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를 듣는 사람들
조던 태너힐 지음, 김산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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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예민함과 아픔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현실을 보여주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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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를 듣는 사람들
조던 태너힐 지음, 김산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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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증정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보통 사람들보다 예민한 사람들이 있다. 가볍게 부딪혀도 누군가는 가볍게 넘어가는 반면 다른 누군가는 과하게 반응하며 매우 아파한다. 그럴 때 우리의 반응은 무엇인가. 예민한 사람들에게 '그까짓 거 가지고 유난'이라고 핀잔을 하곤 한다. 별 거 아닌 일에 심하게 반응한다며 그들의 예민성을 비웃는다. 일반적이지 않기에 예민함은 보통 잘못된 것으로 받아들이곤 한다.

BBC드라마 원작소설이기도 한 조던 태너힐의 장편소설 『소리를 듣는 사람들』 또한 그런 예민함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다. '소리'에 대한 예민함을 가진 사람들. 남들이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기에 그들의 청각적인 예민함은 유난스러움이 되고 그들의 외로움은 광적인 집착으로 매도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간신히 감지할 수 있는, 매우 낮게 반향하는 음조가 있었다.

소리를 듣는 사람들 20p




조용한 밤, 온순한 남편 폴의 사랑스러운 아내이자 축구선수 애슐리의 엄마이자 존경받는 선생님이었던 클레어는 낮게 울리는 소리를 듣는다. 낮게 들리는 소리. 정체를 알 수 없는 곳에서 울리는 낮은 소리는 클레어를 괴롭게 한다. 한밤중에도, 새벽에도 그 소리는 계속된다. 모든 전기를 차단해도 울리는 소리. 그 소리에 남편과 딸은 예민해서 그렇다며 좋게 끝내자고 한다. 하지만 이 소리로 인해 불면증이 생기고 피곤증을 일으키며 수업까지 차질을 일으킨다. 클레어는 혼란스럽다. 오로지 자신만 듣는 이 소리. 과연 자기가 잘못 된 것일까? 왜 분명히 존재하는 이 소리를 다른 사람들은 못 듣는단 말인가?

자신만 듣는 소리이기에 누군가와 의논할 수 없다. 심리치료도 의학치료도 이 소리를 막을 수 없다. 과연 클레어가 잘못인 것일까? 클레어는 이 혼란 속에서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 카일 또한 똑같은 소음을 듣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처음으로 같은 소리를 듣는 사람을 만난 클레어는 카일과 함께 소리의 근원을 찾아 다니지만 부적절한 관계로 오해받아 해고되고 남편과 딸에게도 외면받는다. 가족과 일 모두를 잃을 사면초가 신세에 빠진 클레어에게 같은 소리를 듣는 모임을 알게 되며 클레어는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모임에 합류한다. 과연 그들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그래서 함께 모여서 그들만의 방법을 찾기 시작한다. 하지만 모두의 생각이 다르듯이 모임의 주관자들과 생각이 다르기도 하고 번민하기도 한다.



모임의 사람들은 각자의 고민을 토로한다. 실성했다고, 병들었다고, 또는 망령이 들었다고 쉽게 말한다.

하지만 그들은 말한다. 일반 사람들이 쉽게 무시하는 이 작은 소리들이 누군가의 삶을 통째로 흔들 수 있다고. 그러므로 누군가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것들이 주는 파괴는 감히 상상도 못할 것이라고 말이다.

조던 태너힐의 『소리를 듣는 사람들』에서의 이 모임이 어떤 범죄나 또는 미스테리로 이어가길 바라는 사람들에게라면 사실 이 소설은 실망일 수 있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소음의 정체가 거대한 사회 범죄와 연루되어 있기 바랬던 나의 입장으로서는 모임의 전개 방향이 너무 의외여서 당혹스러웠다.

그럼에도 이 소설의 미덕이 있다면 소음에 대해 주변의 인정을 억지로 받아내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주류에서 이해받지 못한 예민함은 끝까지 이해받지 못한다. 그것이 우리가 처한 현실이기에 오히려 더 현실적으로 공감하기 쉽다. 그리고 클레어 또한 인정받지 못한다고 해서 슬퍼하지 않는다. 그것 또한 어쩔 수 없음을 받아들인다. 어쩌면 작가는 우리의 한계를 극복하기보다 그저 현실을 담담하게 보여주려고 했는지 모르겠다.

