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니시드
김도윤 지음 / 팩토리나인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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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를 뒤흔든

단 하나의 심리 스릴러

​

이 문구만으로도 스릴러 마니아는 가슴이 설렙니다.

찌릿찌릿

두근두근

더 이상의 망설임은 사치였습니다.

​

"소소한 일상 속 두 가족의 비밀.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오히려 무섭다."

완성된 가정을 유지하기 위한 자의 책임 그리고 욕망

​

『배니시드』



두 살 터울의 딸과 아들을 둔 가정주부 '연정하'.

티격태격하는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힘겹기만 합니다.

무엇보다 일곱 살짜리 딸이 다섯 살짜리 남동생을 상대로 어른 노릇을 하는 것을 보면 든든하면서도 안쓰러운 그녀.

제 나이보다 조숙한 딸 덕분에 자신은 아들의 놀이 상대가 되어주긴 하지만...

아빠가 해 주었으면...

​

싱글맘도 아니고, 주말부부도 아닌데, 밤 시간에 꼭 홀로 있길 바란 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저 순수하리만큼 자신에게 관심이 없는 남편 '오원우'.

남편으로서뿐만 아니라 아빠로서의 역할도 제대로 하지 않는 그.

​

삑삑삑삑. 삐리릭. 쉬릭. 철커럭. 쉬리릭.

남편이 돌아왔다. 실눈이 떠졌다. 시간은 1시 58분. 잘났다, 이 인간아. 이제야 기어들어 오니? 아주 밖에서 처잘 것이지. 하루 종일 처자식이 뭘 하고 사는지 관심도 없지? 어휴, 여기까지만 하자. 너에게는 저주도 아깝다. - page 47 ~ 48

​

그런데...

웬일로 오랫동안 씻는 것이었습니다.

평소라면 밖에서 온갖 때를 묻히고 들어와서는 세수도 안 하고 덜컹대며 소변을 보고 양치도 안 하고 벌러덩 드러누워 코를 골며 곯아떨어질 남자가 한참을 뭔가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

쏴아. 첨벙첨벙. 헉헉.

잠이 확 달아났다. 남편이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혹시 어디가 아픈가? 이른 나이에 심장마비라도 왔나? 아니다. 남편은 당황한 상태였다. 무슨 일인가 벌어졌다. 긴박한 어떤 일이. - page 49

​

피!

욕실에서 피 묻은 옷과 칼을 치우는 남편.

놀라움과 두려움 속 다음날 그녀는 집안에 어설프게 남아있던 흔적들을 치우기 시작합니다.

​

보름 전, 피범벅이 된 채로 돌아온 남편의 귀가 시간이 앞당겨졌었습니다.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그러다 뉴스에서 보도된 '호프집 살인 사건'.

왜인지 몰라도 쓱 스쳐 지나가듯 비춘 그 호프집의 정경을 본 순간, 이거다, 싶은 불안감이 다가왔습니다.

다음 날.

남편은 평소처럼 출근했고...

​

그리고 돌아오지 않았다.

​

남편이 사라진 지도 벌써 13년이 흐르고 이제는 실종 선고를 넘어선 사망 선고를 내려도 되는 시기가 지났습니다.

무자비하게, 바람처럼 지나간 세월.

그런 그녀에게 천천히 다가온 이가 있었으니 바로 비슷한 시기 아내를 자연사로 잃은 앞 동 남자 '최우성'.

​

"정말이야. 당신과 살 수 있다면 나는 무슨 짓이든 할 생각이었어. 얼마의 시간이 흐르든 어떤 일을 겪게 되든 무슨 짓이라도 저지를 각오를 하고 열심히 연구했지. 그리고 결국 꿈을 이루었어. 지금 당신과 한집에 있으니." - page 272

​

온갖 고생 끝에 만난 과분하지만 이상형의 완벽한 남자.

과연 이 모든 것은 우연이었을까 아니면 치밀한 계획이었을까?

'가족'이라는 명분하에 일어난 두 가족의 비밀이 펼쳐지기 시작하는데...

​

황량한 결혼.

