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공포증
배수영 지음 / 몽실북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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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 전 연재를 보았었습니다.

짜릿한 스릴을 맛보았기에 더 이 책이 나오길 기다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잊었어? 내가 너의 저승사자란 걸!

넌 영원히 어둠 속에 갇히게 될 거야."

『햇빛공포증』


2015년 서울, 하얀 방

남자의 의식은 가물가물했고 몸은 포박된 것처럼 꼼짝할 수 없었다. 차가운 손이 남자의 이마에 무언가를 붙였다. 혼신의 힘을 다해 눈을 떴지만 그의 시야에 잡힌 것은 얼굴 위를 오르내리는 하얀 소매뿐이었다. 그는 낮게 신음했다. 갈라진 입술을 달싹여 보았지만 목구멍이 꽉 막혀 작은 소리조차 낼 수가 없었다. - page 11


나이는 서른다섯, 직업은 경비행기 조종사인 '김한준'.

이틀 전 P 아파트 낡은 엘리베이터에 거울을 보며 자신의 옷매무새를 매만지며 꽃다발을 등 뒤로 감춘 채 12층을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딩동.

도착 신호음은 났는데 문은 열리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열림 버튼을 누르려 하자 엘리베이터 안의 조명은 나가고 기이한 마찰음과 함께 엘리베이터가 하강하기 시작합니다.


의식을 잃은 그.

한참 뒤 의식을 찾은 그는 구조대원에 의해 열릴 듯 말 듯 갈라진 문 사이로 비친 새하얀 빛의 덩어리에 순간 그의 뇌리에 번쩍 스치는 장면이 떠오릅니다.

어두운 방, 누군가 성큼성큼 다가와 열쇠 구멍을 휘젓는 소리. - page 14

또다시 그는 눈부신 빛 아래 참회하듯 고개가 떨구어지면서 천천히 몸이 고꾸라집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는 병상에 있었습니다.

"오늘은 2015년 11월 5일이고 지금 시각은 오후 6시입니다. 김한준 씨는 어제 오후 5시경 입원하셨고 약 24시간 수면하셨습니다. 가벼운 찰과상 외에 특별한 외상은 없기 때문에, 담당 의사였던 정 선생님은 조금 전 퇴근하셨습니다. 내일부터 제가 김한준 씨 담당이고요." - page 16

특별한 외상도 없다면 퇴원하는게 맞을텐데 자신을 담당한다는 의사.

김주승, 정신과 전문의, 성 루시아 종합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과장. - page 17

자신이 정신과에 있어야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주승.

"김한준 씨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림과 동시에 쏟아져 들어오는 빛에 발작 증세를 보이며 실신했습니다. 드물지만 햇빛공포증이라는 병이 있습니다. 환자분의 증상이 그 병과 정확하게 일치하기에 빛을 차단해 놓았습니다만."

"무슨 공포증이요?"

"빛이 노출되면 몸에 경련이 오고 구토를 하거나 근육이 마비되기도 하는 병입니다. 심한 경우 호흡 곤란과 함게 패닉 어택(panic attack)이 오기도 하죠. 내일부터 검사와 치료를 시작해야 하니 오늘은 아무 생각 말고 푹 쉬시는 게 좋을 겁니다." - page 19 ~ 20


한준과 주승의 팽팽한 긴장감 사이에서 평생 그의 가슴속에서 하나의 질문이 메아리칩니다.

'넌 누구냐...' - page 37


그리고 벌어지는 악몽보다 더 끔찍한 현실.

왜 주승은 그가 잊고 있었던 기억을 되살리는 것일까!

주승과 한준은 무슨 관계였던 것일까!

한준은 결국 공포증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이 모든 질문에 대해 소설은 폭풍우처럼 몰아치면 한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치 않도록 하였습니다.


한준에게 던진 주승의 말 중 인상깊었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이게 네가 원하는 건가? 내게 혼란을 주는 것!"

한준의 외침에 주승이 제법이라는 듯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사람의 뇌는 참 묘해."

주승은 의기양양하고 느긋한 목소리로 뽐내듯 말했다.

"자극하기 위해 던진 말일 뿐이란 걸 알면서도, 그 말의 진위여부를 따져 보게 되거든. 자기도 모르는 새에 신뢰의 벽은 이미 허물어지기 시작한 거야."

"지금 나한테 뭘 하려는 거야..."

한준은 꽉 잠긴 성대 사이로 겨우 소리를 냈다.

