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꽃 1
조정래 지음 / 해냄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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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 같은 삶을 산 고흐처럼 불꽃 같은 사랑을 하는 조정래 작가의 신작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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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꽃 1
조정래 지음 / 해냄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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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아리랑』, 『태백산맥』 등 굵직한 소설을 쓰던 조정래 작가가 3년만에 신작으로 돌아왔다.

일제시대, 빨치산, 재벌 정경유착 등 한국 현대사의 이야기를 신랄하게 비판하던 조정래 작가의 신작 《서리꽃 1,2》 는 이번엔 사랑이야기다. 지고지순한 남녀 사랑이야기라니 의아하지만 조정래 작가라면 이 사랑 안에 어떤 맛이 있을지 기대감에 보게 된다.

총 2권으로 이루어진 소설 《서리꽃 1》권에서는 모든 여성의 로망이라고 볼 수 있는 남자 주인공이 소개된다.

이름 이재이, 몇조원 자산가의 아버지를 둔 중견 기업의 차남, 아버지의 재력으로 미국 유학 후 이제 막 귀국한 이재이.

돈이 제일인 자본주의 시대에 가장 바람직한 이상형인 남편감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조정래 작가는 누군가. 작가는 자본주의 끝판왕의 삶을 사는 이재이의 연인로 극단적인 자본주의 밑바닥에 살고 있는 윤소인을 소개시킨다. 아버지의 빚을 떠안고 지하2층에서 미술학원에서 버는 족족 빚쟁이들에게 압수당하는 윤소인을 위해 이재이는 자신의 유산 몫을 양보하면서까지 윤소인과 힘들게 버텨가는 친구 민태석 부부를 도와준다.


지고지순한 사랑, 순애보적인 이재이의 헌신적인 사랑 앞에 당황스럽기도 하다.

지금 이런 사랑이 존재할 수 있을까? 아무리 작가는 이재이가 돈이 제일이라고 여기는 집안에 반하며 철학적인 삶을 살며 자신은 돈에 좌지우지되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드러내지만 과연 이게 가능한 것일까?

하지만 작가가 아무리 이재이는 자기 집안과 다른 인물이며 물질적인 사회를 비판한다고 한들 직시하지 못한 치명적인 실수가 있다. 바로 자신이 헌신없이 베풀 수 있는 사랑 또한 결국 아버지의 재력 때문이며 든든한 집안배경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재이가 맹세한 형 반 고흐에게 평생 물감값을 댄 동생처럼, 세계 최고의 물감 올드 홀랜드도 결국 자본주의의 영향인 것이다.

이재이가 아무리 자본주의를 부정하며 형에게 서슴없이 유산을 양보한다한들 결국 그 근본에는 자본주의 영향이 있기 떄문이라는 걸 오로지 이재이 한 사람만 잘 모르고 있는 듯 하다.

그렇다면 이 소설은 결국 한 남자의 순진한 사랑 이야기만일까?

결코 그럴 수 없다. 작가가 1권에서는 다 보여주지 못했지만 끝까지 보여주려고 한 두 사람의 사랑은 두 사람이 똑같이 사랑한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삶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두 사람을 이어준 계기가 된 '별이 빛나는 밤'


이재이는 반 고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직 2권을 읽지 못했지만 이재이가 묘사한 반 고흐의 삶을 통해 우리는 두 사람의 사랑이 결코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걸 짐작케 한다.

늦게 그림을 시작했지만 빨리 끝나고 만 고흐의 삶.

그 짧은 십 년 동안 가장 많은 작품을 그린 고흐의 삶.

가장 짧은 미술가를 살았지만 화가 중 그에 관한 책이 가장 많은 고흐.

아마도 이재이와 윤소인의 사랑도 고흐처럼 짧게 끝날 수 있지만 가장 열정적인 사랑을 하고 가장 오래 기억에 두고 화자가 될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가 될 것을 작가는 반 고흐를 예로 들어 더욱 기대를 하게 한다.


조정래 작가의 신작 소설 《서리꽃》 의 1권은 희망과 불안의 그림자를 반반씩 풍긴 채 끝이 난다.

비록 남녀 사랑 이야기지만 작가의 특기인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신랄한 비판도 서슴치 않는다. 그 비판 속에 역시 거장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구나라는 걸 알 수 있게 해 준다.

