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사람의 기쁨은 함께 책을 권하고 나누는 게 아닐까 싶다.

갈수록 책을 읽는 사람이 적어지기에 함께 읽는 존재는 매우 귀하다. 내게는 동생이 그런 존재이다.

아이들 중 나를 쏙 닮아 리틀 사라라고 부르는 첫째 딸에는 만화책 <귀멸의 칼날>이외에 책을 일체 읽지 않는다.

다행인 건 둘째 딸이 책을 읽는다는 사실이다. (정 할 게 없을 때 읽는다는 단점이 있지만)

<빨간머리앤 전집> 을 다 읽고 내가 추천해 준 『편지 가게 글월』 을 재미있게 읽고 있다.

주말, 아이들과 함께 각자 읽을 책을 들고 커피숍에 가서 책을 읽었다. 나는 스릴러 소설 <숲의 신>을, 아이는 <편지 가게 글월>을 읽는다. 아이가 펜을 달라더니 밑줄쳐도 되냐고 묻는다.

아이의 밑줄 친 문장이 궁금해서 보여달라고 했다.


'많이 그립다' 라는 말은

'많이 행복했다'라는 뜻일지도 몰랐다.


아이에게 왜 이 표현이 좋았냐고 물었다.

아이는 '그립다'라는 말은 보통 '슬프다' 라는 뜻으로 비춰지는데 '그립다' 라는 말을 하는 게 행복했기 때문에 그립다라고 다짐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아이의 말을 들으며 악뮤의 <기쁨 슬픔 아름다운 마음>이 떠올랐다.

악뮤 이찬혁은 이 곡의 가사의 의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떤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 때문에 내가 기뻤다는 것이잖아요.

그것까지가

다 아름다운 마음이다




아이가 이 문장을 해석하는 것과 악뮤 이찬혁의 가사 의미가 함께 어우려지니 매우 놀라웠다.


그리워할게 많다는 것.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리즈시절을 그리워한다.

또는 사랑했던 사람을 그리워한다.

떠나간 것을 그리워하며 슬퍼하기보다

즐거웠기에 그리웠고 행복했기에 그리워할 게 있다는 것.

그러므로 그리운 마음도 아름다운 마음이고 행복한 마음이 될 수 있다.

오히려 슬픈 건 그리워할 것조차 없는 것일테니까.

나는 호주 워킹홀리데이 시절이 그립다.

그 시절에 만났던 할머니들과 자유로웠던 시절이 그립다.

그 시절이 있었다는 것에 감사하며 행복해한다.

내 인생에 그토록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에 대해서 나는 감사한다.

그리고 후에 지금 이 시절도 그리워하며 좋았다고 말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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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읽고 있는 책 중 『독하게 돈 공부』에서 돈 공부 하기 전 우리가 해야 할 질문이 있다고 말한다.


돈 때문에 일할 필요가 없다면

나는 무얼 하며 살고 싶은가?


이 질문 앞에 나만의 대답을 써 본다.



내가 살고 싶은 삶...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나의 책을 쓰고 작가로 여러 강의를 다니며 북토크를 하며 다니는 삶이다.

예전엔 '일간 이슬아'처럼 독보적인 장르가 되는 이슬아 작가가 나의 롤모델이었다면

요즘 나의 롤모델은 '정지우' 작가이다.

최근 정지우 작가의 페이스북 포스팅에 하반기 글쓰기모집을 한다는 글을 읽고 신청서를 제출했다.

이후 받은 신청서 공지에 희망자가 모집 정원의 20배수가 된다고 한다.


정지우 작가를 보면서 경이로움을 느끼는 점은 그의 다양한 포트폴리오 때문이다.

'작가'

저작권 관련 변호사

글쓰기 강사

뉴스레터 발행자..

