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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죽을 거니까
우치다테 마키코 지음, 이지수 옮김 / 가나출판사 / 2021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렇게 제목을 붙여도 되는 걸까?!'
의문스러웠습니다.
알고보니 '우치다테 마키코' 작가분은 일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드라마 작가이자 소설가라고 하였습니다.
특히나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26만 부가 판매되었고 NHK 드라마로도 방영한다고 하니 매력적인 소설임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게 되었습니다.
"중요한 건 내면이 아니라 외면의 아름다움이다.
기미도, 주름도 아름답다고? 그럴 리 없잖아!"
1분마다 웃음이 터지는 시한폭탄 같은 소설
『곧 죽을 거니까』

책장을 펼치니...
살짝 움찔하게 되었습니다.
아니 불편하지만 당연한 사실을 받아들여야 함에...
나이를 먹으면 누구나 퇴화한다.
둔해진다.
허술해진다.
산뜻하지 못해진다.
어리석어진다.
외로움을 탄다.
동정받고 싶어 한다.
구두쇠가 된다.
어차피 '곧 죽을 거니까' 하게 된다. - page 9
절대 일흔여덟으로 보이지 않는, 길거리 캐스팅마저 당하는 그녀 하나씨.
스스로를 가꿔서 자신만만하게 동창회에 갈 수 있는 멋쟁이 그녀 곁엔 종이접기 외길로 도박도, 여자놀음도 하지 않는, 게다가 하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부끄러울 정도로 티내는 남편 이와조가 있습니다.
이와조를 바라보며 나이를 먹는다는 것에 회환을 느끼던 하나씨.
선잠이 든 이와조에게 차가워진 맥주를 들고 한 잔 하고파 흔들어 깨우지만 이상한 정적만이 감싸고...
"여보!"
나는 내 손바닥을 이와조의 코앞에 펼쳤다. 숨은 쉬는 걸까? 하지만 확실히 알 수 없었다. 의식은 없어 보였다. 움직이지 않는 편이 좋다. 어떤 근거도 없지만 그렇게 생각했다.
얼른 구급차를 불렀다. 그 사이 유키오에게 전화를 거는데 손가락이 떨린다.
"유키오, 아빠가 큰일났어, 큰일!"
목소리도 떨렸다. - page 117 ~ 118
갑작스럽게 숨을 거둔 이와조.
그가 죽고 닷새째부터 겨우 정상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하나는 그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에 의문의 사진을 발견하게 됩니다.
모리 가오리!
사진 속 잘생긴 이 남자.
과연 누구인가...?
그리고 생전에 유언장이니 유서니 하는 건 안 쓴다고 했던 이와조의 유언장이 등장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유언장을 본 순간
"그것도 봉투 겉에 '가정법원에서 열어주십시오'라고 아버지의 글씨로 쓰여 있어."
"가정법원? '이혼할 걸 그랬다'라고 쓰여 있는 거 아냐?"
나는 농담인 척 말했지만 목소리가 조금 날카로웠다.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이건 '자필 증서 유언'이라는 건데 본인이 직접 쓰면 된대. 공증인이 쓰는 거와는 달라. 그래도 쓰는 형식은 따로 있어서, 그걸 만족시키면 유언장으로서 효력을 가진대." - page 188
그동안 자신이 알던 이와조는 누구였단 말인가!
그렇게 숨겨졌던 비밀들이 하나둘 밝혀지면서 하나 씨의 삶에도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데...
하나 씨의 열혈 고군분투기가 그려지게 됩니다.
아무래도 드라마 작가라서 일까...
소설 속 인물들이 생생하게 그려지면서 독자들이 원하는 포인트를 정확하게 집어주었기에 읽으면서 왜 1분마다 웃음이 터지는 시한폭탄 같은 소설이라고 표현했는지를 몸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소설 속에서는 '나이 듦'에 대해, '노년'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해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냥 유쾌하지만은 않았던...
젊음이란 앞날에서 멋대로 빛을 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빛인데도 본인에게는 보이는 것이다.
나이를 먹고 알았다. 사람에게는 '지금'이 아니면 못 하는 일이 있다. 나이와 함께 그 일은 줄어든다. 해가 갈수록 움직이지 못하게 된다. 서른여섯과 서른일곱은 다르다. 서른여덟이 되면 더욱 다르다. 예순에서 일흔이 되는 것과 일흔에서 여든이 되는 것도 다르겠지. 여든에서 아흔이 되는 건 더욱 다를지도 모른다. - page 330
어차피 곧 죽는다고 해도 분명 아직 살아 있다. 게다가 '쇠퇴'를 수용하는 경지에 도달해봤자 할 일도 없고 할 수 있는 일도 없다. 이제까지와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그 경지에 도달할 필요도 없었던 걸까? 하지만 숨만 쉬며 하얀 상자를 기다릴 수는 없다. 앞날은 길다. 앞날이 없는데도 말이다. - page 360
특히나 반려자의 부재에 대한 하나 씨의 이야기가 참...
현역이라는 느낌 없이, 생산적인 일을 기대받지도 못하고 책임도 없다. 그런 예외적인 틀 안에서 살아있는 것이 여생일 테지.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채 숨을 들이쉬고 내쉬기를 계속한다. '적당한 시점에 죽고 싶다'고 바라는 건 당연하다.
사람은 질린다. 여행에도 취미에도 연애에도, 그리고 살아가는 데도. 나는 이제 쫓아가고 싶은 것도 없고, 쫓기는 일도 없고, 의무도 의욕도 없다. 죽기에 적당한 시기다. 할 일도 없고, 이와조도 없고, 질리기 시작했으니 슬슬 떠나는 편이 좋다.
그리 생각하며 아침 식사인 햄에그에 칼질을 했다.
손이 멈췄다.
왜 먹는 건가. 살고 싶어서겠지. 즐겁지도 않고, 바라는 것도 없고, 맛있다고도 느끼지 않고, 죽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하는데도 왜 먹나......
멋대로 눈물이 넘쳐흘렀다. 이와조가 죽고 나서 처음으로 울었다. 울면서 크게 입을 벌려 햄에그를 입 안 가득 넣었다. - page 145
울컥하게 되는 대목이었습니다.
누구나 언젠가는 겪게 될 일이기에...
마지막에 그려진 하나 씨의 모습.
그 누구보다 더없이 멋져 보였습니다.

소설 속에 자주 등장하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곧 죽을 거니까'
이 말이 오히려 제2의 인생이 시작되어 멋지게 살아갈 것이라는 당당한 다짐처럼 느껴지는 건 나만 그런 것일까......
'노년'과 '죽음'에 대해 보다 유쾌하게 접근할 수 있었던 이 소설.
무겁지 않았기에 더 이 주제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펼쳐질 하나 씨의 모습에 힘찬 박수를 건네봅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