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라는 사회 - 어른들은 절대 모르는 그들만의 리그
이세이 지음 / 포레스트북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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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고 있기에 이 책에 관심이 갔습니다.

아니, '어린이'들을 보며 잠시 복잡한 생각을 뒤로하고 천진난만함에 빠져들고 싶었습니다.

이미 200만 학부모의 폭발적 공감을 얻었다는데...

저도 충분히 공감할 것 같았습니다.

과연 어른들은 절대 모르는 그들만의 리그.

어떨지 기대해 봅니다.

​

"어른들은 누구나 처음엔 어린이였다.

그러나 그것을 기억하는 어른은 별로 없다"

​

덜 자란 어른과 다 자란 어린이가 만들어낸

가장 완벽하고 조화로운 교실 이야기

​

『어린이라는 사회』



저도 여기저기서 들었던 학부모들의 민원도 있었지만 여기 '학교에 민원 전화를 하기 전에 생각해 볼 것'이라는 제목의 글에 적힌 민원은 같은 학부모이지만 도가 지나침을 느꼈습니다.

​

"우리 애는 매일 세 번씩 칭찬해 주세요", "우리 아이는 예민하니 말씀하실 때 각별히 조심해 주세요", "장염에 걸렸으니 죽으로 먹여주세요", "선생님, 프로필 사진이 부적절하네요. 내려주세요", "애를 안 낳아봐서 모르시나봐요". "애 아빠가 화가 많이 났어요", "담임 휴대폰 번호 알려주세요", "교사 생활 못 하게 만들겠습니다"

​

등등.

실제 우리네 초등학교 교실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진정 부모의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

​

이 책은 10년 차 초등학교 교사가 목격한 어린이들에 대한 기록이었습니다.

어린이는 미숙하기에 그들끼리 만나면 울고불고 싸우고 혼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렇게 몸부림을 치면서 자신의 세상을 팽창시키고 있었습니다.

예민한 아이는 부딪치며 둥글게 사는 법을,

칭찬은 기분을 좋게 하기 위해 공평하게 분배하는 게 아닌 칭찬을 받고 싶다면 노력을 통해 성취해야 함을,

다른 사람들과 맞물려 살아가는 법을 배우며 좋은 어른으로 성장해 나가고 있었고

그런 아이들을 위해 어른들이 줄 수 있는 사랑은 넘어지지 않게 업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

'마음껏 넘어질 자유를 보장하고 다시 일어서는 방법을 알려주는 일'

​

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이 책을 통해

​

"참견쟁이 어른들은 어린이들의 사회에 들어오지 말라"

​

는 따끔한 일침을 전했습니다.

​

저도 이 아이가 좋았습니다.

눈이 뱅글뱅글 돌아갈 듯 두꺼운 연두색 안경을 쓴 아이, 찬영.

얼마든지 거슬릴 수 있을 또래 친구들의 말에도 화를 내는 법이 없는, 그렇다고 무작정 헤실헤실 웃는 것도 아니라 수용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제법 진지하고 단호하게 할 말을 할 줄 아는 아이.

'가방 없어진 날'에 대한 일기를 썼는데...

​

학교 끝나고 친구들이랑 놀았다. 경찰과 도둑 놀이도 하고 그네도 탔다. 그런데 아까 의자에 놓아두었던 가방이 사라졌다. 그런데 아까 의자에 놓아두었던 가방이 사라졌다. 나는 경찰에 신고를 하고 싶었지만 내 잘못을 먼저 생각했다. '그래... 집에 가방 먼저 갖다 두지 않은 내 잘못이야.' 집에 가서 엄마와 상의하여 가방을 새로 준비했고 물건도 다 챙겨 넣었다. 다음부터는 가방을 잘 챙겨야겠다.

​

어멋!

나보단 남의 탓으로 돌리기에 급급한데 말입니다.

오늘도 욱했던 제 자신을 반성하게 해 주었습니다.

​

그리고 인상적인 이야기가 있었는데...

부모가 온종일 아이를 밝게 비추고 있다면 교사는 그 뒷면을 본다고 하였습니다.

