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말 많은 미술관 - 미술관만 가면 말문이 막히는 당신을 위한
정시몬 지음 / 부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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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날이 좋은 날이면 미술관에 가 멋진 작품들을 감상하는 시간을 가져보고 싶지만...

말처럼 쉽게 하지는 못하고...

아쉬운 마음에 책을 찾아 기웃거리다.... 발견!

다가가기 어려웠던 미술과 비로소 '대화의 물꼬'를 트게 해 줄 책!

이 문장만으로도 미술을 좋아하는 저에게는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미술관 특유의 경직된 분위기에 괜히 주눅 들어요.

유럽에 가면 미술관 한 번쯤 가보고 싶은데 미술은 영 몰라서...

내가 작품을 잘 이해한 게 맞나 싶어요.

미술은 너무 어려워요.

누구에게나, 아니 미술은 좋아하지만 여전히 삐죽거리게 되는 저에게 딱! 이었습니다.

이제 좀 친해져 볼까나?!

알면 알수록 수다스러운

미술과 나누는 격의 없는 대화

할 말 많은 미술관



"지구가 멸망할 때 단 하나의 미술품을 구해 낼 수 있다면 무엇을 고를 것인가?"

이 질문에 세계 유명 인사들은 저마다 다른 답을 했다고 합니다.

그중에서도 인상적인 프랑스 시인 장 콕토의 이야기.

"스페인의 유명한 프라도 미술관이 불길에 휩싸인다면 무엇을 건져 낼 것인가?"라는 질문에 "불길"이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불길만 건져 낸다면 프라도의 보물 가운데 어느 하나를 고를 필요도 없이 모두 무사할 수 있기 때문에.

스페인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는 한술 더 떠서 "산소"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미술품을 지키겠다는 마음을 엿볼 수 있는데...

하지만 저자는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얀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고리 소녀>를 뽑았습니다.

어린 시절, 집에 있던 세계 미술화집에서 페르메이르의 그림들을 처음 보았을 때 이게 대체 그림인지 사진인지 긴가민가했던 경험이, 정말로 사람이 손에 붓을 쥐고 움직여 만들어 낸 결과물이라는 것이 선뜻 믿어지지 않았기에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고는 우리에게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지구가 멸망할 때 단 하나의 미술품을 가지고 우주선 한 편에 몸을 실어야 한다면...?

이 질문에 망설이지 주저하는 게 사실이었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우선 미술에 '가볍게' 접근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특별한 미술 지식을 갖추지 않더라도 그저 좋아하는 작품 하나쯤 품겠다는 마음으로 저자가 직접 경험한 '말이 넘치는' 미술관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었습니다.

루브르, 오르세, 오랑주리, 내셔널 갤러리, 우피치, 아카데미아, 바티칸.

이렇게 서로 다른 매력을 지닌 7곳의 유렵 미술관으로의 방문이 시작되었습니다.

책의 구성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방문하게 된 미술관.



그리고 매력적인 작품들에 대해 저자 특유의 솔직한 감상이 더해져 있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좋았습니다.

작품의 말미마다 짧은 감상을 남긴 P.S.

이것이 더 작품과 작가와 저와 친밀해지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까!



저자가 <진주 귀걸이 소녀> 뽑은 것처럼 모두가 좋다고 하는 것 말고 자신만의 '취향'을 갖고 있다는 점을 엿볼 수 있었고 또 그 점이 너무나 부러웠습니다.

다빈치의 <모나리자>.

너도나도 이 작품을 보기 위해 루브르 박물관을 찾아오고 실제 저도 이 작품을 보았었는데...

그때의 나도 굳이 왜 저 작은 작품을 보기 위해 혼란스러운 인파 속에서 아둥바둥거려야 하는지, 보고 나서도 큰 감흥이 남지는 않았었는데...

저자는 오히려 다빈치의 다른 그림에 눈길이 갔다고 했습니다.

<암굴의 성모>와 <라 벨 페로니에르>.

