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의 날의 거장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271
레오 페루츠 지음, 신동화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유명 배우의 의문의 죽음

수수께끼의 연쇄 자살 사건

레오 페루츠의 대표작 국내 초역


'레오 페루츠'의 작품을 접해보지 않았지만 이미 그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이탈로 칼비노, 앨프리드 히치콕, 그레이엄 그린, 이언 플레밍 등 세계의 많은 문호와 거장들이 그의 작품을 탐독하고 찬사를 보낼 만큼 오스트리아 작가이자 독일어권 문학의 거장이었습니다.

그런 그의 작품이 이번 기회에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무엇보다 서스펜스와 추리를 좋아하는 이라면 이 작품은 당연히 읽어보고 싶은 충동을 느낄 것입니다.

과연 이 사건의 범인은 누구일지... 직접 만나보고자 합니다.


수수께끼 연쇄 자살 사건의 비밀


『심판의 날의 거장』

 


나의 작업은 끝났다. 나는 1909년 가을에 있었던 일들, 연달아 일어난 비극적 사건들을 적어 놓았다. 그 사건들과 나는 아주 기이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내가 기록한 것은 완전 진실이다. 아무것도 건너뛰지 않았고, 아무것도 억누르지 않았다. - page 7


1909년 9월 26일 일요일.

아침에 우편부가 노르웨이에서 편지 한 통을 가져옵니다.

편지를 개봉했지만 자신이 기대했던 편지 대신 하르당에르 빙하 지대에 있는 동계 스포츠 여행객용 호텔의 팸플릿에 실망을 하게 되고 그는 펜싱 클럽으로 가게 됩니다.

그리고 점심때는 연대 동료 둘과 식사를 하고 난 뒤 조간신문을 읽게 되는데 베르크슈타인 은행의 도산에 관한 아주 자게 인쇄된 토막 기사를 발견하게 됩니다.

진즉에 예상하고 있었지만 그의 지인인 배우 '오이겐 비쇼프'에겐...


경고해 주었어야 했는데,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갔다. 그런데 내 말을 믿기나 했을까? 그는 내가 늘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여기니까. 남의 일에 끼어들 필요가 뭐 있겠는가? 그와 동시에 며칠 전 궁정 극장의 극장장과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오이겐 비쇼프의 이야기가 나왔고, 극장장은 <유감스럽게도 그 사람은 늙었죠. 제가 그를 도울 길은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후배 배우들의 성화에 대해 몇 마디 덧붙였다. 내가 받은 인상이 맞다면 오이겐 비쇼프가 계약을 갱신할 가망은 없었다. 그리고 이제 거기에 베르크슈타인 은행과 관련된 불행이 더해질 게 분명했다. - page 9 ~ 10


그리고 오이겐 비쇼프는 그의 저택에서 두 발의 총성 소리와 함께 갑자기 자살을 하게 됩니다.

이 저택 안에는 이 소설을 이끌고 있는 '요슈 남작'과 비쇼프의 아내인 '디나', 디나의 남동생인 '펠릭스', 펠릭스의 동료인 엔지니어 '발데마르 졸그루프', 그리고 '고르스키 박사'가 있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비쇼프를 죽음으로 몰아간 인물로 요슈 남작이 지목되게 됩니다.

그 이유는 비쇼프의 아내와 과거 연인 사이로 아직도 그녀에게 연정을 품고 있었고, 비쇼프의 자살을 유도할 수 있는 정보를 가졌기 때문이었습니다.

한순간 범인으로 지목된 상황.

사건의 진실을 파헤쳐 가기보단 시간의 흐름에 맡기고자 했던 그에게 엔지니어 졸그루프는 사건의 진실을 파헤쳐 주겠다며 진범을 찾아 나서게 되고 그 역시도 조금씩 사건의 진실을 파헤쳐 나가고자 하는데...


비쇼프의 죽음과 비슷한 형태의 불가사의한 자살 사건들이 연쇄적으로 발생하면서 이는 단순한 자살이 아님을 알게 되고...

사건의 범인은 누구인지...

왜 두 발의 총성 소리와 함께 오이겐 비쇼프는 자살을 하였는지...

급박하게 사건의 내막은 파헤쳐 지고 그 방향은 예상치 못했던 곳으로 흐르게 되는데...


소설은 한 남자의 회고에서 시작하여 철학적인 메시지를 던지며 마무리를 하였습니다.

