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의 첫 달이 벌써 반절이 지나갔다. 새해 1월이 주는  좋은 혜택은 바로 시작하기 가장  좋은 달이다. 왜 시작하기 좋은 달일까? 영어로 새해가 New Year 이듯, 우리의 인생도 New 가 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Old year의 삶을 벗고 New로 거듭나길 바라는 마음. 그래서 사람들은 안 읽던 독서를 시작하려고 하고 안 하던 운동을 계획한다. New life가 되기 위해서 말이다. 그래서 헬스장이나 서점들이 가장 매출이 많은 달이 1월달이기도 하다. 


그런데 왜 2월만 되면 사람들이 서점이든 헬스장이든 발길을 뚝 끊을까? 

그건 해가 바뀌었다고 해서 우리의 인생이 갑자기 New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year'는 'New'가 되었지만 우리의 인생은 어제와 별다른 하루 하루일 뿐이다. 새해는 자동으로 된다. 하지만 인생은 자동으로 new가 되지 않는다. 안 하던 독서가, 안 하던 운동이 1월이라고 해서 자동으로 되어지는 게 아니다. 우리의 old한 행동은 웬만해선 바뀌기 힘들다. old life를 new life로 만들기 위해서는 수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쉽지 않다. 그 사이에 사람들은 좌절하기도 하고 또는 실망하며 new가 되는 걸 멈추고 다시 old로 돌아가고 만다. 


새해에 시작되는 많은 계획들. 물론 그 계획들은 new가 되기 위한 것들이다. 
잘 되기 위한 것들. 어떤 게 있을까?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은 대박 콘텐츠가 나와서 수익화가 이루어지는 것이고 
출판사들은 만드는 책이 베스트셀러를 만드는 것이고 누군가는 원하던 취업을 하는 것이나 또는 바디프로필을 찍거나 여행을 하는 것들이 있다. 

계획을 왜 세울까? 그건 그래도 이 한 해가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도 인생은 어떻게 될지 모르기에 사람들은 인생이 new가 되길 바라며 계획을 세운다. 

동생과 통화를 했다. 서로 2026년 하고 있는 것을 이야기하면서 막막하고 쉽지 않음을 이야기했다. 동생은 "언니, 기운 내. 인생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
그 말을 듣자 나 또한 한 마디한다. 

"맨날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으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 

내 말을 듣자 동생은 웃음을 터뜨린다. 틀린 말이 아니니까.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는 말에 우리는 하루하루를 버티는 중이니까. 어떻게 될지 모르니 사람들은 기대를 하지만 정작 우리를 미치게 하고 실망시키는 것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태이기도 때문이다. 

새해에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의미가 인생이 바뀌는 긍정적인 것을 의미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실망으로 바뀌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그리고 뭐 바뀌지 않았다고 어제와 똑같은 오늘이 되고 오늘과 똑같은 내일이 되리라는 것을 체감할 뿐이다. 그래서 새해에 뺴곡히 쓰며 시작된 다이어리도 달이 바뀌면서 점점 드문드문 쓰게 되고 나중에는 잊힌 존재가 되는 것도 이 떄문이다. 