그는 늘 다양하게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확대하며 글로만 먹고 사는 작가가 아닌 생계형 작가로서 나와 같은 작가 지망생들에게 본보기가 되는 삶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정지우 작가의 <글쓰기로 독립하는 법>은 글쓰는 모든 이들에게 필독서로 권하고 싶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여러 분야를 넓혀가며 본업인 글쓰기를 더욱 튼튼하게 만드는 것. 다만 그는 '주식'과 같은 투자 방법보다는 육체 노동을 더 선호하는 듯해 나와 다르긴 하지만 그 작가의 삶의 태도는 늘 나를 꺠어있게 한다.


최근 새로 생긴 롤모델이 있다.

바로 대표적인 북 인플루어서 '여르미'님이다.

치과의사라는 본업이 있고 아이 엄마임에도 내가 감히 꿈꿀 수 없는 방대한 독서량과 엄청난 SNS 글쓰기로 블로그, 인스타그램, 틱톡, 유튜브 등 콘텐츠를 쌓는 여르미님은 최근 「나를 지키는 뇌과학」 이라는 두 번째 신간을 펴냈다. 읽고 쓰는 삶만으로 이루어낸 독보적인 인물이라서 여르미님을 보면서 읽는 사람도 과연 브랜드가 될 수 있다라는 걸 다시 믿게 해 준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질문 앞에서 아이가 즐겨 본 애니매이션 <괴도 조커>의 대사가 생각난다.

괴도 조커의 소심한 친구 저스티스는 조커에게 묻는다.


어떻게 하면 너처럼 될 수 있냐는 질문에 조커의 대답은 간단하다. 



내가 되고 싶은 모습으로 사는 것.

내가 되고 싶은 모습, 정지우 작가나 여르미 작가님처럼 살기 위해서는 그들의 모습을 따라해야 한다.

그렇다면 나에게도 고민이 생긴다.

글쓰는 일로만 먹고 살 수 없듯 나에게도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확대해야 한다는 것.

작가처럼 로스쿨을 가서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하지 못하지만 글쓰는 삶을 위해 나의 이력을 어떻게 확대해 나갈 것인지는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확실한 건 <독하게 돈 공부>처럼 돈 공부는 기본으로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 이외에는 알지 못한다.

여르미님처럼 되기 위해서는 읽기와 글쓰기가 지금과 같아서는 되지 않는다.

매일 읽고 써야 하고 소통해야 하는 글품을 해야 한다.

그리고 책을 쓰기 위한 밑작업도 꾸준히 해야 한다.

모두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확실한 건 한 가지 있다.

좋아하는 것.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그 걸로 뿌리가 나아가서 확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답은 결국 나의 바램이 아닌 '현실'일 테니까. 그래서 내가 생각한 건 다시 읽고 쓰는 것이다.

중단했던 SNS 글쓰기도 열심히 해보고 더 많이 읽고 공부하기.

막연한 대답이고 실행방법이지만 그 막연한 걸 해나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읽고 또 쓰는 하루를 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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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의 나라
손원평 지음 / 다즐링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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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원평 작가의 소설 『젊음의 나라』는 역설적이다. 책의 제목은 젊음이지만 이 책은 강력한 노년의 나라를 뜻한다. 어린 아이가 사라져가고 소수의 젊은이들이 다수의 노령 인구를 부양해야 하는 세대. 열심히 일해도 노인들을 위한 세금으로 주머니는 빈약하고 일자리마저도 AI로 대체되어 버린다. 이 시대를 사로잡는 건 서로를 향한 증오와 혐오뿐이다. 

어쩌면 저자가 이 소설을 구상하고 쓰기 시작한 건 까마득한 옛날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이 소설에서 그려지는 배경은 지극히 사실적이다. 초등학교가 문을 닫고 희망이 사라져 가는 시대. 대부분의 일들이 AI가 대신하는 시대는 전혀 낯설지 않다. 희망이 사라진 시대, 무엇으로 희망을 채워야 하는가.  하지만 스물아홉 유나라에게도 희망은 있다. 바로 꿈의 섬 시카모아 섬으로 떠나서 그 곳에서 어린 시절 꿈인 엘피다 극단에 들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소수의 선택받은 사람만 들어갈 수 있기에 현실의 VR로만 체험하는 것에 만족할 뿐이다. 