특히나 교사는 같은 나이의 아이를 스무 명 이상 모아놓고 그들이 만들어가는 관계와 행동을 보고 그 과정에서 한 아이로 인해 교실 안의 모두가 미치기 직전이거나 개성으로 치부하기 어려울 정도로 현저한 특이점이 있을 때, 더불어 교사가 그 아이에게 모종의 애정이 있을 때 할말을 고르고 골라 입을 연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교사로부터 권유를 받게 된다면 속는 셈 치고 해 보시길...

​

아이는 아직 어리고 모든 권한은 부모에게 있으므로 문제 행동을 대하는 학부모의 태도에 아이의 거의 모든 것이 달려 있다. 부모가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라고 느껴지면 교사는 그 뒤로 곧장 입을 다물어버리는데 그건 양육의 관점에서 결코 유용한 전략이 아니다. 아이의 뒷면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있는 기회조차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아직은 어린아이들이지만, 그들의 모든 행동에 '아직 어려서'라는 딱지가 유효한 건 아니다. 아이가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한다면 차마 무엇이 문제일지 겁이 나서 들춰보고 싶지 않을 뿐이라는 마음을 인정하고 담대하게 문제 상황에 직면해야 한다.

나는 그때 민건이 어머님께 더 이상 아무 말씀도 드리지 못했고, 그 후 학교를 옮겼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그 애가 친구들을 향해 식칼을 들었다는 소문을 들었다. - page 88 ~ 89

​

책을 읽으면서 '교육'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랑만 받을 거라면 집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그만일 것이고 구구단만 배울 거면 집에서 인터넷 강의를 들으면 됩니다.

그럼 집에 있으면 교육이 되는 것일까...!

불편한 일을 스스로 해결하도록 하고 안 되는 일에 좌절했다가 극복하는 법을 가르치는 일이야말로 교육이 아닌가.

교육의 목표가 '독립'이라는 것을!

저도 새겨봅니다.

​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한 이야기.

​

교사에게 모든 걸 '해달라'고 요구하지 말고, 아이가 할 수 있도록 교육하길 바란다. 직접 교육하기 힘들면 교사에게 가르칠 권한이라도 허락하길 빈다. 목이 마른데 물이 없으면 선생님께 얘기하라고 가르치고, 체육 수업 때 하는 활동이 너무너무 힘들면 선생님께 직접 말씀드릴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힘든 일을 대신해 주는 게 사랑이 아니다. 언제까지 대신해 줄 건가. 스무 살? 쉰 살? 부모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평생 대신해 주거나 적당한 시기에 가르치거나. 만약 후자를 선택할 거라면 지금이 적기다. 심지어 어린이들은 말도, 자전거도, 삶의 태도도 훨씬 빨리, 잘 배운다. 아이를 과소평가 하지 마라. 당신의 자녀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유능하다. - page 264 ~ 265

​

부모의 역할 역시도 자식이 '독립'할 수 있게끔 하는 것임을.

그러니 무한한 사랑을 주는 대신 그들의 서툰 시도와 실패에 응원해야 함을.

​

난 널 믿어!

​

이 믿음과 응원과 사랑을 담아 아이의 성장을 기다려주는 부모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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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무인 사진관 ㅣ 이상한 무인 가게 시리즈 4
서아람 지음, 안병현 그림 / 라곰스쿨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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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아쉬웠지만, 이제 내일을 기약할 차례였다.

"그래서, 다음은 어떤 가게지?"

​

10주 연속 베스트셀러이자 교사와 어린이들이 추천하는 '이상한 무인 가게' 시리즈.

이번엔 원하는 모습으로 바꿔주는 신비로운 사진기가 가득한 무인 사진관을 배경으로 말 못 할 고민을 가진 아이들을 위해 나타났습니다.

그동안

『이상한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에서는 달콤한 아이스크림으로,

『이상한 무인 문구점』에서는 신비한 문구류로,

『이상한 편의점』에서는 기발한 먹거리로

아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는데...

이번엔 또 어떤 고민들이 어떻게 해결될지 기대하며 아이와 함께 읽어보았습니다.

​

"집사용 캣 스마일·좋아요 인싸포토

나이를 바꾸는 어른네컷

원하는 모습으로 찍어 드립니다"

​

『이상한 무인 사진관』



"카메라 보시고, 입가에 미소! 좋습니다." - page 6

​

이 사진관에 오기 시작한 지도 60년째.