자동으로 리셋되지 않는 인생. 자동으로 new가 되지 않는 인생. 
결국 New year도 어제의 삶의 연장선일 뿐이다.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의 유명한 '투모로우 스피치' 가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내일과 내일은 하루와 하루이고 걸음과 걸음일 뿐이다. 
왕이 되기 위해 덩컨 왕을 죽였지만 그는 그로 인해 하루 하루를 불안과 두려움에 살아야 했다. 왕이 되기 위한 삶을 살았지만 왕이 되었다고 해서 그의 인생이 왕처럼 바뀌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맥베스의 삶이 우리의 인생과 비슷하지 않을까? 
사람을 죽이거나 나쁜 짓을 하지 않았지만 우리가 old year에 해 놓은 일들이 새해가 되었다고 해서 갑자기 old에서 new로 바뀌지 않는다.  그저 old year의 연장선일 때가 오히려 되기 쉽다. 맥베스도 자신의 악행이 왕이 되었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았듯, 우리의 지난 삶들이 갑자기 확 바뀌는 마법 같은 일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슬프게도 우리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도 기대를 해 보는 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일말의 희망만으로 새해를 계획해보고 변화를 꿈 꾸는 것이다.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인생. 
아마 이건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끝까지 갖고 가는 명제일 것이다. 
추락만 하던 자산이 언제 흐름을 타고 떡상할지 모르고, 조회수가 1도 안 나오는 콘텐츠가 갑자기 알고리즘을 타서 유명세를 탈 지 모른다.  마이너적인 책을 주로 출간하는 '알마' 출판사도 출간한 외국 작가 라슬로 크러스너호르커이가 노벨문학상을 받음으로 갑자기 대박 출판사로 거듭났듯이 말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걸 좋게 바꿔주는 건 그래도 계속 해오는 것들 속에 있는 것 같다. 파란색만 그리고 있던 자산이 떡상하는 것도 자산을 계속 가지고 있어야 떡상하게 된다. 콘텐츠가 알고리즘을 타는 것도 계속 콘텐츠를 만들어야 가능하다.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도 책을 계속 써내려 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떻게 될 지 모르게 만드는 것들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들을 포기하지 않는 속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닐까 싶다. 

헤밍웨이의 대표작 <노인과 바다>에서 홀로 고기잡이를 하는 노인은 84일째 아무것도 잡지 못한다. 하지만 노인은 오늘도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간다. 

하지만 누가 알겠어? 
어쩌면 오늘 운이 닥쳐올는지, 
하루하루가 새로운 날이 아닌가. 
물론 운이 따른다면 더욱 좋겠지. 
하지만 나로서는 
그보다는 오히려 빈틈없이 해내고 싶어.
그래야 운이 찾아올 때 
그걸 받아들일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게 되거든. 

노인의 마음은 한결같다. 비록 오늘도 운이 없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운이 찾아올 때 운을 받아들일 만반의 준비를 갖추기 위해서 끊임없이 배를 타고 바다를 나가는 것. 
그것이 운을 찾기 위한 노인의 자세였다. 84일째 아무것도 잡지 못했다고 해서 포기하고 바다로 가지 않는다면 이젠 정말 아무것도 잡지 못하니까 말이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인생. 
우리를 기대하게 하기도 하고 막막하게 만드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인생.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한 가지뿐이다.  그저 운이 찾아올 때 그 운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는 것. 노인이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듯 우리도 우리의 준비를 해 나갈 뿐이다. 운이 온다면 더 좋고 운이 오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만반의 준비를 끊임없이 해 나가는 것. 그래서 old한 인생이 new로 바뀔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늘의 인생을 잘 살고 또 내일의 인생을 잘 살아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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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요즘 행복하지 않다. 불행하다는 것은 아니다.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행복하지 않다는 것일까? 내 집 마련을 못해서? 직장이 어려워서? 
물론 이것들도 포함이 된다. 그런데 나를 행복하지 않게 하는 건 바로 SNS이다.


정지우 작가의 <글쓰기로 독립하는 법>에서 작가는 SNS의 중요성에 대하여 거의 절반을 할애한다. SNS로 지금의 책을 써내려가고 새로운 커리어로 확장된 케이스이다보니 작가에게 SNS는 최고의 수단일 것이다. 그래서 나 역시 새 마음을 먹고 스레드와 인스타그램을 열심히 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결과는 처참하다. 좋아요가 10개도 되지 않는다. 알고리즘의 선택도 받지 못하고 이웃들의 선택도 받지 못하다. 처참한 조회수를 보면서 내 마음도 처참해진다. 결국 내 역량은 이것밖에 안 되는 것인가 싶어 우울해지곤 한다. 


이 조회수를 생각해보면 이 시대는 행복하기 어려운 사회라는 생각이 든다. 내 행복이 남들의 조회수에 갈리니 말이다. 이제 100만 유튜버가 된 가수 강남도 매일 조회수에 신경이 많이 쓰인다고 한다. 그러고보면 우리는 우리의 기분을 '내'가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남이 정해주는 '조회수'로 정해지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처참한 조회수를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이걸 해? 말어? 

