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의 계보 - 마쓰모토 세이초 미스터리 논픽션 세이초 월드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욱 옮김 / 북스피어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최근에는 독자가 이해할 만한 동기를 생각해 내지 않아도 대충 얼버무릴 수 있는 획기적인 수법으로 사이코패스가 유행하기도 했지. 고맙다 사이코패스, 멋지다 사이코패스. 목격자, 가족, 수사원 죄다 죽여버리니까, 귀찮으면 어째서 그 녀석이 사이코패스가 됐는지 설명하지 않아도 돼.    - 온다 리쿠, 흑과 다의 환상上 중

  

온다 리쿠의 『흑과 다의 환상』의 한 구절이다. 하나는 안심해도 되겠다. 적어도 온다 리쿠는 사이코패스 만만세로 글을 마무리 짓지 않겠군(온다 리쿠는 질척한 감정 곡선을 캐릭터에 심는 것을 선호하니 당연한 말이다). 몇 년 전 부턴가 사이코패스라는 말이 -도시괴담도 아니라- 유행처럼 번져 이제는 일상어가 되었다. 사이코패스 테스트라는 것도 있다고 들었는데 정작 사이코패스는 이 테스트를 해볼리 없을 것 같으니 다소 팬시적인 꽤 위악적인 현상이 아닌가 싶다. 더불어 소시오패스라는 표현도 흔해졌다. 물론 (다소간) 좋은 현상이다. 십 년 전, 백 년 전, 천 년 전, 기원 전에도 어쩌면 인간은 악의 근원을 찾았고 마찬가지로 그 때에도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때문에 이러한 -어떤- 분류나 탐구적 자세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바다. 그러나 다소 도식적인 접근이 아닌가 여겨질 때도 있다. 온다 리쿠의 말처럼 '사이코패스 만만세'라는 식으로 모든 범죄나 사건 사고의 원인을 한 인간의 설명할 수 없는 악이라고 치부해버리는 것. 편의적인 사고가 아닐 수 없다.

 

세상에는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적 성향을 지닌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들 중에서 극악한 범죄를 저지른 이가 상당부분 차지할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범죄나 악이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에게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정말로 그들이 어떤 유전적인 영향이나 사회적 혈통에 의해 탄생된다고 가정했을 때, 그들이 가진 칼은 처음부터 벼려진 칼이다. 반면에 보통의 사람들이 보통의 규율에 의해서 살다가 어떤 과정에서 뚝 부러져 칼을 집게 된다면 그 칼은 본디 무뎠던 칼을 더 예리하고 정교하게 깎는 과정을 반복한다. 본디 날카로운 칼과 갈고 닦아 길들여진 칼. 어떤 것에 더 섬벅 베이게 될지 모르는 법이다. 마찬가지로 어느 쪽 칼이 더 자주 쓰였는지도 확인 불가능하다.

 

일본의 추리소설은 크게 두 계류로 나뉜다. 요코미지 세이시의 정통추리파와 마쓰모토 세이초의 사회파. 전자의 구조는 단순하고 익숙하다. 어떤 고립된 섬이나 별장, 여행지 같은 곳에 초대된 사람들이 있고 그 안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전화는 끊기고(자연재해나 위치상의 난점인 경우, 혹은 범인에 의한 의도적 파괴가 많다) 외부인의 유입이 불가해지고 점잖던 사람들의 인간관계나 애증이 드러난다. 탐정역할을 맡은 이는 꼭 인물이 죽을만큼 죽은 후에야 "범인은 당신이야"를 외치고 희한하게도 사람들은 한 자리에 모여 탐정 캐릭터의 이야기를 친절하게 듣고 범인은 자백하거나 자해를 하기 일쑤다. 그제야 날은 개고 경찰이 온다, 는 식의 <소년탐정 김전일>이나 <명탐정 코난>류다. 후자는 범행동기나 목적을 일차적 인간관계나 내면의 불충족보다는 좀 더 확대시킨 시선을 갖는다. '사회파'라는 표현답게 한 사회가 혹은 집단이나 공동체, 인간성이 어떻게 사람을 파멸시키고 자멸시키는 지, 그 파멸당하고 자멸한 인간이 또 다른 인간을 어떻게 공격하는지를 조명한다.

 

자타공인 추리소설의 여왕, 미야베 미유키는 단연 후자다. 미야베 미유키의 이름은 너무나 친숙해도 마쓰모토 세이초의 이름이라면 많이들 모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녀는 스스로가 마쓰모토 세이초의 장녀, 라고 표현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마쓰모토 세이초. 그는 누구인가. 라고 말했으니 그의 이력을 읊어야하지만 그의 이력은 상당히 독특하면서도 길고 길기에 여기서 여러분은 책표지의 앞날개를 살피거나 구글링을 하길 권하는 바다. 마쓰모토 세이초의 이력을 읽다 보면 정말 이것이 한 사람의 이력인가 의심스럽다. 요 네스뵈를 보고도 그런 이야기를 했지만 어떤 사람들은 24시간을 48시간처럼 살기도 하나보다. 하지만 세이초의 이력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 소설을 쓰고 취재를 하고 글을 연재하려면 아무리 집중력이 좋고 끈기가 있어도 어쨌거나 물리적인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렇다면 24시간 중 가장 기본적인 생리현상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글에 쏟아야 가능할까. 그렇다손쳐도 불가능하다. 때문에 세간에는 수많은 문하생을 거느리고 그들이 대필을 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사실 그 쪽이 더 그럴 듯 해 보인다. 예컨대 허영만 작가나 미야자키 하야오처럼, 조직화 된 역할을 분담하는 공장같은 작업실이라면 가능할 작업량이라는 것에 수긍이 간다. 하지만 30년 동안 그의 담당편집자였고 현재 마쓰모토 세이초 기념관장인 후지이 야스에 씨는 세이초가 직접 교정을 본 수정원고 등을 토대로 그의 대필론에 대해서 일축시켰다. 어쨌든 그는 놀라운 사람임이 분명하다. 만약 대필을 했다 하더라도(어디까지나 가정 아래) 그의 글은 전체적으로 흐트러짐 없이 일관되기에 분명 그는 교정 이상의 작업을 했으리라 생각하고 어딜보나 자신의 글이 아닌 면을 내보이지 않는다. 그가 대필을 하지 않았다면 더욱 놀랍다. 예술적이면서도 대중적인 글을 함께 쓰는 것도 그러하지만 그는 작업시간을 조금이라도 아끼고 글에 매진할 수 있도록 여러 작품을 함께 쓰는 교환방식을 썼다고 하니 말이다. 게다가 그는 이러한 -방대하다고 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어마어마한 글들을 써내면서도 84세로 일기를 마쳤다 하니 건강관리는 물론 참으로 여러모로 운도 좋은 분이다.

 

마쓰모토 세이초는 그 명성에 비해 국내에 소개가 늦은 작가다. 허나 현재는 많은 소설들이 번역이 되어있고 이 책 『미스터리의 계보』를 비롯, 논픽션 또한 차례대로 출간되고 있으며 사담私談이 다소 길었으니 이 부분은 과감히 생략토록 하자. 『미스터리의 계보』는 세이초의 논픽션이다. 논픽션Nonfiction. 그 뿌리는 실화에 있되 줄기와 가지는 소설로 이루어진 나무다. 세 편 중 가장 핵심적인 이야기라고 할 만한 「어둠 속을 내달리는 엽총」의 경우를 살펴보자. 이것은 1938년 5월 21일 일본 오카야마 현 쓰야마 시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으로 자살한 범인을 비롯 무려 31명이 사망한 일이다. 범인은 도이 무쓰오라는 21세 남성으로 범인의 이름을 따 '무쓰오 사건' 내지는 '쓰야마 사건' 등으로 불리고 있다. 마쓰모토 세이초는 이 사건을 논픽션으로 재구성했다. 논픽션이므로 어떤 부분은 취재에 의해 모은 사실(fact)일 것이고 어떤 부분은 상상에 의해 가설된 픽션(fiction)일 것이다. 팩트와 픽션은 적절히 혼재되어 있고 어쩌면 어떤 부분이 다른 한 부분보다 기울어지게 더 많은 부피를 차지할 수는 있지만 어쨌든 논픽션이라는 라벨은 하나다. 마쓰모토 세이초는 마을의 정경을 묘사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라고 밝히며 마을의 풍경과 그곳의 관습, 악습과 구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을 단지 한 마을이 아닌 일본이라는 거대한 틀 속에 다시 녹여낸다. 다시 줌 인. 마치 세이초는 도이 무쓰오라는 청년의 머리 위에 앉은 유령 같다. 그는 머리 위에 있으므로 모든 정경을 볼 수 있고 몸 밖에 있으므로 더 멀리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러나 그의 몸에 속해있기 때문에 마치 청년에게 빙의된 듯 보이기도 한다.

 

엽총 소리는 매우 크다. 그런데 그걸 듣지 못했다. 정적이라는 형용사가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리는 산촌의 깊은 밤이었다. 그 정적은 엄숙할 정도였다. 그런데도 총성을 깨닫지 못했다.

 

그는 무쓰오라는 청년의 삶을 치밀하게 써내려간다(특히 그의 소학교 성적표는 혀를 내두를 정도다). 이웃 주민들의 평가, 누이의 증언, 그의 담임 교사들의 회상, 무쓰오가 실재로 했을법한 생각 등등. 그에 못지않게 마을의 폐쇄성과 성적 방만, 악습에 대해서도 자세히 기술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어떤 쪽도 옹호하거나 연민하지 않는다.

 

엽총을 든 도이 무쓰오는 가랑비를 맞으며 도키모토 다이지로의 집 문 앞에 도착했다. 그 엽총은 방금 일곱 명을 사살했다. 일본도는 세 명을 참살했다. 총구는 뜨겁고 칼은 피투성이였다.

 

단지 '기술'할 뿐이다. 무쓰오가 범행을 계획하고 준비하는 과정은 물론 그의 살해방법과 범죄 행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머리 위에 앉아 무쓰오와 함께 움직이며 모든 참상을 지켜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말하는데도 그 생생한 표현에 어조라고는 없다. 때문에 읽는 이로 하여금 사건 현장에 대한 오감을 상상케 하고 피바다와 내장이 터져나오고 목이 잘린 시체들 사이로 유영하게 만든다. 어떤 순서대로 누가 어떻게 찔려서(터져서, 갈려서, 찍혀서 등등) 죽었는지 하나도 놓치지 않고 차근차근 설명한다. 독자의 울렁이는 속은 작가의 설명에 금방이라도 토악질이 될 것 같다.

 

「어둠 속을 내달리는 엽총」외에 두 편을 보자. 「전골을 먹는여자」는 의붓딸을 죽여 (가죽은 벗길 수 없었단다, 예상외로 질겨서. 겉은 시꺼먼 땟국물이 흐르는데 그래도 속살은 뽀얗고 부드러웠단다) 인육을 먹은 자신의 아이들과 남편에게 먹인 여자의 이야기이다. 「두 사람의 진범」은 도무지 접점이 없는 두 사람이 한 여인의 살해 사건의 범인이라고 자백한 과정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었다. 세 이야기 모두 묘사는 생생하고 표정은 덤덤하며 피가 그득하다. 이것만으로도 마쓰모토 세이초의 문장력과 구성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허나 마쓰모토 세이초는 하드고어 영화의 제작자가 아니다. 사회파 추리소설의 대부 혹은 창시자 같은 명명은 누구에게나 붙여주는 것이 아니다. 그가 대단한 것은 이 꼼꼼함과 세밀함, 피해자와 가해자를 가리지 않는 상상력과 끈기에도 있겠지만 특히 이 책에서만큼은 시선에 의미를 두어야겠다. 세이초는 잔인할만큼 냉정하게 사건을 다루고 있고 그 잔인한 사건을 또다시 냉정하게 상상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그는 과연 범죄의 근원이 단지 악이나 어떤 유전적 형질에 있을까? 라는 질문을 되풀이한 것으로 추정된다.

 

세이초는「전골을 먹는 여자」에서 첫째로 근친혼을 지적한다. 근친혼이 남아있는 시절, 혹은 지방에서 어떤 무지의 소지로 근친혼은 계속해서 자행되고 있다, 고 말하며 대代가 내려갈수록 근친혼에서 오는 문제의 골은 깊어진다는 것이다. 피의자인 여자와 피해자인 여자, 피의자의 남편이자 피해자의 아버지인 남자 모두 근친혼이라는 파동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나병에 인육을 먹는 것이 효과가 있다는 것을 믿은 어떤 남자의 살인도 (광의로 해석할 때) 악습의 영향에서 멀지 않다. 「두 사람의 진범」은 경찰과 검찰, 사법부의 병폐를 지적한다. 공적인 권력이 무고한 인간을 얼마나 철저하게 범죄자로 만들 수 있는지를 보여주며 사형제도의 주효에 대해 되묻는 것이다. 「어둠 속을 내달리는 엽총」에서는 폐쇄성을 지닌 마을과 성 풍속을 직시한다.