10년 전 이곳에서 사진을 인화할 때는 꼬박 하루가 걸렸었고

그로부터 10년 전에는 사흘,

그로부터 10년 전에는 일주일...

세상은 분명 몰라보게 좋아지고 있지만 10년마다 찾아오는 사내아이는 늙지 않았습니다.

​

"다른 사람들은 외모의 변화로 세월을 실감하지만 난 그럴 수 없으니 사진이라도 남겨야지. 이걸 하지 않으면 언젠가 내 나이조차 잊어버리고 말 거야."

"저번에 듣기로는 백 살이 넘었다고 하셨지요?" - page 10

​

처음엔 사내아이가 늙지 않는다는 사실에 무서웠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담담하게 받아들이게 된 사진관 주인.

전통적인 사진관이 설 곳이 없는, 전부 무인 사진관으로 바뀌고 있는 흐름 속에 주인 역시도 이 사진관 문을 닫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내아이는 사진관 주인에게 툭 던지듯 물어보는데...

​

"자네, 은퇴 비용은 충분히 있나?"

"네?"

"이 가게 말이야, 나한테 팔지 않겠나?"

사내아이는 카메라를 바라보며 씩 웃었다.

"나한테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거든." - page 11



늙은 사진관이 있던 자리에 카메라 모양을 본뜬 깨끗한 새 건물.

문 옆에는 작고 네모난 팻말이 붙어 있었습니다.

​

무인 사진관

여러분이 원하는 모습으로 찍어 드립니다!

​

발자국이 새겨진 은색 발판에 올라서면 렌즈처럼 생긴 문이 열리고 천장에 달린 스피커 속 인물과 거래를 하게 됩니다.

​

-우리 가게는 돈을 받지 않아. 대신 꿀팁을 받지. 사진 잘 찍는 너만의 꿀팁.

​

그렇게 무인 사진관에 방문한 친구들의 사연이 그려지는데...

엄마의 간섭에서 벗어나 어른이 되고 싶은 '우주'에게 '어른 네컷' 사진을,

SNS 인플루언서가 되어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싶은 '지유'에게 좋아요 생성 '인싸 포토'를,

빨리 키가 커서 더 이상 친구들에게 놀림당하고 싶지 않은 '우람'이에게 '롱롱 필림'을,

고양이가 나만 따랐으면 하는 '시아'에게 집사 전용 '캣 스마일' 사진을,

하루 종일 게임만 하고 싶은 '민호'에게 '레전드 프로게이머 폴라로이드'를,

남자 친구를 사귀어보고 싶은 '지수'에게 '커플 탄생 러브러브 머그잔'을

찍어줍니다.

과연 아이들은 이곳에서 사진을 통해 원하던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요?

​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야.

행복은 이미 네 곁에 있단다."

​

역시나...!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 품어봤을 바람과 행복에 대한 고민들이었고 무조건 고민이 해결된다고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특히나 이들이 찾은 '행복'은 자신의 곁에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일러주었습니다.

​

아이는 책 속의 친구들 중 '전우주'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고 했습니다.

엄마 잔소리가 듣기 싫다고, 빨리 어른이 되어서 공부를 하고 싶지 않다고 했던 아이.

우주를 통해

무조건 나이만 먹는다고 해서 좋은 게 아니구나!

어른이 되면 할 수 있는 게 많아지는 만큼 알아야 할 것, 해야 할 것도 많다는 사실에

지금의 자신이 제일 좋다며 오히려 나이 먹기 싫다고 외치는 아이.

그 모습이 참 귀여웠습니다.

​

저에겐 마지막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림자와 함께 사진을 찍던 사내아이.

하지만

​

"내가 사진에 찍힐 거라고 생각했나?"

"뭐, 기대는 했지. 사람들이 그러더군. 사진은 흘러가는 시간을 잡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어쩌면 그림자의 정체는 바로 '시간' 그 자체가 아닐까' - page 148

​

이 묵직한 한 마디를 남기고 다시 이들은

​

"자, 다음 가게를 찾으러 가 볼까?" - page 149

​

다음엔 어떤 가게로 우리 앞에 나타날지 기다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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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거 그려서 20년 살아남았습니다 - 좋아하는 일, 꾸준히 오래 하면, 생기는 일
정헌재(페리테일) 지음 / 아워미디어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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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002년 《포엠툰》

2003년 《완두콩》

을 기억하는가?

