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 - 제3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함윤이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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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정전』을 읽으며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가  떠올랐다.


고유림은 빚에 쪼들리는 부모가 속상하고 안타까워 싫은 소리를 한다.


"마음이 뭘 해 줄 수 있는데?"


마음만으론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고 유림은 생각했다. 하지만 그 마음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친구 나희도의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있었다.


그래서 유림은 다시 엄마에게 말한다.


"알고보니, 마음만이 해 줄 수 있는 게 있더라."


✔️마음만이 해 줄 수 있는 것.

그것을 알게 하는 소설이 바로 <정전>이었다.


소설의 구조는 특이하다.

아버지의 사기로 몰락한 집안 형편, 궁여지책으로 선택한 제약공장 계약직 직원으로 내몰린 막은 수지와 영준 그리고 재외외국인 라히루와 친해진다.


라히루에게 친구 이상의 감정이 생기던 즈음 라히루의 공장 사고를 접하게 된다. 보호받기는 커녕 라히루의 처지를 악용하여 그를 해고한 공장의 행태에 분노하여 노조를 가입한다.


하지만 계약직인 막도 어쩔 수 없는 일.

계약기간이 종료되자 막도 쫓겨나고 바깥에서 애쓰게 싸우는 노조를 보면서 막은 외면하고 싶었던 친구 은단을 찾아간다.


모든 걸 정전시킬 수 있는 초능력의 소유자 은단. 그 은단에게 부탁하자. 친구 라히루를 다치게 하고 무고한 노동조합 가입자들을 해고시킨 공장을 놀라게 해 주자.


그렇게 공장을 정전시킬 계획을 세우는 막.

과연 그 계획은 성공할 수 있을까?


세상은 '마음'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게 많다. '돈'이 없으니 막은 당장 대학을 휴학하고 일을 해서 등록금을 벌어야 한다.


노조 또한 뙤약볕에서 농성하지만 돈은 없고 시간만 있는 노동자들은 질질 시간끌기에 지쳐간다. 노동자들은 지치는 반면 돈을 쥐고 있는 공장은 끄덕없다.


하지만 정말 '마음'은 힘이 없는가?


마음은 힘이 없다. 그 말은 맞다. 


막이 타인과 내가 다르다고 생각했을 때 막은 함께 하지 못했다. 

외국 출신인 조안을 토종 한국인인 자신과 다르다고 생각한 순간 그 거리감은 마음을 쓰지 못하게 한다. 

학교로 돌아갈 곳이 있는 자신은 회사 복직이 최우선인 노동조합자들과 같은 무리가 아니라고 생각하자 마음을 쓰지 못한다. 

항상 뒤에서 멀리 바라보기만 할 뿐이다. 




하지만 마음은 '돈'이 해줄 수 없는 걸 해낸다.

퇴직금을 받지 못한 막을 위해 돈을 챙겨 주고 한 편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막의 마음을 돌이켜세운다.

막이 라히루를 위해 노조에 가입하게 하고 은단이 막을 위해 정전을 일으키게 한다.

누군가를 생각하는 마음이라는 건

막처럼 작은 행동을 하게 하거나 은단처럼 그 마음이 커져 정전과 같은 놀라운 기적을 벌이게도 한다.

그래서 막상 결전의 날에 막이 주도했음에도 은단이 실제로 주인공처럼 보일 수 있었던 건 '마음'이 있는 사람이 은단이었기 떄문이리라.



라히루의 연인 서영은 마음에 대해서 말한다.


나는 그애를 사랑하고... 

그래서 잘 알아요. 

나한테 걔는 핑곗거리 같은 게 아니에요. 

그보다 훨씬 넓고, 많고, 다양하고...


마음은 훨씬 넓고 많고 다양한 힘이 있다고. 그러니 그 마음을 무시하지 말라고.


이 소설을 읽으며 다시 한 번 마음을 믿고 싶어진다. 오로지 남을 생각하고 위하는 마음. 그 마음만이 주는 힘을 나도 은단처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작은 상상을 하면서.