마음같아서는 당장 때려치고 싶다. 내 조회수를 보면 얼굴이 화끈거려 포기하고 싶다. 내가 이걸로 밥 먹고 사는 것도 아닌데 굳이 해야 되나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내가  쓴 글 이곳저곳에 포기하지 않겠다고 쓴  이상 꾸역꾸역 써내려갈 수 밖에... 언젠가는 나도 전능하신 알고리즘님의 선택을 받아 떡상하게 될 날을 기대하며 해 나갈 수 밖에 없지 않은가. 


<폴인>이라는 구독서비스를 이용한다. 우연히 그 곳에서 프로게이머 이민형 선수의 인터뷰를 보았다. 2023,2024년 두 번이나 우승했음에도 주전에서 후보 선수로 밀려난 시절을 선수는 가장 힘들었던 시절로 이야기한다. 당연하다. 이제부터 본격 궤도에 올라섰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벤치로 강등되다니. 창피하고 억울할 것이다. 그 시절을 버티게 해 준 게 있냐는 제작진의 말에 그는 그만의 명언을 말해준다.  

"이것도 결국 좋은 서사가 될 거다." 


자신의 역경을 단지 하나의 실패로 간주하지 않는 것. 
오히려  "이런 시기, 위기가 있어야 서사가 재미있어지잖아요." 라고 말하는 이민형 선수는 자신의 실패를 큰 이야기 속의 하나의 에피소드, 기-승-전-결에서 가장 중요한 '전'부분의 한 에피소드로 간주하고 있다. 

자신의 삶의 결론은 이미 정해졌다. 우승하고 파이널MVP를 받는 것. 
단지 그 결론으로 다다르는 과정 안에 한 두개의 위기의 에피소드가 추가될 뿐이다. 그 에피소드들은 아슬아슬하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더욱 재미있게 해 주는 양념과도 같은 역할을 해 준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삶은 더 재미있어진다고 믿었고 실제로 그는 그가 쓴 결말대로 우승과 파이널 MVP를 차지했다. 

이민형 선수를 보면서 생각했다.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 방식에 따라서 삶의 희비가 바뀌어지는 것이 아닐까라고 말이다. 

자신의 삶을 희극으로 삼느냐 아니면 비극으로 이야기하느냐. 그것에 인생의 승패가 좌우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나는 슬프게도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바로 '나의 엄마'이다. 

엄마의 삶이 실패는 아니다. 하지만 언제나 엄마는 온갖 고생 끝에 투병하는 자신의 삶을 불쌍하게 생각하신다. 왜 안 그렇겠는가. 가족을 위해 온 몸과 마음을 다 바쳐 고생하셨는데 파킨슨병과 같은 무서운 병을 허락하셨다니. 평생 십일조를 내고 교회 청소를 하며 하나님을 섬겼는데 이런 무서운 병을 주시다니. 

그 이후 엄마의 서사는 더욱 슬퍼져갔다. 자신을 더욱 안스럽게 여기고 불쌍하게 생각하신다. 그렇지 않다고 말하지만 엄마는 자신의 불행 서사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한다. 차츰 악화되시는 엄마의 병세에 따라 엄마의 서사는 더욱 깊어져간다. 

하지만 더 들어가보니 나 역시 불행의 서사를 쓰고 있다. 이 글 맨 앞에 나는 행복하지 않다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것도 조회수가 낮아서, 알고리즘님의 간택을 받지 못해서 불행까지는 아니지만 처참하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러므로 나 역시 나만의 비극 서사를 쓰고 있었다. 

정혜윤PD의 에세이 <책을 덮고 삶을 열다>에서 작가는 우리의 삶을 구하는 방식은 '우리의 삶을 이야기하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우리 인생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거나 일어나지 않는다. 
진짜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
이야기할 방법을 찾는 것이다. 
이야기하는 방식이 바뀌면 삶도 바뀐다.
이야기하는 동물로서 우리가 할 일은 자신의 이야기를 찾는 것.
우리의 이야기를 남이 대신하지 않게 하는 것.
우리의 가장 멋진 점을 이야기할 방법을 찾는 것이다.  


