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을 낀 사람은 안다.
안경이 빗방울에 흠뻑 젖으면, 눈에 보이는 세상이 온통 젖어세상이 흐릿해 보이고, 그건 내가 무언가를 제대로 볼 수 없다는뜻이고, 내 눈이 제대로 기능을 못한다는 것은 내게 서글픈 감정을 안겨다 주고, 그러다 보면 이렇게 착각한다.
‘나 지금 우는 거야?‘
더 자세한 말은 않겠다. - P125

콜롬비아는 사람이 곧 죽어가도, ‘일단 영수증은 받고 죽어라‘라는 인상을 준다. 이 역시 범죄가 활개를 친 뒤, 사회적 신뢰도가추락해 모든 것을 원칙대로 엄격하게 실행하려는 것 때문일까.
모르겠다. 설령 그렇다 쳐도, 며칠만 지내다 돌아갈 내가 이들 삶의 방식에 이러쿵저러쿵할 자격같은건 하나도 없다.
한 사회의 문화는 어디에서건 자신들이 처한 환경과 지나온 역사를 토대로 결국은 최선을 향해 나아가니까 그건 개인 역시 마찬가지이고 말이다. - P133

어땠느냐고?
내 옆 선베드에 있는, 플로리다로 이주한 콜롬비아계 부동산 중개인 알레한드로가 마이애미부동산 경기를 한 시간 동안 설명해줬고, 나를 버스에서 주먹으로 쳐서 깨운 아주머니는 구아바를 가져와 내 입에 넣어주며 생색을 냈고(자기가 사온 게 아니라,
원래 여행사 측에서 제공한 것이었다), 섬 내 칵테일 바의 바텐더는 내게 "39일짜리 여행이라니. 와우. 꼬레아에서 찾는 사람 없어요?" 하며 친구 없는 내 아픈 현실을 찌르는 질문을 했다.

아무도 나를 외롭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콜롬비아인들은 의외로 살갑다는 인상을 준다. - P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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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후 여자 넷이 한집에 삽니다 - 프로 덕질러들의 슬기로운 동거 생활
후지타니 지아키 지음, 이경은 옮김 / 흐름출판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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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네 가족 형태가 참으로 다양해지고 있음을 느끼고 있습니다.

'가족'이라 하면

​

주로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 또는 그 구성원. 혼인, 혈연, 입양 등으로 이루어진다. _표준국어대사전

​

처럼 '부부'를 중심으로 보았다면 요즘의 가족은 부부, 혈연을 넘어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가족의 형태로 살아가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특히나 저에겐 김하나, 황선우 작가가 쓴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에서 했던 이야기가 아직도 인상적으로 남곤 하였는데...

​

1인 가구는 원자와 같다. 물론 혼자 충분히 즐겁게 살 수 있다. 그러다 어떤 임계점을 넘어서면 다른 원자와 결합해 분자가 될 수도 있다. 원자가 둘 결합한 분자도 있을 테도 셋, 넷 또는 열둘이 결합한 분자도 생길 수 있다. 단단한 결합도 느슨한 결합도 있을 것이다. 여자와 남자라는 원자 둘의 단단한 결합만이 가족의 기본이던 시대는 가고 있다. 앞으로 무수히 다양한 형태의 '분자 가족'이 태어날 것이다. 이를테면 우리 가족의 분자식은 W2C4쯤 되려나. 여자 둘 고양이 넷. 지금의 분자 구조는 매우 안정적이다. - page 12

​

'분자 가족'이라는 이 단어.

이제 가족의 의미는 이렇게 되지 않을까란 생각도 해 보곤 하였습니다.

​

그리고 이번에 만난 이들.

흥미로웠던 건 아마도 '덕후' 여자들의 동거라는 점에서였습니다.

'덕질'이란 공통점을 지닌 이들의 왠지 모를 유쾌할 것 같은 동거 이야기가 참 궁금합니다.

​

집값은 비싸고, 최애 굿즈는 늘어만 가고, 고독사는 죽기보다 싫다

그래서 시작했습니다, 덕후 여자 네 명의 유쾌한 동거 생활!

​

『덕후 여자 넷이 한집에 삽니다』



​

책표지만으로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녀들이 어떤 덕질을 하는지!

애니메이션, 코스프레, 아이돌, 밴드, 배우, 연극, 뮤지컬...

제각각인 덕후 네 여자들.

