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운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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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걷는 산책 코스가 있다. 걸어서 천변으로 나가서 천변에서 왕복 5km정도, 도합 7km 가량 되는 거리다. 길은 매우 길었지만 대개 그 정도만 걸었다. 돌아올 때를 생각해서 더 멀리 나가는 건 아무래도 무리가 있다. 질리지도 않고 많이 걸었다. 들었던 노래만 수백곡, 걸었던 거리만 수천킬로미터, 지나쳤던 사람만 수백명, 별과 새와 갈대와 차도 참 많이 보았더랬지. 자전거로 갈 때도 있었고 걷기도 하고 뛰기도 했다. 조깅이기도 하고 운동이기도 하고 산책이기도 했다. 어떤 날, 결국 밤새 한숨도 못 자고 다섯 시가 조금 넘어 몰래 집에서 나왔다. 11월이었으니 새벽공기는 빛을 가를만큼 스산했다. 불면증을 앓는 사람이 잠을 자야한다는 생각을 하지 말아야한다는 일념에 사로잡혀 잠을 자야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생각에 의미를 부여하지 말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생각을 부여잡고 있었다. 필사적으로 아무 생각도 안 하려는 생각을 하며 걷다보니 이미 낯선 풍경에 속해 있었다. 아, 너무 많이 걸어버렸다. 자전거를 타지 않는 한 이만큼씩 오면 돌아가는 길이 아무래도 지루하고 지친다. 올 때의 에너지와 갈 때의 에너지가 같지는 않으니까. 하지만 어쩌겠어, 한숨을 쉬며 멍하니 있던 자신을 가볍게 탓하며 다시 돌아가기 시작한다. 마음이 급할 것까지야 없지만 벌써부터 지루해진다. 돌아갈 길이, 무감해진다. 생각하지 않고는 도저히 이 길을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갑자기 아주 크게 울고 싶어진다. 나는 울지 않을테지만, 반드시 그러겠지만, 그래도 울고 싶어질 때 정도는 있는 법이다.

 

후회하지 않는다는 말을 자주 한다. 나 자신과 둘이서 마주 앉아 대질해본 결과 그건 진심이었다. 다만 진심이라고 해서 그 전의 과정까지 진심에 도착까지의 인과가 모두 후회스럽지 않다는 것은 아니라고 '나'는 말했다.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원망하지 않는다고도 하지 않았다. 되도록 적게 후회하고 되도록 속으로 원망했다. 후회하지 않는 건 강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약해서가 아닐까. 후회를 인정하는 후회조차 두려운 것이다. 비겁한데다 무책임한 사람까지 되는 것이 겁이 나는 것이다. 후회해도 별 수 없지 않냐고 결과론적으로 생각해서였다. 그럴바에야 마음이라도 지키라도 '내'가 말했기 때문이었다. 어찌됐든 후회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주 가끔씩, 정말 어쩌다 어느 순간. 너무 멀리까지 와버렸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러려고 했던게 아닌데, 그러고 싶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너무 멀리까지 와버려서 돌아가는 길이 막막해질 때가 있다. 돌아갈 수는 있을까 막연해질 때가 있다. 돌아갈 곳이 있기는 한 걸까 망연한다. 그 순간 울대뼈 밑에서 차오르는 것 같은 뜨거운 것이 터져나올 것 같은 그런 감각을 뭐라고 말해야 좋을까. 우리에 갇힌 야수가 철창을 쥐고 흔드는듯한 착각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하지만 은지는 언제나 그래 온 것처럼 인생을 굴러가게 만드는 건 근심이 아니라 배짱임을 믿었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식은 두려움을 깔보는 거라고. 실은 본인도 믿지 않은 주문을 외워가며 말이다. 서윤의 경우, 두려움을 이기는 제일 좋은 방식은 두려움을 경험하는 거라 여기는 편이었다. 아니, 그보단 아예 두려움 근처에 가까이 가지 않는 편이 상책이라고. 진짜 공포는 그렇게 쉽게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라며 말이다. 사실 서윤이 품고 있는 근원적인 두려움 중 하나는 가난이었다. 서윤은 오랫동안 그것이 제 삶 가까이 오지 못하게 흡사 파리 떼를 쫓는 사람처럼 두 팔을 휘저으며 뒷걸음질 쳤다. 혹 그게 누군가에게는 우스꽝스러워 보인다 할지라도, 당장 하지 않으면 안 되고, 할 수 있는 일들을 했다.   - 호텔 니약 따

