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복은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 - 인형에서 여성, 여성에서 사람으로 여성복 기본값 재설정 프로젝트
김수정 지음 / 시공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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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유니섹스 스타일을 좋아했다. 프릴이나 레이스는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애였을 때를 제외하곤 접한 적이 없고 고등학교 졸업 후 치마도 입은 적이 없다. n년 전부터는 청바지도 입지 않는다. 하지만 동시에 키도 크지 않고 골격도 작아서 좀 더 귀엽게 입어봐라, 치마를 입어라, 다른 스타일로 입어봐라 하는 충고 아닌 간섭을 들어왔다. 그렇다고 뭔가, 힙스터의 스타일을 추구하거나 의도적인 탈코르셋을 지향한 것도 아니다. 그저 허리가 들어가지 않고 하늘하늘하지 않은 샴브레이 셔츠나 명도 높고 채도 낮은 네이비 버튼다운 셔츠가 입고 싶었고 헨리넥 스타일이나 로만칼라에 골반까지만 닿는 라이더재킷, 팔이 가오리가 되지 않고 허리를 묶지 않은 맥코트나 괜찮은 슬랙스, 카센터 하는 삼촌 것을 빌려 입은 것 같지 않은 야상재킷을 원했을 뿐이다. 대개 내가 원하는 옷들은 남성복에는 분명 있었지만 키와 어깨너비 때문에 그래 이건데 싶어도 막상 입을 수는 없었다. 옷을 좋아하지만 정작 의류가 많지 않은 건 이렇듯 원하는게 구체적인데다 여성복에는 거의 없는 타입을 원해서였다. 어릴 땐 그래서 스스로가 까다롭다고 여겼고 그 다음엔 키가 작아서, 아니면 '여성적인' 스타일을 원하지 않았기에 혹은 골반과 엉덩이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다음엔 돈이 충분히 많지 않아서라고 믿었다. 다시 말해 어떤 식이든 나에게 문제가 있다고 여겼다.

  

소셜미디어는 무수한 단점을 갖고 있지만 여론을 정립하기 좋다는 점에서 탁월하다. 최근 몇 년 간 소셜미디어에서 많은 여성들이 여성복에 대한(더불어 생리, PMS, 탐폰과 생리컵 등)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자 그제서야 문제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예컨대 다수의 여성들이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왜 상의는 이렇게 푸대자루 아니면 강아지옷 같은 사이즈인지. 비싼 브랜드에서 구매를 하더라도 왜 이렇게 구김이 많은지(나는 여전히 린넨의 단점을 상쇄할 장점을 찾지 못했다). 여성 바지는 주머니가 없는지. 분명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언제부턴가 바지 벨트의 구멍조차 사라졌는지. 속옷은 삼각만 입어야하고 시중에 나온 대다수는 미디와 맥시는 없이 미니에만 집중해있는지 등등. 키가 큰 여성들은 남성 라인에서 차선을 택하고 키가 작은 여성들은 아동 라인의 가장 큰 사이즈를 입는 이 아니러니는 분명 정상적인 일은 아닐텐데. 

 

몇 년 전부터는 그나마 사각트렁크 속옷이나 논와이어 브래지어, 브라렛 등등이 나오기 시작했고 치마와 스키니 라인이 전반적인 유행에서 멀어지고 비키니와 모노키니 대신 래쉬가드가 대세가 되고 애슬레져가 자리를 잡긴 했지만 여성들의 의문과 비판(그리고 분노)은 아직 사그러들지 않았다. 단추, 여밈, 주머니, 아니 단순한 봉제부터 여성복과 남성복 차이는 그대로인데 여전히 가격도 훨씬 비쌌으며 사이즈 역시 '프리사이즈'로 퉁치는 의류산업은 크게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반적인 의류계의 변화나 개혁이 아니라 유행이 바뀌거나 혹은 발 빠르고 눈치 빠른 사업가들이 새로운 사업을 하는 식 밖에는 되지 않았다. 

