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번관에 어서 오세요
카노 토모코 지음, 김진희 옮김 / 타나북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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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추리 작품을 쓰는 작가지만 피가 난무하는 잔인한 살인 사건을 많이 다루지 않고 오히려 판타지풍의 작품을 포함하여 일상의 수수께끼를 풀어 가는 부드러운 소재를 선호하는 일상 미스터리의 명인 '카노 토모코'.

이번 소설은 원래 작가가 단편, 혹은 중편으로 기획했지만 어쩌면 스케일이 더 큰 이야기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편집자의 권유로 장편소설로 재탄생했다고 합니다.

"팍팍하게만 느껴지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언제나 위안거리가 필요하다. 피곤한 하루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기 전, 처리할 일들로 머리가 복잡할 때, 산적한 문제들을 다 잊고 잠시나마 근심을 내려놓고 싶을 때...... 그런 순간에 가볍게 집어 들어 술술 읽고 개운한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소설이다."

슬슬 무더위로 지쳐가는 요즘.

잠시나마 이 소설을 읽으며 저도 개운한 기분을 느껴보고자 합니다.

사회에서 소외된 4인조가 남쪽의 외딴섬에서 공동생활을 시작한다?!

210번관에 어서 오세요



어어 하는 사이에 나는 부모님에게 버림받고 말았다. - page 5

순풍에 돛 단 듯까지는 아니어도 큰 실패 없이 그럭저럭 해나가던 인생을 살던 '나'.

그래서 취직도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낙관하고 있었습니다.

그까짓 거 하면 다 돼!

지극히도 철저하게 짧은 생각이었음을...

정보 공개와 동시에 메뚜기 떼처럼 밀려드는 구직자들.

이들을 촤륵 촤륵 체로 거르는 기업.

겨우 면접까지 가도 엄청난 압박 면접에 자존심이 너덜너덜해지고 그 끝은 '기원 메일' 한 통으로

"이번 당사에 지원해 주셔서"로 시작해서

"아쉽게도 이번에는"으로 이어져

"앞으로의 활약을 기원합니다."로 끝나는 그거...

주구장창 기원만 받는 것에 피폐해진 내가 도망친 곳은 인터넷 속의 가상 세계, 이른바 넷게임이었습니다.

인터넷 게임은 내 마음을 구원해 주었지만 발목을 잡은 것 또한 인터넷 게임이었으니...

이게 아닌데. 어쩌다 이렇게 됐지? 남들처럼 평범하게, 무난하게 살면 특별히 큰 문제 없이 남들처럼 살아갈 수 있는 거 아니었나?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렇게 해도 괜찮았는데. - page 9

게임이 세상의 전부가 된 나.

영락없는 백수에, 인터넷 게임 폐인이었습니다.

한 통의 편지가 오기 전까지...

엄마가 진지한 얼굴로 편지 한 통을 가지고 나에게 왔습니다.

변호사 사무실에서 보낸 등기 우편.

내용은 돌아가신 큰외삼촌께서 나에게 유산을 남겼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외딴섬에 지어진 건물 하나를 통째로, 그와 관련해서 상속 절차를 밟아야 하니 변호사와 함께 현지로 가야 한다고 적혀 있었던 겁니다.

이건 굴러들어 온 행운이라 여긴 나.

신이 나 섬으로 내려갔지만 아직 그것이 부모님의 최후통첩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던 겁니다.

부모한테 의지하지 말고 자신의 힘으로 길을 개척하기 바란다...

느닷없이 시작된 강제 독립생활.

어떻게 해서든지 현금을 손에 넣지 않으면 순식간에 벼랑 끝에 몰릴 것이 뻔하기에 급한 대로 금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숙인을 모집하기로 합니다.

나는 속으로 즉시 210번 계획을 세웠다. 2와 10, 그래서 니트(2와 10을 합쳐서 니토라고 발음할 수 있는데, 백수를 뜻하는 니트족과 발음이 같다). 시시한 말장난이다. 기세를 몰아 내 '건물'도 <210번관>이라고 명명한다. - page 43

목욕탕·화장실 공동, 소재지는 외딴섬, 인터넷 환경만 있음.

이런 건물에 들어와 줄 사람이 있다면 히키코모리 오타쿠나 백수 정도일텐데 역시나 210번관에

엄마 손에 떠밀려 섬으로 온 백수 히로

의사가 없는 섬에 꼭 필요한 전직 의사 백수 BJ씨

돈 많은 한량 카인 씨

가 방문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이들의 게임 속 세상에서 조금씩 현실의 세계로 확장하기 시작하는데...

길을 잃었던 백수들의 조심스러운 첫발, 결국 스스로의 힘으로 개척해나가는 이들의 행보를 같이 해 보는 건 어떨지!

하지만 지금의 나는 알고 있다. 가능한지 아닌지는 결국 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정들면 고향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시험 삼아 한번 와보는 것도 의외로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러니까......

받은 메일마다 이렇게 답장을 보내리라...... 혹시 그런 일은 없겠지만, 모든 방이 다 차지 않는 한.

-210번관에 어서 오세요. 저희는 언제든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라고. - page 334

어쩌면 뻔한 스토리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들을 바라보면서 응원하게 되고 희망을 엿볼 수 있었고 간만에 사람들의 온기를 느낄 수 있었기에 덕분에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살 만한 이유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마냥 이들을 비난할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사회가, 우리의 시선을 우선 되짚어야 했습니다.

그전에 스스로를 다잡아야 함을.

나에게 인생은 마음대로 되는 것 하나 없고, 앞길을 가로막는 난문이 사방팔방에 널려 있다. 까놓고 말해서, 인생 꽝이다. 하지만......

어떤 험한 길도 거침없이 달리는 오프로드 차를 타고 있는 것 같은 사람들을 부러워해 봤자 소용없다. 나는 그걸 갖고 있지 않으니까. 이 빈약한 몸뚱이 하나로 앞길을 방해하는 돌들을 하나씩 치워 나가는 수밖에 없다. 아무리 불안하고 보잘것없어도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 page 230

'그렇게 초조해할 것 없어. 어차피 부족한 것투성이니까, 확실히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면 돼.'

'한 걸음 한 걸음 조금씩이라도 확실하게 앞으로 나아가면 돼. 멈춰 버리면 목적지는커녕 근처 편의점에도 못 가는 거야.'

그러니 조금씩 나아갈 수밖에 없음을.

혼자가 두렵다면 손을 내밀어 같이 나아가면 됨을.

-미래는 아직 아무도 플레이한 적 없는 게임 같은 거니까. 뉴비를 노리는 적도 출현할 것이다. 강한 최종 보스는 엄청나게 강하기도 하리라. 플레이어 중에는 나쁜 놈도 있고 짜증나는 놈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 힘을 합쳐 미션을 완수했을 때의 쾌감도 분명히, 틀림없이, 특별한 것이다. - page 332

저도 210번관에 놀러 가고 싶었습니다.


        책키라웃과 타나북스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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