속도감 넘치는 전반부보다 후반부가 조금 아쉬운 면은 있다. 하지만 소설은 마지막까지 마음만이 해낼 수 있는 일들을 충실히 보여준다. 그리고 그 마음을 잃지 않는 한 우리가 가진 힘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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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의도는 없었습니다
손원평 지음 / 창비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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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은 도덕성을 따지지 않는다.


경제공부를 하면서 가장 자주 듣는 말이다. 자산시장에서 그 기업이 깨끗한가 아닌가는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돈'이 되느냐 안 되느냐만 중요할 뿐이다. 철저하게 '돈'이 중심이 되는 세계인 자본주의 시장이 인간 관계로 들어와서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나에게 돈이 되느냐 안 되느냐가 중요하다. 돈이 되지 않는 것들은 사람이든 자산이든 인정 받지 못한다.

소설 《아몬드》의 저자 손원평 작가의 신작 『나쁜 의도는 없었습니다』 는 자본주의 시스템이 만들어 놓은 인간 관계의 모습을 이야기한다. '돈'에 따라서 달라지는 인간 관계를 다룬 이야기를 10편의 단편에 담아넣는다.


먼저 첫 번째 단편 <당신의 손끝>에서 '돈'에 대한 정의를 보자.

세난동에 있는 프리미엄 컬처 센터에서 미술 강의를 하는 효원. 효원의 강의에서 VIP 수강생은 주영씨다.

주영씨가 모든 강의를 등록하며 효원의 주머니도 전보다 여유로워진다. 효원은 주영과 효원과의 신뢰 관계가 생겼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주영을 믿고 포기하고 있었던 화실의 꿈을 다시 키운다. 그 꿈을 키우게 해 주는 건 무엇일까?

수강생 주영씨와의 인간적인 관계일까?

그럴 수 없다. 주영씨로 인해 벌어들이는 여유, 즉 '돈'이다.

어딘가 메말라 있던 효원의 일상에도

빛을 반사해낼 무언가가 생긴 것이다.

영롱하게 반짝이는 윤기 있는 모든 것.

모두의 기분을 단번에 좋게 만들어버리는 것.

그것의 이름은 뭘까.

효원은 답을 알고 있었지만

일기장에조차 그 한 글자짜리 단어 대신

다른 말로 자신의 상태를 표현했다.


일상을 반짝이는 윤기. 빛을 반사해낼 무언가. 기분 좋게 만드는 것.

이 단어에 동의하는가? 슬프게도 우리는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수강생이 인간으로 안 보이고 '돈'으로 보이는 관계. 그 관계는 지속될 수 있을까? 철저한 '돈'과 '돈'의 관계는 인간 관계에서 해결될 수 있을까?


첫 번째 단편 <당신의 손끝>에서 '돈'을 일상에 빛을 반사해낼 무언가라고 했다. 그렇다면 그런 '빛'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빛이 없는 모습을 보여주는 소설은 바로 <유령의 집>이다.

마음씨 착하며 노숙자나 동물들에게도 음식을 제공하는 식당을 꿈꾸며 야심차게 시작한 식당.

하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다. 재료는 썩어가고 월세는 밀려간다. 식당이 안 되는 이유를 동업자인 동생은 '볕이 잘 안 들어서'라고 말한다.



<당신의 손끝>에서 '돈'이 빛을 나게 해 주는 것이라고 했다면

<유령의 집>에서 '돈'이 없기 때문에 볕이 들지 않는다. 돈이 돈을 벌어야 한다는 자본주의 논리에 돈이 없는 사업은 해도 행운도 허락하지 않는다.

해도 행운도 허락되지 않는 '돈'이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가?

분개하는가?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는가? 아니다. '절망'에 익숙해진다.

<모자이크>에서는 해도 행운도 들지 않는 삶을 한 마디로 설명해준다.



절망하는 것도 일말의 희망이 있어야 가능하다.