"내가 하려는 일은 말이야. 너의 무의식에 불행의 씨를 심는 일이야. 의심 한마디를 툭 던져 주기만 하면 듣는 사람의 마음에 씨앗이 심기거든.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씨에 물을 주고 거대한 나무로 키워 내어 마침내 불신과 공포라는 열매를 얻게 돼. 애초에 그 검은 씨앗을 심고 간 사람이 누구인지는 생각조차 하지 않지."

"..."

"기억도 이런 식으로 얼마든지 조종 가능해. 기억을 불러낼 때 작은 의심의 말과 함께 아까 내가 주사한 약까지 동시에 넣어 주면, 효과는 치명적이지. 그 약이 바로 사람의 생각과 기억을 사로잡는 데 아주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촉매제거든. 철옹성같던 믿음도 사랑도 곧 무너지게 되어 있다고." - page 193


"내가 원하는 건... 너의 과거와 현재가 모두 등을 돌리게 하는 거야. 널 과거의 기억 속에 가둘 뿐만 아니라, 너로 하여금 현재를 의심하게 만드는 거지. 연인까지도 말이야. 너를 둘러싼 세상은 결코 안전하지 않으며,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생각을 심어 줄 거야. 넌 영원히 외로움과 공포라는 감옥에 갇혀 있게 될 거야. 네가 영원히 어둠 속에 갇혀 사회에서 고립되는 것, 난 그걸 원해." - page 196

남의 불행이 자신의 행복인 냥 느끼는 주승을 보며 오히려 그가 스스로 자신의 무덤 속에 고립되어 영원히 외로움과 공포라는 감옥에 갇혀있는 것 같아 안타까웠습니다.


아마 소설 속에서 전하고자 하는 바는 이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본디 자연에는 자비도 은총도 없다. 자연이 평화롭다든지, 자연은 서로 빼앗지 않는다는 식의 유토피아적 이론은 세상에서 가장 웃기는 소리다. 나무는 광합성을 하기 위해 그늘을 드리움으로써 주변의 식물들과 경쟁을 한다. 흙 위의 잔디들은 살아남기 위해 양분과 햇살을 따라 뿌리를 움직여 끊임없이 구역을 이동한다. 그들은 그저 한가롭게 바람 가는 대로 잎을 나풀대는게 아니다. 생존에 최적화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 시든 몸을 버리며 치열한 영역 투쟁을 살아내고 있는 것이다.

고군분투가 없는 것은 삶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화사하고 찬란한 것을 싫어한다. 화사한 것에는 고군분투가 없다. 찬란한 것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하고 초기의 목적을 망각하게 만든다. 반짝이는 것은 유혹이다. 모두가 속수무책으로 빠져드는 것이다. 어둡고 축축한 땅속에서 뿌리가 사력을 다해 단단한 흙 위로 솟아오르면, 찬사를 받는 것은 언제나 꽃의 몫이다. - page 267

언제나 찬사를 받는 것은 꽃의 몫이라는 것......

그렇지만 꽃이 피기까지의 치열함이 결국 '꽃'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누구나 자신만의 어둠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어둠 뒤에 비춰질 빛을 보지 못한다면 결국 어둠의 나락에 빠져 자신마저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사실 그 상처와 두려움을 마주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용기를 내 대면하게 된다면 그 어둠은 씨앗이 되어 결국 꽃을 피우게 될 것입니다.


읽으면서 '나비효과'가 떠올랐습니다.

나비의 작은 날갯짓.

그 미세한 변화가 일으킨 예상치 못했던 결과.

잠시 책을 덮고 후폭풍이 잦아들길 기다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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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고 싶은 ㅣ 한국추리문학선 7
한수옥 지음 / 책과나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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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 간절함이 느껴졌습니다.

얼마나 억울한 사연이 있기에......

『죽이고 싶은』 


이 소설은 이미 《박쥐》로 네이버 웹소설 미스터리 부문 베스트 리그 작품이라고 하였습니다.

전자책《박쥐》를 종이책에선《죽이고 싶은》으로 출간되면서 전자책을 읽어보지 않은 저에겐 강렬한 인상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소설의 첫 시작은 이러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가슴속에 짐승을 한 마리씩 가두고 산다. 포악하고 잔인하고 무서울 것 또한 없는 그 짐승은 이성과 도덕심과 타인의 시선이란 우리에 갇혀 무기력하게 숨어 있다가 어떤 계기로 봉인이 풀려 버리기도 한다. - page 8


휘휘휘휘 휘휘휘휘.

