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걷는 여자들 - 도시에서 거닐고 전복하고 창조한 여성 예술가들을 만나다
로런 엘킨 지음, 홍한별 옮김 / 반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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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의 사진에 눈길이 갔습니다.

거리를 걷는 여성.

여성으로써 거리를 걷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하였습니다.


"도시에는 항상 여자들이 있었다."

지워진 지성과 문화의 역사를 발로 걸어 되찾다


『도시를 걷는 여자들』

 


지금이야 여성들이 거리를 걸어다니는 것이 아무렇지 않지만 불과 19세기까지만 하더라도 여성이 처한 사회적 조건 때문에 여성이 집 밖에 나오는 순간 평판을 망치고 정숙함이 손상될 온갖 위험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혼자 집 밖에 나가기만 해도 오명을 쓸 위험이 있었다니......

젊은 러시아 귀족 여성 마리 바시키르체프의 일기를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나는 혼자 집 밖에 나갈 자유를 갈망한다. 가고, 오고, 튀일리 정원 벤치에 앉고, 무엇보다도 뤽상부르에 가서 상점마다 장식된 진열창을 구경하고 교회와 박품관에 들어가고 저녁에는 오래된 거리를 배회하고 싶다. 내가 가장 부러워하는 게 그거다. 이런 자유가 없다면 위대한 예술가가 될 수 없다. - page 30


하지만 19세기 말이 되자 계급과 상관없이 모든 여자들이 도시의 공공장소를 누릴 수 있게 됩니다.

1850년대와 1860년대에 백화점이 생겨나 여자들의 외출이 정상으로 받아들여지게 되는 데 큰 영향을 미치게 되고 1890년대에 자전거를 타고 어디든 가고 싶은 데에 갈 수 있고 상점이나 사무실에서 일하며 경제적 독립을 이룬 신여성이 등장하며 더 이상 거리에서 여자들의 존재를 부인할 수 없게 됩니다.


저자는 '플라뇌즈'를 찾으려 뉴욕, 파리, 런던, 베네치아, 도쿄를 거닐게 됩니다.


플라뇌즈(flaneuse), 명사, 프랑스에서 온 말. 보통 도시에서 발견되는 한량, 빈둥거리는 구경꾼을 가리키는 단어 플라뇌르(flaneur)의 여성형.

이건 가상의 정의다. 플라뇌즈라는 단어가 등재된 프랑스어 사전은 찾아보기 힘들다. 1905년에 나오 『리트레』사전에는 'flaneur, -euse'가 있고 "산보하는 사람"으로 정의되었다. 그러나 『생생한 프랑스어 사전』에 따르면, 믿기지 않게도 플라뇌즈는 "안락의자의 일종"이라고 한다.

일종의 농담 같은 건가? 여자가 빈둥거리면서 할 수 있는 일은 드러눕는 것뿐이라는 말인가? - page 23


그녀가 뜻하는 플라뇌즈는 단순히 플라뇌르의 여성형이 아닌 그 자체의 개념으로 인지하고 그로부터 영감을 받을 수 있는 존재임을 의미하였습니다.


플라뇌즈는 도시의 창조적 잠재성과 걷기가 주는 해방 가능성에 긴밀하게 주파수가 맞추어진, 재능과 확신이 있는 여성이다. - page 44


그렇게 여성이 도시를 걷기 시작할 때 그 의미가 어떠한 변화를 일으켰는지에 대해 조르주 상드, 버지니아 울프, 진 리스, 소피 칼, 아녜스 바르다 등의 삶과 작품을 통해 알아보고 있었습니다.


특히나 '버지니아 울프'는 여자와 도시의 관계에 대해 깊이 생각했고 1927년에는 플라뇌즈에 대한 에세이를 썼습니다.

런던을 돌아다니면서 여자들도 익명성을 누릴 수 있다는 울프의 말.


거리에 있을 때 우리는 더 이상 "우리 자신"이 아니고 "도시 풍경의 기능"이 된다. 전에는 시선의 대상이었지만 거리 산보자가 되면 섹스나 젠더에서 벗어난 관찰하는 주체가 된다. 우리는 익명성의 외투를 두르고 종종 알 수 없는 도시처럼 우리도 알 수 없는 존재가 된다. - page 137


조르드 상드는 자서전에서 걷기가 반복되는 주제였습니다.