그 이유는 흔히 다빈치의 트레이드마크로 알려진 '스푸마토'라는 기법-그림을 그릴 때 얼굴이나 신체와 배경 상이의 경계를 하나의 선으로 표현하지 않고 섬세한 덧칠을 통해 부드러운 명암이 나타나게끔 하는 방법-인데 이 두 작품에서는 스푸마토 기법이 강조되어 있지 않아 오히려 그 점이 마음에 든다고 하였습니다.

감히 위대한 다빈치의 테크닉을 두고 왈가왈부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거장이라고 해서 모든 감상자의 취향을 완벽하게 맞출 수는 없다. 여러 작품을 볼 때, 다수의 견해("역시 다빈치 최고!")에 얽매이지 말고 자신만의 예술적 취향을 가다듬는 것도 필요하다. 그런 연습이 곧 예술 작품에 한 걸음 더 다가가 즐길 수 있는 의미 있는 과정이라고 본다. - page 31

'미술을 즐기는 자신만의 방법'을 찾는 것.

이 책을 통해, 저자에게서 배운 '나만의 방식'으로 '나를 위한' 미술 즐기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책을 읽고 난 뒤 다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봅니다.

지구가 멸망할 때 단 하나의 미술품을 구해 낼 수 있다면 무엇을 고를 것인가?

이제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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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이 묻힌 곳 일본문학 컬렉션 3
에도가와 란포 외 지음, 안영신 외 옮김 / 작가와비평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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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일본 문학의 추리 소설만 모아서 읽는다는 사실이...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특히나 탐정 소설을 하나의 문학 장르로 확립시킨 대표적인 추리 소설가 '에도가와 란포'를 포함해서 우리에게 친숙한 '나쓰메 소세키', '다자이 오사무' 등 다섯 작가의 작품을 하나의 책으로 만난다는 사실은 추리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빠질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다섯 작가의 일곱 작품.

벌써부터 나대는 심장...

어찌하나... 이성적으로 되질 않는 것을...

바로 읽어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둠 속에 묻힌 미스터리

그 비밀을 파헤치는

다섯 작가의 이야기

비밀이 묻힌 곳



사실 '에도가와 란포상'으로 추리작가의 등용문이자 탐정소설을 장려하기 위해 만든 문학상으로만 그를 접해보았지 실제 그의 작품을 읽어보진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이 더 끌렸었습니다.

첫 장을 장식했던 '에도가와 란포'의 이야기.

<D언덕의 살인 사건>과 <심리 테스트>를 만날 수 있었는데...

여느 작가보다 이 작가분의 작품에 관심이 갔었고 인상적이었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와...

그 시대에 이런 생각을...?!

지금 읽어도 전혀 뒤처짐이 없는 이 느낌적인 느낌을...

이래서 일본의 추리소설의 아버지라고 불린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의 이야기들의 특징은 제3자의 내레이션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데 독자 여러분, 사실은 그게 그렇지 않았던 겁니다. 사소해 보이지만 이번 이야기와 크게 관련되어 있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라는 식이 들어가 있어 추리 과정에서 한 템포 쉬어가며 나름의 추리를 펼쳐볼 수 있었다고 할까나...

저에겐 이런 방식이 더 이야기를 궁금하게 만들었고 그야말로 쉼 없이 읽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쩌면 눈에 보이는 범인.

하지만 그 범인을 단정해가는 과정이 짜릿하였음에.

'아케치 고고로'를 바라보면서 그의 더 많았을 행보가 기대되곤 하였습니다.

특히나 <심리 테스트>의 이야기는...

짜릿짜릿함이...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그리고 '다자이 오사무'의 이야기는 딱 '다자이 오사무' 같았다는 느낌이!

교토의 모 회사에 근무하던 기타가와라는 청년이 놀라서 다급히 오쓰로 향했다. 여관의 주인과 상의한 끝에 일단은 쓰루의 도쿄 기숙사로 전보를 쳤고 기숙사 사람이 미타카의 매형에게 연락을 했다. 누나는 아직 봉합실이 제거되지 않은 왼팔을 목에 건 흰 천에 걸치고 있었다. 매형은 여전히 취해 있었다.

"사람들이 알까 봐 여기저기 짚이는 데만 찾아다녔는데...... 잘못한 것 같네."

