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미 (출간 15주년 기념 백일홍 에디션) - 박완서 산문집
박완서 지음 / 열림원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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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학의 어머니, 이제는 그리운 작가, '박완서'.

사실 저는 그녀의 작품들을 직접 읽어보지는 않았습니다.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이야기로도 이미 작품을 읽은 듯했기에 굳이 찾아 읽지는 않았었습니다.

그러다 작년에 그녀의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에세이를 읽으면서 그녀의 글은, 언어는 세대를 초월해도 대체 불가능하다는 것을, 어쩜 우리가 쓰는 언어가 유의미하게, 따스하게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차츰 그녀의 작품을 찾아읽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독서 모임을 통해서 단편동화 모음집 『자전거 도둑』을 읽으면서 오히려 제가 '진정한' 어른의 의미를, '진정한' 삶의 의미를 되짚어보는 계기도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또 한번 그녀로부터의 위로를 얻고자 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꽃 백일홍이 피는 초여름, 출간 16주년을 기념해 나온 백일홍 에디션인 이 책.

어느새 우리에게도 성큼 다가온 초여름에 선물과도 같은 그녀의 문장에 마냥 기대어보고 싶습니다.


"자연의 질서를 긍정하고,

거기 순응하는 행복에는 불안감이 없다."


호미



총 4부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1부 '꽃과 나무에게  말 걸기'에서는 복잡한 서울을 벗어나 아치울로 이사한 작가가 자신만의 작고 특별한 정원을 일구며 발견한 일상을,

2부 '그리운 침묵'에서는 작가가 살아오면서 겪은 크고 작은 고난 속 바래지 않은 휴머니즘과 다음날을 향한 따뜻한 희망을,

3부 '그가 나를 바라보았네'에서는 종교적 깨달음과 삶을 지탱하는 소중한 순간들에 대한 감사를,

4부 '딸에게 보내는 편지'는 호원숙 작가에게 가진 신뢰와 애정, 그리고 더없이 너그러운 우인으로 살다가신 어른들의 삶에 관해

그녀만의 목소리로 상냥한 온기와 함께 다정히 다가왔습니다.


넓지도 않은 마당에 존재했던 큰 목련나무.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에 베어버렸지만 죽지 않고 새로운 싹을 토해내고 그걸 또 집요하게 훑어낼 때마다 투덜대는 대신 미안하다고 사과를 한 그녀.

나무의 그루터기는 사방으로 이파리가 아닌 가장귀를 뻗고 있었고 키는 작지만 동그랗고 건강한 나무의 모양을 갖추어가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모습을 바라보고는 목련나무에게 건넨 그녀의 이야기.


그래서 나는 요새도 나의 목련나무에게 말을 건다. 나를 용서해줘서 고맙고, 이 엄동설한에 찬란한 봄을 꿈꾸게 해줘서 고맙다고. - page 14


그렇게 죽어있지만 살아날 것과 살아있지만 죽을 것이 공존하는 자연을 통해 우리에게 전한 이 이야기가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자연의 질서를 긍정하고, 거기 순응하는 행복감에는 그런 불안감이 없다. 아무리 4월에 눈보라가 쳐도 봄이 안 올 거라고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 변덕도 자연 질서의 일부일 뿐 원칙을 깨는 법은 없다. 우리가 죽는 날까지 배우는 마음을 놓지 말아야 할 것은, 사물과 인간의 일을 자연 질서대로 지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가 아닐까. 익은 과일이 떨어지듯이 혹은 누군가가 거두듯이 그렇게 자연스럽게 죽고 싶다. - page 22


그동안 못다 한 말들을 풀어놓기 바쁜 요즘.

사람들도 그렇고 사회도 그렇고 참 시끌벅적한데 그럴 때일수록 고요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백화난만한 꽃밭. 침묵은 결코 우리를 가두지 않았건만 우리를 가두지 않았건만 우리는 해방감을 느꼈다. 만약 갇혀 있었다면 결코 그런 해방감을 못 느꼈을 것이다. 침묵이란 지친 말, 헛된 말이 뉘우치고 돌아갈 수 있는 고향 같은 게 아닐까. - page 92


그녀가 <이문구 선생을 보내며>에서 존경과 그리움, 그리고 전한 이 이야기가 뭉클하게도 하지만 오롯이 가슴에 새겨졌습니다.


친구끼리 애인끼리 혹은 부모 자식 간에 헤어지기 전 잠시 멈칫대며 옷깃이나 등의 먼지를 털어주는 척하는 일이 중요한 것은 먼지가 정말 털려서가 아니라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손길에 온기나 부드러움, 사랑하는 이의 뒷모습까지 아름답기를 바라는 착한 마음을 실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닐런지요. - page 253 ~ 254


자연스러우면서도 따뜻한 그녀의 문장들.

자연처럼 모든 것은 그렇게 흘러 지나가리라는 것을 일깨워준 그녀.

책을 읽고 난 뒤 그녀의 미소가 아련하게 남게 되었습니다.

 



마음이 복잡했던 저에게 다정히 다가왔던 그녀의 말이...

나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이 그 답이었을까...

정말 그리운 작가 '박완서'였습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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