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장난감 ㅣ 케이 미스터리 k_mystery
박상민 지음 / 몽실북스 / 202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미 이 작가분의 전작을 읽었었습니다.

『차가운 숨결』

그때 '현직 의사가 썼다는 점'에 이끌려 읽기 시작했고 아무래도 직업이기에 보다 현장감 있고 사실적으로 다가와 소름 끼치면서 강한 인상으로 남았었습니다.


그가 또다시 우리 앞에 등장하니 반가웠습니다.

'의학 미스터리'라는 새로운 한 획을 그은 그의 이번 작품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그려낼지 기대를 해 보며...


모든 가식을 떨쳐버린 그의 얼굴에서는 짐작하기조차 어려운 악의가

꿈틀꿈틀 표피를 통해 스며 나왔다.

"괴물은 당신입니다."


『위험한 장난감』 



'이건 무슨 장난감이지?'

소녀는 눈앞의 모형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방에 들어왔을 때부터 그 정체 모를 물건에 호기심이 일었지만,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는 건 처음이었다. - page 6


결혼기념일을 단둘이서 보내고 싶다는 부모님의 뜻대로 할아버지와 지내게 된 소녀.

말수가 없는 편이지만 손녀를 위해서라면 어떤 불편이나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 할아버지.

사실 소녀는 할아버지가 평소에 어떤 일을 하는지, 매일 아침 어디로 가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했지만 언젠가 아빠한테서 어딘가를 관리한다는 것 정도만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할아버지 방에 들어가 보니 병원모형과 수상한 종이에 적힌 이름.

뭘까...?


"이제부터 할애비랑 재밌게 놀아보자꾸나. 준비됐어요, 지수?"

"응, 재밌을 것 같아. 근데 이거 무슨 장난감이야?"

"위험한 장난감이지요."

할아버지의 말에 소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렇게 조그맣고 귀여운 장난감이 뭐가 위험하다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 page 256 ~ 257


- 코드블루, 코드블루. 6병동, 6병동. 코드블루, 코드블루. 6병동, 6병동.


마음 같아서는 가운 주머니에 있는 귀마개를 끼고 잠을 청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는 대학병원 최하층 계급인 인턴 '강석호'.

하루에도 다섯 명의 환자가 세상을 떠나고 그들의 침대가 즉시 말끔히 정돈되는 광경에 익숙해지면서 더 이상 죽음에 특별한 의미를 받지 못하는 자신은 그렇게 오늘도 고군분투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 코드블루, 코드블루. 10병동, 10병동. 코드블루, 코드블루. 10병동, 10병동.


알고 보니 이 환자는 흉부외과 최병우 교수님의 은사였고 교수님이 개흉 심장마사지를 했지만 결국 사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뭔가 석연치 않은 부분이 석호의 눈에 띄고 설마...? 하며 넘어갑니다.

그러다 석호가 엘튜브를 끼우던 환자가 갑자기 사망하는 일이 벌어지게 되고...


"오늘 수련교육부로 선생님에 대한 신고가 두 건 들어왔어요. 강 선생님도 무슨 일 때문인지 짐작 가는 바가 있을 겁니다."

"두 건이라고요?" - page 116


한 건이면 몰라도 두 건이라니.

이건 예상 범위에 속해 있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업무상 과실치사로 징계위원회에 넘겨진 그.

진실을 밝히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그는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이 연달아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음을 알게 되고 좀 더 가까이 다가갈수록 '수상한 장난감'을 마주하게 됩니다.

명성대학교병원에서 마주하게 된 충격적인 진실.


"그래, 그래. 의사에게는 청결이 필수지. 아까도 말했듯이 자네 같은 의사들이 우리 병원에 많아져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네. 의사로서의 사명감, 환자에 대한 책임감, 다른 의료진과의 협력 같은 것이 요즘처럼 개인주의가 팽배한 젊은 의사들에게는 부족하단 말이야. 그렇게 자질이 안 되는 의사들이 나중에는 의료 윤리를 망각한 괴물이 되기 십상이고. 그런 의사들은 웬만하면 우리 명성대학교병원에 안 왔으면 좋겠네, 허허."