 

 

여행을 좋아하지 않았다. 뭔가가 지속적으로 바뀌는 상황도 예측할 수 없는 긴장감도 그저 즐기지 못하는 탓도 있지만, 탈 것을 잘 못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현실에 견고하게 자리 박는 걸 마음에 두는 목표성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곳 저곳을 다니며 이것 저것을 보고 듣는 것도 즐거웠지만 그것이 내 집, 내 공간, 내 가구, 내 물건으로 투영될 수 있는 것이 좋았다. 여행이 주는 즐거움이라면 떠날 수 있다는 자유와 돌아올 곳이 있다는 부자유에 있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가끔 K의 방랑벽과 J의 체류가 지겨웠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불행했을지 모르겠지만 그들은 떠나는 것과 아닌 것 중에 고를 수가 있었고 떠나는 것 중에서도 시간과 장소를 고를 수 있었겠지. 어떤 이들은 떠난다는 선택지가 있다는 것을 채 모르고 살기도 하고 선택지를 읽어도 고를 수가 없기도 하고 선택지를 고르기 위해 다른 이들을 불행하게 만들기도 하는데에 비하면 그들의 이기심은 얼마나 평온한가. 여전히 나는 바보같은 생각을 한다. K와 J보다 할 수 있는 것을 열심히 하고 산 나는, 그들에 비해 더 나아져야 하지 않을까. 당연히 그 정도는 내게 돌려줘도 되지 않은가. 삶에는 누구를 더 봐주고 누구를 덜 봐주는 자비도 없고 누군가의 행과 불행을 절반으로 뚝 나눠주는 공평함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 아직도 그런 허위의 진실을 믿다니. K와 J가 아닌 내가, 삶을 허투루 보고 있다는 사실에 반성하는, 그런 밤이 있다.

 

 

이런저런 곁눈질과 시행착오 끝에 가까스로 얻게 된 한 줌의 취향. 안도할 만한 기준을 얻는 데 얼마나 많은 비용이 들었던지. 상품 사이를 산책할 때 나는 엄격한 동시에 부드러운 사람이 됐다.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알고 있는데서 오는 여유. 그러나 원하지 않는 것 역시 정확하게 알고 있다는 식의 까다로움.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의심을 버리자 쇼핑에 자신감이 붙었다. 그리고 원하는 게 많아졌다.

 

오랜 소비 경험상 나는 이런 데서 기죽은 태도를 보이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익숙한 듯 자연스레 행동하려 애썼다. 더불어 속물처럼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에 겸손한 표정을 짓는 일도 잊지 않았다. 교육받은 사람답게, 당신을 존중한다는, 나는 으스대는 사람이 아니라는 식의 태도.    - 큐티클

 

 

분명 더 많은 걸 알게 되었다. 이것을 고르는 것과 저것을 고르지 않는 것의 차이, 침묵이 최고의 공격이자 최선의 방어라는 눈치, 가격을 먼저 묻는 속물이 아니라는 태도, 그러나 사실 가격을 물을 타이밍을 재고있는 조심스러움, 가지는 것과 가지지 않는 것 사이에는 취향이 있다는 식의 뉘앙스. 나는 언제부터 그런 것들을 배우고 연습하고 연기하게 되었을까. 비싼 옷을 입은 남자보다 제 몸에 맞는 옷을 입은 남자의 안목에 감탄하고 예쁜 옷보다 잘 가꾼 손톱이나 머리칼을 가진 여자의 부유함을 알아채게 된 때는 언제였을까. 모르는 걸 모른다고 하지 않고, 처음 본 걸 처음 봤다고 하지 않는, 그것으로 스스로를 장식하는 그 속박은 언제부터 시작했을까.

 

도시는 김중혁이 그리고 도시의 여자는 정이현이 그리고 도시의 현대인은 김애란이 그린다. 김애란이 그리는 현대인은 적당히 이기적이며 이타적이고 적당히 희생적이고 타협적이고 적당히 솔직하면서도 무심해서 가끔 한심해서 뭉클해진다.

