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죽을 거니까
우치다테 마키코 지음, 이지수 옮김 / 가나출판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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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제목을 붙여도 되는 걸까?!'

의문스러웠습니다.

 

알고보니 '우치다테 마키코' 작가분은 일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드라마 작가이자 소설가라고 하였습니다.

특히나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26만 부가 판매되었고 NHK 드라마로도 방영한다고 하니 매력적인 소설임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게 되었습니다.

 

"중요한 건 내면이 아니라 외면의 아름다움이다.

기미도, 주름도 아름답다고? 그럴 리 없잖아!"

 

1분마다 웃음이 터지는 시한폭탄 같은 소설

 

곧 죽을 거니까

 

 

책장을 펼치니...

살짝 움찔하게 되었습니다.

아니 불편하지만 당연한 사실을 받아들여야 함에...

 

나이를 먹으면 누구나 퇴화한다.

둔해진다.

허술해진다.

산뜻하지 못해진다.

어리석어진다.

외로움을 탄다.

동정받고 싶어 한다.

구두쇠가 된다.

어차피 '곧 죽을 거니까' 하게 된다. - page 9

 

절대 일흔여덟으로 보이지 않는, 길거리 캐스팅마저 당하는 그녀 하나씨.

스스로를 가꿔서 자신만만하게 동창회에 갈 수 있는 멋쟁이 그녀 곁엔 종이접기 외길로 도박도, 여자놀음도 하지 않는, 게다가 하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부끄러울 정도로 티내는 남편 이와조가 있습니다.

 

이와조를 바라보며 나이를 먹는다는 것에 회환을 느끼던 하나씨.

선잠이 든 이와조에게 차가워진 맥주를 들고 한 잔 하고파 흔들어 깨우지만 이상한 정적만이 감싸고...

 

"여보!"

나는 내 손바닥을 이와조의 코앞에 펼쳤다. 숨은 쉬는 걸까? 하지만 확실히 알 수 없었다. 의식은 없어 보였다. 움직이지 않는 편이 좋다. 어떤 근거도 없지만 그렇게 생각했다.

얼른 구급차를 불렀다. 그 사이 유키오에게 전화를 거는데 손가락이 떨린다.

"유키오, 아빠가 큰일났어, 큰일!"

목소리도 떨렸다. - page 117 ~ 118

 

갑작스럽게 숨을 거둔 이와조.

그가 죽고 닷새째부터 겨우 정상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하나는 그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에 의문의 사진을 발견하게 됩니다.

모리 가오리!

 

사진 속 잘생긴 이 남자.

과연 누구인가...?

그리고 생전에 유언장이니 유서니 하는 건 안 쓴다고 했던 이와조의 유언장이 등장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유언장을 본 순간

 

"그것도 봉투 겉에 '가정법원에서 열어주십시오'라고 아버지의 글씨로 쓰여 있어."

"가정법원? '이혼할 걸 그랬다'라고 쓰여 있는 거 아냐?"

나는 농담인 척 말했지만 목소리가 조금 날카로웠다.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이건 '자필 증서 유언'이라는 건데 본인이 직접 쓰면 된대. 공증인이 쓰는 거와는 달라. 그래도 쓰는 형식은 따로 있어서, 그걸 만족시키면 유언장으로서 효력을 가진대." - page 188

 

그동안 자신이 알던 이와조는 누구였단 말인가!

그렇게 숨겨졌던 비밀들이 하나둘 밝혀지면서 하나 씨의 삶에도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데...

하나 씨의 열혈 고군분투기가 그려지게 됩니다.

 

아무래도 드라마 작가라서 일까...

소설 속 인물들이 생생하게 그려지면서 독자들이 원하는 포인트를 정확하게 집어주었기에 읽으면서 왜 1분마다 웃음이 터지는 시한폭탄 같은 소설이라고 표현했는지를 몸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소설 속에서는 '나이 듦'에 대해, '노년'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해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냥 유쾌하지만은 않았던...

 

젊음이란 앞날에서 멋대로 빛을 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빛인데도 본인에게는 보이는 것이다.