조원기는 뒷짐을 진 채 고고한 자세로 걸어 나갔다. 그의 등짝을 바라보던 석호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괴물은 당신입니다." - page 415 ~ 416


생명을 살리는 일이자 죽음을 관장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의사'라는 직업.

하지만 권력에 대한 욕심이, 복수가 '괴물'로 변해가는 모습을 마주하게 되니 그 느낌이란...


슬픔, 외로움, 분노, 좌절감, 죄책감, 고단함, 무력감. 그 외에도 이름 붙이기 어려운 수많은 감정이 각각의 농도는 다르지만, 혈액에 녹아들어 위력을 떨쳤다. 좌심실에서 대동맥으로, 대동맥에서 온몸의 모세혈관으로, 모세혈관에서 대정맥으로, 대정맥에서 우심방으로, 우심방에서 우심실로, 우심실에서 폐동맥으로, 폐동맥에서 폐로, 폐에서 폐정맥으로, 폐정맥에서 좌심방으로, 좌심방에서 다시 좌심실로 이어지는 무한한 순환의 고리를 거치며 그 감정들은 극한의 농도에 이르렀다. 이대로 방치했다가는 혈관을 뚫고 온몸을 잠식해버릴 것이라는 두려움에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 page 421 ~ 422


예전에 보았던 <하얀거탑>이란 드라마도 어렴풋이 떠올리게 되고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초심을 잃지 말자.

라는 것을.

그리고 함부로 장난감을 가지고 장난하면 안 된다는 것을.

책을 덮으며 잠시나마 곱씹어 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무채색 아저씨, 행복의 도구를 찾다 - 잘하려 애쓰는 대신 즐기는 마음으로, 취미생활 1년의 기록
이경주 지음 / 아날로그(글담) / 202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취미가 뭔가요?'

이 질문에 대해 고민해보면 딱히 답할 것이 없었습니다.

음악감상?

독서?

이런 상투적인 거 말고는 없을까...


한때는 뭐라도 배워 나만의 '취미'로 만들어보려고 했지만 마음만큼 쉽지는 않았습니다.

나를 위해 돈 쓰는 것에 조금은 어색해져 버렸고 무엇보다 '즐기면서 하는 마음가짐'이 그렇게 어려운 것일줄은 몰랐기 때문이었습니다.

열심히!

그리고 멋진 결과를!

안되면 스트레스로...

이러니 취미생활이 될 리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여기 멋진 아저씨가 있었습니다.


"오래 사는 세상이다. 뭔가 할 게 필요해. 죽을 때까지 일할 직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재미를 느낄 취미가 필요하다. 취미를 노후에 찾겠다고 나서면 이미 늦어. 젊을 때 하나 마련해라." - page 17 ~ 18


매일 반복되는 삶에 지쳐 뭔가 재미있는 일, 의미 있는 일이 없을까 고민하던 중 아들이 다니는 화실에 다니게 된 그.

아니, 그 역시도 우물쭈물하다가 또 아무것도 하지 못할 뻔했지만 결혼 선물로 화실에 등록해준 아내 덕분에 시작하게 된 그의 그림 그리기.

그렇게 이 책은 그림을 그리며 저자가 자신의 삶과 일, 가족과 사회에 대해 생각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

읽기도 전이지만 왠지 그가 부러워집니다.


"삶은 팍팍해지고, 인생은 의미를 잃어가고

일에 대한 열정도 점점 사그라질 땐

오롯이 재미에 빠져들 행복의 도구가 필요하다."


『무채색 아저씨, 행복의 도구를 찾다』



"생각 없이 그을 때 가장 잘될 거예요."

"살수록 힘들어지는 게 '생각 없이'던데요"라고 속으로 답했다. - page 21


점, 선, 면 중에 가장 중요한 '선'.

연필을 쥐고 선만 계속 긋는 기본을 하면서 온전히 무언가에 집중하고 몰입하는 즐거움과 기쁨을 느끼게 된 그.

그렇게 그림을 그릴 때만큼은 '자기 자신'을 중심에 놓고 자유롭게 생각을 표현하며 '자기만의 방'의 그림을 완성해가고 있었습니다.


이 책은 그림을 그리며 생각한 것들에 관한 1년간의 기록이었습니다.


