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도시락의 시간 - 도시락으로 만나는 가슴 따뜻한 인생 이야기
아베 나오미.아베 사토루 지음, 이은정 옮김 / 인디고(글담)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 사진은 책정보에서 퍼온 것입니다. 책 속에는 맛있는 요리가 많이 나옵니다.
한 사람에 대한 편견이 일관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나는 운전을 아주 잘 하게 생겼고 요리라고는 계란 후라이와 라면, 밖에는 못 하게 생겼다, 는 말을 수없이 들어왔다. 그러나 나는 차를 아주 무서워하고 계란 후라이와 라면 외에도 수십가지 요리를 할 수 있다. 조금 자랑하자면, 가사 전반에 능한 편이다. 처음엔 실리적인 이유였다. 맞벌이인 부모님과 터울 있는 언니와 남동생. 집은 거의 늘 휑했고 엄마의 수고를 덜어드릴까 해서 설거지를 시작했고 칭찬에 힘입어 빨래를 개고 누룽지를 만들고 콩나물을 다듬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남동생과 아빠의 셔츠 다림질 담당이 되었고 나만의 계란말이를 만들 수 있게 되었고 빨래를 접는 일정한 방법이 생겼다. 언젠부턴가는 하얀 커텐을 사고 싶다는 친구의 말에 "야 그거 빨려면 힘들어"라든지 "이런 니트 옷은 별로야, 올이 잘 풀리거든."라는 말을 하게 되고, 옷구경을 하는 것보다 주방코너에서 어슬렁거리거나, 그립감이 좋은 칼이 가장 갖고 싶은 것이 되기도 했다. 한 친구는 검은 깨가 뿌려진 고구마 맛탕과 간장 떡볶이를 대접받은 후에야 "너 진짜구나."라는 말을 한 걸 보면 정말로 믿지 않았던 것 같다. 그 친구 말로는 이미지와의 갭이 커서 더 안 믿긴다나(친구야, 그러는 너는 요리연구가 저리가라하는 맏며느리 같은 얼굴로 세상에서 가장 밍밍한 라면과 그로테스크하게 태운 계란 후라이를 주지 않았니).
이렇게 대부분은 타의에 의한 익숙함이었으나 반드시 자의가 아닌 것도 아니었다. 다림질을 하는 포송한 느낌이 좋았고(무라카미 하루키의 남자들은 어떤 순서로 다림질을 할까 가끔 생각한다. 나는 뒷날개선부터 다리는데. 자신의 셔츠를 다림질 해서 입는 남자라니, 아르마니나 질 샌더 셔츠 입은 남자보다 백 배는 멋지다) 햇님이 외출할 때 빨래를 대기시켜 햇살 냄새가 나는 게 좋았고 잘 다린 셔츠와 덜렁거리지 않은 단추가 좋았다. 요행히, 색깔별로 옷을 정리하는 정리벽이 있었고 요리란 꽤 흥미로웠다. 칼 쓰는 법이나 채 써는 법을 배운 적도 없고, 하물며 누군가 옆에서 조언해준 적도 없다. 딱히 요리책을 보거나 레시피를 연구한 적도 없고 가끔 간 보는 걸 잊어버린다. 그런데도 생선조림도 불고기도 멸치볶음도 썩 하는 걸 보면 나도 몰랐던 손재주가 있는 걸지도 모른다. 아아, 지금 복잡하고 대단한, 멋진 요리를 상상하고 있다면 그만. 내가 하는 요리는 그저 밥용이다. 대외용 뭐 연인에게 해주는 이벤트 뭐시기 같은 것 아니고. 그냥 밥, 국, 찌개, 밑반찬, 조림, 나물, 볶음 뭐 그런 것들. 이 책에 나오는, 바로 그런 것들이다.
도시락을 싼다. 정겨운 말이다. 점심을 먹는다. 끼니를 챙긴다. 식사를 한다. 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전국의 도시락을 취재하다니. 기발하다기보단 우스꽝스러운 기획이다. 페이지를 넘기다보면 역시 소소하기 짝이 없는 기획이라고 웃음이 나온다. 그런데, 그런데도, 이 기획이 오랫동안 이어지고 책으로 엮여져 나온 이유는 충분히 알 것 같다.