나이를 먹고 알았다. 사람에게는 '지금'이 아니면 못 하는 일이 있다. 나이와 함께 그 일은 줄어든다. 해가 갈수록 움직이지 못하게 된다. 서른여섯과 서른일곱은 다르다. 서른여덟이 되면 더욱 다르다. 예순에서 일흔이 되는 것과 일흔에서 여든이 되는 것도 다르겠지. 여든에서 아흔이 되는 건 더욱 다를지도 모른다. - page 330

 

어차피 곧 죽는다고 해도 분명 아직 살아 있다. 게다가 '쇠퇴'를 수용하는 경지에 도달해봤자 할 일도 없고 할 수 있는 일도 없다. 이제까지와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그 경지에 도달할 필요도 없었던 걸까? 하지만 숨만 쉬며 하얀 상자를 기다릴 수는 없다. 앞날은 길다. 앞날이 없는데도 말이다. - page 360

 

특히나 반려자의 부재에 대한 하나 씨의 이야기가 참...

 

현역이라는 느낌 없이, 생산적인 일을 기대받지도 못하고 책임도 없다. 그런 예외적인 틀 안에서 살아있는 것이 여생일 테지.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채 숨을 들이쉬고 내쉬기를 계속한다. '적당한 시점에 죽고 싶다'고 바라는 건 당연하다.

사람은 질린다. 여행에도 취미에도 연애에도, 그리고 살아가는 데도. 나는 이제 쫓아가고 싶은 것도 없고, 쫓기는 일도 없고, 의무도 의욕도 없다. 죽기에 적당한 시기다. 할 일도 없고, 이와조도 없고, 질리기 시작했으니 슬슬 떠나는 편이 좋다.

그리 생각하며 아침 식사인 햄에그에 칼질을 했다.

손이 멈췄다.

왜 먹는 건가. 살고 싶어서겠지. 즐겁지도 않고, 바라는 것도 없고, 맛있다고도 느끼지 않고, 죽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하는데도 왜 먹나......

멋대로 눈물이 넘쳐흘렀다. 이와조가 죽고 나서 처음으로 울었다. 울면서 크게 입을 벌려 햄에그를 입 안 가득 넣었다. - page 145

 

울컥하게 되는 대목이었습니다.

누구나 언젠가는 겪게 될 일이기에...

 

마지막에 그려진 하나 씨의 모습.

그 누구보다 더없이 멋져 보였습니다.

 

 

소설 속에 자주 등장하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곧 죽을 거니까'

이 말이 오히려 제2의 인생이 시작되어 멋지게 살아갈 것이라는 당당한 다짐처럼 느껴지는 건 나만 그런 것일까......

 

'노년'과 '죽음'에 대해 보다 유쾌하게 접근할 수 있었던 이 소설.

무겁지 않았기에 더 이 주제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펼쳐질 하나 씨의 모습에 힘찬 박수를 건네봅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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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죽을 거니까
우치다테 마키코 지음, 이지수 옮김 / 가나출판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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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지게 나이 든 하나씨로부터 많은 걸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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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복수 주식회사
요나스 요나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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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이 소설 제목만 들어도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것입니다.

바로 '요나스 요나손' 작가.

 

독특한 개성을 가진 주인공의 파란만장한 모험담!

그 속에 담긴 유쾌! 통쾌!

그의 소설을 한 번도 안 읽은 사람은 있을지언정 한 번만 읽은 사람은 없을 거라 생각됩니다.

 

이번 다섯 번째 그의 소설.

또다시 흥분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제목에서 '복수'라는 말이 등장했다는 것부터 심상치 않음을...

 

이 우울한 코로나 시대에

가장 큰 유쾌함을 안겨 주는 소설!

- 라이니셰 포스트

 

이 소설은 읽어야만 했습니다.

 

법을 어기지 않고 복수할 필요가 있으십니까?

우리가 해결해 드립니다!

 

달콤한 복수 주식회사

 

 

케냐 사바나의 외딴 마을에 사는 치유사.

부친과 조부의 이름과 부와 명성과 재능을 물려받은 소 올레 음바티안.

이 이야기는 바로 이 사람, 소 올레 음바티안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전에 주목해야 할 인물이 등장합니다.

빅토르 알데르헤임

 

혼자인 스무 살 청년은 아무에게도 빚진 게 없었다. 그는 싸워서 정상까지 올라간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 정상에 서서 자신의 <사려 없음>을 활짝 꽃피우리라.

