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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년째 농담 중인 고가티 할머니
레베카 하디먼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22년 3월
평점 :
'할머니' '할아버지'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소설은 왠지 모르게 믿고 읽게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너무나도 유명하신 창문넘어 도망치셨던 100세 할아버지, 아니 핵 들고 도망치신 101세 노인 '알란 칼손'의 이야기는 저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습니다.
그래서 이 소설에 눈길이 갔었나 봅니다.
그보다 이 소설이 나의 궁금증을 자아냈던 건 바로!
이런 책은 처음이다! 입소문 무성한 화제의 소설
이라는 점이었습니다.
그 어떤 수식어도 필요 없는 것이 아닐까!
당연 읽어야 함을!
"누가 우리 할머니 좀 말려주세요!"
『83년째 농담 중인 고가티 할머니』

'밀리 고가티' 할머니.
좀 독특한 취미(?)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동네 상점에서 대단치도 않은 물건을 어설프게 훔치며 잊을 만하면 자동차 접촉사고를 내는 등 엉뚱한 이 할머니는 마치 제멋대로 늙어버린 사람처럼 보이곤 합니다.
그런 할머니, 아니 엄마로 인해 골머리가 아픈 아들 '케빈'.
그의 상황도 썩 좋지만은 않았습니다.
실직 후 가정주부로 살면서 집안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를 하지만 아내와의 신뢰를 스스로 깨버린 뒤 자괴감과 권태감에 시름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쌍둥이 딸들도 하루가 멀다 하고 싸움을 벌이는 그야말로 버라이어티한 고가티 가족 삼대.
그들의 이야기 시작은 고가티 여사가 좀도둑질로 경찰에 잡히면서 케빈이 미국인 가정부 '실비아'를 고용하면서부터였습니다.
실비아의 시원한 웃음과 애교 있는 말솜씨는 고가티 여사의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게 되면서 조금씩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합니다.
그사이 케빈은 딸 에이딘이 다니는 기숙학교의 교무직원 로즈에게 아찔한 감각을 느끼며 위험한 밀당을 시작하게 되고...
케빈의 딸 '에이딘'은 자신의 언니와 비교당하는 것이 싫은 한창의 사춘기 소녀의 모습을 보이고...
정말이지 이들은
"여기, 더블린의 평균 행복도를 수직 낙하시킨
파멸의 가족을 소개합니다!"
였습니다.
그러다 부엌에 화재 사고가 일어나 그렇게나 원치 않았던 요양원에 가게 된 고가티 여사.
그곳에서 탈출을 감행하고 다시금 돌아왔더니...
그때 문고리가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고, 밀리는 비명을 지른다.
"할머니?"
"에이딘?"
"저예요."
문이 휭하니 열리는 순간, 밀리는 무기를 떨어뜨린다. 어찌 된 일인지, 밀리 앞에 서 있는 것은 여행 가방을 든 손녀딸이다.
"여기서 뭐 하는 거니? 왜 밀번에 있지 않고?"
"할머니는 왜 로스데일에 안 계신데요?"
눈을 가늘게 뜨고 손녀를 바라보던 밀리는 이윽고 완전히 넑이 나갈 눈초리로 여행 가방을 응시한다. 기억의 한 장면이 밀리의 머릿속을 번뜩 스친다. 할렐루야다.
에이딘이 말한다. "끔찍한 일이 일어났어요."
"여행 가방 꼬리표!" 밀리는 그렇게 외치고 손녀딸을 밀치고 복도로 나간다. - page 330 ~ 331
에이든과 할머니는 비행기를 타고 누군가를 만나러 떠나게 되는데...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들.
정말 이대로 괜찮은 것일까...?
엉뚱발랄 좌충우돌한 그들을 쫓다 보니 어느새 잔잔한 미소를 머금게 되는데...
고가티 할머니를 바라보면서 조금은 안쓰럽다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그녀 역시도 자신이 그렇게 행동하는 것에 나름의 이유가 있었음을...
어쩌면 밀리가 사기꾼의 표적이 된 건 놀라운 일도 아니리라. 밀리는 대다수 더블린 사람들보다 나이가 훨씬 많고 혼자 산다. 손님이 찾아오는 건 어쩌다 한 번뿐이고, 동년배는 거의 전부 오래전에 무덤에 들어가 있으며, 이제는 그 우울한 목록에 제임슨 부인의 이름까지 더해졌다. 그렇다고 밀리가 외로운 건 아니다. 그저 버려져서 양피지처럼 바짝 말랐을 뿐. 마르게이트가 조용한 건 아니다. 그냥, 창턱에서 밀리를 향해 다가왔다 다시 멀어져 가는 파도를 구경하는 걸 제외하면 아무런 생명의 흔적도 보여주지 않을 뿐. 밀리는 '우리 피터'가 문간으로 들어서서 복도 탁자 위에 모자를 벗어던지거나, 케빈이 정원에서 숫자를 세며 팔굽혀펴기를 하거나, 매주 브리지 게임을 같이 하던 친구들이 레몬케이크와 진을 들고 진입로를 걸어오는 광경을 마치 어제 일인 양 선하게 떠올릴 수 있다. 실비아는 마르게이트를 다시금 그때와 뭔가 비슷하게 만들어 주었더랬다. 마치 다시금 좋은 일들이 일어날 것 같은 희망을 품게 했다. - page 320 ~ 321
동반자가 필요했음을.
단지 그 절실함을 표현하는 방식이 허세 가득한 자의식, 무슨 수를 써서든 손님을 붙잡아 놓아야 한다는 위기감이 불러온 커다란 대가들이 오히려 자신을 초라하게 만들었음을.
아무리 지지고 볶고 싸우더라도 결국은 '가족'이라는 것을, 가족의 '사랑'이 그 모든 것은 덮어줄 수 있음을, 그래서 '가족'이라는 이 단어가 참으로 와닿았던 소설이었습니다.
특히나 이 소설은 거침없었던 욕설이 그 솔직함을 대변해주었기에 조금은 더 화끈하게 통쾌하게 읽어내려갈 수 있었습니다.
왜 입소문이 무성했는지 읽으면서 느낄 수 있었던 이 소설.
재미나게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