모든 도시락은 위 사진과 같은 구도다. 도시락의 주인의 전신컷, 그리고 도시락의 풀샷. 더하기 약간의 이야기. 신기하게도 도시락과 사람은 어쩜 그리 잘 어울리는지. 아니 어울리지 않아도 어울리게 되는지. 그 사람이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성격을 가졌는지, 어떤 사람을 곁에 두고 있는지, 희한하게도 도시락만으로 짐작이 된다. 도시락의 주인공들은 육체노동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이 또한 재미있다. 나는, 몸으로 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의 눈빛이 좋았다. 일한만큼의 대가를 기대하는 사람들의 정직함과 일찍 일어나 바지런히 생활하는 고단함과 특유의 끈기와 온기가 좋았다. 이들의 도시락에서는, 사치하지 않는 그러나 전혀 부족함 없는 정도, 라는 것이 느껴져서 그것조차 좋았다.
"도시락은 둘이서 먹는 거잖소. 싸주는 사람과 그걸 먹는 사람 둘이서 말이오."
사실 그들의 도시락을 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게다. 아니, 도시락이란 게 원래 그렇다. 도시락을 한 번이라도 싸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어떤 것을 싸야하고 어떤 것을 쌀 수 없는지. 기호를 맞추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만들 때'가 아닌 '먹을 때'의 온도를 고민해야 하니 너무 식거나 굳게 되는 건 쌀 수 없고, 먹기 어렵고 손을 묻혀야 하는 것도 적절치 않고, 그러면서도 영양과 조화를 생각해야 한다. 누군가의 도시락을 일 년 여 넘게 싸본 나로선, 이 도시락 하나하나가 얼마나 어렵고 지극한지 알 것 같아 그만 뭉클해진다.
아마도 나는 그 뒤의 누군가를 보고 있었던 걸까. 주인공들이 직접 싸왔다는 도시락도 꽤 있지만 역시 타인의 것이 더 많다. 어머니, 아내, 남편. 도시락의 주인이 도시락을 싸는 이유는 여러가지일 수 있다. 영양을 위해서, 맛 때문에, 편의를 위해, 절약 하려고, 이동하는 시간에 먹으려고 등등. 그러나 도시락을 싸준 타인의 이유는 하나다. 그 사람을 생각하기 때문에. 누군가를 지극히 생각하지 않고서야 배려하고 사랑하지 않고서야 도시락의 주인공보다 일찍 혹은 비슷하게 일어나 부지런히 식사를 준비한다는 일은 불가능하다. 취재의 주인공이 몇 명이든 도시락의 주인은 그보다 플러스 알파일 것이다. 나는 취재하지 않은, 저 너머의 있는 도시락을 싸는 사람들의 얼굴이 궁금해졌고 그들에게 감명했다.
친구들이 요리를 하는 내가 낯설다고 하는 말은 단순히 이미지 때문만은 아니다. 나는 식사에 큰 의미를 두는 쪽이 아니었고 가끔은 뭔가에 몰두하면 두 끼 정도는 잊어버리기도 한다. 까짓 밥, 하고 생각할 때가 많고 식사 외에는 간식을 거의 먹지 않고 케이크나 빵 등 디저트류도 좋아하지 않아 아마 남들이 보기엔 음식에 대한 욕심이 없는 편으로 비쳐졌을 것이다. 맞는 말이기도 하고 틀린 말이기도 하다. 까짓 밥, 은 진심일 때가 많다. 하지만 내겐, 나만을 위한 요리가 아니지 않았는가. 단지 내가 먹기 위한 것이었다면 아마 그렇게까지 하지 못했을 것이다. 허나 나는 도시락을 싸주고 싶은 사람이 있었고 식사를 챙겨야 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더 맛있는 계란말이를 위해, 더 적절한 도시락 메뉴를 위해, 한 번 더 고민했을 것이고 조금 덜 힘들었을 것이다.