시간이 좀 걸려도 상관없었고, 다른 사람들이 희생된다 해도 조금도 문제 되지 않았다. 또 충분히 높기만 하다면 그게 어떤 정상이든 상관없었다. - page 25

 

정상 등반을 위해 스톡홀름에서 가장 명성 높은 미술 갤러리에 취직한 그.

돈과 권력과 지위를 얻기 위해 갤러리 주인 알데르헤임에게 찰싹 같이 붙고 결국 그의 딸 옌뉘와 결혼함으로써 그 집안의 모든 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듭니다.

 

이렇게 모든 게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었지만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과거에 만났던 매춘부 중 하나로부터 날벼락이 떨어지게 됩니다.

 

「얘 이름은 케빈이야.」 그녀가 말했다.

「그래서?」 빅토르가 반문했다.

여자는 소년에게 밖에 나가 잠시 기다리고 있으라고 했다. 소년이 대화를 들을 수 없는 곳으로 가자 그녀가 말했다.

 「저 애는 당신 아들이야.」

 「뭐? 내 아들? 빌어먹을, 저 녀석은 흑인이잖아?」

 「내 얼굴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거야.」 - page 30

 

자신의 앞길을 망칠 것 같은 케빈이란 존재를 없애려고 참으로 매정한 일을 벌이게 됩니다.

열여덟 살이 된 케빈을 케냐 사바나의 마사이마라에 내려놓고는 유유히 떠납니다.

 

「야, 너무 걱정하지 마! 넌 여기서 잘 지낼 거다. 네 DNA는 이곳에 맞아.」

「하지만 아빠는......」

 「나도 아주 잘 지낼 거야!」 빅토르는 이렇게 말하고 떠나 버렸다. - page 41

 

사자밥이 될 케빈.

하지만 하늘의 계시일까!

올레 음바티안의 구조를 받아 그의 양아들이 되어 마사이 전사로 거듭되고!

마지막 성인식의 할례를 앞두고 올레 음바티안의 집에서 그림 두 점을 가지고 예전에 자신이 살던 곳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한편 아들 문제는 해결되었고...

알데르헤임이 죽자마자 옌뉘에게 각종 서류-옌뉘의 재산도 자신이 가로채기 위해, 결국 그녀는 빈털터리가 되는-를 들이밀며 사인을 요구했고 결국 그녀와 이혼을 하며 그토록 자신이 바라던 돈, 권력, 지위를 모두 갖추게 된 빅토르.

 

자!

이제 복수할 상대가 누구인지, 그리고 누가 복수하고 싶은지는 알게 되었고...

 

천재적인 광고맨 후고 함린이 등장하게 됩니다.

지금 회사에서 하는 일이 갈수록 흥이 나지 않던 그는 새로운 일을 꿈꾸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달콤한 복수 주식회사'.

 

자신 역시도 이웃으로부터 불편을 얻어 '복수'를 꿈꾸었기에 보다 많은 이들이 의뢰를 할 것으로 생각을 하고 순조롭게 일을 하던 찰나!

그에게 두 사람이 찾아오게 됩니다.

바로 케빈과 옌뉘.

이들은 사악한 빅토르에게 복수를 꿈꾸게 되는데...

과연 이들의 복수는 제대로 이루어질지...

 

소설은 케냐와 스웨덴을 넘나들며 '복수'란 키워드로 짜릿함을 선사해주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이번 소설을 통해서 표현주의 미술의 숨겨진 거장 '이르마 스턴'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프리카 풍경과 여인들의 초상을 그린 화가.

나중에 그녀의 이야기를 찾아봐야겠습니다.

 

소설을 읽으면서 '복수'의 모습이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가 아닌

'눈에는 눈들, 이에는 이들'

의 모습이라 우리의 모습을 직면하게 되니 조금은 씁쓸함이 남았습니다.

 

그리고 저자는 우리에게 넌지시 알려주었습니다.

 

하지만 그 일을 하는 게 정말 그렇게 재미있을까? 복수는 성장 가능성이 큰 비즈니스라는 사실을 후고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만일 누군가가 누군가의 발을 밟게 되면, 밟힌 사람은 밟은 사람이 발 전체를 잃어야 마땅하다고 느낀다. 그다음에는 발이 없게 된 사람이 그렇게 만든 사람의 머리가 날아가기를 원한다. 이 모든 것은 분명히 돈을 가져다줄 수는 있었지만 더 나은 세계를 위한 의미 있는 기여라고 할 수는 없었다. 사실은 맛나 풍미의 마멀레이드만큼도 의미 있지 못했다. - page 463

 

복수를 실행하는 것보다 계획하는 편이 훨씬 더 짜릿한 복수가 될 수 있음을 일러준 이 소설.