누나는 눈물만 흘리며 젊은이의 어리석은 연애도 그저 허투루 볼 것만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 page 200

에도가와 란포 작품의 원점을 엿볼 수 있는 <D언덕의 살인 사건>과 <심리 테스트>로 시작해서 전형적인 탐정 소설의 틀을 벗어나는 작품인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아내 죽이는 법>과 <비밀>, 집 문제로 가족을 살해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인 다자이 오사무의 <범인>까지 이어진 탐정소설.

그리고 미스터리 장르 소설인 한 편의 잔혹 동화 같은 사카구치 안고의 <벚꽃이 만발한 숲에서>, 공포의 감정을 통해 인간 내면의 모습을 그린 나쓰메 소세키의 <불길한 소리>까지.

의심스러운 정황 속에서 증거를 수집하며 진실을 밝혀내는 그 과정이 추리 소설을 좋아하는 이에겐 더할 나위 없는 재미와 짜릿함을 선사해 주었습니다.

역시나 작가들마다 저마다의 특징이 묻어나 있었기에 이색적인 재미까지!

무엇 하나 놓칠 수 없었던 추리와 미스터리함은 우리에게 날카로운 한 방을 선사하기도 하였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저자들의 다른 작품이 너무나도 궁금하였습니다.

왜!

다섯 작가가 꼽힐 수밖에 없음을!

맛보기로 살짝 보았기에 더 간질맛 난다고 할까!

아...

이 목마름은 어찌해야 할까...

단편이었기에 더 이들이 빛났던 것일까!

아무튼 추리 소설을 좋아하는 이라면 이 책, 그냥 지나칠 수 없다는 것을!

덮기 싫은 마지막 장을 아쉬움과 함께 덮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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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의 멋진 집 - 제29회 눈높이아동문학상 그림책 우수상 수상작, 2023 볼로냐 국제 도서전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 수상
박준엽 지음, 신아미 그림 / 오늘책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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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만으로도 눈길을 사로잡혔습니다.

그런데 저 뿐만 아니라 아이도 벌써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이 책을 바라보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저에게 다가온 아이.

"엄마! 나 읽어봐도 돼요?"

원래 책을 볼 때 제가 넌지시 책을 읽어볼까?라고 운을 떼는데...

어머!

아이의 눈에도 이 책이 끌리나 봅니다.

과연 이안의 '멋진 집'은 어떨지 저도 궁금하네요.

상상하기 좋아하는 건축가

이안이 멋진 집을 지어요.

이안은 친구들을 위해 어떤 집을 지을까요?

이안의 멋진 집



첫 장을 펼치면 짜잔!

우리의 주인공 '이안'이 등장합니다.

그는 집을 상상하고, 상상해서 멋지게 짓는 걸 좋아하는 건축가입니다.

멋진 집에는 이름도 모양도 재미난 물건들이 가득해 물건들을 찾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그에게는 세 친구가 있었습니다.

과학자 '마틴', 예술가 '라파엘', 정원사 '발렌티노'.

어느 날, 이안은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했습니다.

친구들은 이안의 집을 보고 감탄하며

"이안, 정말 멋진 집에 사는구나!"

"우리를 위해서 멋진 집을 지어 줄 수 있어?"

이 말을 들은 이안은 너무 신이 나서 바로 좋다고 했습니다.



먼저 만난 과학자 마틴은

"나는 방마다 여러 가지 실험을 할 수 있는 과학관 같은 집이면 좋겠어.

그리고 집에 여러 가지 모양이 있으면 재미있을 것 같아."

다음으로 만난 예술가 라파엘은

"나는 멋진 예술 작품으로 가득한 집이면 좋겠어.

마치 미술관처럼 말이야."

그리고 정원사 발렌티노는

"나는 여러 가지 식물들을 키울 수 있는 집이 좋아.

식물원 같은 집이면 정말 멋질 것 같아."

그렇게 이안은 세 친구가 바라는 집을 상상하고 멋지게 집을 지었습니다.

친구들은 이안이 지은 집을 보자마자 정말 기뻐했습니다.

며칠 뒤, 이안과 세 친구들이 다시 모였습니다.