심지어 자서전의 마지막 단어가 marcher(걷다)일 정도로 "모든 사람을 위한 자비"의 길을 향해 걷는다는 말로 끝을 맺는다고 합니다.

혼자서, 자기 기상에 걸맞게 걸을 수 있다는 게 상드에게는 독립 선언의 기본 요건이었다는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도시'의 의미 중 이 이야기가 저에게 와 닿았습니다.

​

 

​

그 길 위에 새겨지고 기억될 일들이.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이어주는 길임이, 그 길들이 모여 도시가, 역사임을 일깨워주었습니다.

​

책 속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

걷지 않는 문화는 여자들에게 나쁘다. 걷지 않는 문화가 권위적인 분위기를 만든다. 이게 다 결국 무슨 의미인지, 자신의 욕구가 무엇인지, 그 욕구가 충족되는지 등을 고민하지 않는 여자는 가족에게서 벗어나 방황하지 않을 것이다. - page 64

​

그러므로 자신을 걷게 해야합니다.

걷고 걸으며 움직이고 생각하고 원하고 참여하여 비로소 도시 속 나의 존재감을, 나아가 내 자신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며 오늘도 문 밖을 나서봅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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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환자
재스퍼 드윗 지음, 서은원 옮김 / 시월이일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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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읽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


'그 환자'를 만나고 모든 것이 달라졌다!


호기심으로 시작된 소설은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까지 호흡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의료진을 미치거나 자살하게 만든 접근 금지 환자


『그 환자』

 


내가 엄청난 비밀을 알고 있는 건지 아니면 나 자신이 미쳐버린 건지 현재로서는 확신이 서지 않아 이 글을 쓴다. 이런 상태로 계속 정신과 의사로 일한다는 것은, 분명 윤리적으로나 사업적인 관점에서도 좋지 않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맹세컨대 나는 미치지 않았다. 그러니 이런 일이 가능하다고 조금이나마 믿어줄 수 있는 여러분에게 이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내게 이 일은 인류에 대한 책임의 문제다. - page 13


그의 의미심장한 고백.

이 이야기를 이끌어갈 그는 엘리트 정신과 의사인 '파커'입니다.

그리고 그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2000년대 초 미국의 어느 주립 정신병원에서 일어난 이야기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높은 지위에 안주하기보단 의학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곳을 개선해 나가는 데 훨씬 관심이 있었습니다.

이유는 어릴 적 자신의 어머니가 망상형 조현병으로 정신병원에 수용된 후 정신의학계의 추악한 면을 목격한 뒤 정신과 의사가 되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약혼녀 '조슬린'이 셰익스피어 연구로 박사 과정을 밟고 있기에 그녀가 졸업할 때까지 그녀 곁에 가능한 한 가까이 머물고 싶었기에 코네티컷 주에 있는 가장 재정이 부족하고 비참한 상황에 처한 병원에 들어가기고 합니다.


이 열악한 병원에서도 장기 치료 병동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병동에는 모든 병원이 그렇듯 꼭, 반드시, '그 환자'가 있기 마련이었습니다.

유독 이상한 환자.

아무리 경험이 풍부한 의사라도 두 손 두 발 다 들고 꺼리게 되는 인물, '그 환자'.


사람들은 그 환자에 관해 말해야 할 때면 그를 '조'라고 불렀습니다.

조는 병실에서 나오는 법이 없었고 집단 치료에 참여하지 않는 데다 정신과나 치료실 직원과 개별적으로 만나는 일도 없었습니다.

특히나 거의 모든 직원이 '조에게 가까이 가지 말 것!'이란 경고만 들을 뿐이었습니다.


이런 기괴한 소문에도 우리의 '파커'는 오히려 '그 환자'에게 호기심이 나기 시작합니다.

왜 여섯 살에 처음 입원한 후 30년간 수용되어 있는지!

왜 그를 치료하려 했던 모든 의료진이 미치거나 자살하는지!

특히나 파커가 이 병원에 다니게 되면서 나이든 간호사 '네시'에게 자신의 계획을 이야기하게 되는데......


"농담으로라도 그런 말은 입에 담지 말아요. 지금 한 말은 못들은 걸로 하죠."

"농담하는 거 아니에요. 네시, 전 정말로..."

"아니, 그건 미친 농담이었어야 해요. 정신이 나가지 않고서야 그딴 말을 진심이라고 뱉을 수는 없어요."