1권에서는 자본주의에 기댄 사랑을 했다면 2권에서는 불꽃 같은 반 고흐와 같은 사랑을 보게 되리라 생각해본다.

밤이 길어지고 쌀쌀해지는 초가을 날씨를 뿜어내는 요즘과 같이 어울리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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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 옆 동네에 폭우가 내려 논이 물에 잠기고 난리라는 기사가 나왔다.

그동안 폭염에 시달리더니 난데없는 폭우로 일년동안 지은 쌀농사가 엎어지게 생겼다고 한다. 걱정이 되어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다행이 친정은 최악의 상태는 피했다고 하신다.


다시 신문구독을 시작했다. 인터넷에 나오는 단발성 기사로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판단이었다.

어제 자 신문기사의 하이라이트는 '이상기후 비용 청구서'였다.




전라도와 경상도 기록적인 폭우로 수해 복구 작업이 한참인 현장.

네팔의 히말라야 빙하가 녹으며 산사태로 사상자가 이미 800명을 넘어서고 있는 현실을 보며 기후학자들이 그토록 경고한 사실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며 소름이 끼쳤다.

내게 기후위기의 가장 큰 경고등을 준 책들을 떠올린다.









<최종 경고: 6도의 멸종>을 읽으며 소름돋던 기억이 잊히지 않는다.

지구 온도 1도가 상승할 때마다 달라지는 변화를 실감나게 그려주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최종 경고한다.

네팔의 산사태를 보며 가장 먼저 떠오른 책. 우리는 최종 경고를 받고도 돌이키지 못했다는 사실에 슬퍼지는 책이었다.


이 책을 쓰기 시작했을 무렵,

나는 우리가 기후변화에서 살아남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이 없다.

















뜨거워지는 지구를 보며 미쳐간다고 고백하는 NASA 기후학자.

원제는 "우리가 변해가는 행성을 보며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하는가" 이지만 한국판에서는 <나는 미쳐가고 있는 기후학자입니다>라는 제목이 기후학자의 외침을 더욱 실감나게 한다.


나는 화가 난다.

저들의 냉소주의가, 거짓말이, 탐욕이 노엽다.

기후 위기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어야 할 정치인이나 기업가들이 멍청한 것도 아니면서 모르는 척 내뱉는 허위 사실들 때문에, 심지어 그 똑같은 헛소리를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걸 볼 때마다 분노가 이글이글 타오른다.


몇 번을 반복하든 가뭄은 반드시 일어날 것이다.

서구 세계의 오염은 매번 바다를 뒤덮을 것이고, 북대서양은 매번 차가워질 것이고,

사헬의 사람들은 매번 가뭄을 겪을 것이다.

결국 가뭄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었다. 잘못한 건 우리였다.


뭐라고 해야 하는 판에 기후위기에 냉소주의로 답하며 탐욕에 기후위기를 차후의 문제로 미루는 정치권과 기업인들을 보며 탄식한다. 어차피 망할텐데.. 라고 탄식하지만 그래도 함께해야만 이 지구에서 살아갈 수 있다는 저자는 절박하게 함께 하자고 손을 내민다. 그 외침을 이제 우리가 다급히 화답해야 할 때이다.


마지막 책은 아직 읽지 못했다. (구매했지만 무서워서 아직 용기를 내지 못했다.)













극한기후 속에서 맞닥뜨리게 될 세계가 어떻게 변할지 보여주는 책이라고 한다.

저자는 첫 1장에서 나제르 아가데즈 인근의 농민의 말을 인용한다.


사 마르셰 플뤼

더는 안 돼요.


더는 안 돼요라는 절박함이 이젠 우리 입에서 나올 차례다.

먼 나제르의 외침이 이제 우리의 외침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는 그 외침을 더 늦기 전에 멈춰야 한다.

안타깝게도 기후 위기에 대한 책들의 출판이 늘어간다. 그리고 그들의 경고는 더욱 살벌하고 강력해진다.

우리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아직 인생의 절반도 살아보지 못한 아이들의 미래들이, 이제 갓 태어난 아기들을 보며 안타까움이 드는 건 나만의 감정일까?

전에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했을 때 학생들의 팻말이 떠오른다.


