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자 집배원 아저씨는 즐거운 듯이 윙크를 했어요.
"바로 그거란다. 마법처럼 보이겠지만, 그건 정원 가꾸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아는 상식이야. 캐모마일은 ‘식물들의 의사 선생님‘이거든."
"식물들의 의사 선생님?"
식물의 의사 선생님, 그것은다른 식물을 도와주는 힘을 가진 식물이라는 뜻이랍니다. 캐모마일은 약해진 식물 옆에 심어 주기만 해도 그 식물을 건강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신비한허브였어요.
- P78

치코가 놀라서 자렛을 쳐다보았어요.
"이번에는 어떤 약인데? 역시 캐모마일을 사용하는 거야?"
"아니야, 치코, 약이 아니야. 더 중요한 것이 있었어."
편지를 가슴에 품고 꼭 쥐며 말했어요.
"고마워요, 바보아 할머니, 덕분에 겨울 요정이 잠들 방법이떠올랐어요. 그리고 이 캐모마일도 나에게 중요한 걸 가르쳐주었어요."
자렛은 다시 정원에 쭈그리고 앉아서 화단의 허브들을 건강하게 해 준 캐모마일을 살짝 쓰다듬었어요.
"도대체 어떤 방법을 쓸 건데, 자렛?"
궁금해하는 새끼 고양이들에게 자켓이 대답했어요.
"겨울 요정의 옆에 있어 주려고, 이 캐모마일처럼."
- P81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캐모마일이에요. 그냥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소중한 누군가를 건강하게 만드는 ‘마법의 힘‘을 쓸 수 있어요.
정말 멋지지 않나요?
- 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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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디의 우산 - 황정은 연작소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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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도 '황정은'이란 작가의 이름을 듣게 된 건 이 작품으로부터였습니다.

그렇다고 읽어본 건 아니었지만...

이번에 에세이 『일기』를 시작으로 『연년세세』를 읽고 난 뒤 사실 주춤하기도 하였습니다.

음...

무심하게 건넨 이야기는 자꾸만 뒤돌아보게 만들었고 그 무게감이 점점 무겁게 느껴져 쉬이 읽고 넘길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망설여졌는데...

근데 왜 또 궁금한 걸까...?

그래서 저에게 작가의 이름을 알게 해 주었던 이 작품을 읽어보기로 하였습니다.

​

"모두가 돌아갈 무렵엔 우산이 필요하다"

황정은이 담아낸 우리 시대의 사랑, 우리 시대의 삶

​

『디디의 우산』



역시나 이번 작품들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1996년 연세대 사태, 2008년 '명박산성', 2009년 용산참사, 2014년 세월호의 비극, 이윽고 2016~17년 촛불혁명에 이르기까지 여러 사건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이들의 이야기가 그려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속엔 저도 있었기에 이 복잡 미묘한 감정은...

책을 읽고 나선 또다시 방황하고 말았습니다.

​

책 속엔 두 개의 소설이 있었습니다.

우선 <d>는 연인'dd'의 죽음 이후 자신 또한 죽음과도 같은 날들을 보내던 'd'는 청계천 세운상가에서 택배를 수집하고 상차하는 일을 하며 하루하루 속으로 침잠합니다.

혼자 지냈고

누구와도 긴 대화를 나누지 않았고

아무것도 기억에 남겨두지 않았고

하루는 그날의 수면으로 끝을 내는

이것이 d의 일상이고 패턴이었습니다.

​

여소녀가 있었습니다.

사십 년간 전축 수리를 하고 있었는데 잘못 배달된 택배로 d와 말을 섞게 되었고 여소녀의 가게에서 들려온 음악으로부터 d는 조금씩 세상 속으로 발을 딛게 되는데...

​

사랑하는 이의 부재에 대한 d의 모습이 좀처럼 잊히지 않았던 건 왜일까...