그럼에도 가정을 지키고자 했던 그들.

그 모습을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던 아이들.

정하의 딸 하원이의 말이 참 가슴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

"엄마, 이제 좀 잊으라고요. 난 이제 겨우 행복해졌어. 엄마는 모를 거야. 집에만 오면 온몸이 젖은 솜처럼 무거웠어! 축 늘어져서 허공만 보고 있는 엄마, 아빠만 찾아대는 남동생. 그 틈에서 나는 엄마에게 언니처럼 굴어야 했고 동생한테는 엄마 노릇을 해야 됐어. 난 최우성 아저씨를 좋아한 적 없었어. 지금도 그래. 아저씨가 내 눈앞에서 죽는다고 해도 눈물 한 방울 안 나올 거야. 어차피 남인걸! 하지만 아저씨는 나에겐 구세주였어. 그 먹구름이 잔뜩 낀 집에서 벗어나게 해줄 구세주! 아저씨 덕분에 내 어깨는 조금 가벼워졌어. 난 아저씨가 엄마를 좋아해서, 그래서...... 엄마가 탐나서 아저씨가 아빠를 죽였다고 해도 상관없을 정도였어. 왜냐하면 아저씨는 최소한...... 엄마를 좋아하니까. 그것만으로 충분했거든. 엄마를 좋아하지도 않던 아빠보다는 아저씨가 더 나으니까! 아빠? 아빠 따위 필요 없어. 지금까지 우리끼리 잘 버텨왔어. 엄마도 이제 잊어버려요. 나를 위해서라도 제발 좀 행복해지라고!" - page 336 ~ 337

​

간신히 버텨왔다고 울부짖는 아이.

이제 현재를 살자고 외치는 이 아이를 바라보며 부모로서의 역할에 대해, 가족이란 의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이 소설에서 전하고자 한 바는 이 이야기가 아닐까.

​

두 판의 퍼즐이 있고 우연히도 두 퍼즐이 각각 하나씩 일부를 잃어버렸다고 가정하자. 그렇다고 두 판의 퍼즐의 빈 부분끼리 딱 맞아서 한판의 퍼즐이 될 수는 없다. 모든 판을 뒤엎고 새로운 판 위에 퍼즐을 재배치해도 그 퍼즐 역시 완성이 될까 말까다. 앞 동 남자도 나도 인간이지 퍼즐이 아니었다. 완벽하게 맞아서 꽉 채워진 퍼즐의 판 같은 가정이 세상에 있기는 한 것일까. 그런 가정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결국 외부에서 볼 때만 '그렇게' 보일뿐이다. 가정의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은 아무도 모른다. - page 213 ~ 214

​

들여다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가족 이야기.

우리는 인간이기에 '완벽하게' 맞춰질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

각기 다른 퍼즐에서 떨어져 나간 한 조각이 완벽하게 맞아들어갈 확률은 낮다. 그건 퍼즐 조각일 뿐이기 때문에 그렇다. 하지만 우성 씨와 나는 퍼즐 조각이 아닌 인간들이다. 인간이기에 상대방의 굴곡과 틈에 알맞게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다. -page 418

​

서로를 이해하고 맞춰나간다는 것.

그 과정 속에서 가족이 완성됨을, 저에게 가족에 대한 의미를 다시금 부여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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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ㅣ 애거서 크리스티 에디터스 초이스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남주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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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크리스티 소설이자, 출간 이래 항상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고 있는 미스터리 소설!

세게 3대 추리 소설 중의 하나이자, 수없이 많은 영화와 드라마로 제작된 최고의 미스터리이자, 애거서 크리스티 자신이 뽑은 제일 좋아하는 작품 목록의 1위에 올라 있다는 이 소설!

이번엔 이 소설을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

"모든 게 그저 불가능하면서도 완전히 매력적이다. 애거서 크리스티가 쓴 중에 가장 대단한 소설이며, 앞으로 논리적 설명을 갖춘 미스터리를 이야기할 때마다 대대로 이 작품이 언급될 것이다." _ 《뉴욕 타임스》

​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최근 여러 신문에서 떠들어 댔던 바로 그 섬!