이게 나다. 
이것이 내 현실이다. 
나는 아마 이렇게 늙어갈 거다. 
방 안에서. 혼자. 외롭게. 
쪼그라드는 꿈을 펼치지 못한 채. 
잿빛 표정으로 남루하게. 


『젊음의 나라』에서는 여러 노년의 모습을 보여준다. 유나라가  일하는 유카시엘  요양원의 유닛A부터 시작해서 유닛F의 모습까지 보여준다. 당연히 돈에 따라서 서비스가 극명하게 차이를 이룬다. 가장 최고의 서비스와 시설은 유닛A에게 제공된다. 그럼에도 그들은 행복하지 않다. 내는 돈에 비해서 서비스가 불만족하다. 어디 그 뿐인가. 이민세대인 유나라의 룸메이트 엘리야는 자신이 이민세대이기 때문에 차별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유나라는 이민세대이기 때문에 받는 혜택이 있는 걸 부러워하며 아무런 혜택도 받지 못하는 자신의 신세를 서글퍼한다. 자신의 있는 자리를 행복해하지 않는 자리는 돈이 많은 사람들도 또는 피해를 본다고 생각하는 젊은 세대에게도 어느 하나 자리를 마련해주지 못한다.  그런 자리에서 유토피아가 만들어질 수 있을까? 

저자는 유나라의 어린 시절의 행복했던 모습과 현재의 모습을 대조시켜가며 유나라가 어린 시절 행복할 수 있었던 곳에서 답을 찾는다. 우리는 모두 늙어가고 결국 누군가의 돌봄을 필요로 한다. 누군가는 그 자리를 돈이 대신할 거라 믿고 누군가는 주변의 도움을 기대하기도 한다. 그 상황 속에서 희망은 결국 사랑이라는 것을 말하는 부분에서는 매우 상식적인 결론에 다다르게 되는 듯 해서 아쉽기도 했다. 

누구나 꿈에 대해서 말한다. 화려하게 늙어가고 꿈을 펼치는 꿈. 
하지만 이 소설은 자신답게 살아가며 현실을 끌어안는 것이 두려운 미래를 끌어안는 길이라고 말해준다. 

그래서 유나라의 엄마처럼 요양원의 삶을 거부하고 시골에서 아이들에게 춤을 가르치며 자신답게 사는 게 가장 없어 보여도 가장 어려운 삶의 방식이라는 걸 가르쳐준다. 

다 살아지고 다 죽어진단다. 
그러니 더더욱 내가 원하는 대로 살고 죽어야지. 
그게 내 꿈이야. 
소박하게 살다가 어느 날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거.
 


노인의 나라를 그린 『젊음의 나라』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기 때문이다. 
비록 내일 죽는다 하더라도 오늘이 내 인생의 젊은 날이다. 우리는 그러므로 매일 가장 젊은 날을 살고 있다. 
이 젊음의 날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증오로 채워야 하는가. 그럴 수는 없다. 끝까지 작은 꿈이라도 소중하게 여기며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가장 젊은 날을 사는 동시에 가장 늙은 날을 살 수도 있다. 
오늘을 무력하게 살아가고 증오하는 데 쓰인다면, 희망을 포기하며 무력하게 지낸다면 그건 바로 가장 늙은 날이 될 것이다. 20살이든 30살이든 그 사람에게는 젊음의 나라가 아닌 최후의 나라가 될 테니까. 
그러므로 어떤 나라를 살아가는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다. 그리고 우리는 같은 사회를 살아가지만 누군가는 젊음을 누군가는 최후를 산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날을 선택할 것인가. 그 답을 원하는 이들에게 이 소설은 좋은 답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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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인
이혁진 지음 / 민음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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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원은 냉정한 비즈니스 세계에 잘 투자해서 많은 돈을 번 회사원이다. 부유한 사업가지만 난폭한 아버지와 피해의식으로 천박해지고 아들인 자신에게 매달리는 어머니 사이에서 자란 해원에겐 어느 곳에서도 안식처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런 그에게 40이 넘도록 그에게 마음을 주는 관계, 심지어 여성과의 관계에서까지 마음을 주는 곳이 없었다.