네시의 초록빛 눈이 노여움에 불타고 있었지만 나를 향한 분노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녀는 가까스로 새끼를 위험에서 구한 어미 곰 같았다. - page 34 ~ 35


그랬던 네시마저 자살을 하게 됩니다.


어렵사리 '그 환자'의 본명을 알게 된 '파커'.

그의 기록을 찾아보지만 그 기록은 너무나 허술하기 그지없었고......

과연 '그 환자'에겐 지난 세월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무엇이 진실이고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파커'는 '그 환자'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건지......

사건은 점점 미궁 속에 빠지다 조금씩 그 실마리가 풀리게 됩니다.


정말 이 소설에 대한 느낌!

파커가 이야기하였습니다.

​

 


사람이 무서운 건 사실이었습니다.

소설 속 인물들도 각자의 '선입견'이 있었기에, 자신만의 '편견'이 있기에 환자들 대하는 태도가 확연한 차이가 일어났습니다.

의사 자신의 판단으로 한 사람의 인생이 좌우될 수 있다는 점이 참으로 무서웠습니다.


결국 소설의 마지막엔 '진실'이 드러나기 마련이었습니다.

​

 


아무리 감춘다 하더라도 진실은 반드시 드러난다는 점이!

그래서 아직은 살만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1인칭 시점으로 이루어져 있었기에 소설을 읽으면서도

'이거 진짠가?'

'진짜면 어떡하지? 너무 무서운데?'

그 몰입감으로 한시도 손에서 놓을 수 없었습니다.

그 긴장감이......

그리고 밝혀질 사실이......


소설을 읽으면서 순간 우리의 드라마였던 'M'이 떠올랐습니다.

'그 환자'가 마치 '김주리'처럼 말입니다.


섣부른 판단이 부른 비극적인 결말.

그래서 더 여운이 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 역시도 '그 환자'를 만들어낼지도 모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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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깨우는 책 읽기 마음을 훔치는 글쓰기
허지영 지음 / 나비의활주로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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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책 읽기'를 넘어서 '글쓰기'와 관련된 책들을 종종 볼 수 있었습니다.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상상해보지 않을까요?

'나도 책 한 번 써 볼까?'


하지만 막상 글을 쓰려고 컴퓨터 앞에 앉으면 그 한 자 쓰기도 힘듭니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 두서없이 쓴 글을 보게 되고 결국 그만두게 됩니다.


그러다 이 책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인생을 최고로 여행하는 방법은 많이 경험하고 읽으며

생각하고 쓰면서 끊임없이 배우고 깨달으며 성장하는 것이다!"


뭔가 조언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늘 자신에게 깨어있는 삶을 위해

책을 읽고 글쓰기로 자유를 찾는 법


『나를 깨우는 책 읽기 마음을 훔치는 글쓰기』

 

​

내가 책을 읽었던 이유.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만 그런 건 아닐 텐데 왜 '나'는 힘든 건지, 자꾸만 흔들리는 마음에 지치기만 한 몸을 이끌 수 없을 만큼 지쳤을 때 손을 내밀어 준 것이 '책'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책에 빠져들었습니다.

​

책이 좋은 이유.

그녀가 일러주었습니다.

​

 

​

다시금 책을 읽어야하는 이유를 가슴에 새겨봅니다.

​

사실 저는 '고전' 읽기가 조금은 벅차곤 합니다.

때론 이해되지 않는 문장들이, 그리고 그때의 사상이라든 사전 지식이 없으면 읽고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게 사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일러주었습니다.


고전은 내가 살아오면서 얼마만큼 내면을 채워왔는지 스스로 검증해볼 기회를 준다. 지금의 시대에서 멀리 떨어졌다가 다시 현재로 돌아왔을 때 현실의 모습이 이전보다 더욱 선명하게 보인다. 살아가는 방식이 변하지 않는다면 생각하는 방식은 변해야 한다. 고전은 막다른 길에 서 있을 때 방향을 잡도록 도와준다. 지금 내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책만 읽을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진다면 읽지 못한 고전을 찾아서 모두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 - page 97 ~ 98


시대를 넘어서 삶의 가치를 전해주는 '고전'.

고전으로 내 삶의 그림을 그려볼 수 있다고 하니 어렵더라도 조금씩 읽어가야겠습니다.


솔직히 이 책을 읽기 전 '책 읽기'에서 '좋은 책'을 일러줄 거라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좋은 책을 권하기보다 좋은 책이란 무엇인지를 이야기하면서 좋은 책을 고르는 안목을 선사해주었습니다.

