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라와 태양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홍한별 옮김 / 민음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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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다움이란 무엇일까? 소설속에서 누가 가장 인간다웠나? 아니, 누가 인간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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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은 왜 존재하는가? 세상은 왜 무가 아니라 유인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쓸데없는 질문에 헛웃음을 치며 다음 끼니때 뭘 먹을지 고민하는 게 더 의미 있겠다고 말할 것이다. 뭐, 이런 대답도 괜찮다. 형이상학적 물음에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도 좋다. 붓다께서도 제자의 질문에 '독화살의 비유'를 들어 설명하지 않았는가. (한 제자가 붓다께 세상은 영원한지, 몸과 영혼은 하나인지 둘인지, 내세는 있는지 없는지 등을 물었다. 붓다가 대답하길 방금 독화살에 맞은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럼 이 사람이 취해야 할 바는 무엇인가? 독화살이 어디에서 왔는지, 누가 쐈는지 궁금해할 것인가? 아니면 빨리 독화살을 제거해야 할 것인가? 만약 그 사람이 독화살을 제거하지 않고 다른 물음에 집착한다면 독이 퍼져 죽게 될 것이다. 우리가 천착해야 할 일도 그런 고민보다는 현재 당면한 고통의 원인을 파악하고 그것을 끊어내는 데 있다.)

    

그림 1 독화살의 비유


 하지만 인간이라면 최소한 한 번쯤은 그런 질문에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인간의 육체는 유한하지만 그들의 이성은 무한을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삶의 여정 중 인간의 무력감을 절감하여 도저히 의미를 묻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는 순간이 오기도 한다. 물론 존재에 대한 탐구는 인간만이 가지는 지적 유희이기도 하다. 아, 물론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 나오는 고양이님(?)의 말씀대로 인간이란 그저 공연한 일을 만들어 스스로 괴로워하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 책의 저자 짐 홀트는 존재에 대한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많은 현자들을 만나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기록했다. 잠시나마 다음 끼니에 대한 고민은 잊어버리고 이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여보자. 무리인 줄 알지만 최대한 요약해서 인물별로 정리해 보았다.


질문 : 세상은 왜 존재하는가? 세상은 왜 무가 아니라 유인가?


① 아돌프 그륀바움 (Adolf Grünbaum) (1923-2018) 과학 철학자

사진 1 Adolf Grünbaum 2013년


 "세상의 존재 문제는 놀랍거나 수수께끼 같거나 혹은 경외감의 대상이 되거나 불가사의한 일이 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어떤 것, 혹은 다른 것이 존재한다는 말보다 더 경험적으로 평범한 진술이 또 있을 수 있을까요? 존재의 수수께끼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나 철학자들은 존재 이전의 상태에 대해 궁금해합니다. 왜 존재 이전의 무의 상태에서 유가 되었는가? 하지만 내가 보기에 이건 말도 안 되는 질문입니다. 그 이유로 첫째, 우주의 시작인 빅뱅 이전이란 없기 때문입니다. 시간과 공간은 빅뱅 이후에 생겼죠. 둘째, 사람들은 라이프니츠의 충족이유율에 너무 목을 매고 있습니다. 충족이유율이란 어떤 사실에 대해서 반드시 그 이유와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원칙이죠. 사실 이 믿음의 뿌리는 종교, 그것도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시작됐습니다. 무로부터의 창조라는 교리로 무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식하게 된 것이죠. 셋째, 무는 제일 단순하며 실체의 가장 자연스러운 형태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하다고 곧 진리는 아닙니다.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이 멘델레예프의 주기율표보다 단순하다고 그것이 진리인가요? 더 단순한 것이 존재론적으로 사실에 더 가깝다고 생각할 근거는 전혀 없습니다. 따라서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 무는 없으며 세상의 존재는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② 리처드 스윈번 (Richard Swinburne) (1934~ ) 과학 철학자, 종교 철학자