​

그것들을 고스란히 남겨두고 dd는 잠시 외출한 것 같았다. 어딘가에 틀림없이 있는 것 같았고, 그래서 오늘 저녁이나 내일 아침, 혹은 며칠 뒤, 아무렇지 않게 이 공간으로 돌아올 것 같았다. 그것은 언제일까. 지금은 아니고 아직은 아니지만 다음에서 다음으로 건너가는 지금이자 다음. d는 매 순간 벅차게 그 순간을 실감했고 매 순간 그 실감을 배반당했다. 사물들은 그런 착각을, 나중에 몇 배나 되는 상실감과 배신감으로 돌아오는 기대와 희망을 품게 만들었다. d는 물건을 버리며 그 기만적인 기대와 거짓된 실감을 버렸다. - page 23

​

여소녀와 d는 대화 중 d는 1983년 2월 25일에 북한의 공군이었던 이웅평 대위가 러시아제 미그기를 몰고 남한으로 귀순한 일을 떠올리며 이야기하는데...

​

그런데 그것을 아시나요? 이웅평 대위가 전투기를 몰고 남한으로 넘어온 이유가 환멸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북측에서 해변을 산책하다가 남쪽에서 생산된 라면 봉지를 주웠는데 이런 안내문이 적혀 있었대요. 불량품은 판매처에서 교환이나 환불을 해드립니다. 그것을 읽고 남쪽엔 라면을 쌓아놓고 파는 장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자기가 속한 체제에 깊은 환멸을 느끼게 된 나머지 귀순을 결심했다고 하네요. 그 내용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그가 부러웠습니다. 두 손으로 조종간을 붙들고 목적지를 향해 전투기를 몰아갔을 그 새끼가 너무 부럽다...... 남쪽의 가요를 방송하는 라디오 채널에 주파수를 맞춰두고 음악이 흐르는 전투기에 실려 북측과 남측의 경계를 향해 날아가던 순간, 그 아득한 허공을 날던 순간의 그가 말입니다. 죽음과는 얇은 금속판 한겹만을 남겨둔 채 체공하고 있었지만 그는 분명히 환멸의 반대 방향으로 날아가고 있었어요. 그는 그것을 가지게 된 거죠. 탈출의 경험을.

내게는 그것이 없어.

나는 내 환멸로부터 탈출하여 향해 갈 곳도 없는데요. - page 113 ~ 114

​

환멸로부터 벗어나는 것.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자신에게 낙담하는 그의 모습.

그럼에도...

​

d는 다시 세종대로 사거리에서 느꼈던 진공을 생각하고, 문득 흐름이 사라진 그 공간과 그 너머, 거기 머물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들과 d에게는 같은 것이 거의 없었다. 다른 장소, 다른 삶, 다른 죽음을 겪은 사람들. 그들은 애인을 잃었고 나도 애인을 잃었다. 그들이 싸우고 있다는 것을 d는 생각했다. 그 사람들은 무엇에 저항하고 있나. 하찮음에 하찮음에. - page 144

​

우리는 살아간다는 것을.

인간이라는 존재의 하찮음을 껴안고 어떻게든 살아가보겠다는 것이 가엾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

그리고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는 구두회사 직원이자 완성하지 못한 열두 개의 원고를 지닌 작가 '나'가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체육대회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서수경과 20년째 함께 살던 그들.

이 두 사람은 고교 졸업 후 이른바 1996년 '연대 사태'가 벌어진 연대 안에서 재회해 인연을 키우게 되면서 동거를 하게 됩니다.

서수경의 생일을 맞아 작은 파티를 계획하던 2014년 4월 16일.

세월호의 비극을 목격하게 되고 이 두 사람은 광장으로 거리로 나서게 됩니다.