이들이 뭉친 건 '덕후로 살고 덕후로 죽기 위해'서였습니다.




​

사반세기 넘게 덕질하며 살아온 '후지타니'.

어느 날 문득 찾아온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을 느끼게 됩니다.

비어가는 통장에 노후가 불안하고 고독사는 싫고...

그럼에도 오래도록 설레고 즐겁게 덕질을 하며 살아가고 싶기에 고민하던 끝에 좋은 생각이 떠오르게 됩니다.

​

함께 사는 사람이 연인이나 가족이어야 한다는 법은 없잖아. 사회에서 말하는 명확한 이름이 붙여진 관계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친한 상대와 함께 살면 '정신적 불안 해소'와 '생활비 감소'는 실현 가능성이 높다. 원래 알고 지내던 친구라면 '유형 4. 다시 연인을 찾아서 함께 산다'보다 난이도도 낮지 않겠어? 이 방법 상당히 괜찮잖아! 나 혹시 천재?! - page 33

​

이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채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내게 됩니다.

​

"우리, 셰어 하우스 안 할래요?" - page 33

​

그렇게 생각보다 쉽게(?) 넷이서 덕후 셰어 하우스를 하게 됩니다.

​

책 속에는 셰어 하우스를 꾸리게 된 계기부터 멤버 모집, 집 구하기, 입주, 동거 생활까지 '덕질 메이트' 네 여자가 실제로 동거를 결심하고 실행한 경험이, 종종 그들의 대화가 담겨 있어서 마치 '관찰 예능'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꾸밈없고 왁자지껄한 그녀들의 이야기가 재미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론 이런 생활을 해 보았으면 하는...

무언가에 빠져들어보지 않았기에 '덕질'을 하는 그 열정이 너무나 멋져 보였고 편하게 굴 수 있는 친한 친구 사이가 아니기에 좋은 의미로 격식을 차리며 다른 사람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도 좋아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

마루야마 가쿠타 씨의 최애 데뷔가 결정되면 고기 구울게요. 안타까운 결과라면 죽으로 대신하고.

가쿠타 어떻게 되든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

걱정되고말고. 그래도 무언가에 빠진 사람의 모습을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라고 다시 한번 느꼈다. - page 155 ~ 156

​

모두 각자 맡은 일에 열중하면서, 애니메이션을 보거나 게임을 하는 평화로운 일상이 이어지고 있었지만 이 집도 코로나19는 피하지 못하게 됩니다.

혼자였다면 SNS에 떠도는 부정적인 뉴스를 보며 경제적 불안감과 외로움으로 '유리 멘탈'이 됐을지도 모르지만 하우스 메이트들이 있었기에 잘 버티며 살아갈 수 있었다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니 '함께'의 의미가 더 와닿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전한 그녀의 이야기.

​



​

그래도 당분간은 계속 이어질 그녀들의 셰어 하우스 생활이 덕력만큼 강력하게 유쾌했으면 좋겠습니다.

​

마루야마 아무래도 덕후와 함께 살면 느닷없이 발광하거나 물건이 쌓이는 걸 이해해주니 편해요.

가쿠타 덕후는 서로의 '지뢰'를 밟지 않으려고 하잖아요? 그게 실생활에서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게 하는 것 같아요.

마루야마 게다가 문제가 생겼을 때 그냥 지나치지 않고 솔직하게 터놓고 얘기하니까 저도 눈치보지 않는 면이 있죠.

호시노 도구나 앱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그걸로 해결하는 결단력도 필수죠.

마루야마 진지하게 얘기하자면, 역시 어딘가 존경할만한 부분이 있거나 매력적이라고 느껴지는 사람과 함께 사는 건 좋은 것 같아요.

​

'덕후 셰어 하우스'

어떤가요?

매력적이지 않나요!

그녀들 덕분에 또 하나의 가족의 형태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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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은 여자가 되나니 - 아킬레우스의 노예가 된 왕비
팻 바커 지음, 고유라 옮김 / 비에이블 / 2022년 6월
평점 :
절판


그리스 신화하면 빼놓을 수 없는 '트로이아 전쟁'.

너무나도 잘 알고 있지만...

되짚어보니 이야기의 시선은 위대한 '남성'들에, '영웅'들에게 치중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여성은...?

​

부커상 수상자이자 영미 문학의 거장 '팻 바커'는 트로이아 전쟁에 관해 누구도 들어본 적 없는 이야기를 조명하고 있었습니다.