기자는 스스로 올바른 생각만 지녔다면 약자를 돕는 작은 성과를 낼 수 있는 직업이라고 믿지만, 직장 상사나 취재원 독자들의 평가 등으로 쌓이는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아 그것들을 완전히 잊을 무언가가 필요하다. 다행히 나는 그림에서 그 답을 찾았다. 게다가 직업 화가가 아니니, 취미로서 더 자유롭게, 온전히 내 맘대로 즐길 수 있다. - page 28


특히나 그는 자신의 아내를 그리면서 '부부'의 의미를 되짚어보는데...



"머리에는 엔젤링이라는 게 있어요. 빛이 반사돼 반짝이는 부분인데 마치 하얀 띠처럼 보이지요."

선생님이 지우개를 들고 머리카락 중간 부분을 이곳저곳 지우기 시작했다. 지우개를 받아들고 마저 지우면서 아내의 분위기가 사뭇 나와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그림을 그려서 그런 건지, 아니면 결혼을 하고 13년간 함께 지내면서 변한 건지 알 수 없었다.

사실 부부간에는 엔젤링처럼 간과하기 쉽지만 좋은 모습이 생각보다 많을지 모른다. - page 41


거대한 세상에 무슨 일이 있어도 내편인 유일한 사람.

그저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그렇게 서로를 닮아가는 부부의 모습이 사진보다 그림으로 더 가슴에 와닿았다고 할까.


그림을 그리면서 그가 세상을 바라본 시선이 저에게도 울림으로 다가왔었습니다.


거리를 걷다 보면 눈길 닿는 곳마다 테두리가 도드라지고, 물체 곳곳이 덩어리져 명암으로 보인다. 세상은 참 단순하다. 알고 보면 대부분이 삼각형, 사각형, 원 모양인 것을, 왜 이리 별다르게 살고 싶은지 모르겠다. - page 13


어쩌면 나는 길을 잃기 위해, 실수를 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는지도 모른다. 선생님은 늘 "같은 사진을 그리라고 해도 모두 다른 그림을 그린다"라고 했다. 색에 대한 선호도가 다르고 아무리 자로 재서 비율을 맞춰 그려도 인간은 실수를 한다. 정확히 정정하자면 사진이나 AI의 영역에서 보면 실수지만, 인간의 창조적 영역에서는 개성이 된다. 도화지 위에서 수만 번 연필을 놀리거나 붓질을 하는 동안 실수에 실수가 겹친다. 인생의 수많은 실수가 겹쳐 그나마 만족스럽다고 합리화할 수 있는 지금의 내가 된 것처럼 우연의 힘은 신기할 정도로 아름답다. - page 115 ~ 116


그리고 이 그림을 통해 전한 이야기.



생각은 자연히 세월의 한복판에 선 나는 어떤 뿌리를 내리고 있는가에 미쳤다. 세월이 지날수록 가족을 사랑하고 이웃을 편하게 하며, 사회에 작게나마 공헌하는 것과 같이 평이하게 들리는 것들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잔디처럼 동시대의 사람들과 함께하고 쑥처럼 겸허하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 page 163


저자가 '취미'란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취미는 산책처럼 마음 가는 대로 즐기는 것이 가장 좋다. 내게도 그림은 하고 싶은 때 하고 싶은 만큼만 하면 되는 '일상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 게으름이 허용되고, 그리다 중도에 포기해도 상관없다. '하면 된다'의 영역이 아니라 '되면 한다'의 영역인 것이다. 남의 평가로부터 벗어나고, 오롯이 내 마음에서 떠오르는 무언가에 집중하는 것만으로 편안해진다. - page 181


오롯이 재미에 빠져들 행복의 도구를 찾는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그 덕분에 깨닫게 되었습니다.


무채색 아저씨가 행복의 도구 '그림 그리기'를 통해 자신만의 색으로 다채롭게 물들인 세상.

그 어떤 삶보다 멋진 삶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나도... 나의 도구를 찾아 떠나봐야 하지 않을까?

무채색처럼 단조롭고 재미없는 나의 일상에 물들여질 색은 어떨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굿잡
해원 지음 / CABINET(캐비넷) / 202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금도 어느 곳에선 일어나고 있을 비극적 사건들.

