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복은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 - 인형에서 여성, 여성에서 사람으로 여성복 기본값 재설정 프로젝트
김수정 지음 / 시공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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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유니섹스 스타일을 좋아했다. 프릴이나 레이스는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애였을 때를 제외하곤 접한 적이 없고 고등학교 졸업 후 치마도 입은 적이 없다. n년 전부터는 청바지도 입지 않는다. 하지만 동시에 키도 크지 않고 골격도 작아서 좀 더 귀엽게 입어봐라, 치마를 입어라, 다른 스타일로 입어봐라 하는 충고 아닌 간섭을 들어왔다. 그렇다고 뭔가, 힙스터의 스타일을 추구하거나 의도적인 탈코르셋을 지향한 것도 아니다. 그저 허리가 들어가지 않고 하늘하늘하지 않은 샴브레이 셔츠나 명도 높고 채도 낮은 네이비 버튼다운 셔츠가 입고 싶었고 헨리넥 스타일이나 로만칼라에 골반까지만 닿는 라이더재킷, 팔이 가오리가 되지 않고 허리를 묶지 않은 맥코트나 괜찮은 슬랙스, 카센터 하는 삼촌 것을 빌려 입은 것 같지 않은 야상재킷을 원했을 뿐이다. 대개 내가 원하는 옷들은 남성복에는 분명 있었지만 키와 어깨너비 때문에 그래 이건데 싶어도 막상 입을 수는 없었다. 옷을 좋아하지만 정작 의류가 많지 않은 건 이렇듯 원하는게 구체적인데다 여성복에는 거의 없는 타입을 원해서였다. 어릴 땐 그래서 스스로가 까다롭다고 여겼고 그 다음엔 키가 작아서, 아니면 '여성적인' 스타일을 원하지 않았기에 혹은 골반과 엉덩이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다음엔 돈이 충분히 많지 않아서라고 믿었다. 다시 말해 어떤 식이든 나에게 문제가 있다고 여겼다.

  

소셜미디어는 무수한 단점을 갖고 있지만 여론을 정립하기 좋다는 점에서 탁월하다. 최근 몇 년 간 소셜미디어에서 많은 여성들이 여성복에 대한(더불어 생리, PMS, 탐폰과 생리컵 등)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자 그제서야 문제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예컨대 다수의 여성들이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왜 상의는 이렇게 푸대자루 아니면 강아지옷 같은 사이즈인지. 비싼 브랜드에서 구매를 하더라도 왜 이렇게 구김이 많은지(나는 여전히 린넨의 단점을 상쇄할 장점을 찾지 못했다). 여성 바지는 주머니가 없는지. 분명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언제부턴가 바지 벨트의 구멍조차 사라졌는지. 속옷은 삼각만 입어야하고 시중에 나온 대다수는 미디와 맥시는 없이 미니에만 집중해있는지 등등. 키가 큰 여성들은 남성 라인에서 차선을 택하고 키가 작은 여성들은 아동 라인의 가장 큰 사이즈를 입는 이 아니러니는 분명 정상적인 일은 아닐텐데. 

 

몇 년 전부터는 그나마 사각트렁크 속옷이나 논와이어 브래지어, 브라렛 등등이 나오기 시작했고 치마와 스키니 라인이 전반적인 유행에서 멀어지고 비키니와 모노키니 대신 래쉬가드가 대세가 되고 애슬레져가 자리를 잡긴 했지만 여성들의 의문과 비판(그리고 분노)은 아직 사그러들지 않았다. 단추, 여밈, 주머니, 아니 단순한 봉제부터 여성복과 남성복 차이는 그대로인데 여전히 가격도 훨씬 비쌌으며 사이즈 역시 '프리사이즈'로 퉁치는 의류산업은 크게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반적인 의류계의 변화나 개혁이 아니라 유행이 바뀌거나 혹은 발 빠르고 눈치 빠른 사업가들이 새로운 사업을 하는 식 밖에는 되지 않았다. 

 

퓨즈서울의 대표(본인이 책에서부터 자신의 브랜드 이름을 밝히길래 나 역시 쓰지만 광고 아니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 퓨즈서울이라는 브랜드가 있는 줄도 몰랐고 읽고 난 지금도 구매한 적 없다) 김수정은 <여성복은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에서 이러한 점을 지적하고 나아가 구조적인 면에서 비판을 한다. 자신 또한 어떻게 한계를 느꼈는지, 직접 발로 뛰고 공장에 샘플을 보내면서 어떤 식의 거절을 당하고 왜 마음대로 옷을 만드는게 쉽지 않았는지 그렇게 공들여 만들었지만 왜 가격은 여전히 -같은 공정을 거친 남성복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싼지 등등. 

 

사실 수요자의 입장에서의 불편은 이미 인식하고 있고 들어온 적 있기에 그렇게까지 놀라운 일은 아니었지만 공정과 공장 자체가 이렇게까지 다르고 그럼에도 가격 또한 구조적으로 '여성복이라서' 더 비싸게 받는다는 말은 어이 없는 감정을 넘어 허탈하기까지 하다. 말마따나 소재에 성별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럼에도 이런 책을 쓰기로 결심했고(저자는 온라인에서의 조각 글은 뜻이 와해될 수 있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기 어려워서 책을 썼다고 밝혔다) 그 책을 출판했고 누군가가 읽고 있다는게 새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류업계는 여전히 멀고 멀었지만 소비자가 바뀌었고 (최소한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소비자를 잡기 위해 판매자가 변한다면 그래도 기대해 볼 만하지 않을까, 허무와 분노 대신 희망을 품어본다. 

 

  



 남성복은 100년 전과 비교했을 때 획기적으로 발전했을까남성복 역시 거의 발전이 없다유행에 따라 조금씩 바뀌는 디테일들을 제외하면 전체적인 실루엣은 똑같다여전히 남성복은 여밈이 앞단추로 나와 있고불편한 라인들이 없고실용성에 초점을 맞춘 옷들이 많다남성복의 기본을 이루는 수트는 품에 여유가 있고 무채색 계열이 많다 보니 옷에 맞춰 체중을 무리하게 조절하거나 여러 벌 살 필요가 없다수트는 애초에 남성들의 사치를 줄이기 위해 탄생한 옷으로착용자는 넥타이 몇 개만 사서 돌려 입으면 단벌 신사'로 불리며 검소한 이미지까지 얻을 수 있다내가 퓨즈서울을 런칭하며 수트에 집착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우리에겐 단벌 숙녀'라는 단어가 너무나 생소하듯단벌이어도 충분한 여성복이 없기 때문이다. 

 

이 굴레를 깨고자 품이 넉넉해서 편안하고주머니가 많아 기능적인 '여성을 위한 옷'을 공장에 제작 의뢰했다공장은 내 의도를 이해한 듯 보였으나 여타 여성복과 다를 바 없는 결과물을 내놓았다다시 찾아가 몇 번이고 설명해도 이거 여성복이잖아요?”라는 허무한 메아리만 돌아왔다심지어 완벽히 내 의도대로 만든 샘플을 들고 가보여주며 이렇게 작업해달라 요청해도여성복의 불필요한 요소를 다 넣어서 만든 옷을 건네서 곤혹스럽기까지 했다이유를 물으면 답은 똑같았다여자들이 입는 옷이니까 '여성복처럼만들었다고. 

 

개인적으로 타이트한 밑위 때문에 여성 질환으로 고생했던 터라 밑위가 길고 엉덩이가 끼지 않는 바지를 꼭 만들고 싶었다넘치는 의욕을 안고 찾아간 또 다른 공장에서 들었던 소리를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여자들은 이렇게 밑위 긴 바지 안 좋아한다.” “엉덩이 라인이 펑퍼짐하니 아무도 안 살 것이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여성복을 입어본 적 없고여성들의 고충에는 관심도 없어 보이는 사람이 그런 말을 하는 게 웃겼다소위 말하는 남성복 같은 여성복'은 아무도 안 살 거라며 단정 짓다니 어이가 없었다결국 다른 공장을 찾아가 밑위가 길고 엉덩이가 타이트하지 않은 슬랙스를 만들었다이 제품이 대박을 터트리는 걸 보며그동안 여성들이 이런 옷을 안샀던 게 아니라 못 사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직접 만든 슬랙스를 입고선 이제까지 바지의 편안함을 모르고 살았던 게 억울했을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엉덩이 라인을 우선해 뒷주머니를 없애버리거나 페이크 주머니를 붙인 여성복 바지 역시 허다한 수준인데남성복에는 페이크 주머니가 달린 제품이 거의 없다심지어 비치웨어에도 남성 비치웨어에서 발견한 실용적인 주머니가 달려 있을 미니 포켓 정도니 말 다했다양쪽에 달린 주머니뿐 아니라 동전이나 담배를 넣을 수 있는 미니 포켓이 허리춤에 달린 걸 보곤 배신감을 느낄 정도였다. 

