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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랜드 - 심원의 시간 여행
로버트 맥팔레인 지음, 조은영 옮김 / 소소의책 / 2020년 7월
평점 :
'지하'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어두움.
나무뿌리.
개미.
등등.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 여실히 보여졌습니다.
그래서 그곳이 궁금했습니다.
미지의 영역인 '지하세계'에서 펼쳐질 이야기가.
『언더랜드』

우선 심호흡 한 번 하게 되었습니다.
언더랜드는 어느 늙은 물푸레나무의 갈라진 줄기로 들어간다. - page 11
텅빈 나무의 심장으로 들어가면 암흑 속 공간이 열리게 됩니다.
잿빛, 갈빛, 흑빛.
색이 사라지고 소리가 울리며 경이로운 공간이 나타납니다.
역사 속 언더랜드의 장면들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우선 사람들이 아래로 내려가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하였습니다.
하강은 일말의 상식과 정신의 물매를 거스르는 반직관적 행동이다 굳이 아래로 내려가 언더랜드에 무언가를 두는 행위는 대개 그것을 쉽게 들키지 않고 지키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 page 20
그렇다면 의문이 들기 마련입니다.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비밀스런 공간인 지하를 지상보다 더 개발하고 관심을 갖는 것이 맞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
하지만 우리에겐 지하공간이란 공포와 혐오로 인식되는 것일까?
이것은 코맥 매카시의 책에 나오는 '세상 속의 끔찍한 어둠'과 연관되어 있다. 공포와 혐오는 이런 환경에 맞서는 평범한 반응이다. 지하공간은 또한 주로 먼지, 피할 수 없는 죽음, 가혹한 노동을 함축한다. 폐소공포증은 공포증 중에서도 대개 그 강도가 가장 높다. 서술이나 묘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할 때조차 현기증 이상의 증상을 불러온다. 누가 지하에 감금되었다는 소리만 들어도 사람들은 한 발짝 물러나 불안한 표정으로 불빛을 찾아 두리번거린다. 마치 말만으로도 주위에 담이 쳐질 수 있다고 믿는 것처럼. - page 20
특히나 일상적인 비유에서 높이는 동경의 대상이지만 깊이는 경멸의 대상이 되면서 아래에 있는 것을 멀리하고 혐오의 문화가 형성되었음을 일러주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기억, 신화, 은유뿐 아니라 동시대적 존재의 물질적 바탕에도 필수적인 언더랜드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저자는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언더스토리 중에서도 '지하 소셜 네트워크'를 보면서 종을 초원한 세계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균근성 곰팡이와 식물은 약 4억 5,000만 년 전부터 아주 오래된 관계를 유지해왔고, 대부분이 상리공생이었다. 곰팡이와 나무의 관계에서, 곰팡이는 자기에게 없는 엽록소를 이용해 나무가 포도당의 형태로 광합성한 탄소를 얻고, 반대로 나무는 자기에게 없는 효소를 가지고 곰팡이가 토양에서 얻어낸 인이나 질소 같은 영양분을 얻었다. - page 108
상리공생이라......
그들이 우리에게 '교환', '나눔', 심지어 '우정'의 의미가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었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바와같이 '지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엿볼 수 있었던 '도시'의 의미.
오랫동안 수직 형태를 띠었기에 현대의 도시경관은 수직의 용어로 읽을 수밖에 없는 불평등의 지리학에......

덧붙인 이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내가 들어온 곳은 수직 갱도였고, 내 위에 높이가 3미터 정도 되는 현수벽이 있는데 그 안에 두개골, 갈비뼈, 팔다리뼈 할 것 없이 사람의 뼈가 수백 개도 넘게 박혀 있었다. 아래로 우물 바닥에는 수백 개의 뼈가 더 있었다. 여기는 균열된 터널망 틈바구니로 매자아지의 내용물이 쏟아지기 시작한 지점이다. 갱도를 파낸 거친 석회암 역시 시체들로 두꺼워 보였다. 암석 퇴적물 속에서 부서지지 않고 화석이 된 쇠고둥과 나선형 조개껍질들이 그것이다. 순간 지상과 지하 도시가 하나의 네크로폴리스로 느껴졌다. 죽은 자의 도시가 산 자의 도시보다 앞서 존재했다...... 죽은 자의 도시는 모든 살아 있는 도시의 선조이자 핵심이다...... - page 166
지하에 대한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현재에도 이어진 이야기.
그리고 앞으로의 이야기.
그래서 이 이야기가 책을 덮어도 오랫동안 남았습니다.
제방, 지도, 핫셀, 정보실, 땅속의 저장실 - 모두 페름기 지층 깊이 파묻은 활성 방사성물질 저장 용기 위에 지어진 - 은 내게 가장 인류세다운 건축물이자 우리가 지금까지 언더랜드에 묻은 가장 거대한 무덤같았다. 고백과 경고 사이의 어디쯤에 있는 저 반복적인 주문은 내게 가작 완벽한 인류세의 텍스트이자 가장 어두운 장례 미사문이다.
...
온칼로의 매자아실을 관리하는 사람들은 후대에 어떻게 경고를 전달할지에 대해 대체로 무관심하다. 이 위도에서는 버려진 땅 위로 곧 숲이 자라기 시작하고, 그래서 지상의 존재를 감추게 될 것임을 안다. 그리고 일단 숲이 자라기 시작하면 지구의 시간으로 볼 때 머지않아 빙하가 이곳으로 돌아올 것임을 안다. 얼음이 지나가면서 이곳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싹 밀어버려 지형 전체를 지워버릴 것임을 안다. - page 447 ~ 448
다시 지상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저 높고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곳.
수많은 사람들은 지상 위에 저마다의 발걸음을 옮기고 있습니다.
우리가 서 있는 이 땅.
이 땅이 지탱할 수 있었던 것은 '언더랜드'가 있었기에 가능하였음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