 

 

언니. 가을이 깊네요. 밖을 보니 은행나무 몇 그루가 바람에 후드득 머리채를 털고 있어요. 세상은 앞으로 더 추워지겠죠? 부푼 꿈을 안고 대학에 입학했을 때만 해도 저는 제가 뭔가 창의적이고 세상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며 살게 될 줄 알았어요. 그런데 보시다시피 지금 이게 나예요. 누군가 저한테 그래서 열심히 살았느냐 물어보면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쩌다, 나, 이런 사람이 됐는지 모르겠어요. 요즘 저는, 밤에 잠자리에 누울 때마다 이상한 소리를 들어요. 휙휙- 차들이 바람을 찢고 지나갈 때 내는 그런 소리를요. 마치 제가 8차선 도로 한가운데에 서 있는 느낌이에요. 왜 오락의 고수들 있잖아요. 걔네들은 정신없이 쏟아지는 총알이 아주 커다래 보인다던데. 다가오는 모양도 영화 속 슬로모션처럼 느껴진다 하고요. 저도 그랬으면 싶어요. 지금 선 자리가 위태롭고 아찔해도, 징검다리 사이의 간격이 너무 멀어도, 한 발 한 발 제가 발 디딜 자리가 미사일처럼 커다랗게 보였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언젠가 이 시절을 바르게 건너간 뒤 사람들에게 그리고 제 자신에게 이야기하고 싶어요. 나, 좀 늦었어도 잘했지. 사실 나는 이걸 잘한다니까 하고 말이에요. 하지만 당장 제 앞을 가르는 물의 세기는 가파르고, 돌다리 사이의 간격은 너무 멀어 눈에 보이지조차 않네요. 그래서 이렇게 제 손바닥 위에 놓인 오래된 물음표 하나만 응시하고 있어요. 정말 중요한 ‘돈’과 역시 중요한 ‘시간’을 헤아리며, 초조해질 때마다, 한 손으로 짚어왔고, 지금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그것.

 

‘어찌해야 하나.’

그러면 저항하듯 제 속에서 커다란 외침이 들려요.

‘내가, 무얼, 더.’           - 서른

 

 

딱히 과거를 살고 있다고 자조하고 싶지 않고 회상이 기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자주 하지 않으려 하지만 가끔씩은 스스로의 생각을 막는 것조차 귀찮아질 때가 있다. 지금의 나보다 십 년 전의 Y가 더 현명하고 강했다는 것. 나는 왜 십 년 동안 너보다 더 자라지 못했을까 미안해지고 너는 왜 십 년 후의 나보다 이미 자라있었을까, 아파진다.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을까. 뭘 하다가 뭘 찾다가. 그건 이미 십 년 전에 네가 했던 말인데. 십 년 후의 나는 어쩌면 십 년 전의 너에게 답을 구하고 있는가. 또 십 년 후에도 나는 이십 년 전에 너에게 답을 구하는가. 나란 사람은 질리지도 않게 변하지 않는구나.

 

 

김애란의 단편을 읽으며 손목에 아로새겨진 뼈가 펄떡이는 걸 느낀다. 분명 그녀의 글을 좋아했다. 내게 안목과 취향이란 것이 모두 있다고 믿었을 때, 내 안목과 취향이 모두 그녀를 향해 YES라는 표지판을 들고 있었기에. 친구는 책 표지의 앞날개를 볼 때마다 우울해하며 등단년도와 자신의 나이를 비교해본다고 했지만 나는 달랐다. 나는 가질 수 없을 만한 것을 탐하는 사람이 아니고 가질 수 없을 것이라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예 탐한 적이 없다고 스스로에게 장담시키는 쪽이었다. 그러니 나는 김애란을 부러워하지도 시샘하지도 않을 수 있었다. 그저 제3자처럼 무심한 독자처럼 냉정하게 말할 수 있었다. 「물 속 골리앗」과 『두근두근 내 인생』으로 얼마간의 실망과 지루함을 느꼈을 때는 내심 통쾌(!)해하기도 했다. 『비행운』역시 우연처럼 집어든 책이었고 다소간 고(高)자세로 읽기 시작했다. 몇몇 편은 그저 그랬고 (심지어 지루하거나 전혀 기억이 나지 않고) 첫 번째 단편집처럼 몰두하지는 않았다. 