 

세이초에게 있어 범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겠다. 하나는 개인적인 선택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범죄이고, 다른 하나는 유전적 기질이나 사회적 압력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범죄다. 이때 세이초는 정확히 전자에는 소설이라는 형식을, 후자에는 논픽션이라는 형식을 부여한다. 바꿔 말해, 전자의 경우 범죄 행위가 그것을 저지른 자에게 절대적으로 귀속되지만, 후자의 경우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등장인물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소설)과는 다른 방법이 필요했던 것이다.   - 본 책 해설에 실린 문학평론가 조영일 씨의 글 중

 

이 책에도 잠깐 등장하는 트루먼 카포티의 『인 콜드 블러드』는 -벌써 몇 년 된 인상이지만- 권장할만한 논픽션은 아니었다. 흡입력이나 주목성, 기발함에는 별점을 줘야 마땅하지만 이 책에는 기묘한 꺼림칙함이 있었다. 아마도 그건 작가 자신도 인지했을 것이라 짐작한다. 그는 이 책을 쓰면서 양가적인 감정에 동시에 시달린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범인에게 다가가면서 진심으로 동조하는 한편 그를 이용해 상업적 성공을 열망했던 것 같기도 하다(실제로 카포티는 가난할 때조차 언제나 지나치게 옷을 잘 입었다고 하고, 여러 면으로 미루어 사회적 지위나 돈에 대한 탐욕이 강했던 인물로 평가받는다). 때문에 피의자를 연민하면서도 그가 처형되길 바랐던 것 같기도 하다. 무엇보다 그는 지나치게 감정을 이입했다. 그가 피의자를 이해하려 노력할수록 동조될수록 독자는 그 과정을 흥미있게 지켜보는 한편 피의자에게 -어떤 반대심리로- 반감을 갖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는 논픽션 작가로서 지켜야 할 지점을 몰랐거나 흡입력이 높은 '소설'을 쓰고 싶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세이초는 다르다. 그는 냉철하고 냉정하고 냉담하다. 마치 로봇처럼 또는 컴퓨터처럼. 지난 자료를 보고하듯이 세밀하고 기민하면서도 그지없이 덤덤하다.

 

이렇게 묻는 듯 하다. 나는 사건의 추이를 기록했고 사후事後의 여파를 보고했습니다. 그리고 범죄의 밑면에서 출렁이던 바닷물도 떠왔습니다. 이제 당신 차례입니다. 사후의 여파에 감정을 이입하시겠습니까? 사건 자체(인물)에 집중할 건가요? 아니면 바닷물을 맛보시겠습니까? 갈림길이 보인다. 미스터리의 계보가 보인다.

 

 

 

 

 

* 제목은 르네 마그리트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에서 따왔다. 일차적으로 팩트이지만 픽션이기도 하다는 것을 비틀고 싶기도 했고 논픽션이 아니라 믿고 싶을만큼 소설이었으면 하는 무서운 이야기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차적으로 마그리트의 그림에 관한 어떤 해석의 여지와 닿아있다고 감히 주제넘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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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ning 2013-01-11 0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쓰모토 세이초의 문체를 따라 최대한 드라이하게 쓰려고 노력했지만 쓰는 동안에도 자꾸 뒷목이 서늘해서 내달리다보니 글이 어디론가 곤두박질치는 느낌이다. 무섭고 무섭고 무서운 책이다. 별 다섯이 아깝지 않은 책이지만 별 다섯을 드리고도 말리고 싶은 책이기도 하다. 세이초의 것은 워낙 읽을만한 작품이 많기에 기획을 잘했다고 생각한 <마쓰모토 세이초 중단편집>만 살짝 언급한다. 비슷한 시기에 출간 된 에도가와 란포의 작품선도 즐겁게 읽은 기억이 있다.

티티카카 2013-01-11 0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 전에 알쏭달쏭한 꿈을 꿨어요. 난생 처음 꿈에서 작가의 이름이(얼굴을 모르니) 등장했는데, 좋아하는 작가도 아니고 많이 들어 본 작가도 아닌 다소 생소한 작가의 이름이 나왔어요. 그게 마쓰모토 세이초였죠. 꿈이란 게 원래 그렇듯이 눈을 뜨니 무슨 내용의 꿈이었는 지는 기억이 안 나고, 무슨 복권 당첨 숫자를 본 사람 마냥 그 이름만 자꾸 되뇌이고 있었네요. 아마 어디서 얼핏 듣고 꿈에 나왔나 본데, 제 꿈까지 발 길 해주신 양반을 어찌 모른 척할 수 있겠나 싶더라구요. 근데 검색해보니 추리소설 작가 ㅠ 제가 그닥 좋아하는 장르가 아니라서 일단은 접어두자 생각하고 잊고 있었는데...샤이닝님 서재에 반가운 이름이 보여 댓글 달아보아요 ㅋ
근데 이번에도 도망 좀 칠까요. 미리 말씀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말리시는 책은 당연히 접어야지요.. 저는 담력이 약해서 괜히 무서운 책 읽다가 야밤에 고생할지도..

Shining 2013-01-14 12:03   좋아요 0 | URL
마쓰모토 세이초를 읽어라, 하는 뭔가 계시같은 일이 아닌가요?ㅎㅎ 하지만 무서운 것에 약하다면 역시 권해드리고 싶진 않군요ㅠ 썰고 찍고 찢고(...)하는 장면도 그렇지만 훨씬 더 근원적인 공포감을 자극하더라구요ㅠ 전 오랜만에 퀭한 얼굴로 날이 서서 글을 썼답니다; 뒤가 무서워서 막 다다다다 쓰게 되더라구요, 근데 다다다 하는 소리도 무서웠어요;

하하. 그런데 그런 꿈은 어떻게 꾸는 겁니까?+_+ 전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두 번 봤는데ㅎㅎ

마녀고양이 2013-01-11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 소설은 따스한 감정선을 따라가는 부류와 기괴함의 끝은 어디인가를 따라가는 부류가 있는게 아닐까,
왜 이렇게 극단과 극단을 오고 가는거지, 아무리 크더라도, 섬이라는, 그것도 지진이 자주 나는 섬이라는 영향이 이런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 있습니다. 아마 란포의 소설을 접하고, 조금은 몸서리치면서 그런 생각을 했던거 같아요.

인용해주신 문제도 드라이하네요.
객관적으로, 3자처럼, 도저히 인간이라면 담담할 수 없는 장면을 외계인이 기술했듯이 담담하게.
그건 소위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가 느끼는 감정 정의와 유사합니다. 실제로 그런 사람이 유전적으로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정의에 따르자면 타인의 감정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고 자신의 편의만을 위하는... 이 있으니까요.

저는 일본의 최대 기담('도구라마구라' 같은)도 샀는데,
읽을 엄두도 안 나고, 제가 왜 저 책을 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ㅠㅠ.

역시나 좋은 페이퍼입니다, 즐거운 날 되셔요.

Shining 2013-01-14 12:08   좋아요 0 | URL
맞아요, 감성적인 이라고 하기에도 면면한 아주 소박하고 아기자기한 순간에 집중하는 것과 공포와 그로테스크의 끝을 달리는... 희한한 두 부류가 비교적 극명하게 나뉜 편이라 신기해요+_+

그렇다고 하더군요, 요새는 사이코패스는 유전학적, 소시오패스는 환경적(주로 양육에 의한)이라는 의견이 추세인 것 같긴 한데. 글쎄요, 정말 유전학적으로 태어나는 건가에 대한 회의감이 짙은 쪽입니다, 저는. 물론 <케빈에 대하여>같은 영화 혹은 책을 보면 그렇다면 양육이 문제인가, 에 대해서도 쉬이 답을 할 수는 없지만요..

하하. 날이 따뜻해지면 낮에(!) 읽으시는 건 어떨지^^ 전 새벽에 읽고 새벽에 쓰려니 이거 원...후덜덜했어요ㅠ

넵, 달여우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

맥거핀 2013-01-12 0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조해요. 건조해. 피부에 스킨을 바르고 에멀전을 덧씌웠습니다. 새벽 1시에 불꺼진 방에서 TV에서 하는 <스핏파이어 그릴>을 보며 글을 읽고 댓글을 달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오랜전에 봐서 내용을 다 알고 있는데, 아직 울컥할만한 장면은 나오지도 않았는데 성우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이상하게 울렁울렁하네요.

Shining 2013-01-14 12:13   좋아요 0 | URL
헛, 저는 알지 못하는 영화라 방금 찾아봤습니다. 오 찾아봐도 모르겠군요ㅠ 전 며칠 전에 DVD로 <싱글맨>을 다시 봤습니다. 이 영화의 콜린 퍼스는 정말 좋군요. 줄리안 무어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얼굴 중 하나구요, 라는 전혀 관계없는 사심섞인 댓글을 남겨봅니다ㅎㅎ

맥거핀 2013-02-07 14:57   좋아요 0 | URL
아..근데 그거 원작소설이 <싱글맨>인 거죠? 그거 읽어보셨어요? 이번에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책 주는 이벤트를 하더군요. 영화보러 갔더니 책까지 줘서 좋기는 한데, 준 책이 이 <싱글맨>인데 이거 읽어볼만 한가 싶어서요.

아이리시스 2013-01-17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샤이닝님, 제가 쳐들어갈지 모르니 문을 꼭꼭 잠궈요, 오늘밤에도.

뇌과학(어맛, 이러니까 과학자 같아..)에서는 사이코패스는 유전적으로 정말 뇌가 다르게 생겼다고 하고, 유전학에서는 유전자가 다르다고 하고, 그러면 그런 게(?) 생기지 않도록 해야하는데, 뱃속에 있는 애기 검사하면서, 얘는 사이코패스적 유전자를 가지고 있으니 수술하셔야 합니다........이럴 수도 없고ㅠ.ㅠ (저 뭐하는 거죠?ㅎㅎ) 그럼 누가 그거 믿고 아, 내 뱃속에 사이코패스가 있대..하면서 내 애 아니야, 사이코패스야, 이러고 수술하면.......ㅠㅠ

저 샤이닝님 이 글 보기 하루 전인가에 세이초 중단편 읽기 시작했어요. 뭔가 신기해@.@

문 잘 잠그고 있어요, 내가 갈지도 몰라요-_-;;

다크아이즈 2013-02-06 1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샤이닝님 장난 아니옵니다. 한 번 읽어서는 잘 모르겠고 두 번 세 번 곱씹어야 겠어요.
추카드립니다. 여러분, 이 작품이 리뷰 당선작이랍니다~~~!!!

Shining 2013-02-07 11:06   좋아요 0 | URL
...네, 이게 그 문제의 글입니다-_ㅠ 퇴고도 안 한 글인데 얼른 오탈자라도 찾아봐야겠어요. 굉장히 많을텐데...그러니, 두 번까지만 읽어주세요ㅎㅎ 세 번은 아니되옵니다(흑).

감은빛 2013-02-08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샤이닝님.
우선 당선 축하드립니다!
당선된 글이니만큼 대충 읽지 않고,
찜 해두었다가, 찬찬히 읽어볼게요.

행복한 설 명절 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Shining 2013-02-08 23:40   좋아요 0 | URL
으, 그러지 마시고 한번만 쓱 읽어주시면 안 될까요?ㅠㅠ

감은빛 님도 항상 운전 조심하시구^^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감은빛 2013-02-19 14:20   좋아요 0 | URL
시간이 좀 지나긴 했지만, 약속대로 찬찬히 재밌게 읽었습니다!
역시 샤이닝님의 내공이 느껴지는 훌륭한 글이네요!

일본 추리소설 쪽은 관심은 많지만,
아직 접해보지 못했어요.
사회파 쪽으로 저같은 초보가 입문하기 좋은 소설 추천해주세요! ^^

Shining 2013-02-20 11:26   좋아요 0 | URL
내공이라니 부끄럽습니다(웃음). 마쓰모토 세이초 옹의 덕에 잘 쓰진 못해도 엄청 집중해서 쓴
리뷰였답니다ㅎㅎ 세이초 월드라는 제목으로 나온 시리즈는 전집으로 꼭 읽고 싶은데 가능할지요. 하하^^
 
비행운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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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걷는 산책 코스가 있다. 걸어서 천변으로 나가서 천변에서 왕복 5km정도, 도합 7km 가량 되는 거리다. 길은 매우 길었지만 대개 그 정도만 걸었다. 돌아올 때를 생각해서 더 멀리 나가는 건 아무래도 무리가 있다. 질리지도 않고 많이 걸었다. 들었던 노래만 수백곡, 걸었던 거리만 수천킬로미터, 지나쳤던 사람만 수백명, 별과 새와 갈대와 차도 참 많이 보았더랬지. 자전거로 갈 때도 있었고 걷기도 하고 뛰기도 했다. 조깅이기도 하고 운동이기도 하고 산책이기도 했다. 어떤 날, 결국 밤새 한숨도 못 자고 다섯 시가 조금 넘어 몰래 집에서 나왔다. 11월이었으니 새벽공기는 빛을 가를만큼 스산했다. 불면증을 앓는 사람이 잠을 자야한다는 생각을 하지 말아야한다는 일념에 사로잡혀 잠을 자야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생각에 의미를 부여하지 말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생각을 부여잡고 있었다. 필사적으로 아무 생각도 안 하려는 생각을 하며 걷다보니 이미 낯선 풍경에 속해 있었다. 아, 너무 많이 걸어버렸다. 자전거를 타지 않는 한 이만큼씩 오면 돌아가는 길이 아무래도 지루하고 지친다. 올 때의 에너지와 갈 때의 에너지가 같지는 않으니까. 하지만 어쩌겠어, 한숨을 쉬며 멍하니 있던 자신을 가볍게 탓하며 다시 돌아가기 시작한다. 마음이 급할 것까지야 없지만 벌써부터 지루해진다. 돌아갈 길이, 무감해진다. 생각하지 않고는 도저히 이 길을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갑자기 아주 크게 울고 싶어진다. 나는 울지 않을테지만, 반드시 그러겠지만, 그래도 울고 싶어질 때 정도는 있는 법이다.