내 삶을 이야기하는 방식. 

이민형 선수는 자신의 실패를 이야기하는 방식이 거대한 희극 속의 하나의 에피소드라고 생각하며 서사를 만들어갔다. 음식의 맛을 더욱 감칠나게 하는 조미료와 같은 역할로 실패를 받아들였다. 그 방식대로 그의 삶이 바뀌었다. 

그렇다면 나는 내 삶을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는가. 

정혜윤PD는 우리의 이야기를 남이 대신하게 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는데 남의 조회수에 연연한다면 그거야말로 남이 우리의 이야기를 대신 써내려가게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므로 우리가 당장 해야 할 일은 나의 이야기를 이민형 선수처럼 재미있는 이야기로 바꾸어보는 거 아닐까? 
직장 상사에게 혼나면 직장에서 고진감래하는 성장 드라마로 이야기를 말하고 슬픈 일이 있을 때마다 '슬퍼도 울지 않는 캔디' 와 같은 만화로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새해 거창한 목표 열 가지보다 자신의 인생을 이야기할 방법 찾기. 
자신의 인생을 희극으로 바꿔 이야기하기. 그보다 더 거창한 목표가 있을까? 

그러므로 이 글을 읽는 모두가 하루를 이민형 선수처럼 시작하길 바래본다. 
아니 2026년을 이민형 선수처럼 이 한 마디로 가득 차길 바래본다. 

이것도 결국 좋은 서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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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아내
K.L. 슬레이터 지음, 박지선 옮김 / 반타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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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판 이혼숙려캠프 같은 마라맛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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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아내
K.L. 슬레이터 지음, 박지선 옮김 / 반타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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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라는 말이 있다. 물을 칼로 베어도 금방 합쳐지듯, 부부 싸움도 금새 화해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제 그 말도 옛말이 된지 오래다. 물은 칼로 베어지지 않듯, 부부 싸움도 자주 하게되면 너무 베어서 다시 붙어지지 않는다. K.L. 슬레이터의 심리스릴러 《남편과 아내》는 제목과 표지만큼 강렬하듯 부부 관계가 인생을 파탄으로 몰아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장편서스펜스 소설이다. 


이상한 밤이었다. 


소설은 여러 인물의 독백으로 시작된다. 소설의 첫 장을 여는 인물은 세라. 바로 이 심리스릴러 소설의 희생양이 되는 인물이다. 

술집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데이트 상대가 나타나지 않았고 다시는 볼 수 없을 거라 여겼던 사람과 마주친 이상한 밤. 

하지만 어떤가. 둘은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그는 세라를 위해 뭔가를 약속해 주었다. 그걸로 끝났으면 좋았으련만 그녀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어느 억센 손에 어딘가로 끌려가 목을 조이고 죽게 된다. 이 범인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은 세라에게 없어진 독특한 무늬의 스카프 하나. 그 스카프를 찾아야 한다. 


《남편과 아내》 는 세라 그레이슨 실종 사건을 찾는 노팅엄셔 경찰과 함께 세 쌍의 부부들이 나온다. 


유방암 투병을 하고 있는 니콜라와 배관공사를 하는 남편 칼 밴스 부부 

니콜라의 자랑스러운 아들 파커와 부유한 인플루언서 루나 부부 

니콜라와 칼을 무시하는 루나의 부모님 조와 마리 부부. 


이 소설이 영리한 점은 초반 파커와 루나 부부의 문제점이 심각하다는 점을 아주 공들여서 설명해주고 있다는 점이다. 두 사람이 자란 집안 환경, 루나의 집착과 질투, 파커의 바람기 등등. 각방 등, 까도 까도 나오는 양파처럼 파커와 루나 사이가 심상치 않다고 믿게 한다. 그래서 이 소설의 제목 《남편과 아내》 가 바로 파커와 루나의 이야기라고 철썩같이 믿게 한다. 아니 속게 한다. 