가슴이 아프다...

란 말로 표현이 될까...?!


그러다 이 소설을 마주하게 되었는데 음...

이 또한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픽션이라 믿고 싶지만 논픽션일 것 같기에, 무엇보다 소설 속 인물들의 모습은 지금의 우리와도 같기에 강렬하고 묵직했던 이 소설.

그래도 읽고 난 뒤 희망의 한 줄기를 보았던 이 소설.


버려진 폐허 위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 page 365


이 울림이 많은 이들에게 전해지길 바라며...


이 사회의 지하에는 우리가 모르는

은밀하고 방대한 범죄 세계가 있다.


『굿잡』 



매일 음성사서함에 쌍년으로 시작해서 망할 년으로 끝나는 안부 인사, 이자를 갚지 않으면 사창가에 팔아 버리겠다거나 통나무장사를 만나게 해 주겠다는 협박을 하던 사채업자의 메시지를 들으며 벼랑 끝 삶을 살아가던 '모연희'.

오늘은 어쩐 일인지 일자리를 소개해 주겠다는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미래클리닝이라는 곳인데, 청소할 사람 찾는대. 생각 있으면 연락해." - page  11
 

다달이 갚아야 할 빚이 있고 가진 거라곤 주머니 속의 3천 원뿐인 그녀에게 선택의 여지가 있을까.

꾸역꾸역 계단을 올라 미래클리닝 다섯 글자가 박힌 문에 들어가니 장교동이란 사장이 그녀에게 말을 건넵니다.


"직업에 귀천이 있다는 말, 어떻게 생각해요?"

남자가 물었다.

"요새 그런 게 어딨어요."

연희가 원론적으로 대답했다.

"아직도 체면 타령하는 사람들 있잖아요. 세상이 다 망했는데 체면은 개뿔. 뭔 짓을 하든 돈만 벌면 장땡이지. 안그래요?"

연희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넌 꿈이 뭐니?"

담배를 피우던 중년 여자가 대뜸 물었다.

꿈. 흔한 말인데 낯설게 느껴졌다. 어렸을 땐 꿈이 있었다. 멋지게 차려입고 도시를 활보하는 커리어 우먼. 지금은 꿈은커녕, 내일도 없다. - page 14 ~ 15


바로 일이 있었고 이왕 온 거 한 번 해 보고자 선글라스를 낀 중년 여자 '김 여사'와 장교동, 청년 '김성수'와 함께 쓰레기를 치우러 가는데...


"사람이 죽으면 뭐가 될까요?"

교동이 비 내리는 골목길을 보며 입을 열었다.

"생활 쓰레기가 되죠. 그걸 치우는 게 우리 일이에요. 특수청소하고는 다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살인을 없던 일로 만드는 거예요. 시체는 치우고 현장에 남아 있는 모든 증거를 인멸하는 거죠."

연희는 멍청하게 교동을 따라온 자신을 탓했다.

"연희 씨가 본 시체는 기술자였어요. 요샛말로 하면 킬러라고 할까. 저 녀석 칼질에 죽어 나간 사람이 한 트럭은 될 겁니다. 우리는 죽어도 싼 놈만 치워요. 여자, 어린애, 무고한 민간인 시체는 건들지 않고."

양심적인 척해 봤자 범죄잖아! - page 25


바로 이 회사는 범죄 현장의 시체 청소업체였던 것이었습니다.

끔찍한 현장을 마주하게 된 연희.

이 일을 계속 해야하는 것일까...


연희는 손아귀에 느껴지는 두툼한 지폐의 감촉에 취해서 돈을 내려놓지 못했다. 이제 밀린 방세를 낼 수 있다. 한 끼 정도 따듯한 밥을 사 먹어도 좋겠다. 마음 한편이 훈훈해졌다.

나 지금 좋아하는 거야?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자신에 대한 혐오감에 입안이 씁쓸해졌다. 나머지 소주 반병을 뱃속에 털어 넣었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무게 추가 달린 것처럼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 page 30


결국 연희는 계속해서 일을 하게 되고 돈이 모이면서 생활은 나아지지만 그럴수록 조금씩 범죄세계의 깊은 곳으로 빠져 들어가게 됩니다.