어디선가 낮은, 하지만 슬픈 음조의 구슬픈 가락의 휘파람 소리가 들려옵니다.

그리고 가슴이 도려진 시체.

그 위에 올려진 '박쥐'모양의 목각 인형.


엽기적인 연쇄 살인사건이 발생하게 됩니다.

사건을 맡게 된 강력2팀 팀장 형사 '재용'은 왠지 낯설지 않은 물건에 신경이 쓰입니다.

박쥐모양의 목각 인형.

어디서 본 것 같은데......!


그녀의 아내 '은옥'.

남편이 집에 들어오는 날이면 몸이 바짝 긴장을 하게 됩니다.

자신이 가장 끔찍하게 생각하는 그 일을 치러야 하기 때문에.

참아야 하는데...... 견뎌야 하는데...... 은옥은 눈을 질끈 감는다. - page 42


재용은 결국 그 목각 인형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자신의 부인 보석함에 있던 그 목각 인형.

아내가 범행을 저지른다는 생각에 그만 그는 아내와 함께 도주를 하게 됩니다.


재용은 고개를 등 뒤로 젖히고 팔을 올려 이마에 대었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은옥에게 경고했다.

"당신 도망 못 가. 포기해."

촉촉이 젖은 눈으로 재용을 보며 은옥이 애원했다.

"......나를 버려요, 여보. 그래야 당신이 살아요."

은옥의 말에 재용은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자신의 죄를 다 인정한다는 말투였다. 자신은 죄인이니 자기를 포기하라는 뜻이었다. 버릴 수 있었으면 벌써 버렸을 것이다. 포기할 수 있었으면 벌써 포기했을 것이다.

"아니, 나 당신 못 버려. 설사 당신이 내가 쫓는 살인범이라도 난 당신 못 버려. 당신 손에 내가 죽더라도 당신 못 버려. 그러니 더 이상 죄짓지 마. 더 이상 죄짓지 않으면 돼. 그러면 돼." - page 172


희망 보육원이 있습니다.

《평생을 고아들을 위해 헌신한 최철민, 드디어 국회에 입성하다》

이젠 늙어서 두꺼비 같은 얼굴로 오른손으로는 지팡이를 짚고 왼팔로는 아이를 안은 채 웃고 있는 그, 최철민.

하지만 그의 또다른 역겨운 면모는 아내 은옥과도 연관이 있었고 이야기는 은옥의 어린 시절과 현재 보육원의 '수민'과 '경철'까지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엽기적인 살인사건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이 여자는 죽을죄를 지었어. 어떻게 자기 자식을 버리고도 찾지를 않아? 자식 한 번 만나러 와 달라는데 싫다고 거부해? 자기의 행복을 위해 자식을 희생시키는 엄마는 살아 있을 가치가 없다.

그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거사를 앞둔 그의 몸에는 엔도르핀이 마구 솟는다. 사명감을 느낀다. 나는 죄를 짓는 게 아니다. 나는 단죄할 뿐이다. 엄마에게 버림받아 상처받은 자식들을 대신해 행동해 줄 뿐이다. 죄의식 같은건 느낄 필요가 없다. - page 218 ~ 219


사건의 진실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조금은 가슴 아팠습니다.

부모로부터의 버림받은 아이, 성폭행, 남겨진 상처......

"상처는 숨기고만 있으면 절대로 치유가 불가능해. 치료도 받고 상담도 받으며 그것을 극복해야만 비로소 나을 수 있는 거야. 부끄럽다고, 창피하다고 숨기고 있으면 결국은 곪아 터져. 아줌마는 그 시기를 놓쳐서 지금 어둠 속에 살고 있지만 넌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다." - page 368


왜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가 더 많은 상처와 고통을 받아야하는 것인지......

그들의 고통에 비해 왜 가해자들의 처벌은 그토록 낮은지......

우리가 분노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피해자의 눈물을, 그 상처를 보듬어줄 수 있는 사회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는 현실이었습니다.

언제쯤 우리 사회는 그들의 상처에 새 살이 돋도록 해 줄 수 있을지.

그 사회가 하루빨리 다가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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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여자들
설재인 지음 / 카멜북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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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이력이 눈에 띄었습니다.

낮에는 복싱, 저녁에는 암벽 등반을 하며 매일 한 편씩 글을 쓰고 있다는 그녀, '설재인'.