따뜻한 연대를 꿈꾸고 사회 정의를 쫓는 소설이라기보다 누군가의 예민함과 아픔을 제대로 보아주지 못하는 이 현실을 보여주는 소이라고 이 소설을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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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피플 존
정이현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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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트리는 뜻밖에 정치적인 빵이다. 겹겹이 쌓인 층과 층 사이, 선처럼 얇은 틈이 숨어 있다. 

<노 피플 존> 실패담크루 9page 


겹겹으로 이루어져 페이스트리라는 하나의 빵을 만들어낸다. 먹기 전까지는 그 겹들이 똑같은 겹일 뿐이다. 하지만 먹는 순간 느끼게 된다. 안의 겹은 버터 향이 풍기지만 바깥의 겹들은 부스러기로 쏟아진다는 것을.  페이스트리처럼 우리 또한 자본주의 관계를 살아가는 우리들 또한 마찬가지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지만 장소와 신분에 따라 그 겹들이 드러난다. 누군가는 은은한 향을 내지만 누군가는 부스러기 같이 떨어져나간다는 것을 말이다. 정이현 작가의 소설 『노 피플 존』이 바로 관계 속의 페이스트리를 드러내는 소설집이다. 




첫 번째 단편 「실패담크루」 에서  나는 인턴으로 일했던 로펌 대표의 연인이었던 성지연의 초대로 '실패담크루'에 함께 하게 된다.  서로의 실패담을 발표하며 나누는 모임. 하지만 이 곳에서 성공과 실패라는 개념조차도 신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라는 사실을 나는 알지 못했다. 가진 게 없는 나는 실패란 치명적이며 아픈 상처이지만 이들에게는 친목회 정도로 소비된다. 그래서 그들은 실패를 담백한 공유라고 말하고 조언이나 피드백을 주지 않는다. 실패조차도 취미로 소비되는 부유한 이들의 모임에 나는 동화될 수 없고 떨어져 나갈 수 밖에 없다. 


현대 사회는 많은 플랫폼을 만들어냈다. 배달 플랫폼은 기본이고 각종 다양한 플랫폼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난다. 「단 하나의 아이」 에서는 놀이 가정교사 플랫폼인 '케이 파라디소' 가 소개된다. 아이들과 놀아주는 놀이선생님. 사진과 학력을 올리고 채용된 한나는 담당실장으로부터 절대 인간적인 교류를 하면 안 된다고 교육받는다. 


하지만 어디 그게 쉬운가. 선을 지키고자 하지만 너무 쉽게 선을 넘으며 한나에 대한 정보를 묻는 할머니. 한나의 부모님이 이혼한 사실을 알자마자 조용히 칼같이 교체된다.  다시 하유라는 아이의 선생님으로 채용되며 긴 시간을 함께 한다. 테리라는 친구와 자주 통화한다는 하유의 문제점을 알게 되며 순수한 감정으로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부모에게 어렵게 말을 꺼내지만 돌아온 건 조용한 차단이었다. 


플랫폼 채용에서의 관계는 존재하지 않아도 존재하고 존재함에도 존재하지 않는 듯 보이는 그런 관계임을 소설은 말한다. 그저 필요에 따라 존재할 뿐 어딘가에 남아 있는 흔적만을 남길 뿐이다. 



『노 피플 존』은 제목 그대로 사람들이 함부로 다가오지 않도록 테두리를 치는 관계들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사는 사람」에서 김다미는 유명 입시학원에서 일한다. 김다미를 아는 사람들은 학원이름만 가지고 김다미를 평가한다. 남자친구 우재 또한 '어디에 살고' '어디에 근무하는지'로 김다미를 마음에 들어한다. 함께 부유한 동네 임장을 다니며 있어보이려 하는 우재. 뻔지르르하게 옷을 입지만 김다미는 우재의 구두를 바라본다. 그리고 끝내 숨길 수 없는 게 있음을 드러낸다.  똑같은 척하지만 다를 수 밖에 없는 관계. 그게 바로 자본주의 사이에서의 관게의 차이였다. 