요리하는 남자가 로망이라는, 그러나 정작 자신은 밥 하나 제대로 짓지 못하는 친구도 있다. 자신은 요리할 생각이 전혀 없다면서 그러나 남자는 잘 했으면 좋겠다고 당당히 말하는 그녀는 왜 자신은 해볼 생각을 안 할까. 그것 또한 사랑임을 안다면, 그건 받기만 하겠다는걸까. 나는, 남자든 여자든 할아버지 할머니 어른 아이 누가 되든. 요리하는 사람은 멋지다고 생각한다. 부엌에 서서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은 따뜻하다. 그들은 누군가를 생각하며 더 따뜻하고 더 영양있는 한 끼를 위해 애쓰고 있다는 것. 저기 서있는 사람이 여기 있는 나를 위해 바삐 움직이고 있다는 것. 생각만해도 푸근하다.
지난번 유치원에 다니는 딸아이 도시락을 싸는 날 있었던 일이에요. 그냥 내 마음을 알아줄까 싶어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계란말이를 하트 모양으로 만들어서 딸 도시락에 넣었어요. 그랬더니 집에 돌아온 딸아이가 “엄마! 도시락에 행복 모양이 들어 있었어요!”라고 말하는 거예요. 그 이후로는 딸아이 도시락에 꼭 하트 모양 계란말이를 넣어주고 있죠.
생각해보면 정작 나는 도시락에 대한 추억이 별로 없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쭈욱 급식을 하는 학교로만 진학, 또는 전학했기에. 아, 한 가지 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토요일은 격주로만 급식을 했었다. 몇몇 친구들과 몇 달간 토요일 점심을 싸오기로 했었고 그 때는 대수롭지 않게 엄마에게 말했다. 하하. 집에 있는 걸로만 대충 싸주라니. 그건 친구들을 우루루 데려온 후 우리 먹는 밥에 숟가락만 더 놓으면 되지 않냐는 아빠들 말씀처럼 무심하기 짝이 없지 않은가. 그 때는 뭘 몰라서, 친한 친구들이니까, 끼리끼리 먹는거니까, 정말 그런 마음으로 말했던 것 같다. 부담주기 싫어서, 그러나 나는 자느라 엄마를 도와줄 생각이 없었기에. 엄마도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막상 열면, 나는 늘 말을 잃곤 했다. 엄마는 콩으로 작은 글자를 써주었고 가끔 쪽지를 넣어주시기도 했다. 제육볶음을 하는 날은 대체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작은 상추를 넣어주었고 물티슈와 작은 약병 같은 것에 고추장을 넣었었다. 무겁다며 투덜대는 나를 아랑곳 하지 않고 친구들 것까지 넉넉하게 챙겨주었고 아침에 했을 게 분명한 밑반찬을 쌌었다. 대체 장은 언제보고 음식은 언제했을까. 나는 아침부터 고생한 엄마가 속상해서, 그러나 싹싹하게 대답하지 못하는 내 자신에 화가 났고, 친구들은 하나같이 부러워했다. 엄마도 나도, 사랑한다거나 고맙다거나 하는 말을 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러나 엄마는 도시락을 싸는 것으로, 가끔은 수줍게 하트를 만들어주는 것으로 그 말을 했고 나는 감사하며 맛있게 다 먹고 깨끗하게 씻어가는 것으로 그 대답을 했다. 물론, 친구들이 부러워한다는 말은, 남의 일처럼 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았다(물론 말하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 도시락 안에 모든 것이 담겨있으니까.
이 책에도, 이 안의 도시락에도 모든 것이 담겨있다. 그 사람의 인생이, 그 사람에게 도시락을 싸주었을 다른 이의 마음이.
거창한 것을 말하지 않아도 애써 대단한 척 하지 않아도. 막 지은 밥처럼 따끈하고 달다.
덧) 일본인들은 정말 이렇게 도시락을 쌀까. 굉장히 소박하면서도 가정적이고 생각 외로 가지 수도 많다. 반복되는 몇몇 요리가 흥미롭고, 몇 가지 것들은 컨닝해두었다가 언젠가 만들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