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너 (초판본, 양장)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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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대부분은 스토너와 같은 삶을 산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생의 변곡점이나 죽음의 순간 언저리에나 겨우 그렇게 살 뿐이다. 하지만 스토너는 생의 대부분을 ‘삶’을 살았다. ‘생활’이 아니라 ‘삶‘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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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21-12-29 0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찾았어요 ^^
스토너의 삶이..우리의 삶인 것 같은데...
전. 책 읽으면서 왜케 삶이 짠하다는 생각이 들었을까요?

noomy 2021-12-29 10:30   좋아요 0 | URL
그죠? 정말 짠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던 소설인거 같아요. 생각해보니 제가 저런 글을 쓴 이유도 그거에요. 생활이란 나의 의지가 좀 더 강조된 표현이라면, 삶이란 그런 의지와 더불어 어쩔수 없이 겪게 되는 운명이나 숙명같은 것도 포함된 표현인거 같아요. 스토너같은 삶 말이에요.
 
인생의 허무함에 관한 논고 (개정판)
설지 지음 / 부크크(bookk)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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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 책이 흐트러져 있다. 책상 한쪽엔 넘어질 듯 말듯 탑처럼 아무렇게나 쌓여 있기도 하고. 가만히 보고 있자니 그것들은 둘로 나눌 수 있을듯하다.

한 무리의 책은 실체의 책이다. 그들은 고정, 확신, 불변의 세계를 웅변한다. 과학과 역사 그리고 일부 철학, 소설들. 의식의 미끄러짐을 받쳐 올리는 이런 책들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의심하지 않는다. 좌뇌의 성실함은 한순간도 쉬는 법이 없으며, 자아는 <아테네 학당>의 아리스토텔레스처럼 단단한 땅 위에 서 있다.

나머지는 허무의 책이다. 일부의 종교, 문학, 철학, 신비에 관한 책들. 눈치챘겠지만 <인생의 허무함에 관한 논고>도 이런 책이다. 이들은 무를 지향하며 고정된 것과 실체는 없다고 가늘게 속삭인다. 실체의 책들이 겨우 쌓아놓은 성을 사정없이 허물어 버린다. 마치 아이들이 해변에 쌓아놓은 모래성이라도 되는 양.

삶의 해변에서 우리는 늘 머뭇거린다. 작은 손으로 바닷물 머금은 모래를 한 움큼씩 쌓아올리면서도 근심 어린 눈으로 밀려오는 파도를 바라본다. 안타깝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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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 - 존재하게 되는 것의 해악
데이비드 베너타 지음, 이한 옮김 / 서광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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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너무나 끔찍해서 아예 태어나지 않았다면 더 나았을 것이다. 누가 그렇게 운이 좋은가? 십만 명 중에서 한 명도 찾을 수 없다!” -유대인 속담-

“태어나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러나 태어날 수밖에 없다면, 그다음으로 좋은 것은 우리가 나왔던 곳으로 재빨리 돌아가는 것이다.” -소포클레스

“삶은 비존재의 축복받은 고요를 방해하는, 이로울 것이 없는 사건으로 여길 수 있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존재의 해악에 대한 과거 현인들의 아포리즘에는 냉소와 허무의 감정이 담겨있다. 마찬가지로 이 책은 존재하게 되는 것은 항상 심각한 해악이며 나아가 모든 존재하게 하는 행위는 잘못이라는 논증을 보여 준다. 이는 관념적 서술뿐 아니라 실천적 함의를 가진다는 점에서 충격적인 진술이 아닐 수 없다.

집요하고 정교한 논리의 향연이 펼쳐지지만, 아래 표를 보면 간략하게 그 핵심 논증을 엿볼 수 있다. 존재하게 되는 것은 고통과 쾌락을 수반한다. 고통의 존재는 ‘나쁨’, 쾌락의 존재는 ‘좋음’이라고 볼 수 있다. 반면 비존재에게 고통의 부재는 ‘좋음’, 쾌락의 부재는 ‘나쁘지 않음’이다. 왜냐하면, 부재하는 이득이 박탈될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종합하면 존재하지 않게 하는 것이 더 낫다. 이어 출산하지 않을 의무, 낙태의 찬성, 인류 멸종의 좋음에 대한 결론까지 이끌어낸다.

