대의 도전을 받는다. 현대 기술들이 과거와 쉽게 단절되어 버리는 미래. 그 미래의 모습은 《로스트 플레이스》 의 「케어링 시즌스 탈출기」에서 더 두드러진다.

퇴원을 희망하지만 거부당하는 아냐. 이유는 간단하다. 알고리즘이 아직 안 된다고 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판단은 거부당하고 오로지 알고리즘으로만 결정되는 요양시설 케어링 시즌스에서는 로봇돌봄의 돌봄을 받으며 인간의 대면접촉은 찾기 힘들다.

모든게 알고리즘과 AI에 의해 감시되는 미래에서 아냐의 보호자 조라는 80이 넘는 나이에 케어링 시즌스를 탈출하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탈출이 원만할리 없다. 곧 드론에 추격되지만 다행히 조라의 말을 들어주는 드론과의 대화를 시도한다.

드론 운전자는 조라의 말에 관심을 보이고 조라는 호소한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어야 해요.



그렇다면 질문이 생긴다.

우리가 끝까지 선택해야 하는 게 무엇인가?

최근 한 지인으로부터 회사들이 자꾸 챗GPT에게 물어보고 AI의 답변대로 처리해달라고 고집을 부려 난처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책임을 지겠느냐는 말에는 회피하면서 챗GPT가 맞다고 했으니 맞는 거라는 말에는 인간의 선택이나 판단이 없었다. 이제는 투자나 또는 개인 심리 상담까지 AI에게 맡겨버리는 시대. 우리는 어느새 마음까지 AI에게 위탁해버렸다.

그 지인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대답해보았다.

내가 선택해야 하는 건 바로 '나에 대한 확신'이었다. AI보다 나의 판단, 감정, 마음이었다.

AI는 어디까지나 보조도구가 되어야 할 뿐 결국 판단하는 건 내가 해야 했다. 나의 삶도, 나의 감정과 마음도 나의 몫이었다.

아마 AI가 발달하면서 우리는 점점 더 AI의 선택에 맡길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의 삶은 더 비슷해져가지 않을까? 데이터에 기초한 AI가 그리는 삶의 모습은 결국 비슷할 테니 말이다. 결국 나답게 살아가는 방법을 아는 사람만이 AI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우리 시대에 가장 필요한 사람은 무엇일까?

필요한 일을 하기 위해 스스로의 편안함을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이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매기는 고통을 참고 해야 할 말을 택한다.




또 다른 단편 「오늘은 모든 게 닫혀 있다」에서도 마찬가지다. 재난으로 인해 모든 디지털 수단이 끊겨 버린 상황에서 메이는 동네 소녀들과 함께 하나가 된다. 절망하기보다 인간 배달부가 되어 이웃들의 심부름을 해 주며 소식을 전하고 필요한 소식을 전하고 시위를 조직하기도 한다.


미래의 모습이 밝지 않다. 하지만 그 절망 안에 갇혀 있기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조그마한 행위라고 하며 움직이는 매기와 메이, 그리고 소녀들. 세라 핀스커는 미래가 비록 핑크빛은 아니다 하더라도 우리가 포기하지 말고 행동해야 할 이유를 가르쳐준다. 그러니 끝까지 조그마한 변화라도 시도해야 한다고 말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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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지 않는 사람들 - AI만 읽는 시대, 퇴화하는 인간 지능에 관한 경고
나오미 배런 지음, 전병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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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야말로 우리 인간의 가장 인간다운 사고방식임을 말하며 경종을 울리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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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지 않는 사람들 - AI만 읽는 시대, 퇴화하는 인간 지능에 관한 경고
나오미 배런 지음, 전병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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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독서절벽시대라고들 한다. 일년에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 시대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생성형 AI 시대에 들어서자 책은 이제 거의 잊혀진 존재가 되었다. 한 권의 책 제목만 말해도 방대한 데이터에서 요약과 정리를 다 해 주니 읽을 필요가 없어졌다. 키보드만 쳐도 모든 과제와 잡무를 처리해 주는 시대이니 인간은 점점 생각을 하지 않게 된다. 김지수 기자의 추천사처럼 읽는 인간이 '별종이 되어 버린 시대'에 과연 읽는 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언어학자이자 《다시, 어떻게 읽을 것인가》의 저자이기도 한 나오미 배런은 이 시대 읽는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파헤쳐간다.