억울했다너무 억울했다여성복을 입고 자란 모두가 억울해할 일이다같은 값의 옷임에도 여성복이냐 남성복이냐에 따라 주머니가 붙거나 사라졌다기존 거래처인 여성복 공장에 연락해 재킷에 안주머니를 넣어달라 요청했더니공장에서는 질색하며 개당 추가 공임 8,000원이라는 터무니없는 가격을 불렀다이 작업을 하느니 손이 덜 가는 다른 작업을 맡겠다는 소리다.

물론 다른 여성복 공장에 가서 비싼 공임을 지불하면 안주머니 달린 재킷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거기서도 거절한다면공장을 찾는 데 드는 시간도 만만찮을 것 같았다그래서 바로 남성복 공장을 찾아갔다남성복은 애초에 주머니가 기본값이니 추가한다고 한들 공임 변동이 크지 않을 것 같았고무엇보다 거절당할 일도 없을 거다.

남성복 공장에서는 작업지시서를 보더니 별다른 말없이 샘플 작업에 들어갔다물론 기본 공임은 여성복 공장보다는 비쌌지만 받아들일 만한 수준이었고주머니를 추가할 때 별도 비용 없이 서비스로 넣어준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그럼 주머니 없이 재킷을 제작하면 공임이 저렴해질까 싶어서 물어봤는데남성복 공임은 애초에 주머니와 안주머니가 모두 들어간다는 전제하에 책정되었기 때문에 여성복처럼 주머니를 없앤다고 한들 비용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고 했다주머니가 없는 것을 기본값으로 두고 주머니를 추가할 때마다 제작비가 올라가는 여성복과는 전혀 다른 체계였다. 

 

슈트를 제작하기 위해 샘플실 실장님을 만난 날이었다내가 나름 괜찮다고 생각한 스와치(원단의 견본원단 샘플이라고도 한다)들을 보더니 이런 원단으로는 남성 슈트를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다내가 가져온 스와치들은 일반적으로 여성용 의류에 사용되는 것이고밀도가 낮아서 금세 보풀이 나거나 해진다고 했다한마디로 '여성용원단이라는 거다. 

놀란 내가 그러면 남성용 원단도 있냐고 묻자남성용 원단은 이것보단 가격이 조금 있지만 훨씬 밀도가 높아서 탄탄하고 보풀이 잘 생기지 않고워싱 가공이 되어 나와 오래 입을 수 있다고 했다처음에 나는 실장님의 말을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그럼 원단 시장에서 여성용과 남성용 원단을 구분해서 판다는 뜻인가내가 모르는 사이 원단에도 성별이 생긴 걸까? 

 

블라우스니까 힘을 주면 바로 찢어질 것 같은 원단을 쓰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분위기였다지금 생각해보면 1,600원짜리 원단으로 옷을 만들면서 품질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여성복을 판매할 때 이런 원단이 여남 의류 할 것 없이 보세 의류 전반에 쓰이는 줄 알고 그저 저렴하다며 좋아했지만지금은 이런 싸구려 원단이 여성복에만 쓰인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다애초에 얇고 하늘하늘하며 비침이 심한 원단으로는 남성복을 잘 만들지도 않는다세탁기 한번 돌리면 봉제선이 다 뜯어질 만큼 허술하니 의류용으로 제작된 원단도 아닌 것 같다.

  

2020년 초 브랜드에서 자사의 남성용 슬랙스를 구매하는 여성들이 많아지자 여성용 슬랙스를 따로 출시했는데원단이 바뀌고 페이크 주머니가 달리면서 가격이 높아져 여성세(핑크텍스논란을 일으켰다여성용 슬랙스는 남성용보다 2,000원 정도 비쌌는데주머니를 없애 실용성보다 '스타일'에 중점을 뒀다는 피드백만 봐도 얼마나 여성복에 제대로 된 옷이 없는지 알 수 있다더 재밌는 것은 남성용 슬랙스는 폴리에스테르와 레이온스판이 혼방(성질이 다른 섬유를 섞어서 짜는 것)된 TR 계열 원단을 사용했지만여성용 슬랙스에는 폴리 100% 원단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TR 원단은 고밀도가 많아 성용 슈트나 슬랙스에 많이 사용하미퓨즈서울에서 판매하는 대부분의 슈트 원단들도 TR 원단이다그럼 폴리 100% 원단은 품질이 별로 좋지 않은 여성용 원단인 걸까? 

아니다앞서 언급한 고축사 원단도 폴리 100% 원단이다다만 내가 사용한 고축사 원단은 일반 폴리와 다른 기능성 원단으로 가격도 TR 원단과 맞먹는다그럼 브랜드는 우리처럼 질 좋은 고축사 폴리 원단을 사용했기에 주머니를 없앴음에도 여성용 슬랙스 가격을 2,000원이나 더 올려 받은 걸까고축사 폴리 원단을 사용했다면 분명기능성 원단이라고 따로 표기를 했을 텐데별다른 고지가 없었다이쯤에서 의문이 든다여성용 슬랙스를 출시하며 왜 기능은 없어지고 가격은 더 비싸졌을까?

 

여성들도 제대로 된 원단으로 만든 제대로 된 옷을 입을 권리가 있다누군가는 여성복의 질이 낮아진 이유로 계속된 수요가 있기 때문이라며 시장 원리를 운운한다애초에 저질로 제작된 옷들만 쏟아지고 마땅한 비교군도 없으니 어쩔 수 없이 기존의 여성복을 소비할 수밖에 없었던게 아닐까고밀도 원단으로 꾸즈히 여성복을 만들어 공급하면 소비자들은 더 이상 질 류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같은 값을 주고 질 낮은사지 않는 것이야말로 마땅한 시장 원리니까. 

 

실제로 강연을 나가 보면 원단이나 주머니 등을 설명할 때보다 박음질 차이를 보여줄 때 호응이 더 좋았다이제까지 막연하게 품어왔던 여남 옷 퀄리티 차이를 직접 눈으로 확인했으니 당연한 반응이다. 

한번은 여남 옷 봉제 차이를 SNS에 올렸더니 여러 사이트에서 '비교 후기가 쏟아졌다. SPA 매장에 가서 커플룩으로 나온 옷의 봉제를 비교했는데 남성복은 쌈솔이고 여성복은 오버로크였던 것이다의류업계에는 남성복 마진을 여성복에서 메꾼다"는 소리가 있다우스갯소리로 넘길게 아니라 이게 여성복의 현실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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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2023-02-21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저 그대가,
그릇 된 페미의 길 위에 있지 않기를. 부디.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 혼자도 결혼도 아닌, 조립식 가족의 탄생
김하나.황선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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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적인 결혼 적령기를 넘어가는 여자는 스스로가 평정심을 유지하며 만족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어도, 잔잔한 물에다 괜히 돌 던지는 모양새로 주변에서들 툭툭 건드리지 못해 안달이다. 서른을 넘기면서 무슨 참견면허증이라도 딴 것처럼 온갖 사람들이 깜빡이도 안 켜고 끼어 들어왔다. 처음 만난 취재원, 잘 모르는 동네 사람,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까지 결혼 여부나 계획에 대해 무슨 날씨나 남북관계 문제라도 되는 양 아무렇지 않게 물어왔다. 아직이라고 답하면 여러 가지 반응이 돌아왔다. 정말로 궁금하다는 듯이 이유를 묻는 탐정파, 무슨 내 결격 사유를 덮어주는 양 앞으로는 좋은 일 있겠지...”하며 말꼬리를 흐리는 덕담파, 혹은 멀쩡해 보이는 너도 별 수 없다는 듯이 깎아내리는 공격파. 언뜻 걱정이나 관심 같아서 속어넘어가기 쉽지만 이런 말들은 공감도 배려도 없는 행동이다. 그 문제가 진짜 문제라면 당사자가 가장 고민하고 있을 것이며, 다른 사람이 툭 건드리듯 지적한다고 당장 해결될 가능성이 없고, 무엇보다 남의 일인데 어째서 맡겨놓은 듯이 계획이나 입장 표명을 요구하는 걸까? 결혼하지 않은 여성들은 어리고 만만하다는 이유로 종종 이런 주제 넘은 참견의 대상이 된다. 

