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은 여자가 되나니 - 아킬레우스의 노예가 된 왕비
팻 바커 지음, 고유라 옮김 / 비에이블 / 2022년 6월
평점 :
절판


그리스 신화하면 빼놓을 수 없는 '트로이아 전쟁'.

너무나도 잘 알고 있지만...

되짚어보니 이야기의 시선은 위대한 '남성'들에, '영웅'들에게 치중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여성은...?

부커상 수상자이자 영미 문학의 거장 '팻 바커'는 트로이아 전쟁에 관해 누구도 들어본 적 없는 이야기를 조명하고 있었습니다.

전장에서 더러워진 옷을 세탁하고, 베틀로 천을 짜고, 전사자를 염습하면서 병영의 세간을 떠받치던 수천 명의 여자 노예들.

이제 소설 속에서 그녀들이 오랜 침묵을 깨고 목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여성은 어떤 방식으로 존엄을 지키는가

침묵은 여자가 되나니



위대한 아킬레우스. 영민한 아킬레우스. 눈부신 아킬레우스. 신과 같은 아킬레우스...... 그를 가리키는 수많은 별칭들. 우리는 그중 어떤 것으로도 그를 부르지 않았다. 우리는 그를 '도살자'라고 불렀다. - page 11

그는 모습을 드러내기도 전에 소리로 알렸고 전쟁터에서 내지르는 함성은 리르네소스 성벽을 울려댔습니다.

트로이의 도시국가 리르네소스.

남자들이 밀리고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이 드높은 성벽이 어떻게 무너질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성문을 향해 물밀듯 돌격해오는 그리스 병사들이 있었고 침입자들을 물리치려고 안간힘을 쓰는 병사들이 있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휘두르고 찌르면서 쏟아지듯 돌격해오고 있는...

그중 한 곳에서 깃털 투구를 쓴 아킬레우스가, 그녀의 오빠 둘을 거느리고 계단에 선 남편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곤 곧장 칼을 휘두르며 그들에게로 향하는 아킬레우스.

막내 남동생이, 아버지의 검을 드는 것도 힘겨워하는 열네 살짜리 그 애가 죽는 걸 보았다. 그 순간, 아킬레우스는 이 세상의 모든 시간을 소유했다는 듯 고개를 들고 탑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나를 똑바로 보고 있었다. 아니, 그래 보였다. 그러나 그때 나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섰던 것 같고, 그는 해에 눈이 부셔서 나를 바로 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정교하고 정확하게, 이후로 잊고 싶었지만 절대 잊을 수 없도록, 내 동생의 목을 발로 밟고 창을 빼냈다. 상처에서 피가 솟구쳤고, 동생은 꼬박 일 분 동안 안간힘을 쓰며 숨을 몰아쉬다 축 늘어졌다. 그 애의 손아귀가 느슨해지면서 아버지의 검도 툭 떨어졌다. - page 25

그날 예순 명을 벤 그.

가장 격렬한 전투에서 자신의 가엾고 어리석은 남편, 미네스가 자신의 도시를 수호하고자 용감하게 싸웠던 궁전 계단에서 벌어진 이 과정을 지켜본 그녀, 리르네소스의 왕비 '브리세이스;.

이젠 노예로 전략하게 된 그녀는 결심하게 됩니다.

숨이 끊어질 때까지 나는 당신들을 증오할 것이다. - page 29

그렇게 한 여인의 시선으로 참혹한 실상을, 누군가에겐 '영웅'이라 일컬었던 그들이 다른 이에겐 '악인'이었던 아킬레우스, 파트로클로스, 오디세우스, 아가멤논, 네스토르, 아이아스를 낯설지만 어쩌면 더 진실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정복과 노예제도라는 불편한 진실.

결국 브리세이스는 아킬레우스의 죽음으로 그의 이야기, 그녀의 이야기가 아닌 그의 이야기는 무엄에서 끝을 맺게 되고 부하 알키모스의 여인이 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이 소설은 시작 전 이 이야기를 합니다.



전리품이었던 '여성'.

그녀들의 시선이 지금의 우리에게서도 볼 수 있음에 가슴이 아파왔습니다.

전쟁 한복판에서 수치를 감수하고 살아남은 여성들의 모습은...

노란 나비로 그녀들이 다시 날아오르기를 바랐지만 여전히 진행형이라는 것이 또다시 생각하니 안타깝기만 합니다.

책 속에 인상적인 문구가 있었습니다.

"당연히 아무 말도 안 해주지! 나는 그저 참고 견디면서 아무말도 하지 않는 사람이니가. 게다가 내가 뭔가 말하려고 들면 이런 식이야. '여자는 침묵해야 한다.'" - page 395

나는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전투로 단련된 전사들이, 노예가 그리스인 아기에게 불러주는 트로이 자장가를 듣고 있었다. 나는 무언가 깨달았다. 아니 그때는 얼핏 떠올랐다고 말하는 편이 나을지 모르겠다. 진정 무언가 깨달은 시점은 훨씬 이후였으니까. 이런 생각이었다. 우리는 살아남을 것이다. 우리의 노래와 이야기가 우리를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트로이 최후의 사내가 죽고 수십 년이 지나도, 트로이인 어머니들이 불러주는 노래를 그 자식들이 기억할 것이다. 우리는 꿈속에서 영원할 것이다. 끔찍한 악몽이더라도. - page 397

여자의 침묵은 결국 '소리없는 아우성'이었습니다.

이제라도 그녀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우리 모두의 관심이 필요함을 소설을 통해 깨닫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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