사진 2 Richard Swinburne 하나의 실체(신)가 그 일을 할 것이라고 가정할 때, 한 우주의 특징을 설명하기 위해 

1조 개의 우주를 가정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내 주장은 가장 단순한 설명이 가장 사실에 가깝다는 인식론적 원칙에 기반합니다. 그륀바움은 그 점을 비판하지만 단순함의 원칙은 매우 중요합니다. 과학은 언제나 더 단순한 가설을 지지하죠. 따라서 실체는 가장 단순한 형태로 드러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단순한 우주가 복잡한 우주보다 더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가장 단순한 우주는 아무것도 없는 우주일 것입니다. 그래서 증거 이전에 가장 그럴듯한 확률을 가지고 있는 가설은 유가 아니라 무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무가 아닌 유라는 것인데 그렇다면 존재의 근거는 무엇일까요? 마찬가지로 세상의 존재와 그 존재방식을 설명하기 위한 가장 단순한 가설은 신입니다. 전지전능하고 영원불멸하며 무한한 존재로서의 신 말입니다. 신에 조건을 단다는 것은 또한 단순함의 원칙에서 벗어나는 것이니까요. 우리가 볼 수 있는 모든 것을 담고 있는 가장 단순한 우주는 신에 대한 가설이라는 것이 제가 주장하는 바입니다. 세상은 성스러운 신의 의지의 구현이죠. 그렇다면 꼭 이렇게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신은 어떻게 존재하는가? 사실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거기에 관해서는 어떤 설명도 할 수 없습니다."



③ 데이비드 도이치 (David Deutsch) (1953~ ) 이론 물리학자, 과학사상가

    
사진 3 David Deutsch

그림 2 다중 우주의 슈뢰딩거 고양이. 살아있는 고양이와 죽은 고양이가 다른 우주에 각각 존재한다.



그림 3 다중 우주 모식도


 "저는 우리 우주에 대해 다중 세계 해석을 지지합니다. 평행 우주론, 다중 우주론이라고도 불리는 이 이론은 휴 에버렛 3세에 의해 창안되었으며 양자 역학을 해석하는 하나의 가설입니다. 고전 역학에서는 결정론이 세상을 지배합니다. 예를 들어 공기 중 한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알면 앞으로 그 입자가 가질 위치와 운동량은 결정된다고 보는 거죠. 실제 양자 역학이 대두되기 전까지만 해도 물리학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다 발견됐다고 믿었습니다. 미세한 값만 조정하면 된다고 보았죠. 하지만 미시 세계는 그런 식으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양자 역학에 따르면 입자는 확률로써 존재합니다. 파동으로 존재하는 입자는 관찰에 의해 고정되어 입자로 나타납니다. 정말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사건이죠. 다중 세계 해석은 그렇게 확률로써 존재하는 입자의 모든 확률이 실재한다고 믿는 이론입니다.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살아있는 우주도, 죽어있는 우주도 모두 존재하는 것이죠. 저는 하나의 세상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지 않습니다. 우리의 우주는 다중 우주의 거대한 부분 중 하나일 뿐입니다. 세상에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수많은 실체가 있습니다."



④ 스티븐 와인버그 (Steven Weinberg) (1933~ ) 이론 물리학자

사진 4 Steven Weinberg, University of Texas at Austin


그림 4 자연계에 존재하는 4가지 힘 - 중력, 전자기력, 강력, 약력


 "자연계에는 네 가지 힘이 존재합니다. 물질은 극히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며 대부분은 말 그대로 텅 빈 공간입니다. 이 공간에서 작용하는 힘이 강력, 약력, 전자기력, 중력이죠. 이 네 가지의 힘이 존재를 설명해 줄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전자기력과 약력을 통합하여 1979년 노벨 물리학 상을 받았습니다. 향후 4개의 힘을 모두 통합할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말 그대로 최종 이론의 꿈이지요. 하지만 스티븐 호킹이나 다른 학자들이 최종 이론이 모든 초기 조건을 결정해 줄 것이라 기대하지만 저는 회의적입니다. 양자 역학 자체로는 자연 발생적으로 탄생한 우주에 대해 아무런 설명도 해 줄 수 없으며 존재에 대한 대답은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이 다가갈 수 있는 최대한의 목표가 최종 이론이라 게 제 생각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존재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물리학자들의 능력이 극한에 다다르게 되겠죠."