전장에서 더러워진 옷을 세탁하고, 베틀로 천을 짜고, 전사자를 염습하면서 병영의 세간을 떠받치던 수천 명의 여자 노예들.

이제 소설 속에서 그녀들이 오랜 침묵을 깨고 목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

여성은 어떤 방식으로 존엄을 지키는가

​

『침묵은 여자가 되나니』



​

위대한 아킬레우스. 영민한 아킬레우스. 눈부신 아킬레우스. 신과 같은 아킬레우스...... 그를 가리키는 수많은 별칭들. 우리는 그중 어떤 것으로도 그를 부르지 않았다. 우리는 그를 '도살자'라고 불렀다. - page 11

​

그는 모습을 드러내기도 전에 소리로 알렸고 전쟁터에서 내지르는 함성은 리르네소스 성벽을 울려댔습니다.

트로이의 도시국가 리르네소스.

남자들이 밀리고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이 드높은 성벽이 어떻게 무너질 수 있단 말인가...

​

하지만 성문을 향해 물밀듯 돌격해오는 그리스 병사들이 있었고 침입자들을 물리치려고 안간힘을 쓰는 병사들이 있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휘두르고 찌르면서 쏟아지듯 돌격해오고 있는...

그중 한 곳에서 깃털 투구를 쓴 아킬레우스가, 그녀의 오빠 둘을 거느리고 계단에 선 남편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곤 곧장 칼을 휘두르며 그들에게로 향하는 아킬레우스.

​

막내 남동생이, 아버지의 검을 드는 것도 힘겨워하는 열네 살짜리 그 애가 죽는 걸 보았다. 그 순간, 아킬레우스는 이 세상의 모든 시간을 소유했다는 듯 고개를 들고 탑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나를 똑바로 보고 있었다. 아니, 그래 보였다. 그러나 그때 나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섰던 것 같고, 그는 해에 눈이 부셔서 나를 바로 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정교하고 정확하게, 이후로 잊고 싶었지만 절대 잊을 수 없도록, 내 동생의 목을 발로 밟고 창을 빼냈다. 상처에서 피가 솟구쳤고, 동생은 꼬박 일 분 동안 안간힘을 쓰며 숨을 몰아쉬다 축 늘어졌다. 그 애의 손아귀가 느슨해지면서 아버지의 검도 툭 떨어졌다. - page 25

​

그날 예순 명을 벤 그.

가장 격렬한 전투에서 자신의 가엾고 어리석은 남편, 미네스가 자신의 도시를 수호하고자 용감하게 싸웠던 궁전 계단에서 벌어진 이 과정을 지켜본 그녀, 리르네소스의 왕비 '브리세이스;.

이젠 노예로 전략하게 된 그녀는 결심하게 됩니다.

​

숨이 끊어질 때까지 나는 당신들을 증오할 것이다. - page 29

​

그렇게 한 여인의 시선으로 참혹한 실상을, 누군가에겐 '영웅'이라 일컬었던 그들이 다른 이에겐 '악인'이었던 아킬레우스, 파트로클로스, 오디세우스, 아가멤논, 네스토르, 아이아스를 낯설지만 어쩌면 더 진실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정복과 노예제도라는 불편한 진실.

결국 브리세이스는 아킬레우스의 죽음으로 그의 이야기, 그녀의 이야기가 아닌 그의 이야기는 무엄에서 끝을 맺게 되고 부하 알키모스의 여인이 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



​

이 소설은 시작 전 이 이야기를 합니다.

​



​

전리품이었던 '여성'.

그녀들의 시선이 지금의 우리에게서도 볼 수 있음에 가슴이 아파왔습니다.

전쟁 한복판에서 수치를 감수하고 살아남은 여성들의 모습은...

노란 나비로 그녀들이 다시 날아오르기를 바랐지만 여전히 진행형이라는 것이 또다시 생각하니 안타깝기만 합니다.

​

책 속에 인상적인 문구가 있었습니다.