서로 자기 집이 가장 좋다고 자랑을 했는데 이때 이안에게 좋은 생각이 떠오르게 됩니다.

"얘들아, 내가 다시 집을 지어 볼게!"

세 친구들이 함께 좋아할 수 있는 집을 어떻게 만들까요?

방마다 관찰하고 실험할 수 있는 다양한 기계와 특별한 소품들이 가득한,

아름답고 독창적인 예술품들이 가득한,

파릇파릇 싱그럽고 알록달록한 식물들을 키울 수 있는

특별하고도 멋진 집을 이안은 지어 줍니다.

그러고는...



정말 흥미롭고도 신기한 집들이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사람 얼굴처럼 보이는 집부터 피라미드, 벌집 모양의 집, 거대한 놀이기구처럼 보이는 집, 파리의 미술관을 닮은 집까지.

어쩜 이렇게도 멋진 상상의 집이 탄생할 수 있을까!

아이도 보는 내내

"엄마, 우리 집도 이런 모양이었으면 좋겠다."

라고 말하는데 순간 우리의 집을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사각모양.

어느 정도 정해진 용도의 방들.

만약 각각의 집들이 자신의 개성에 맞게 지어진다면 아이들의 상상력은 더 펼쳐지지 않았을까...?!

그림책에서는 상상력 뿐만 아니라 서로 각자의 취향뿐 아니라 다른 사람이 좋아하는 것도 이해하고 함께할 때 더 풍요로워질 수 있는 삶을 이야기하며 '공존'의 의미를 일깨워주었습니다.

특히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더 필요한 이야기가 아닐까!

여느 그림책보다 이 책은 '나만의 숨은그림찾기 놀이'도 할 수 있어서 아이에게 재미를 더해주고 있었습니다.

한 권의 그림책으로 여러 읽기가 가능했던 이 책, 『이안의 멋진 집』.

읽고 난 뒤 아이에게

"너라면 어떤 집을 짓고 싶니?"

라며 그림을 그리는 독후 활동까지 해 보았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지금의 우리 집을 그렸다면 이 책을 읽고는 공주성을 그린 뒤 공간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그려 넣고 있었습니다.

덕분에 창의력도 키울 수 있었던 이 책.

아이와 함께 읽으며 상상의 멋진 집을 지어보는 것은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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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이방인 - 독한 여자의 리얼 독일 생활기
강가희 지음 / 모요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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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꿈을 꿔 본 적 있지 않을까...?

다른 나라에서 산다면...

왠지 평화롭고도 여유를 맘껏 느껴보고 싶은 그런 욕망(?)까지는 아니겠지만 아무튼...

지금의 일상에서 벗어나 낯선 곳에서 새 출발을 꿈꾸곤 합니다.

하지만 그런 환상은 '여행'이란 의미일 때 가능하지 '삶'이 된다면...

낯선 타지에서의 로망은 고독과 외로움으로 다가오곤 합니다.

여기 잘나가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죽기 살기로 독일 유학을 결심한 남편을 따라 독일로 떠난 저자가 있었습니다.

자의반 타의반이 아닌 타의반 이상 자의반 이하라면...

어떤 느낌일까?!

그것도 노잼 독일이라면...?

생각만으로도 두려움과 막막함이 다가오는데...

과연 그녀는 어떨지...?!!

노잼 독일에서 꿀잼 찾기!

빵 터지고 속 터지고,

기쁨과 분노의 좌충우돌 독일살이

명랑한 이방인



'한 달 살기'라면 이해하겠지만...

한 달이 아닌 5년을 산다면 당신은 어떠시겠습니까?

제 대답은 No였습니다.

내가 가고자 마음먹었다면 조금은 달라지겠지만 그녀 역시도 마른하늘에 날벼락과도 같았습니다.

십 년이 넘도록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을 만큼 방송작가라는 자신의 직업을 좋아했던 저자.

그런 그녀에게 독일 유학을 결심한 남편으로 독일로 떠날 수밖에 없었던 타의반 이상 자의반 이하였던 독일에서 5년 살기란 참...

자신의 처지를 표현하는데 이 문장들이 너무나 와닿았는데...

