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아킬레우스. 영민한 아킬레우스. 눈부신 아킬레우스. 신과 같은 아킬레우스...... 그를 가리키는 수많은 별칭들. 우리는 그중 어떤 것으로도 그를 부르지 않았다. 우리는 그를 '도살자'라고 불렀다. - page 11
그는 모습을 드러내기도 전에 소리로 알렸고 전쟁터에서 내지르는 함성은 리르네소스 성벽을 울려댔습니다.
트로이의 도시국가 리르네소스.
남자들이 밀리고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이 드높은 성벽이 어떻게 무너질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성문을 향해 물밀듯 돌격해오는 그리스 병사들이 있었고 침입자들을 물리치려고 안간힘을 쓰는 병사들이 있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휘두르고 찌르면서 쏟아지듯 돌격해오고 있는...
그중 한 곳에서 깃털 투구를 쓴 아킬레우스가, 그녀의 오빠 둘을 거느리고 계단에 선 남편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곤 곧장 칼을 휘두르며 그들에게로 향하는 아킬레우스.
막내 남동생이, 아버지의 검을 드는 것도 힘겨워하는 열네 살짜리 그 애가 죽는 걸 보았다. 그 순간, 아킬레우스는 이 세상의 모든 시간을 소유했다는 듯 고개를 들고 탑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나를 똑바로 보고 있었다. 아니, 그래 보였다. 그러나 그때 나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섰던 것 같고, 그는 해에 눈이 부셔서 나를 바로 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정교하고 정확하게, 이후로 잊고 싶었지만 절대 잊을 수 없도록, 내 동생의 목을 발로 밟고 창을 빼냈다. 상처에서 피가 솟구쳤고, 동생은 꼬박 일 분 동안 안간힘을 쓰며 숨을 몰아쉬다 축 늘어졌다. 그 애의 손아귀가 느슨해지면서 아버지의 검도 툭 떨어졌다. - page 25
그날 예순 명을 벤 그.
가장 격렬한 전투에서 자신의 가엾고 어리석은 남편, 미네스가 자신의 도시를 수호하고자 용감하게 싸웠던 궁전 계단에서 벌어진 이 과정을 지켜본 그녀, 리르네소스의 왕비 '브리세이스;.
이젠 노예로 전략하게 된 그녀는 결심하게 됩니다.
숨이 끊어질 때까지 나는 당신들을 증오할 것이다. - page 29
그렇게 한 여인의 시선으로 참혹한 실상을, 누군가에겐 '영웅'이라 일컬었던 그들이 다른 이에겐 '악인'이었던 아킬레우스, 파트로클로스, 오디세우스, 아가멤논, 네스토르, 아이아스를 낯설지만 어쩌면 더 진실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정복과 노예제도라는 불편한 진실.
결국 브리세이스는 아킬레우스의 죽음으로 그의 이야기, 그녀의 이야기가 아닌 그의 이야기는 무엄에서 끝을 맺게 되고 부하 알키모스의 여인이 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