이 아이러니함 속에서...


크리스마스이브.

성수와 영화 보기로 했는데 1시간 넘게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납치당한 적도 있고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마음이 쓰여 막막한 심정으로 자신의 고시원에 돌아왔더니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여기 성동경찰섭니다."

경찰이라는 말에 하마터면 전화기를 떨어트릴 뻔했다. 평정심을 유지하려 애쓰며 말했다.

"저한테 무슨 일로?"

"김성수 씨 때문에요."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성수가 왜요? 무슨 일 있어요?"

상대방이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어렵게 말을 꺼냈다.

"돌아가셨습니다." - page 141


갑작스러운 성수의 죽음.

그렇지 않아도 자신과 같이 사회의 비극의 안고 있던 그였기에 더 신경이 쓰였는데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가 죽게 된 것일까...

그 내막을 파헤쳐 보니 범죄 현장보다 더 더럽고도 피비린내보다 더 독한 냄새를 풍기는데...

그녀는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어떻게 벗어나셨어요?"

연희의 질문에 황 약사가 잠시 입을 다물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어둠이 내려앉은 거리에 가로등만이 불을 밝히고 있었다. 황 약사는 가로등 불빛이 아니라 지난날을 더듬는 듯했다.

"누구에게나 한 번은 기회가 온다고 하잖아. 기회를 잡은 것뿐이에요."

황 약사가 말했다. 

연희는 곰곰이 생각했다.

나에게도 그런 기회가 올까? - page 206


소설 속 비극들-성수대교 붕괴사건, 삼풍 백화점 붕괴 사건, 여성 혐오 범죄들, 크고 작은 화재와 살인 사건 등-을 이 한 권의 소설로 마주하게 되니 조금은 받아들이기가 힘겨웠다고 할까.

시간이 흘러도 이렇게 마음이 저린데 피해자들은 어떨지...


그리고 연희의 모습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기에 쉬이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런 그녀에게 전했던 김 여사의 나지막한 충고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살아보니까 세상 사는 게 파도 타는 걸아 비슷하더라. 파도치는 대로 휩쓸리다 보면 지도 모르는 사이에 망망대해로 떠내려가는 거야."

김 여사가 젓가락을 꼿꼿이 세우며 테이블을 탁 내리찍었다.

"나만의 원칙이 있어야 해. 그래야 버틸 수 있어. 좆같은 세상, 파도가 아무리 몰아쳐도." - page 178


그래서인지 연희가 자신이 처한 상황에 주저하지 않고 나아가는 모습에 박수와 응원을, 그리고 그 에너지를 저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전한 메시지들.

다시금 곱씹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연희에게 외쳐봅니다.

Good Job!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83년째 농담 중인 고가티 할머니
레베카 하디먼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22년 3월
평점 :
절판


'할머니' '할아버지'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소설은 왠지 모르게 믿고 읽게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너무나도 유명하신 창문넘어 도망치셨던 100세 할아버지, 아니 핵 들고 도망치신 101세 노인 '알란 칼손'의 이야기는 저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습니다.

그래서 이 소설에 눈길이 갔었나 봅니다.


그보다 이 소설이 나의 궁금증을 자아냈던 건 바로!

이런 책은 처음이다! 입소문 무성한 화제의 소설

이라는 점이었습니다.

그 어떤 수식어도 필요 없는 것이 아닐까!

당연 읽어야 함을!


"누가 우리 할머니 좀 말려주세요!"


『83년째 농담 중인 고가티 할머니』



'밀리 고가티' 할머니.

좀 독특한 취미(?)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동네 상점에서 대단치도 않은 물건을 어설프게 훔치며 잊을 만하면 자동차 접촉사고를 내는 등 엉뚱한 이 할머니는 마치 제멋대로 늙어버린 사람처럼 보이곤 합니다.

그런 할머니, 아니 엄마로 인해 골머리가 아픈 아들 '케빈'.

그의 상황도 썩 좋지만은 않았습니다.

실직 후 가정주부로 살면서 집안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를 하지만 아내와의 신뢰를 스스로 깨버린 뒤 자괴감과 권태감에 시름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쌍둥이 딸들도 하루가 멀다 하고 싸움을 벌이는 그야말로 버라이어티한 고가티 가족 삼대.