⑤ 로저 펜로즈 (Roger Penrose) (1931~ ) 수학자, 수리 물리학자

사진 5 Stephen Hawking and Roger Penrose

그림 5 세 개의 세계


 "우주의 본질은 수학입니다. 수학적 실체야말로 추상적이면서도 영원불멸한 것이죠. 다시 말해 인간의 정신과는 독립적인 불변의 수학적 실체가 존재한다는 말입니다. 허황된 망상이라고 생각되겠지만 저 말고도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불완전성의 정리로 유명한 쿠르트 괴델이나 물리학자이자 우주학자인 맥스 테그마크도 그들 중 한 명이죠. 저는 세 가지 세상이 있다고 믿습니다. 바로 플라톤적 세상, 물리적 세상, 정신적 세상(의식의 세상)이 그것이죠. 플라톤적 세상은 수학적 능력을 통해 물리적 세상을 만들어 냅니다. 물리적 세상은 두뇌 화학 작용을 거쳐 정신적 세상을 만들고요. 정신적 세상은 의식적 직관을 통하여 플라톤적 세상을 만듭니다. 이런 순환이 계속되는 거죠. 사실 명칭에서 알 수 있듯 플라톤적 세상이 실체의 근원이고 나머지는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유신론자의 표현대로라면 하나님은 수학자인 셈입니다. 하지만 꼭 신일 필요는 없죠. 수학 스스로 우주를 만들고 유지할 따름입니다."



⑥ 존 레슬리 (John Leslie) (1940~ ) 철학자

사진 6 John Leslie


 "왜 세상은 무가 아니라 유일까요? 존재는 아무런 이유가 없을까요? 실체가 드러나는 데는 우연의 요소만 작용할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실체는 추상적 가치에 의해 좌우된다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사실 이 믿음은 플라톤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플라톤의 주장은 가능성의 필수불가결한 존재의 영역이 있고, 선한 우주가 존재해야 한다는 윤리적 필요성은 그 자체로 우주를 창조하기에 충분한 이유라고 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우주는 선의에 대한 윤리적 필요성에 의해 창조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존재는 선의에 의해 필요한 것입니다. 무한한 정신들 중 하나가 만들어낸 생각의 산물이죠. 제가 이렇게 주장하면 꼭 듣는 반론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실제 우리 세상은 왜 그렇게 의롭지 못하고 악이 가득하냐고. 맞습니다. 우리 우주는 어쩌면 전체적인 선의라는 측면에서 보면 낮은 수준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전혀 있을 가치가 없는 세상은 아닐 것입니다. 예를 들어 루브르 박물관에 모나리자만 있는 것은 아니죠. 다른 예술품들도 존재할 만큼의 가치 이상은 된다는 말입니다."



⑦ 데릭 파핏 (Derek Parfit) (1942~2017) 철학자, 윤리학자

사진 7 Derek Parfit


 "전 오랫동안 실체가 드러날 수 있는 모든 방식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모든 우주적 가능성들 말이죠. 어떤 특별한 모습의 세상이 존재하는 것은 선택자(selector)가 특정한 실체를 선택한 결과입니다. 선택자 이론(Selector Theory)라고도 하는 이 이론은 두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합니다. 첫째, 모든 사실에 대해 왜 그것이 사실인지에 대한 설명이 존재한다(충족이유율). 둘째, 어떠한 사실도 스스로를 설명하지는 못한다.