​

네!

《포엠툰》을 마주했을 때 적잖이 충격이었습니다.

'사랑'이 가진 다양한 얼굴을 서정적인 글과 감성적인 그림으로 그려냈는데...

지금도 제 책장에서 마주할 수 있는 책.

그래서 이 책을 마주하자마자 반가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엔 어떤 이야기로 감동을 선사할지 기대하며 읽어보았습니다.

​

단행본 12권·다이어리 17권·어린이 책 5권 만들어서

100만 부 판매고를 올린 베스트셀러 작가,

웹툰 연재하고, 캐릭터 사업도 하는 멀티플레이어,

글 쓰고 그림 그리고 사진 찍는 일을 20년 넘게 한 '귀여운' 인내심 장착자.

​

"어떻게 하면 오래 일할 수 있을까?"

불안의 파도를 타며 인생을 음파음파 '귀엽게' 항해하는 법

"아!! 계속하면

살아남는구나."

​

『귀여운 거 그려서 20년 살아남았습니다』




 




"나는 뭐로 살아남았나?"

​

이 책은 이 질문에서 시작했다고 합니다.

​

"그림 그리고 글 쓰고 노래 부르며 살고 싶습니다."

"그거 해서 먹고살 수 있나?"

​

라고 묻는 주변인들의 걱정에 응답한 저자(페리테일)의 'well-being 생존기'.

​

60개의 이야기는 귀엽지 않았습니다.

넉넉지 않은 집안 환경, 평생 앓아온 극심한 아토피, 눈 수술(인공수정체를 흰자에 묶어 고정하는), 거절당하는 작가로서의 삶, 당장 망할 것 같은 불안감 등 이야기를 채우는 소재는 불행과 잔인함에 가까운 '신세 한탄용'이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20여 년차 웹툰 작가의 내공이 빛을 발하게 됩니다.

'인생의 높낮이를 조절하는 능력!' 덕분이라 말한 그.

​

처음에는 조금 붕 뜨기는 했지만

금방 제자리를 찾은 것 같습니다.

너무 높게 날지 않아서 떨어져도

죽을 만큼 다치지 않았고

낮게 나는 대신 최대한 힘을 쓰지 않고

딱 쓸 만큼만 써서

빨리 지치지 않았습니다.

낮게 나는 대신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곳에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낮게 나는 대신 언제나 원하면

바닥에 발을 딛고 천천히 걸으며

쉬었다 갈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높이 날지는 못하지만

낮게, 그리고 오래 행복하게 날고 있습니다. - page 369 ~ 371

​

며 또 다른 형태의 '갓생'을 보여주었습니다.

​

덕분에 '귀엽다'라는 말이 사람, 동물, 식물, 사물 등 생물과 무생물의 경계 없이 라벨링될 수 있음을, 이토록 다정한 위로가 될 수 있음을 저자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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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태어나는 당신에게 - 두 시인이 한 예술가에게 보내는 편지
박연준.장석주 지음 / 난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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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준 시인과 장석주 시인이

함께 길을 걸으며 서로의 삶을 나누고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 (2015)

책을 읽으며 서로를 마주보고 『내 아침 인사 대신 읽어보오』 (2017)

썼던 두 권의 산문집을 지나 이번 세 번째 산문집.

이미 세상을 떠난 열여덟 명의 예술가에게 편지를 썼다고 하였습니다.

같은 이에게 쓴 편지이지만 사뭇 다른 두 시인의 편지.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

"도무지 죽지를 않는 사람들.

계속 태어나는 사람들.

새 예술가를 탄생하게 만드는 존재들."

박연준 시인과 장석주 시인이 예술가 18인에게 바치는 편지

​

『계속 태어나는 당신에게』



 


책은 앞표지와 뒤표지의 구분이 따로 없었습니다.

박연준 시인의 글과 장석주 시인의 글이 양쪽에서 독립적으로 시작되어 마치 서로 다른 두 책을 붙인 것과 같았습니다.

그리고 두 시인이 평생을 애정하고 존경해온 열여덟 명의 예술가들을 불러들였습니다.