인간의 내면, 공포, 예술의 의미에 대해...

​

 



특히나 이 소설을 통해 '창착자들의 고통'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영감을 얻기 위해 자신의 영혼을 불러일으키고 그 마지막엔 파멸이...

(이것이 어쩌면 비겁한 행동이자 변명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공포가 뭔지 안다고 주장하려는 겁니까, 남작님? 오늘 이후로는 그럴지도요. 하지만 당신이 그전까지 경험해 온 공포는 수천 년 전 우리 안에서 사라져 버린 감정의 미약한 반영에 지나지 않습니다. 진정한 공포, 진짜 공포, 그러니까 모닥불 빛을 벗어나 어둠 속으로 들어갈 때, 구름 속에서 맹렬하게 번개가 내리칠 때, 늪에서 태곳적 공룡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울릴 때 원시인을 사로잡았던 공포, 고독한 피조물의 원시적 불안...... 살아 있는 인간인 우리 중 누구도 그 공포를 알지 못합니다. 누구도 그 공포를 견뎌 내지 못할 겁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서 공포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신경은 죽지 않았습니다. 그 신경은 살아 있습니다. 어쩌면 수천 년 동안 마비된 상태로요. 그 신경은 움직임 없이 가만히 있습니다. 우리는 잠자고 있는 이 무서운 녀석을 뇌 속에 가지고 있는 겁니다!」- page 232


... 당신이 본 소름 끼치는 광경은 당신의 잠재의식에서 생겨난 겁니다... - page 233


아마 저자가 우리에게 전하고자 한 바는 이것이 아닐까...


...우리 각자는 나름의 최후의 심판을 안에 지니고 있습니다... - page 234


단순한 호기심으로 읽게 되었지만 끝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묵직함이 책장을 덮은 후에도 오랫동안 남았었습니다.

인간 내면 밑바닥에 자리 잡은 '공포'라는 감정...

내가 마주하게 될 '최후의 심판'은 어떤 모습일지...

그리고 그 끝은 어떨지...

아직은 마주하고 싶지 않다는게 지금의 제 심정이랄까...


저자의 다른 작품도 궁금하였습니다.

알고보니 몇몇 작품도 이미 국내에 번역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다른 작품 속에선 어떤 메시지를 전할지...

그의 작품을 조만간 찾아 읽어봐야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책 읽는 사람만이 닿을 수 있는 곳
사이토 다카시 지음, 황미숙 옮김 / 쌤앤파커스 / 2021년 5월
평점 :
절판


최근에 저의  '책을 읽는다'라는 행위에 대해 되돌아보았습니다.

무턱대고 '열심히' 읽었는데...

아니, 읽는 것 자체가 너무나 즐거웠는데...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 채, 겉핥기 식이었던 것인지...


그리고 나니 조금은 책을 '읽는다'라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거의 한 달 정도 책을 멀리했었습니다.

비록 다시 책으로 손을 뻗긴 했지만...


그래서 이 책을 집어 들었습니다.

내 '책 읽기'를 바로잡기 위해.

어떻게 책을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

일본 최고의 교육학자인 '사이토 다카시'가 알려주는 '독서'에 대해 귀를 기울여보았습니다.


종이책을 읽는 사람은

무엇이 다른가?


『책 읽는 사람만이 닿을 수 있는 곳』 

 


사람들이 예전만큼 책을 읽지 않는다는, 종이책을 별로 사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이미 오래전부터 나오기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꼭 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 것은 아닙니다.

'e북'을 통해서, '오디오북'을 통해서 예전보다는 다양한 경로로 '책'을 읽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저자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정보의 내용이나 도구의 문제라기보다는 자세의 문제다. 저자를 존경하며 '이 책을 읽어봐야지' 할 때는 차분히 자세를 바로잡고 경청하려는 마음가짐이 된다. 저자와 단 둘이 마주앉아 이야기를 듣는 것과 같다. 상대방이 천재적인 작가라면 다음 이야기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한 마음에 자는 시간도 아까워하며 책을 읽으려 할 것이다. - page 13


즉, 저자는 한 사람이 인생에서 할 수 있는 체험에는 한계가 있지만 책을 통해서는 다양한 체험이 가능하며 이를 통해 인생관, 인간관을 심화시키고 상상력을 풍부하게 만들며 인격을 키워갈 수 있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래서

'독서가 인생의 깊이를 만든다'

는 전제하에 어떻게 책을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넓고 깊은' 독서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제안을 해 주었습니다.