 

후회하지 않는다는 말을 자주 한다. 나 자신과 둘이서 마주 앉아 대질해본 결과 그건 진심이었다. 다만 진심이라고 해서 그 전의 과정까지 진심에 도착까지의 인과가 모두 후회스럽지 않다는 것은 아니라고 '나'는 말했다.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원망하지 않는다고도 하지 않았다. 되도록 적게 후회하고 되도록 속으로 원망했다. 후회하지 않는 건 강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약해서가 아닐까. 후회를 인정하는 후회조차 두려운 것이다. 비겁한데다 무책임한 사람까지 되는 것이 겁이 나는 것이다. 후회해도 별 수 없지 않냐고 결과론적으로 생각해서였다. 그럴바에야 마음이라도 지키라도 '내'가 말했기 때문이었다. 어찌됐든 후회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주 가끔씩, 정말 어쩌다 어느 순간. 너무 멀리까지 와버렸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러려고 했던게 아닌데, 그러고 싶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너무 멀리까지 와버려서 돌아가는 길이 막막해질 때가 있다. 돌아갈 수는 있을까 막연해질 때가 있다. 돌아갈 곳이 있기는 한 걸까 망연한다. 그 순간 울대뼈 밑에서 차오르는 것 같은 뜨거운 것이 터져나올 것 같은 그런 감각을 뭐라고 말해야 좋을까. 우리에 갇힌 야수가 철창을 쥐고 흔드는듯한 착각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하지만 은지는 언제나 그래 온 것처럼 인생을 굴러가게 만드는 건 근심이 아니라 배짱임을 믿었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식은 두려움을 깔보는 거라고. 실은 본인도 믿지 않은 주문을 외워가며 말이다. 서윤의 경우, 두려움을 이기는 제일 좋은 방식은 두려움을 경험하는 거라 여기는 편이었다. 아니, 그보단 아예 두려움 근처에 가까이 가지 않는 편이 상책이라고. 진짜 공포는 그렇게 쉽게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라며 말이다. 사실 서윤이 품고 있는 근원적인 두려움 중 하나는 가난이었다. 서윤은 오랫동안 그것이 제 삶 가까이 오지 못하게 흡사 파리 떼를 쫓는 사람처럼 두 팔을 휘저으며 뒷걸음질 쳤다. 혹 그게 누군가에게는 우스꽝스러워 보인다 할지라도, 당장 하지 않으면 안 되고, 할 수 있는 일들을 했다.   - 호텔 니약 따

 

 

여행을 좋아하지 않았다. 뭔가가 지속적으로 바뀌는 상황도 예측할 수 없는 긴장감도 그저 즐기지 못하는 탓도 있지만, 탈 것을 잘 못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현실에 견고하게 자리 박는 걸 마음에 두는 목표성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곳 저곳을 다니며 이것 저것을 보고 듣는 것도 즐거웠지만 그것이 내 집, 내 공간, 내 가구, 내 물건으로 투영될 수 있는 것이 좋았다. 여행이 주는 즐거움이라면 떠날 수 있다는 자유와 돌아올 곳이 있다는 부자유에 있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가끔 K의 방랑벽과 J의 체류가 지겨웠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불행했을지 모르겠지만 그들은 떠나는 것과 아닌 것 중에 고를 수가 있었고 떠나는 것 중에서도 시간과 장소를 고를 수 있었겠지. 어떤 이들은 떠난다는 선택지가 있다는 것을 채 모르고 살기도 하고 선택지를 읽어도 고를 수가 없기도 하고 선택지를 고르기 위해 다른 이들을 불행하게 만들기도 하는데에 비하면 그들의 이기심은 얼마나 평온한가. 여전히 나는 바보같은 생각을 한다. K와 J보다 할 수 있는 것을 열심히 하고 산 나는, 그들에 비해 더 나아져야 하지 않을까. 당연히 그 정도는 내게 돌려줘도 되지 않은가. 삶에는 누구를 더 봐주고 누구를 덜 봐주는 자비도 없고 누군가의 행과 불행을 절반으로 뚝 나눠주는 공평함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 아직도 그런 허위의 진실을 믿다니. K와 J가 아닌 내가, 삶을 허투루 보고 있다는 사실에 반성하는, 그런 밤이 있다.

 

 

이런저런 곁눈질과 시행착오 끝에 가까스로 얻게 된 한 줌의 취향. 안도할 만한 기준을 얻는 데 얼마나 많은 비용이 들었던지. 상품 사이를 산책할 때 나는 엄격한 동시에 부드러운 사람이 됐다.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알고 있는데서 오는 여유. 그러나 원하지 않는 것 역시 정확하게 알고 있다는 식의 까다로움.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의심을 버리자 쇼핑에 자신감이 붙었다. 그리고 원하는 게 많아졌다.

 

오랜 소비 경험상 나는 이런 데서 기죽은 태도를 보이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익숙한 듯 자연스레 행동하려 애썼다. 더불어 속물처럼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에 겸손한 표정을 짓는 일도 잊지 않았다. 교육받은 사람답게, 당신을 존중한다는, 나는 으스대는 사람이 아니라는 식의 태도.    - 큐티클

 

 

분명 더 많은 걸 알게 되었다. 이것을 고르는 것과 저것을 고르지 않는 것의 차이, 침묵이 최고의 공격이자 최선의 방어라는 눈치, 가격을 먼저 묻는 속물이 아니라는 태도, 그러나 사실 가격을 물을 타이밍을 재고있는 조심스러움, 가지는 것과 가지지 않는 것 사이에는 취향이 있다는 식의 뉘앙스. 나는 언제부터 그런 것들을 배우고 연습하고 연기하게 되었을까. 비싼 옷을 입은 남자보다 제 몸에 맞는 옷을 입은 남자의 안목에 감탄하고 예쁜 옷보다 잘 가꾼 손톱이나 머리칼을 가진 여자의 부유함을 알아채게 된 때는 언제였을까. 모르는 걸 모른다고 하지 않고, 처음 본 걸 처음 봤다고 하지 않는, 그것으로 스스로를 장식하는 그 속박은 언제부터 시작했을까.

 

도시는 김중혁이 그리고 도시의 여자는 정이현이 그리고 도시의 현대인은 김애란이 그린다. 김애란이 그리는 현대인은 적당히 이기적이며 이타적이고 적당히 희생적이고 타협적이고 적당히 솔직하면서도 무심해서 가끔 한심해서 뭉클해진다.

 

 

언니. 가을이 깊네요. 밖을 보니 은행나무 몇 그루가 바람에 후드득 머리채를 털고 있어요. 세상은 앞으로 더 추워지겠죠? 부푼 꿈을 안고 대학에 입학했을 때만 해도 저는 제가 뭔가 창의적이고 세상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며 살게 될 줄 알았어요. 그런데 보시다시피 지금 이게 나예요. 누군가 저한테 그래서 열심히 살았느냐 물어보면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쩌다, 나, 이런 사람이 됐는지 모르겠어요. 요즘 저는, 밤에 잠자리에 누울 때마다 이상한 소리를 들어요. 휙휙- 차들이 바람을 찢고 지나갈 때 내는 그런 소리를요. 마치 제가 8차선 도로 한가운데에 서 있는 느낌이에요. 왜 오락의 고수들 있잖아요. 걔네들은 정신없이 쏟아지는 총알이 아주 커다래 보인다던데. 다가오는 모양도 영화 속 슬로모션처럼 느껴진다 하고요. 저도 그랬으면 싶어요. 지금 선 자리가 위태롭고 아찔해도, 징검다리 사이의 간격이 너무 멀어도, 한 발 한 발 제가 발 디딜 자리가 미사일처럼 커다랗게 보였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언젠가 이 시절을 바르게 건너간 뒤 사람들에게 그리고 제 자신에게 이야기하고 싶어요. 나, 좀 늦었어도 잘했지. 사실 나는 이걸 잘한다니까 하고 말이에요. 하지만 당장 제 앞을 가르는 물의 세기는 가파르고, 돌다리 사이의 간격은 너무 멀어 눈에 보이지조차 않네요. 그래서 이렇게 제 손바닥 위에 놓인 오래된 물음표 하나만 응시하고 있어요. 정말 중요한 ‘돈’과 역시 중요한 ‘시간’을 헤아리며, 초조해질 때마다, 한 손으로 짚어왔고, 지금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그것.

 

‘어찌해야 하나.’

그러면 저항하듯 제 속에서 커다란 외침이 들려요.

‘내가, 무얼, 더.’           - 서른

 

 

딱히 과거를 살고 있다고 자조하고 싶지 않고 회상이 기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자주 하지 않으려 하지만 가끔씩은 스스로의 생각을 막는 것조차 귀찮아질 때가 있다. 지금의 나보다 십 년 전의 Y가 더 현명하고 강했다는 것. 나는 왜 십 년 동안 너보다 더 자라지 못했을까 미안해지고 너는 왜 십 년 후의 나보다 이미 자라있었을까, 아파진다.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을까. 뭘 하다가 뭘 찾다가. 그건 이미 십 년 전에 네가 했던 말인데. 십 년 후의 나는 어쩌면 십 년 전의 너에게 답을 구하고 있는가. 또 십 년 후에도 나는 이십 년 전에 너에게 답을 구하는가. 나란 사람은 질리지도 않게 변하지 않는구나.

 

 

김애란의 단편을 읽으며 손목에 아로새겨진 뼈가 펄떡이는 걸 느낀다. 분명 그녀의 글을 좋아했다. 내게 안목과 취향이란 것이 모두 있다고 믿었을 때, 내 안목과 취향이 모두 그녀를 향해 YES라는 표지판을 들고 있었기에. 친구는 책 표지의 앞날개를 볼 때마다 우울해하며 등단년도와 자신의 나이를 비교해본다고 했지만 나는 달랐다. 나는 가질 수 없을 만한 것을 탐하는 사람이 아니고 가질 수 없을 것이라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예 탐한 적이 없다고 스스로에게 장담시키는 쪽이었다. 그러니 나는 김애란을 부러워하지도 시샘하지도 않을 수 있었다. 그저 제3자처럼 무심한 독자처럼 냉정하게 말할 수 있었다. 「물 속 골리앗」과 『두근두근 내 인생』으로 얼마간의 실망과 지루함을 느꼈을 때는 내심 통쾌(!)해하기도 했다. 『비행운』역시 우연처럼 집어든 책이었고 다소간 고(高)자세로 읽기 시작했다. 몇몇 편은 그저 그랬고 (심지어 지루하거나 전혀 기억이 나지 않고) 첫 번째 단편집처럼 몰두하지는 않았다. 

 

다만 몇몇 편이 매우, 개인적인 시선으로 눈에 들어왔다. 특히 「서른」의 전조가 유별나게 그랬다. 왜 이렇게 삶이 비루할까, 가 아니라 왜 이렇게 내 삶이 남루해졌을까, 라고 물을 때의 무구한 어리둥절함, 절묘한 피로감, 권태조차 느낄 수 없는 허무의 그림자가 언뜻언뜻 스쳤다. 몇 가지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자살을 시도했지만 일주일 간 누구도 연락을 하지 않았다는 누군가의 사연, 사채와 동거와 다단계로 얼룩진 친구의 친구 이야기, 천체망원경과 에스프레소 머신과 드레스룸가 없는 삶도 있다는 것을 듣고 놀라던 중학교 동창의 이야기,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 가끔씩 아직 낼 화가 남아있다는 것이, 여전히 분노하거나 모멸당했다고 생각하는 스스로의 감정이 놀라울 때가 있다. 다 안다고 생각한 순간에도 여전히 수많은 깨달음이 무수히 존재한다니, 삶은 얼마나 잔인한 방식으로 이타적인가. 왜 특수하게 나쁘게도 특별하게 불성실하게도 특이하게 요행을 바라며 살지도 않았는데 어느순간 삶은 돌이킬 수 없는 방식으로 엉망진창이 되고 그 엉망진창이 된 그림은 고치려고 하면 할 수록 더 퍼지는 얼룩처럼 걷잡을 수가 없게 되는걸까. 왜, 라는 소모적이고 감상적인 -비논리적이기도 한- 질문밖에 할 수 없게, 왜 사람을 구차하게 만드는 걸까.