이 소설집에서 가장 이상적인 관계를 만들어내는 사람은 「언니」에서의 인회 언니다. 

늘 이름으로 기억하며 이름으로 불러주는 사람.  일을 도와주는 1학년생들에게 사비로 음식을 사 주면서 늘 분위기가 아닌 원하는 음식을 선택하도록 도와주는 사람. 인회언니에게는 신분이나 위치가 중요하지 않다. 사람 사이의 관계에 겹을 만들어놓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사람임에도 자본주의 관계에서는 사람의 선한 성품을 이용하고 내팽개쳐질 뿐이다. 


상황에 따라 쉽게 바뀔 수 있는 여러 관계들. 그 관계들을 누군가는 수동적으로 끌려가고 누군가는 끝까지 변화를 시도하기 위해 용기를 낸다. 인회 언니도 피해자로 전락하지만 단순한 피해자의 자리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래도 변화를 시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 사람들이 바로 우리의 희망이라고 말해주는 듯하다. 


『노 피플 존』 을 읽으면 지금 나의 위치에서 여러 사람들과의 관계를 다시 만나게 된다. 부부관계에서도 우리는 같은 겹을 이루나 아니면 한 쪽이 희생하는 부스러기 같은 겹인가. 직장 및 공동체 관계에서 그 틈을 다시 보게 하는 소설이다. 이왕이면 똑같은 관계이길 원하지만 다른 그 미묘한 차이를 알아내는 쌉싸르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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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사람의 기쁨은 함께 책을 권하고 나누는 게 아닐까 싶다.

갈수록 책을 읽는 사람이 적어지기에 함께 읽는 존재는 매우 귀하다. 내게는 동생이 그런 존재이다.

아이들 중 나를 쏙 닮아 리틀 사라라고 부르는 첫째 딸에는 만화책 <귀멸의 칼날>이외에 책을 일체 읽지 않는다.

다행인 건 둘째 딸이 책을 읽는다는 사실이다. (정 할 게 없을 때 읽는다는 단점이 있지만)

<빨간머리앤 전집> 을 다 읽고 내가 추천해 준 『편지 가게 글월』 을 재미있게 읽고 있다.

주말, 아이들과 함께 각자 읽을 책을 들고 커피숍에 가서 책을 읽었다. 나는 스릴러 소설 <숲의 신>을, 아이는 <편지 가게 글월>을 읽는다. 아이가 펜을 달라더니 밑줄쳐도 되냐고 묻는다.

아이의 밑줄 친 문장이 궁금해서 보여달라고 했다.


'많이 그립다' 라는 말은

'많이 행복했다'라는 뜻일지도 몰랐다.


아이에게 왜 이 표현이 좋았냐고 물었다.

아이는 '그립다'라는 말은 보통 '슬프다' 라는 뜻으로 비춰지는데 '그립다' 라는 말을 하는 게 행복했기 때문에 그립다라고 다짐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아이의 말을 들으며 악뮤의 <기쁨 슬픔 아름다운 마음>이 떠올랐다.

악뮤 이찬혁은 이 곡의 가사의 의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떤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 때문에 내가 기뻤다는 것이잖아요.

그것까지가

다 아름다운 마음이다




아이가 이 문장을 해석하는 것과 악뮤 이찬혁의 가사 의미가 함께 어우려지니 매우 놀라웠다.


그리워할게 많다는 것.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리즈시절을 그리워한다.

또는 사랑했던 사람을 그리워한다.

떠나간 것을 그리워하며 슬퍼하기보다

즐거웠기에 그리웠고 행복했기에 그리워할 게 있다는 것.

그러므로 그리운 마음도 아름다운 마음이고 행복한 마음이 될 수 있다.

오히려 슬픈 건 그리워할 것조차 없는 것일테니까.

나는 호주 워킹홀리데이 시절이 그립다.

그 시절에 만났던 할머니들과 자유로웠던 시절이 그립다.

그 시절이 있었다는 것에 감사하며 행복해한다.

내 인생에 그토록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에 대해서 나는 감사한다.