그림 6 선택자 이론


 도표를 보면서 설명하겠습니다. 존재, 즉 실체로 드러난 우리 우주는 상위 선택자의 선택에 의해 선택된 결과입니다. 모든 사실은 설명을 필요로 한다는 충족이유율에 따른 것이지요. 선택자의 속성은 다양합니다. 단순함, 선의, 충만함, 아름다움, 복잡성 등 모든 가능한 속성이 다 포함됩니다. 각 선택자는 자신의 속성에 따라 실체를 선택하는 거죠. 예를 들어 단순함의 선택자는 실체 단계에서 가장 단순한 무를 선택할 것입니다. 선의의 선택자라면 가치 중심의 세상을 선택할 것이고요. 충만함의 선택자는 가능한 모든 세상을 선택할 것입니다. 만약 선택자라는 것이 없다면 무한한 가능성의 세상에서 임의로 선택된 세상이 실체로 드러나겠죠.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선택자를 선택하는 상위 선택자에 대해 가정해 볼 수 있습니다. 표에서 만약 상위 선택자가 단순함이라면 하위 선택자 중에서 무, 즉 선택자 없음을 선택할 것이고 앞서 말한 대로 선택자가 없으면 임의의 세상이 선택되겠죠. 선의가 상위 선택자인 경우를 봅시다. 그렇다면 하위 선택자로 선의를 선택해야 하는데 이는 처음에 가정한 두 번째 전제조건에 어긋납니다. 스스로를 설명하는 사실을 선택할 수는 없는 것이죠. 다른 속성도 모두 마찬가지로 순환의 오류에 빠지게 됩니다. 충만함이라면 어떨까요. 상위 선택자가 충만함이라면 하위 선택자로 모든 선택자를 고를 것입니다. 이는 하위 선택자가 모든 세상의 가능성을 고르는 것과 같은 것이죠. 모든 세상의 가능성을 취한다는 것은 모든 세상이 모두 완벽하게 구현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윤리적으로 최선인 동시에 가장 악해질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가능한 가득 차 있으면서도 비어있고, 선하면서도 악하며, 혼란스러우면서도 질서정연한 그런 세상이 될 텐데 어떻게 보면 가장 평범한 세상인 것이죠. 그래서 상위 선택자로서 가능한 것은 단순함, 충만함 이 두 가지뿐이며 단순함이 선택하는 세상은 임의로 선택된 우주적 가능성이며, 충만함이 선택하는 세상은 우주적 가능성 중에서 가장 평범한 세상일 것입니다. 사실 임의로 선택된 우주적 가능성은 평범한 가능성과 놀라울 정도로 똑같습니다. 임의로 선택된 우주적 가능성은 특별한 우주적 가능성이 되기보다 평범한 가능성이 될 확률이 훨씬 높기 때문이죠.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실체의 모습이며 우리 우주의 존재 양식입니다."



⑧ 존 업다이크 (John Updike) (1932~2009) 소설가, 시인

사진 8 John Updike, 2006년


 "저의 소설 『이브의 도시(Roger's Version)』를 보면 존재의 수수께끼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우주가 양자 역학 파동을 통해 무로부터 탄생했을 수도 있다고 설명하는 부분이죠. 사실 이런 것들은 일종의 믿음에 가깝습니다. 수학적으로 설명할 수는 있겠지만 나의 부족한 두뇌로는 신뢰하기가 쉽지 않군요. 지구가 한때 완두콩만한 크기로 압축돼 있었다는 사실도 상상하기 불가능한데 하물며 우주 전체는요. 또 다른 얘기를 해볼까요? 무에서 유로 가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한데, 시간은 유 이전에 존재하지 않으니 이에 대해 계속 의문을 갖는 일은 그만두는 게 낫다는 말이 있어요. 이처럼 존재의 수수께끼란 어찌 보면 개의 입장에서 우리 인간의 일을 이해하려는 것과 같을지도 모릅니다. 최소한 현재 인간의 두뇌로는 영원히 풀 수 없는 수수께끼지요. 아시다시피 우리 우주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광활하고 끝이 없는 텅 빈 공간입니다. 그런 공간은 신만 존재할 뿐 아무것도 없는 공간과 같습니다. 어쩌면 신이 그런 지루함이라는 궁지에 몰려 고통스러워하다가 우주를 창조했을지도 모르죠. 풍자시의 한 구절 처럼 말입니다."