​

"당연히 아무 말도 안 해주지! 나는 그저 참고 견디면서 아무말도 하지 않는 사람이니가. 게다가 내가 뭔가 말하려고 들면 이런 식이야. '여자는 침묵해야 한다.'" - page 395

​

나는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전투로 단련된 전사들이, 노예가 그리스인 아기에게 불러주는 트로이 자장가를 듣고 있었다. 나는 무언가 깨달았다. 아니 그때는 얼핏 떠올랐다고 말하는 편이 나을지 모르겠다. 진정 무언가 깨달은 시점은 훨씬 이후였으니까. 이런 생각이었다. 우리는 살아남을 것이다. 우리의 노래와 이야기가 우리를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트로이 최후의 사내가 죽고 수십 년이 지나도, 트로이인 어머니들이 불러주는 노래를 그 자식들이 기억할 것이다. 우리는 꿈속에서 영원할 것이다. 끔찍한 악몽이더라도. - page 397

​

여자의 침묵은 결국 '소리없는 아우성'이었습니다.

이제라도 그녀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우리 모두의 관심이 필요함을 소설을 통해 깨닫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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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브로콜리 싱싱한가요? - 본격 식재료 에세이
이용재 지음 / 푸른숲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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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것을 좋아하지만 요리엔 '똥손'.

다행히 요즘은 밀키트가 잘 나와서 저도 '요리'(?)에 조금씩 자신감도 붙게 되면서 '요리책'을 보며 도전도 하곤 합니다.

아직까지도 맛은 보장할 수 없지만...

​

그러다 보니 예전에는 '음식' 그 자체에 관심을 가졌었다면 요리에 눈을 뜨게 되면서는 '식재료'에 관심이 가게 되었습니다.

채소, 육류, 해산물, 과일 등.

이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주실 분이 있었습니다.

10여 년 넘도록 미식에 대한 글을 써온 '이용재' 음식 평론가.

그가 들려줄 일상에서 구하기 힘든 낯선 식재료가 아닌 마늘종, 양파, 브로콜리 등 우리에게 친숙한 식재료를 고르고 저장하고 가공하는 법에 귀를 기울여봅니다.

​

브로콜리, 양파, 마늘종, 올리브, 복숭아, 연어...

60여 가지 평범한 식재료를

더 맛있고, 향긋하게 즐기는 법!

​

『오늘 브로콜리 싱싱한가요?』



 



이 책은 음식과 요리 공부의 밑준비에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기에

조리에 막 관심을 가져보려는 이들에게는 꼭 필요한 지식을 제공할 것이며

익숙한 이들에게는 새로운 요령을 보충해 줄 것

이었습니다.

그렇기에 한 번은 읽어보아야 한다는 것.

​

총 7부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1장에서는 '향신료와 필수 요소'로 소금, 설탕, 감칠맛(조미료) 등 흔하게 쓰이는 요리의 필수 요소들과 허브, 카레 등 이들을 활용할 다양한 방법이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얼음'도 등장했다는 점.

단순히 물을 얼린 얼음이 요리에 요소였을까?라고 생각했던 저에게 예를 들어준 '비빔면'.

​

오른손이든 왼손이든 어떤 손으로 비벼도 상관은 없지만 미지근, 혹은 더 나아가 뜨거운 비빔면의 고통을 맛본 이라면 안다. 비빔면은 면발이 일단 차가워야 맛있는데, 여름에는 수돗물도 미지근해 생생함을 느끼기가 어려우니 얼음으로 온도를 낮춰주면 몇 갑절 나아진다. - page 45

​

그리고 요모조모 따져보면 얼음은 사서 쓰는 게 정답이라는 진실도 일러주었습니다.

​

2장에서 6장에는 주요 식재료들 채소, 해산물과 육류, 과일, 곡물을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이들 장에는 저자가 경험으로 얻은 다양한 식재료 정보 및 레시피 정보가 담겨 있었습니다.



이제 곧 여름 끼니에 빠질 수 없는 '콩국수'의 맛내기에 그가 알려준 팁이 있었는데 바로 '아몬드'와 '올리브'.

정말 뜬금없었습니다.

그런데...

​

올리브를 적당히 다져 고명으로 얹으면 풍성함을 뚫고 올라오는 짭짤함이 대체로 기본 간이 약한 콩국수의 텁텁함을 덜어준다. 그래도 모자란다 싶으면 올리브가 담긴 소금물을 1~2작은술 더해도 좋다. 걸쭉하고 차가워 소금이 잘 녹지 않는 콩국물의 간을 맞추는 데 신의 한 수다. - page 75

​

짭짤함이 필요한데 김치는 딱히 내키지 않을 때, 다들 짜게 먹는다고 난리를 치는 가운데서도 단맛의 방해 없이 짠맛이 제 목소리를 내는 음식.