​

당신은 좋은 책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이끌어주는 것을 좋은 책이라 여긴다. 이전과는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고 경험의 한계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책 말이다. 정신 수준을 높여주는 책은 읽은 후 다른 인생을 살게 해주어 결국 자신을 성장시킨다. - page 6


단순히 읽기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내면을 더욱 깊이 들여다보며 자신을 발견하는 과정을 한 단계 높였습니다.

  


막연히 글을 쓴다는 건 저 역시도 어렵기만 합니다.

글은 '작가'들이 쓰는 행위라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우리 모두는 조금씩 글쓰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일상 속의 메모.

편지.

일기 등등.

글쓰기란 거창한 행위가 아닌 이런 소소한 행동 하나하나가 모여서 자신만의 '책'이 완성됨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누구나 자신의 삶을 써내려가는 작가다. 글을 쓰든 쓰지 않든 자신이 의도하는 바대로 우리는 살아간다. 물론 의도치 않는 일이 시시때때로 발생하지만 그래서 인생은 살아볼 만한 것이 아닐까. 글로써 자신의 삶을 써내려 갈 줄 아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인생에 대한 작은 기대감은 가지고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 page 223


어차피 내 인생임에 나를 위한 책 읽기와 글쓰기는 어떤가!

이제 자신의 껍데기에서 나와 화려한 날개를 펼칠 시간이 되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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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랜드 - 심원의 시간 여행
로버트 맥팔레인 지음, 조은영 옮김 / 소소의책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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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어두움.

나무뿌리.

개미.

등등.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 여실히 보여졌습니다.

그래서 그곳이 궁금했습니다.

미지의 영역인 '지하세계'에서 펼쳐질 이야기가.


『언더랜드』

 


우선 심호흡 한 번 하게 되었습니다.


언더랜드는 어느 늙은 물푸레나무의 갈라진 줄기로 들어간다. - page 11


텅빈 나무의 심장으로 들어가면 암흑 속 공간이 열리게 됩니다.

잿빛, 갈빛, 흑빛.

색이 사라지고 소리가 울리며 경이로운 공간이 나타납니다.


역사 속 언더랜드의 장면들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

 

​

우선 사람들이 아래로 내려가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하였습니다.


하강은 일말의 상식과 정신의 물매를 거스르는 반직관적 행동이다 굳이 아래로 내려가 언더랜드에 무언가를 두는 행위는 대개 그것을 쉽게 들키지 않고 지키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 page 20


그렇다면 의문이 들기 마련입니다.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비밀스런 공간인 지하를 지상보다 더 개발하고 관심을 갖는 것이 맞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

하지만 우리에겐 지하공간이란 공포와 혐오로 인식되는 것일까?


이것은 코맥 매카시의 책에 나오는 '세상 속의 끔찍한 어둠'과 연관되어 있다. 공포와 혐오는 이런 환경에 맞서는 평범한 반응이다. 지하공간은 또한 주로 먼지, 피할 수 없는 죽음, 가혹한 노동을 함축한다. 폐소공포증은 공포증 중에서도 대개 그 강도가 가장 높다. 서술이나 묘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할 때조차 현기증 이상의 증상을 불러온다. 누가 지하에 감금되었다는 소리만 들어도 사람들은 한 발짝 물러나 불안한 표정으로 불빛을 찾아 두리번거린다. 마치 말만으로도 주위에 담이 쳐질 수 있다고 믿는 것처럼. - page 20


특히나 일상적인 비유에서 높이는 동경의 대상이지만 깊이는 경멸의 대상이 되면서 아래에 있는 것을 멀리하고 혐오의 문화가 형성되었음을 일러주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기억, 신화, 은유뿐 아니라 동시대적 존재의 물질적 바탕에도 필수적인 언더랜드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저자는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언더스토리 중에서도 '지하 소셜 네트워크'를 보면서 종을 초원한 세계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균근성 곰팡이와 식물은 약 4억 5,000만 년 전부터 아주 오래된 관계를 유지해왔고, 대부분이 상리공생이었다. 곰팡이와 나무의 관계에서, 곰팡이는 자기에게 없는 엽록소를 이용해 나무가 포도당의 형태로 광합성한 탄소를 얻고, 반대로 나무는 자기에게 없는 효소를 가지고 곰팡이가 토양에서 얻어낸 인이나 질소 같은 영양분을 얻었다. - page 108


상리공생이라......

