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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여자들
설재인 지음 / 카멜북스 / 2019년 7월
평점 :
작가의 이력이 눈에 띄었습니다.
낮에는 복싱, 저녁에는 암벽 등반을 하며 매일 한 편씩 글을 쓰고 있다는 그녀, '설재인'.
그녀가 글을 쓰게 된 이유가 인상적이었습니다.
한국 소설을 사랑해서 오래도록 읽다가, 자신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 많단 걸 뒤늦게 깨닫곤 직접 쓰기 시작했다.
그 사랑만큼이나 그녀의 소설이 전한 메시지는 뜨거웠습니다.
『내가 만든 여자들』

책 속엔 12편의 단편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 속엔 우리 사회의 문제들이 있어서 읽으면서도 '아......'라는 탄식을 내뱉게 되었습니다.
이주 노동자, 왕따, 성폭력, 내부고발, 여성 서사, 페미니즘......
첫 이야기부터 제가 가지고 있는 색안경을 벗게 해준 이야기였습니다.
엄마와 혜순 아줌마.
엄마를 둘이나 두고 자란 그녀.
다른 아이들보다 딱 두 배만큼 행복했었지만 아줌마가 이민을 가게 되면서 행복이란 놈음 멈춘 채 움직이지 않았고, 서로 이별을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엄마의 뼛가루를 들고 아줌마에게 찾아가 비로소 알게 된 진실.
그 십여 년 동안 가장 아픈 사람은 엄마도 나도 아니었다.
아줌마였다.
아니, 그냥 우리 모두 아팠다.
똑같이, 한 몸처럼 아팠던 것이다. - page 26
그리고 마지막에 울려퍼지는 밴드의 노래는 제 마음 속에서도 잔잔히, 하지만 존재감있게 울려퍼지고 있었습니다.
이 세상이 나를 보지 않기를 원해, 그들은 이해하지 못할 테니까, 모든 것이 결국 망가질 거지만, 그래도 너만은 내가 누군지 알아줬으면. - page 27
<내가 만든 여자들>의 이야기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름은 임소진, 한 서른여섯 살 정도 되어보이는 차장님.
일도 따박따박 잘해서 인정받는, 능력치로만 따지면 대부분의 부장들을 압살하는 그녀.
회식자리에서 우연히 보게 된 차장님의 파우치와 손끝.
손끝에 그런 게 있었어요.
검은 머리카락 몇 올이 달린 살가죽 같은 게요.
그 작은 조각이, 차장님의 손가락 끝에 달랑달랑 매달려 있었죠. - page 94
두툼한 파우치의 진실은 마치 차장님의 판도라 상자였습니다.
'성폭행'
법에서 받지 못한 처벌을 법 밖에서 벌 받게 하는 방법이 '사람 만드는 법'이었습니다.
"되게 중의적이죠? 나쁜 새끼들을 사람 만드는 법이기도 하고, 또 진짜로 희연 씨가 본 것처럼 내가 '사람'을 만드는 법이기도 하죠. 피부 만들고, 안구 만들고, 손가락 만들고. 그 분, 그렇게 사람 하나 만들어서 그 새끼 꼬셨어요. 꼬셔서, 칼로 쑤셔 죽여 버렸대요. 미제 사건으로 남았죠. 살인자가 그 어느 나라 국민도 아닌데. 지문도 염색체도 없는 인조인간인데, 잡히겠어요?" - page 106
그리곤 희연은 이런 생각을 합니다.
사람을 어떻게 죽여? 사람을 죽이고 나서 아무런 죄의식 없이 살아갈 수가 있어?
누군가 저에게 이렇게 묻는다면 저는 대답할 거예요.
내가 죽일 건 모두, 사람이 아닌 것들이라고.
그리고 심지어 내가 죽일 것도 아니라고요. 내가 만든 애들이 죽이겠지. - page 109
책을 덮은 순간 갑자기 멍해졌었습니다.
그동안은 미처 몰랐던, 아니 알지만 모르고 있었던 주제들이 한 권을 책을 통해 마주하게 되니 감겨 있었던 눈이, 닫혀 있던 귀가 열리면서 마음 속엔 고통의 목소리들이 들려오는 것 같았습니다.
이제라도 하나씩 그 이야기에 귀 기울이려합니다.
그건 혼자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