행운도 들지 않는 상태는 '절망'도 허락하지 않는다. 어디에도 답이 없는 삶. 그 삶의 끝은 그저 살아가는 것 뿐이다. <유령의 집>과 같은 선택을 하거나 또는 그 상태로 살아가는 것 뿐이다.

부자가 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의 상태를 유지하기 살아가기 힘든 삶.

돈이 없으면 바로 밑바닥으로 추락하기 만들어진 사회는 어떤 상태가 되는가?



내가 살기 위해서 타인을 밟거나 죽어야 하는 삶.

더 잔인하고 가혹하게 죽이기 쉽게 만들어진 구조를 보면 시스템이 나쁜 것일까 아니면 인간이 악한 것일까 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누가 문학을 낭만이라 했던가.

이토록 처절하고 사실적인 소설이 과연 낭만이라 할 수 있는가?

《나쁜 의도는 없었습니다》를 읽으면 바로 나의 모습이 겹쳐진다. 그리고 타인의 얼굴이 겹쳐진다.

나쁜 의도는 없었습니다.

단지 이 시대가 어쩔 수 없으니까요...

돈으로 귀결되는 자본주의 시대에 인간성은 이대로 사라지는 것인가?

저자 손원평 소설가는 그 답을 읽는 독자에게 남긴다. 그리고 그 답은 우리 각자가 만들어가야 한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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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하는 눈동자 - 양장
이슬아 지음, 이훤 시.사진 / 먼곳프레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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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한다는 건 확신이 없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다. 쉽게 의심하고 쉽게 흔들린다. 굳은 확신을 가져도 살기 힘든 세상에 이슬아 작가는 '갈등하는' 눈동자들을 이야기한다. 과연 갈등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이슬아 작가는 글, 영화, 애니메이션, 그리고 현실 속에서 여러 갈등하는 눈동자들을 만난다. 

먼저 갈등의 이유를 알아야 할 것이다. 앞서 말했듯 확신에 찬 사람은 의심하지 않는다. 자신이 믿는 것과 아는 것들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확신 하에 살아간다. 하지만 갈등한다는 건 이게 맞는 것인가를 생각한다. 
하나의 작은 돌이 잔잔한 강에 작은 물결을 일으키듯 이제껏 알고 있던 믿음에 작은 파문을 일으키며 균열을 낸다. 

이슬아 작가는 그 균열을 낸 사람 중 한 명으로 변재원씨를 소개한다. 장애인이지만 자기계발로 장애를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던 사람. 투쟁하는 사람들과 어울리지 말라는 부모 밑에서 자란 변재원씨의 갈등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 박경석님을 만나면서 시작된다. 투쟁을 하고 싶어서보다 투쟁을 할 수 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를 보게 되며 갈등하며 교통약자의 해방을 위해 함께 활동하게 되는 변재원씨의 눈동자였다. 


<장애시민 불복종>은 활동하자는 제안을 수락한 뒤에 겪은 일이 담긴 책이다.  모든 이야기는 변화에 관한 이야기지만 변재원이 전장연을 만나며 겪은 변화는 역시 특별한 데가 있다. 투쟁하는 힘이 곧 사랑하는 힘이란 걸, 그리고 사랑의 방식만큼이나 투쟁의 방식도 수백 수천 갈래로 창의적이란 걸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확신에 찬 사람들은 약자들을 보지 못한다. 자신의 이익에 젖어, 당연한 권리에 젖어 있다. 
그들은 변화를 이루어내지 못한다. 변화를 내는 사람들은 의심하는 사람들이다.  
과연 이게 맞는 것인가 질문하며 의심한다. 그 의심과 갈등 끝에 변화를 택하며 변재원씨처럼  수동적인 생활에서 능동적으로 변해간다.   그래서 이슬아 작가는 '갈등하는 눈동자'는 흔들릴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갈등하는 눈동자'는 보는 방식도 다를 수 밖에 없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아니 에르노를 소개한다. 
전 남편이 찍었던 아니 에르노와 어린 아들의 비디오. 그 비디오는 아들의 육아에 행복해하는 엄마로서 아니 에르노만의 모습이 담긴다. 하지만 아니 에르노는  시선을 응시받는 자에서 응시하는 자로 옮겨간다. 남의 눈에 비춰지는 자신이 아닌 자신이 자신을 응시하며 자신을 설명한다. 그 때의 자신을 솔직하게 응시하며 에르노는 자신의 경험을 글로 온전히 녹여내는 작가가 되어간다. 한 가지 방식으로만 자신을 보았다면 쓸 수 없었을 에르노식 글쓰기를 이게 맞는가 고민하며 갈등하며 시선을 자기 자신으로 옮겨 감으로 자신만의 글쓰기를 만들어간다. 