우리의 지친 일상 속에 요나손의 통쾌한 복수에 잠시나마 청량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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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기도가 될 때 - 수도원에서 띄우는 빛과 영성의 그림 이야기
장요세파 수녀 지음 / 파람북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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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유독 힘겨운 날들이 많았습니다.

개인적으로 병이 나서 지금까지도, 아니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약을 먹어야 하는 신세가 되었고 그 누구보다 건강하셨던 아버지도 갑작스레 아프셔서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하였습니다.

다시 아버지는 건강을 회복하셨지만...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쳤었습니다.

위로를 받고 싶었고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기적이게도 신에게 기대기도 하였습니다.

 

이 책을 보자마자 마음이 끌렸습니다.

 

"그림 앞에 서면 눈이 환해집니다. 침침했던 눈에서 무엇인가 걷히면서 보이지 않던 것이 보입니다. 그림은 제 눈이 어두워 보지 못하고, 제 몸이 무거워 들어가지 못했던 신비의 세계를 열어줍니다. 생명, 자유, 용서, 사랑, 초월적인 것, 인간의 내면을 표현하는 것, 종교적인 것들을 표현하는 그림들은 가만히 있는 저를 잡아당겨 세웁니다. 우선 화가의 삶이 그 안에 녹아 있고, 더 들어가면 화가 자신마저 넘어 저 먼 어떤 것, 인간의 눈에 희미한 어떤 것 혹은 실재가 우리 앞에 턱 놓이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이것은 어설픈 종교체험보다 훨씬 강렬하게 인간을 초월적 실재 앞에 놓아줍니다. 더욱이 형식적인 예배, 틀에 박힌 기복적 기도로는 가까이 가보지도 못할 세계를 열어줍니다."

 

잠시 그림에, 수녀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내면에 드리운 어둠의 장막을 열어젖히는 그림,

마침내 빛의 세계로 이끄는 언어의 매혹과 신비!

 

그림이 기도가 될 때

 

 

저는 이 책을 읽을 때 가족 모두가 잠든 밤에 스탠드 불빛 아래에서 읽어내려갔습니다.

어둠 속에 불빛뿐만 아니라 수녀님의 말씀이, 그림이 또 다른 빛으로 다가와 저를 감싸준 느낌은 너무나 따스하고도 포근하였습니다.

'묵상'하면서 읽게 된 이 책.

그냥 '좋다'라는 표현밖에 못한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었습니다.

 

장 프랑수아 밀레의 <만종>.

사랑하는 아이의 시신 앞에 선 그들의 한없는 고요함 속에 느껴지는 고통의 깊이.

그 깊은 고통 속에서 이 부부 뒤로 보이는 풍경은 더없이 삶의 잔인함과 처연함을 표현하고 그럼에도 무너지지 않는 그 무엇.

 

황량한 들과 우뚝 서 있으나 기도로 꼭 잡은 손, 저 멀리 작게 그려진 종탑은 어울리지 않는 듯 어울리며 삶의 잔인함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그 무엇을 말해줍니다. 고통 속에서의 평화! 이 고요함 속에 불보다 더 뜨거운 열정이 피부로 전해져 옵니다. 그 큰 고통마저 녹이는 불, 깊어가는 저녁, 깊어가는 겨울에도 꺼지지 않는 내면의 불을 지닌 이들이 있습니다. 고통은 이들에게 이 불을 끄는 찬물이 아니라 불을 더 타오르게 하는 기름이 됩니다. - page 46 ~ 47

 

저도 이 그림을 보면서 마냥 숙연해졌습니다.

 

그리고 인상적이었던 저 무심한 눈빛!