그녀가 글을 쓰게 된 이유가 인상적이었습니다.

한국 소설을 사랑해서 오래도록 읽다가, 자신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 많단 걸 뒤늦게 깨닫곤 직접 쓰기 시작했다.

그 사랑만큼이나 그녀의 소설이 전한 메시지는 뜨거웠습니다.

『내가 만든 여자들』


책 속엔 12편의 단편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 속엔 우리 사회의 문제들이 있어서 읽으면서도 '아......'라는 탄식을 내뱉게 되었습니다.

이주 노동자, 왕따, 성폭력, 내부고발, 여성 서사, 페미니즘......


첫 이야기부터 제가 가지고 있는 색안경을 벗게 해준 이야기였습니다.

엄마와 혜순 아줌마.

엄마를 둘이나 두고 자란 그녀.

다른 아이들보다 딱 두 배만큼 행복했었지만 아줌마가 이민을 가게 되면서 행복이란 놈음 멈춘 채 움직이지 않았고, 서로 이별을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엄마의 뼛가루를 들고 아줌마에게 찾아가 비로소 알게 된 진실.

그 십여 년 동안 가장 아픈 사람은 엄마도 나도 아니었다.

아줌마였다.

아니, 그냥 우리 모두 아팠다.

똑같이, 한 몸처럼 아팠던 것이다. - page 26

그리고 마지막에 울려퍼지는 밴드의 노래는 제 마음 속에서도 잔잔히, 하지만 존재감있게 울려퍼지고 있었습니다.

이 세상이 나를 보지 않기를 원해, 그들은 이해하지 못할 테니까, 모든 것이 결국 망가질 거지만, 그래도 너만은 내가 누군지 알아줬으면. - page 27


<내가 만든 여자들>의 이야기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름은 임소진, 한 서른여섯 살 정도 되어보이는 차장님.

일도 따박따박 잘해서 인정받는, 능력치로만 따지면 대부분의 부장들을 압살하는 그녀.

회식자리에서 우연히 보게 된 차장님의 파우치와 손끝.

손끝에 그런 게 있었어요.

검은 머리카락 몇 올이 달린 살가죽 같은 게요.

그 작은 조각이, 차장님의 손가락 끝에 달랑달랑 매달려 있었죠. - page 94

두툼한 파우치의 진실은 마치 차장님의 판도라 상자였습니다.

'성폭행'

법에서 받지 못한 처벌을 법 밖에서 벌 받게 하는 방법이 '사람 만드는 법'이었습니다.

"되게 중의적이죠? 나쁜 새끼들을 사람 만드는 법이기도 하고, 또 진짜로 희연 씨가 본 것처럼 내가 '사람'을 만드는 법이기도 하죠. 피부 만들고, 안구 만들고, 손가락 만들고. 그 분, 그렇게 사람 하나 만들어서 그 새끼 꼬셨어요. 꼬셔서, 칼로 쑤셔 죽여 버렸대요. 미제 사건으로 남았죠. 살인자가 그 어느 나라 국민도 아닌데. 지문도 염색체도 없는 인조인간인데, 잡히겠어요?" - page 106

그리곤 희연은 이런 생각을 합니다.

사람을 어떻게 죽여? 사람을 죽이고 나서 아무런 죄의식 없이 살아갈 수가 있어?

누군가 저에게 이렇게 묻는다면 저는 대답할 거예요.

내가 죽일 건 모두, 사람이 아닌 것들이라고.

그리고 심지어 내가 죽일 것도 아니라고요. 내가 만든 애들이 죽이겠지. - page 109


책을 덮은 순간 갑자기 멍해졌었습니다.

그동안은 미처 몰랐던, 아니 알지만 모르고 있었던 주제들이 한 권을 책을 통해 마주하게 되니 감겨 있었던 눈이, 닫혀 있던 귀가 열리면서 마음 속엔 고통의 목소리들이 들려오는 것 같았습니다.

이제라도 하나씩 그 이야기에 귀 기울이려합니다.

그건 혼자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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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가 듣고 있어요 - 혼자인 내게 그림이 다가와 말했다
이소라 지음 / 봄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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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림이 주는 위로.

특별하지는 않지만 크나큰 포옹과 함께 다가오는 위로에 그저 말없이 기대어보곤 합니다.


이 책은 여느 명화에세이와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어떤 말들이 당신을 힘들게 하나요?