그리고 후에 지금 이 시절도 그리워하며 좋았다고 말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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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읽고 있는 책 중 『독하게 돈 공부』에서 돈 공부 하기 전 우리가 해야 할 질문이 있다고 말한다.


돈 때문에 일할 필요가 없다면

나는 무얼 하며 살고 싶은가?


이 질문 앞에 나만의 대답을 써 본다.



내가 살고 싶은 삶...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나의 책을 쓰고 작가로 여러 강의를 다니며 북토크를 하며 다니는 삶이다.

예전엔 '일간 이슬아'처럼 독보적인 장르가 되는 이슬아 작가가 나의 롤모델이었다면

요즘 나의 롤모델은 '정지우' 작가이다.

최근 정지우 작가의 페이스북 포스팅에 하반기 글쓰기모집을 한다는 글을 읽고 신청서를 제출했다.

이후 받은 신청서 공지에 희망자가 모집 정원의 20배수가 된다고 한다.


정지우 작가를 보면서 경이로움을 느끼는 점은 그의 다양한 포트폴리오 때문이다.

'작가'

저작권 관련 변호사

글쓰기 강사

뉴스레터 발행자..

그는 늘 다양하게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확대하며 글로만 먹고 사는 작가가 아닌 생계형 작가로서 나와 같은 작가 지망생들에게 본보기가 되는 삶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정지우 작가의 <글쓰기로 독립하는 법>은 글쓰는 모든 이들에게 필독서로 권하고 싶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여러 분야를 넓혀가며 본업인 글쓰기를 더욱 튼튼하게 만드는 것. 다만 그는 '주식'과 같은 투자 방법보다는 육체 노동을 더 선호하는 듯해 나와 다르긴 하지만 그 작가의 삶의 태도는 늘 나를 꺠어있게 한다.


최근 새로 생긴 롤모델이 있다.

바로 대표적인 북 인플루어서 '여르미'님이다.

치과의사라는 본업이 있고 아이 엄마임에도 내가 감히 꿈꿀 수 없는 방대한 독서량과 엄청난 SNS 글쓰기로 블로그, 인스타그램, 틱톡, 유튜브 등 콘텐츠를 쌓는 여르미님은 최근 「나를 지키는 뇌과학」 이라는 두 번째 신간을 펴냈다. 읽고 쓰는 삶만으로 이루어낸 독보적인 인물이라서 여르미님을 보면서 읽는 사람도 과연 브랜드가 될 수 있다라는 걸 다시 믿게 해 준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질문 앞에서 아이가 즐겨 본 애니매이션 <괴도 조커>의 대사가 생각난다.

괴도 조커의 소심한 친구 저스티스는 조커에게 묻는다.


어떻게 하면 너처럼 될 수 있냐는 질문에 조커의 대답은 간단하다. 



내가 되고 싶은 모습으로 사는 것.

내가 되고 싶은 모습, 정지우 작가나 여르미 작가님처럼 살기 위해서는 그들의 모습을 따라해야 한다.

그렇다면 나에게도 고민이 생긴다.

글쓰는 일로만 먹고 살 수 없듯 나에게도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확대해야 한다는 것.

작가처럼 로스쿨을 가서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하지 못하지만 글쓰는 삶을 위해 나의 이력을 어떻게 확대해 나갈 것인지는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확실한 건 <독하게 돈 공부>처럼 돈 공부는 기본으로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 이외에는 알지 못한다.

여르미님처럼 되기 위해서는 읽기와 글쓰기가 지금과 같아서는 되지 않는다.

매일 읽고 써야 하고 소통해야 하는 글품을 해야 한다.

그리고 책을 쓰기 위한 밑작업도 꾸준히 해야 한다.

모두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확실한 건 한 가지 있다.

좋아하는 것.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그 걸로 뿌리가 나아가서 확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답은 결국 나의 바램이 아닌 '현실'일 테니까. 그래서 내가 생각한 건 다시 읽고 쓰는 것이다.

중단했던 SNS 글쓰기도 열심히 해보고 더 많이 읽고 공부하기.

막연한 대답이고 실행방법이지만 그 막연한 걸 해나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읽고 또 쓰는 하루를 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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