온갖 종류의 암시와 흥미진진한 소문이 나도는 그곳.

'병정 섬'

그곳으로부터 열 명-워그레이브 판사, 베라 클레이슨, 필립 롬바드 대위, 에밀리 브렌트, 맥아더 장군, 암스트롱 박사, 앤터니 매스턴, 블로어, 로저스 부부-이 초대를 받게 됩니다.

자신이 왜 초대받게 되었는지 모른 채...

​

'병점 섬이라?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섬이군.' - page 48

​

다들 한자리에 모여 저녁 식사를 한 뒤 자유롭고 친밀하게 서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다 앤터니 매스턴이 갑자기 입을 열었습니다.

​

"이상하군요, 저거 말이에요. 그렇지 않아요?" - page 53

​

둥근 식탁 한가운데에 놓인 회전 유리판 위에 도기로 된 꼬마 인형들.

​

토니가 말을 이었다.

"병정 인형들이네, 병정 섬이니까. 그래서 놓아둔 것 같은데요."

베라가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

"그런 것 같군요. 모두 몇 개죠? 열 개?"

베라는 감탄했다.

"정말 재미있군요! 쟤네들은 자장가에 나오는 열 꼬마 병정 같아요. 제 방 벽난로 선반 위에는 그 노래의 가사가 쓰여 있는 양피지가 액자에 들어 있어요." - page 53

​

모두들 입을 모아 자신의 방에도 노래 가사가 쓰여 있는 양피지 액자가 있다며 유치한 것 같다고 떠들어대던 중 아무런 경고도 없이 폐부를 찌르는 비인간적인 '목소리'가 울려퍼지게 되는데...

​

"신사 숙녀 여러분! 조용히 해 주십시오!"

...

"여러분은 다음과 같은 죄목으로 기소된 죄인들입니다." - page 56

​

이 무슨 기괴하고도 황당한 일인가!

​

"바로 그렇소. 우리를 이곳에 초대한 사람은 미치광이인 게 분명하오. 어쩌면 위험하기 짝이 없는 살인광일지도 모르지." - page 72

​

여기로부터 떠날 것을 다짐하지만 지금은 배가 없는 상황.

내일 아침까지 기다려야 하는 찰나.

앤터니 매스턴이 술잔을 들어 올려 한 모금 마시다 그만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

맥아더 장군이 말했다.

"사람이 이렇게 죽을 수 있다는 얘기는 들어 본 적이 없소. 그저 사레들린 것뿐이잖소!"

에밀리 브렌트가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죽음은 우리의 삶 한가운데 있어요."

암스트롱 박사가 일어섰다. 그가 불쑥 말했다.

"그렇습니다, 사레들린 것만으로 사람이 죽을 순 없어요. 매스턴의 죽음은 이른바 자연사가 아닙니다." - page 88

​

그리곤 응접실로 들어간 로저스는 뭔가를 발견하게 됩니다.

​

"정말 이상한 일이야! 틀림없이 열 개가 있었는데." - page 94

​

탁자 한가운데 놓인 도기 인형이 하나 사라진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이들은 인디언 병정 시처럼 한 명씩 차례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마지막에 밝혀지는 범인은...

반전을 더한 짜릿함을 선사해 준 이 소설.

또다시 그녀의 명성을 몸소 느낄 수 있었습니다.

​

"그렇다면 누가 그들을 죽였을까?" - page 311

​

이 소설을 통해 뭔가를 배웠다기보단 추리소설의 매력을 한껏 받았다고 할까.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일까... <작품 해설>을 살펴보니 그 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

이른바 희생자들의 이름이 나오는데, 모든 경우 범죄가 명백하지 않다. 외딴 곳에서 자행되어 목격자가 없거나, 실제로 죽이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불가피하게 죽음을 야기할 부주의를 저질렀거나, 엄격한 도덕적 태도로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어 자살로 몰아갔다거나 하는 식이다. 다시 말해서 영영 드러나지 않고, 사실상 살인이라고 하기 어려운 종류의 살인들이다. 하지만 정의라는 순수한 관점에서 보자면 그것들은 대낮에 토기에 대로에서 사람을 총으로 쏜 것만큼이나 확실하게 희생자의 목숨을 앗아 갔다. 말하자면 이것이 이 이야기의 도덕적 동기다. 어느 광신적인 도덕주의자가 과거에 저질러진 여러 불의들을 한꺼번에 바로잡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 page 329

​

아하, 이야기의 동기가 이러했군!

