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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의 일 (양장)
이현 지음 / 창비 / 2022년 1월
평점 :
'블라인드 서평단'
출간 전 먼저 만나볼 수 있는, 무엇보다 이 소설의 작가가 비밀이라는 사실에 궁금증이 더해지면서 설레었습니다.
누구나 겪게 되는 '사춘기'.
그때의 나는 어땠는지 새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질풍노도의 시기답게 많이도 방황하곤 했었는데...
이 소설 속 인물들은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낼지...
"그때 우리는 온통 흔들리고 있었다"
얼어붙은 사춘기, 끝내 맞이하는 성장과 치유
『아몬드』, 『유원』을 잇는 눈부신 성장소설
『호수의 일』

내 마음은 얼어붙은 호수와 같아 나는 몹시 안전했다. - page 7
진주, 호정이와는 아홉 살 차이가 나는, 도무지 겁나는 게 없는 아이.
그런 진주에게 세상은 새로운 것으로 가득 찬 놀이동산일 것입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이유가 없겠지만...
진주의 여덟 살 생일을 맞아 가족은 호수로 놀러 가게 됩니다.
얼어붙은 호수에 썰매를 타자고 하지만 썩 내키지 않는 호정.
그건 아마도...
정말이지 기억이란 뒤죽박죽인 서랍과 같다. 정작 필요한 건 보이지 않고 쓸데없는 것들만 어지럽다. 그러다 불쑥, 잊고 있던 일들이, 잊고 싶었던 것들이 튀어나오기도 하고. 가끔은 소중히 간직해 둔 것을 발견하기도 한다.
어쩌면 호수는 그 기억 옆에 있어서 눈에 띈 건지도 모르겠다. 혹은 그날이 호수 옆에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고. - page 20 ~ 21
담임인 이라진 선생님 교실에서 조회를 기다리던 때였습니다.
라진 샘이 교실로 들어오고 있었는데,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이 친구는 강은기야." - page 23
라진 샘이 한마디 인사말을 하라고 해도 웃으며 고개만 꾸벅하던 전학생.
이 전학생의 등장으로부터 본격적인 그들의 이야기가 펼쳐지게 됩니다.
은기와 조금씩 가까워진 호정.
우연찮게 은기의 주민 등록증을 보게 됩니다.
아직 발급받을 나이가 아닌데 은기는 왜...?
그렇다고 은기에게 직접 물어보지도 못하는 호정.
그러다 은기의 속사정을 알게 되고 그 사정이 친구들 사이에 퍼지게 된 원인이 자신이었음에 충격을 받게 됩니다.
사실 호정은 어릴 적 할머니 손에서 자랐습니다.
그녀가 태어났을 때 엄마 아빠는 꽤 잘되는 태권도장을 운영하였고 누군가의 제안으로 중국에 태권도장 체인을 내기로 했다가 전재산을 넘어 할머니 재산까지 쏟아부었는데...
일곱 살 한밤중.
어둠 속에서 들여왔던 말, 격렬한 말들은 그녀에게 상처로 남게 됩니다.
그때 나는 알았다. 그냥 알았다. 그들은 나의 엄마 아빠 때문에 큰 피해를 봤다. 엄마 아빠를 미워하거나 적어도 원망했다. 그보다 더한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 아빠는 할머니 댁에 거의 오지 않았고, 나는 내내 거기 있어야 했다.
오갈 데 없는 채, 내 부모에 대한 원망이 가득한 곳에.
그게 그렇게 화나는 일이었을까? 삼촌과 고모를 만나면 문득문득 치밀어 오른다. 장남이라고 혜택만 입다가 결국 동생들 몫까지 다 날려 버린 형, 오빠. 나라도 화가 났을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적어도 당신들은 어른이었잖아. - page 138
다시 돌아온 엄마와 아빠는 만두가게를 하면서 동생 진주도 태어나고 함께 같이 살게 됩니다.
그건 바로 초등학교 3학년 때.
전학하고 얼마 안 되어서 자기 딴에는 친구들이랑 친해지기 위해 애들을 엄마 아빠의 만두 가게에 데려가는데 아빠는 무섭게 눈을 부라리며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 입을 다물고 주방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엄마도 어색하기 짝이 없는 웃음을 지으며 집에 가서 놀아, 하며 호정을 슬쩍 흘겨봅니다.
나는 꼼짝없이 서 있었다. 고집을 부렸던 게 아니다.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대로 사라지고 싶었다. 도대체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눈앞이 캄캄했다. 얼마나 그렇게 서 있었나 모르겠다. 엄마가 내 손목을 잡고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 page 166
그렇게 상처들은 곯고 곯아서 터지게 됩니다.
내가 왜 이런 인간인지 모르겠다. 도저히 모르겠다.
나는, 나를, 내가.
자고 싶었지만 머리가 터질 듯했고, 정신을 차리고 싶었지만 머릿속이 미세 먼지 가득한 하늘처럼 부옜다. 나는 그저 눈을 감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어둠보다 더한 어둠 속에서, 아침이 되도록 어둠 속에서. - page 246
너무 많은 생각들이 한꺼번에 들끓고 있었다. 나도 미처 몰랐던 생각들, 있는 줄도 몰랐던 마음들. 패닉에 빠져 출구로 한꺼번에 몰려가는 미친 군중 같은 생각들. 혼란의 현장에서 압사로 인한 피해자가 속출했습니다. - page 251
결국 그 상처는 그녀를 고요한 세계 속으로, 어떤 소음도 기억도 마음도 무거움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그런 곳으로 데려가게 됩니다.
다시 돌아온 세상.
그녀는 조심스럽지만 조금씩 상처로부터 치유를 하게 됩니다.
그리곤...

읽으면서 그때의 나에게, 지금의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하였습니다.
나는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았을까...
이 가슴 찡함이 남아 제 속에 있던 상처들도 어루만져 주고 있었습니다.
인상적인 문구들이 있었습니다.

인간은 어째서 모르면 좋은 것을 그냥 덮어 두지 못할까. - page 210
마음의 상처도 눈에 보이면 좋겠다. 그러면 어디를 어떻게 다쳤는지 볼 수 있을 텐데. 곪아 가고 있다는 것도, 아물어 가고 있다는 것도. 상처는 결국 흉터가 되겠지. 이따금 흉터로 인해 상처의 기억이 되살아나겠지만,, 그래도 더 이상 아프지는 않겠지. - page 334
이렇게 방황하고 상처받고 그러면서 일어날 수 있는 건 혼자가 아니기에, 그리고 우리에겐 잠재된 치유의 능력이 있기에 성장하게 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일 겁니다.
이 소설 덕분에 그 시절 그 마음을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소설의 주인공인 호정이에게 응원의 박수를 건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