 

퓨즈서울의 대표(본인이 책에서부터 자신의 브랜드 이름을 밝히길래 나 역시 쓰지만 광고 아니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 퓨즈서울이라는 브랜드가 있는 줄도 몰랐고 읽고 난 지금도 구매한 적 없다) 김수정은 <여성복은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에서 이러한 점을 지적하고 나아가 구조적인 면에서 비판을 한다. 자신 또한 어떻게 한계를 느꼈는지, 직접 발로 뛰고 공장에 샘플을 보내면서 어떤 식의 거절을 당하고 왜 마음대로 옷을 만드는게 쉽지 않았는지 그렇게 공들여 만들었지만 왜 가격은 여전히 -같은 공정을 거친 남성복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싼지 등등. 

 

사실 수요자의 입장에서의 불편은 이미 인식하고 있고 들어온 적 있기에 그렇게까지 놀라운 일은 아니었지만 공정과 공장 자체가 이렇게까지 다르고 그럼에도 가격 또한 구조적으로 '여성복이라서' 더 비싸게 받는다는 말은 어이 없는 감정을 넘어 허탈하기까지 하다. 말마따나 소재에 성별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럼에도 이런 책을 쓰기로 결심했고(저자는 온라인에서의 조각 글은 뜻이 와해될 수 있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기 어려워서 책을 썼다고 밝혔다) 그 책을 출판했고 누군가가 읽고 있다는게 새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류업계는 여전히 멀고 멀었지만 소비자가 바뀌었고 (최소한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소비자를 잡기 위해 판매자가 변한다면 그래도 기대해 볼 만하지 않을까, 허무와 분노 대신 희망을 품어본다. 

 

  



 남성복은 100년 전과 비교했을 때 획기적으로 발전했을까남성복 역시 거의 발전이 없다유행에 따라 조금씩 바뀌는 디테일들을 제외하면 전체적인 실루엣은 똑같다여전히 남성복은 여밈이 앞단추로 나와 있고불편한 라인들이 없고실용성에 초점을 맞춘 옷들이 많다남성복의 기본을 이루는 수트는 품에 여유가 있고 무채색 계열이 많다 보니 옷에 맞춰 체중을 무리하게 조절하거나 여러 벌 살 필요가 없다수트는 애초에 남성들의 사치를 줄이기 위해 탄생한 옷으로착용자는 넥타이 몇 개만 사서 돌려 입으면 단벌 신사'로 불리며 검소한 이미지까지 얻을 수 있다내가 퓨즈서울을 런칭하며 수트에 집착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우리에겐 단벌 숙녀'라는 단어가 너무나 생소하듯단벌이어도 충분한 여성복이 없기 때문이다. 

 

이 굴레를 깨고자 품이 넉넉해서 편안하고주머니가 많아 기능적인 '여성을 위한 옷'을 공장에 제작 의뢰했다공장은 내 의도를 이해한 듯 보였으나 여타 여성복과 다를 바 없는 결과물을 내놓았다다시 찾아가 몇 번이고 설명해도 이거 여성복이잖아요?”라는 허무한 메아리만 돌아왔다심지어 완벽히 내 의도대로 만든 샘플을 들고 가보여주며 이렇게 작업해달라 요청해도여성복의 불필요한 요소를 다 넣어서 만든 옷을 건네서 곤혹스럽기까지 했다이유를 물으면 답은 똑같았다여자들이 입는 옷이니까 '여성복처럼만들었다고. 

 