​

서수경과 나는 방패를 들고 출동을 대기하고 있는 경찰들로 막힌 인도에서 차도로 내려섰고 그 길을 더 올라가 경찰버스들로 봉쇄된 세종대로 사거리에 이르렀다. 그곳에 당도해서야 우리는 우리가 청계광장 쪽에서 목격한 차벽 뒤로 몇겹의 벽이 더 있었음을 알았다. 북쪽과 남쪽을 잇는 세종대로는 두겹의 차벽으로 가로막혀 북쪽으로도 남쪽으로도 갈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우리는 오가는 차도 행인도 없이 넓은 도로가 깨끗하게 비어 있는 것을 보았다. 세종대로 사거리는 두 개의 긴 벽을 사이에 둔 공간이 되어 있었다. 청계광장 쪽에서 차벽에 가로막힌 사람들이 지르는 함성이 들려왔다. 여태 많은 사람이 거기 남아 있는 듯했다. 이제 어떻게 할까.

더 가볼까? - page 290

​

수백만 촛불의 물결.

많은 사람이 혁명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한 그 순간.

​

헌법재판소 재판관 여덟 사람이 대심판정에 입장하는 광경을 보고 우리도 서둘러 자리에 앉았다. 2016헌나1 대통령 탄핵 사건에 대한 선고가 시작되었고 그 뒤로는 판결문을 낭독하는 목소리뿐이었다. 위배한 것이라고 볼 수 없고...... 부족하고...... 분명하지 아니하고...... 인정할 만한 증거는 없습니다...... 재판관이 판결문을 낭독해갈수록 우리의 얼굴은 빨개졌고 침묵은 무거워졌다. 서수경은 손끝으로 이마를 비볐고 나는 턱을 받친 손으로 입을 가렸으며 김소리는 손으로 눈을 문질렀다. 재판관이 생명권 보호의무에 대한 판결을 읽기 시작했다.

​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 page 318

​

끝내는 아무도 말하지 않았음을...

과연 혁명이었을까......

​

전에는 알지도 못했던 사회적 문제를 당사자로서 겪고 있는 사람들을 여기에서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은 것이 촛불집회에서 가장 크게 얻은 배움이라는 발언이 있고 얼마 뒤, 누군가의 폭죽이 무슨 이유에선지 점화되었다. 도로에 앉은 사람들의 머리 위로 불꽃이 짧은 꼬리를 달고 퍽, 퍽, 연달아 올라갔다. 사람들은 그쪽을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폭죽을 끄라는 웅성거림이 일었다. 폭죽을 쥔 사람은 모직 코트를 입은 남성이었는데 그는 난감하다는 기색으로 사람들을 향해 고개를 흔들어 보이며 한번 점화되면 중간에 끌 수가 없다고, 어쩔 수가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불꽃은 얼마간 그치지 않고 밤하늘을 향해 올라갔고 도로를 가득 메운 사람들은 긴장과 걱정으로 침묵하며 그것을 보고 있었다.

서수경과 나는 그 침묵 속에서 함께 침묵하는 동안 평화적 시위를 원하는 사람들의 갈망에서 상처를 보았다. 누군가 다치는 광경을 우리는 너무 보았다.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고 싶은 게 아니었을까. 누구도 다치게 하지 말라, 우리는 이미 너무 겪었다고. - page 308 ~ 309

​

이 소설 사이엔 한 문장이 있었습니다.

​

모두가 돌아갈 무렵엔 우산이 필요하다.

-「디디의 우산」(『파씨의 입문』, 2012)

​

시대가 주는 환멸과 낙담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쳤던 그들의 모습에서 작가가 우리들에게 건넨 이 우산이 마냥 따스하게만은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이 소설을 통해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 나아간다'라는 사실을 각인할 수 있었다는 점이 어쩌면 다행으로 여겨지곤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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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여신 인안나 - INANNA, THE FIRST GODDESS
김산해 지음 / 휴머니스트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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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 '신화'라 하면 '그리스 로마 신화'가 떠오릅니다.

대중매체에서도 많이 언급되었고 서점가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기에 친숙(?) 하다고 할까.

최근에 다시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으면서 너무나 흥미롭고 재미있었기에 이 기분 연장해서 어떤 걸 읽어볼까 기웃거리다가...


