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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허무함에 관한 논고 (개정판)
설지 지음 / 부크크(bookk) / 2019년 10월
평점 :
품절
눈앞에 책이 흐트러져 있다. 책상 한쪽엔 넘어질 듯 말듯 탑처럼 아무렇게나 쌓여 있기도 하고. 가만히 보고 있자니 그것들은 둘로 나눌 수 있을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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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무리의 책은 실체의 책이다. 그들은 고정, 확신, 불변의 세계를 웅변한다. 과학과 역사 그리고 일부 철학, 소설들. 의식의 미끄러짐을 받쳐 올리는 이런 책들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의심하지 않는다. 좌뇌의 성실함은 한순간도 쉬는 법이 없으며, 자아는 <아테네 학당>의 아리스토텔레스처럼 단단한 땅 위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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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는 허무의 책이다. 일부의 종교, 문학, 철학, 신비에 관한 책들. 눈치챘겠지만 <인생의 허무함에 관한 논고>도 이런 책이다. 이들은 무를 지향하며 고정된 것과 실체는 없다고 가늘게 속삭인다. 실체의 책들이 겨우 쌓아놓은 성을 사정없이 허물어 버린다. 마치 아이들이 해변에 쌓아놓은 모래성이라도 되는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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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해변에서 우리는 늘 머뭇거린다. 작은 손으로 바닷물 머금은 모래를 한 움큼씩 쌓아올리면서도 근심 어린 눈으로 밀려오는 파도를 바라본다. 안타깝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