그들의 이야기 시작은 고가티 여사가 좀도둑질로 경찰에 잡히면서 케빈이 미국인 가정부 '실비아'를 고용하면서부터였습니다.


실비아의 시원한 웃음과 애교 있는 말솜씨는 고가티 여사의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게 되면서 조금씩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합니다.

그사이 케빈은 딸 에이딘이 다니는 기숙학교의 교무직원 로즈에게 아찔한 감각을 느끼며 위험한 밀당을 시작하게 되고...

케빈의 딸 '에이딘'은 자신의 언니와 비교당하는 것이 싫은 한창의 사춘기 소녀의 모습을 보이고...

정말이지 이들은


"여기, 더블린의 평균 행복도를 수직 낙하시킨

파멸의 가족을 소개합니다!"


였습니다.


그러다 부엌에 화재 사고가 일어나 그렇게나 원치 않았던 요양원에 가게 된 고가티 여사.

그곳에서 탈출을 감행하고 다시금 돌아왔더니...


그때 문고리가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고, 밀리는 비명을 지른다.

"할머니?"

"에이딘?"

"저예요."

문이 휭하니 열리는 순간, 밀리는 무기를 떨어뜨린다. 어찌 된 일인지, 밀리 앞에 서 있는 것은 여행 가방을 든 손녀딸이다.

"여기서 뭐 하는 거니? 왜 밀번에 있지 않고?"

"할머니는 왜 로스데일에 안 계신데요?"

눈을 가늘게 뜨고 손녀를 바라보던 밀리는 이윽고 완전히 넑이 나갈 눈초리로 여행 가방을 응시한다. 기억의 한 장면이 밀리의 머릿속을 번뜩 스친다. 할렐루야다.

에이딘이 말한다. "끔찍한 일이 일어났어요."

"여행 가방 꼬리표!" 밀리는 그렇게 외치고 손녀딸을 밀치고 복도로 나간다. - page 330 ~ 331


에이든과 할머니는 비행기를 타고 누군가를 만나러 떠나게 되는데...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들.

정말 이대로 괜찮은 것일까...?

엉뚱발랄 좌충우돌한 그들을 쫓다 보니 어느새 잔잔한 미소를 머금게 되는데...


고가티 할머니를 바라보면서 조금은 안쓰럽다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그녀 역시도 자신이 그렇게 행동하는 것에 나름의 이유가 있었음을...


어쩌면 밀리가 사기꾼의 표적이 된 건 놀라운 일도 아니리라. 밀리는 대다수 더블린 사람들보다 나이가 훨씬 많고 혼자 산다. 손님이 찾아오는 건 어쩌다 한 번뿐이고, 동년배는 거의 전부 오래전에 무덤에 들어가 있으며, 이제는 그 우울한 목록에 제임슨 부인의 이름까지 더해졌다. 그렇다고 밀리가 외로운 건 아니다. 그저 버려져서 양피지처럼 바짝 말랐을 뿐. 마르게이트가 조용한 건 아니다. 그냥, 창턱에서 밀리를 향해 다가왔다 다시 멀어져 가는 파도를 구경하는 걸 제외하면 아무런 생명의 흔적도 보여주지 않을 뿐. 밀리는 '우리 피터'가 문간으로 들어서서 복도 탁자 위에 모자를 벗어던지거나, 케빈이 정원에서 숫자를 세며 팔굽혀펴기를 하거나, 매주 브리지 게임을 같이 하던 친구들이 레몬케이크와 진을 들고 진입로를 걸어오는 광경을 마치 어제 일인 양 선하게 떠올릴 수 있다. 실비아는 마르게이트를 다시금 그때와 뭔가 비슷하게 만들어 주었더랬다. 마치 다시금 좋은 일들이 일어날 것 같은 희망을 품게 했다. - page 320 ~ 321


동반자가 필요했음을.

단지 그 절실함을 표현하는 방식이 허세 가득한 자의식, 무슨 수를 써서든 손님을 붙잡아 놓아야 한다는 위기감이 불러온 커다란 대가들이 오히려 자신을 초라하게 만들었음을.