에릭 사티, 프랑수아즈 사강, 바츨라프 니진스키, 김소월, 존 버거, 버지니아 울프, 빈센트 반 고흐, 알바 알토, 프란츠 카프카, 페르난두 페소아, 실비아 플라스, 권진규, 나혜석, 로맹 가리, 배호, 장국영, 다자이 오사무, 그리고 박용래까지.

그들에게 자신의 내밀한 아픔과 외로움, 고독과 즐거움을 고백하는 두 시인의 편지는 읽고 있노라면 어느 순간 그 공간 속에 저도 함께하는 듯한 느낌을, 그리고 그 감정을 공유할 수 있었습니다.

​

당신과 각자 다른 방에서 같은 이름을 부르던 시간은 즐거웠습니다.

우리는 취향도 생각도 열렬히 다른데

웬일인지 이 열여덟 명의 예술가 앞에서는 마음이 하나로 포개졌지요.

당신과 함께 그들을 추억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좋았어요. - page 163, 박연준

​

'바츨라프 니진스키'에게 쓴 편지로부터 그를 알게 되었는데...

작은 키에 짧은 팔과 다리를 가졌지만 무대를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모습, 높이 비상하는 모습, 바닥으로 떨어져내렸다가 다시 도약할 땐 흡사 공처럼 힘차게 솟구쳐올라가는 그의 모습...

니진스키의 등장으로 발레리노는 발레리나를 돕는 역할에서 벗어나 무대의 주역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던 그.

하지만 발레단을 꾸려 유럽 순회 공연을 하던 당대 무용계의 권력자인 디아길레프와의 만남과 불화, '니진스키 발레단'을 창단해 유럽 무대에 선을 보이지만 실패,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아내와 어린 딸을 데리고 스위스의 생모리츠로 피신......

이런 불행과 절망은 그의 삶을 속절없이 꺾인 꽃대처럼 쓰러뜨렸는데...

​

저는 당신을 느낍니다. 당신이 쓴 시를 읽으며 눈물을 흘립니다. 당신을 '느끼기' 때문이지요. 당신을 미쳤다고 생각하는 아내를 보며, 당신은 생각하지요. "그때 아내는 어느 누구보다 나를 사랑했지만, 나를 느끼지는 못했던 것"이라고. 느낀다는 것은 이해보다 생각보다 당신에게 중요한 것, 앞선 것이었지요.

​

저는 당신의 춤을 보지 않고도 이미 압도당한 관객입니다. 당신을 느끼는 한 명의 사람입니다.

​

니진스키, 진짜 재능은 자신을 느끼는 거예요. 자기 안의 사랑을요! - from. 박연준

​

당신의 삶은 가난과 불운에 잠식당하고, 세기를 거칠게 윽박지르는 혁명과 전쟁의 와중에 걸쳐져 있지만 그런 재난이 무용에 대한 당신의 재능을 빼앗을 수는 없었어요. 마치 살 속에서 부러진 뼈가 튀어나오듯이 춤은 당신의 몸에서 붉은 동백꽃처럼 바깥으로 불거졌지요. 당신의 누이가 말했듯이 당신에게 무용은 신앙이요, 생명이요, 영혼이었지요. - from. 장석주

​

이 책과 결이 같았던 '존 버거'.

​

편지를 쓰는 동안 당신이 곁에 있다고 상상해봅니다.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 서문에 당신이 이렇게 썼잖아요. "죽은 이들이 결코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다는 건 여러분도 나만큼-아니 어쩌면 더- 잘 알고 계십니다.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귀기울여 듣는다면 망자들은 어떻게든 우리를 도와주려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마땅히 귀를 기울여야 하죠. 그렇지 않은가요? (겉으로야 아닌 척하더라도 말이죠.)" 단순히 '떠도는 영혼'으로서 죽은 이들을 말하는 게 아니란 걸 알아요. 당신이 제게 그렇듯 죽은 사람은 영영 사라진 사람이 아니죠. 종종 그들의 이야기가 들려요. 그들이 우리를 돕죠. 그들과 때때로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요. 저는 당신이 써놓은 이야기에 둘러싸여 시간을 보내는 걸 좋아합니다.

...