아무튼 너무나도 흥미로웠던 이 소설.

다음엔 어떤 작품을 골라 읽어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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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맞은 뇌 - 뇌과학이 발견한 기억의 7가지 오류
대니얼 샥터 지음, 홍보람 옮김 / 인물과사상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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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서로의 기억이 다를 때가 있습니다.

왜 그럴까...?

그리고 저만 보더라도 시간이 흐를수록 기억이 가물가물...

'기억'에 대해 알고 싶었습니다.

​

미국 하버드대학 심리학과 교수인 '대니얼 샥터'는 기억에 대한 인상적인 실험연구들을 통해 일상적인 삶에서 발생하는 기억의 오류, 즉 소멸 · 정신없음 · 막힘 · 오귀인 · 피암시성 · 편향 · 지속성 등을 분석하였습니다.

기억의 7가지 오류.

그래도 괜찮은 것인지, 이로부터 저자는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할지 그 흥미로운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

미국 하버드대학 심리학과 교수가 밝혀낸

기억의 '오류와 왜곡'의 진실!

"기억은 우리를 어떻게 곤경에 빠뜨리는가?"

​

『도둑맞은 뇌』



우리는 기억을 잊기도 하고 왜곡하기도 합니다.

또한 기억에 의존해 다양한 일상 업무를 수행하기도 하는 기억이란 우리 일상생활 곳곳에 깊이 스며들어 작용하곤 하는데...

그렇지 않아도 '기억'에 대해선 오랫동안 과학자들에게 흥미로운 주제였고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왔다고 하였습니다.

무엇보다 고령화가 진행됨에 따라 노인들에게 기억과 관련된 문제가 점차 일반화되고 있고 휴대전화 등의 디지털 기기에 지나치게 의존한 나머지 '디지털치매'라는 말까지 등장하였으니 '기억'이란 주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렇다면 그 기억에 대해, 기억의 오류에 대해

​

도대체 기억 체계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기에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에 등장하는 소설가와 빈야민 빌코미르스키 사례에서 발견되는 기억의 왜곡이나 대니얼 오퍼의 연구에서 확인된 기억의 오류가 발생하는 걸까?

종종 누군가를 만났을 때 분명히 낯익다고 느끼면서도 그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열쇠나 지갑을 어디에 두었는지 까먹는 등 그와 유사한 실수들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왜 어떤 경험은 기억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걸까?

또 고통스러운 기억을 반복적으로 기억해 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기억 체계의 문제들을 피하거나 예방하고 최소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

우리 일상적인 삶에 발생하는 기억의 오류들을 분석해나가고 있었습니다.

​

기억의 소멸은 과거의 사건을 그대로 재현하는 구체적인 기억이 그것을 재구성하는 일반적인 묘사로 점차 변화해가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였습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세부 내용은 서서히 사라지고 이후 비슷한 경험을 통해 생겨난 간섭이 기억을 희미하게 만들며 과거의 사건이나 늘 일어나는 사건에 대한 기억에 더욱 의존하게 되고, 간섭뿐만 아니라 추측까지 동원해 세부 내용을 재구성하면서 기억의 오류가 일어나는 것을.

어쩌면 이토록 성가시다 못해 종종 위험천만한 특징을 보이는 기억을 어디서부터 고쳐나가야 하는 것일까?