저에겐 너무나도 낯선, 생소한 이름이었습니다.

4,000여 년 전 수메르와 함께 인간의 기억에서 잊힌 여신이었다고 했으니 모르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이 여신과 여신의 신성은 이름과 모습을 바꿔가며 메소포타미아에서 이집트, 그리스 문명권, 아라비아를 넘어 인더스강 유역까지 퍼져나갔다고 합니다.

여기까지 들었어도 크게 끌리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었는데...


그는 악카드의 이쉬타르, 가나안의 아스타르테, 히브리의 아스다롯, 그리스의 아프로디테, 아테나, 헤라 등 사랑·전쟁·지혜·풍요·다산·아름다움·금성(金星) 등으로 상징화된 모든 여신의 원형은 바로 수메르의 인안나였다.


다른 이들은 모르겠지만 그리스의 아프로디테, 아테나, 헤라 등 여신의 원형이 그녀였다는 사실에 호기심이 일기 시작하였습니다.

무엇보다 이 책은 그 어떤 신들보다 더 신령스럽고, 용감하고, 강력한 '최초의 여신' 인안나를 입체적이고 완벽하게 복원해냈으며, 그 어떤 신화보다 스펙터클한 여신의 서사시를 펼쳐냈다고 하니 벌써부터 기대감이 뿜뿜!

인안나를 만나러 가 보겠습니다.


거룩하고 위대한 최초의 여신

인안나의 사랑과 죽음, 부활의 서사시


『최초의 여신 인안나』



그리스 로마 신화를 보더라도 신들의 대부분은 '남성'이었고 여신들의 활약은 미비하였습니다.

그렇게 세상은 한 남신의 천국으로 변했고 유일신의 지배지가 되고 말았었는데 ...


인류 문명의 모체 수메르가 케케묵은 먼지로 뒤덮여 있던 베일을 벗어던졌다. 최초의 수메르 신들이 긴 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활짝 켰다. 안·엔키·엔릴·난나·우투 같은 남신들과 함께 시원(始原)의 여신 남마도 되살아났고, 창조의 모신(母神) 닌후르쌍도 되살아났으며, 땅의 여신 키도 되살아났고, 저승의 여왕 에레쉬키갈도 되살아났고, 인안나도 되살아났다. 그랬다. 이 세상에 존재해왔던 수많은 신의 조상신들이 모조리 되살아났다. 3,600이나 되는 신들은 다시금 만신전의 문을 열어젖히고 신명(神命)을 내렸다. 그리고 유일무이했던 한 남신은 물러갔다. - page 10


그렇게 위대한 여신-하늘과 땅의 여왕, 전쟁, 풍요, 다산, 완전하고 다양한 여성성, 여성적인 삶의 원리, 여성들의 수호천사, 품위 있고 당당한 부인, 수많은 도시와 왕들의 수호신, 금성(金星) 등으로 상징화된 여신들의 본바탕에 자리잡고 있던-의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바로 '인안나'.


본문에 들어가기 앞서 책 속에 나오는 신들, 가게도, 도시와 신전들에 대해 정리가 되어있었습니다.

역시나 신화엔 많은 신들이 존재를 하고 족보를 따지다 보면 머리가 복잡해지고...

낯선 이름들에 책을 읽으면서도 자꾸만 넘겨보게 된 이 페이지들.

없었다면 중도에 포기할 수도 있었을 뻔했지만 덕분에 초반의 방황은 후반엔 이름들이 친숙하게 다가왔습니다.




세상천지의 기운을 몽땅 손아귀에 넣고도 성이 차지 않았던, 권세와 부귀를 모조리 누려도 만족스럽지 못했던 인안나.

사랑과 질투로 몸부림치고, 전쟁과 복수로 핏발이 서고, 하늘과 땅의 신령스런 기운으로 기세등등한 그녀였지만 저승까지 차지한다면, 정말 그럴 수만 있다면, 그렇게만 된다면 누릴지도 모를 최고신(最高神)의 영광이 될꺼라 생각한 그녀.