 

별 수 없이 삶은 고루하고 비루하고 남루하다. 어떤 좋은 말을 해줘도 어떤 표현으로 '힐링'을 시도해도 어떤 긍정적 바람을 불어넣어도 나는 여전히 삶이 고루하고 비루하고 남루하다(심지어 고단하기까지). 삶의 고루함, 비루함, 남루함, 속에서도 의미를 찾자고 제창하는 이들 속에서 삶은 그저 고루하고 비루하고 남루할 뿐이라고 말하는 이도 한 명은 있어야 한다. 『비행운』의 김애란은 그 한 명인 듯 해 나는 퍽 안심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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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3-01-09 0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삶은 고루하고 남루하고 비루한데다가 게다가 지루하기까지 하지만 우리는 그래도 쓰루(through)해야죠. 그러니까 뭐 어쨌든 지나야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김애란의 소설을 읽으면서 말이죠. 소설가는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을 이야기하고(그러니까 무엇이 있음을 필사적으로 찾아내야만 하고), 뭐가 ~아니다보다는 뭐가 ~이다라고 이야기해주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요즘 세상에서는 없어지는 게 당연시되고, 뭐가 아닌 것이 되는 게 너무도 흔한 일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얘기는 사실 하려던 얘기가 아니었고, 오늘 <라이프 오브 파이>를 봤어요. 혹시 Shining님이 그렇게 생각하실까봐, 혹은 잡담으로 늘 이 이 시간에는 술을 마시고 글을 썼던 것을 떠올리실까봐 말씀드리는 건데 지금은 아주 멀쩡해요. 지금 잠을 못 이루고 있는 것은 계속 일종의 멀미가 나서요. 누군가가 이야기했듯이 아직도 바닷물이 울렁울렁하는 것 같아요. 3D 총천연색으로 말이죠. 호랑이의 아니 리처드 파커의 위엄있던 뒷모습이 잊혀지지가 않네요.

Shining 2013-01-10 11:19   좋아요 0 | URL
역시 맥거핀님 센스 짱!-_-b 비행운, 사실 몇 편은 심히 지루했고(물 속 골리앗은 다시 읽어도 지루하더군요, 왜 이 단편이 젊은작가상 수상작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더 좋은 다른 작품이 우수상 안에 있었다고 생각하거든요) 전체적으로 다른 두 소설집만큼 흥분되진 않았습니다. 다만 몇몇 문장이나 구조에서 특히 <서른>에서 개인적으로 울컥하게 만드는 정서가 있어서 별 네 개, 라고 묻지 않으신 변명을 해봅니다ㅎㅎ 아, 그런데 김애란 작가가 이상문학상을 받았더군요. 어찌됐건 대중적 관심과 평단의 지지를 고루 받는 작가인 것은 사실인 듯 합니다.

하하^^ 맥거핀님은 잠이 안 와도, 술 한 잔 드셔도 엄청 논리정연하게 쓰시니까, 취했거든요, 라고 본인이 말씀하셔도 저는 안 믿었을거에요ㅎㅎ 영화는 어떠셨나요? 좀 더 자세히 말씀해주세요+_+ 저는, 자랑하기 위한 기술적 3D가 아니구나, 라는 점이 가장 흥분됐던 것 같아요. 리처드 파커는 정말...-_-b

맥거핀 2013-01-10 17:52   좋아요 0 | URL
아..맞아요. 김애란 작가가 이번에 이상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되었더군요. 개인적으로는 이상문학상이 점점 일종의 대중성에 손을 들어주는 듯 하군요.

사실 <라이프 오브 파이>는 짤막한 글을 올리려고 생각중인데, 시간도 안나고, 컴퓨터도 뻗었어요. 탕약으로 안되니 외과술을 시행해야 할듯. (요즘에 드라마 '마의'를 보다보니..)

아이리시스 2013-01-10 21:40   좋아요 0 | URL
탕약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외과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남의 글에 끼여들어 이럴 의도는 아니었습니다만)

샤이닝님 글은 완전 사랑하구요(또 고백), 김애란은 왠지 모르게 도리도리 :) 샤이닝님글 읽고나서도 안 읽고 싶어지는(그만큼 뿌리깊은 편견이랄까) 저는 이번에 이상문학상도 읽지 말까요?-_- (사실은 안 읽은지 7년째인데ㅎㅎ)

이진 2013-01-11 14:06   좋아요 0 | URL
저도 끼어들고 싶진 않지만... 저 밑에 샤이닝님 답글까지 포함해서
김애란은 왠지 별로, 에 저도 동의해요.
윤성희가 따뜻한 측면이 강하다면 김애란은 드러내보이는 것 같아서 싫어요.
그러니까 글을 너무 잘 써서 문제인가? 능수능란하게 글을 잘 쓰는 것도 단점인 듯해요.
분명 등단이나 데뷔는 쉽겠지만....

김애란은 정말... 이상문학상엔 안 맞는 거 같은데... 하는 괴리감이랄까.
한강은 좋았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hining 2013-01-14 12:16   좋아요 0 | URL
> 맥거핀님

이진님 댓글에 썼듯 제가 이상문학상에 드러맞는 작가나 작품을 판단할 깜냥은 당연히 되지 않지만요. 공지영과 김영하, 김애란으로 이어지는(네, 실명 나오네요) 수순이 어쩐지 '받을만한 사람은 한 번씩 받아야하는' 어조인 것 같아 불편한 마음이 있습니다. 보수적이라는 생각이 계속 들기도 하구요.

컴퓨터는 어떻게 되셨나요? 라이프 오브 파이, 에 대해 쓰신 걸 보면 아직 살아는 있는건가요?
(아, 드라마를 전혀 보지 않아서.....이 소외되는 기분.....)

Shining 2013-01-14 12:19   좋아요 0 | URL
> 아이리시스님

저도 무슨 얘기인지 알고 싶어요............(라고 앙탈ㅋㅋ)

전 김애란이 굉장히 대중적이고 고른 인기를 가진 작가인 줄 알았는데 의외군요. 흐음. 문학상을 챙겨보진 않는데 나중에 보면 -그 해가 아니라 해도- 언젠가 읽게 되더라구요. 그런데 최근 몇몇 문학상 수상작에 심한 반발 때문에 요새는 정말 시들하네요. 이번에 문학동네와 자음과모음 수상작은 좀 궁금하긴 하더라구요.

Shining 2013-01-14 12:31   좋아요 0 | URL
> 소이진님

그런가요? 전 김애란이 글을 정말 잘 쓴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말했듯이) 제가 안목이란 걸 갖고 있는 독자라고 상정했을 때, 제 안목엔 김애란은 참 글을 잘 쓰는 작가에요. 그 사실을 부인하지는 않아요, 제 안목이 고른 거니까요(그러니까 타인의 안목에는 맞지 않을수 있겠지요). 어쨌든 그녀가 빠른 시간 범접할 수 없는 커리어를 쌓아오는데는 그에 대한 존중, 이랄까 인정은 필요할 것 같아요^^ 취향과는 별개 문제로 안목에 의거한다면 말이죠.

이진 2013-01-09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시는 김중혁이 도시의 여자는 정이현이 도시의 현대인은 김애란이 그린다...
하나의 에세이 같기도 소설 같기도 한 리뷰... 정말 좋은 걸요.
어디선가 김애란은 윤성희의 후예쯤 되는 사람이라고 들은 기억이 나요.
비극을 희극화 하는데는 두 사람만 한 작가가 없다구요.
김애란의 소설들은 얼핏 읽으면 밝은 느낌이 나요. 발레복을 입은 소녀가 통통 튀는 듯한 그림이 그려지고 연두색 노란색 점들이 하얗게 펼쳐지는 기분도 들어요. 그러나 음미해보면... 이것보다 슬프고 비루하고 남루하고 우울한 이야기는 또 없지요... 김애란은 그렇게 느껴져요.
어제 김애란이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듣고 놀랐어요.
김애란은 이상문학상과...는 맞지 않는데? 하는 생각이 제일 처음 강하게 범점해왔거든요.
만약에 박완서 상이라든가.. 신경숙상... (제가... 작가 범위가 좁아서 그런 건 절대 아닙니다ㅋㅋ) 그러니까 여성작가 상이 생긴다면 그럼 제일 먼저 수상할 사람이 김애란이라는 생각을 평소에 갖고 있었어요.
심사평을 보니 언어의 사용 자체가... 이상과 비슷한 면이 있다고 하더군요.
그러니까 제 말은... 샤이닝님 글이 아주 좋다구요! ㅎㅎ

Shining 2013-01-10 11:26   좋아요 0 | URL
사실은요 이진님, 이 리뷰가 쓰고 고치고 쓰고 고치다 결국 다 버리고ㅋ 두 시간만에 쓴 거거든요. 역시 사람은 좀 내거티브해야 글이 잘 나오나봐요ㅎㅎ 이거 쓴 날 엄청 분노의 내거티브ㅋㅋ

김애란은 뭐랄까, 문장력이 좋다고 생각해요. 소설의 도식은 비교적 명료한데 클래시컬한 묵직한 문장력을 구사한다고 생각했거든요(제가 강추하는 칼자국). 그러면서도 굉장히 재밌죠(침이 고인다,나 달려라 아비, 같은 것). 도시괴담 같은 느낌도 들구요(노크하지 않는 집, 나는 편의점에 간다 등). 그런데 최근 글은 약간, 좋다고 망설여지는 희한한 뭔가가 있어요. 물론 여전히 잘 쓰고 여전히 재밌고 여전히 예리하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해요'라고 말하기 망설여지는 뭔가가 느껴집니다(웃음). 네, 이상문학상 수상은 저도 들었습니다. 이상문학상의 성격과 부합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제가 판단할 사례가 아니니까요^^) 한국문단은 여전히 보수적이라는 생각은 듭니다. 몇몇 사례들로 받을만한 작가가 받는, 이라고 생각이 듭니다(아, 김애란 작가가 그렇다는 건 아니구요).

고마워요 늘 칭찬 가득한 이진님 ^_________^

티티카카 2013-01-09 2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이도 있어야 다른 이도 있을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김애란 책을 들춰 보고 싶네요.
잘 읽었습니다 ~

Shining 2013-01-10 11:29   좋아요 0 | URL
소설의 큰 동력이랄까 의미는 인간 근원에 대한 위로나 회한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힘을 내야 한다, 는 소설들이 갑자기 싫어졌어요; 아마 제가 내거티브한 까닭이 아닐까ㅋㅋ 삶이란 본디 그런거지 뭐, 힘을 내든 위안을 받든 어쨌든 삶은 그런 거, 라고 말해주는 쪽에 더 힘을 보태게 됩니다 요새는^^ 티티카카님 오래만에 뵙는 것 같아요 :) 제가 글을 하도 띄엄띄엄 써서 그런걸까요ㅠ

티티카카 2013-01-12 01:41   좋아요 0 | URL
샤이닝님 댓글을 보니 왠지 나쓰메 소세키의 <유리문 안에서>이 떠오르네요..소세키도 참 많이도 내거티브한 사람이었는데 그럼에도 위궤양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는 계속 글을 쓰면서 살아갔죠. 저도 샤이닝님의 말씀에 반응하는 거 보면 내거티브한 사람이라서 그런가요 ㅋ 가끔씩 촐랑대는 걸 보면 조울증 같다는 생각도 불쑥..ㅋ
저는 늘 엿보고 있었습니다..ㅋ 섬님께서 그런 댓글을 남기신 적이 있던데, 샤이닝님은 가끔씩 댓글을 못 쓰겠고 추천만 꾸욱 누르고 싶은 글을 쓰신다고..ㅎ

Shining 2013-01-14 12:36   좋아요 0 | URL
하하. 전 진짜 내거티브해요, 티티카카님. 어떤 서사나 사건을 의심으로 층위를 나눠보는 성격인 것 같아요. 뭘 잘 믿는 사람도 아니고 믿기 위해서 의심을 하고 믿기 위한 의심을 또 의심하고. 좀 피곤한 사람이죠_-

글은 진짜 내거티브할 때 나오던데요 저는?ㅎㅎ 즐거울 때나 기쁠 때는 글 쓸 생각을 안 하는 것 같아요, 그 느낌을 즐길 뿐. 그 즐거움과 기쁨이 사라지거나 잃어버리거나 빼앗기면 그때 글을 쓰고 싶은 자연스러운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아마 그래서 그런것 아닐까요? 제가 가장 다크할 때 쓴 글들은 너무 개인적이고 은밀해서? 그래서 가끔 이 글을 읽어주시는 다른 분들께 죄송한 마음이 들어요. 이건 나 혼자 알면 되는 일인데, 하면서요ㅠㅠ(그러면서도 또 쓰는...)