『읽지 않는 사람들』은 먼저 '읽기'에 대한 정의를 밝혀나간다. 읽는다는 것. 기본적으로 '책'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읽기를 이제 단지 책으로만 국한할 수 없다. AI 저작물도 읽기이고 온갖 소셜 미디어 또한 읽기의 한 종류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분명 많은 텍스트를 읽는다고 할 수 있다. 트위터든 인스타그램이든 우리는 수많은 글을 읽는다. 그렇다면 뭐가 문제란 말인가?



SNS와 같은 글은 단편적이다. 많은 생각과 글쓰기를 요하지 않는다. 가볍게 읽고 끝내면 된다.

하지만 인간은? 우리가 영상도 숏폼과 릴스와 같이 짧은 글, 쉽고 간단한 글에만 익숙해진다면 어려운 텍스트를 마주했을 때 어떻게 될까?

학생들은 어려운 수학문제나 지문을 읽는 대신 학습앱들이 요약해주는 본문에 의지하게 된다면 인간들은 쉽게 포기하게 될 것이다. 설명서를 자세히 읽지 않고 영상이나 AI에게 물어봐서 간단히 처리해버리면 우리는 그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노력 자체를 포기하게 되어버릴 것이다. 인간이 읽고 생각하고 포기해버림에 따라 인지빈곤을 일으키게 되고 인간지능은 자연적으로 퇴화하게 된다.

저자 나오미 베런은 이 점에 착안하여 AI의 글쓰기는 점점 발달되어가고 인간의 글쓰기는 점점 더 퇴화할 거라고 말한다. 그럴 수 밖에 없다. AI는 많은 데이터를 먹고 발달해가지만 생각하지 않는 인간의 글쓰기는 나아질 방법이 없으니까 말이다.

저자가 말하는 AI가 대신해주는 읽기와 인간이 자발적으로 읽는 독서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경험'이다.

크리스틴 로젠의 <경험의 멸종>이란 책이 있다. AI와 디지털 시대에 사라져가는 온갖 경험들. 그 중에 '읽기'가 있다.

우리가 알다시피 '경험'은 또 다른 '경험을 불러일으킨다. 시중의 수많은 독서 에세이는 각 사람이 읽고 자신의 경험에 녹아내어 또 다른 작품으로 완성되었다. 책에서 예를 드는 유제프 차프스키의 경우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를 애정하는 작가는 이 책을 매우 사랑한 나머지 <무너지지 않기 위하여>라는 새로운 작품을 탄생시켰다. 차프스키가 세상에서 가장 긴 소설이라 불리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요약해서 읽었다면 과연 그의 새로운 작품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



자신만의 경험이 없는 일기. 자신의 관점이 없는 읽기는 결코 또 다른 작품으로 이어지지 못한다.

AI에게 외주하는 읽기는 결국 인간지능의 퇴화와 함께 더 넓게 나아가 인간 문화의 몰락으로 가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읽지 않는 사람들』을 읽다 보면 결국 독자로서 '나'의 읽기에 대해서 진지하게 대면하게 해 준다.

나는 무엇을 읽고 있는가. 나의 읽기는 외주화되고 있는가? 나의 읽기는 생각을 동반하는가? 어려움을 대면하는가?

나만의 시각을 만들어주는가?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질문에 Yes라고 답할 수 있을까?

AI시대에 AI를 활용한 여러 방법들이 많이 이야기된다. 하지만 결국 가장 인간다운 경험을 쌓을 때 우리는 경쟁력이 생긴다라는 걸 알려준다. 대표적인 '읽기'야말로 우리 인간의 가장 인간다운 사고방식임을 말하며 경종을 울리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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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
공현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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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현진 소설에서 보여지는 세상은 정해져 있다. 

표제작 제목 그대로 '어차피 멸망할 세상'이다.   이 책의 제목이자 표제작이기도 한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에서 멸망하게 되는 이유는 다양하다. 첫 번째 단편소설 [녹]에서는 이주민 '녹' 의 일인 시위로 인하여 불안정한 시간 강사의 입지로 멸망할 수도 있고 기후 위기로 멸망할 수도 있다. 또는 [권능]에서 일찍 죽을 거라는 점쟁이의 예언대로 멸망할 수도 있다. 결론은 정해져 있다. '어차피' 망할 세상. '어차피' 안 될 세상이다. 그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공현진 소설은 말한다. 