그러나 저승은 그녀에게 볼모지나 다름없었습니다.

하지만 인안나는 자신의 힘을 굳게 믿고 가장 큰 욕망 덩어리를 심장 깊은 곳에 숨긴 채 저승으로 내려가게 됩니다.


여기서 인안나의 '메'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메'의 본질은 신성한 권능이고, 삼라만사의 총체적인 질서이며, 지혜의 정수입니다.

'메'를 통해서 문명이 일어났고, 문화가 형성되었으며, 미개와 무질서가 사라졌습니다.

도시가 생겼고, 신전과 가옥이 높고 튼튼하게 올라갔으며, 길이 넓혀졌고, 재물이 쌓였고, 직업이 늘어났고, 강의 물줄기가 잡혔으며, 단단한 그릇을 빚어냈고, 멋진 옷을 지어 입었고, 좋은 음식을 만들어 먹은 것은 '메'로부터 얻은 혜택이었습니다.

규칙과 규범이 세워졌고, 사회가 정비되었으며, 경제의 체계가 잡혔고, 왕권과 왕위가 확립되었고, 언어와 문자가 사용된 건 '메'에서 나온 기운이었습니다.

기쁨과 슬픔의 춤을 추었고, 악기를 치고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고, 향기로운 술을 마셨고, 달콤한 우유를 들이켰고, 배에 올라 먼 곳을 여행했고, 사랑다운 사랑을 즐길 수 있었던 건 '메'가 가져다준 운명이었습니다.

이렇게 모든 것이 '메'로부터 나오게 되는데 이 '메'의 집행자인 엔키로부터 쟁취하게 됩니다.

'메'를 손에 넣은 인안나는 저승을 향해 당당히 떠나는데...

저승으로 떠난 인안나 앞에 놓인 운명은 장차 어떤 일들이 펼쳐질까.



와~!

우선 감탄이 나왔습니다.

왜 이제서야 그녀를 알게 되었을까!

읽으면서 비슷한 이야기가 떠오르게 되는데 이것이 '원형'이었다는 사실을!

특히나 <인안나의 저승 여행>이라는 점토판으로 남아있는 400여 행의 짧은 서사시가 지금 우리 앞에 생동감 있게 다가와 너무나 감탄스러웠습니다.

모든 여신의 원형인 인안나.

이젠 그녀의 이름을 새겨보겠습니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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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년세세 - 황정은 연작소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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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 에세이 『일기』를 읽으면서 가볍지도 그렇다고 많이 무겁지도 않은 그 균형 사이에서 빛났던 그녀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기에 이번에 어떤 작품을 읽어볼까... 기웃거리다가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주변에서도 이 작품을 읽고는 저에게도 추천을 해 주었기에 바로 읽게 되었는데...

​

음...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읽고 난 뒤 많이 망설이고 말았습니다.

​

사는 동안 순자,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을 자주 만났다.

순자는 왜 이렇게 많을까?

이 책은 그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

『연년세세』



우선 이 책을 읽고 난 뒤부터 이야기하자면...

에세이에서 좋았던 그 덤덤한 문체가 소설에서는 너무나 무겁게만 느껴졌습니다.

왜...

어째서...

입은 장식이었고 내 감정, 내 생각을 얘기한다는 건 사치였을까...

그런데 더 답답했던 건 이 상황을 이해하고 있다는 나 자신이 싫다고 할까...

아...

이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책을 덮은 지 며칠이 지나도 쉬이 가시지 않는 것이...

특히나 마지막 문장만이 자꾸만 맴돌았습니다.

​

그렇게 하지 않아도 삶은 지나간다 바쁘게.

나탈리는 바쁘게.

울고 실망하고 환멸하고 분노하면서, 다시 말해 사랑하면서.

