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살 터울의 딸과 아들을 둔 가정주부 '연정하'.
티격태격하는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힘겹기만 합니다.
무엇보다 일곱 살짜리 딸이 다섯 살짜리 남동생을 상대로 어른 노릇을 하는 것을 보면 든든하면서도 안쓰러운 그녀.
제 나이보다 조숙한 딸 덕분에 자신은 아들의 놀이 상대가 되어주긴 하지만...
아빠가 해 주었으면...
싱글맘도 아니고, 주말부부도 아닌데, 밤 시간에 꼭 홀로 있길 바란 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저 순수하리만큼 자신에게 관심이 없는 남편 '오원우'.
남편으로서뿐만 아니라 아빠로서의 역할도 제대로 하지 않는 그.
삑삑삑삑. 삐리릭. 쉬릭. 철커럭. 쉬리릭.
남편이 돌아왔다. 실눈이 떠졌다. 시간은 1시 58분. 잘났다, 이 인간아. 이제야 기어들어 오니? 아주 밖에서 처잘 것이지. 하루 종일 처자식이 뭘 하고 사는지 관심도 없지? 어휴, 여기까지만 하자. 너에게는 저주도 아깝다. - page 47 ~ 48
그런데...
웬일로 오랫동안 씻는 것이었습니다.
평소라면 밖에서 온갖 때를 묻히고 들어와서는 세수도 안 하고 덜컹대며 소변을 보고 양치도 안 하고 벌러덩 드러누워 코를 골며 곯아떨어질 남자가 한참을 뭔가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쏴아. 첨벙첨벙. 헉헉.
잠이 확 달아났다. 남편이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혹시 어디가 아픈가? 이른 나이에 심장마비라도 왔나? 아니다. 남편은 당황한 상태였다. 무슨 일인가 벌어졌다. 긴박한 어떤 일이. - page 49
피!
욕실에서 피 묻은 옷과 칼을 치우는 남편.
놀라움과 두려움 속 다음날 그녀는 집안에 어설프게 남아있던 흔적들을 치우기 시작합니다.
보름 전, 피범벅이 된 채로 돌아온 남편의 귀가 시간이 앞당겨졌었습니다.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그러다 뉴스에서 보도된 '호프집 살인 사건'.
왜인지 몰라도 쓱 스쳐 지나가듯 비춘 그 호프집의 정경을 본 순간, 이거다, 싶은 불안감이 다가왔습니다.
다음 날.
남편은 평소처럼 출근했고...
그리고 돌아오지 않았다.
남편이 사라진 지도 벌써 13년이 흐르고 이제는 실종 선고를 넘어선 사망 선고를 내려도 되는 시기가 지났습니다.
무자비하게, 바람처럼 지나간 세월.
그런 그녀에게 천천히 다가온 이가 있었으니 바로 비슷한 시기 아내를 자연사로 잃은 앞 동 남자 '최우성'.
"정말이야. 당신과 살 수 있다면 나는 무슨 짓이든 할 생각이었어. 얼마의 시간이 흐르든 어떤 일을 겪게 되든 무슨 짓이라도 저지를 각오를 하고 열심히 연구했지. 그리고 결국 꿈을 이루었어. 지금 당신과 한집에 있으니." - page 272
온갖 고생 끝에 만난 과분하지만 이상형의 완벽한 남자.
과연 이 모든 것은 우연이었을까 아니면 치밀한 계획이었을까?
'가족'이라는 명분하에 일어난 두 가족의 비밀이 펼쳐지기 시작하는데...
황량한 결혼.
그럼에도 가정을 지키고자 했던 그들.
그 모습을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던 아이들.
정하의 딸 하원이의 말이 참 가슴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엄마, 이제 좀 잊으라고요. 난 이제 겨우 행복해졌어. 엄마는 모를 거야. 집에만 오면 온몸이 젖은 솜처럼 무거웠어! 축 늘어져서 허공만 보고 있는 엄마, 아빠만 찾아대는 남동생. 그 틈에서 나는 엄마에게 언니처럼 굴어야 했고 동생한테는 엄마 노릇을 해야 됐어. 난 최우성 아저씨를 좋아한 적 없었어. 지금도 그래. 아저씨가 내 눈앞에서 죽는다고 해도 눈물 한 방울 안 나올 거야. 어차피 남인걸! 하지만 아저씨는 나에겐 구세주였어. 그 먹구름이 잔뜩 낀 집에서 벗어나게 해줄 구세주! 아저씨 덕분에 내 어깨는 조금 가벼워졌어. 난 아저씨가 엄마를 좋아해서, 그래서...... 엄마가 탐나서 아저씨가 아빠를 죽였다고 해도 상관없을 정도였어. 왜냐하면 아저씨는 최소한...... 엄마를 좋아하니까. 그것만으로 충분했거든. 엄마를 좋아하지도 않던 아빠보다는 아저씨가 더 나으니까! 아빠? 아빠 따위 필요 없어. 지금까지 우리끼리 잘 버텨왔어. 엄마도 이제 잊어버려요. 나를 위해서라도 제발 좀 행복해지라고!" - page 336 ~ 337
간신히 버텨왔다고 울부짖는 아이.
이제 현재를 살자고 외치는 이 아이를 바라보며 부모로서의 역할에 대해, 가족이란 의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 소설에서 전하고자 한 바는 이 이야기가 아닐까.
두 판의 퍼즐이 있고 우연히도 두 퍼즐이 각각 하나씩 일부를 잃어버렸다고 가정하자. 그렇다고 두 판의 퍼즐의 빈 부분끼리 딱 맞아서 한판의 퍼즐이 될 수는 없다. 모든 판을 뒤엎고 새로운 판 위에 퍼즐을 재배치해도 그 퍼즐 역시 완성이 될까 말까다. 앞 동 남자도 나도 인간이지 퍼즐이 아니었다. 완벽하게 맞아서 꽉 채워진 퍼즐의 판 같은 가정이 세상에 있기는 한 것일까. 그런 가정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결국 외부에서 볼 때만 '그렇게' 보일뿐이다. 가정의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은 아무도 모른다. - page 213 ~ 214
들여다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가족 이야기.
우리는 인간이기에 '완벽하게' 맞춰질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각기 다른 퍼즐에서 떨어져 나간 한 조각이 완벽하게 맞아들어갈 확률은 낮다. 그건 퍼즐 조각일 뿐이기 때문에 그렇다. 하지만 우성 씨와 나는 퍼즐 조각이 아닌 인간들이다. 인간이기에 상대방의 굴곡과 틈에 알맞게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다. -page 418
서로를 이해하고 맞춰나간다는 것.
그 과정 속에서 가족이 완성됨을, 저에게 가족에 대한 의미를 다시금 부여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