그런데 '어차피'라는 어감은 결과론적인 의미가 강하다. 어차피 이렇게 될 거 열심히 살아서 뭐 하나라는 자조론으로 빠지게 된다. '어차피'를 만들어내게 된 원인이나 해결책은 생각하지 않고 그저 결과론에 따르는 수동적인 삶에 멈추게 된다. 그래서 '어차피'에는 체념의 뜻이 담겨 있다. 

하지만 공현진 작가는 소설 초반 '어차피' 된 이유의 원인을 먼저 캐묻는 듯 하다. 



첫 번째 단편소설 <녹>에서는 시간 강사로 일하고 있는 '나'가 나온다. 남편과 이혼하고 홀로 시간강사를 하며 아이를 키우고 있는 나. 시간강사이다보니 불안할 수 밖에 없다.  더구나 베이비시터였던 이주민 '녹'이 일인시위를 함에 따라 힘들게 지켜온 시간강사자리도 쫓겨나게 되었다. 미안하게 되었다라며 결과를 통지하는 대학 측. 다행이 모교에서는 자리를 지킬 수 있었지만 다음 학기에는 어떻게 될 지 장담하지 못한다. 

여기서 주목하는 건 '주어가 없는 말들'이다. 주어가 없이 결과만 통지하는 사람들. 
미안하게 됐어. 라며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사회. 주어가 없으니 결과를 말하는 사람은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 
주어가 없는 말들로 상처를 받는 '나' 또한 베이비시터인 '녹'에게 주어가 없는 말을 한다.  약속한 양육비를 주지 않는 전남편 또한 주어 없는 말로 책임을 피한다.  주어 없이 결과만 통지하는 세상은 '어차피' 라는 단어를 만들어낸다. 
그 상황에서 두 번째 이야기이자 표제작인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는 직격타를 날린다. 



하지만 누가 책임을 져야 할까.

책임을 지려고 하는 걸 피하는 세상, 기후 위기에 대해서 어차피 망할 세상이라며 누구도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는 세상. 곽주호도 그렇다. 엄밀히 곽주호의 잘못도 아니었지만 책임을 느끼는 모습에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어차피 죽은 거, 어차피 정리된 죽음, 주변에서는 왜 곽주호가 책임감으로 괴로워하는 모습을 알지 못한다.  '어차피' 세상에서 힘들어하는 건 책임을 지는 사람들 뿐이다. 

그렇다면 '어차피' 이렇게 된 마당에 포기해야 옳은 것일까? 그럴 수 없다. 어차피 멸망할 거라도 함께라면 좀 더 낫지 않겠는가. 영화 <타이타닉>에서 동료들과 함께 침몰해가는 배 안에서 끝까지 연주를 하던 연주자들처럼 말이다. 
그래서 <이름을 짓기 직전>에서 자신이 만든 밴드에서까지 퇴출되었던 친구 석주를 위해 함께 밴드를 결성한다. 그들이 자주 가던 주점은 비로 침몰되고 석주가 끝내 군대에 가게 되었지만 이들은 밴드 이름 짓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울면서도 노래가 좋다고 말하는 석주. 그 석주 곁에 그래도 내가 있다. 

이 상황 속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  그 대답은 <선자 씨의 기적의 공부법>에서 선자씨가 알려준다. 일흔이 넘는 나이에도 일을 하기 위해서 요양보호사 공부를 하는 선자씨. 생전 처음 보는 의학 단어들로 정신이 없다. 그래도 선자씨는 기죽지 않는다. 



어차피 멸망할 세상일지라도 우리는 우리의 일을 해나가고 살아내야 한다는 걸 선자씨는 알려주고 있다. 어차피 이렇게 되었지만 그래도 미워하면서도 아껴주는 <권능>의 청아이모와 나처럼 서로 함께 부둥켜 안고 살아가야 한다. 그게 '어차피' 멸망할 세상에서 살아가는 방법이다. 