그것이 나탈리를 향해 다가오니까. - page 182 ~ 183

​

책 속엔 네 편의 소설이 실려 있었습니다.

'1946년생 순자씨' 이순일과 그의 두 딸 한영진, 한세진의 이야기가 큰 줄기를 이루며 어머니와 자매의 지난 삶과 현재의 일상을 통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겪은 비극과 참사, 크고 작은 고통과 슬픔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어떻게 삶을 이어나가야 하는지.

​

잘 살기.

그런데 그건 대체 뭐였을까, 하고 이순일은 생각했다.

나는 내 아이들이 잘 살기를 바랐다. 끔찍한 일을 겪지 않고 무사히 어른이 되기를, 모두가 행복하기를 바랐어.

잘 모르면서 내가 그 꿈을 꾸었다. 잘 모르면서. - page 138

​

1960년 여름, 이순일이 열다섯 되던 해 자신에게 공부를 가르쳐주겠다고 약속한 고모를 따라 김포로 가게 됩니다.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고모네 식모살이를 하게 되고 이에 지쳐 도망쳤지만 다시 잡혀 살아왔던 그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취직해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온 이순일의 장녀 한영진.

한영진이 진정 하고 싶었던, 아니 묻고 싶었던 그 말이 가슴을 아리게 하였습니다.

​

그런데 엄마, 한만수에게는 왜 그렇게 하지 않아.

​

그 애는 거기 살라고 하면서 내게는 왜 그렇게 하지 않았어.

돌아오지 말라고.

너 살기 좋은 데 있으라고.

​

나는 늘 그것을 묻고 싶었는데.

​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살 수는 없다.

​

한영진은 오래전에 그 말을 들었고 중요한 선택을 할 때마다 그 말을 지침으로 여겼다. 이순일도 그랬을 거라고 한영진은 생각했다. 살아보니 정말이지 그게 진리였다. 현명하고 덜 서글픈 쪽을 향한 진리.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살 수는 없으니까. - page 81 ~ 82

​

자꾸만 삼키던 그 말들이 각자에겐 상처가 되지만 견뎌내면서 암묵적으로 서로를 인정하고 다독이는 모습이, 이 무덤덤한 위로가 더 크게 와닿았습니다.

​

연년세세.

과거에서 현재, 현재에서 미래로 이어지는 우리들의 삶에 그녀가 던진 문장들이 은밀하고 위대하게 다가왔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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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길을 잃다
엘리자베스 톰슨 지음, 김영옥 옮김 / 하빌리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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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슬립' 소설을 개인적으로 좋아하기에, 무엇보다 '파리'라는 단어만으로도 '낭만'이 느껴지기에 이 소설에 관심이 갔습니다.

어떤 스토리로 저의 마음을 휘어잡을지 기대를 해 보며 조심스럽게(?) 책을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아파트 문서, 낡은 열쇠, 유명 작가의 부고 기사 스크랩을 들고 나타난

알코올 중독자 엄마로 인해 모든 게 꼬여 버렸다!


『파리에서 길을 잃다』



고향 플로리다와 알코올 중독자 엄마를 떠나 런던에서 제인 오스틴을 테마로 하는 투어 가이드 일을 하는 '해나'.

아마도 이 날은 뭔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피츠윌링스' 독서 모임 회원들을 데리고 투어를 하던 중 회원분들의 사소한(?) 다툼이 있어 해나의 진땀을 빼더니...


"엄마, 대체 무슨 일이야?"


즉흥적으로 미국에서 영국까지 날아왔다는 엄마 '말라'.

이런 엄마의 등장은 달갑지 않았습니다.


엄마가 여기 온 이유는 돈이 '이유 중 하나'라고 하였고 또 다른 이유가 있다며 커다란 종이봉투를 해나에게 건넵니다.


"내가 여기 온 또 다른 이유. 열어 봐."


무슨 증서 같아 보이는 종이에는 프랑스어로 뭐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왼쪽 상단 모서리에 프랑스어로 된 누런 명함 한 장과 함께.