 

다행인 것은 결혼 적령기의 가장자리를 비켜나면서 달갑잖은 오지랖도 자연스럽게 줄어든다는 점이다. 그러니 몇 년 동안만 단단한 멘탈로, 혹은 달관한 무신경으로 버티다 보면 다 지나간다는 게 내 경험담이다. 그리고 내 스스로도 어느 순간부터는 아무렇지 않아진다. 한동안은 남자에게 인기가 없어서, 연애를 못 해서 내가 결혼을 못 한 게 아니라구요!’ 항변하는 마음이 한구석에 있었다면, 더 이상 그런 식으로 답할 필요도 못 느끼게 된다. 인기가 없으면 어때? 결혼하고 싶은 상대가 아니거나 말거나 어쩔 건데? 남자들이 좋아할 만한 여자로 안 보인다는 데 전혀 신경 쓰이지 않게 되었다. 남성의 욕망의 대상으로서 존재한다는 게 내 가치를 높여주거나 기분을 낫게 해주지 않으니까.  

 

한번은 지인들 몇이 모인 모임에서, 어떤 유부남의 보석 이론을 듣게 되었다. 세상에 괜찮은 여자가 싱글로 남아 있는 경우는 없다는 것이 그의 요지였다. “정말 값진 보석은 사막 한복판에 숨겨져 있어도 세상에 나오는 법이에요. 상인들이 어떻게든 찾아내서 값을 지불하고 손에 넣거든.” 여자가 상품이 아니라 자기 의지와 취향을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은 그에게 중요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런 이야기들은 이상하게 면전에서는 반박할 타이밍을 놓치고 집에 돌아와서야 혼자 대꾸할 말들이 떠오르곤 한다. 여자가 거래 대상인 물건인가요? 선택의 주체인 인간인데? 이 이야기에서 그 여자의 생각은 어디에 있죠? 입 밖으로 이런 말을 내뱉지 는 못한 대신 아마 표정만 조금 일그러졌을 것이다. 그 얘기에 대해 정색하고 반박하지 못한 게 두고두고 후회가 됐다. 그 어쭙잖은 보석 이론이 또 언제 어디에서 나뿐 아니라 다른 어떤 싱글 여성의 멘탈에, 불필요한 불쾌감을 유발할지 모르니 말이다. 또 어떤 인터뷰에서는 계산적인 골드미스론을 들었다. 인터뷰이였던 철학자는 요즘 경제력 있는 여성들이 이기적이어서 조건만 따지느라 사랑을 안 하는 거라며, 나더러도 눈을 낮추라고 했다. 내가 어떤 사람을 만나 어떤 연애를 해왔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말은 참 쉽게도 했다. 

 

결혼 안 한 나를 두고 무슨 결격 사유가 있다는 양 비아냥거리거나 내가 너무 높은 기준을 가지고 있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은 이 둘 말고도 많았다. 백번 양보해서 그게 사실이라 쳐도 그런 얘기를 사람 앞에다 두고 할 수 있는 무례함이 놀랍고, 그렇게 무례한 사람들도 결혼을 했다는 것 또한 놀라운 일이다.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내가 불안하고 초조했던 건 결혼을 못 해서라기보다 결혼 못 한 너에게 문제가 있어’‘이대로 결혼 안 하고 지내면 너에게 큰 문제가 생길 거야라고 불안과 초조를 부추기고 겁을 줬던 사람들 때문이라는 걸. 오지라퍼들이 아무리 깎아내린다 해도 나는 내가 하자가 있는 물건도, 까탈스럽고 분수를 모르는 사람도 아니라는 걸 안다. 다만 몇 번의 연애가 잘 되지 않은 시간이 있었고, 일이 너무 바쁘거나 재밌어서 새로운 사람 만날 시간이 없던 시기가 있었고, 결혼을 하고 싶어서 열심히 소개팅을 나갔지만 번번이 상대와 가치관이나 라이프 스타일이 맞지 않았던 때가 있었고, 그 모든 시간을 지나와 이제는 결혼하지 않은 채로도 잘 살아가고 있음을, 나만이 아는 나의 길고 다채로운 역사 속에서 나는 남의 입으로 함부로 요약될 수 없는 사람이며, 미안하지만 그들이 바라는 이상으로 행복하다. 

 

그러니까 결혼 적령기를 넘긴 여성들이여, 혹시 나에게 정말 문제가 있나?’‘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내가 문제인가?’이런 의심이 들 때면 의심해보자. 고요한 가운데 마음이 흔들리는 것인지, 혹은 바람을 불어대는 존재가 지금 내 주변에 있지 않은지. 그 사람이 내 인생에 스쳐 지나는 존재라면 적절히 무시하면 되고, 혹시 가까운 이라면 불편함을 일방적으로 견디는 대신 진지하게 정색해서 상관하지 말아달라는 당부를 해보자. 원만한 사회생활보다 내 자존감이, 어떤 타인과의 인간관계보다 나 자신과의 관계가 중요하니까. 무엇보다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이 어딘가 부족해서 그런 게 아니라는 증거는 세상에 많은 결혼한 (그리고 무례한) 사람들이 몸소 보여주고 있다.

 

  

몇 달 전 일이다. 건너 건너 아는, 그래서 얼굴만 한두 번 본 간간이 소식만 들었던 어떤 분이 돌아가셨다. 좋지 않은 일에 휘말린 상태였기 때문인지 이 시국을 이유로 유족은 조문을 거절했다. 그리고 그제야 알게 된 이야기인데 그 분은 결혼을 하지 않았고 아이도 없었다. 부모님도 두 분 다 돌아가셔서 결혼한 형만 한 명 있었다. 친구야 있었겠으나 아무리 친하다 한들 그들에겐 장례를 주도하거나 고인의 죽음에 관여할 자격이 없으므로 누구도 장례식은커녕 조문과 조의금조차 챙기지 못하고 그렇게 없는 일처럼 흘러가버렸다. 그저 알음알음 들은 소식이고 모르는 사람에 가깝지만 꽤 큰 충격이었다그 분의 경우는 좋지 않은 사정에 의해, 이 시국에 덮친 죽음으로 인해 더 극대화 된 경우겠으나. 만약 비혼인 채 죽는다면, 부모님보다 후에 죽는다면 어쩌면 형제자매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어서였다. 그 생각은 점점 구체적이고 장황하고 얼마쯤은 허무맹랑할 만큼 커지고 퍼졌다. 어쩌면 혼자인 삶에 대하여 내가 너무 근미래만을 바라보진 않았는지, 정말로 할머니 할아버지가 된 후에도 비혼인 채로 마무리 하는 삶에 대비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는 계기가 되었다(기혼자라 하여 반드시 장례를 융숭하게 혹은 원하는 대로 치른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권리나 의무에 대해서는 다른 부분이 있다는 말이다). 비혼자일수록 친구가 필요하다고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고 대리할 수 있는 돈독한 파트너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야 이전에도 있었으나 이번만큼 절실하거나 온전하진 않았다(그러나 그만큼 결속이 강한, 법적인 역할이 가능한 친구라면 한편으론 기혼자와 무슨 차이란 말인가 싶기도 하다). 무엇보다 비혼이 나만의 선택이 아니라 형제자매와 그의 자녀들, 부모님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이 들자 속이 복잡해졌다  

 

그럴 즈음 우연히 이 책을 읽게 되었다. 표지나 제목만 보고 시쳇말로 '힐링도서'라는 짐작에 다소 시큰둥했으나 온전히 살림을 합쳤으나 성애적 의미는 없는 동반 관계라니 흥미가 생겼다(아마 '그 소식' 전이라면 읽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결론만 말하면 책은 무척 재밌었고 유쾌했다. 동의하는 부분이 많았고 이해도 됐다. 반드시 배우자가 아니라 해도 누군가와 같이 사는 일은 다툼을 요하는, 일종의 단체 생활이란 깨달음은 물론 그들의 안정된 직업과 오랜 경력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대체적으로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과정과 결과지만 당연히 쉽지만은 않았을 거고 고민도 깊었을 거며 때때로 후회도 했다는 대목이 등장해서 더 인간적이었다.  