안 해 본 걸 해보자고 한 결심에 플루트 수업을 받기로 한다. 여자 강사인 줄 알았는데 강사는 남자인 준연이었다. 돈을 벌기 위한 수업이 아닌 좋아서 하는 준연의 방식에 해원은 마음이 맞는 친구를 만난듯하다. 그들의 수업이 길어질수록 수업상의 비즈니스 관계가 아닌 개인적인 고민까지 나누는 친한 친구 사이로 발전한다. 해원은 이 모진 사회에 순수하게 예술의 혼을 태우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신선함을 느끼고 준연은 선뜻 어머니의 치료비를 건네며 도와주는 해원의 호의가 고맙기만 하다.


동성 사이에 우정을 유지하는 건 쉽다. 지켜야 할 선을 지키면 된다. 서로 조심할 것만 조심하면 된다. 순수한 둘 만의 관계만 신경쓰면 된다. 하지만 다른 누군가가 끼어든다면? 그러면 복잡해진다. 그것도 두 사람의 연모 대상인 이성이라면? 준연과 해원 사이에 준연의 오랜 친구인 하진이 이 둘의 관계에 끼어들면서 셋의 관계는 서로 다른 이름을 갖게 된다.


준연과 해원의 관계는 친구에서 사랑의 경쟁자로..

해원과 하진의 사랑은 사랑에서 광적인 소나타로 변하게 된다.

그들의 사랑이 너무 진실되기에 순수한 사랑이 어떻게 광적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소설 속에 나오는 해원, 준연과 하진 중에서 이 셋의 차이는 무엇일까? 

소설에서 피아노를 전공했지만 아버지 사업을 물러받아 위스키를 만드는 하진은 해원을 선택한다.

하지만 뭐가 문제였을까?

나는 전업 투자자다운 해원의 특질과 준연과 하진의 예술가적 특질의 차이가 아닐까 생각한다.

원인과 이유가 분명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목표를 향해 맹렬히 다가가는 해원은 전략적이다.

하지만 준연과 하진은 다르다. 준연은 가난할지언정 예술에 대한 사랑 그 자체가 소중하다. 이는 하진 또한 마찬가지다.

좀 더 성장할 수 있는 위스키를 끝까지 자신만의 방법으로 성장시키려는 그 열정을 해원은 이해하지 못한다.

갖고 싶으면 전략적으로 따서 쟁취해야 하는 투자의 세계와 그 자체가 힘들지라도 사랑을 지켜야 하는 예술가적 사랑을 갖고 있는 준연과 하진의 방식. 해원은 그들의 방식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기에 둘의 삶의 방식을 끊임없이 질투한다.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을 가진 이들에게 사랑의 방식은 같을 수 없다. 

전략적으로 생각하는 해원에게 사랑은 서로가 일순위가 되어야 하고 준연과 하진에게는 계속 키워야만 하는 존재이다.

주식과 돈을 소유하고 불리는 데 우선순위인 투자의 세계이다. 하지만 예술은 그 자체, 더 아름답게 지켜가야 하는 그 자체에 있기 떄문에 충돌할 수 밖에 없다. 사랑한다면서 왜 자신을 온전히 따라주지 않는지. 사랑한다면서 왜 쉬운 방법으로 하지 않고 왜 자신이 일순위가 되지 않는지 해원은 답답하기만 하다. 사랑하는 건 자신인데 하진의 방식을 이해하는 건 오랜 친구 준연이다. 그게 바로 해원을 미치게 한다.

해원에게는 전략적으로 사랑을 쟁취해야 하는 데 비해 사랑을 지키는 게 중요한 하진과 준연의 방식은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관계다. 그 사랑이 소중해야 하기에 방식이 중요한 하진에 비해 해원은 갖지 못하면 모두 흙투성이가 되는 모 아니면 도의 세계이다.