'이달의 저자'를 만들자.


그러니 이번 달에 한 사람의 저자에게 빠졌다면 다음달은 다른 저자에게 빠져보자. 또 다음 달에는 다른 저자의 책을 읽는 식으로 시기별로 확장시키면 좋다. '흠뻑 빠지는 기쁨'을 이동시키는 것이다. 참고도 특정 인물에게 빠졌다고 해서 다른 사람을 깎아내릴 필요는 없다. "엘리트 같은 아무개 작가보다는 낙제생 느낌의 다자이 오사무가 더 낫지"하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저자를 추켜세우는 일은 무의미하다. 그보다 이번 달은 다자이 오사무, 다음 달은 다른 저자라는 식으로 각각 마음껏 빠져보는 편이 낫다. - page 72


이 독서법은 저도 한 번 활용해 보아야겠습니다.


가끔 책을 읽다 보면 도통 책장 넘기기가 힘겨운 책들도 있습니다.

저에겐 특히나 '고전' 그것도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문호인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은 읽어보고 싶은데 등장인물부터 시작해서 도무지 넘어가지 않는 깊이감...

이런 저에게 저자는 이야기합니다.

​

 


이 머리가 아득해지는 느낌마저 '독서'라니...

그래서


'까짓, 덤벼봐야지'하고 경의를 담은 무사의 마음과 자세로 앞으로 나가보자. - page 76


란 처방이 썩 와닿지는 않았지만 언젠가 다른 이들과 '같이' 읽게 된다면 가능하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 봅니다.


작년부터 인터넷 카페의 '독서모임'에 가입해서 사람들과 함께 한 달에 한 권(혹은 그 이상)의 책을 읽으며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고 있습니다.

사실 그전까지는 혼자 독서를 하면서 느낀 점을 끄적이고 있지만 '이게 맞는 건지...' 때론 어려운 책을 만나면 중도에 포기하고 마는 것이 일쑤였는데 독서모임을 통해 각자가 느낀 '리뷰'를 읽으며

'아! 이게 이 이야기를 뜻하는 것이었구나!'

'이렇게도 느낄 수가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고 보다 독서의 영역이 확장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자의 이 이야기가 무엇보다 공감이 되었습니다.

​


저자를 통해 깨닫게 된 점도 있었습니다.

베스트셀러나 화제가 된 책은 그때 읽어야 한다는 점!

사실 저도 서점가를 기웃거리다가 베스트셀러에 놓은 책들을 사 놓고는

'나중에 읽어야지'

란 생각으로 책장에 고이 모셔두기가 일쑤였는데 이런 저에게 전한 저자의 이야기.


책의 내용 자체가 낡아버리는 것은 아니지만, '어려워 보이니 나중에 읽어야지' '좀 더 지식을 쌓은 후에 봐야지' 하다 보면 붐은 가라앉는다. 이런 책은 제때에 놓치지 말고 읽어두는 편이 당시의 주위 반응과 더불어 지식을 잘 흡수할 수 있다.

어려워서 포기하게 된다는 사람은 핵심 부분만 읽으면 된다. 가장 중요한 부분을 읽고 그것만큼은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해두는 것이다. 책에 쓰인 내용을 전부 말하려고 하면 20시간, 30시간도 모자라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 - page 126


"난 베스트셀러는 안 읽어"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러면 아무래도 영역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 많은 사람들이 읽는 책에는 무언가 좋은 점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순순히 붐을 즐겨보자. 나는 유행을 타는 것도 지적인 인생을 즐기는 방법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 page 127 ~ 128


이 책의 좋은 점이 있다면 저자는 여러 독서법 - 사고력을 심화시키는 독서법, 지식을 심화시키는 독서법, 깊이 있는 인격을 만드는 독서법, 인생의 깊이를 더하는 독서법, 어려운 책의 독서법- 을 이야기하고 있기에 자신이 읽는 책에 맞는 독서법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또한 저자는 중간중간에 추천 도서들이 명시되어 있기에 이 한 권을 통해 다양한 책으로 독서를 확장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책을 읽으면 지식이 깊어지고, 생각이 깊어지고, 인격이 깊어지면서 '깊은 사람'이 되는 데 독서만큼 좋은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인격과 삶 속에서 교양을 갖춘 사람, 바로 '깊은 사람'.