댈러웨이 2013-01-09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걷는 걸 좋아해요. 저희 동네에도 강변이 있어서 드문드문 산책을 하는데, 항상 혼자 걷고, 또 혼자 걷는 것을 좋아하지만, 오전에 이 글을 읽으면서 샤이닝님과 함께 걷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라는 생각을 해봤어요. 음. 같이 걸어보고 싶어졌어요 사실은. 어디에서 어떻게 끊고 얘기를 좀 해 볼까 하다가 그냥 가요. 샤이닝님과 산책하는 기분으로 찬찬히 읽다가 가요. 잘 읽었어요. '고루, 비루, 남루, 그러나 쓰루'라는 맥거핀님(안녕하세요, 맥거핀님.)의 말씀도 명문이네요. ㅎㅎ

Shining 2013-01-10 11:34   좋아요 0 | URL
누군가와 걷는 건 (말하자면) 정서의 산책이고, 혼자 걷는 건 사유의 산책 같아요(어머). 생각의 방향, 온도, 밀도와 질량까지 스스로 조절하는 그 시간이 재밌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해서 저는 아마 혼자 걷는 걸 더 좋아하는 것 같아요. 댈러웨이님은 호주에 사시죠? 따땃한 시간에 댈러웨이님과 함께 걷는 호주의 강변이라니. 이거 너무 멋지잖아요! 갑자기 둘이 걷는 산책이 더 좋아지려고 해요>_< 하하. 맥거핀님의 센스는 역시 짱이십니다(괜히 제가 으쓱ㅎㅎ).

맥거핀 2013-01-10 17:54   좋아요 0 | URL
아이고 인사를 먼저 해주셨으니 저도 인사를 드려야겠네요. 지나가다 댓글만 많이 봤는데 이제서야 인사드립니다. 좋은 말씀도 감사하구요.^^

Shining 2013-01-14 12:37   좋아요 0 | URL
와. 이거 뭔가 기쁘면서도 오묘한 기분인데요?(으쓱으쓱)

 
도시락의 시간 - 도시락으로 만나는 가슴 따뜻한 인생 이야기
아베 나오미.아베 사토루 지음, 이은정 옮김 / 인디고(글담)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 사진은 책정보에서 퍼온 것입니다. 책 속에는 맛있는 요리가 많이 나옵니다.

 

 

 

한 사람에 대한 편견이 일관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나는 운전을 아주 잘 하게 생겼고 요리라고는 계란 후라이와 라면, 밖에는 못 하게 생겼다, 는 말을 수없이 들어왔다. 그러나 나는 차를 아주 무서워하고 계란 후라이와 라면 외에도 수십가지 요리를 할 수 있다. 조금 자랑하자면, 가사 전반에 능한 편이다. 처음엔 실리적인 이유였다. 맞벌이인 부모님과 터울 있는 언니와 남동생. 집은 거의 늘 휑했고 엄마의 수고를 덜어드릴까 해서 설거지를 시작했고 칭찬에 힘입어 빨래를 개고 누룽지를 만들고 콩나물을 다듬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남동생과 아빠의 셔츠 다림질 담당이 되었고 나만의 계란말이를 만들 수 있게 되었고 빨래를 접는 일정한 방법이 생겼다. 언젠부턴가는 하얀 커텐을 사고 싶다는 친구의 말에 "야 그거 빨려면 힘들어"라든지 "이런 니트 옷은 별로야, 올이 잘 풀리거든."라는 말을 하게 되고, 옷구경을 하는 것보다 주방코너에서 어슬렁거리거나, 그립감이 좋은 칼이 가장 갖고 싶은 것이 되기도 했다. 한 친구는 검은 깨가 뿌려진 고구마 맛탕과 간장 떡볶이를 대접받은 후에야 "너 진짜구나."라는 말을 한 걸 보면 정말로 믿지 않았던 것 같다. 그 친구 말로는 이미지와의 갭이 커서 더 안 믿긴다나(친구야, 그러는 너는 요리연구가 저리가라하는 맏며느리 같은 얼굴로 세상에서 가장 밍밍한 라면과 그로테스크하게 태운 계란 후라이를 주지 않았니).

 

이렇게 대부분은 타의에 의한 익숙함이었으나 반드시 자의가 아닌 것도 아니었다. 다림질을 하는 포송한 느낌이 좋았고(무라카미 하루키의 남자들은 어떤 순서로 다림질을 할까 가끔 생각한다. 나는 뒷날개선부터 다리는데. 자신의 셔츠를 다림질 해서 입는 남자라니, 아르마니나 질 샌더 셔츠 입은 남자보다 백 배는 멋지다) 햇님이 외출할 때 빨래를 대기시켜 햇살 냄새가 나는 게 좋았고 잘 다린 셔츠와 덜렁거리지 않은 단추가 좋았다. 요행히, 색깔별로 옷을 정리하는 정리벽이 있었고 요리란 꽤 흥미로웠다. 칼 쓰는 법이나 채 써는 법을 배운 적도 없고, 하물며 누군가 옆에서 조언해준 적도 없다. 딱히 요리책을 보거나 레시피를 연구한 적도 없고 가끔 간 보는 걸 잊어버린다. 그런데도 생선조림도 불고기도 멸치볶음도 썩 하는 걸 보면 나도 몰랐던 손재주가 있는 걸지도 모른다. 아아, 지금 복잡하고 대단한, 멋진 요리를 상상하고 있다면 그만. 내가 하는 요리는 그저 밥용이다. 대외용 뭐 연인에게 해주는 이벤트 뭐시기 같은 것 아니고. 그냥 밥, 국, 찌개, 밑반찬, 조림, 나물, 볶음 뭐 그런 것들. 이 책에 나오는, 바로 그런 것들이다.

 

 

 

 

도시락을 싼다. 정겨운 말이다. 점심을 먹는다. 끼니를 챙긴다. 식사를 한다. 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전국의 도시락을 취재하다니. 기발하다기보단 우스꽝스러운 기획이다. 페이지를 넘기다보면 역시 소소하기 짝이 없는 기획이라고 웃음이 나온다. 그런데, 그런데도, 이 기획이 오랫동안 이어지고 책으로 엮여져 나온 이유는 충분히 알 것 같다.

 

모든 도시락은 위 사진과 같은 구도다. 도시락의 주인의 전신컷, 그리고 도시락의 풀샷. 더하기 약간의 이야기. 신기하게도 도시락과 사람은 어쩜 그리 잘 어울리는지. 아니 어울리지 않아도 어울리게 되는지. 그 사람이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성격을 가졌는지, 어떤 사람을 곁에 두고 있는지, 희한하게도 도시락만으로 짐작이 된다. 도시락의 주인공들은 육체노동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이 또한 재미있다. 나는, 몸으로 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의 눈빛이 좋았다. 일한만큼의 대가를 기대하는 사람들의 정직함과 일찍 일어나 바지런히 생활하는 고단함과 특유의 끈기와 온기가 좋았다. 이들의 도시락에서는, 사치하지 않는 그러나 전혀 부족함 없는 정도, 라는 것이 느껴져서 그것조차 좋았다.

 

"도시락은 둘이서 먹는 거잖소. 싸주는 사람과 그걸 먹는 사람 둘이서 말이오."

 

사실 그들의 도시락을 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게다. 아니, 도시락이란 게 원래 그렇다. 도시락을 한 번이라도 싸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어떤 것을 싸야하고 어떤 것을 쌀 수 없는지. 기호를 맞추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만들 때'가 아닌 '먹을 때'의 온도를 고민해야 하니 너무 식거나 굳게 되는 건 쌀 수 없고, 먹기 어렵고 손을 묻혀야 하는 것도 적절치 않고, 그러면서도 영양과 조화를 생각해야 한다. 누군가의 도시락을 일 년 여 넘게 싸본 나로선, 이 도시락 하나하나가 얼마나 어렵고 지극한지 알 것 같아 그만 뭉클해진다.

 

아마도 나는 그 뒤의 누군가를 보고 있었던 걸까. 주인공들이 직접 싸왔다는 도시락도 꽤 있지만 역시 타인의 것이 더 많다. 어머니, 아내, 남편. 도시락의 주인이 도시락을 싸는 이유는 여러가지일 수 있다. 영양을 위해서, 맛 때문에, 편의를 위해, 절약 하려고, 이동하는 시간에 먹으려고 등등. 그러나 도시락을 싸준 타인의 이유는 하나다. 그 사람을 생각하기 때문에. 누군가를 지극히 생각하지 않고서야 배려하고 사랑하지 않고서야 도시락의 주인공보다 일찍 혹은 비슷하게 일어나 부지런히 식사를 준비한다는 일은 불가능하다. 취재의 주인공이 몇 명이든 도시락의 주인은 그보다 플러스 알파일 것이다. 나는 취재하지 않은, 저 너머의 있는 도시락을 싸는 사람들의 얼굴이 궁금해졌고 그들에게 감명했다.  

 

 

친구들이 요리를 하는 내가 낯설다고 하는 말은 단순히 이미지 때문만은 아니다. 나는 식사에 큰 의미를 두는 쪽이 아니었고 가끔은 뭔가에 몰두하면 두 끼 정도는 잊어버리기도 한다. 까짓 밥, 하고 생각할 때가 많고 식사 외에는 간식을 거의 먹지 않고 케이크나 빵 등 디저트류도 좋아하지 않아 아마 남들이 보기엔 음식에 대한 욕심이 없는 편으로 비쳐졌을 것이다. 맞는 말이기도 하고 틀린 말이기도 하다. 까짓 밥, 은 진심일 때가 많다. 하지만 내겐, 나만을 위한 요리가 아니지 않았는가. 단지 내가 먹기 위한 것이었다면 아마 그렇게까지 하지 못했을 것이다. 허나 나는 도시락을 싸주고 싶은 사람이 있었고 식사를 챙겨야 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더 맛있는 계란말이를 위해, 더 적절한 도시락 메뉴를 위해, 한 번 더 고민했을 것이고 조금 덜 힘들었을 것이다.

 

요리하는 남자가 로망이라는, 그러나 정작 자신은 밥 하나 제대로 짓지 못하는 친구도 있다. 자신은 요리할 생각이 전혀 없다면서 그러나 남자는 잘 했으면 좋겠다고 당당히 말하는 그녀는 왜 자신은 해볼 생각을 안 할까. 그것 또한 사랑임을 안다면, 그건 받기만 하겠다는걸까. 나는, 남자든 여자든 할아버지 할머니 어른 아이 누가 되든. 요리하는 사람은 멋지다고 생각한다. 부엌에 서서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은 따뜻하다. 그들은 누군가를 생각하며 더 따뜻하고 더 영양있는 한 끼를 위해 애쓰고 있다는 것. 저기 서있는 사람이 여기 있는 나를 위해 바삐 움직이고 있다는 것. 생각만해도 푸근하다.

 

 

 

 

지난번 유치원에 다니는 딸아이 도시락을 싸는 날 있었던 일이에요. 그냥 내 마음을 알아줄까 싶어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계란말이를 하트 모양으로 만들어서 딸 도시락에 넣었어요. 그랬더니 집에 돌아온 딸아이가 “엄마! 도시락에 행복 모양이 들어 있었어요!”라고 말하는 거예요. 그 이후로는 딸아이 도시락에 꼭 하트 모양 계란말이를 넣어주고 있죠.

 

생각해보면 정작 나는 도시락에 대한 추억이 별로 없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쭈욱 급식을 하는 학교로만 진학, 또는 전학했기에. 아, 한 가지 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토요일은 격주로만 급식을 했었다. 몇몇 친구들과 몇 달간 토요일 점심을 싸오기로 했었고 그 때는 대수롭지 않게 엄마에게 말했다. 하하. 집에 있는 걸로만 대충 싸주라니. 그건 친구들을 우루루 데려온 후 우리 먹는 밥에 숟가락만 더 놓으면 되지 않냐는 아빠들 말씀처럼 무심하기 짝이 없지 않은가. 그 때는 뭘 몰라서, 친한 친구들이니까, 끼리끼리 먹는거니까, 정말 그런 마음으로 말했던 것 같다. 부담주기 싫어서, 그러나 나는 자느라 엄마를 도와줄 생각이 없었기에. 엄마도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막상 열면, 나는 늘 말을 잃곤 했다. 엄마는 콩으로 작은 글자를 써주었고 가끔 쪽지를 넣어주시기도 했다. 제육볶음을 하는 날은 대체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작은 상추를 넣어주었고 물티슈와 작은 약병 같은 것에 고추장을 넣었었다. 무겁다며 투덜대는 나를 아랑곳 하지 않고 친구들 것까지 넉넉하게 챙겨주었고 아침에 했을 게 분명한 밑반찬을 쌌었다. 대체 장은 언제보고 음식은 언제했을까. 나는 아침부터 고생한 엄마가 속상해서, 그러나 싹싹하게 대답하지 못하는 내 자신에 화가 났고, 친구들은 하나같이 부러워했다. 엄마도 나도, 사랑한다거나 고맙다거나 하는 말을 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러나 엄마는 도시락을 싸는 것으로, 가끔은 수줍게 하트를 만들어주는 것으로 그 말을 했고 나는 감사하며 맛있게 다 먹고 깨끗하게 씻어가는 것으로 그 대답을 했다. 물론, 친구들이 부러워한다는 말은, 남의 일처럼 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았다(물론 말하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 도시락 안에 모든 것이 담겨있으니까.