​

저자는 기억의 7가지 오류에 대해 분석한 뒤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

기억의 7가지 오류는 근본적인 잘못이 아니라 우리가 치러야 하는 대가이자 기억의 또 다른 적응적 특징의 부산물이다. - page 352

​

이는 인간 진화의 부산물이며, 우리 뇌의 기능이 제대로 실현되고 처리되기 위해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소멸은 기억 체계가 작동하고 있는 환경의 특징에 적응한 결과이며

오귀인은 우리의 기억 체계가 무차별적으로 세세하게 저장하는 대신에 선택적이고 효율적으로 부호화하기 때문에 일어난 결과이기에

우리 정신의 바람직하면서도 적응적이라 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

사실 기억의 오류가 저주처럼 느껴질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왜 나는 안 좋은 기억은 지워지지 않고 나를 괴롭히는 것일까?

왜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까?

좌절하며 자책하곤 하였었는데 저자 덕분에 뇌의 작동 방식으로부터 건강한 정신을 지탱하기 위해 뇌가 택한 진화 방식이었음을 배우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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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러 - 경계 위의 방랑자 ㅣ 클래식 클라우드 31
노승림 지음 / arte(아르테)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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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랐었는데...

<헤어질 결심> 영화에 말러의 교향곡이 삽입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아름답지만 왠지 모를 쓸쓸함이 느껴졌던 음악.

'교향곡 5번 4악장 아다지에토'

그래서 그에 대해 궁금하였습니다.

​

우연이었을까, 아니면 인연이었을까.

마침 이번 <클래식 클라우드>에서 '구스타프 말러'의 삶과 예술 공간을 찾아간다고 하니 그 발걸음에 저도 발을 맞추고자 하였습니다.

​

삶, 그 속되고 아름다운 것을 모두 포용한

구스타프 말러의 삶과 예술 공간

​

『말러』



말러 음악의 음향적 원천이 된 이홀라바에서부터 음악 인생의 정점을 찍은 빈을 거쳐 마지막 예술혼을 사른 뉴욕에 이르기까지.

그 여정이 웅장한 서사였고 음악처럼 진한 여운을 남기곤 하였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어디에서나 소외된 자의 운명적 고독이 묻어 있었던 구스타프 말러.

​

"나는 삼중으로 고향이 없는 사람이다. 오스트리아에서는 보헤미아인으로, 독일인들 사이에서는 오스트리아인으로, 세계에서는 유대인으로, 어디에서나 이방인이고 환영받지 못한다"​ - page 11 ~ 12

​

타고난 고독을 부정하거나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살지 않았던 그는 어린 시절부터 인적 드문 숲속에서 몽상에 잠기곤 하였습니다.

자연만이, 음악만이 온전한 자신만의 세계였던 말러.

그래서 말러의 음악은 여느 작곡가들과는 달랐습니다.

​

그는 세상의 선택을 받기 위해 음악을 만들지 않았다. 그는 당시 사회가 존중하던 형식을 지나치게 과장하거나 파괴했고, 촌부들의 세속적인 권주가 혹은 거리의 노래를 서슴없이 음악적 재료로 사용했다. 여기에서는 당시 고전음악을 듣던 부르주아들의 고상한 취향도, 세상을 향한 아부도 발견할 수 없다. 그랬기에 그가 생전에 작곡한 작품들은 사람들 사이에서 인정받지 못했다. - page 12

​

말러가 살던 시대는 '죽음'에 꽤 익숙하였습니다.

전쟁과 전염병이 삶을 갉아먹던 시절.

열네 명의 형제자매들 중 절반이 사망했을 만큼 죽음은 그의 가족 가까이에서 아른거렸고, 그런 가장 괴롭고 슬픈 상황 속에서 그가 살던 집 아래층 선술집으로부터 흥겨운 유행가 가락이 울려 퍼지는 정서 부조화의 순간을 비일비재하게 마주하게 됩니다.

죽음과 같은 가장 비극적인 순간에도 나와 상관없다는 듯 들려오는 웃음소리.

자신의 감정과 상관없이 돌아가는 세상을 자각한 그는 훗날 음악에 고스란히 담게 됩니다.