기후위기로 인한 재앙보다

늙어서 죽는 게 소원이 되어버린 세대.

우리가 그들의 가장 간단한 소망마저 말살시키고 있다.

어른으로서 이제 읽는 것을 그쳐 다시 나의 행동을 동여맨다.

더 늦기 전에

우리 아이들이 한 살이라도 더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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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글 오늘의 젊은 작가 57
전예진 지음 / 민음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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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예진 작가의 장편소설 《보글》은 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 57 번째 책이다.

제목부터 '보글'이라는 의미와 표지의 장면에서 알 수 있다. 이 제목과 그림에는 심상한 의미가 담겨 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우리는 뭔가를 입에 넣었다.


뭔가를 입에 넣는 우리. 즉, 입에 넣는 건 나만이 아니다. 언니와 나이다. 그런데 뭔가를 넣는 게 단순한 음식이면 좋으련만 이 자매는 모든 것을 산 채로 넣는다. 강아지 꼬리도, 심지어 사람 손가락까지도. 누군가를 먹는데 언니와 나만 필요하다. 서로 뺨을 맞대고 입을 크게 벌려 삼키면 된다.


먹고 나면 몸에 생기는 자국이 바로 '보글'이다. 커졌다가 터지고 난 후 뱉어내는 것. 보글이 터진 후 씨앗을 뱉는 언니. 그 씨앗을 몰래 화단에 심는다. 그들의 행위는 동네 사람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게 되고 둘의 사이는 더욱 굳건해진다. 가장 궁금한 미스터리.

소설 《보글》에서 가장 궁금한 부분은 바로 자매의 돌아가신 엄마의 과거이다.

엄마의 죽음 후 할머니에게 키워졌지만 할머니는 딸이었던 엄마의 옛 이야기를 들려주지 못한다.

언니는 동생에게 엄마의 옛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할머니는 그마저도 들려주지 못한다. 단지 미워했다는 것만은 부정하지 못한다.

그 사람 닮아서 무섭다고 하고

또 자기는 그냥 나왔다고 말했다는 엄마..

과연 무엇이 진실인건지 사실을 말해줄 엄마는 이 세상에 없다.



살기 위해 사람까지 먹게 되고 다시는 먹지 말자고 하지만 소설은 이 자매를 가만 두지 않는다.

평범하게 살고자 하지만 이들의 행위는 쉽게 멈추지 못한다.

먹고 난 후 생긴 흉터 같은 '보글'. 이 보글을 묻었을 때 다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보글'은 다시 자라고 만다.

그리고 그 보글은 가장 상상하기 싫은 형태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렇다면 소설 《보글》은 슬픈 이야기일까? 기묘한 이야기일까?

만약 그대로만 끝났다면 이 소설은 그저 그런 이야기에 그쳤을 것이다.

마지막 부분 언니가 불러주는 자장가는 이 이야기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다.


나란히 걷자, 

담 넘고 다리 넘고

나란히 걷자.


'보글'을 가진 존재들.

그 존재들은 외로울 수 밖에 없다. 그들은 끝내 외로워져야만 한다.

나란히 걷자고 자장가를 불러주는 언니의 자장가는 끝내 서로를 보듬는다.

어머니가 할머니를 미워했어도,

동생이 떄론 언니를 부담스러워했어도,

같은 보글이기에 이들은 미워하면서도 나란히 걷고 함꼐 하는 걸 택한다.

결국 그 보글의 결말은 쓸쓸할지라도 말이다.


기존의 젊은 작가 시리즈와 결이 다른 듯한 소설 《보글》은 읽는 내내 기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잔인한 듯하면서 기묘한 운명으로 태어난 이들을 미워할 수 없게 만드는 건 결국 이들이 외로울 수 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 아닐까?

언니가 동생에게 '난 너밖에 없어'라고 말하는 부분이나

언니가 어린 연에게 '나란히 걷자'라고 말하는 부분 모두 그래도 함께 하자는 아우성으로 들린다.

이 외로운 운명을 끝까지 함께 하자고 말하는 이 소설의 마지막은 끝내 슬퍼지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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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를 찾아서
하나 미쉘 지음, 이윤정 옮김 / 정은문고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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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결되지 않는 역사는 결코 끝난 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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