 

 

아기의 얼굴은 침 뱉음과 모욕, 채찍질을 당한 수난받는 종의 모습입니다. 엄마의 맑고 투명한 피부와 대조적으로 아기는 얼룩덜룩 흉하기 그지없습니다. 그 아들은 어머니를 두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습니다. 죽음도 생명도 아들의 넘어감마저도 받아낸, 아니 함께 죽고 함께 살아난 그 눈에는 모든 것이 담겨 있습니다. 그 넉넉함에는 죽음과 삶의 경계조차 없어져 삶이 곧 죽음이요, 죽음이 삶으로 이어지는 수렴과 통합의 마지막을 보는 듯합니다. 네 것도 나의 것, 나의 것은 물론 나의 것! 이런 논리로 복닥거리는 이 삶의 진흙탕에서 어느 날 이런 눈빛을 만난다는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겠습니다. - page 99 ~ 100

 

이것이냐 저것이냐가 아니라 사랑의 통합을 보게 해 준 이 작품.

자꾸만 저 눈빛에 기대게 됩니다.

 

그리고 지금의 우리에게 일침을 가한 작품.

 

누가 피고인지 원고인지 구별하기 힘든 이 그림.

이 그림은 2009년 우리에게서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용산참사'

평생 일군 모든 것을 빼앗기게 된 이들이 자신의 것을 지키고자 했던 것이 화근이 되어 결국 궁지에 몰리고 화재로 사상자가 발생했던 이 사건.

 

일생 모든 것을 바쳐 키워온 가족의 삶의 바탕을 다 잃게 된 수많은 이들, 그리고 그 대신에 들어설 고급 아파트, 이들은 대체 누구를 위해 자신의 일생을 희생해야 하는 것일까요? 국가 공공기관들은 거짓과 술수로 이들의 희생을 사회 안에 묻어버리고자 합니다. 경찰과 공무원들은 누구르 위해 거짓과 사기, 음모마저도 서슴지 않는 것일까요? 거대기업들은 공공기관 뒤에 숨어 모습조차 드러내지 않습니다. 앞에선 공무원, 국가 고위관리들이 삶의 막바지로 몰린 이들을 불도저로 밀어내면 거대기업들은 고급아파트를 지어 편안한 주택을 공급하고 명성과 부를 함께 얻습니다. 경찰은 여기서 마지막 뒤치다꺼리를 합니다. 법정이 열렸습니다. 판사와 검사, 피고들, 변호사들, 증인들!

누가 과연 피고인가요? - page 133

 

우리는 그들을 위해 어떠했는지...

이들을 짓밟고 생명을 앗아간 세상이, 우리들의 모습이 무섭고도 슬프게만 느껴집니다.

 

이 조각작품처럼 되고 싶었습니다.

참 편안해 보이는 <앉아 있는 소녀>.

 

이 작품에서 가장 핵심은 소녀의 경청하는 자세입니다. 손에 귀를 대는 자세가 이미 보여주지만 온몸으로 듣고 있습니다. 표정 또한 절묘합니다. 그지없이 오롯합니다. 쉼을 그저 노는 것으로 보는 것은 우리 인식 안의 오류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저렇게 듣는 자세라면 온갖 일에 둘러싸여 있어도 그 사람은 편히 쉴 수 있습니다.

즉 경청이 문제나 사건 앞에 유일하지는 않더라도 참된 해결책이 됩니다. 일단 들을 자세가 되면 사건 자체를 해결하지 못한다고 해도, 그 사건이 내 인생에서 지니는 의미를 발견할 수 있게 됩니다. - page 231

 

오롯이 그리고 고요히 무언가에 귀를 기울이는 이 소녀처럼 '내려놓음'과 '편안함'.

지금의 저에게 필요한 자세였습니다.

 

그동안은 작품을 대할 때 '화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곤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깊고 묵직하게 종교적 관점에서 우리의 삶과 연관 지어 바라보게 되니 삶을 대하는 자세를, 치유의 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수도원에서 온 그림 편지.

잠들기 전에 하나씩 꺼내 읽어보면서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해보는 것은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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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09-07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따뜻하고 좋은 글.~ 그림을 보면 치유도 되고 위로도 받는 것 같아요. 페넬로페님 아프지 마세요 ~ 저도 마음의 평화가 필요합니다. 이 책 장바구니에 *^^* 고맙습니다 ~~
 
어떻게 지내요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정소영 옮김 / 엘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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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부를 묻는 이 말...

 

그래서 이 책을 덥썩 집어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기 전 소개글을 읽어보니 그리 다정하게 들리지는 않았습니다.

죽음을 앞둔 친구와의 여행이라는 소재.