개인적으로 타이트한 밑위 때문에 여성 질환으로 고생했던 터라 밑위가 길고 엉덩이가 끼지 않는 바지를 꼭 만들고 싶었다넘치는 의욕을 안고 찾아간 또 다른 공장에서 들었던 소리를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여자들은 이렇게 밑위 긴 바지 안 좋아한다.” “엉덩이 라인이 펑퍼짐하니 아무도 안 살 것이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여성복을 입어본 적 없고여성들의 고충에는 관심도 없어 보이는 사람이 그런 말을 하는 게 웃겼다소위 말하는 남성복 같은 여성복'은 아무도 안 살 거라며 단정 짓다니 어이가 없었다결국 다른 공장을 찾아가 밑위가 길고 엉덩이가 타이트하지 않은 슬랙스를 만들었다이 제품이 대박을 터트리는 걸 보며그동안 여성들이 이런 옷을 안샀던 게 아니라 못 사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직접 만든 슬랙스를 입고선 이제까지 바지의 편안함을 모르고 살았던 게 억울했을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엉덩이 라인을 우선해 뒷주머니를 없애버리거나 페이크 주머니를 붙인 여성복 바지 역시 허다한 수준인데남성복에는 페이크 주머니가 달린 제품이 거의 없다심지어 비치웨어에도 남성 비치웨어에서 발견한 실용적인 주머니가 달려 있을 미니 포켓 정도니 말 다했다양쪽에 달린 주머니뿐 아니라 동전이나 담배를 넣을 수 있는 미니 포켓이 허리춤에 달린 걸 보곤 배신감을 느낄 정도였다. 

억울했다너무 억울했다여성복을 입고 자란 모두가 억울해할 일이다같은 값의 옷임에도 여성복이냐 남성복이냐에 따라 주머니가 붙거나 사라졌다기존 거래처인 여성복 공장에 연락해 재킷에 안주머니를 넣어달라 요청했더니공장에서는 질색하며 개당 추가 공임 8,000원이라는 터무니없는 가격을 불렀다이 작업을 하느니 손이 덜 가는 다른 작업을 맡겠다는 소리다.

물론 다른 여성복 공장에 가서 비싼 공임을 지불하면 안주머니 달린 재킷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거기서도 거절한다면공장을 찾는 데 드는 시간도 만만찮을 것 같았다그래서 바로 남성복 공장을 찾아갔다남성복은 애초에 주머니가 기본값이니 추가한다고 한들 공임 변동이 크지 않을 것 같았고무엇보다 거절당할 일도 없을 거다.

남성복 공장에서는 작업지시서를 보더니 별다른 말없이 샘플 작업에 들어갔다물론 기본 공임은 여성복 공장보다는 비쌌지만 받아들일 만한 수준이었고주머니를 추가할 때 별도 비용 없이 서비스로 넣어준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그럼 주머니 없이 재킷을 제작하면 공임이 저렴해질까 싶어서 물어봤는데남성복 공임은 애초에 주머니와 안주머니가 모두 들어간다는 전제하에 책정되었기 때문에 여성복처럼 주머니를 없앤다고 한들 비용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고 했다주머니가 없는 것을 기본값으로 두고 주머니를 추가할 때마다 제작비가 올라가는 여성복과는 전혀 다른 체계였다. 

 

슈트를 제작하기 위해 샘플실 실장님을 만난 날이었다내가 나름 괜찮다고 생각한 스와치(원단의 견본원단 샘플이라고도 한다)들을 보더니 이런 원단으로는 남성 슈트를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다내가 가져온 스와치들은 일반적으로 여성용 의류에 사용되는 것이고밀도가 낮아서 금세 보풀이 나거나 해진다고 했다한마디로 '여성용원단이라는 거다. 

놀란 내가 그러면 남성용 원단도 있냐고 묻자남성용 원단은 이것보단 가격이 조금 있지만 훨씬 밀도가 높아서 탄탄하고 보풀이 잘 생기지 않고워싱 가공이 되어 나와 오래 입을 수 있다고 했다처음에 나는 실장님의 말을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그럼 원단 시장에서 여성용과 남성용 원단을 구분해서 판다는 뜻인가내가 모르는 사이 원단에도 성별이 생긴 걸까? 

 

블라우스니까 힘을 주면 바로 찢어질 것 같은 원단을 쓰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분위기였다지금 생각해보면 1,600원짜리 원단으로 옷을 만들면서 품질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여성복을 판매할 때 이런 원단이 여남 의류 할 것 없이 보세 의류 전반에 쓰이는 줄 알고 그저 저렴하다며 좋아했지만지금은 이런 싸구려 원단이 여성복에만 쓰인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다애초에 얇고 하늘하늘하며 비침이 심한 원단으로는 남성복을 잘 만들지도 않는다세탁기 한번 돌리면 봉제선이 다 뜯어질 만큼 허술하니 의류용으로 제작된 원단도 아닌 것 같다.