바로 '올리브'라는 것.

이번 여름엔 그가 일러준 비법으로 시원한 '콩국수'를 먹어봐야겠습니다.

​

참치(통조림)에서 '해양생태계의 지속 가능성'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

사실은 이제 가장 중요한 사안이다. 처음 미국산 날개다랑어 통조림의 포장에서 '돌고래 무첨가 참치'라는 문구를 보고 의아했던 기억이 선하다. '돌고래 무첨가 참치라니, 그렇다면 돌고래 첨가 참치도 있다는 말인가?' 궁금해서 찾아보니 통조림용 참치를 둘러싼 아픈 사연이 있었다. 바로 남획으로 인한 해양생태계의 무차별적 피해다.

원래 통조림용 참치 어획의 대세는 집어장치였다. 물에 떠 있는 부유물체를 안식처라 여기는 본능에 착안해 물에 스티로폼을 띄워 작은 수중생물을 유인한다. 그리고 주위에 폭 200미터, 깊이 2킬로미터 크기의 그물을 쳐 구역 전체의 어종을 잡아들인다. 상위 포식자인 참치의 효율적인 포획을 추구하다가 돌고래는 물론, 오리나 갈매기 같은 조류까지 피해(혼획)를 입힌다. - page 211 ~ 212

​

인류의 오랜 남획으로 해양생태계가 심각한 수준으로 고갈되고 있는 가운데 서열 1, 2위의 고급 횟감 참다랑어류는 이제 최고 위험 수준인 '심각한 위기종'과 '멸종 위기종'에 속한다고 합니다.

서열 아래로 내려올수록 위기 단계는 낮아지지만 상대적인 뿐이니 날개다랑어는 '위기 근접종', 가다랑어나 돼야 '관심 필요종'으로 분류된다는 사실을 의식하며 먹는 게 바람직함을.

손쉽게 먹을 수 있는 식재료에 대한 충분한 인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

마지막 7장에서는 '알아두면 좋을 식재료 이야기'로 채소 절임을 할 때 적절한 물과 소금의 비율, 스테이크를 굽는 온도, 양파의 캐러멜화에 적합한 온도 등 일상 요리에 참고할 만한 쉽고 간편한 정보가 담겨 있었습니다.

특히 채식에서 '간'이 정말 중요한데 음식의 간이라면 대체로 '소금'을 써 짠맛이 나는 상태라 여겼었는데...

​

하지만 실제로는 식재료의 맛이 각각 도드라지는 가운데 전체의 균형이 맞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는 소금뿐 아니라 식초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걸 시사한다. 특히 지방을 적극적으로 쓴다면 소금과 식초의 균형이 맛내기의 전부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런 차원에서 식초를 잘 쓰면 소금을 일정 수준 덜어낼 수 있다. 소금과 식초의 조합으로 음식 전체가 확 도드라지는 느낌을 받을 때까지 간을 맞춰보자. - page 311

​

소금과 '식초'의 조합이라는 사실에 사실 놀라웠습니다.

​

평범한 식재료이기에 별다른 이야기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식재료 하나하나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동안 알던 맛과는 완전히 새로운 맛이 연상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역시나 무엇이든 그 근본을 제대로 알아야 활용도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을.

보다 맛있게, 향긋하게 즐기는 법을 저자를 통해 한 수 배우게 되었습니다.

​

오늘 저녁을 차리기 전 장을 보러 갈 예정인데 책에서 만났던 식재료들을 만나면 반갑게 인사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도 제가 배운 이야기들을 들려주며 같이 식재료에 관심을 가져보려 합니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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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 (출간 15주년 기념 백일홍 에디션) - 박완서 산문집
박완서 지음 / 열림원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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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학의 어머니, 이제는 그리운 작가, '박완서'.

사실 저는 그녀의 작품들을 직접 읽어보지는 않았습니다.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이야기로도 이미 작품을 읽은 듯했기에 굳이 찾아 읽지는 않았었습니다.

그러다 작년에 그녀의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에세이를 읽으면서 그녀의 글은, 언어는 세대를 초월해도 대체 불가능하다는 것을, 어쩜 우리가 쓰는 언어가 유의미하게, 따스하게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차츰 그녀의 작품을 찾아읽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독서 모임을 통해서 단편동화 모음집 『자전거 도둑』을 읽으면서 오히려 제가 '진정한' 어른의 의미를, '진정한' 삶의 의미를 되짚어보는 계기도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또 한번 그녀로부터의 위로를 얻고자 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꽃 백일홍이 피는 초여름, 출간 16주년을 기념해 나온 백일홍 에디션인 이 책.