존, 당신의 말처럼 창작자는 관찰된 무언가를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계산할 수 없는 목적지에 이를 때까지 그것과 동행하기 위해" 움직이는 자예요. 만약 제가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엄마와 아이에 대해 써야 한다면 저는 두 사람을 둘러싼,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보려고 애쓸 거예요. 그게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더듬더듬 만져보며, 목적지(글의 완성)에 다다를 때까지 "동행"할 거예요. 작가는 자기가 전하는 이야기와 끝까지 동행하는 자여야겠죠. 당신의 말대로 이야기꾼은 "듣는 사람"이어야 하고요. - from. 박연준

​

지금 여기의 시간은 당신이 살아보지 못한 미래입니다. 하지만 미래란 지금 이곳에 도래하지 않은 시간이 아니라 이미 와 있지만 그 성김으로 우리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는 시간입니다. 오늘 속에서 미래의 기척을 감지하는 사람들! 그렇습니다. 미래가 오늘에 스미고 섞인 내일의 성분들이라면 소수의 사람들은 제 예민한 직관으로 충분히 선취할 수 있는 시간인 겁니다. 밤하늘 가득한 별자리 아래서 쓴 이 편지는 미래가 과거에게 보내는 것이지요. - from. 장석주

​

각자의 길을 가는 도중에도 언제나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던 두 시인.

​

당신과 내가 쓴 편지들이 야만의 세상에 선한 영향력이라는 작은 파문을 만들기를 바랍니다. 한 해 중 어둠이 가장 긴 동지의 깊은 곳 모란과 작약이 꽃망울을 피우려는 기척 속에서 당신에게 편지를 쓰고 싶은 순간이 지나갑니다. - page 159, 장석주

​

정말 읽는 이의 마음에 자그마한 빛들이 반짝이기 시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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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번관에 어서 오세요
카노 토모코 지음, 김진희 옮김 / 타나북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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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주로 추리 작품을 쓰는 작가지만 피가 난무하는 잔인한 살인 사건을 많이 다루지 않고 오히려 판타지풍의 작품을 포함하여 일상의 수수께끼를 풀어 가는 부드러운 소재를 선호하는 일상 미스터리의 명인 '카노 토모코'.

이번 소설은 원래 작가가 단편, 혹은 중편으로 기획했지만 어쩌면 스케일이 더 큰 이야기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편집자의 권유로 장편소설로 재탄생했다고 합니다.

​

"팍팍하게만 느껴지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언제나 위안거리가 필요하다. 피곤한 하루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기 전, 처리할 일들로 머리가 복잡할 때, 산적한 문제들을 다 잊고 잠시나마 근심을 내려놓고 싶을 때...... 그런 순간에 가볍게 집어 들어 술술 읽고 개운한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소설이다."

​

슬슬 무더위로 지쳐가는 요즘.

잠시나마 이 소설을 읽으며 저도 개운한 기분을 느껴보고자 합니다.

​

사회에서 소외된 4인조가 남쪽의 외딴섬에서 공동생활을 시작한다?!

​

『210번관에 어서 오세요』



어어 하는 사이에 나는 부모님에게 버림받고 말았다. - page 5

​

순풍에 돛 단 듯까지는 아니어도 큰 실패 없이 그럭저럭 해나가던 인생을 살던 '나'.

그래서 취직도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낙관하고 있었습니다.

그까짓 거 하면 다 돼!

지극히도 철저하게 짧은 생각이었음을...

​

정보 공개와 동시에 메뚜기 떼처럼 밀려드는 구직자들.

이들을 촤륵 촤륵 체로 거르는 기업.

겨우 면접까지 가도 엄청난 압박 면접에 자존심이 너덜너덜해지고 그 끝은 '기원 메일' 한 통으로

"이번 당사에 지원해 주셔서"로 시작해서

"아쉽게도 이번에는"으로 이어져

"앞으로의 활약을 기원합니다."로 끝나는 그거...

​

주구장창 기원만 받는 것에 피폐해진 내가 도망친 곳은 인터넷 속의 가상 세계, 이른바 넷게임이었습니다.

인터넷 게임은 내 마음을 구원해 주었지만 발목을 잡은 것 또한 인터넷 게임이었으니...

​

이게 아닌데. 어쩌다 이렇게 됐지? 남들처럼 평범하게, 무난하게 살면 특별히 큰 문제 없이 남들처럼 살아갈 수 있는 거 아니었나?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렇게 해도 괜찮았는데. - page 9

​

게임이 세상의 전부가 된 나.