 여기까지다. 책의 내용을 최대한 요약해 대화의 형식으로 재구성해 보았다. 존재에 대해 마음에 드는 설명이 있는가? 왜 세상은 무가 아니라 유인지 실마리가 잡히는가? 아돌프 그륀바움처럼 존재란 우연의 산물이며 유에 대한 설명은 아무짝에 쓸모가 없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신이라는 편리한 도구에 모든 것을 다 담을 수도 있다. 지금 이 시대 학문의 왕좌는 과학이 차지하고 있다. 과학은 형이상학적 질문은 접어두고 자연에서 발견한 증거를 바탕으로 우주의 존재를 설명하기 위해 애쓴다. 또는 가치를 중시해 윤리적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이 상상 가능한 설명이며 인간이 가지는 지적 즐거움이기도 하다. 이런 고민도 가끔 해보는 건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매일 알 수 없는 타인과 함께 물리적 실체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지만 근원을 향한 호기심, 모든 것의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 의식에 대한 탐구 등은 호모 사피엔스라면 누구나 지니고 있는 존재의 작지 않은 무게이기 때문이다.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한가?


사진 9 저자 Jim Ho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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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4-09 0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이페이퍼 넘 알차고 꽉찬 과학 문학 종교 철학의 관점 으로본 우주의 탄생 하나님은 수학자 ㅎ세상은 왜존재하는가? 라는 질문은 결국 난 왜 존재하는가? 라는 물음으로 귀결되네요 ^ㅎ^

noomy 2021-04-09 12:59   좋아요 1 | URL
와~ 정확합니다. 제가 언급하진 않았지만 책 말미에 저자의 여러 경험과 생각들이 나오는데요. 인간은 영겁의 시간동안 무로 있다가 우연히 찰나에 존재라는 옷을 입게 될 뿐이고, 결국 우리의 본향은 무라는 얘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deadpaper 2021-04-09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존재한다는게 뭘까요. 예전에 친구가 불꽃은 실제인지 현상인지 묻던게 생각나요

noomy 2021-04-10 11:23   좋아요 0 | URL
그러고 보니 불꽃이라는 것도 아주 옛날에는 기본 물질로 여겨지다가 그 뒤에 플로지스톤 입자의 소모로 생각하다가 현재에는 산소와 결합하는 연소반응으로 정의하는 긴 역사가 있었네요.^^ 그냥 모든 게 관념은 아닐까요? ^^;;

han22598 2021-04-15 0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리처드 스위번과 존 업다이크의 생각과 비슷합니다. 그리고 데릭 파핏이 주장하는 내용은 도표를 보면서 읽었는데도 사실 잘 이해가 안되더라고요 ㅠㅠ (한국어가 맞는것일까??). 갠적으로, 존재이유에 대한 탐구 행위는 지적 유희보다는 인간 본능인 것 같습니다. 누구나...내가 누구인지. 그리고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궁금하고. 왜 살아야하는지도. 오히려 눈앞에 보이는 독을 제거하느라....(물론 중요한 일이죠) 그 독을 품은 화살을 잘 보지 못하고 있는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

noomy 2021-04-15 14:32   좋아요 1 | URL
맞아요 아테네 학당 그림에서 플라톤이 천상의 세계를 가르키고 아리스토텔레스가 지상의 세계를 가르키듯 둘 다 중요한거 같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로저 펜로즈의 생각이 참 신기했고 데릭 파핏은 논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끝판왕인거 같아요. 물론 저도 100% 이해는 안 되지만요 ^^;; 참~ 프로필 이미지 바꾸셨네요. 아이스크림 정말 맛나 보여요 ㅎㅎ
 