그들이 우리에게 '교환', '나눔', 심지어 '우정'의 의미가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었습니다.

​

​앞서 이야기한 바와같이 '지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엿볼 수 있었던 '도시'의 의미.

오랫동안 수직 형태를 띠었기에 현대의 도시경관은 수직의 용어로 읽을 수밖에 없는 불평등의 지리학에......

​


덧붙인 이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내가 들어온 곳은 수직 갱도였고, 내 위에 높이가 3미터 정도 되는 현수벽이 있는데 그 안에 두개골, 갈비뼈, 팔다리뼈 할 것 없이 사람의 뼈가 수백 개도 넘게 박혀 있었다. 아래로 우물 바닥에는 수백 개의 뼈가 더 있었다. 여기는 균열된 터널망 틈바구니로 매자아지의 내용물이 쏟아지기 시작한 지점이다. 갱도를 파낸 거친 석회암 역시 시체들로 두꺼워 보였다. 암석 퇴적물 속에서 부서지지 않고 화석이 된 쇠고둥과 나선형 조개껍질들이 그것이다. 순간 지상과 지하 도시가 하나의 네크로폴리스로 느껴졌다. 죽은 자의 도시가 산 자의 도시보다 앞서 존재했다...... 죽은 자의 도시는 모든 살아 있는 도시의 선조이자 핵심이다...... - page 166


지하에 대한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현재에도 이어진 이야기.

그리고 앞으로의 이야기.


그래서 이 이야기가 책을 덮어도 오랫동안 남았습니다.


제방, 지도, 핫셀, 정보실, 땅속의 저장실 - 모두 페름기 지층 깊이 파묻은 활성 방사성물질 저장 용기 위에 지어진 - 은 내게 가장 인류세다운 건축물이자 우리가 지금까지 언더랜드에 묻은 가장 거대한 무덤같았다. 고백과 경고 사이의 어디쯤에 있는 저 반복적인 주문은 내게 가작 완벽한 인류세의 텍스트이자 가장 어두운 장례 미사문이다.

...

온칼로의 매자아실을 관리하는 사람들은 후대에 어떻게 경고를 전달할지에 대해 대체로 무관심하다. 이 위도에서는 버려진 땅 위로 곧 숲이 자라기 시작하고, 그래서 지상의 존재를 감추게 될 것임을 안다. 그리고 일단 숲이 자라기 시작하면 지구의 시간으로 볼 때 머지않아 빙하가 이곳으로 돌아올 것임을 안다. 얼음이 지나가면서 이곳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싹 밀어버려 지형 전체를 지워버릴 것임을 안다. - page 447 ~ 448


다시 지상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저 높고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곳.

수많은 사람들은 지상 위에 저마다의 발걸음을 옮기고 있습니다.

우리가 서 있는 이 땅.

이 땅이 지탱할 수 있었던 것은 '언더랜드'가 있었기에 가능하였음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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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클럽
레오 담로슈 지음, 장진영 옮김 / 아이템하우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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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잡아본 벽돌책.

흥미로운 주제였습니다.


당대 영국의 지성인과 문화인들이 한데 모여

그들이 살던 시대를 생생하게 되살린다.


이름만 들어도 '우와~!'란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경제학을 확립한 《국부론》의 '애덤 스미스'

영국 시인 겸 평론가로 '존슨 박사'라 불린 '새뮤얼 존슨'

《로마제국쇠망사》를 저술한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

등등 18세기, 해가 지지 않는 근대 영국의 기초를 완성한 인물들의 모임, '더 클럽'.

각 분야의 엘리트들의 모임이 궁금하였습니다.


『더 클럽』

 


'더 클럽'의 탄생은 거창하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인 필요에 의해 탄생하였지만 빠르게 유명해지고 주고받으면서 성립된 사상이 그들이 살던 시대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더 클럽'.


1763년 겨울 내내.

당대 최고의 화가였던 레이놀즈는 친구인 존슨을 걱정하게 됩니다.

우울증이 있는 존슨은 그해 겨울엔 더 심한 우울감에서 헤어나오질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존슨도 유일하게 좋아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선술집에서의 대화를 할 때면 선술집의 의자를 보고 '인간에게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을 주는 왕좌'라까지 부르던 존슨.

그래서 레이놀즈는 한 가지 제안을 하게 됩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제라드 스트리트에 있는 터크즈 헤드 태번에 몇몇 친구들을 불러서 작은 모임을 갖는 것.