 

어떤 이야기, 어떤 책들은 그저 세상에 나옴으로써 역할을 하기도 한다. 비혼 인구는 점점 많아지지만 나처럼 여전히 방황하고 불안한 사람들도 그만큼 많지 않을까. 여전히 법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결혼 이외에는 인정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어떤 의미에서든- 파트너를 만드는 것은 여러모로 힘든 일이다. 그런 세상에서 이렇게 사는 삶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그것이 어떤 과정으로 이뤄졌는지 어떻게 무난하게 서로 발맞춰가며 만족스럽게 살고 있는지 읽은 것만으로도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혼인도 여러 형태가 있듯 비혼도 여러 형태가 있다는 당연한 사실과 성적으로 사랑하지 않아도 피가 이어지지 않아도 함께 한 시간이 반평생이 아니라 한들 함께 살 수 있는 파트너가 될 수 있다는 것. 나의 생활 방식을 이해하고 납득하고 적절한 역할 분담을 하며 심지어 반려 동물도 공유하는 삶을 사는 이가 같은 하늘 아래 어딘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만으로도 어쩐지 어깨가 한시름 덜어지는 기분이다. 비록 내 삶은 아니라한들 이렇게 좋은 실제 예가 있다는 사실과 적잖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음으로써 조금 더 문이 열린다면, 그것 만으로도 제 역할은 충분히 하지 않았나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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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0-09-09 0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혼자인 사람과 혼자인 사람이 함께 사는 것도 괜찮겠지요 그것도 마음이 잘 맞아야 할 듯도 합니다 그런 사이도 살다보면 서로 몰랐던 것을 알지도 모르겠군요 꼭 결혼한 사람이나 식구만 함께 사는 건 아니겠지요 서로 모르는 사람이 모여서 사는 이야기도 있잖아요 그런 건 소설에 많이 나왔을지도... 이건 소설이 아니어서 이렇게 살 수도 있구나 하고 더 가깝게 느끼겠습니다


희선

2020-11-24 15: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
러네이 엥겔른 지음, 김문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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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자신의 외모 이야기부터 꺼낸다는 사실이 못내 우스꽝스럽고 난감하긴 하나) 한 번도 스스로가 '딱히' 못생겼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엄청난 미모를 가졌다거나 스스로가 예쁘다고 생각하진 않아도 이 정도면 됐다는 생각을 늘 해왔다. 대체로 (전통적인 관점에서) 여성적이지 않은 스타일을 선호한다. 머리는 대부분 웨이브 없는 숏컷이나 단발이며 슬랙스와 로퍼, 셔츠를 좋아하고 반지, 목걸이는 하지 않고 귀걸이는 가끔, 시계는 자주 착용한다. 지금보다 어릴적엔 매니큐어를 자주 발랐지만 현재는 손톱을 다듬는 정도로만 사용하느라 길지 않게 자르는 편이며 선크림만 바를 정도로 화장기가 거의 없고 주로 입술만 간단히 바르는 정도에 그친다. 때문에 자주 '좀 더 여성스럽게 입어봐'라던가 '머리를 길러봐' 같은 '귀여운 스타일이 어울릴 것 같은데'라는 말을 적잖게 들어왔다. 하지만 딱히 선호하지 않은 스타일인데다 없는 손재주에 꾸미는 흥미도 없을 뿐더러 구불구불한 머리카락도 당최 다듬을 자신이 없었다. 요약하자면 나는 대체로 외모에 '공을 들이지 않고' 전통적으로 여성적이지 않은 스타일을 고수하며 지금의 내가 하는 자기 표현이 스스로에게 가장 어울리며 편하다는 확신을 갖고 있음에도. 나는 이 책의 거의 대부분의 여성들에게 가슴 깊이 동의했다. 그리고 그 사실이 서글펐다.

 

에린에게 민머리는 의도적이고도 강력한 도발이 됐다. "정말 특이하게도 길거리에서 성희롱을 당하는 일이 전혀 없었어요머리를 말끔히 깎고 나니 남자들로부터 존중받게 됐어요정말 놀라웠죠왜냐하면 절 전혀 성적으로 바라보지 않았으니까요남자들의 섹스 레이더에 걸리지 않았던 거예요저는 갑자기 인간 그 자체로 취급받게 됐어요." 에린이 설명했다에린은 머리카락의 길이가 5센티미터냐 8센티미터냐에 따라 길거리 성희롱을 당할지 말지가 결정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길거리 성희롱을 당했을 때 느끼는 분노와 낯선 사람으로부터 외모 칭찬을 받았을 때 순간적으로 반짝이는 자긍심을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을까왜 누군가의 칭찬은 괜찮은 반면 다른 누군가의 칭찬은 위협적으로 또는 불편하게 느껴지는 걸까.

 

에린은 지하철 안에서 희롱을 당한 적이 있다한 남자는 그녀가 얼마나 섹시한지 이야기했다이에 에린은 재미없다고 대꾸했다그리고 "제발 꺼져줄래."라고 말했다그러면서도 그녀는 다른 칸으로 옮기지 않았다그러자 그 남성은 계속 "넌 정말 못생긴 X아주 토 나오게 못생겼어이런 못생긴 X에게 말을 걸었더니 말도 안 돼."라는 말을 했다정말 모순적인 상황이 아닐 수 없다이 남성은 그녀가 섹시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접근했다그런데 거부당하자 그녀가 못생겼다고 한 것이다우리가 젊은 여성에게 가장 중요한 자산은 외모라고 교육한다면 당연히 남성(그리고 여성)은 여성에게 심리적으로 상처를 입히고 싶을 때 어디를 공격해야 하는지 알게 된다.

 

나는 에린이 소년과 같은 외모로 살기로 결심함으로써 무엇을 얻었는지 궁금했다에린은 자신의 몸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좀 더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그녀는 "제 몸을 사용하는 것이 좀 더 편안하게 느껴졌어요."라고 설명했다. "남자들은 그런 신체적 자유를 계속 누린다고 생각하나요?" 라는 물었다에린은 화가 나서 고개를 저었다. "그게 바로 제가 남자 친구들과 자주 하는 이야기예요지하철에 앉아 있는 남자들만 봐도 그렇잖아요그들은 자신의 몸이 얼마나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남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지남의 신체에 접촉하고 있는지 따위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아요그리고 그게 부러워요.“

 

예전에 겪은 일이다모종의 이유로 건너건너 알게 된 중년의 여성분이 굉장히 마음에 들어한 적이 있다자신의 아들과 나이가 비슷하다며 며느리 삼고 싶다는 농담을 던지며 아 근데 우리 아들은 긴 머리를 좋아한다며 머리를 기를 생각은 없냐는 질문을 들었다. 물론 농담인 것은 알고 맹세코 그 분의 마음에 들고 싶은 의도는 추호도 없었고 더군다나 얼굴도 모르는 그 분의 아들과 엮이고 싶단 생각은 꿈에도 안했음에도 당혹스러웠고 동시에 모욕감을 느꼈다. 그러나 그 기반에 약간의 불안이 기저한 것은 어찌할 바 없는 일이었다. 왜 여성의 외모는 쉽게 재단되고 평가받는걸까? 왜 짧은 머리의 여성들은 남자들은 긴 머리의 여자를 좋아한다는, 그런 소리를 여과없이 들어야 하는가? 머리카락의 길이는 단순한 취향 그 이상을 반영함을 어느정도 동의하지 않는가(재밌는 건 일반적인 편견과 달리 짧은 머리일 때가 긴 머리를 가졌을 적보다 더 미용실에 자주 가고 더 오래 머리를 만진다). 그리고 왜 아주 약간은 속상했을까. 외모에 대한 평가가 불편한 한편 자존심이 추켜지는 기분은, 잘못된걸까. 