아무리 지지고 볶고 싸우더라도 결국은 '가족'이라는 것을, 가족의 '사랑'이 그 모든 것은 덮어줄 수 있음을, 그래서 '가족'이라는 이 단어가 참으로 와닿았던 소설이었습니다.

특히나 이 소설은 거침없었던 욕설이 그 솔직함을 대변해주었기에 조금은 더 화끈하게 통쾌하게 읽어내려갈 수 있었습니다.

왜 입소문이 무성했는지 읽으면서 느낄 수 있었던 이 소설.

재미나게 잘 읽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휘둘리지 않는 말투, 거리감 두는 말씨 - 나를 휘두르는 타인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책
Joe 지음, 이선영 옮김 / 리텍콘텐츠 / 202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늘도 그만 상대방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였습니다.

내 일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또 이렇게 휘둘리는 나 자신이 참...

어떻게 해야 남에게 휘둘리지 않고 내 의사대로 할 수 있을까...?


이 책이 '마음 컨트롤을 위해'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기술 43가지를 소개해준다고 하였습니다.

책에서 소개하는 다양한 기술을 습득하여


더 이상은 휘둘리지 않아!


당당해진 나 자신을 발견해보는 것은 어떨까!


가스라이팅에 현혹되지 않고

자존감을 지키는 방법


『휘둘리지 않는 말투 거리감 두는 말씨』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다.

인간관계에서는 언제나 상대방에게 주도권을 빼앗긴다.

항상 왠지 모르게 이용당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사람을 만나고 오면 마음이 개운하지 않다.


이 중에 몇 가지가 아닌 전부 내 얘기와도 같았습니다.

왜 나는 상대가 원하는 대로 모두 맞춰주거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것일까...


타인에게 휘둘리기 쉬운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바로

'항상 상대방에게 자신의 마음을 너무 활짝 열어놓고 있다는 것'

이었습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남에게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의사대로 마음의 문을 열고 닫을 수 있을까?


평상시 기본적인 행동의 측면에서 '어떻게 말을 하면 좋은가.', '어떤 태도로 행동하면 좋은가.' 등의 기초적인 부분부터 시작하여 구체적으로 거절하는 방법, 보이지 않는 무게감으로 상대를 사로잡는 43가지의 인간관계 기술을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거절'이라는 행위에 대해 대화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일방적인 '통보'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사실.

그리고 거절한 이후의 대처가 중요하다는 것을.


애초에 상대방이 무언가를 부탁하거나, 권유하는 것은 상대방의 마음이고, 그것을 거절하는 것 또한 당신의 권리입니다.

그런데 만약 당신이 거절한 것에 대해 계속 죄책감을 가지며 상대의 눈치를 보게 되면, 상대방은 뭔가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것입니다. 실제로는 그렇지도 않은데 말이지요.

그래서 상대의 일방적인 부탁을 거절한 이후에는 별일 아닌 것처럼 대처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입니다. - page 140


또한 끌려다니는 성격을 바꾸기 위해 '보이지 않는 무게감'을 자아내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었는데 이는 대면으로 하는 대화뿐만 아니라 메신저 앱을 사용할 때의 대처법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진지하게 듣는 척하기, 집중하는 척하기, 눈으로 의사소통하기, 바쁜 척하기, 상대의 대답에 연연하지 않고 인사하기, 자책감을 앞세워 사과하기, 지병 핑계 대기, 바쁜 상황 연출하기, 나를 시험하는 상대에게 단호하게 대처하기, 상대의 한쪽 눈만 쳐다보며 대화하기, 개인영역 침해하기, 침묵하기, 정색하기, 둔한 척하기, 의경이 없음을 강력하게 말하기.


결론은 이 한 줄이었습니다.


"사실, 당신의 마음속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나의 감정, 사고방식, 성격 등 자기 자신 외의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

혹시나 상대방이 마음속을 꿰뚫어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면 그건 착각이라는 것을.

그렇기에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위해'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마음과 행동을 분리하고, 그것들을 자유자재로 활용하여 보다 인간관계를 편안하고 풍부하게 만들 것을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소개해주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복잡 미묘한 인간관계.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중심을 잘 잡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