 

다만 몇몇 편이 매우, 개인적인 시선으로 눈에 들어왔다. 특히 「서른」의 전조가 유별나게 그랬다. 왜 이렇게 삶이 비루할까, 가 아니라 왜 이렇게 내 삶이 남루해졌을까, 라고 물을 때의 무구한 어리둥절함, 절묘한 피로감, 권태조차 느낄 수 없는 허무의 그림자가 언뜻언뜻 스쳤다. 몇 가지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자살을 시도했지만 일주일 간 누구도 연락을 하지 않았다는 누군가의 사연, 사채와 동거와 다단계로 얼룩진 친구의 친구 이야기, 천체망원경과 에스프레소 머신과 드레스룸가 없는 삶도 있다는 것을 듣고 놀라던 중학교 동창의 이야기,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 가끔씩 아직 낼 화가 남아있다는 것이, 여전히 분노하거나 모멸당했다고 생각하는 스스로의 감정이 놀라울 때가 있다. 다 안다고 생각한 순간에도 여전히 수많은 깨달음이 무수히 존재한다니, 삶은 얼마나 잔인한 방식으로 이타적인가. 왜 특수하게 나쁘게도 특별하게 불성실하게도 특이하게 요행을 바라며 살지도 않았는데 어느순간 삶은 돌이킬 수 없는 방식으로 엉망진창이 되고 그 엉망진창이 된 그림은 고치려고 하면 할 수록 더 퍼지는 얼룩처럼 걷잡을 수가 없게 되는걸까. 왜, 라는 소모적이고 감상적인 -비논리적이기도 한- 질문밖에 할 수 없게, 왜 사람을 구차하게 만드는 걸까.

 

별 수 없이 삶은 고루하고 비루하고 남루하다. 어떤 좋은 말을 해줘도 어떤 표현으로 '힐링'을 시도해도 어떤 긍정적 바람을 불어넣어도 나는 여전히 삶이 고루하고 비루하고 남루하다(심지어 고단하기까지). 삶의 고루함, 비루함, 남루함, 속에서도 의미를 찾자고 제창하는 이들 속에서 삶은 그저 고루하고 비루하고 남루할 뿐이라고 말하는 이도 한 명은 있어야 한다. 『비행운』의 김애란은 그 한 명인 듯 해 나는 퍽 안심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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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3-01-09 0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삶은 고루하고 남루하고 비루한데다가 게다가 지루하기까지 하지만 우리는 그래도 쓰루(through)해야죠. 그러니까 뭐 어쨌든 지나야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김애란의 소설을 읽으면서 말이죠. 소설가는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을 이야기하고(그러니까 무엇이 있음을 필사적으로 찾아내야만 하고), 뭐가 ~아니다보다는 뭐가 ~이다라고 이야기해주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요즘 세상에서는 없어지는 게 당연시되고, 뭐가 아닌 것이 되는 게 너무도 흔한 일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얘기는 사실 하려던 얘기가 아니었고, 오늘 <라이프 오브 파이>를 봤어요. 혹시 Shining님이 그렇게 생각하실까봐, 혹은 잡담으로 늘 이 이 시간에는 술을 마시고 글을 썼던 것을 떠올리실까봐 말씀드리는 건데 지금은 아주 멀쩡해요. 지금 잠을 못 이루고 있는 것은 계속 일종의 멀미가 나서요. 누군가가 이야기했듯이 아직도 바닷물이 울렁울렁하는 것 같아요. 3D 총천연색으로 말이죠. 호랑이의 아니 리처드 파커의 위엄있던 뒷모습이 잊혀지지가 않네요.