<퀸카로 살아남는 법역시 이런 유형의 시나리오를 완벽하게 담아냈다못된 퀸카들 가운데 한 명이 케이디에게 예쁘다고 칭찬하자 케이디가 고마워.”라고 대답한다그러자 우두머리 퀸카가 그러니까 동의한다는 거지넌 네가 진짜로 예쁜 것 같니?” 라고 기분 나쁘게 말한다최근 언론은 온라인에서 남성에게 원치 않은 외모 칭찬을 받았을 때 거기에 동조하는 반응을 보인 젊은 여성에 대해 다뤘다남성은 곧장 그 여성을 거만하다고 했다한 남성은 18세의 여성에게 예쁘다고 칭찬했는데 그녀가 저도 알아요고마워요.”라고 답하자 그녀에게 나쁜 X’라고 부르며 자만심이 강하면 안 된다고 비난했다이런 문화 속에서 여성은 신체 자신감에 대해 우스꽝스러운 메시지를 받는다네 몸을 사랑해하지만 너무 사랑해선 안 돼자신감을 가져하지만 겸손해야 해마음속으로 편안함을 느껴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 그걸 드러내서는 안 돼우리는 신체 자신감을 설파하면서도 자신의 외모를 좋아하는 여성을 거만하고 심지어 여성스럽지 못하다고 취급하는 문화 속에서 살고 있다이런 모순적인 기준 탓에 여성은 칭찬을 받아들이는 것을 어색하게 여긴다이는 외모 강박의 대책으로써 여성에게 아름답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결코 좋은 생각이 아니라는 주장의 근거가 된다이런 이중 잣대로 인해 여성은 외모에 대한 칭찬을 받아들이지 않고오히려 다른 여성에게 받아들여지기 위해 자신의 외모를 비하해야 한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렇다, 남성들만 여성을 평가하진 않는다. 여성들도 서로를 평가한다. 가치관에 영향을 주는 사이, 가깝고 피붙이일 때는 때론 더 적나라하고 심각해진다. 쉽게 남의 몸에 대해서 말하는 직장동료/엄마/이모/친구 등에게 늘 외모는 중요하지 않다거나 그보다 먼저 남의 외형에 대해 조언이나 충고, 간섭을 하면 안 된다는 의견을 설파하지만 그들은 좀처럼 이해를 하지 못할 때가 있다. 자주 내가 너무 까칠하고 예민하다고 말하고 사람들이 모두 너 같지는 않다고 할 때도 있으며 그러다가 '넌 쌍커풀이 있으면서.', '넌 날씬하잖아.'라는 식으로 끝난다. 누군가를 좀 더 그럴듯하게 설득하기 위해 나는 쌍커풀이 없거나 피부가 지금보다 덜 하얗거나 아니면 더 살이 쪄야하는건가?를 생각한 적도 있다. 하지만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 땐 그들은 날 이해하는게 아니라 말할 자격도 없는 사람, 연민해야 하는 존재로 인식할 거라는 걸 안다, 슬프게도. 


사회는 확고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조차 너무 쉽게 흔든다. 예를 들어서 성형수술. 적잖은 사람들이 성형 수술을정말 다양한 분야의 다양한 방식의 다양한 이유의 수술을 하지만 난 단 한 번도 수술을 원한 적이 없었다더 예뻐지고 싶지 않거나 지금 내 모습이 좋아 죽겠다는 이유는 아니었다외과 수술의 과정과 그 부작용이 무서웠으며 엄청난 컴플렉스도 없으니요컨대 이만하면 됐지 뭐 싶은 가벼운 마음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노화를 늦추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손을 대고 싶은 의욕은 없다하지만 그런 말을 하면 다들 웃음을 섞어서 자신감이 충만하다 내지는 지금 외모가 마음에 드나봐라고 묻는다그 순간 내가 잘못됐다는그래서 뭔가를 고쳐야 한다는 이상한 압박을 약간 받는다. 이 책에도 그러한 부분이 잘 나타나있다. 


몸이 성숙해지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지만 때론 그 몸을 감춰야만 안전하다는 것을 딸에게 어떻게 가르칠 수 있을까생식을 위해 성숙해진 몸이 자신을 위험하게 만들 수도 있고 동시에 성인 남성을 유일할 수도 있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시킬 수 있을까그리고 어떻게 딸에게 성에 대한 긍정적이고 건강한 태도를 가르칠 수 있을까이는 미지의 영역이다.


조카가 좋아하는 신체적 활동을 찾았으면 좋겠어요스스로 강해지는 방식으로 몸과 친해지는 즐거움을 알게 되도록 말이죠그리고 몸무게가 어떻든 간에 자신은 환상적인 사람이라는 걸 깨닫기 바라요그게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요.”

나는 그녀의 말을 이해한다이런 세상에서 몸이 어떻든 간에 받아들인다는 생각은 약간 허황되게 들린다에이미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적어도 가끔은 조카가 그런 느낌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조카에게 바랄만한 아름다운 희망이네요.” 나는 대답했다. “저에게 바라는 점이기도 하고요.” 에이미는 말했다.


내겐 두 명의 여자조카가 있다. 큰 아이는 서서히 나를 '그저 이모'가 아닌 가장 가까이에 있는, 엄마보다 젊은 여자로 인식하는 듯 싶다. 본디 어릴 때는 나이 차이 나는 언니나 엄마보다 어린 이모를 보면서 동경과 호기심을 가지는 법이나 때때로 곤혹스러울 때가 있다. 어머니, 아버지, 친구와 애인, 지인의 평가에서도 자유로웠고 때론 반항적이었던 내가 이 아이에게 어떠한 롤모델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을 할 때마다 말이다. 나는 아이들이 자신이 예쁘냐고 물을 때마다 내심 고민에 빠진다. 예쁘다는 말과 예쁘다는 건 주관적이라는 사실과 예쁘지 않아도 괜찮다는 의견 중 어느 것을 먼저 알려줘야 할까. 너는 예쁘단다, 너는 소중하고 최고야. 하는 말과 하지만 누군가가 너를 평가하도록 두지 마렴 하는 말 중 무엇이 더 먼저, 주체적으로 등장해야 하는가를 고민한다(지금은 어쩌다 한 번 할 뿐이지만 아마 앞으로는 더 자주, 깊게 생각하게 될 터이다). 여섯 살 배기가 생일선물로 화장품 세트를 받고 싶다고 할 때 원래 이맘때의 여자애들은 다 그런 걸 좋아한다는 무던함과 유투브를 통해 ㅇㅇ가 이걸 썼다는 동경과 감탄의 말로부터 떨어트려 놓아야 하는지 생각에 잠긴다. 공주님이 예뻐서 좋다는 아이에게 이모가 공주님이 뭐든 할 수 있는 사람이라 좋다고 말했지만 역시 아이에겐 너무 어려운 말이었고 내 말에는 권력에 대한 복종과 경외가 서려있으니 이 역시 -어렵게 따지자면- 꼭 옳은 말만은 아니다(...). 물론 내가 늘 조카들을 대하면서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어린애들에게 끼칠 영향, 특히 가장 가까이에 있는 젊은 성인 여자로서 내가 끼칠 무의식적인, 직간접적인 요인에 대해 가끔 생각을 멈추게 된다. 매니큐어를 칠한 내 손가락을, 아닌 순간보다 더 흥미롭게 바라보고 귀걸이를 꼈을 때의 나를 더 예쁘다고 말하는, 립스틱을 발라보고 싶어서 한 발자국 뒤에서 거울에 비친 나를 바라보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아주 복잡하고 오묘한 기분이 든다. 


분명 남성도 외모에 압력을 받고 있지만 이들은 외모보다 역량이 더 널리 인정받는 세계에서 살고 있다그래서 남성은 특정 영역에서 성공하면 외모의 압박에서 안전하게 도망칠 수 있다그러나 여성에게는 그런 안전한 피난처가 없다한 여성이 얼마나 일을 잘하느냐와는 상관없이그녀의 외모에 대해 이야기한다그리고 똑같은 일을 하는 남성보다 여성에게 외모적으로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

 

무엇보다도 아름다움이 주는 권력은 불안정한 토대에 서 있다이 권력은 다른 사람들이 인지해주어야만 존재할 수 있따이를 좌지우지하는 누군가가 항상 존재하기 때문에 오로지 당신만의 권력도 아니다심지어 놀라울 정도로 엄격한 소멸 기한이 주어진 권력이다젊음과 아름다움의 상관관계는 거의 불변의 법칙이기 때문이다이 권력은 여성이 세상에 발을 내딛으면서 사라지기 시작하는 괴기한 성격의 권력이다또한 여성이 '나이를 드러내기두려훠하도록 만드는 왜곡된 권력이다반면 남성은 나이가 들면서 좀 더 '중후하게보이는 특권을 누리게 된다여성은 나이 듦과 더불어 더욱 강재혀야 한다가치 있는 기술과 경험지혜를 통해서 말이다.