​

말러가 장송 행진곡과 죽음의 무도를 통해 바라본 죽음은 한 개인의 물리적 죽음이라기보다는 정신적 또는 사회적 죽음을 암시한다. 전쟁, 인종차별, 문화적 소외로 무의미해진 인간들에게 현실은 파편화되고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불우한 존재들의 사회적 죽음을 암시하는 말러의 장송 행진곡에서는 그러나 애도의 분위기를 전혀 느낄 수 없다. 대신 그들의 부당한 죽음에 시위하듯 저벅저벅 행진해 온다. - page 223

​

말러의 인생을 이야기하다 보면 빼놓을 수 없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알마 말러'.

말러 곁에서 영감과 조언을 아끼지 않은 이상적인 예술 조력자 알마는 '말러의 뮤즈'라 칭송할 수 있었고 그 역시도 자신의 음악을 헌정한 처음이자 마지막 인물이 알마 말러뿐이었습니다.

타고난 미모와 몸매, 그리고 적극적인 성격으로 사교계의 꽃으로 급부상했던 그녀.

스스로 유대인의 피를 물려받았으면서도 유대인을 혐오하는 자기모순에 빠졌으며, 유대인인 말러에 대해서도 처음에는 강한 혐오를 드러냈던 그녀.

뛰어난 음악성을 가지고도 보수적인 남편의 반대로 재능을 꽃피우지 못한 채 가정주부로 살아야 했던 그녀.

​

만약 말러와 결혼하지 않았다면 알마는 그녀의 소원대로 작곡가가 되어 '알마 신들러'라는 자신의 이름을 음악계에 남길 수 있었을까? 역사에 '만약'만큼 공허한 단어도 없지만, 지금 전해지는 알마의 악보는 그녀의 음악성을 가늠하기에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턱없이 부족하다. 1910년, 말러의 적극적인 격려 아래 출판된 그녀의 첫 가곡 악보집은 남편이 아내에게 보낸 화해의 징표였다. 아내와 그로피우스의 외도로 고통받던 작곡가는 그녀를 예술적으로 억압해서 벌어진 비극이라 자책했던 것 같다. - page 174

​

혼인 관계 중 불륜을 저지르며 말러에게 정서적 치명상을 입힌 그녀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볼 수도 있지만 죽은 자는 말이 없기에...

​

평생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도 기울지도 않은 채 자기만의 외길을 걸었던 말러.

그만의 독창적인 음악은 늘 바로 지금, 동시대의 소리로 치열하게 승화되어 울려 퍼져 왔습니다.

​

말러 음악의 동시대성, 아니 현재성을 최고의 희열과 더불어 감상할 수 있는 연주는 명반이 아닌 가장 가까운 공연장에서 벌어지는 실황 콘서트다. 수십 개의 악기가 동시에 소리를 터뜨릴 때 느껴지는 카타르시스와 무대와 객석 사이에서 벌어지는 예측불가능한 신성한 '화합'은 인공적인 음원으로 복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시끄러운 소음과 음악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외줄 타기를 하는 와중에 말러의 음악은 듣는 이는 물론 연주하는 이 하나하나의 인생에 저마다 진한 의미를 남기고, 추억을 빚어내며, 삶의 모순을 마주할 용기를 심어 준다. 가장 개인적이면서 동시에 가장 공동체적인 예술. 말러의 음악이 지닌 가치는 바로 그런 것이다. - page 316




부조화 속에서 피어난 그의 삶과 예술.

쓸쓸함과 고독이 마냥 처절하게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그는 고난 속 극복이 아닌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포용하였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그의 음악을 가만히 음미하며 사색의 시간을 가져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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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미건조한 오트밀에 레몬식초 2큰술을 더한 하루
타라 미치코 지음, 김지혜 옮김 / 더난출판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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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살고 싶어!"

"저렇게 나이 들고 싶어요."

​

감탄, 공감, 응원, 소망, 희망의 댓글이 끊이지 않는다는 <Earth 할머니 채널>의 주인공 '타라 미치코'.

그녀의 일상이 궁금하였습니다.

아니, 뭔가 위안을 얻고 싶었습니다.