Shining 2013-01-10 11:19   좋아요 0 | URL
역시 맥거핀님 센스 짱!-_-b 비행운, 사실 몇 편은 심히 지루했고(물 속 골리앗은 다시 읽어도 지루하더군요, 왜 이 단편이 젊은작가상 수상작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더 좋은 다른 작품이 우수상 안에 있었다고 생각하거든요) 전체적으로 다른 두 소설집만큼 흥분되진 않았습니다. 다만 몇몇 문장이나 구조에서 특히 <서른>에서 개인적으로 울컥하게 만드는 정서가 있어서 별 네 개, 라고 묻지 않으신 변명을 해봅니다ㅎㅎ 아, 그런데 김애란 작가가 이상문학상을 받았더군요. 어찌됐건 대중적 관심과 평단의 지지를 고루 받는 작가인 것은 사실인 듯 합니다.

하하^^ 맥거핀님은 잠이 안 와도, 술 한 잔 드셔도 엄청 논리정연하게 쓰시니까, 취했거든요, 라고 본인이 말씀하셔도 저는 안 믿었을거에요ㅎㅎ 영화는 어떠셨나요? 좀 더 자세히 말씀해주세요+_+ 저는, 자랑하기 위한 기술적 3D가 아니구나, 라는 점이 가장 흥분됐던 것 같아요. 리처드 파커는 정말...-_-b

맥거핀 2013-01-10 17:52   좋아요 0 | URL
아..맞아요. 김애란 작가가 이번에 이상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되었더군요. 개인적으로는 이상문학상이 점점 일종의 대중성에 손을 들어주는 듯 하군요.

사실 <라이프 오브 파이>는 짤막한 글을 올리려고 생각중인데, 시간도 안나고, 컴퓨터도 뻗었어요. 탕약으로 안되니 외과술을 시행해야 할듯. (요즘에 드라마 '마의'를 보다보니..)

아이리시스 2013-01-10 21:40   좋아요 0 | URL
탕약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외과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남의 글에 끼여들어 이럴 의도는 아니었습니다만)

샤이닝님 글은 완전 사랑하구요(또 고백), 김애란은 왠지 모르게 도리도리 :) 샤이닝님글 읽고나서도 안 읽고 싶어지는(그만큼 뿌리깊은 편견이랄까) 저는 이번에 이상문학상도 읽지 말까요?-_- (사실은 안 읽은지 7년째인데ㅎㅎ)

이진 2013-01-11 14:06   좋아요 0 | URL
저도 끼어들고 싶진 않지만... 저 밑에 샤이닝님 답글까지 포함해서
김애란은 왠지 별로, 에 저도 동의해요.
윤성희가 따뜻한 측면이 강하다면 김애란은 드러내보이는 것 같아서 싫어요.
그러니까 글을 너무 잘 써서 문제인가? 능수능란하게 글을 잘 쓰는 것도 단점인 듯해요.
분명 등단이나 데뷔는 쉽겠지만....

김애란은 정말... 이상문학상엔 안 맞는 거 같은데... 하는 괴리감이랄까.
한강은 좋았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hining 2013-01-14 12:16   좋아요 0 | URL
> 맥거핀님

이진님 댓글에 썼듯 제가 이상문학상에 드러맞는 작가나 작품을 판단할 깜냥은 당연히 되지 않지만요. 공지영과 김영하, 김애란으로 이어지는(네, 실명 나오네요) 수순이 어쩐지 '받을만한 사람은 한 번씩 받아야하는' 어조인 것 같아 불편한 마음이 있습니다. 보수적이라는 생각이 계속 들기도 하구요.

컴퓨터는 어떻게 되셨나요? 라이프 오브 파이, 에 대해 쓰신 걸 보면 아직 살아는 있는건가요?
(아, 드라마를 전혀 보지 않아서.....이 소외되는 기분.....)

Shining 2013-01-14 12:19   좋아요 0 | URL
> 아이리시스님

저도 무슨 얘기인지 알고 싶어요............(라고 앙탈ㅋㅋ)

전 김애란이 굉장히 대중적이고 고른 인기를 가진 작가인 줄 알았는데 의외군요. 흐음. 문학상을 챙겨보진 않는데 나중에 보면 -그 해가 아니라 해도- 언젠가 읽게 되더라구요. 그런데 최근 몇몇 문학상 수상작에 심한 반발 때문에 요새는 정말 시들하네요. 이번에 문학동네와 자음과모음 수상작은 좀 궁금하긴 하더라구요.