 

이 책에도, 이 안의 도시락에도 모든 것이 담겨있다. 그 사람의 인생이, 그 사람에게 도시락을 싸주었을 다른 이의 마음이.

거창한 것을 말하지 않아도 애써 대단한 척 하지 않아도. 막 지은 밥처럼 따끈하고 달다.  

 

 

 

 

 

 

덧) 일본인들은 정말 이렇게 도시락을 쌀까. 굉장히 소박하면서도 가정적이고 생각 외로 가지 수도 많다. 반복되는 몇몇 요리가 흥미롭고,  몇 가지 것들은 컨닝해두었다가 언젠가 만들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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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12-12-03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손수 싸주는 도시락이 이젠 거의 사라지고 있는 현실이 아닌가 싶어요. 아들 놈이 가끔 학교에서 도시락을 싸가곤 하는데 대충 이야기를 들어보니 대부분의 도시락이 "천국"표 김밥으로 이루어진다고 하더라고요. 어쩔 수 없죠. 맞벌이 하는 집안에서 아침에 일어나 도시락을 싼다는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니까요.

Shining 2012-12-04 10:48   좋아요 0 | URL
하하. 제 동생도 그랬어요, 남자애라서 싸준다고 해도 귀찮다고 튀는 것 싫다고 하더군요. 생각해보면 그 말도 엄마 마음에 상처가 되는 것이었을지도요. 저는 잘 가져가서 자랑하고 잘 먹고 오는, 그냥 보통의 딸이었던 것 같습니다(후후). 맞아요, 여간한 애정과 부지런함 없이는 힘들죠ㅠ 그래서 더 정성스럽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뭘 싸도 말이죠 :)

프레이야 2012-12-04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시락의 추억을 불러오는 따스한 리뷰, 샤이닝님 감동이에요. 저도 이책 참 사랑스럽더라구요.^^

Shining 2012-12-04 10:51   좋아요 0 | URL
책을 펼 때만 해도 리뷰 쓸 마음은 없었는데, 읽다보니 아, 이건 써야만 해, 되더라구요. 맞아요, 사랑스러워요, 프레이야님 :) 삶의, 사소한 그러나 웅숭깊은 곳을 떠올리게 하는, 예상보다 훨씬 다정한 책이었습니다^^

oren 2012-12-05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아침 출근길 라디오에서 '들었던' 책을 이렇게 알라딘에서 다시 만나보니 무지 반갑네요. 게다가 라디오에선 볼 수 없었던 도시락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고, Shining님의 추억담을 따라 까마득한 옛날에 우리들의 점심시간을 책임졌던 온갖 '추억의 도시락들'도 다시금 떠올려볼 수 있어서 너무 좋네요.

(제가 출근길에 듣는 방송은 KBS 제1FM의 '출발 FM과 함께'라는 프로인데, 위서현 아나운서의 목소리도 참 좋고, 아침마다 들려주는 '말들의 풍경' 이야기도 언제나 기다려지는 시간들이랍니다. 오늘 아침 '말들의 풍경'에서 고른 주제는 '첫사랑'이었는데, 마침 '첫눈'이라도 금방 내릴 듯한 추운 겨울 아침에 너무 잘 어울리는 내용이더군요. 오늘 방송에서도 들을 수 있었던 투르게네프의 소설 '첫사랑'의 마지막 구절 하나 덧붙이고 갑니다.)

* * *
"내가 소망했던 것들 중에서 과연 무엇이 실현되었는가. 벌써 내 인생에 황혼의 그림자가 밀려오기 시작하는 지금, 한바탕 휘몰아치고 지나간 봄날 아침의 뇌우(雷雨)에 대한 추억보다 더 신선하고 더 소중한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Shining 2012-12-05 11:1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oren님. 저는, 지나치게 집중하는 바람에(웃음) 라디오를 잘 못 듣는데 oren님 말씀을 들으니 중요한 것을 놓치고 사는 것 같아 라디오가 듣고 싶어지네요. 주옥같은 구절까지 덧붙여주시고, 서늘한 겨울아침이 갑자기 따뜻해지는 것 같아요 :) 투르게네프의 첫사랑, 오래전에 읽은 책이라 어쩐지 향수까지 느껴져 괜히 싱숭해집니다_-*

별 기대없이 펼쳤던 책인데 짐작보다 훨씬 좋았고, 예상보다 훨 많은 것들이 떠올랐습니다. 따뜻한 책이었어요, oren님께 추억을 선물해드렸다니 제가 더 기쁘군요 :D

들꽃 2013-01-13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이 따뜻하네요. 어머님이 직접 싸 주신 도시락 얘기가 나오는 구절에서는 뭉클하기까지!

Shining 2013-01-14 12:47   좋아요 0 | URL
쑥스러워서 표현하지 못했고 또 지금도 잘 못하지만 아, 이게 사랑이구나, 라고 도시락이 말하고 있었어요. 거창하게 미사여구를 쓰지 않아도. 이 도시락이 엄마가 딸에게 보내는 사랑, 이라는 마음이 몽글몽글 들었어요. 그 생각이 나서 더 따뜻하고 소담한 책으로 읽혔던 것 같습니다 :)
 
1F/B1 일층, 지하 일층
김중혁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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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글은 그리움으로 시작하고 어떤 글은 경멸로 시작한다. 때로는 추억으로 물들며 가끔은 다짜고짜 비판으로 운을 떼기도 한다. 어떤 것은 무난(함을 가장한 뻔함)하고 어떤 것은 파격적이다. 그 중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도 정하지 못하고 하얀 화면만 보고 있을 때도 있다. 

 

이런 시작은 어떨까. 자신의 게으름을 적당하게 변명할 수 있으면서도 솔직함과 연민에 조금은 더 점수를 얻는 리뷰가 되지 않을까. 아니다, 나는 이 리뷰만큼은, 쿨하게 쓰고 싶었다. 쿨하게, 그래 대체로 이렇게?      

 

김중혁을 좋아한다, 고 말하자. 김중혁의 단편소설들을 좋아한다, 고도 말할 수 있겠다. 그의 글 중, 맨 처음 접한『악기들의 도서관』을 읽었을 때 기분 좋은 흥분이 느껴졌다. 매우 흥미롭거나, 기막히게 잘 쓴(머리가 어질할만큼) 글을 앞에 둘 때만 느낄 수 있는, 감전 된 기타를 만지는 듯한 전율. 단행본 속 그의 글들은 모두 재밌었고 대체로 특이했고 그럼에도 -뜨근하기보단- 따뜻하고 온순해보였다. 단행본의 모든 단편들이 모두 내 맘에 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 마냥, 하나도 빠짐없이 마음에 들었다. 평범하진 않지만 거슬리게 비범하지 않은 감각이. 허구인 걸 알아도 속을 것 같은 능청스러운 설정이. 무심하게 던지는 유머감각이. 기분좋은 고양이처럼 입술을 핥으며 웃게 된다. 이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단편은 「매뉴얼 제너레이션」과 「엇박자 D」인데 얼마 전, 신기하게도 고등학교 동창이 지금 매뉴얼 만드는 회사에 다닌다고 해서 다시 떠올랐다. 그래, 매뉴얼이 필요한 기계를 만드는 사람이 있는만큼 기계에 필요한 매뉴얼을 만드는 사람이 있지, 그걸 알려준 건 김중혁이었지, 라고.     

 

이렇게 시작할까. 뻔하디 뻔해도,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유일하게 거짓말로 의심되는 '매뉴얼 만드는 회사에 다니는 동창'조차 사실이니까, 의외로 논리적인 글이 될 가능성도 있다. 아냐, 논리적인 건 자신이 없다. 나에겐 그런 지력이 없으니까. 그러면 감상적으로 가자(감성, 이 아니다).      

 

책을 읽다 보면 스승으로 삼고 싶은 사람을 만나고, 연인이었으면 하는 이를 발견하고, 가끔은 가족이 되주길 원하는 이들도 만난다. 김중혁은, 김중혁의 인물들은, 김중혁의 글들은, 친구였으면 좋겠다. 쓸모없는 것들만 만드는 발명가와 상상력의 틀을 깨는 해커와 그것도 재주다 싶게 엇박자로 노래를 부르는 D와 같은 인물들과 즐거운 술자리를 벌이고 싶다.    

 

라고 운을 떼볼까. 나쁘지 않다. 하지만 나는 이런 시작을 하고 싶었다.    

 

이맘 때 가을 하늘은 아득하게 예뻐서, 정말 예쁘다는 말 외엔 할 수 없게 예뻐서 목을 빼고 길을 걷는다. 가로수에 부딪히기 직전까지, 목이 아슬아슬 아플때까지 오래오래 보며 걷는다. 그러다 눈을 거두면 어쩐지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계획으로 하는 삶은 허무주의자가 될 수 있고, 희망으로 하는 삶은 절망을 일으키기 쉽다는 것. 해가 점점 짧아지고 있다는 것. 밤은 반드시 두려움의 시간은 아니기에 반드시 두려움이 길어지지 않을거라고 믿는 것. 두콩이(자전거의 이름)를 깨끗이 해야겠다는 것. 그리고, 단편소설을 쓰고 싶다는 것을 기억해낸다.   

 

그래, 이 시작이 좋겠다. 자, 이제 걸어보자.  

 

백일장에는 몇몇 제재와 산문과 시의 선택지가 있었지만 나는 늘 산문이었다. 시를 택하는 아이들 중 많은 수가 좀 더 짧다는 이유로, 그저 그 자리를 어서 벗어나기 위한 꼼수로 택했다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시를 선택할 수는 없었다. 시(詩)라는 말에 대한 외경심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 짧은 말 안에 내 뜻을 담는 법을 몰랐다. 나노처럼 집적된 작고도 명징한 세계, 로 보이는 시의 견고함을 나는 결코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나는 보통의 친구들보다 늘 많은 페이지를 썼고 아이들은 내가 재능이 있거나 글에 능숙한 사람인 줄 알고 감탄했다. 부끄러웠다. 대학생이 된 후도 페이퍼의 페이지를 채우지 못해 절절매는 아이들은 똑같은 시선으로 나를 바라봤다. 더 부끄러웠다. 그저 나는 짧게 쓰는 법을 몰랐을 뿐이다. 이렇게 말하면 저렇게 해석될 것 같고, 저렇게 쓰면 이렇게 보여질 것이 두려웠다. 더 많은 것을 더 오래 더 자세히 말하고 싶었을 뿐, 재능이나 능숙함과는 일절의 관계가 없었다. 부끄럽고 슬펐다. 

 

시를 쓸 수 없었다. 소설 또한 요원했다. 하지만 가끔 단편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는 걸 떠올린다. 소설을 쓴다는 건 얼마나 멋진 일인가, 기억해낸다.

 

  

나는 곧잘 김중혁 작가를 '백수 삼촌' 같다고 생각해왔다. 아니면 오타쿠 삼촌, 까치머리 삼촌, 나랑 제일 친한 삼촌. 어쨌든 삼촌, 아저씨라기엔 그는 너무 가깝고 오빠보다는 좀 더 어리광을 부려도 될 것 같았다. 실상은 할 줄 아는 게 많은데도, 같이 있으면 무용한 이야기만 하고 내내 낄낄거리는데 그 시간이 누구보다 좋은, 그런 삼촌. 이 삼촌은 비트에도 뛰어나고 레고도 잘 만들고 게임도 썩 잘 만든다. 내가 엉뚱한 소리를 해도 다른 어른들처럼 꿀밤을 먹이긴커녕 나보다 더 엉뚱한 이야기를 하고, 그래서 가끔은 내가 덜 한심한 것 같다고 위안이 되기도 한다. 엄마가 없을 때 해주는 밥은 때론 엄마보다 맛있고, 각종 매뉴얼을 신문처럼 읽고 모으며, 화음같기도 하고 소음같기도 한 악기들의 소리를 모은 테이프를 가지고 있고, 낙서를 잘(자주, 와 잘, 모두)하고 유리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가 하면 데이비드 카퍼필드를 멋지다고 생각하는 삼촌.

 

객관적으로 이 삼촌은 꽤 멋지고 대단하다. 다양한 이력과 현재진행형의 경력. 그것 모두를 한 시대에 한 사람이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 실은 어마어마한 재능을 가진 사람일수도 있다. 그런데도 희한하게. 그의 글을 마주하면 그냥 뭐 이만하면 됐지 싶은 생각이 든다. 나 자신이 그리 나쁘지 않은, 썩 괜찮을지도 모르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게 만든다. 그렇다고,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차라리 내가 얼마나 평범하고 진부하고 자주 찌질한지를 느끼게 하는데. 그런데도, 그냥 이렇게 살아가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닐 거라고, 그래 뭐 뭐라도 되겠지, 뭐라도 안 되면 또 어때, 라고. 그건 그의 글이 가진, 공기가 호흡이 마음이 태도가, 바로 '이런 삼촌' 같은 데에 있다고 믿는다.