운전할 때 안개가 끼면 속도를 줄이고 전조등을 켠다. 그래도 여전히 앞이 보이지 않기는 마찬가지여서 언제 야생동물이나 다른 차가 끼어들지 몰라 불안하다. 되돌아가고 싶어도 좁은 외길이라 그럴 수도 없다.

내 처지가 딱 그랬다. 나아갈 수도 되돌아갈 수도 없는 아주 짙은 안개 속에 갇혀버리고 말았다. 수없이 허공을 향해 헛발질하며 허우적거렸다. - page 17

아무래도 우선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언어의 장벽.

한국에선 유창하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했는데 맥도날드에서 햄버거 하나도 제대로 주문하지 못할 때, 마트 직원에게 은근한 인종 차별을 당할 때, 필라테스를 해도 혼자서만 명상에 잠기지 못할 때, 그야말로 '독일어'로 자괴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때의 서러움.

당해보지 않으면 누가 알리오!

뿐만 아니라 자기 소개서를 제출해야 집을 구할 수 있고 느려 터진 인터넷, 맛없기로 소문난 독일 음식, 속 터지는 병원 예약까지.

그야말로 열불이 나는 상황 속에서도 웃음이 있었기에, 그 무엇보다도 가장 나답게, 내가 좋아하는 나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깨달았기에 독일을 떠날 때 그녀는 이렇게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좋았던 점을 꼽자면 이곳에서만큼은 가식적이지 않은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사실 가식을 내보일 사람이 없기도 했거니와 오롯이 나 자신에게 솔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 누구도 나를 신경 쓰지 않았으므로 가능했던 일인 것도 같다.

한국에서는 나한테조차 잘 보이고 싶었다. 멋있는 내가 되고 싶어서 한층 멋을 냈다. 어울리지 않는 옷도 자주 입었다. 독일에 와서야 불편했던 그 옷들을 벗어 던져보기로 했다. 오직 나만 나를 아는 새로운 세상에서, 날것의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시간, 경쟁, 밥벌이의 의무감이 가하는 압박들로 인해 평생 내 것이 아닐 것만 같았던 '지금, 이 순간'이 내 손에 잡혔다. - page 334



어쩌면 막연한 그 길 위에서도 멈추지 않았음에 가능했던 일이 아니었을까!

그녀의 행보가 참 멋지고도 감동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개인적으로 저자가 동네에서 가장 근사한 장소로 꼽았던 '행복 나무'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슈만과 브람스, 위대한 두 음악가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여인, 클라라의 고향 라이프치히.

그녀의 이름을 딴 클라라 파크에 행복을 기원하는 '행복 나무'.

거기엔 건강, 사랑, 꿈 등을 바라는 쪽지들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형형색색의 실리콘 재질의 '공갈 젖꼭지'에 매달려 있다고 합니다.

이는 이곳의 부모들은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면 처음으로 물었던 공갈 젖꼭지를 나무에 매달아 작디작은 생명의 건강과 행복을 기도한다는데...

상상만으로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고 할까.

그리고 '행복 나무' 근처에 있는 'B'라는 이름의 레스토랑의 의미 역시도.

"음......(이런 질문에는 괜히 근사한 답을 해야만 할 것 같은 의무감을 느낀다. 직업병인가.) 길 이름이 베토벤 슈트라세라서? (독일에는 괴테 슈트라세, 케테콜비츠 슈트라세 등 예술가의 이름을 딴 길이 많다.) 아니면 혹시 행복을 뜻하는 라틴어 '베아티투도'의 약자일까요?"

"당신은 이미 알고 있군요. 그게 바로 B의 의미예요." - page 197

라틴어 베아티투도는 '베오'라는 동사와 '아티투도'라는 명사의 합성어다. '베오'는 '행복하게 하다'라는 의미이고, '아티투도'는 '태도나 자세, 마음가짐'을 의미한다. 즉 베아티투도는 '태도나 마음가짐에 따라 행복할 수 있다'는 뜻인 셈이다.(한동일, 『라틴어 수업』 참고.)

행복은 추구하는 만큼, 딱 그만큼만 온다는 것을.

그토록 갈구했던 행복은 내 행동에 달려 있음을.