여기서 '죽음'이란 단어가 참으로 묵직하게 다가옵니다.

그들의 여정을 통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무엇일지...

 

"내게 필요한 건

나와 함께 있어줄

사람이야"

 

어떻게 지내요』 

 

 

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은 친구.

그 친구는 딸과는 소원하게 지내는 중이고 치료는 실패했고, 암이 전이되었다고...

그리고 덧붙인 말은

 

잘 죽기. 그게 무슨 뜻인지는 다들 알아. 고통 없이, 아니면 적어도 극심한 고통으로 몸부림치지 않는 것. 침착하게 약간의 품위를 지키며 가는 거지. 깔끔하고 산뜻하게. 하지만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나나? 사실 자주 있지 않아. 왜 그럴까? 그게 왜 그렇게 무리한 요구일까? - page 89

 

그렇게 친구는 자신의 죽음을 무던하게 받아들이면서 자신과 함께 여행을 떠나자는 제안을 합니다.

안락사 여행...

 

의사가 대놓고 말하는 때가, 정말로 듣고 싶은 게 그런 거라면 말이야, 곧 찾아와. 불치. 수술 불가능. 말기. 나는 치명적이라는 표현이 더 좋아. 아무도 그 말을 쓰지는 않지만. 치명적이란 말 좋잖아. 말기라는 말을 들으면 버스 터미널이 떠오르고 그러면 매연과 가출 청소년을 찾아 서성대는 으스스한 남자들이 생각난다고. 다시 하던 얘기로 돌아오면, 내가 다 조사해봤어. 그냥 내버려두면 어떤 상황을 겪을지 알아. 완화 치료라는 것도 딱 그만큼이야. 점점 상태가 악화되어 결국 혼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할 때까지 호스피스에 들어가 있을 필요가 뭐가 있는지도 모르겠고. 이것이 싸우는 내 나름의 방식이라는 걸 사람들도 이해해야 해. 내가 먼저 나를 없애버리면 암이 나를 없앨 수 없을 테니까. 그리고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데 기다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이 모두를 이해하고 내 편이 되겠다고 약속해줄 사람, 내가 잠든 사이에 약을 변기에 넣고 내려버리는 그런 멍청한 짓은 하지 않을 사람이야. - page 133

 

친구를 통해서 '죽음'에 대해, 특히나 '안락사'에 대한 태도를 바라보며 독자들에게 넌지시 질문을 던지고 있었습니다.

당신에게 '죽음'이란 어떤 의미인지...

 

참으로 무덤덤하게 써 내려간 글.

그래서 더 그 의미를 깊게 새길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친구의 이야기를 통해, 그 친구를 바라보던 '나'의 이야기에서, 그리고 이 둘을 바라보는 독자인 '나'의 이야기로 오롯이 새겨졌습니다.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고 또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죽음'.

태어났기에 언젠가 죽는 것은 당연한 이치일 테지만...

그렇다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다 고통 없이 죽게 되면 좋겠지만...

 

그래서 '안락사'에 대해 또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죽음 앞에서 인간으로의 윤리를 따져야 할 것인지, 개인의 존엄성을 인정해야 할 것인지...

'나'라면 안락사를 원하지만 내가 아닌 '가족'들에겐 원치 않은 안락사임에...

딱히 정의 내릴 수 없음에 여전히 마침표를 찍지 못하고 남겨두게 되었습니다.

 

'죽음'을 앞에 두고서야 비로소 보게 되는 삶을 살아가야할 자세들...

이 이야기가 여느 이야기보다 가슴에 남았습니다.

 

솔직히 이 소설을 읽고 난 뒤 풀 수 없는, 하지만 언젠간 한 번은 풀어야 할 숙제를 받은 것 같아서 힘겨웠었습니다.

그렇기에 더 이 소설을 읽고 또 읽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책의 제목처럼 '어떻게 지내요'란 이 말이 자꾸만 입가에 맴돌게 되는...

하지만 그 의미를 다시금 새겨봅니다.

 

어떻게 지내요? 이렇게 물을 수 있는 것이 곧 이웃에 대한 사랑의 진정한 의미라고 썼을 때 시몬 베유는 자신의 모어인 프랑스어를 사용했다. 그리고 프랑스어로는 그 위대한 질문이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무엇으로 고통받고 있나요Quel est ton tourment? - page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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