깊은 사람이 되기 위해 지금 이 순간 책을 집어 드는 것은 어떨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노력의 기쁨과 슬픔 - 너무 열심인 ‘나’를 위한 애쓰기의 기술
올리비에 푸리올 지음, 조윤진 옮김 / 다른 / 202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열심히'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니, 다들 그렇게 살아가니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아등바등...

열심 열심...

 

하지만 돌아온 결과는 내 기대에 미치지 못하게 되고 그래서 자책을 하게 되고...

또다시 마음을 다잡고 최선을 다해 노력을 하고...

이런 반복되는 과정에 결국 지쳐버린 나.

 

그런 나에게 선사해 줄 책이 바로 이 책이었습니다.

 

이 책은 우리가 오래 기다려온 지적인 백신이다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죄책감을 느끼는 분들께 강력 추천

- 장강명

 

『노력의 기쁨과 슬픔』

 

 

우리는 좋은 결과를 얻으려면 엄청난 노력을 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젊은 나이에 모든 것을 갖추어야 한다고.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아무것도 안 하면 아무것도 될 수 없다고.

 

그런 우리에게 저자는 말합니다.

 

하지만 확신하건대, 우리에겐 그와 정반대의 태도가 필요하다. 어떤 상황에서는 노력이 단순히 무용할 뿐 아니라 비생산적이기까지 하다. 예를 들어, 고통 자체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고통 때문에 아름다워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름다움은 내면의 평화와 평온함, 편안한 마음가짐에서 비롯하는 것이니까. 지금 나는 노력이 아무 소용없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라, 간접적으로만 도달할 수 있는 목표들이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달성하고자 하는 모든 시도를 진심으로 멈추고 목표로 삼지 않아야만 도달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는 얘기다. 간단히 말해 편하게 하면 된다. - page 8

 

어쩌면 부단히 애쓰며 노력하지 않아도 원하던 바를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을, 그래서 여유를 갖고 보다 느긋한 자세를 가져도 된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었습니다.

 

책은 철학자, 예술가, 운동선수에서 소설 속 인물까지 다양한 인문들에게서 조언을 빌려 자신의 이야기를 함으로써 '노력하지 않음'의 미학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내가 가져왔던 관점과는 사뭇 달랐기에 - 내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보았다면 그의 관점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보는 것이었기에 - 신선한 충격을 받은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모든 운명이 당신이 내건 희망에 달려 있다. 자신감에 달려 있다. 이때 자신감은 생각이라기보다는 세상을 마주한 채 꼿꼿이 등을 펴고 있는 몸의 모양, 즉 당신의 자세다. 생각은 당신이 하는 게 아니라, 당신 그 자체다. 그렇게 되어야 사고의 함정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 page 43

 

너무 열심히 노력하지 말라는 것이 눈 뜨고 지켜보지도 말라는 뜻은 아니다. 눈을 뜨되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고 바라보는, 긴장 없는 '응시'가 필요하다. 그런 '응시'를 가능하게 하는 비결은 편안함이다. "자신에게 편안한 자세로 앉아 생각하기 시작해야 한다." 편안함을 느끼는 것이 먼저고, 생각은 그 편안함에서 비롯하는 결과물이다. - page 174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특별히 무언가를 하지 않는다는 뜻이지, 특정한 생각이나 감정, 감각을 억누른다는 뜻이 아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 일들이 벌어진다. 일들이 벌어지게 두는 것은 한계치 없이 수용하는 상태와 같다. 시시콜콜한 것들까지 모두 기꺼이 받아들이면 나의 선호, 소망, 계획 따위는 사라지고, 순수한 행위의 힘을 받게 딘다. 행위의 원천이 되는 지점에 서는 셈이다. 그냥 일이 벌어지게 두는 사람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것들에 스스로를 끊임없이 맞추어 들어간다. 그렇게, 이미 충만한 상태로, 행위를 시작하는 것이다. - page 178 ~ 179

 

그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이야기는 '1만 시간의 법칙'에 대한 그의 견해였습니다.

1만 시간을 투자하면 전문가적인 수준에 도달한다고 "위대함을 만드는 마법의 숫자"라고도 불리었는데...