어떤 순간들이 당신을 괴롭게 하나요?

제게 들려주세요. 지금 내가 듣고 있어요.

타인의 따가운 시선 속에 상처받은 이들에게 건넨 화가들의 아름다운 그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자 '이소라'님의 이야기까지.

그래서 나의 상처를 따라, 화가를 전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 내가 듣고 있어요』

 


첫 이야기부터 인상적이었습니다.

<넌 살만 빼면 예쁠 것 같은데>

저도 수없이 들은 말.

보는 사람들마다 이 말을 할 때면 짜증이 났지만 이제는 체념 수준까지 간 이 말.

알고보면 나 역시도 다른 이에게 하고 있는 이 말.

타인에게 '~만 하면'이라는 조건을 다는 것부터가 주제넘은 일이겠죠. 그런데 가만히 사람들을 지켜보면 그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많이들 합니다. 물론 저도 포함이고요. 대체 왜 그런 걸까요? 왜 타인을 나의 시선으로 평가하고 그걸 당당히 말로 내뱉는 걸까요? 다른 이들의 생각까지 알 수 없으니 제 자신에게 먼저 묻습니다. 글쎄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제 생각에는 말이죠. 어떤 확고한 '기준'이 있다고 믿기 때문 아닐까요? - page 14

기준으로 누군가를 함부로 비판할 수는 없는 것인데......

어느 시대건 여성의 아름다움만은 기준에 따라 평가를 하는 것이 현실이라는 점이 안타까울 뿐이었습니다.


여기 '로자 보뇌르'의 이야기가 나오게 됩니다.

남성 중심의 19세기 프랑스 예술계에서 짧게 자른 백발로 몸매가 전혀 드러나지 않는 편안한 옷을 입은 그녀.

하지만 그녀의 얼굴에선 당당함과 자신감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남장을 하고 여성 파트너와 공개적으로 연애까지 했던 보뇌르를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은 당연히 따가웠어요. 왜 남자와 결혼하여 아이를 낳지 않는지, 머리를 길러 장식하지 않는지, 드레스를 입지 않는지, 몸매를 관리하지 않는지, 화장을 하지 않는지...... 이런 말들을 귀에 진물이 나도록 들었을 거예요. 하지만 보뇌르는 자신의 가능성을 억압하고 짓누르는 질서와 결코 타협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흡연과 사냥을 보란 듯이 즐기며 자신을 지적하는 사회를 비웃었죠. - page 27

그녀의 초상화에서처럼 의기양양한 미소가 더없이 아름다워보였습니다.


이 역시도 제 이야기였습니다.

<넌 너무 내성적이야>

조용하고 차분해서 쉽게 남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하는 내성적인 성격을 가진 저는 이것을 '흠'이라 여겼습니다.

내성적인 성격은 고쳐야 하는 것으로......


여기 영국의 화가 '그웬 존'의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차분하고 정적인 그녀의 성격이 그림 속에도 묻어 부드럽고 고요한 분위기의 작품들을 남긴 그녀.

그웬 존이 그려낸 이 방은 그녀의 성격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어요. 그녀는 바깥보다 안을 바라보며 서 있는 사람입니다. 마음의 문은 내면을 향해 닫혀 있지만 그 내면은 무엇보다 충만한 빛으로 가득합니다. - page 82

그런 그녀의 이 한 마디.

"좀 더 내면적인 삶을 향한 동경을 제외한다면, 표현하고 싶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 page 89

내성적인 자신의 성격을 받아들임으로써 잔잔한 용기가 묻어있던 그녀의 모습에서 저도 용기를 내어 봅니다.


책 속엔 열네 명의 화가가 '나를 사랑하는 열네 가지 방법'을 알려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읽는내내 위로를 얻고 행복했었습니다.


앞서 저자는 이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사회의 편견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길을 당당하게 걸어간 로자 보뇌르. 장애를 갖고 태어났지만 결코 좌절하지 않았던 난쟁이 귀족 앙리 드 툴루즈-로트렉.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멋지게 증명해낸 앙리 루소까지. 가시 돋친 마로가 이유 없는 혐오에 맞닥뜨렸던 이들은 자기연민에 빠지거나 스스로를 미워하는 대신 자신만의 세계를 캔버스에 담으며 중요한 사실을 깨우쳐 간다. 바로 '내가 나를 사랑하는 한, 누구도 내게 상처 줄 수 없다'는 것. - page 7

남들의 시선에, 기준에, 사회의 잣대에 움츠렸던 저만의 색을,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꺼져만 가던 내 안의 용기가 다시금 불빛을 내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제라도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해야겠습니다.