그러므로 '어차피' 이렇게 된 세상에서 우리가 살 방법은 '그래도'가 아닐까 싶다. 그래도 살아가야 하는 세상이니 그래도 사랑하고 그래도 살아내는 것. 그래도 이왕이면 서로에게 다정한다면 '어차피' 이렇게 된 마당에 힘이 되지 않을까 말해주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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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모든 것은 바다로 떨어진다
세라 핀스커 지음, 정서현 옮김 / 창비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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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모든 것은 바다로 떨어진다』  는 총 13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한국 SF소설들이 기후위기로 모든 게 멸종된 먼 미래를 그린다면 세라 핀스커가 그리는 미래는 현재에서 조금만 더 나아가면 실제로 이루어질 것 같은 미래의 모습을 그리거나 또는 완전히 새로운 미래의 모습을 창조해낸다. 


13편의 단편들이 각각 다른 이야기들이기에 하나로 종합하기엔 어려운 면들이 있다. 하지만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연결되는 이미지들로 이 소설을 말하고자 한다. 


소설에서 강렬하게 다가왔던 것 중 하나는 바로 '단절'이다. 


소설에서 그려지는 모습은 쉽게 '단절'될 수 있는 시대이다. 가령 단편 「기억살이 날」에서 전쟁의 끔찍한 기억을 잊기 위해 상이용사들은 투표를 한다. 전쟁의 기억을 간직할지 또는 트라우마를 없애기 위해 모든 기억을 베일에 감추일지 말이다. 엄마는 기억하고 싶어하지만 베일에 감추이는 찬성투표가 이기기에 엄마는 아빠와의 좋은 추억마저도 사라져버린다.  과연 나쁜 기억을 잊기 위해 좋은 기억마저 단절하는 게 유일한 해결책일까? 




나쁜 기억과의 단절만이 아니다. 우리는 기존 문명과도 쉽게 단절을 택한다. 


「바람은 방랑하리」 에서 지구를 떠나 우주선을 타고 우주를 유영한다. 지구 귀환이 없는 편도 여행. 그 곳에서 나는 역사를 가르친다. 떠나온 지구를 가르친다. 하지만 우주선에서 자란 세대인 학생 넬슨은 다음과 같이 반항한다. 


"그럼 아예 가르치지 마세요. " 


어린 넬슨의 반항이 단순한 반항이라고 받아들이지 않는 건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과 같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인문학과 같은 문과 학문은  실용적이지 않다 하여 사라지고 의예과와 반도체에만 쏠림 현상이 일어나는 시대.

이제 현금이 사라져가는 걸 당연시하며 버스마다 '현금없는 버스'라는 표시를 당당하게 표시하며 기존 문명과 과감히 단절하는 시대. 과연 이런 시대가 옳을까? 


「열린 길의 성모」에서도 인간이 모는 자동차는 운행이 금지되고 지역마다 다니며 공연하는 문화는 희귀해져간다. 플랫폼 위에서만 편하게 공연하고 자율주행자만 합법이 되고 신분증은 모두 모바일로만 통용되는 시대. 기존 문명이 받아들이지 않는 이 시대에 주인공들은 한탄한다.  우리를 특별하게 만들었던 모든 것을 잃어나고 있지 않다고. 새로운 세상이 그만큼 좋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지 못하고 있다면서 말이다. 





그럼 우리는 결국 이대로 단절하며 어쩔 수 없이 살아가야만 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세라 핀스커는 그래도 희망을 말한다. 


표제작이기도 한 「언젠가 모든 것은 바다로 떨어진다」 에서 모든 것이 사라진 미래의 모습이 그려진다. 아무도 없는 곳. 그곳에서 기타를 들고 노래를 부른다.  



베이는 머릿속으로 그 곡에 맞춰 자신만의 가사를 붙였다. 


언젠가는 모든 것이 바다로 떨어지지만 

어떤 것들은 다시 기어 나와 새로운 것으로 변한다는 내용의 가사를. 


모든 것이 떨어지고 사라져도 다시 새로운 것으로 변하며 다시 삶을 이어갈 수 있다. 이 희망은  「뒤에 놓인 심연을 알면서도 기쁘게」 에서도 이어진다. 삶의 마지막을 앞둔 남편 조지에게 아내 밀리는 남편이 마저 못 그렸던 그림을 그리게 한다. 


"다시 그림을 그려 보자고, 영감." 


마지막까지 해 보자고 권유하는 아내의 권유는 희망이 없어 보이는 디스토피아적 미래에서도 끝까지 희망을 품어 보자고 말하는 작가의 음성처럼 들린다. 


언젠가 모든 것이 바다로 떨어질지라도 그 안에 또 다른 희망이 생겨날 수 있고 끝까지 살아나가야 함을 말해주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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