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년세세 - 황정은 연작소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번에 에세이 『일기』를 읽으면서 가볍지도 그렇다고 많이 무겁지도 않은 그 균형 사이에서 빛났던 그녀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기에 이번에 어떤 작품을 읽어볼까... 기웃거리다가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주변에서도 이 작품을 읽고는 저에게도 추천을 해 주었기에 바로 읽게 되었는데...

음...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읽고 난 뒤 많이 망설이고 말았습니다.

사는 동안 순자,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을 자주 만났다.

순자는 왜 이렇게 많을까?

이 책은 그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연년세세



우선 이 책을 읽고 난 뒤부터 이야기하자면...

에세이에서 좋았던 그 덤덤한 문체가 소설에서는 너무나 무겁게만 느껴졌습니다.

왜...

어째서...

입은 장식이었고 내 감정, 내 생각을 얘기한다는 건 사치였을까...

그런데 더 답답했던 건 이 상황을 이해하고 있다는 나 자신이 싫다고 할까...

아...

이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책을 덮은 지 며칠이 지나도 쉬이 가시지 않는 것이...

특히나 마지막 문장만이 자꾸만 맴돌았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삶은 지나간다 바쁘게.

나탈리는 바쁘게.

울고 실망하고 환멸하고 분노하면서, 다시 말해 사랑하면서.

그것이 나탈리를 향해 다가오니까. - page 182 ~ 183

책 속엔 네 편의 소설이 실려 있었습니다.

'1946년생 순자씨' 이순일과 그의 두 딸 한영진, 한세진의 이야기가 큰 줄기를 이루며 어머니와 자매의 지난 삶과 현재의 일상을 통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겪은 비극과 참사, 크고 작은 고통과 슬픔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어떻게 삶을 이어나가야 하는지.

잘 살기.

그런데 그건 대체 뭐였을까, 하고 이순일은 생각했다.

나는 내 아이들이 잘 살기를 바랐다. 끔찍한 일을 겪지 않고 무사히 어른이 되기를, 모두가 행복하기를 바랐어.

잘 모르면서 내가 그 꿈을 꾸었다. 잘 모르면서. - page 138

1960년 여름, 이순일이 열다섯 되던 해 자신에게 공부를 가르쳐주겠다고 약속한 고모를 따라 김포로 가게 됩니다.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고모네 식모살이를 하게 되고 이에 지쳐 도망쳤지만 다시 잡혀 살아왔던 그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취직해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온 이순일의 장녀 한영진.

한영진이 진정 하고 싶었던, 아니 묻고 싶었던 그 말이 가슴을 아리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엄마, 한만수에게는 왜 그렇게 하지 않아.

그 애는 거기 살라고 하면서 내게는 왜 그렇게 하지 않았어.

돌아오지 말라고.

너 살기 좋은 데 있으라고.

나는 늘 그것을 묻고 싶었는데.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살 수는 없다.

한영진은 오래전에 그 말을 들었고 중요한 선택을 할 때마다 그 말을 지침으로 여겼다. 이순일도 그랬을 거라고 한영진은 생각했다. 살아보니 정말이지 그게 진리였다. 현명하고 덜 서글픈 쪽을 향한 진리.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살 수는 없으니까. - page 81 ~ 82

자꾸만 삼키던 그 말들이 각자에겐 상처가 되지만 견뎌내면서 암묵적으로 서로를 인정하고 다독이는 모습이, 이 무덤덤한 위로가 더 크게 와닿았습니다.

연년세세.

과거에서 현재, 현재에서 미래로 이어지는 우리들의 삶에 그녀가 던진 문장들이 은밀하고 위대하게 다가왔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