 

결국 특정한 영역에 1만 시간을 투자하는 행위로 모든 사람이 전문가적인 수준에 도달할 것이라고 보장할 수는 없다. 성공을 위해서는 타고난 '하드웨어'와 훈련을 거쳐 획득한 '소프트웨어', 이 둘을 모두 갖추어야 한다. 재능 없이 노력만으로 위대함을 이룩해줄 마법의 숫자 같은 건 없다. 재능과 노력, 어느 한 쪽도 없어서는 안 된다. 노력하지 않는 천재는 밭에 씨를 뿌릴 수 없고, 재능 없이 노력만 하는 사람은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다. 두 경우 모두 낭비다. 재능이 있는데 훈련하지 않는 것만큼 안타까운 일도 없지만, 재능도 없이 무작정 훈련하는 것 역시 해롭다. 신체와 정신 모두 불필요하게 소모될 뿐 아니라, 집요하게 매달리며 자기부정을 거듭하다 보면 판단력이 흐려져 집착에 빠질 수도 있다. - page 85

 

1만 시간의 법칙은 얼핏 모두를 평등하게 대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예 표기하고 놓아버리라는 말보다 더욱 위험한 유혹이 될 수 있다. 훈련을 줄이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지도 못하게 되니 말이다. 이제, '원하면 이룰 수 있다'가 아니라 '이룰 수 있다면 제대로 원한 것이다'라고 말해야 한다. - page 88 

 

원한다고 해서 무엇이든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굳이 애쓰지 않아도 될 곳에 힘을 뺄 필요가 없음을 여실히 깨닫게 된 대목이었습니다.

 

책을 읽고 나니 그동안 노력해야 한다는 것에, 애써야 한다는 강박감에 사로잡혀 살아온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무 강하게 살아가다 보면 결국 부러지게 된다는 것을...

아마도 이 책에서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이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바람결에 몸을 맡기는 대나무는 거센 바람에도 곧게 자란다"

 

대나무처럼 흐름에 맡긴 채 살아가는 삶의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불안한 사람들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2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베라는 남자』로 제 마음을 사로잡았던 작가, '프레드릭 배크만'.

그 후로 나온 그의 작품은 빠짐없이 읽었습니다.

웃다 울다 결국 드리워지는 깊은 울림을 전하는 그의 이야기...

 

특히나 그의 이야기가 좋은 이유 중 하나는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자극적이지 않지만 재미와 감동을 주는, 그래서 읽고 나면 가슴이 따뜻해지는 이 느낌.

이 느낌을 경험해 보지 않았다면 몰랐을 텐데 그를 통해 한 번 경험을 해 보았기에 단 한 번으로 그칠 수 없었습니다.

 

이번에 그의 신작이 나온다는 소식에 주저 없이 읽게 된 이 소설.

이미 이 작품에 대해

 

"역시 배크만은 틀릴 리가 없다"

"팬데믹 시대의 불안을 해소해줄 가장 믿음직한 치료제"

"공포 속 희망, 비극 속 유머, 혼돈 속 우아함, 웃음 속 눈물이 황홀하게 쏟아져 내린다"

 

등 열광적인 찬사를 받았기에 역시나 믿고 읽게 되었습니다.

 

마음 약한 강도 꿈나무와 더럽게 말 안 듣는 인질들의 대환장 소동극!

세상의 바보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가장 눈부신 이야기

 

『불안한 사람들』

 

 

은행 강도. 인질극. 아파트를 급습하려는 경찰들로 가득한 계단. 이 지경에 다다르기까지는 수월했다. 생각보다 훨씬 수월했다. 정말 한심한 발상 하나만 있으면 됐다. - page 15

 

어느 날 아침.

그다지 넓지도 않고 주목할 만하지도 않은, 인질극은커녕 자전거 도둑도 없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도시에 39세의 은행 강도 사건이 일어나게 됩니다.

아니, 원래는 은행 강도 사건이 될 예정이었지만 모든 게 조금 어그러져버리면서 은행 강도는 은행 강도라 할 수 없는 사건을 저지르다가, 당연한 수순으로 경찰이 출동하자 겁에 질려서 길을 건넜고 맨 처음 눈에 들어온 문을 열고 도망치게 됩니다.

마침 매물로 나온 아파트라 구경하러 온 잠재 고객들로 가득한 어느 아파트.

은행 강도는 숨을 헐떡이고 땀을 뻘뻘 흘리며 권총을 허공으로 들어 올리고는 비틀비틀 안으로 들어가게 되고 그렇게 해서 이 이야기는 결국 인질극이 되게 됩니다.

 

이후 사태는 정석대로 흘러가게 됩니다.