보다 당당하게, 보다 씩씩하게!

가슴을 활짝 펴고 내 앞을 바라보며 걸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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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하는 뇌 - 뇌과학자와 예술가가 함께 밝혀낸 인간 창의성의 비밀
데이비드 이글먼.앤서니 브란트 지음, 엄성수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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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간이 동물과 다른 건 '생각'을 한다는 점입니다.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면서 보다 한 단계 나아간다는 점.

그래서 우리가 동물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천재들 속에 '아인슈타인의 뇌'에 대한 이야기는 누구나 접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일반인의 뇌보다 조금 작음에도 불구하고 뇌활성화의 도움을 주는 뇌세포들이 많다고 하였습니다.

더 놀라웠던 사실은 그럼에도 뇌를 활성화 시키는데 15%밖에 사용을 못했다는 점이었습니다.


이토록 신비로운 '뇌'.

그 비밀이 궁금하였습니다.


이번에 읽게 된 책은 뇌의 '창의성'에 대한 비밀을 밝히고자 뇌과학자와 예술가들이 동원되었습니다.

과연 창의적인 뇌의 비밀은 어떨지 궁금하였습니다.

『창조하는 뇌』


우리의 뇌는 수백억 년에 걸친 진화 과정에서 융통성과 엄격성 사이의 균형을 맞춘 탐구, 이용 절충점을 찾아왔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창조물은 이전에 나온 것과 대체로 비슷해 보이지만 실은 모두 변화한, 탐구와 이용 절충점 사이에서 '창의력'이 탄생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삶의 어떤 부분도 창의력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인간은 언제나 새로운 것을 추구하기 때문에 혁신은 필수다. 그것은 일부 소수만 하는 일이 아니다. 모든 인간의 뇌 속에는 혁신의 원동력이 있고 되풀이되는 일상에 맞서는 행동을 토대로 이번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이번 10년에서 다음 10년으로, 이번 해에서 다음 해로 거대한 변화를 일으킨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원동력은 인간의 생물학적 속성 중 일부다. 우리는 그렇게 수백 개의 문화, 수백만 개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 page 45


그렇다면 창조하는 뇌는 어떤 활동을 할까?

혁신적인 사고를 뒷받침하는 뇌 활동을 세 가지로 보았습니다.

휘기, 쪼개기, 섞기(3B)

이 세 가지 정신활동은 우리가 세상을 보고 이해하는 토대가 되어 인간이 휴대 전화 사이먼에서 아이폰에 이르는, 토착 미술품에서 현대 미술 탄생에 이르는 모든 혁신을 이루게 해 주었습니다.


인상적이었던 '휘기'의 사례 중 하나.

언어 진화는 인간의 뇌가 입력한 것을 끊임없이 휘면서 일어난다. 인간의 소통 방식은 계속 변화하며 인간의 DNA 속에 녹아들었고 그 결과 오늘날의 사전은 500년 전의 사전과 판이하다. 언어는 대화와 의식에 맞춰 수시로 변화한다. 또 언어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전달해주는 강력한 수단이다. 이 같은 언어의 창의적 가능성 덕분에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해야 할 것 사이에 조화가 잘 이뤄진다. - page 92 ~ 93

인간의 창의성을 반영한 언어 그 자체로의 끝없는 변화.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책 속에선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유용한 것을 창조하는 일에는 언제나 세상 사람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그 일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알 수 없다는 문제가 따른다. 이전의 것에서 조금만 손보려 하는 사람은 획기적인 돌파구를 찾기 힘들다. 또한 시간 여행을 하듯 지나치게 앞서가거나, 머물다 못해 퇴보하는 사람은 꿈을 이룰 가능성이 낮다. 결국 가자아 좋은 것은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 정해진 곳에만 머물지 않고 때론 익숙하게, 때론 적당히 낯설게 하는 전략이다. - page 205 ~ 206

낯섦과 익숙함 사이.

창조하는 뇌에서 강조하던 이야기였습니다.


사실 아직도 '뇌'에 대한 궁금증이 채워지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창의성'에 대해 우리의 뇌가 어떤 활동으로 이루어지는지에 대해 알게 되면서 이를 바탕으로 우리 일상에서의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발전을 실마리를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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