​

촘촘히 차곡차곡 쌓아온 시간

손길 하나마다

한땀

한땀

삶이 짜여간다

​

『무미건조한 오트밀에 레몬식초 2큰술을 더한 하루』



지금 87세인 타라 미치코.

55년 된, 엘리베이터도 없는 4층 아파트에서 예전엔 다섯 가족이 함께 살았지만 딸 하나와 아들 둘은 오래전 독립했고 남편은 7년 전에 세상을 떠난 후 혼자 살고 있는 그녀.

2020년, 당시 중학생이던 손자(둘째 아들의 아들)와 <Earth 할머니 채널>이라는 유튜브를 시작하게 됩니다.

그 어떤 꾸밈이나 거창한 이벤트도 없는, 어제와 다름없는 오늘을 살아가는 일상생활을 담았는데 그 모습으로부터 사람들은 위안을 받게 됩니다.

​

많은 일이 있었지만 행복한 87년이었습니다. 저는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노력하고 나만의 속도를 유지하며 살아가려고 했어요. 언제나 '즐기지 않으면 손해'라는 마음가짐으로 살기에 힘들 때도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몰라요.

돌아보면 항상 지금이 가장 행복합니다. - page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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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에 대해서는 굳이 생각하지 않아요. 때가 되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살아가죠. 실제로 항상 그렇게 되어왔고요. 그래서 지금도 미래의 일은 걱정하지 않아요.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마음가짐이지요.

그보다는 지금을 즐기고 싶어요. 매일 긍정적으로 살아야지요. - page 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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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대로도 괜찮다!

고 일러주시는 그녀로부터 지금 이 순간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법을,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훨씬 적은 삶에서 내일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를 발견하게 됩니다.



15평의 아파트 모든 공간에 그녀의 손길이 닿아있었습니다.

손수 그린 그림, 직접 바느질하고 뜨개질한 침대 시트, 오랫동안 모아온 예쁜 그릇들.

따스함과 정겨움이 느껴졌던 이 공간이 무척이나 특별해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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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밥 먹을 때 쓰는 그릇은 바로 꺼낼 수 있도록 부엌 싱크대 위의 찬장에 넣어둡니다. 적게 먹는 편이라 조금만 담아도 에쁜 작은 그릇이 대부분이에요.

대충 자른 어묵도 마음에 드는 그릇에 담으면 훌륭한 반찬처럼 보인답니다. 눈이 즐거우면 배 속도 마음도 만족스러워지는 법이지요. - page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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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림받은 작은 천 조각에 다시 생명을 불어넣는 것도 직접 만드는 즐거움 중에 하나예요. 컵 받침이든 마스크든 일상에서 '쓸 수 있는 물건'을 만드는 보람이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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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저녁을 먹고 나서 바느질을 해요. TV를 보면서 2시간 정도 짬짬이 하는 바느질은 나만의 힐링 시간이죠. 손을 움직이며 작품이 완성되어 가는 것을 보는 기쁨이 크답니다. 마감 기한이 있는 것도 아니니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바느질하는 시간을 즐깁니다. - page 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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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마냥 소소하지만은 않았습니다.

그 속에서도 레몬식초와 같은 특별함이 더해져 그녀만이 그려낼 수 있는 낭만이 엿보이곤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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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는 간단한 것이 좋지만 음식 만드는 수고를 즐길 줄도 알아요. - page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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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갈 사람이 없어서 가고 싶은 곳에 못 간 적은 없어요. 일단 가서 친구를 사귀면 되니까요. 친구를 사귀지 못하더라도 여행의 목적인 영국의 시골, B&B, 펍을 즐길 수 있다면 만족스러운 여행이지요.

...

혼자 여행을 떠나면 불안하지만 저는 호기심이 불안감을 밀어내는 편이에요. 일단 뛰어들면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니까요. - page 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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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서 혼자 할 수 있는 것들이 줄어들고 힘에 부칠 테지만 그녀는 나이 들어가면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이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가는 모습은 저에게 큰 울림으로 남았습니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완벽함에 집착하지 않고 적당히도 괜찮다

고 알려주신 그 가르침 새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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