하지만 이 소설이 진짜 빛을 발하는 부분은 파커와 루나 부부에게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던 이야기가 다른 부부의 이야기로 확장되면서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하는 것처럼 과연 10년 아니 30년 넘게 맞대고 살아온 부부지만 과연 상대방을 제대로 알고 있나라는 의심에 빠지게 한다. 거만하지만 완벽한 조와 마리 부부조차 그들 사이에 문제가 있었음을 알게 되며 파커와 루나 사이로 좁혀졌던 범인의 범위가 모든 인물들로 확 넓혀진다. 모두에게 문제가 있고 모두에게 동기가 있다. 무엇보다 부부는 서로를 가장 잘 안다 하지만 눈 뜬 장님과도 같은 관계이다. 


장편서스펜스 《남편과 아내》 는 결국 책 속의 모든 등장인물의 이야기이자 모든 부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 또한 10년 넘게 부부생활을 하고 있고 남편은 나보다 나를 더 잘 안다고 믿는다. 하지만 작가는 묻는다. 과연 그럴까? 

소설을 읽다보면 과연 남편은 나를, 나는 남편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라는 질문 앞에 직면하게 된다. 이 소설의 반전을 알게 된다면 누구도 자신의 배우자를 잘 안다고 확신할 수 없을 것이다. 


부부 관계에 얽힌 증오와 배신 그리고 인간의 이기심을 극한으로 치밀어 오르는 상태에서 마지막 승자는 가장 순수한 이들만이 남는다는 건 그래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만이 살아남는다는 사실을 말해 주는 것이리라. 


우리는 지금 여기에 있고 그 어느 때보다 강하다. 

우리가 함께 가야 할 길이 멀고 치유해야 할 상처가 가득하며

삶은 불확실한 일들로 가득할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다. 

어떻게든 우리는 새로운 삶을 함께 일궈 나갈 것이고 살아남을 것이다. 


《남편과 아내》 는 마지막까지 힘을 빼지 않고 달려가는 소설이다. 강력한 반전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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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그녀의 것
김혜진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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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세요? 

소설책을 좋아한다. 소설을 읽을 때마다 주위에서 듣는 말들이 있다. 재테크나 일에 도움이 되는 실용적인 책들을 읽으라고 조언한다. 허구의 이야기들이 과연 삶에 유용한 것이냐는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소설을 탐닉하는 나에게 읽을수록 유용성을 강조해주는 책들이 있다. 내 삶의 전환점이 되어준 이야기 마나토 가나에의 <이야기의 끝>이 그랬고 환경에 대한 두려움은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 임볼로 음붸의 소설 <우리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의 이야기들이었다. 그리고 지난 달 초 읽은 김주혜 작가의 소설 <밤새들의 도시>는 나의 화려하지 않은 현실을 감싸안게 해 주었다. 그리고 나는 직감한다. 김혜진 작가의 소설 『오직 그녀의 것』이 또 다른 나의 일과 삶들을 지탱해 줄 것이라고 말이다. 

딱히 좋아할 만한 것도 없이 막연히 아버지의 꿈인 교사로서의 길을 생각하던 홍석주. 그녀는 대학 시절 청강생으로 듣게 된 최민애 작가 겸 교수의 수업을 듣게 된다. 자신의 작품을 합평하는 수업에서 냉정하지만 날카롭게 비평하는 자신의 말에 대해 최민애 교수는 홍석주에게 말을 한다. 

작품을 냉정하게 보라는 건 단점에 집중하라는 의미가 아니에요. 그 작품이 지닌 고유한 지점, 빛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라는 의미이기도 하죠. 좋은 점을 찾는 건 부족한 점을 찾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부족한 부분에서 잠재성을 발견하는 건 더 어려운 일이고요. 


최민애 작가는 분명 창작과를 수강하는 학생, 즉 자신만의 작품을 창작해내는 작가 지망생인 홍석주에게 하는 충고였다. 하지만 이 말을 결국 편집자의 길로 가게 되는 홍석주에게 편집자의 기본을 암시하는 말처럼 느껴진다. 
작품의 빛나는 가능성을 발견해내는 사람. 부족한 점을 고쳐주고 잠재성을 키워주는 직업이 바로 편집자의 일이니 말이다. 