그렇게 매주 금요일 저녁.

존슨, 레이놀즈 그리고 그들의 친구들은 선술집에 모여 밤늦도록 먹고 마시며 이야기하는 '더 클럽'이 탄생하게 됩니다.


클럽의 탄생 전.

새뮤얼 존슨은 제임스 보즈웨과 만나자마자 거로 가장 믿고 의지하는 친구가 됩니다.

하지만 여행을 떠나게 된 보즈웰.

여행에서 돌아온 보즈웰은 더 클럽에 들어가길 원하지만 회원들은 그를 달가워하지 않게 됩니다.

끈질긴 설득.

결국 1773년 보즈웰은 더 클럽의 회원이 되고 더 클럽에서 존슨과 그의 친구들이 나눴던 대화가 이 책 『더 클럽』에 담겨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기록의 주인공이 보즈웰이기에 그의 입장에서 클럽 인물들을 그려나가는 과정에서 조금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음이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존슨에 관한 이야기가, 이 클럽의 탄생 역시도 존슨이 한 몫을 하였기에 큰 비중으로 담겨 있었습니다.


이 책의 장점은 방대한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지루하지 않았다는 점이었습니다.

아마도 글의 사이사이에 삽화가 등장하면서 글이 어렵거나 그 상황에 대한 이미지를 구축하고자 할때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또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한데 어우러져 있기에 깊이 파고들면 어려운 이야기를 소설을 읽는 것 마냥 읽어내려가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었기에 두께감에 비해 가독성이 좋았습니다.


더 클럽의 회원들을 보게 되면 문득 상류층들이라고 여기게 됩니다.

이름만 들어도 모두가 알고 있기에.

하지만 이들은 1777년 오서리 경이 더 클럽에 들어가기 전까지, 더 클럽의 회원들 중에는 귀족이 단 한명도 없었다고 합니다.

중산층이란 용어가 존재하지 않았지만, 대부분은 중산층에 속하였고 굳이 계급으로 분류하자면 '중간 부류'에 속했습니다.


C.S. 루이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소년이었을 때, 부르주아 소년이었을 때, 상위계급이 나의 사회적 계급을 부르주아라고 불렀다. 부르주아는 '귀족적이지 않아 천박한 계급'을 의미했다. 하지만 내가 20대가 되었을 때 부르주아의 의미가 변했다. 하위계급이 나의 사회계급을 비난했다. 부르주아는 '노동자계급이 아닌 기생충 같고 반동적인 계급'을 의미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 계급에 속하는 것은 언제나 치욕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이 세상의 거의 모든 성직자, 시인, 철학자, 과학자, 음악가, 화가, 의사, 건축가 그리고 행정가가 부르주아다." - page 230 ~ 231


그랬기에 이 클럽이 발전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결국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지 않았을까란 생각을 가져봅니다.


존슨의 이야기 중에 이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모든 인간은 자신은 스스로 다짐한 일을 지킬 수 있다고 확신한다. 오랜 세월을 통한 잦은 실험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지 못한다. 자신만은 다짐한 일을 끝까지 지킬 수 있다는 굳은 믿음 때문에, 인간은 가끔 욕구에 굴복해 다짐을 지켜내지 못한 자를 항상 경멸한다. 그래서 다짐한 일을 매번 어겨 절망에 빠진 자들은 더 이상 다짐하지 않고, 교활해진 자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다짐했는지 말하지 않는다. - page 372


'인간의 어리석음'은 시대가 흘러도 아직도 여전함에 참으로 씁쓸하였습니다.


그렇게 존슨에 의해 탄생되고 발전하던 클럽도 점점 친구들의 죽음과 존슨의 쇠약해진 건강으로 내리막길을 향해 가게 됩니다.

가장 훌륭한 벗이었던,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었던 새뮤얼 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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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글을 쓴 주인공인 보즈웰도 끝내 죽음을 맞이하면서 이 기록도 끝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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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덮는 순간 또다시 제 눈 앞엔 그들의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선술집에 모인 그들.

존슨을 중심으로 마시며 이야기를 하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끊임없이 고뇌하고 갈등하였던 이들.

이들의 모습에서 우리의 광복을 위해 힘썼던 이들이 떠올랐습니다.

광복의 의미를, 주권의 의미를, 그리고 국민의 의미를 되새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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