향모를 땋으며 - 토박이 지혜와 과학 그리고 식물이 가르쳐준 것들
로빈 월 키머러 지음, 노승영 옮김 / 에이도스 / 2020년 1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아메리카 원주민 포타와토미족 출신의 식물학자 로빈 월 키머러(Robin Wall Kimmerer)가 쓴 에세이다. 두툼한 페이지 가득 소수 토착 부족의 아픈 역사는 물론이고 그들이 대지에 대하는 태도, 토박이 지식과 과학, 자연과 인간의 호혜적 관계에 대해 고민해온 저자의 삶이 담겨있다. 딸들과의 옛 추억에 관한 부분을 읽을 땐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지어졌지만, 찢기고 부서진 자연 앞에 우리가 취해야 할 바를 역설할 때면 강한 생명력을 지닌 인디언 여인이 떠오르기도 했다. 여러 관점에서 볼 수 있는 좋은 책이지만 호혜성의 관계에 집중해서 책 이야기를 할까 한다. 아참! 그 전에 책 제목인 향모에 대해 궁금하실 분이 많을 것 같은데 향모는 식물의 이름이다. 원주민들 신화에 따르면 모든 식물 중에서 윙가슈크라고 하는 향모가 땅에서 가장 먼저 자랐다고 한다. 이들은 향모를 성스러운 풀로 여기며 우리가 댕기풀을 땋듯이 향모를 땋기도 하고 제의를 하면서 태우기도 한다. 

 

 


                             

                                향모 (Sweetgrass)                                           로빈 월 키머러

 


  이 책을 관통하는 단 하나의 키워드를 꼽으라면 자연과 인간의 호혜성이다. 쉽게 말해 서로 주고받는다는 말이다. 조금 강하게 말하면 그렇게 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럼 뭘 주고받는다는 말일까? 자연이나 대지가 우리에게 주는 것은 생각하기가 어렵지 않다. 우리의 생존을 가능케 하는 물, 공기, 식물, 동물 등 자연의 선물이라 불리는 모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은 자연에 무엇을 줄 수 있을까?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감사다. 감사는 인간만이 가지는 특별한 능력이다. 선물로써 받은 모든 것에 대해 우리는 사랑과 존경을 담아 감사를 드릴 수 있다. 이는 자연과의 감정적 유대관계를 강화시킨다. 여러 부족이 모인 하우데노사우니 연맹의 감사 연설은 이를 잘 보여준다. 그들의 학교에서는 한 주를 국기에 대한 맹세 대신 감사 연설로 시작한다. 대상은 자연의 모든 것이다. 어머니 대지, 물, 물고기, 작물, 약초, 나무, 동물, 새, 바람, 우레, 해, 달, 별, 조물주 등. 다음은 책에 언급된 물에 대한 감사 연설이다.


우리의 목마름을 달래고 모든 존재에게 힘과 원기를 주신 세상의 모든 물에게 감사합니다. 우리는 물의 힘이 폭포와 비, 안개와 개울, 강과 바다, 눈과 얼음의 형태로 나타남을 압니다. 우리는 물이 아직 여기에 있으며 나머지 창조 세계에 대한 책임을 다하고 있음에 감사합니다. 물이 우리의 생명에 중요하다는 데 동의하고 우리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물에게 인사와 감사를 드릴 수 있겠습니까? 이제 우리의 마음은 하나입니다.