어느새 우리에게도 성큼 다가온 초여름에 선물과도 같은 그녀의 문장에 마냥 기대어보고 싶습니다.


"자연의 질서를 긍정하고,

거기 순응하는 행복에는 불안감이 없다."


『호미』



총 4부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1부 '꽃과 나무에게  말 걸기'에서는 복잡한 서울을 벗어나 아치울로 이사한 작가가 자신만의 작고 특별한 정원을 일구며 발견한 일상을,

2부 '그리운 침묵'에서는 작가가 살아오면서 겪은 크고 작은 고난 속 바래지 않은 휴머니즘과 다음날을 향한 따뜻한 희망을,

3부 '그가 나를 바라보았네'에서는 종교적 깨달음과 삶을 지탱하는 소중한 순간들에 대한 감사를,

4부 '딸에게 보내는 편지'는 호원숙 작가에게 가진 신뢰와 애정, 그리고 더없이 너그러운 우인으로 살다가신 어른들의 삶에 관해

그녀만의 목소리로 상냥한 온기와 함께 다정히 다가왔습니다.


넓지도 않은 마당에 존재했던 큰 목련나무.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에 베어버렸지만 죽지 않고 새로운 싹을 토해내고 그걸 또 집요하게 훑어낼 때마다 투덜대는 대신 미안하다고 사과를 한 그녀.

나무의 그루터기는 사방으로 이파리가 아닌 가장귀를 뻗고 있었고 키는 작지만 동그랗고 건강한 나무의 모양을 갖추어가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모습을 바라보고는 목련나무에게 건넨 그녀의 이야기.


그래서 나는 요새도 나의 목련나무에게 말을 건다. 나를 용서해줘서 고맙고, 이 엄동설한에 찬란한 봄을 꿈꾸게 해줘서 고맙다고. - page 14


그렇게 죽어있지만 살아날 것과 살아있지만 죽을 것이 공존하는 자연을 통해 우리에게 전한 이 이야기가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자연의 질서를 긍정하고, 거기 순응하는 행복감에는 그런 불안감이 없다. 아무리 4월에 눈보라가 쳐도 봄이 안 올 거라고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 변덕도 자연 질서의 일부일 뿐 원칙을 깨는 법은 없다. 우리가 죽는 날까지 배우는 마음을 놓지 말아야 할 것은, 사물과 인간의 일을 자연 질서대로 지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가 아닐까. 익은 과일이 떨어지듯이 혹은 누군가가 거두듯이 그렇게 자연스럽게 죽고 싶다. - page 22


그동안 못다 한 말들을 풀어놓기 바쁜 요즘.

사람들도 그렇고 사회도 그렇고 참 시끌벅적한데 그럴 때일수록 고요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백화난만한 꽃밭. 침묵은 결코 우리를 가두지 않았건만 우리를 가두지 않았건만 우리는 해방감을 느꼈다. 만약 갇혀 있었다면 결코 그런 해방감을 못 느꼈을 것이다. 침묵이란 지친 말, 헛된 말이 뉘우치고 돌아갈 수 있는 고향 같은 게 아닐까. - page 92


그녀가 <이문구 선생을 보내며>에서 존경과 그리움, 그리고 전한 이 이야기가 뭉클하게도 하지만 오롯이 가슴에 새겨졌습니다.


친구끼리 애인끼리 혹은 부모 자식 간에 헤어지기 전 잠시 멈칫대며 옷깃이나 등의 먼지를 털어주는 척하는 일이 중요한 것은 먼지가 정말 털려서가 아니라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손길에 온기나 부드러움, 사랑하는 이의 뒷모습까지 아름답기를 바라는 착한 마음을 실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닐런지요. - page 253 ~ 254


자연스러우면서도 따뜻한 그녀의 문장들.

자연처럼 모든 것은 그렇게 흘러 지나가리라는 것을 일깨워준 그녀.

책을 읽고 난 뒤 그녀의 미소가 아련하게 남게 되었습니다.

 



마음이 복잡했던 저에게 다정히 다가왔던 그녀의 말이...

나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이 그 답이었을까...

정말 그리운 작가 '박완서'였습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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