  

2020년 초 브랜드에서 자사의 남성용 슬랙스를 구매하는 여성들이 많아지자 여성용 슬랙스를 따로 출시했는데원단이 바뀌고 페이크 주머니가 달리면서 가격이 높아져 여성세(핑크텍스논란을 일으켰다여성용 슬랙스는 남성용보다 2,000원 정도 비쌌는데주머니를 없애 실용성보다 '스타일'에 중점을 뒀다는 피드백만 봐도 얼마나 여성복에 제대로 된 옷이 없는지 알 수 있다더 재밌는 것은 남성용 슬랙스는 폴리에스테르와 레이온스판이 혼방(성질이 다른 섬유를 섞어서 짜는 것)된 TR 계열 원단을 사용했지만여성용 슬랙스에는 폴리 100% 원단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TR 원단은 고밀도가 많아 성용 슈트나 슬랙스에 많이 사용하미퓨즈서울에서 판매하는 대부분의 슈트 원단들도 TR 원단이다그럼 폴리 100% 원단은 품질이 별로 좋지 않은 여성용 원단인 걸까? 

아니다앞서 언급한 고축사 원단도 폴리 100% 원단이다다만 내가 사용한 고축사 원단은 일반 폴리와 다른 기능성 원단으로 가격도 TR 원단과 맞먹는다그럼 브랜드는 우리처럼 질 좋은 고축사 폴리 원단을 사용했기에 주머니를 없앴음에도 여성용 슬랙스 가격을 2,000원이나 더 올려 받은 걸까고축사 폴리 원단을 사용했다면 분명기능성 원단이라고 따로 표기를 했을 텐데별다른 고지가 없었다이쯤에서 의문이 든다여성용 슬랙스를 출시하며 왜 기능은 없어지고 가격은 더 비싸졌을까?

 

여성들도 제대로 된 원단으로 만든 제대로 된 옷을 입을 권리가 있다누군가는 여성복의 질이 낮아진 이유로 계속된 수요가 있기 때문이라며 시장 원리를 운운한다애초에 저질로 제작된 옷들만 쏟아지고 마땅한 비교군도 없으니 어쩔 수 없이 기존의 여성복을 소비할 수밖에 없었던게 아닐까고밀도 원단으로 꾸즈히 여성복을 만들어 공급하면 소비자들은 더 이상 질 류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같은 값을 주고 질 낮은사지 않는 것이야말로 마땅한 시장 원리니까. 

 

실제로 강연을 나가 보면 원단이나 주머니 등을 설명할 때보다 박음질 차이를 보여줄 때 호응이 더 좋았다이제까지 막연하게 품어왔던 여남 옷 퀄리티 차이를 직접 눈으로 확인했으니 당연한 반응이다. 

한번은 여남 옷 봉제 차이를 SNS에 올렸더니 여러 사이트에서 '비교 후기가 쏟아졌다. SPA 매장에 가서 커플룩으로 나온 옷의 봉제를 비교했는데 남성복은 쌈솔이고 여성복은 오버로크였던 것이다의류업계에는 남성복 마진을 여성복에서 메꾼다"는 소리가 있다우스갯소리로 넘길게 아니라 이게 여성복의 현실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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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크리스티 읽기 - 역사가가 찾은 16가지 단서
설혜심 지음 / 휴머니스트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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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인 여성이나 보수적인 애정관을 가졌고 미와 추, 부와 가난에 대한 이중적인 태도, 코스모폴리탄적이되 영국 우월주의자의 면모의 애거서 크리스티를 가감없이 지적하고 비판하되 그녀를 향한 애정과 흥미가 식지 않은, 덕후의 글 같다. 도입부를 너무 탄탄히 써서 결론부가 빠진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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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ning 2021-11-22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거서 크리스티에 대한 어떠한 예찬이나 찬양보단 그녀 자신의 모순을 지적한 내용이 주가 됐다는게 흥미롭다. 한 사람 안에 차곡차곡 들어찬 모순과 허영, 이중성을 폭로하면서도 함부로 비난하지 않은 신중함도 인상적이다. 애거서 크리스티를 제일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으로 꼽으면서도 묘하게 거리감, 불편함을 느꼈던 시간이 있었기에 동의하는 부분이 많았다.
 
