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러 - 경계 위의 방랑자 클래식 클라우드 31
노승림 지음 / arte(아르테)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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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랐었는데...

<헤어질 결심> 영화에 말러의 교향곡이 삽입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아름답지만 왠지 모를 쓸쓸함이 느껴졌던 음악.

'교향곡 5번 4악장 아다지에토'

그래서 그에 대해 궁금하였습니다.

우연이었을까, 아니면 인연이었을까.

마침 이번 <클래식 클라우드>에서 '구스타프 말러'의 삶과 예술 공간을 찾아간다고 하니 그 발걸음에 저도 발을 맞추고자 하였습니다.

삶, 그 속되고 아름다운 것을 모두 포용한

구스타프 말러의 삶과 예술 공간

말러



말러 음악의 음향적 원천이 된 이홀라바에서부터 음악 인생의 정점을 찍은 빈을 거쳐 마지막 예술혼을 사른 뉴욕에 이르기까지.

그 여정이 웅장한 서사였고 음악처럼 진한 여운을 남기곤 하였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어디에서나 소외된 자의 운명적 고독이 묻어 있었던 구스타프 말러.

"나는 삼중으로 고향이 없는 사람이다. 오스트리아에서는 보헤미아인으로, 독일인들 사이에서는 오스트리아인으로, 세계에서는 유대인으로, 어디에서나 이방인이고 환영받지 못한다" - page 11 ~ 12

타고난 고독을 부정하거나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살지 않았던 그는 어린 시절부터 인적 드문 숲속에서 몽상에 잠기곤 하였습니다.

자연만이, 음악만이 온전한 자신만의 세계였던 말러.

그래서 말러의 음악은 여느 작곡가들과는 달랐습니다.

그는 세상의 선택을 받기 위해 음악을 만들지 않았다. 그는 당시 사회가 존중하던 형식을 지나치게 과장하거나 파괴했고, 촌부들의 세속적인 권주가 혹은 거리의 노래를 서슴없이 음악적 재료로 사용했다. 여기에서는 당시 고전음악을 듣던 부르주아들의 고상한 취향도, 세상을 향한 아부도 발견할 수 없다. 그랬기에 그가 생전에 작곡한 작품들은 사람들 사이에서 인정받지 못했다. - page 12

말러가 살던 시대는 '죽음'에 꽤 익숙하였습니다.

전쟁과 전염병이 삶을 갉아먹던 시절.

열네 명의 형제자매들 중 절반이 사망했을 만큼 죽음은 그의 가족 가까이에서 아른거렸고, 그런 가장 괴롭고 슬픈 상황 속에서 그가 살던 집 아래층 선술집으로부터 흥겨운 유행가 가락이 울려 퍼지는 정서 부조화의 순간을 비일비재하게 마주하게 됩니다.

죽음과 같은 가장 비극적인 순간에도 나와 상관없다는 듯 들려오는 웃음소리.

자신의 감정과 상관없이 돌아가는 세상을 자각한 그는 훗날 음악에 고스란히 담게 됩니다.

말러가 장송 행진곡과 죽음의 무도를 통해 바라본 죽음은 한 개인의 물리적 죽음이라기보다는 정신적 또는 사회적 죽음을 암시한다. 전쟁, 인종차별, 문화적 소외로 무의미해진 인간들에게 현실은 파편화되고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불우한 존재들의 사회적 죽음을 암시하는 말러의 장송 행진곡에서는 그러나 애도의 분위기를 전혀 느낄 수 없다. 대신 그들의 부당한 죽음에 시위하듯 저벅저벅 행진해 온다. - page 223

말러의 인생을 이야기하다 보면 빼놓을 수 없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알마 말러'.

말러 곁에서 영감과 조언을 아끼지 않은 이상적인 예술 조력자 알마는 '말러의 뮤즈'라 칭송할 수 있었고 그 역시도 자신의 음악을 헌정한 처음이자 마지막 인물이 알마 말러뿐이었습니다.

타고난 미모와 몸매, 그리고 적극적인 성격으로 사교계의 꽃으로 급부상했던 그녀.

스스로 유대인의 피를 물려받았으면서도 유대인을 혐오하는 자기모순에 빠졌으며, 유대인인 말러에 대해서도 처음에는 강한 혐오를 드러냈던 그녀.

뛰어난 음악성을 가지고도 보수적인 남편의 반대로 재능을 꽃피우지 못한 채 가정주부로 살아야 했던 그녀.

만약 말러와 결혼하지 않았다면 알마는 그녀의 소원대로 작곡가가 되어 '알마 신들러'라는 자신의 이름을 음악계에 남길 수 있었을까? 역사에 '만약'만큼 공허한 단어도 없지만, 지금 전해지는 알마의 악보는 그녀의 음악성을 가늠하기에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턱없이 부족하다. 1910년, 말러의 적극적인 격려 아래 출판된 그녀의 첫 가곡 악보집은 남편이 아내에게 보낸 화해의 징표였다. 아내와 그로피우스의 외도로 고통받던 작곡가는 그녀를 예술적으로 억압해서 벌어진 비극이라 자책했던 것 같다. - page 174

혼인 관계 중 불륜을 저지르며 말러에게 정서적 치명상을 입힌 그녀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볼 수도 있지만 죽은 자는 말이 없기에...

평생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도 기울지도 않은 채 자기만의 외길을 걸었던 말러.

그만의 독창적인 음악은 늘 바로 지금, 동시대의 소리로 치열하게 승화되어 울려 퍼져 왔습니다.

말러 음악의 동시대성, 아니 현재성을 최고의 희열과 더불어 감상할 수 있는 연주는 명반이 아닌 가장 가까운 공연장에서 벌어지는 실황 콘서트다. 수십 개의 악기가 동시에 소리를 터뜨릴 때 느껴지는 카타르시스와 무대와 객석 사이에서 벌어지는 예측불가능한 신성한 '화합'은 인공적인 음원으로 복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시끄러운 소음과 음악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외줄 타기를 하는 와중에 말러의 음악은 듣는 이는 물론 연주하는 이 하나하나의 인생에 저마다 진한 의미를 남기고, 추억을 빚어내며, 삶의 모순을 마주할 용기를 심어 준다. 가장 개인적이면서 동시에 가장 공동체적인 예술. 말러의 음악이 지닌 가치는 바로 그런 것이다. - page 316




부조화 속에서 피어난 그의 삶과 예술.

쓸쓸함과 고독이 마냥 처절하게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그는 고난 속 극복이 아닌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포용하였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그의 음악을 가만히 음미하며 사색의 시간을 가져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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