또한 덴마크로 입양되었던 리 랑그바드 인터뷰를 통해 사회 구조적 죄악으로 어느 곳에서도 온전히 속할 수 없었던 구조에 의문을 제기하고 화를 내는 그녀의 책과 인터뷰 또한 그 시절 눈감았던 사회적 구조에 의문점을 던지며 발표하게 되었던 케이스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을 '여자'라고 말하며 글을 쓰며 다른 방식의 글쓰기를 도입해간다. 

『갈등하는 눈동자』에 수록된 그들은 갈등 속에 행동을 택한다. 누군가는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음에도 '사랑하는 자'로 남는 걸 택하고 누군가는 애매한 승리를 거둘 수 있었음에도 결국 재승부를 통해 패배하기도 한다. 
그 행동들은 아마도 계속 변할 것이다. 그들은 수많은 갈등과 고민 속에 행동을 택했지만 갈등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끊임없이 고민하며 또 다른 변화를 위해 자신을 던질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편집자인 김진형 편집자는 편집자의 말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굳건한 눈동자를 가진 사람의 세상은 소란하지만, 갈등하는 눈동자를 가진 사람의 세상은 울창하다."

이 세상을 울창하게 만드는 건 확신이 아니다. 이 세상에 대해 끊임없는 갈등과 고민을 가진 사람만이 세상을 울창하게 만들 수 있다. 그 진리를 이 책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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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소국의 제2차 세계 대전사
권성욱 지음 / 열린책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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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위험이 가속화되는 현재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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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소국의 제2차 세계 대전사
권성욱 지음 / 열린책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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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은 분명 전세계를 휩쓸었다. 작은 조선을 비롯하여 유럽을 넘어 아프리카까지 전쟁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은 없다. 온 세계를 뒤덮은 전쟁임에도 내게 뚜렷하게 기억나는 건 영국의 '윈스턴 처칠'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 와 같은 몇몇 지도자일 뿐이다.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일어난 이 참혹한 전쟁에 왜 우리가 기억하는 건 두 나라의 지도자일 뿐인가.   과연 다른 나라에서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  너무나 익숙한 강대국의 역사에 우리는 다른 한 쪽의 역사를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았다. 


《약소국의 제2차 세계 대전사》는 바로 그런 우리의 의식에 경종을 올린 작품이다.  


강대국의 전쟁이 아닌 '마이너한 전쟁사'를 주로 다루는 권성욱 연구가는 2차 세계대전에서 우리가 보지 못했던 약소국의 분투를 그려낸다. 왜 우리가 '약소국'의 역사를 알아야 하는가? 


우리가 주목해야 할 쪽은 그동안 망각했던 나머지 반쪽의 역사다. 

왜냐하면 우리 역시 약소국이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대한민국은 여전히 강대국에 들지 못한다. 우리의 현실은 여전히 '약소국'이다. 

세게 2대 강국 중국의 위협, 북한과의 분단 현실 속에서 대한민국은 분투하고 있다. 지정학적 위험을 안고 있는 약소국인 대한민국은 강대국들이 어떻게 약소국들을 공격해 왔는지, 그 위협에서 약소국이 왜 패배하고 또는 어떻게 지켜냈는지를 보아야 한다. 


저자는 먼저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 현재도 진행중인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을 이야기한다. 