경찰이 건물을 에워싸고 기자들이 출동하였으며 결국 항복할 수밖에 없는 상황.

인질 여덟 명, 그러니까 잠재 고객 일곱 명과 부동산 중개업자 한 명이 풀려나게 됩니다.

그 뒤 경찰이 아파트를 습격하게 되는데 그 안엔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무도 은행 강도의 행방을 알지 못했다.

이 시점에서 당신이 알아야 할 것은 그게 전부다. 이제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겠다. - page 19

 

그렇게 소설은 사건을 담당하게 된 짐과 그의 아들 야크 경찰관이 인질이 되어버린 여덟 명과의 심문과 함께 그때의 상황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지면서 대환장 인질 소동극이 그려지게 됩니다.

 

솔직히 경찰 부자가 심문을 하는 과정을 들여다보면 말장난이 난무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자신들이 바보인마냥 엉뚱한 소리를 하고 또 그 소리에 장단 맞춰주는 경찰의 모습은 처음엔 '도대체 뭐 하자는 거지...!'란 생각이, '범인을 잡을 생각이 있는 건가...?'란 의문을 만들곤 하였습니다.

하지만 사건의 내막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그들의 태도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소설 속에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소설 속 인물들은 저마다 '어른'이었지만 마음속엔 '불안' '외로움' '두려움'을 지닌, 어쩌면 가여운 우리의 모습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그래서 그들의 행동을 보며 마냥 바보스럽다고, 우스꽝스럽다고 여길 수 없었습니다.

그 뒤에 가리워진 슬픔을 알기에, 외로움을 알기에...

 

가끔은 껍데기가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가슴이 정말 아플 때도 있다. 공과금도 내야 하고 어른도 되어야 하는데 어른이 되는 법을 몰라서, 어른이 된다는 것은 실패할 확률이 지독히 높은 일이라서 겁에 질릴 때도 있다. - page 16

 

그럼 어떻게 살아가야하는 것일까...?

 

진실. 세상에 진실은 없다. 우리가 우주의 경계에 대해 어찌어찌 알아낸 게 있다면 우주에는 경계가 없다는 것뿐이고, 신에 대해 아는 게 있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뿐이다. 따라서 목사였던 어머니가 가족들에게 요구한 것은 간단했다. 최선을 다하라는 것.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으라는 것.

 

구할 수 있는 사람은 구하라는 것. - page 473

 

결국 이 소설의 진실은...?!

 

진실은 무엇일까? 진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복잡한 경우가 거의 없다. 우리가 진실이 복잡하길 바라는 이유는 먼저 간파했을 때 남들보다 똑똑한 사람이 된 기분을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건 다리와 바보들과 인질극과 오픈하우스에 관한 이야기다. 하지만 사랑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실 여러 편의 사랑 이야기다. - page 309

 

소설을 다 읽고 나서 한 노래가 떠올랐습니다.

리쌍의 <광대>.

조금은 웃픈 우리의 모습에, 아니 내 모습에 잠시 음악을 들으며 소설 속 인물들을 하나둘 찬찬히 떠올려봅니다.

 

세상을 넘어 시간을 멈추고
세상을 넘어 신나게 춤을 춰 봐
세상을 넘어 모두가 같은 높이에서
그래 그래 그렇게

​ - 리쌍의 <광대> 중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독서를 싫어하는 사람을 위한 도서실 안내
아오야 마미 지음, 천감재 옮김 / 모모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도 10대엔 '책'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특히나 책을 좋아하시는 엄마를 보면서 '왜 독서를 하는 거지?'하며 의아해하곤 하였습니다.

그런 저도 지금은 '책'을 손에 잡고 '독서'란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참 아이러니한 건지...

 

이 책을 보자마자 제 학창시절이 떠올랐습니다.

그렇다면 소설 속에서는 어떻게 책으로 인도할지...

 

활자 알레르기 소년과 책덕후 소녀가 만난 그날,

도서실의 공기에선 반짝이는 빛이 났다

 

『독서를 싫어하는 사람을 위한 도서실 안내』

 

 

시청각실에 모인 도서위원들.

새 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인지 서먹한 분위기인지라 선생님은 이 분위기를 풀려는 듯 친근히 말을 합니다.

 

"오늘은 다들 처음 얼굴 보는 날이니까 자기소개도 할 겸 학년이랑 이름, 좋아하는 책 제목이라도 말해볼까? 그 이유도 한마디 덧붙여서." - page 9

 

사실 책 읽는 게 재미있다고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던 '아라사카 고지'.