모든 사회 신입생들이 그렇듯 좋아하기보다 생계를 위해서 일을 시작한다. 홍석주 또한 마찬가지였고 의도치 않게 출판사에서 일을 시작한 그녀가 교열부에서 편집부로 가기 위한 면접을 보며 물은 질문은 바로 '책을 좋아하세요?'였다. 

책을 좋아하세요? 라는 질문을 던진 장민재 사수의 말에 표정으로 답한 홍석주. 『오직 그녀의 일』에서는 '좋아한다'는 것이 단지 마음이 좋아한다는 것이 아닌 좋아하기 위해서 수많은 일들을 감당해낼 수 있는가를 묻는 것이었음을 전반적으로 이야기한다. 좋아하는 마음을 지키기 위해 때론 양보해야 하고 물류창고 화재로 큰 피해를 입었음에도 극복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생각이 다른 동료나 상사를 설득해야 할 때가 있고 작가를 설득하기 위해 기나긴 토론을 이어갈 때도 있었다. 일들은 쉽지 않다. 개인만의 작업이 아닌 작가와 편집자, 그 외 다른 여러 관계자 그리고 독자들까지 이어지는 이야기들 속에서 고군분투해야 한다. 그 과정은 늘 익숙해졌다고 생각할 떄면 새로운 형태로 시련과 고난을 안겨준다. 

그래서 '책을 좋아하세요?'라고 질문했던 장민재 편집자는 홍석주에게 마지막 책을 건네며 말한다.



'좋아하세요?' 라는 질문 속에는 밉고 싫고 그만두고 싶어도 꾸역꾸역 해 나갈 수 있는지를 묻는 질문이었다. 

책에서 동료 규한보다 먼저 차장으로 승진한 대목이 나온다. 규한은 여행 에세이 베스트셀러를 만들어내어 매출에 일조를 한 편집자이다. 하지만 먼저 승진한 건 규한이 아닌 석주였다. 규한은 반발했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홍석주는 '책을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에 진심으로 '예'라고 답할 수 있는, 그녀의 일로 증명해내는 작가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말은 결국 자신의 삶으로까지 이어진다. 늘 남의 이야기를 만들어주느라 원고를 우선시하던 석주. 석주의 개인적인 삶은 늘 작가와 책 뒤편에 자리잡고 있었다. 작가의 말에서 감사의 대상에 나오는 한 구절과 책 뒷편에 편집자의 이름으로 존재감을 알기 쉽지 않은 직업이다. 말 그대로 시시하고 평범한 삶. 반복적으로 읽고 만드는 직업. 하지만 그 평범한 하루들이 쌓여 오직 자신만의 것,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고 있는 것이었다. 어느 무엇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특별한 이야기. 바로 자신의 이야기임을 알기 때문이다. 어느 원고보다도 가장 소중하고 특별한 건 바로 자신의 인생이자 어느 편집자도 건드릴 수 없는 오직 그녀만의 것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삶의 편집자이다. 최민애 교수가 말했던 부족한 점에서도 가능성을 발견해내는 과정이자 좋아하는 걸 끝까지 책임지기 위해 꾸역꾸역 해 나가며 인생을 수정해나가는 한 권의 책의 저자이자 편집자라는 걸 이 책으로 말해준다. 

내 삶의 모토는 '좋아하는 걸 더 좋아하겠습니다' 이다.  『오직 그녀의 것』은 내게 좋아한다는 말의 의미를 더 날카롭게 묻는다. 

밉고 싫고 그만두고 싶어도 꾸역꾸역 해 나갈 수 있나요?
이 일을 더 좋아하기 위해 부차적인 것들을 감당해낼 수 있나요? 

결국 좋아한다는 말은 더 큰 책임감을 불러일으키는 과정이라는 걸 김혜진 작가는 말해준다. 

그래서 나는 2026년 내 모토를 그대로 밀고 나간다. 

좋아하는 걸 더 좋아하겠습니다. 
좋아하기 위해서 다른 것들도 감당해낼 수 있을 만큼 더 좋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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