아파트먼트
테디 웨인 지음, 서제인 옮김 / 엘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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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균열은 언제부터 시작될까. 1996, 컬럼비아대 문예창작 프로그램에서 만난 ''와 빌리의 경우라면, 감히 말하건대 처음부터 저울이 기울어진 상태였다. 같은 재능을 갈망하는 두 사람이 같은 장소를 공유한다는 건 너무 위험한 일이다. 특히 ''가 빌리의 재능을 목격했고 그가 듣는 찬사를 들었으며 그에게 어떤 식이든 호감을 느꼈다면 말이다. 

 

''와 빌리는 여러모로 대척점에 있는 사람이다. 비록 애정과 신뢰를 갈망하는, 외로운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누군가를 좋아하게 된 사람이 으레 그렇듯 ''는 빌리와 자신 사이에 공통점이 훨씬 더 많다고 믿지만(부모의 이별, 아버지의 부재, 외동인 점 등) 사실 그들은 아주 다른 사람이다. 시작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빌리에겐 조금 더 앞선 재능이 있었을 뿐이고 예술가가 될 준비가 된 ''에겐 이는 사소한 차이에 불과했다. 그는 오히려 빌리와 자신의 공통점을 확대하고 긍정적으로 해석했고 빌리에겐 없는, 아버지로부터 받은 금전적 여유가 있기에 처음에는 엇비슷한 정도라고 생각했을 게 뻔하다.  


그가 나보다 얼마나 뛰어난지 인정하면서도 나는 질투나 열등감 같은 통상적인 감정에 빠져드는 대신 그가 프로그램의 모든 학생 가운데 도와주기로 선택한 사람이 나라는 사실에 우쭐함을 느꼈고그건 이상한 경험이었다.


''가 빌리에게 방 한 켠을 내준 건 있는 자의 자선, 공격적으로 말하자면 아마 그런 게 아니었을까. ''는 빌리의 착실한 계산과 부채감을 부담스러워하지만 사실 그건 친절과 호의라기보단 어쭙잖은 우월감이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이 우월감은 빌리와 '너무 가까이' 있게 되면서 ''를 점차 낮은 곳으로 있게 한다. 자신보다 수줍고 소극적이었던 빌리가 -자신은 실패한- 여성과의 원나잇을 성공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의 작품이 썩 훌륭하다는 것을 깨달을 때, (둘 모두 아버지의 부재에서 자랐음에도) 그는 직접 무언가를 손보고 고칠 수 있는 사람임을 알 때, 자신이 모르는 친구를 사귀었을 때, 육체노동을 하고 수입을 얻었을 때 등등. 그래서 ''는 그럴 때마다 빌리에게 혹은 빌리의 앞에서 경제적 우위를 앞세운다. 그러나 실제는 스스로는 아무것도 해낸 적이 없음을 깨닫고 부끄러움을 느끼는 한편 빌리는 괜찮은 사람이라고, 그러니 어쩌면 자신의 패배감도 그럴 만하다는 자위까지 하기 이른다. 


그 이야기는 내가 기억하는 것만큼 그렇게 형편없지는 않았다유머감각은 절제해서 사용됐고문장은 날카로웠으며인물들은 매력적이었다반쯤 읽었을 때 나는 작가가 누구인지 거의 잊어버렸고결말에 이르렀을 때는 정말 내키지 않았지만 인정해야만 했다애덤이 힘 있는 소설 한 편을 만들어냈고그가 비리를 통해서가 아니라 실력으로 성공을 거뒀다는 걸 알게 되어 나는 더욱 화가 난다는 사실을.