Shining 2013-01-14 12:31   좋아요 0 | URL
> 소이진님

그런가요? 전 김애란이 글을 정말 잘 쓴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말했듯이) 제가 안목이란 걸 갖고 있는 독자라고 상정했을 때, 제 안목엔 김애란은 참 글을 잘 쓰는 작가에요. 그 사실을 부인하지는 않아요, 제 안목이 고른 거니까요(그러니까 타인의 안목에는 맞지 않을수 있겠지요). 어쨌든 그녀가 빠른 시간 범접할 수 없는 커리어를 쌓아오는데는 그에 대한 존중, 이랄까 인정은 필요할 것 같아요^^ 취향과는 별개 문제로 안목에 의거한다면 말이죠.

이진 2013-01-09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시는 김중혁이 도시의 여자는 정이현이 도시의 현대인은 김애란이 그린다...
하나의 에세이 같기도 소설 같기도 한 리뷰... 정말 좋은 걸요.
어디선가 김애란은 윤성희의 후예쯤 되는 사람이라고 들은 기억이 나요.
비극을 희극화 하는데는 두 사람만 한 작가가 없다구요.
김애란의 소설들은 얼핏 읽으면 밝은 느낌이 나요. 발레복을 입은 소녀가 통통 튀는 듯한 그림이 그려지고 연두색 노란색 점들이 하얗게 펼쳐지는 기분도 들어요. 그러나 음미해보면... 이것보다 슬프고 비루하고 남루하고 우울한 이야기는 또 없지요... 김애란은 그렇게 느껴져요.
어제 김애란이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듣고 놀랐어요.
김애란은 이상문학상과...는 맞지 않는데? 하는 생각이 제일 처음 강하게 범점해왔거든요.
만약에 박완서 상이라든가.. 신경숙상... (제가... 작가 범위가 좁아서 그런 건 절대 아닙니다ㅋㅋ) 그러니까 여성작가 상이 생긴다면 그럼 제일 먼저 수상할 사람이 김애란이라는 생각을 평소에 갖고 있었어요.
심사평을 보니 언어의 사용 자체가... 이상과 비슷한 면이 있다고 하더군요.
그러니까 제 말은... 샤이닝님 글이 아주 좋다구요! ㅎㅎ

Shining 2013-01-10 11:26   좋아요 0 | URL
사실은요 이진님, 이 리뷰가 쓰고 고치고 쓰고 고치다 결국 다 버리고ㅋ 두 시간만에 쓴 거거든요. 역시 사람은 좀 내거티브해야 글이 잘 나오나봐요ㅎㅎ 이거 쓴 날 엄청 분노의 내거티브ㅋㅋ

김애란은 뭐랄까, 문장력이 좋다고 생각해요. 소설의 도식은 비교적 명료한데 클래시컬한 묵직한 문장력을 구사한다고 생각했거든요(제가 강추하는 칼자국). 그러면서도 굉장히 재밌죠(침이 고인다,나 달려라 아비, 같은 것). 도시괴담 같은 느낌도 들구요(노크하지 않는 집, 나는 편의점에 간다 등). 그런데 최근 글은 약간, 좋다고 망설여지는 희한한 뭔가가 있어요. 물론 여전히 잘 쓰고 여전히 재밌고 여전히 예리하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해요'라고 말하기 망설여지는 뭔가가 느껴집니다(웃음). 네, 이상문학상 수상은 저도 들었습니다. 이상문학상의 성격과 부합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제가 판단할 사례가 아니니까요^^) 한국문단은 여전히 보수적이라는 생각은 듭니다. 몇몇 사례들로 받을만한 작가가 받는, 이라고 생각이 듭니다(아, 김애란 작가가 그렇다는 건 아니구요).