 

오늘날 젊은 여성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으며 자란다대학을 졸업한 여성의 수가 남성의 수를 추월한 지 30년이 넘었다이제 젊은 여성은 학교와 직장에서 당당하게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다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예뻐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다그중 대다수는 자신의 외모가 지속적으로 시험에 들고 있다고 있다고 느끼면서 불안해하거나 우울해한다여성은 외모를 걱정하느라 꿈에서 멀어지고 리더의 역할마저 놓치고 있다이 세계는 젊은 여성을 필요로 한다강하고 건강한 미래로 우리를 이끌어줄 이들이 필요하다아름다움을 향한 절박함은 여성의 정신적신체적 건강만을 위협하는 것이 아니다그러니 외모 강박의 본질을 자세히 살펴 함께 타파해나갈 방법을 찾아야 한다.


"저는 외적인 모습에 집착하고 싶지 않아요그런데도 노화에 대한 두려움이 제 마음을 갉아먹고 있다는 점이 짜증 나요."

"나이가 들면서 무엇이 중요해졌으면 좋겠어요?" 나는 물었다.

레베카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성격과 인간관계요제가 어떻게 생겼는지가 아닌 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중요했으면 좋겠어요."

 

시간이 흐르면서 에이미는 등산이 신체 사이즈와는 상관없이 여러 번 넘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배웠다. “제가 넘어지는 게 당연한 일로 보이기 시작했어요.”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에이미가 등산을 좋아하게 됐다는 점이다그리고 자신의 몸을 능력 있는 존재즐거움을 안겨주는 존재로 보기 시작했다. (중략에이미가 몸이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법을 배우면서 모든 일에 강하다는 느낌을 갖게 됐다그녀의 몸은 목표에서 멀어지게 하는 장애물이 아니었다몸은 그녀를 즐겁고 재미있는 활동으로 이끌어주는 동료가 되었다.

 

우선 말해둘 것이 있다나는 여성이 외모를 가꾸는 모든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그건 현실적이지 않으니까또한 대부분의 여성이 원하는 바도 아니고 말이다우리는 언제나 외모에 신경 쓸 것이다이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문제는 외모에 신경을 쓰느라 다른 중요한 목표에서 멀어질 때 발생한다이제는 외모에 신경을 쓰면서도 그에 맞춰진 눈금판을 조금 낮출 필요가 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놀랍도록 무심하고 신기할만큼 운 좋은 삶을 살았다. 허나 그러한 나의 내면에도, 외모에 대한 강박과 노화를 향한 불안은 늘 잠재되어 있다는 걸 깨닫는다. 미국인 교수가 쓴, 미국 내 다양한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얼마나 '알 것 같은'지 곱씹으니 몹시 반갑고 또한 비통했다. 우리는 모두 이러한 고민을 갖고 있고 이게 나 한 사람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 안도되는 한편 이 책에 공감한다고 말하는 여성들의 삶에, 그 비합리와 부조리에 입이 썼다. 이 책에 나오는 말마따나 남자들이 '그냥 일을 하는' 동안 여자들은 정말, 많은 시간이 필요한 피곤한 삶을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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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다쳐 돌아가는 저녁 교유서가 산문 시리즈
손홍규 지음 / 교유서가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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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31일이다그러나 새삼스레 한 해를 돌아보며 열정적인 후회를 하거나 미래에 대한 불투명하고 민망한 결심을 하지 않는다나이를 곱씹으며 과장한 공포를 느끼지 않으려 한다아마도 진짜 나이를 먹는다는 건 이런 태도의 변화에서 오는 걸지도 모른다그러니 마찬가지로 한 해를 보내며 읽어야 할 마지막 책이라며 호들갑 또한 떨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며칠 전 터미널 앞 카페통유리로 된 창가에 앉아서 이 책을 읽었다부러 장소를 선정하거나 분위기를 조성한 것은 아니나 읽다보니 이보다 더 적합한 순간이 있을까 낯선 감탄이 일었다. 12스산하고 날카로운 바람이 간헐적으로 열리고 닫히는 출입문으로 새어들어오고 먼지처럼 내리는 눈발을 간간이 내다보며 읽은 책은 소설가 손흥규의 산문집 마음을 다쳐 돌아가는 저녁』이었다. 

 

첫 챕터를 읽은 후 책의 앞날개로 돌아가 작가의 나이를 돌아본다. 1975년 생한참 젊은 나이다이문구와 오정희. 처음 떠올린 것은 둘이었고 그 다음엔 지금은 신축으로 공사한 옛날 큰아버지 댁이었다소와 여물이 있고 재래식 화장실이 있었던, 그래서 언니가 가기 싫어했던 집이었다기껏해야 우리가 그 집에 가는 것은 일 년에 두 번 많으면 세 번이었음에도 그 냄새와 마당의 진흙과 예쁜 눈을 가졌던 소의 눈은 여전히 기억이 된다외갓집은 그보다 나았다꽃이 있고 털이 하얀 강아지가 있었고 할아버지의 자전거와 호미 같은 것들이 널려 있는 곳엔 어린 사촌동생이 타던 낮은 장난감 자전거도 있었다. 어떤 것들은 아주 사소하지만 매우 강렬한 기억으로 남는다그리고 문득 어떤 냄새공기날씨를 보며 그 날을 떠올리게 된다마음을 다쳐 돌아가는 저녁은 아스라한 향수정확히는 거기 있었던 지도 몰랐던 어린 날의 어떤 지점을 떠올리게 하는 에세이다


우르슬라에 비유한 고모의 죽음이나 그녀들의 아들들과 딸할머니의 죽음과 아버지와 함께 소의 궁둥이를 밀어 트럭으로 싣고 장에 나갔다가 소머리국밥을 먹고 온 일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의 이견과 그 사이에서 시소를 타야 하는 자식으로서의 태도와 외동의 난감함 같은 것건봉사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산수유와 감옥에 갔던 일과 하다못해 이스탄불에 체류하던 시절에 대해 이야기하는 와중에도 작가에겐 오래된, 빛 바랜 냄새가 났다. 이는 기묘한 경험이었다. 도시에 대해 쓰는 작가들은 차고 넘치고 특히 젊은 작가들은 대부분 도시의 삶과 그 진절머리에 천착한 이야기를 쓰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허나 마흔 다섯(내일이 새해라는 것을 감안, 한 살을 높임을 사과한다)의 작가가 이야기하는 어린시절과 자신의 삶에는 갖은 냄새와 촉감과 추억인지 향수인지 모를 것들이 가득했다. 그게 낯설었고 동시에 신선했으며 조금 부끄럽게도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아마도 넛할아버지는 아직도 캄캄했을 새벽에 집을 나섰을테고 초겨울 짧은 해가 지고도 밤이 이슥해질 무렵에야 그 집으로 돌아갔을 테다오가는 데 꼬박 하루가 걸리는 길을 오직 누이의 얼굴 한 번 보고 손등 한 번 쓸어보기 위해 다니는 이 없어 쌓인 눈에 발목이 푹푹 빠지는 산길을 누이가 어린 시절부터 좋아했던 곶감을 지게에 지고 걸어왔을 넛할아버지.


혈통처럼 세월이 흐르고 꽃잎이 분분히 떨어져 사연처럼 쌓이고 해가 저문다삶이 이슥해지는 시간들사소하고 비범한 우리의 노년이 자박자박 발소리를 내며 다가온다.


그러나 문학은 서로 다른 언어로 쓰인 공통의 기억이다.


그 때문이었을까. 글을 읽는 내내 외할아버지가 생각이 났다. 아니, 사실 겨울은 그를 떠올리게 하는 계절이기도 했다. 평생을 기척도 없이 살다 가신 분인지라 강렬한 기억이 생전 마지막 모습이라는 것이 문득문득 미안하다. 가까이 가서 보지 않으면 숨을 쉬는게 느껴지지 않았던, 그 분의 삶의 태도같았던 날숨과 뻣뻣하게 자란 하얀 머리와 막내딸과 손녀를 구분하지 못하는 순간이 잠시 흐른 뒤 춥지 않느냐, 밥은 먹었느냐 묻던. 그리고 이제는 외할머니를 생각한다. 가족들 중 누구도 보지 못한 저 먼 곳에 걸린 현수막도 읽을 수 있는 시력으로 굳어가는 다리 때문에 집 밖으로는 혼자 나가지 못하는 분. 옆에 놓인 고무나무 화분처럼 해가 있는 곳에서 늘 바깥만 바라보는. 거기까지 생각하다보니 비죽 눈물이 나온다. 나이를 먹으면서 생긴 신기한 일 중 하나는 어떤 일에 대해선 한없이 메말라있는데 어떤 부분에선 믿을 수 없게 눈물이 쉽게 나온다는 것이다. 

