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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걷는 여자들 - 도시에서 거닐고 전복하고 창조한 여성 예술가들을 만나다
로런 엘킨 지음, 홍한별 옮김 / 반비 / 2020년 7월
평점 :
책 표지의 사진에 눈길이 갔습니다.
거리를 걷는 여성.
여성으로써 거리를 걷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하였습니다.
"도시에는 항상 여자들이 있었다."
지워진 지성과 문화의 역사를 발로 걸어 되찾다
『도시를 걷는 여자들』

지금이야 여성들이 거리를 걸어다니는 것이 아무렇지 않지만 불과 19세기까지만 하더라도 여성이 처한 사회적 조건 때문에 여성이 집 밖에 나오는 순간 평판을 망치고 정숙함이 손상될 온갖 위험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혼자 집 밖에 나가기만 해도 오명을 쓸 위험이 있었다니......
젊은 러시아 귀족 여성 마리 바시키르체프의 일기를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나는 혼자 집 밖에 나갈 자유를 갈망한다. 가고, 오고, 튀일리 정원 벤치에 앉고, 무엇보다도 뤽상부르에 가서 상점마다 장식된 진열창을 구경하고 교회와 박품관에 들어가고 저녁에는 오래된 거리를 배회하고 싶다. 내가 가장 부러워하는 게 그거다. 이런 자유가 없다면 위대한 예술가가 될 수 없다. - page 30
하지만 19세기 말이 되자 계급과 상관없이 모든 여자들이 도시의 공공장소를 누릴 수 있게 됩니다.
1850년대와 1860년대에 백화점이 생겨나 여자들의 외출이 정상으로 받아들여지게 되는 데 큰 영향을 미치게 되고 1890년대에 자전거를 타고 어디든 가고 싶은 데에 갈 수 있고 상점이나 사무실에서 일하며 경제적 독립을 이룬 신여성이 등장하며 더 이상 거리에서 여자들의 존재를 부인할 수 없게 됩니다.
저자는 '플라뇌즈'를 찾으려 뉴욕, 파리, 런던, 베네치아, 도쿄를 거닐게 됩니다.
플라뇌즈(flaneuse), 명사, 프랑스에서 온 말. 보통 도시에서 발견되는 한량, 빈둥거리는 구경꾼을 가리키는 단어 플라뇌르(flaneur)의 여성형.
이건 가상의 정의다. 플라뇌즈라는 단어가 등재된 프랑스어 사전은 찾아보기 힘들다. 1905년에 나오 『리트레』사전에는 'flaneur, -euse'가 있고 "산보하는 사람"으로 정의되었다. 그러나 『생생한 프랑스어 사전』에 따르면, 믿기지 않게도 플라뇌즈는 "안락의자의 일종"이라고 한다.
일종의 농담 같은 건가? 여자가 빈둥거리면서 할 수 있는 일은 드러눕는 것뿐이라는 말인가? - page 23
그녀가 뜻하는 플라뇌즈는 단순히 플라뇌르의 여성형이 아닌 그 자체의 개념으로 인지하고 그로부터 영감을 받을 수 있는 존재임을 의미하였습니다.
플라뇌즈는 도시의 창조적 잠재성과 걷기가 주는 해방 가능성에 긴밀하게 주파수가 맞추어진, 재능과 확신이 있는 여성이다. - page 44
그렇게 여성이 도시를 걷기 시작할 때 그 의미가 어떠한 변화를 일으켰는지에 대해 조르주 상드, 버지니아 울프, 진 리스, 소피 칼, 아녜스 바르다 등의 삶과 작품을 통해 알아보고 있었습니다.
특히나 '버지니아 울프'는 여자와 도시의 관계에 대해 깊이 생각했고 1927년에는 플라뇌즈에 대한 에세이를 썼습니다.
런던을 돌아다니면서 여자들도 익명성을 누릴 수 있다는 울프의 말.
거리에 있을 때 우리는 더 이상 "우리 자신"이 아니고 "도시 풍경의 기능"이 된다. 전에는 시선의 대상이었지만 거리 산보자가 되면 섹스나 젠더에서 벗어난 관찰하는 주체가 된다. 우리는 익명성의 외투를 두르고 종종 알 수 없는 도시처럼 우리도 알 수 없는 존재가 된다. - page 137
조르드 상드는 자서전에서 걷기가 반복되는 주제였습니다.
심지어 자서전의 마지막 단어가 marcher(걷다)일 정도로 "모든 사람을 위한 자비"의 길을 향해 걷는다는 말로 끝을 맺는다고 합니다.
혼자서, 자기 기상에 걸맞게 걸을 수 있다는 게 상드에게는 독립 선언의 기본 요건이었다는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도시'의 의미 중 이 이야기가 저에게 와 닿았습니다.

그 길 위에 새겨지고 기억될 일들이.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이어주는 길임이, 그 길들이 모여 도시가, 역사임을 일깨워주었습니다.
책 속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걷지 않는 문화는 여자들에게 나쁘다. 걷지 않는 문화가 권위적인 분위기를 만든다. 이게 다 결국 무슨 의미인지, 자신의 욕구가 무엇인지, 그 욕구가 충족되는지 등을 고민하지 않는 여자는 가족에게서 벗어나 방황하지 않을 것이다. - page 64
그러므로 자신을 걷게 해야합니다.
걷고 걸으며 움직이고 생각하고 원하고 참여하여 비로소 도시 속 나의 존재감을, 나아가 내 자신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며 오늘도 문 밖을 나서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