물론 이런 반직관적인 결론에 대해 수많은 반론이 있으나 저자는 차가운 이성으로 조목조목 반박한다. 게다가 이런 결론은 절대 허무주의가 아니며 오히려 인류애적인 논증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 책은 존재를 개시하는 것은 나쁘지만, 존재의 중단을 옹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경우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삶은 지속할 가치가 있다. 의식적인 존재의 소멸은 개인을 넘어 주변과 사회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악으로 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한때 이런 ‘반출생주의’에 경도된 적이 있었다. 접근 방식이 약간 다르기는 하지만 인류의 존재는 해악이라는 부분은 그때의 생각과 궤를 같이한다. 지금은 생각이 좀 달라지긴 했지만, 완전히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존재하게 되는 것의 해악, 당신은 생각은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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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즈카 오사무의 붓다 - 깨달음의 이야기
데즈카 오사무 지음, 정상교 옮김, 하타 슈헤이 해설 / 바다출판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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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아톰으로 유명한 데즈카 오사무의 만화 시리즈 <붓다>의 주요 장면에 해설을 곁들인 책이다. <붓다>는 1972~1983년까지 연재된 만화로 우리나라에서는 10권으로 번역되었다. 붓다의 일생을 그리고 있긴 하나 저자가 밝혔듯 전기가 아니라 픽션이기 때문에 사실과 다른 창작된 부분이 많다.

아~ 심히 후회된다. 만화책부터 먼저 봤어야 하는데. 이건 마치 수학문제도 보기 전에 답부터 보는 격이니.. -_-;; 뭐 어쨌든 해설서도 나름의 재미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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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동물을 헤아릴 것인가 - 사람과 동물의 윤리적 공존을 위하여
셸리 케이건 지음, 김후 옮김 / 안타레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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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현재 논의되고 있는 동물 윤리의 기본 전제는 행동, 정신 능력이 있는 사람을 포함한 모든 동물의 도덕적 지위는 같다는 입장이다.(단일주의) 셸리 케이건 교수는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단일주의로 동물 윤리가 제대로 논의되기 어려운 상황에 둘 것이 아니라, 사회적 공론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관점에서 이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지금보다 동물을 좀 더 헤아리기 위해서는 오히려 비합리적인 단일주의를 버리고, 동물 윤리의 기본 전제로 상식과 직관에 반하지 않는 ‘제한적 계층주의’를 제안한다. 이는

1. 도덕적 지위에는 (대여섯 개 정도의)계층이 존재한다. (아래 사진 계단 함수 형태. 사람 > 동물군1 > 동물군2 ...)
2. 일반적으로 사람들 사이의 도덕적 지위는 동일하다. (미약한 정신적 능력의 차이는 무시할 수 있다)
3. 정신적 능력이 뛰어난 동물은 같은 동물군 안의 다른 동물들보다 도덕적 지위가 더 높을 수 있다. (개체주의)

와 같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러한 계층의 구분이 무분별하게 자행되는 동물에 대한 부당한 처우를 정당화해주는 논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만약 두 계층의 권리가 충돌한다면 높은 계층의 이익에 좀 더 가중치를 두기는 하지만 그것이 하위 계층의 권리를 무조건 무시하라는 것은 아니다. 권리의 제한에는 좀 더 엄격한 논리가 필요하며 이는 상위계층으로 갈수록 더욱 그렇다. 예를 들어 무인도에서 생존을 위해 인간이 사슴을 잡아먹는 것은 허용되지만, 유희를 위한 사슴 사냥은 허용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현실적인 도덕적 지위에 따라 헤아림의 차등을 두는 것이지 헤아리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현실세계에서 다양하게 맞닥뜨리는 인간과 동물, 동물과 동물에 대한 도덕적 상황 속에서 좀 더 수용 가능한 객관적인 기준을 가지고 대처해야 한다는 실천적 현실주의는 필연적으로 제한적 계층주의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고 저자는 끝을 맺는다.

이상이 이 책의 요약이다. 당신의 생각은 어떠한가?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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