 

죽음을 생각할 때 무엇보다 안타까운 일 가운데 하나는 내가 미처 읽지 못한 책들이다. 그 책들을 두고 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내가 필멸하는 인간이라는 사실이 못내 서럽다.

 

문학은 언제나 가망이 없었을 따름이며 문학을 죽음 직전에서 일으켜세우는 건 언제나 인간의 몫이다. 나의 환멸은 뿌리가 깊다. 어쩌면 그해를 지나쳐 더 머나먼 과거로 거슬러올라가야 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문학이 무언지 모르던 시절까지 혹은 문학이 생겨나기 전에까지 가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학이 없는 그곳에 이르면 아마도 누군가는 기어이 그곳에서 문학을 만들어내고야 말 것이다. 그들은 어딘가에 묵새기고 앉아 문학을 이야기할 것이며 설령 벽도 천장도 없는 벌판 한가운데라 할지라도 혹은 오르지 별과 달만이 머리 위에 빛나고 있을지라도 그 별과 달을 쓰기 위해 기꺼이 고독해질 것이다. 그리고 아마 알게 될 것이다. 문학이란 문학에 환멸을 느낀 자가 가까스로 참고 견디며 하는 일임을.

 

글을 쓰는 사람은 흔히 남김없이 쓴다 해도 결코 완전하게 쓸 수 없으리라는, 아무리 적게 쓴다 해도 너무 많이 쓰게 되리라는 불안을 느낀다. 이 불안이 글쓰기를 절대적으로 가로막지 못하는 이유는 글을 읽는 이들 역시 글을 쓰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글쓰기의 불완전성을 알고 있으리라 간주하기 때문이다. 만약 한 편의 글이 완전하다면 그 이유는 글 자체가 흠잡을 데 없이 정교해서가 아니라 글의 틈이나 군더더기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채우고 소거하며 읽어주는 이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가끔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고작 나쁜 사람이 아닌 것, 그것으로 충분하겠냐고. 영화를 보고 책을 읽는, 그 수동적인 행위로 너는 무엇을 할 수 있냐고 힐난도 해보고 적당히 구슬려도 윽박지르기도 했지만 도무지 나는 대답이 없었다. 자주 그러했다. 더 완벽한 때를 기다린다는 신중함을 방패 삼아 게으름을 정당화했고 어차피 안 되었을거란 불분명한 절망을 근거로 스스로를 보호했다. 허나 열심히, 꾸준히 쓰는 사람들 앞에서 늘 똑같은 부끄러움을 느낀다. 더 많은 책을 읽지 못하고 죽는 것이 서러울 것 같다고 말하는, 자신에게 터키는 (비교적 널리 알려진) 오르한 파묵이 아니라 아지즈 네신이라고 말하는 작가를 앞에 두고 어찌할 바 없이 12월에 멈춰서 지난 시간을 돌이켜 생각해본다. 무척 불편했던 영화를 만든 작품의 신작 포스터를 보고서 나쁜 작품을 쓰는 것보다는 나쁜 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던 계절이 있었다. 그 때부터 작게나마 글을 쓰기 시작했다. 누구에게 보여주려고 했던것도 아니고 등단을 하고 싶었던게 아니라 그저, 그거라도 하지 않으면 시간을 견디는게 어렵기 때문이었다. 올해는 그런 해였다. 여전히 문장은 헤지고 형편없지만, 쓰고자 하는 욕심의 절반도 쓰지 못했지만 그래도 절룩거리면서도 무언가를 썼다는, 도마뱀의 꼬리보다도 짧은 안도감. 작가가 쓰는 소설가의 일, 문학의 자격, 쓴다는 행위에 대한 이야기를 가만히 읽으면서 곰곰이 생각에 잠긴다. 이렇게 좋은 문장을 쓰는, 이처럼 편안하게 일필휘지로 써내려가는 것 같은 글을 쓰는 사람도 이런 고민을 하는구나. 그렇다면 내 고민 따위는 너무도 당연하다.


기꺼이 나이를 떠올리지 않고 지난 해를 후회하고 앞날을 희망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은 실은, 부끄럽기 때문이다. 이제야 그것을 가까스로 인정하면서 어쩌면 작위적인 태도보다도 지금 이 인정이 나이를 먹는다는 진짜 물증일수도 있겠다. 그래 12월은 어쩔 수 없이 향수와 서글픔과 울음의 계절인가보다. 그리고 겨울을 관통하는 이 시기에, 따뜻한 차 한잔과 조금의 눈물과 함께 이 책을 만날 수 있어 다행이다. 12월 31일이다. 또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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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8-12-31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hinin님 새해 복많이 받으셔요*^^*

Shining 2019-01-03 09:41   좋아요 0 | URL
제가 너무 늦었죠ㅠㅠ 카스피님도 새해 복 많이!많이 많이 받으세요^^ 늘 건강하시고요 :D

2019-02-02 0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 -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자서전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이지수 옮김 / 바다출판사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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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해야 할, 반드시 필독해야 하는, 한 번은 봐야 할 등등의 표현을 싫어한다. 강요를 하면 더 하기 싫어지는 청개구리 성격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 가끔 영화나 책을 읽으며 특정 타깃층을 겨냥해 쓸 때가 있다. 이런 식이다. 영화학도라면 혹은 시네필이라면 아마도 좋아할 책.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쓴 영화자서전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이다.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거나 아니면 그저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물론 만족스러울 것 같지만 특히 영상연출을 다루는 사람들에겐 -좀 더 강하게 이야기해- 일독을 권하고 싶다. ‘영화자서전이라는 표현이 돋보이는데 이름에 걸맞게 자신의 개인사 등은 배제하고 자신이 만든 영화(와 영상)의 이야기만을 다룬 게 인상적이다. 아마도 원고는 과거의 기록을 토대로 기억을 기반하여 현재에 썼을텐데도 정말 1995년이나 2005년으로 돌아간 기분이 드는 것이다. 때문에 더 진심으로 담은, 귀한 느낌이 들고 무엇보다 영화의 집필 시기가 달라지는 만큼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는데(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결혼을 하고 딸이 태어나는 등의 이야기가 가끔 더해질 때) 그의 영화가 그러하고 (많은 이들이 언급하는) 오스 야스지로의 영화가 떠오르기도 한다. 


사사로운 이야기는 배제했지만 돈과 투자영화제와 시상은 물론 자국의 상황과 비판도 빼곡이 들어있기에 영화 바깥에 이야기에 주목해도 흥미로운 구석이 많다처음엔 자신 역시 서툴렀고 어렸지만(그런데 허오 샤오시엔과 이미 알았던 사이... 지아장커와 사진 찍으신 분...) 영화제란 마켓이기 때문에 에이전트와 단합해서 공략을 해야 한다는 것과 3대 영화제 등의 장점과 특징에 대해서도 서술해 있어 흥미롭게 읽었다그 중에서 한국의 이야기도 몇 번 등장하는데 부산국제영화제의 역사와 연혁은 물론 외압으로 인한 문제까지도 이미 알고 있는데다 심지어 지지성명도 보낸 적이 있다고 한다게다가 한국의 영화학교나 영화아카데미외국으로 진출한 감독 등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고 영화산업을 꽤 중요시하며 착실히 발달하고 있는 나라라고 생각한다는 점도 놀랍다.

 

한국영화의 위기론은 언제고 대두되고 개인적으론 근래 2,3년 간 절실히 느끼지만 그런 우리나라의 실정도 일본 앞에선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애니메이션 아니면 애니메이션의 실사화만이 남아서 일본배우들은 영화에 출연할 수 있다면 한국영화 출연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기사를 읽은 기억도 나고 고레에다 히로카즈를 지칭하며 현재 일본에서 유일하게 영화다운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라고 하는 평도 들었었다단순히 영화제에 진출하고 상을 받고 아니고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 일본에서 영화가 얼마나 사양길에 들었는지를 들었었지만 이렇게 일본의 감독에게서 들으니 또 남다르다(하긴나만 해도 한 때는 구로사와 아키라미조구치 겐지오즈 야스지로오시마 나기사이마무라 쇼헤이구로사와 기요시미이케 다카시이와이 슌지 등의 영화를 봤지만 요샌 ......정말로 고레에다 히로카즈만 봤다그를 제외하고는 그나마 오기가미 나오코와 나카시마 테츠야 정도였나). 