-p165 

 

 하지만 감사 말고도 찾아보면 우리가 답할 수 있는 선물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알아내는 것이 교육이 목적이라고까지 저자는 말한다. 한가지는 자연이 주는 선물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덜 이용하는 것이 오히려 해로울 수 있다는 말이다. 본문에는 재미있는 사례가 나온다. 바구니 장인들의 요청으로 저자의 학교 대학원생 로리는 수확 방법과 향모 개체의 감소와의 관련성에 대해 연구한다. 그녀는 향모를 수확하는 방법(밑동을 하나씩 뜯는지, 다발째 쥐어뜯는지)이 향모 생장에 차이를 줄 거라는 가정을 세운다. 교수위원회의 무시와 냉소 속에서 진행된 이 연구는 놀라운 결론을 도출한다. 수확 방식은 향모의 개체 수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어떤 식으로든 수확한 곳의 향모는 다시 잘 자라나 전보다 더 번성했고, 오히려 수확하지 않은 곳의 향모는 개체 수가 줄었다. 이는 식물 수확이 당연히 개체군에 피해를 입힐 거라는 위원회의 확신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었다. 향모의 감소는 과다 수확 때문이 아니라 과소 수확 때문이었던 것이다. 과학적으로 이러한 결과를 발생시킨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식물의 수확이 어떤 식으로든 보상 생장을 자극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조상들이 들려준 이야기와 맞아떨어진 것이다. "식물을 섬기며 이용하면 우리 곁에 머물며 번성할 테지만, 무시하면 떠날 것이란다." 물론 다음이 전제되어야 한다. 절대로 절반 이상 취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식물이 다시 나눠줄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할 것이다.

 

 우리는 세상에 대한 책임을 이행해야 한다. 지속 가능한 발전이란 늘 그랬던 것처럼 취할 수 있기만을 바라는 것인지도 모른다. 호혜적 관계를 무시한 인간은 상품으로써 자연을 취하기만 하여 많은 부분 오염시켰다. 파괴되고 착취된 생태를 복원하고 보살피는 돌봄은 우리가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자연에 대한 호혜적 행위일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계적이고 환원적인 시각으로 자연을 볼 것이 아니라 우리 조상들이 가진 존재의 경계를 넘는 전통 지식, 즉 토박이 지식에 대한 존중이 있어야 한다. 책에서는 북아메리카의 오논다가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1880년대에 흰연어로 명성이 높았던 오논다가호는 주변 공장의 지속적인 폐기물 탓에 수은의 농도가 높아져 급기야 1970년 고기잡이가 금지되기에 이른다. 많은 이들이 폐기물의 처리와 땅의 복원을 위해 애썼지만, 호수 정화의 책임이 있는 제조업체들의 수습은 미봉책에 불과했다. 게다가 2010년 연방법원은 토착민의 오논다가호 소유권에 대한 소송을 기각했다. 하지만 노력을 멈출 순 없다. 저자는 말한다. 환경에 대한 절망은 오논다가로 바닥의 메틸수은 못지않은 독성이 있다고. 절망은 우리를 마비시키고 의욕을 앗아간다. 복원은 효과적인 절망의 해독제고 식물은 훌륭한 복원의 매개체가 될 수 있다. 식물을 통한 호수의 복원은 조금씩 그 효과를 드러내고 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글쓰기에 대한 생각을 전한다. 인간만이 가진 언어라는 선물로 옛이야기를 기억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글쓰기의 행위는 우리가 생명 세계와 나누는 중요한 호혜적 행위라고 덧붙인다.

 

 읽는 내내 즐거웠다. 눈앞의 공간은 유정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딱딱한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곳이지만 저자가 안내하는 향모가 자라는 들판, 참취와 미역취가 뒤섞인 공간, 단풍나무에서 수액을 받아 밤새 끓이는 장면, 습지에서 제자들과 부들을 채취하는 모습 등이 상상력을 자극했다. 기회가 된다면 저자가 내미는 하늘거리는 향모 한 다발을 당신도 손을 내밀어 같이 땋기를 바란다.