왜 2차 세계대전을 이야기하는데 우크라이나 전쟁을 이야기하는가. 그건 지난 1940년대와 지금의 전쟁이 모습만 다를 뿐 같은 형태로 반복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우크라이나를 편들다가 지금은 우크라이나에게 은근슬쩍 양보를 종용하는 미국과 다른 유럽국가들의 현실은 히틀러가 체코슬로바키아를 날로 먹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 영국의 체임벌린 수상의 뮌헨 회담과 비슷하다. 




강대국의 역사를 중심으로 2차 세계대전사를 공부했던 내게  저자가 들려주는 <약소국의 2차 세계대전사>를 읽으면서 알게 되는 새로운 사실이 있다. 


'전쟁'의 시작은 '강대국'들이 자신을 지키려고 '약소국'의 안전을 무시할 때 시작된다는 점이다. 


체코슬로바키아가 영국 체임벌린 수상의 무지함으로 몰락되고 본격적인 히틀러 공격이 시작되었듯, 무솔리니의 에티오피아 공격 또한 강대국들이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의 국제연맹에서의 호소에도 무반응함으로 무솔리니의 공격은 점점 더 심해졌다. 약소국들이 도움을 요청할 때 도와주었더라면 가능했을 전쟁의 위험을 방치함으로서 적의 위험을 더욱 키웠다는 사실이었다. 


안타깝게도 현재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 또한 같은 모습으로 반복되고 있다. 모습은 다르지만 현재 미국과 이스라엘 그리고 이란과의 전쟁 또한 비슷한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 군비 경쟁을 벌이며 전쟁이 가속회되고 있는 현재. 

에티오피아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의 연설은 지금도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을 알려준다. 


이것이 오늘의 우리이며

내일의 여러분이 될 것입니다. 


강대국이 자신의 안전을 지키고자 약소국의 운명을 과소평가하는 순간 약소국의 불행은 강대국의 불행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러므로 다른 이웃국가의 불행은 절대 그들만의 불행이 아니다. 바로 우리의 내일 모습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저자는 또한 약소국에게도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스탈린과의 평화 조약을 믿고 오래 지속된 평화에 익숙해져있던 핀란드의 안일함을 꼬집는다.


저자는 핀란드가 침략을 받았던 배경에 '오랜 평화에 익숙해진 그들' 이라고 말한다. 


약소국일수록 평화의 상태를 지키기 위해 더욱 경계해야 하거늘 그 익숙함에 국방을 소홀히 했기에 침략을 받았다. 다행이 핀란드는 지켜냈지만 다른 나라들은 히틀러의 공격에 무너졌다.  국가의 이익 앞에 영원한 우방도 적도 없다는 사실을, 결국 우리나라는 우리만이 지킬 수 있음을 약소국인 우리가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진리이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연설이 떠오른다. 


"과거가 현재를 구할 수 있는가?" 


이 묵직한 책을 읽으면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전쟁에 관한 뉴스를 보면서 과연 우리는 현재를 구하고 있는 것일까라는 깊은 자괴감에 빠지게 된다. 저자가 인용한 프랑스 철학자 볼테르의 말 <역사가 되풀이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실수가 되돌이될 뿐>이라는 말처럼 우리의 실수는 왜 과거로부터 반복되기 어려운가 씁쓸해진다. 


《약소국의 제2차 세계대전사》는 900페이지가 넘는 벽돌책이다. 하지만 이 책이 전혀 지루하지 않는 건 쉬운 저자의 설명과 이해를 돕기 위한 많은 자료 사진들, 그리고 강대국의 관점이 아닌 약소국의 관점에서 보는 새로운 시각이 주는 신선함에 있다. 


전쟁이 장기전이 될 수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 전쟁이 내일의 우리의 모습이 되지 않기 위해 꼭 필요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저자의 바램처럼 많은 정치인들이 먼저 이 책을 꼭 읽기를 바라며 또한 불안한 평화에 익숙한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책이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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