이를테면 제 어머니가 추억으로 이야기하는 전쟁은 도쿄 대공습뿐이었습니다. “욕심 부리지 말고 타이완과 한국만으로 그쳤다면 좋았을걸그랬다면 지금쯤은......” 하고 주눅 들지도 않고 말하는 어머니에게는 명백히 피해 감정밖에 없습니다.

이는 아버지도 마찬가지였습니다아버지는 식민지 타이완에서 나고 자랐는데타이완 시절의 행복했던 청춘가 이야기와 중국에서 패전을 맞이하며 시베리아로 억류되어 강제노동을 한 이야기밖에 하지 않았습니다그 사이에 중국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본인이 무엇을 했는지)는 결국 말하지 않았습니다개인의 수준이 이러니 당연히 일본사 자체도 그런 형태를 취하겠지요. ‘가해의 기억은 없던 셈 치거나 다들 그렇게 했으니까라고 정색하거나 불문에 부칩니다즉 나라 전체가 잊는 방향으로 향하는 것입니다작품 제목으로 붙인 망각은 그런 점을 가리킵니다헌법 제9조는 대담하게 말하면 성서에서의 원죄가 아닐까요요컨대 가해를 망각하기 쉬운 국민성에 대한 일종의 쐐기로우리가 항상 죄의식을 자각하며 전후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게 아닐까요(중략그러니 야스쿠니 신사에서 두 손을 모으는 것은 전쟁으로 희생된 사람들에 대한 애도라고 아무리 말한들 국제적으로 이해받기 어렵습니다적어도 어쩌면 야스쿠니 신사에 모셔졌을지도 모를 중국인과 한국인은 당사자로서 이 문제에 대한 의견을 말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2011 동일본대지진 당시의 일이며 일본의 역사 문제에 대한 비판 등을 담은 부분도 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정말로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이야기들에 집중하고 있다. 어떤 영화를 무슨 생각에서 생각에서부터 시작했고 어떻게 살을 더했는지. 투자를 받은 곳과 어째서 제작이 늦어졌는지. 캐스팅은 누구를 만나 누구를 소개받고 어디에서 보고 누구를 원했는지 등등. <환상의 빛>을 시작으로 해, 책을 쓴 시점에선 아직 영화화 되지 않은 <세 번째 살인><어느 가족>을 제외한 모든 영화의 비하인드가 꼼꼼하게 담겨있다. 뿐만 아니라 시나리오를 집필하는 도중 더해진 사건이나 시간으로 인해 바뀐 설정은 물론 장소 섭외와 콘티까지 빼놓지 않았다. 특히 아이들이 중심이 되는 <아무도 모른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의 경우에 아이들의 어떤 모습이 캐스팅과 시나리오로 이어졌는지도 꽤 상세히 써놓았다. 기본적으로 다큐멘터리를 전공으로 삼았던 사람인지라 픽션을 연출할 때 어느 정도의 간섭과 작위가 허용되는지는 물론 피사체에 대한 예의에 대한 생각을 다시금 곱씹게 만들기도 하고 그 영화는 실패했지만 그 때 느꼈던 것들을 다음 영화에 좀 더 담을 수 있었기 때문에 성취가 있었다는 단단한 소감도 읽을 수 있다(ㅇㅇ작품은 실패했습니다, 라고 본인은 느꼈지만 주변에서 조언하길 ㅇㅇ영화를 함께한 배우, 스탭들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건 실례가 된다는 말을 듣고 수긍했다는 것도 재밌다. 그러더니 20년이 지난 영화이니 이제는 말해도 되겠지요?라고 하는 것 또한). 이쯤 되면 거의 영업 비밀을 다 담은 셈인데 이걸 읽는다 해도 그만큼 영화를 찍을 수 없기 때문에 밝힐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당연하게도 감독의 팬이라거나 좋아하는 영화가 있다면 이 책이 즐겁겠지만 만약 전작을 다 보지 못했다고 해도 걱정할 것은 없지 않을까. 내 경우에도 감독이 다큐멘터리 PD출신이라는 것은 전혀 몰랐던데다 <디스턴스>와 <태풍이 지나가고>는 아직 보지 못했고 <공기인형>과 <하나>역시 그렇게 좋아하진 않는다. 때문에 아직 보지 않은 두 영화의 챕터는 읽지 않았고 보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인지 텍스트만으로 화면을 전달받기 어려워서인지 TV드라마의 에피소드도 상대적으로 가볍게 읽은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장, 그 외의 이야기들, 어쩌면 몇 개의 챕터만으로도 분명 마음에 남는 부분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처음에 말했듯 반드시 읽어야 할 책, 꼭 봐야 할 영화 같은 건 없지만 그래도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라면 한 번쯤 봐도 후회하지 않을 것 같고 영화를 봤다면 이 책 역시 유의미하게 받아들여지리라 지레 짐작해본다. 


이 영화에서 그리고 싶었던 건 누가 옳고 그르다든가, 어른은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한다든가, 아이를 둘러싼 법률을 이렇게 바꾸어야 한다는 등의 비판이나 교훈이나 제언이 아닙니다. 정말로 거기서 사는 듯이 아이들의 일상을 그리는 것, 그리고 그 풍경을 그들 곁에서 가만히 바라보는 것, 그들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 이를 통해 그들의 말을 독백(모놀로그)이 아닌 대화(다이얼로그)로 만드는 것. 그들 눈에 우리의 모습이 투영되어 보이는 것. 제가 원했던 건 이러했습니다. 이와 같은 태도는 통상적인 픽션 연출에서는 드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는 제가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현장에서 발견한 대상과의 거리를 잡는 방법이자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는 방법이고, 취재자로서의 윤리적 자세입니다. (중략) 그 시도는 마지막까 제대로 관철했다고 생각합니다.   - <아무도 모른다> 챕터 중 

 

자잘한 디테일은 그다음에 채워 나갔습니다. 가령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가 나온다면 어머니가 심술궂게 트는 것일 테니 아버지가 바람을 피웠겠지...... 라든가, 식사를 한다면 모처럼이니 내가 좋아했던 옥수수튀김으로 할까 등등. , 먹는 장면은 밤의 장어 요리로 한정하고 나머지는 대체로 요리를 하거나 치우는 장면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는 편이 등장인물이 말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식사 장면에서는 먹는 것보다 준비와 정리가 중요하단느 점은 무코다 구니코 씨의 흠드라마에서 배웠습니다.     - <걸어도 걸어도> 챕터 중 

 

이처럼 저의 경우, 주제는 찍기 전에 아는 것이 아니라 작품의 자잘한 디테일을 채워 나가는 가운데 생기는 경향이 강합니다. 하지만 주제나 메시지는 저 자신이 의식하고 있을 뿐이라서 인터뷰할 때도 되도록 말하지 않으려 합니다. 작품에는 제가 지금 살고 있는 세계나 생각하는 게 반영되어 있을 테니 구태여 말로 표현함으로써 제가 파악하고 있는 부분 외의 주제나 메시지가 버려지는 것을 피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부재는 채워지는가. 채워지지 않는가.

 

제 영화는 전반적으로 상실을 그린다는 말을 듣지만. 저 자신은 남겨진 사람들을 그린다고 생각합니다.

 

 












덧) 좋아하는 영화이야기를 듣는 것도 즐겁지만 그 화자가 창작자 본인인데다 불편한 자만심이나 공허한 자기혐오, 공연한 자기연민이 배어있지 않은 어조라 인상적인 한편 읽는데 부담이 적었다. 게다가 읽고 나면 필연적으로 영화가 궁금해진다. 궁극의 셀프 세일즈이자 영화자서전이란 말이 딱이다. 혹 이 글을 읽고 한 명이라도 더 영화가 보고 싶어질까 싶어 열심히 스틸컷을 업어왔다. 나는 팔게 없어 나 대신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를 팔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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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22 01: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2-29 15:5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