영락없는 백수에, 인터넷 게임 폐인이었습니다.

한 통의 편지가 오기 전까지...

​

엄마가 진지한 얼굴로 편지 한 통을 가지고 나에게 왔습니다.

변호사 사무실에서 보낸 등기 우편.

내용은 돌아가신 큰외삼촌께서 나에게 유산을 남겼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외딴섬에 지어진 건물 하나를 통째로, 그와 관련해서 상속 절차를 밟아야 하니 변호사와 함께 현지로 가야 한다고 적혀 있었던 겁니다.

이건 굴러들어 온 행운이라 여긴 나.

신이 나 섬으로 내려갔지만 아직 그것이 부모님의 최후통첩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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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한테 의지하지 말고 자신의 힘으로 길을 개척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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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닷없이 시작된 강제 독립생활.

어떻게 해서든지 현금을 손에 넣지 않으면 순식간에 벼랑 끝에 몰릴 것이 뻔하기에 급한 대로 금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숙인을 모집하기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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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속으로 즉시 210번 계획을 세웠다. 2와 10, 그래서 니트(2와 10을 합쳐서 니토라고 발음할 수 있는데, 백수를 뜻하는 니트족과 발음이 같다). 시시한 말장난이다. 기세를 몰아 내 '건물'도 <210번관>이라고 명명한다. - page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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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탕·화장실 공동, 소재지는 외딴섬, 인터넷 환경만 있음.

이런 건물에 들어와 줄 사람이 있다면 히키코모리 오타쿠나 백수 정도일텐데 역시나 210번관에

엄마 손에 떠밀려 섬으로 온 백수 히로

의사가 없는 섬에 꼭 필요한 전직 의사 백수 BJ씨

돈 많은 한량 카인 씨

가 방문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이들의 게임 속 세상에서 조금씩 현실의 세계로 확장하기 시작하는데...

길을 잃었던 백수들의 조심스러운 첫발, 결국 스스로의 힘으로 개척해나가는 이들의 행보를 같이 해 보는 건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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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금의 나는 알고 있다. 가능한지 아닌지는 결국 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정들면 고향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시험 삼아 한번 와보는 것도 의외로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러니까......

받은 메일마다 이렇게 답장을 보내리라...... 혹시 그런 일은 없겠지만, 모든 방이 다 차지 않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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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번관에 어서 오세요. 저희는 언제든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라고. - page 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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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뻔한 스토리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들을 바라보면서 응원하게 되고 희망을 엿볼 수 있었고 간만에 사람들의 온기를 느낄 수 있었기에 덕분에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살 만한 이유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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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냥 이들을 비난할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사회가, 우리의 시선을 우선 되짚어야 했습니다.

그전에 스스로를 다잡아야 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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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인생은 마음대로 되는 것 하나 없고, 앞길을 가로막는 난문이 사방팔방에 널려 있다. 까놓고 말해서, 인생 꽝이다. 하지만......

어떤 험한 길도 거침없이 달리는 오프로드 차를 타고 있는 것 같은 사람들을 부러워해 봤자 소용없다. 나는 그걸 갖고 있지 않으니까. 이 빈약한 몸뚱이 하나로 앞길을 방해하는 돌들을 하나씩 치워 나가는 수밖에 없다. 아무리 불안하고 보잘것없어도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 page 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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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초조해할 것 없어. 어차피 부족한 것투성이니까, 확실히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면 돼.'

'한 걸음 한 걸음 조금씩이라도 확실하게 앞으로 나아가면 돼. 멈춰 버리면 목적지는커녕 근처 편의점에도 못 가는 거야.'

그러니 조금씩 나아갈 수밖에 없음을.

혼자가 두렵다면 손을 내밀어 같이 나아가면 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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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아직 아무도 플레이한 적 없는 게임 같은 거니까. 뉴비를 노리는 적도 출현할 것이다. 강한 최종 보스는 엄청나게 강하기도 하리라. 플레이어 중에는 나쁜 놈도 있고 짜증나는 놈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 힘을 합쳐 미션을 완수했을 때의 쾌감도 분명히, 틀림없이, 특별한 것이다. - page 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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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210번관에 놀러 가고 싶었습니다.


        책키라웃과 타나북스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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