 

그의 매력은 특히, 단편에서 더 빛을 발한다. '대단해'나 '어떻게 이런 생각을' 파는 아니다. 그보단 '귀여워!'와 '느물느물 능글능글 현실그리기'라고 정의 내려볼까. 그의 글은 무심하고 영민하다. 예민하면서도 즐겁다. 따뜻한데 그 따뜻함을 쑥스러워한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사람이 활동하기에 최적의 온도는 영상 18~20도인데 김중혁의 글은 딱 19도, 라고 말한 적이 있다. 역시, 신형철 씨는 최고. 내가 하려던 말이 그거랑게.

 

 

세 번째 소설집인 이번 소설도 비슷하다. 천연덕스럽고 온유하고 일견 무심하다. 그리고 약간 더 그로테스크하다. 자살하는 유리라니, 멜랑콜리하구나. 때묻은 연애 이야기가 갑자기 괴수의 전설로 변하는 건 어떻고? 스케이트 보드의 이야기는 영화 <파라노이드 파크>가 떠오르게 한다. 아, 이 매력적인 글. 하물며 매력적인 작가. 그 중에서도 「크랴샤」는 꼭 짚고 넘어가야겠다.

 

그러나 나는 분명히 안다. 소멸된 것들은 되살아날 수 없다. 그리고 찢어진 것들은 절대 다시 붙지 않는다. 나는 삶과 마술을 때때로 바꾸고 싶어진다. 화장지가 붙는 대신 어머니가 되살아나는 장면을, 스카프가 비둘기로 변하는 대신 돈으로 변하는 장면을, 꿈꾼다. 그러나 그렇게 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안다.

 

나도 가끔 환각을 본다. 쉰이 넘은 다음 급격히 나빠진 시력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있었다가 없어진 것들이 보일 때가 있다. 어머니가 문득 나타날 때도 있다. 말을 걸 뻔한 적도 있다. 어머니, 어쩐 일이세요? 말이 목에 걸렸다가 다시 들어간다. 운전하다가 문득 강을 쳐다보는데 사라진 다리가 눈에 나타나기도 한다. 운조빌딩을 지나갈 때도 그랬다. 그 자리에는 이미 거대한 쇼핑몰이 들어섰는데, 내게는 가끔 운조빌딩이 보인다. 바깥으로 툭 튀어나온 책상 같던 운조빌딩이 나타난다. 고개를 젓고 눈을 깜빡여본다. 환각은 금방 사라진다. 동그란 가로등 불빛이 수십 개 눈앞에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눈이 침침하다. 도시는 절대 낡지 않는다. 나만 낡아갈 뿐이다.   - 김중혁, 크랴샤

 

가장 낮은 곳, 혹은 진실에 접근하는 곳은 명징하게 대하기 어려운 것처럼 제일 좋아하는 것에 이유를 대기란 쉽지 않다. 「크랴샤」의 쓸쓸한 전조가, 마술과 현실을 상응시키는 대구가, 마술처럼 현실은 결코 녹록지 않다는 것을 말하는 어조가, 소멸된 것들을 되살아날 수 없다는 단순하지만 확실한 진심이, 좋았던 것 중의 하나라고만 말해야겠다. 짧고도 명확하고, 그런데도 정서와 유머와 진심이 모두 담긴, 이 글이 무척이나 좋다.  

 

 

단편소설을 쓰고 싶었다. 레이먼드 카버나 피츠제럴드, 김애란 덕분에. 적은 양이라면 비교적 도전하기 쉽지 않을까 싶은 치졸한 비겁함 때문에. 소재의 문제, 라고 결론 짓거나 얼마간은 호흡으로 인해. 그 모든 것은 그럭저럭한 이유였지만 결정적이진 않았다. 결정적인건, 소거의 문제였다. 단편소설을 쓸 때는 어떤 문장을 제하고 어떤 논리를 빼고 얼마나 짧게 그러나 효과적으로 쓸까(소재,와 호흡, 도 여기에 포함될 것이다) 고민할 것이다(물론 장편이라고 그렇지 않다는 것은 아니나 단편소설은 물리적 제약이 있으니 더 크리라 짐작한다). 그렇다면 남기는 것보다 버리는 것이 훨씬 많을 것이고, 핵심 또한 남기는 쪽이 아니라 버리는 쪽이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남기는 것보다 버리는 것에 더 인색하지 않았을까. 그렇기 때문에 모든 글은 길고 흐물거리는 변명이 되지 않았을까. 시(詩)에 대한 외경심의 근원 또한 그것이었겠지. 김중혁의 소설을 읽을 때는 -잊을 줄 알았던-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과 -잃을 줄 알았던- 단편소설에 대한 가파른 열망이 함께 펄럭거린다. 

 

길게 하고 싶었다. 문장도 호흡도 단어도. 그래야 조금 더 설명, 아니지 방어, 냉정하게 변명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는 깎아내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 소멸된 것들은 살아날 수 없고, 깎아내린 것은 붙을 수 없는 이 도시생활에서. 더이상 소멸되고 깎아낼 것이 없어질 때까지. 

 

 

  

   

 

 

 

 

덧) 멋진 글을 쓰고 싶다고 아주 가끔씩 큰 맘을 먹는다. 하지만 그 결심은 대개 평소(평소가 어느만큼이냐 물으면 할 말은 없지만)보다도 훨씬 이상한 글이 되버리고 만다. 필연적인 것처럼. 이 리뷰는 위와 같은 생각으로 썼다 지웠다만 반복하다, 그대로 옮겨본다. 정해진 건 제목 뿐. 처음부터 <판타스틱 c1+y 라이프>였다. '나는 이 속된 도시가 좋다. 여기에서 살아갈 것이다' 라는 작가의 말이 이 책의, 그리고 그의 모든 글의 핵심이자 소재라고 생각했기에. 그 덕분에 도시도 재밌는 곳, 이라고 생각하게 됐기에. 그런데 저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시작을 했습니다, 라며 쓰다보니 영 제목과 동떨어져 눈물을 머금고 바꿨다.

 

하하. 리뷰도 못 쓰는 사람이 무슨 단편소설일까.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글은 절대 쇠퇴하지 않는다. 나만 겁을 먹고 있을 뿐이다(또는 형편없어질 뿐이다, 한심해질 뿐이다 등등으로 변용이 가능하다). 하긴 긴 사족으로 변명하는 것에 일단 기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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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24 16: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0-25 11: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0-25 15: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0-27 20: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맥거핀 2012-10-26 1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동진 씨 팟캐스트에서 요즘 나오시는데, 목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어요. 예상한 것보다 너무 목소리가 굵어서..소설도 소설이고, 여러가지 잡글도 아주 재미있게 잘 쓰시더군요. 맞아요. 여러가지 필요 이상의 것들을 많이 알고 있지만, 실생활(아..'실생활'이라니)에 도움되는 것은 별로 모르는 듯한 이미지.

Shining 2012-10-27 20:38   좋아요 0 | URL
엇, 저도 빨간책방 듣습니다. 전 이동진 씨 말하는 것 듣고 놀랐는데_-; 라디오도 안 들어서; 말씀 하는 걸 처음 들었는데 오우 말씀도 잘 하시던걸요. 김중혁 씨도 어눌한데 결정적인 단어 사용이나 표현력에 있어선, 역시 작가구나 싶더라구요. 들으면서 걷다가 가끔 혼자 막 웃어서 지나가던 사람이 쳐다보면 민망하고 그러대요_-; 팟캐스트, 혹시 다른 거 권해주실 만한 거 있나요? +_+

맥거핀 2012-10-27 23:12   좋아요 0 | URL
제가 듣고 있는 것은 이미 거의 듣고 계실 것 같은데요?^^(김영하 씨 방송도 그렇고..) 저는 주로 듣는게 이거하고, 영화음악 방송 밖에는 없어요. 정은임 씨 예전방송 모아놓은 팟캐스트도 잘 때 주로 듣구요. 아..한동안 정엽 씨가 진행하는 라디오 방송을 주기적으로 듣기는 했죠. 지금은 없어졌지만, 예전에는 매주 여배우들을 한 명 씩 초대해서 이야기를 듣는 코너가 있었거든요.

Shining 2012-10-27 23:46   좋아요 0 | URL
헛, 전 팟캐스트도 이것 밖에 안 듣는걸요^^; 빨간책방, 은 이동진 씨 블로그에서 소식을 읽은데다 첫 책이 <고래>와 <7년의 밤>이라 듣기 시작했거든요.

김영하 방송은, 소문은(?) 익히 들었는데 구태여 찾아 듣게 되진 않아서요; 사실 책 읽어주는 걸 그다지 좋아하질 않는달까, 집중을 못 하거나 너무 집중해서; EBS 책 읽어주는 라디오, 는 가끔 멍 때릴 때 틀어두긴 하지만요_- 라디오도, 성시경 씨가 푸른밤 할 때 듣고는... 아, 전 정말 비문명인이군요_-

이진 2012-10-27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우, 이 책도 좋아요. 여름방학 전에 학교에 주구장창 들고 다니며 읽었던 책이어요.
제목이 '바질' 이었나요, 그 단편도 좋았고 제일 처음 있던 단편도 좋았어요.
첫 단편(스케이트 보드 어쩌고 하는 거였죠, 아마) 읽으면서 상당히 재치있는 작가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저도 빨간책방 듣다보니 김중혁 작가, 음 뭐랄까, 너무 가벼운 사람이 되어버린 듯해요. 하도 실없는 농담을 하니까 ㅋㅋ

Shining 2012-10-28 00:00   좋아요 0 | URL
바질,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더군요ㅎㅎ 전 크랴샤, 가 최고였어요. 악기들의 도서관에서 매뉴얼 제너레이션 이후로 가장 좋았어요 :) 귀여운 사람 같아요, 김 작가님ㅋ 유쾌하고 재밌고, 뭔가 친구 되고 싶은 느낌ㅎㅎ
 
백의 그림자 - 2010년 제43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민음 경장편 4
황정은 지음 / 민음사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꿈을 꿨습니다. 나는 길을 잃었지요. 어두캄캄하고 부연 안개가 낀 숲이었습니다. 숲이 나오는 거의 모든 동화, 거의 모든 동화에 나오는 무서운 숲이 떠올랐습니다. 나는 약간 무서웠습니다. 부엉이가 눈을 빛내고 온갖 벌레들이 내게 귀 기울이며 울고 있었습니다. 공기마저 나를 주목하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으니까요. 부스럭, 하는 소리에 나는 주먹을 꽉 쥐었습니다. 나타난 건 당신이었지요. 나는 깜빡 울 뻔 했답니다. 당신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손을 내밀었고 나는 아무렇게나 그 손을 부여잡았지요. 우리는 사이좋은 그러나 겁먹은 남매처럼, 마치 헨젤과 그레텔처럼 그 길을 조금씩 헤쳐 나왔습니다. 당신은 말이 없고 조금 떨고 있었지만 손은 따뜻했습니다. 내 손이 너무 차다는 것이 깨달을 만큼, 그것이 거의 부끄럽게 느껴질 정도로 따뜻한 손이었습니다. 이 곳은 어디입니까. 나는 어떻게 이 숲에 나타났지요. 어째서 당신은 숲 속에 있었을까요. 왜 당신은 숲에서 나가는 길을 알고 있나요. 내가 오기 전부터, 혹 얼마나 오랜 시간 여기 있었나요. 우리는 숲을 나갈 수 있을까요. 나간 다음에도 내 손을 잡아 줄건가요. 나는 묻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어느 순간 혼자 현실에 남았더군요. 사실 내가 정말 묻고 싶은 질문은 단 하나였습니다.

 

당신은 지금도 그 숲에 남아 있나요.

 

 

안개가 고인 밤이었다. 사오 미터 간격으로 가로등이 박혀 있어 상당히 어둡지는 않았다. 가로등은 길쭉하게 위로 솟아 있었는데 윗부분에 조그만 삿갓을 쓰고 있어 어찌 보면 버섯 같기도 하고 달리 보면 파수를 서고 있는 무사처럼 보이기도 했다. 잔디에 달라붙은 안개가 가로등 불빛을 받고 반짝거렸다. 나는 안개를 먹고 숨이 조금 갑갑했다.