 

그래도 그에겐 한 가지 위안이 있었다. 빌리가 가장 원하는, 그리고 내가 갈망하는 마지막. 글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마저 차츰 빛을 잃고 시들어가자 ''는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지르고 빌리는 물론 자신을 상처 입히며 결국 관계는 끝이 난다 

 

(전략그 결혼식 여행을 가지 말았어야 했고애초에 함께 들어와 살자고 하지 말았어야 했다그냥 계속 혼자 살았어야 했다그랬더라면 그는 한 학기 뒤에 컬럼비아를 떠났을 것이다나는 그를 감탄스러운 작품을 썼던잠깐 동안 알았던 동료 수강생으로 희미하게 기억했을 테고그는 나를 전혀 기억하지 못했을 것이다나는 아파트를 영구히 지킬 수 있었을 것이고내 작은 세계는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은 채 남았을 것이다그게 삶을 헤쳐나가는 더 쉬운 방법이었다-가장자리에서참여자라기보다는 관찰자로.


역자는 이 책을 1996년 미국, 그리고 어쩌면 현재의 미국에 대한 어떠한 은유라고 했다. 물론 그럴 것이다. 책이란, 소설은, 예술은 하나만의 의미는 갖지 않기에. 그러나 내게 이 이야기는 무엇보다 지독하게 개인적인, 그래서 보편적인 이야기로 읽힌다. 자신의 재능을 진심으로 갈망했으나 타인에게서 목도한 사람의 이야기로. 우리는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만을 지독하게 미워한다는 깨달음으로. 지나고 보면 그렇게까지는 아닐 일조차 그렇게까지 온 힘을 다해 원망하고 끝내는 망쳐버린 나이 든 이의 회한으로. 생애 가장 날것의 부끄러움과 수치심의 어떤 순간으로. 내게 의미있었던 이에게 나는 그렇게까지 의미 있는 사람이 아님을 깨닫는 좌절로. 결국 제 손으로 관계를 파탄내면서도 들키고 싶지 않은, 최소한의 체면을 내세우고 싶은 옹졸함이나 차라리 내 손으로 망쳐버린, 스스로 놓아버린 그 후련함을. 시대를 반영한 메타적 소설로 읽기엔 너무 많은 부분이 '알 것 같았다'.


그러므로 끝에 끝까지 읽으면서도 어쩌면 나는 '나'는 재능있고 눈부신, 헐리우드 영화의 결말처럼 극적인 변화를 이뤄낸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기대했다. 그 기대는 '나'에 대한 연민이자 동정이었고 어떤 의미에선 대리만족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평온하고 여유롭지만 동시에 여전히 외롭고 어느 면에선 비겁한 삶을 살고 있다. 물론 그 삶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나 '나'가 더 이상 누구도 상처입히지지 않고 누구에게도 상처받지 않고 살고 있다는 사실이 이상한 배신감을 느끼게 했고 더불어 미묘하게 상처받았다. '나'는 성장했으나 성장하지 못했고 성장했으나 성장하지 않았다. 몰래 빌리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며 그가 느꼈을 부끄러움과 비참함과 안도를 곱씹었다. '나'에게 빌리는 마지막 뜨거움이자 오롯한 차가운 순간이었음을 돌이켜 생각하니 왠지, 그가, 그의 모든 열등감과 질투가, 나아가 '나'라는 사람이 가엾고 슬픈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나 역시 '나'를 가슴 깊이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자 새삼 소설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왔다. 

 

그는 내게 출구를 마련해줬다내가 치졸했다고지기 싫었다고너에게 질투가 났고내가 못 받을 거면 너 역시 장학금을 못 받기를 바랐다고나는 그렇게 말하면 됐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좀 더 비참했다. 

"네가 날 떠날까 봐 그랬어." 내가 말했다. 

우리는 다시 서로 침묵했다. 