 

 

참취와 미역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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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1-03-07 21: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구입하구선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데 너무나 따뜻한 리뷰에 언능 손에 잡고픈 조급함만 커지네요!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즐건 한주되십시요!ㅎ

noomy 2021-03-07 22:32   좋아요 1 | URL
보석같은 책인거 같아요. 구입하셨으니까 시간날때 천천히 읽어보세요~^^ 막시무스님 글 평소에 잘 읽고 있어요. 댓글 감사합니다~
 
향모를 땋으며 - 토박이 지혜와 과학 그리고 식물이 가르쳐준 것들
로빈 월 키머러 지음, 노승영 옮김 / 에이도스 / 2020년 1월
평점 :
절판


보석같은 책. 자연과 인간 그리고 그 둘의 관계에 관심이 많다면 꼭 읽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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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챙김의 시
류시화 엮음 / 수오서재 / 2020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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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옳고 그름의 생각 너머>

 

옮고 그름의 생각 너머에 들판이 있다.

그곳에서 당신과 만나고 싶다.

 

영혼이 그 풀밭에 누우면

세상은 더없이 충만해 말이 필요 없고

생각, 언어, 심지어 '서로'라는 단어조차

그저 무의미할 뿐.

 

-잘랄루딘 루미-

  

 이 시는 치열하게 옳고 그름으로 세상을 재단한 10여 년 전 나에게로 보내고 싶고,

 

 

   <그 순간>

 

오랜 세월 동안 당신이

고된 일들과 긴 항해 끝에

자신의 나라, 자신의 섬, 수만 평의 땅, 수백 평의 집,

그리고 자신의 방 한 가운데 서서

마침내 자신이 어떻게 그곳까지 왔나를 돌아보며

이것은 내 소유야, 하고 말하는 순간

 

그 순간 나무들은

당신을 감싸고 있던 부드러운 팔을 풀어 버리고

새들은 다정한 언어를 거두어들이고

절벽들은 갈라져 무너지고

공기는 파도처럼 당신에게서 물러나

당신은 숨조차 쉴 수 없게 될 것이다.

 

아니야, 하고 그들은 속삭인다.

넌 아무것도 소유할 수 없어,

넌 방문객일 뿐이었어, 매번

언덕에 올라가 깃발을 꽂고 자신의 것이라 선언하지만

 

우리는 한 번도 너의 소유였던 적이 없어,

넌 한 번도 우리를 발견한 적이 없어,

언제나 우리가 너를 발견하고 소유했지.

 

-마거릿 애트우드-

 

 이 시는 능력주의에 경도된 20대의 나에게,

 

<혼돈을 사랑하라>

           ·

          (중략)

           ·

너의 혼돈을 사랑하라.

너의 다름을 사랑하라.

너를 다르게 만드는 것

사람들이 너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것

사람들이 너에게 바뀌기를 원하는 것

너를 유일한 존재로 만드는

그것을 사랑하라.


-알베르트 에스피노사, 소설 『푸른 세계』중에서-

 

 이 시는 남의 눈에 맞게 필사적으로 날 바꾸고자 했던 청소년 시절 나에게,

 

<사물들의 경이로운 진실>

 

사물들의 경이로운 진실,

그것이 내가 날마다 발견하는 것이다.

모든 것은 있는 그대로의 것이다.

이 사실이 나를 얼마나 기쁘게 하는지

누군가에게 설명하기는 어렵다.

나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완전해지기 위해서는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지금까지 나는 적지 않은 시를 썼다.

물론 앞으로도 더 많이 쓸 것이다.

내가 쓴 모든 시가 그 한 가지를 말하지만

각각의 시마다 다르다.

존재하는 것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그것을 말하기에,

 

가끔 나는 돌 하나를 바라본다.

돌이 느낌을 가지고 있는지 생각하지는 않는다.

돌을 나의 누이라고 부르며 시간을 낭비하지도 않는다.

 

대신 나는 그것이 하나의 돌로 존재해서 기쁘다.

그것이 아무것도 느끼지 않아서 좋다.

그것이 나와 아무 관계도 아니어서 좋다.

 

때로는 바람이 부는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느낀다, 바람 부는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태어난 가치가 있구나.

 

-페르난도 페소아, <사물들의 경이로운 진실> 중에서-

  

마지막으로 이 시는 지금 여기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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