그래서 셋의 관계는 더 복잡해지고 순수했던 사랑은 책 소개글처럼 광기로 치닫는다.

전략적으로. 치밀하게.

사랑이 어떻게 사랑일 수 있는가.

소설을 읽으면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모든 것에 공감하게 한다. 하지만 결국 소설은 해원이 사랑의 본질을 깨닫게 되면서 끝내 자신만의 방법으로 사랑을 지켜낸다. 그것도 사업가다운 자신의 방법으로.

사랑이라는 것. 그것만으로 완전할 수 없다. 하지만 완전하지 못하다고 해서 사랑을 포기할 수 없다.



그 사랑을 어떻게 지켜내는가, 그 사랑의 방식이 어떠해야하는지를 이 소설에서는 말해주는 듯 하다.

그리고 서로의 방식을 어떻게 이해하는가가 끝까지 사랑을 할 수 있는 자격을 주는 것인가가 이 소설은 말해준다.

이혁준 작가의 소설 『광인』은 해원, 준연 그리고 하진의 사랑 이야기이지만 결국 우리 모두의 사랑 이야기이기도 하다.

준연의 어머니의 사랑,

난폭적인 해원 아버지의 사랑, 맹목적이어서 더 무서운 해원 어머니의 사랑,

하진의 위스키에 대한 사랑, 불행 속 맞닥뜨린 하진 동네 사람들의 사랑 등등을 통해 우리 삶에서 벌어지는 사랑들이 어떻게 한 순간에 광적으로 변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모든 사랑이 다 이해되기에 지금 나의 삶에서의 사랑을 돌아보게 만든다.

거의 700페이지에 육박하는 소설이지만 사랑이 광적으로 변해가는만큼 이야기 또한 광적으로 몰아치는 소설이다. 그래서 이 소설을 끝내기가 쉽지 않았다. 이야기의 회오리 속에 빨려 들어갈만한 이 광풍은 나를 쉽게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아서 한 페이지씩 넘기기가 겁이 날 정도로.

사랑이야기지만 삶의 방식을 이야기해주는 소설이기도 한 소설 『광인』

내 사랑이 과연 사랑인가를 진지하게 되물어주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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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문제로 두 달여간 남편과 갈등을 겪는 사이 나의 루틴은 엉망이 되었다.

달리기도 멈추었고 글쓰기와 읽기 모든 루틴이 멈추었다. 남편과 힘들게 화해했지만 무너진 루틴에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을 앎에도 한 번 깨져버린 걸 다시 시작한다는 게 쉽지 않다라는 걸 비로소 알게 되었다.

어떤 걸 시작해야 할 지 몰라 갈팡질팡할 때 멘토에게 질문을 했다.

"회사가 불안정해서 불안한데 뭘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 걱정이에요."

그러자 멘토의 대답은 간단했다.


저라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더 열심히 하겠어요.

새벽기상을 더 열심히 하고

투자공부도 더 열심히 하고

글쓰기도 더 열심히 하고..

안해본걸 하려고 하지 말고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을 더 열심히 해 보세요.


생각해보니 나는 다른 것들 속에서 답을 찾으려고 했다.

유튜브를 시작해야 하나.. 내가 할 수 있는 사업을 생각해야 하나..

하지만 전혀 해 보지 않은 걸 하려고 하니 답은 나오지 않았고 실행방법은 까마득하기만 했다.

그래서 지금 내게 주어진 선택지는 멈췄던 것을 다시 하는 것이다.

다시 달리기를 하고

다시 글을 쓰고

다시 책을 읽고

다시 공부를 하는 것.

그럼에도 멈췄던 걸 하려니 쉽지 않다.

하기 싫은 걸 힘을 내어 다시 해 본다.

저녁 식사 후 5km 달리기를 한다. 오랜만에 뛰어서인지 달리기 기록이 좋지 않다.

그래도 한 가지 다시 해냈다는 걸로 나에게 점수를 주고 하나의 글을 썼다는 사실에 나를 칭찬한다.

내일은 제발... 새벽에 공부 좀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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