아마도 빌리는 내가 말한 이유를 이미 의심스레 떠올려보았거나 알고 있었을 것이고사실 나는 일 년 내내 억누르고 있던 것을 나 자신에게 털어놓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빌리가 내 안에서 다른 누구도 움직이게 한 적 없는 무언가를깔끔하게 정의된 범주에는 들어맞는 않는 무언가내가 명료하게 표현할 엄두를 낼 수 없었던 무언가를 건드려 움직이게 했다는 것을비록 이런 각각의 경험은누구간의 외로움과 정확히 같은 방식으로특정 범주에 넣기 불가능한 독특한 것으로 느껴지지 마련이라고타인의 경계가 그려내는 특별한 윤곽선은 우리 자신의 그것과 충돌하고남은 평생 동안 사라지지 않을 커다란 구멍을 남긴다지금의 나는 생각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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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
정아은 지음 / 천년의상상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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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노동, 그중에서도 여성의 가사노동과 주부의 삶은 어떻게 폄하되고 멸시받는지에 대한 생생한 보고서. 특히 개인적 분개와 모독에 그치지 않고 역사와 사회의 페미니즘, 제도의 불공정성, 사회의 일방적 협의를 책과 연계한 부분이 인상적이며 단단한 힘을 싣어준다. 올해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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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ning 2021-11-21 20: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재밌다 생각해 도서관에서 우연히 집었다가 대출 후 찬찬히 정독한 책. 주부를 두고 ‘집에서 논다‘고들 하면서도 막상 그 일을 시키면 누구도 그만큼 해내지 못한다는 아이러니와 그 일이 중요하지만 나는 하고 싶지 않다는 은밀한 멸시와 힘든 일이지만 어렵지는 않다는 은근한 무시 등 반드시 주부가 아니라 해도 가사노동을 해본 적 있고 특히 누군가와 가사노동을 대가로 등가교환을 해본 경험이 있다면 매우 동의할 내용들이 많다. 페미니즘, 특히 아이를 낳은 기혼자로서의 페미니즘을 개인적인 분개와 분노가 아닌 사회적 함의, 특히 역사와 사회 속에서 책과 연계하여 빗대는 점도 인상적이었으며 다른 분의 100자평에서 그랬듯 법륜 스님의 이야기도 매우 공감했다. 읽을 때에도 의미있게 읽었으나 그 후 특히 음식을 하거나 빨래를 갤 때마다, 컵을 씻으면서 문득문득 생각이 난다.

프레이야 2021-11-21 2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이군요. 이제 발견했네요.
담아갑니다. ^^

Shining 2021-11-22 00:03   좋아요 1 | URL
전 굉장히 흥미로웠어요. 막연히 생각했던 게 명료해진 부분도 있었고 공감도 많이 했고요. 희뿌연 느낌을 글로 표현한 파트도 있고 저와 다른 의견이지만 타인의 생각을 알게 돼서 좋았던 점도 있었고요. 좋은 책이라고 말씀하시니 왠지 부담(!)이 되긴 하지만, 아마 누군가에게 이런 느낌과 의견을 갖게 하는 게 좋은 책이라면 네, 좋은 독서였던 것 같아요^^
 
유원 (반양장) - 2020년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96
백온유 지음 / 창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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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악보단 위선을 입은 인물들이 오랜만이라 반가웠고 젠체하는 허무주의가 아닌 정직과 죄책감, 수치와 부채감 등 근원적인 주제를 택한 것도 반갑다. 있을 법한 일들과 경험해보지 않아도 알 것 같은 미묘한 감정선과 혼란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졌으며 '상실과 성장'이라는 흔한 문구가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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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ning 2021-09-16 1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부 청소년문학의 경우 어른이 생각하는 청소년이라는 이미지가 과해서 조금 위악적이거나 전형성을 과장한다는 인상을 종종 받는데 본 책은 그러한 느낌이 적다(물론 나 또한 청소년이 아니기에 청소년들이 어떻냐, 다들 이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냐고 묻는다면 답할 수는 없지만).

유원과 수현 등의 삶에 족적을 남긴 일을 누구나 겪는 일은 아니지만 상실의 빈자리를 응시한다는 점이나 남은 이의 삶이 휘청거린다는 면에서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다. 몹시 특수한 일을 다루지만 매우 보편적인 서정을 그려낸다는 점에서 읽기 편했고 그래서 마음 아팠고 또한 존경스럽다. 드디어 땅에 닿은 유원의 삶이 앞으로도 평평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