"아직도 이게 뭔지 모르겠어." 내가 말했다.

"패트릭 스털링 씨 기억나? 할머니 변호사." 엄마가 물었다.

"응. 기억나." 그는 할머니의 유언장을 담당한 변호사였다. 우리 셋은 내가 올랜도에 살 때 만났었다.

"내가 스털링 씨한테 그걸 가져갔거든. 스털링 씨 말로는 그게 파리에 있는 아이비 할머니 명의의 아파트 문서라는 거야. 근데 글쎄, 그게 우리 소유래." - page 61


증조할머니 '아이비'가 남긴 파리의 아파트에 직접 가 보자는 엄마.


"스털링 씨랑 프랑스 변호사 말로는 이 집문서가 여전히 아이비 할머니 이름으로 돼 있고, 네 할머니가 가장 가까운 핏줄이라서 할머니에게 상속된 거래. 그리고 할머니의 유언장에 따라 모든 물건이 우리 둘한테 상속된 거고. 스털링 씨 말로는 우리가 상당한 금액의 상속세도 내야 한대."

아, 그렇지. 이제야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겠다. 엄마가 하는 일은 항상 돈으로 귀결되었다. - page 62


내키지 않았지만 끈덕지게 조르는 엄마로 인해 파리행 유로스타에 오르게 됩니다.


아파트 건물은 화려하게 장식된 대문과 철제 울타리로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내부는 먼지와 거미줄로만 뒤덮인 채 그대로 보존된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침실 벽면에 미술관의 전시물처럼 걸려 있는 여섯 개의 그림.

아름다운 그림 속 여인은 바로 아이비 할머니였습니다.


아이비 할머니가 파리에서의 생활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이유를 이해할 수 있는 첫 단서가 될 것 같았다. 아이비 할머니가 파리에서 화가의 누드 모델로 일했었나? 생각지도 못한 가능성에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 page 142


해나는 그곳에서 일기장을 발견하게 되고 그렇게 소설은 할머니의 비밀스러운 파리에서의 일화가 그려지면서 왜 할머니가 가족들에게 파리 이야기를 하지 않은 이유를 밝히게 되는데...

티격태격 좌충우돌 엄마와 딸이 그동안 쌓여 온 응어리를 조금씩 이해하며 풀어나가는 과정이 유쾌하면서도 따뜻하게 다가왔었습니다.


엄마는 손을 뻗어 내 손을 꼭 쥐었다. "이건 우리의 과거야, 해나. 내 생각엔 프랑스에 우리가 찾아내야 할 게 더 많을 것 같아." - page 383


증조할머니, 외할머니, 엄마, 딸.

이들의 아름답고 가슴 뭉클한 네 가지 사랑 이야기는 '파리'라는 도시이기에 더욱 낭만적으로 그려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비와 앙드레의 이야기는 비극으로 끝났다. 하지만 엄마와 내가 그들의 관계를 알게 되면서 뒤늦게라도 두 사람의 사랑이 완성된 거라 믿고 싶었다. 그리고 이게 바로 아이비 할머니가 플로리다 집의 상자에 서류들을 남겨 둔 이유일 것 같았다. 언젠가 엄마와 내가 상자를 발견하고 우리만의 광란의 파리 모험을 시작할 수 있도록 말이다.

먼 훗날 내가 자식을 낳고 손주가 생겼을 때, 아이비 할머니의 파리 아파트가 엄마와 나에게 열어 준 가능성의 절반만이라도 그들에게 남겨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page 453 ~ 454


소설을 읽으면서 어디에서 읽어본 듯한? 아니면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이 들곤 하였습니다.

뭐 그럼 어떠하랴...

재미있게 읽으면 그만 아닐까!

만약에 나에게 이런 상황이 그려진다면 어떨까... 하는 로맨틱한 상상도 해 보게 되고 날도 좋은 요즘 한껏 몰입하면서 읽기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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