도서위원은 도서실 카운터에 앉아 있기만 하면 되니까 제일 만만해보이는 도서위원회에 들어갔는데...

 

"2학년 6반, 아라사카 고지입니다. 좋아하는 책은 딱히 없습니다." - page 11

 

선생님께 진지하게 대답하지 않았다고 꾸지람을 듣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그럼 아라사카 고지, 너를 도서신문 편집장으로 임명할게." - page 11

 

이건 무슨 소리지?!

오히려 자신에게 폐간된 도서신문을 다시 부활시키는 프로젝트를 부여합니다.

 

"난 말이지, 이제껏 도서실에 온 적이 없던 사람이나 책을 전혀 안 읽는 사람들이 도서신문을 읽게 만들고 싶어. 하지만 나는 책을 좋아해서 독서에 흥미가 없는 사람의 마음을 알 길이 없기 때문에 지면을 어떻게 구성해야 좋을지 짐작이 안 간단 말이지. 그래서 책을 안 읽는 아라사카가 독서에 관심 없는 사람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신문을 만들어줬으면 해. 그러니 너야말로 적임자인 것 같은데?" - page 13

 

자신의 거절을 거절하시는 선생님.

결국 자기와 같은 반이자 엄청난 독서가 '책덕후'인 '후지오'와 함께 도서신문을 기획하게 됩니다.

 

도서신문은 옛날 신문을 참고해 신착도서 소개 코너를 넣고 다른 사람들한테 독서 감상문을 넣어볼 작정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선생님은

 

"그런데 그 테마 말이야, 책에 관심 없는 사람도 읽어줄까? 아라사카라면 읽어볼 것 같아?"

"안 그럴 것 같은데요."

...

"정 그러면 사람들한테 받은 독서 감상문 옆에다 네가 쓴 감상문도 나란히 실으면 어때? '책을 싫어하는 사람이 읽고 느낀 점' 어쩌고 하고 한 줄 넣으면, 너처럼 책에 흥미 없는 사람도 관심을 보일지 모르잖아." - page 27 ~ 28

 

그렇게 아라사카와 후지오는 같은 반 야에가시, 미술부 미도리카와 선배, 그리고 생물 담당 히자키 선생님에게 도서신문에 실을 독서 감상문을 부탁합니다.

순탄히 이루어질 것 같았던 감상문은 예상 외의 미션들이 존재하게 되고 이를 풀기 위해 조금씩 아라사카도 책의 세계에 발을 내딛기 시작하는데...

 

소설 속에서 책을 '읽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

 

참으로 멋진 말이었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이야기는, 예언서가 될 수 있기 때문이야." - page 97

 

그리고 이 대목을 읽을 때 최근에 읽었던 소설 『정체』가 떠올랐습니다.

 

독서란 다른 사람의 사고를 더듬어가는 행위이기도 한 모양이다. 단순히 책장을 넘기는 동작을 할 뿐인데, 머릿속에서는 매우 복잡한 일들이 일어나나 보다.

가와이 선생님이 웃으면서 슬쩍 덧붙였다.

"그러니까 아라사카도 책을 읽어두는 게 좋아 만약 네가 누군가에게 나이프를 들이대는 상황에 처하더라도, 상대방의 배경을 상상할 수 있다면 나이프를 거둘 수 있을지도 몰라."

...

"그런 극한의 상태와 거기에 이르는 과정을 치절하고 자세하게 보여주는 게 소설이잖아 살인범의 심정까지 완벽히 추적할 수 있으니까." - page 172

 

무엇보다 저에게 인상적이었던 이야기.

 

"현실에 싫은 사람이 나타나더라도 그 이면을 읽어내는 시도를 많이 해보면 '뭔가 이유가 있는 게 아닐까',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자'라고 생각할 수 있어. 그래서 될 수 있으면 책을 읽으려고 해. 여러 방법으로 생각할 수 있게. 다른 사람이 한 말을 하나의 의미로밖에 해석하지 못하면 내가 괴로우니까 도망갈 길을 많이 만들 수 있게." - page 215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

결국 나를 위해 책을 읽는다는 후지오의 말이 오랫동안 남았었습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저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나는 책을 왜 읽는 것일까...?!

그동안 쉼 없이 읽기만 했던 제 독서에 잠시 한 템포를 쉬며 독서의 의미를 다시금 부여해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