고마워요 늘 칭찬 가득한 이진님 ^_________^

티티카카 2013-01-09 2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이도 있어야 다른 이도 있을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김애란 책을 들춰 보고 싶네요.
잘 읽었습니다 ~

Shining 2013-01-10 11:29   좋아요 0 | URL
소설의 큰 동력이랄까 의미는 인간 근원에 대한 위로나 회한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힘을 내야 한다, 는 소설들이 갑자기 싫어졌어요; 아마 제가 내거티브한 까닭이 아닐까ㅋㅋ 삶이란 본디 그런거지 뭐, 힘을 내든 위안을 받든 어쨌든 삶은 그런 거, 라고 말해주는 쪽에 더 힘을 보태게 됩니다 요새는^^ 티티카카님 오래만에 뵙는 것 같아요 :) 제가 글을 하도 띄엄띄엄 써서 그런걸까요ㅠ

티티카카 2013-01-12 01:41   좋아요 0 | URL
샤이닝님 댓글을 보니 왠지 나쓰메 소세키의 <유리문 안에서>이 떠오르네요..소세키도 참 많이도 내거티브한 사람이었는데 그럼에도 위궤양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는 계속 글을 쓰면서 살아갔죠. 저도 샤이닝님의 말씀에 반응하는 거 보면 내거티브한 사람이라서 그런가요 ㅋ 가끔씩 촐랑대는 걸 보면 조울증 같다는 생각도 불쑥..ㅋ
저는 늘 엿보고 있었습니다..ㅋ 섬님께서 그런 댓글을 남기신 적이 있던데, 샤이닝님은 가끔씩 댓글을 못 쓰겠고 추천만 꾸욱 누르고 싶은 글을 쓰신다고..ㅎ

Shining 2013-01-14 12:36   좋아요 0 | URL
하하. 전 진짜 내거티브해요, 티티카카님. 어떤 서사나 사건을 의심으로 층위를 나눠보는 성격인 것 같아요. 뭘 잘 믿는 사람도 아니고 믿기 위해서 의심을 하고 믿기 위한 의심을 또 의심하고. 좀 피곤한 사람이죠_-

글은 진짜 내거티브할 때 나오던데요 저는?ㅎㅎ 즐거울 때나 기쁠 때는 글 쓸 생각을 안 하는 것 같아요, 그 느낌을 즐길 뿐. 그 즐거움과 기쁨이 사라지거나 잃어버리거나 빼앗기면 그때 글을 쓰고 싶은 자연스러운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아마 그래서 그런것 아닐까요? 제가 가장 다크할 때 쓴 글들은 너무 개인적이고 은밀해서? 그래서 가끔 이 글을 읽어주시는 다른 분들께 죄송한 마음이 들어요. 이건 나 혼자 알면 되는 일인데, 하면서요ㅠㅠ(그러면서도 또 쓰는...)

댈러웨이 2013-01-09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걷는 걸 좋아해요. 저희 동네에도 강변이 있어서 드문드문 산책을 하는데, 항상 혼자 걷고, 또 혼자 걷는 것을 좋아하지만, 오전에 이 글을 읽으면서 샤이닝님과 함께 걷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라는 생각을 해봤어요. 음. 같이 걸어보고 싶어졌어요 사실은. 어디에서 어떻게 끊고 얘기를 좀 해 볼까 하다가 그냥 가요. 샤이닝님과 산책하는 기분으로 찬찬히 읽다가 가요. 잘 읽었어요. '고루, 비루, 남루, 그러나 쓰루'라는 맥거핀님(안녕하세요, 맥거핀님.)의 말씀도 명문이네요. ㅎㅎ

Shining 2013-01-10 11:34   좋아요 0 | URL
누군가와 걷는 건 (말하자면) 정서의 산책이고, 혼자 걷는 건 사유의 산책 같아요(어머). 생각의 방향, 온도, 밀도와 질량까지 스스로 조절하는 그 시간이 재밌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해서 저는 아마 혼자 걷는 걸 더 좋아하는 것 같아요. 댈러웨이님은 호주에 사시죠? 따땃한 시간에 댈러웨이님과 함께 걷는 호주의 강변이라니. 이거 너무 멋지잖아요! 갑자기 둘이 걷는 산책이 더 좋아지려고 해요>_< 하하. 맥거핀님의 센스는 역시 짱이십니다(괜히 제가 으쓱ㅎㅎ).

맥거핀 2013-01-10 17:54   좋아요 0 | URL
아이고 인사를 먼저 해주셨으니 저도 인사를 드려야겠네요. 지나가다 댓글만 많이 봤는데 이제서야 인사드립니다. 좋은 말씀도 감사하구요.^^

Shining 2013-01-14 12:37   좋아요 0 | URL
와. 이거 뭔가 기쁘면서도 오묘한 기분인데요?(으쓱으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