 

 

며칠 전 한 권의 소설을 읽었습니다. 170쪽이 되는 장편이라 부르기도 뭐하고 단편이라기엔 조금 긴 -사람들은 이걸 경장편이라고 부른다네요- 소설이었지요. 소설 속 인물들 - 은교 씨, 와 무재 씨, 라고 하는 사람들이지요- 도 첫 장면에서 길을 잃습니다. 나는 그 꿈을 떠올렸습니다. 그 때 우리도 그림자가 일어섰던가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나는 그 책의, 무재 씨와 은교 씨가 몹시 좋습니다. 아마 당신도 그렇겠지요. 여 씨 아저씨와 유곤 씨와 오무사 할아버지와 그들이 만지는 알전구와 퓨즈까지도 몹시 좋습니다. 당신도 그럴 것입니다.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합니다. 부모님의 지원을 받으며 학점을 관리하고 스펙을 쌓은 학생과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겨우 학비를 벌고 생계를 유지하는 학생이 경쟁을 한다는 것은 애초 말이 되는 일일까, 하고요. 두 학생이 면접을 보러 왔을 때, 당신의 학점이 떨어지는 건 스펙이 없는 건 당신 개인의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는걸까요. 3만원 짜리 주사와 8만원 짜리 주사 중 아이에게 어떤 걸 맞히겠냐고 묻는 사회가 정말 공정한 것일까요. 두 아이가 같은 곳에서 시작한다고, 정말 그렇게 말할 수 있나요. 단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아 기르는, 생물학적으로 지극히 당연한 본능에 따르게 되는 상황에서 필연적으로 빚을 안게 되는 것이, 정말로 개인의 낭비때문인가요. 단지 누군가가 좀 더 열심히 노력하고 오래 참는다면 그 사람과 내가 같아질 수 있는, 정말 그런 곳에서 내가 살고 있는 걸까요. 애시당초 이 사회에 살아감에 있어 평등이란 말이 가당키나 한 건지 가끔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그리고 그 때마다 무재 씨와 은교 씨와 가,나,다,라,마 동에서 일하는 모든 인물들이 생각이 날 것 같습니다. 숨이 작고 연약한 것들의 고운 냄새를 맡고 싶어질 것 같아요.

 

참으로 신기합니다. 어떤 것 하나 공정할 수 없는 세상인데 사랑은 참 흔한 것 같더군요. 사랑이라는 말이 세상 도처에 널려 있어서 가끔 나는 길을 가다 사랑을 줍습니다. 참으로 여기저기 떨어져있지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똑같은 차림을 한 바로 앞 커플이 떨어트린걸까요. 아니면 커피숍 안에서 손을 맞잡고 웃는 저 남녀가 흘리고 들어간걸까요. 길거리에서 뽀뽀를 하는, 짧은 치마를 입은 여자친구의 허리에 손을 얹은 남자일까요, 남자친구 무릎 위에 앉은 벤치의 여자일까요. 아니에요, 나는 그들을 행동을 폄하하거나 그 말들을 부정하려는 게 아니랍니다. 그저, 그렇게 사랑이란 말이, 사랑이라는 표현이 사방에 있다는 게 다만 신기할 따름이죠. 

 

나는 사랑에 대해 잘 모르겠습니다. 어느 날은 모든 걸 안다고 생각하지만 또 어느 날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날은 알 것 같기도 하지만 또 어떤 날은 알다가도 모른다고 결론 내립니다. 나는 잘 알고 또 모릅니다. 아무거나 알거나 몇몇 것을 모르지요. 내가 알 수 있는 건 이런 것들입니다. 

 

 

은교 씨는 갈비탕 좋아하나요.

좋아해요.

나는 냉면을 좋아합니다.

그런가요.

또 무엇을 좋아하나요.

이것저것 좋아하는데요.

어떤 것이요.

그냥 이것저것을.

나는 쇄골이 반듯한 사람이 좋습니다.

그렇군요.

좋아합니다.

쇄골을요?

은교 씨를요.

......나는 쇄골이 하나도 반듯하지 않은데요.

반듯하지 않아도 좋으니까 좋은 거지요.

그렇게 되나요.

 

쇄골이 반듯한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 쇄골이 반듯하지 않아도 좋으니까 좋다고 말하는 게 그것일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거기도 정전인가요?

네.

어두워요, 여기도, 라고 해 놓고 한동안 말이 없었다.

은교 씨, 하고 무재 씨가 말했다.

왜 울어요.

안 우는데요.

우는데요.

내버려 두세요.

무서워요?

네.

바보 같아요.

바보 아닌데요.

바보예요, 라고 말하고 무재 씨는 한숨을 쉬었다.

무재 씨, 하고 내가 말했다.

네, 하고 무재 씨가 말했다.

끊지 마요.

안 끊어요.

바보라고 해도 좋으니 끊지 마요, 라고 말해 놓고 무재 씨 쪽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정전이 된 순간 겁 먹고 있을 상대에게 전화를 하는 것이 그것일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겁 먹은 상대방에게 바보라고 단언하며 한숨을 쉬는 마음이 그것일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바보라고 해도 좋으니 전화를 끊지 말라는 안도와 절박이 그것일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배드민턴이라도 할까요?

네.

언젠가, 라는 의미로 대답햇는데, 무재 씨가 왔다.

나는 요즘 잠이 오지 않아요, 운동을 하면 어떨까요, 운동을 하면 잠이 올까요, 오던데요, 그러면, 하고 전화로 대화를 나눈 뒤였다. 지금 갑니다, 라는 말을 듣고 어리둥절해져서 전화를 끊고 시계를 보니 밤 아홉 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진심일까, 싶었는데 그로부터 삼십 분이 지난 뒤에 무재 씨가 수통과 배드민턴 채를 챙겨서, 자전거를 타고 왔다.

배드민턴 합시다.

 

잠이 안 온다며 배드민턴을 하자며 달려온 이에게 그 다음 날, 어제는 잘 잤냐요? 라고 묻는 것이 그것일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무재 씨, 우리가 그걸 전부 먹나요?

전부 먹죠.

와.

좋아요?

네.

좋다니까 좋네요.

나도 좋아요.

이런 대화를 나누며 도(道) 경계를 넘었다.

 

당신이 좋으니까 나도 좋다는, 그 명징함이 그것일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그림자 같은 건 따라가지 마세요. 라고 말하는 것이 그것일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이참에 어두워지자고 생각하는 이에게 전화를 걸어주는 것이 그것일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차피, 차피, 라고 자신을 덮치는 그림자를 떨친 이야기를 듣고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 그것일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따끈하고 개운한 것을 먹고 싶어하는 상대방을 위해 차를 모는 것이, 그것일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얼마 전 반가울 정도로 오랜만에 감기에 걸렸습니다. 고열로 달뜬 상태에서 나는 밍그적거리며 상자 하나를 찾아냈습니다. 그 속에는 색색깔의 재질별로 무늬별로 다양한 머플러들이 있었죠. 목을 내놓고 다니는 게 못마땅하다며 제가 하고 온 머플러를 강제적으로 둘러주던 당신이었습니다. 당신은 하고 왔고 나는 하고 갔습니다. 몇몇 것은 돌려줬지만 그때 그때 돌려주지 못한 것들이 모여 이렇게 됐습니다. 신기하죠, 당신에겐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던 색깔이 있었습니다. 나에겐 샘나도록 잘 어울린다며 자뭇 흐뭇하게 웃던 당신이었는데. 이상합니다, 왜 당신이 아니라 내게 어울리는 겁니까. 내게 둘러주기 위해 사준 것이 아닌데 말입니다. 이상합니다. 왜 내가 좋아하던 문양이 있을까요. 이건 내가 당신께 빌린 것들인데 말이죠. 그러고보니 이상합니다. 당신은 목감기에 잘 걸리지 않았는데, 머플러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어느새 이렇게 많이 사서 내게 매주었을까요.

 

어쩌면 이것이 그것, 일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네, 제가 아는 건 고작 이런 것들입니다.

     

목덜미를 당기는 듯한 어둠을 등지고 무재 씨 쪽으로 걸어갔다. 손을 잡아 보자 손이라기보다는 무언가의 뼈를 잡은 것처럼 메마르고 차가웠다. 그렇더라도 이것은 무재 씨의 뼈, 라고 생각하며 간절하게 잡고 있었다.

  

괜찮습니다. 당신이 얼마나 오래 혹은 멀리 그 숲에 있었다 한들 내가 찾아갈게요. 그림자가 일어서더라도 따라가지 않도록 조심하면 되는 거에요, 라고 말해줄게요. 따뜻하게 손을 데워갈까요. 아닙니다. 비록 따뜻한 손이 아니라면 또 어떻겠습니까. 내가 당신 옆에서, 그림자를 따라가지 않도록 손을 잡아줄텐데요, 당신이 내게 그랬듯 말입니다. 머플러를 준비하겠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내가 표현할 수 있는 건 겨우 이런 행동들 뿐이니까요. 그리고 당신께 이 책을 선물할게요. 그것이 이 책이 끝끝내 말로는 하지 않았던 그것, 당신이 내게 보였던 것이 그것, 일거라 나는 감히 확신합니다.

 

이런 행동이 내가 할 수 있는, 내가 느낄 수 있는 사랑입니다.

 

  

 

 

 

 

 

 

덧) 낭비된 언어 없이 폼폼 솟는 사랑을 증명하는, 연약하고 아픈 것들을 곱게 돌아보는, 작가의 마음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누군가의 숲으로 기꺼이 뛰어드는 것, 같이 길을 잃을지언정 그가 혼자서 그림자를 따라가게 하지 않는 것이 사랑 아닐까. 그렇다면 누군가에게 둘러 줄 머플러를 고르는 것도 사랑이 아니었을까. 만약 내가 누군가에게 아무 말 없이 그 마음을 고백해야 한다면 이 책을 선물하는 걸로 하고 싶다. 열 권쯤 책을 쟁여놓고 하나씩 주고 싶다. 그렇다면 세상에 내 사랑의 목적은 열 곳은 된다는 말. 어둡고 좁은, 불공평한 세상에서 잘도 살았구나. 부끄럽고 대견하다.  

 

이 책을 내게 선물함으로써 -본의 아니게- 사랑을 고백하게 된 그 분께 어설픈 리뷰로 윙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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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23 01: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0-24 13: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2-10-23 0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마음이... 따뜻해졌어요.

Shining 2012-10-24 13:07   좋아요 0 | URL
수다쟁이님 마음이 따뜻해졌다니 제 마음도 따끈해지는 것 같아요^^
이 책은 정말 언제나 고요하게 타는 벽난로같아요. 사랑스럽고 몽글하고 귀엽고.
아, 정말 좋아요.

맥거핀 2012-10-23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자체가 하나의 소설이라고 해도 좋을 리뷰군요. 소설이 조용히 녹아들어가 있는 글이라서 좋습니다. 몇년전 읽었던 황정은의 소설을 다시 꺼내봐야겠습니다.

Shining 2012-10-24 13:10   좋아요 0 | URL
희랍어 시간, 리뷰처럼 개인적인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었던 책이었어요.
이 뒤에 출간 된 파씨의 입문, 은 약간 난해하고 호불호가 나뉠 수 있는데 이 책만은
거의 모두에게 최선이 아닐까 싶어요. 한글로 쓴 책에서 최고 중 하나라고 감히 말해봅니다.

아이리시스 2012-10-24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글로 쓴 책에서 최고.............인데 아직도 안 읽은 1인......
(아..나는 진짜 댓글학원 다녀야 해..)

Shining 2012-10-25 11:13   좋아요 0 | URL
제가 좋다고좋다고 막 설레발 쳐서 읽는게 더 미뤄진거 아니에요? 왜 그런거 있잖아요^^;(걱정걱정..)
댓글학원은 뭡니까? 음, 댓글 잘 쓰도록 가르치는 학원?(아이님은 댓글도 글만큼 잘 쓰시니까 그럴리 없을테고) 댓글만 다는 학원?(아이님은 댓글도 글만큼 많이 읽으니까 그럴수 있을지도) 궁금해요! 좋은데면 같이 다녀요ㅎㅎ

티티카카 2012-10-24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샤이닝님의 이런 섬세함이 정말 좋아요.

Shining 2012-10-25 11:15   좋아요 0 | URL
티티카카님 저를 너무 과대평가 하시는군요, 하하^^ 섬세함이라고 쓰고 감상적, 이라고 읽어주세요ㅋ
이 책, 세 번째 읽었는데 읽을 때마다, 아니 읽을수록 좋아요.

이진 2012-10-27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샤이닝님, 저 이 책 읽고 있어요. 읽다가 너무너무너무너무(쓰지 못하는 수식어지만 이 단어 밖에 표현할 길이 없네요) 좋아서 방을 뒹굴었어요. 어쩌면 저런 글을 쓸까. 놀랍기도 하고, 따뜻하고. 하여튼 책 읽다가 며칠 전에 샤이닝님 리뷰를 본 기억이 나서 다시 들렀어요. 그 땐 제목만 보고는 껐는데, 좋아요 ㅠㅠㅠㅠㅠㅠㅠㅠ

Shining 2012-10-27 23:43   좋아요 0 | URL
이진님, 완전 오랜만! 잊어버리겠어요ㅠ

이 책 정말 좋죠? 진짜, 한글로 쓰여진 글 중의 베스트...라는 헌사가 아깝지 않아요ㅠ
신형철 님(님이래ㅋ)의 글까지. 오오오오오오. 펄펙트-_-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