행복 나무로부터 저도 그 행복의 의미를 조금은 배우게 되었습니다.

치열하리만치 사랑했고 아팠던, 모든 것이 지나간 지금에서야 애증이 아닌 애정으로 남은 '독일'.

이방인으로써의 삶이 마무리되었을 때 저 역시도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그래도 저자가 독일에서 알게 된 사실.

그 사실을 제 마음속에도 심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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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식의 고전 유람 - 이상한 고전, 더 이상한 과학의 혹하는 만남
곽재식 지음 / 북트리거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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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학박사인데 'SF 소설가'라는 수식어가 잘 어울리는 이 분.

'곽재식' 작가님이 이번에는 '고전 읽기'에 대해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설화, 전설, 민담, 실록...

우리의 고전 속에서 이렇게 해석이 된다고...?!

처음엔 어? 하다가 읽다 보면 사뭇 진진해지고 결국엔 와!로 끝나게 되는 이야기들.

다채롭고도 새롭다!

이것이 제 느낌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자면...

옛날 옛적 이야기, 다시 들려드립니다!

과학을 사랑하는 이야기꾼 곽재식의 괴이한 고전 읽기

곽재식의 고전 유람



<전설의 고향>에서 볼 듯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잠곡유고』에 실려 있는 김육이 쓴 시.

그 시에는 '노호', 곧 '늙은 여우'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데 그 내용은 당시 김육이 살던 곳 근처 어느 산골짜기 바위 밑에 사람 홀리는 여우가 산다는 소문이 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환영으로 젊은이를 홀리는 여우가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는 간단한 이야기로 끝날 수 있겠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밤거리에서 행인을 유혹하는 쾌락이나 범죄를 조심하라는 의미일 수도 있고, 아니면 사람의 욕망을 이용해 속임수를 쓰는 사기꾼이나 협잡꾼을 여우에 빗댄 시일지도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여우가 사람을 홀리는 이야기는 많이 접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솔직히 의문이 들곤 합니다.

왜 여우일까...?

우선 여우는 산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갯과 동물이다. 갯과 동물에는 늑대와 개를 비롯해 여우, 승냥이 등이 있는데, 그중 일부 종은 깊은 산속이 아니라 사람의 생활 영역 가까이에서 자주 목격된다. 특히 마을 주변의 야산에 주로 서식하는 여우는 민가에 내려가 음식을 훔쳐 먹고, 굴을 파 놓고 드나드는 등 사람 눈에 영리하고 교활한 행동으로 보일 법한 습성을 지닌 야생 동물이다. 구석기 시대에는 여우가 동굴 주변에서 사람의 주식이었던 순록의 찌꺼기를 먹었다는 연구 결과도 있을 만큼, 여우가 인간 주변을 맴돌며 살아간 역사는 유래가 깊다. 갯과 동물 중에는 여우보다 한발 더 나아가 아예 사람의 생활 영역 안으로 들어와 가축으로 길들여진 종도 있는데, 바로 늑대의 친척인 개다. - page 64 ~ 65

여우 역시 개처럼 사람 곁을 기웃거리며 사람의 생활 영역을 넘나들 수 있는 짐승이기에 옛사람들의 시선엔 여우가 사람 흉내를 낸다거나 사람을 홀린다는 소문을 만들어내도 이상하지 않았을 것이었습니다.

여우가 사람에게 쉽게 적응하는 특징 말고 '여우 울음소리'도 여우 전설이 탄생한 배경으로 중요하게 짚어 볼 필요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갯과 동물 가운데 몇몇 종은 사람의 신경을 곤두서게 하는 소리를 내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개나 늑대가 내는 긴 울음소리는 잠깐씩 마치 사람이 울부짖는 듯한 음색처럼 들릴 때가 있다. 이 때문에 늑대의 긴 울음소리는 공포 영화의 효과음으로도 자주 사용된다. 개 짖는 울음소리는 상황과 품종에 따라 워낙 다양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1,000 ~ 2,000Hz의 소리가 주로 나타난다고 하는데, 이런 소리는 사람의 말소리에서 흔히 들리는 음높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즉 이 소리는 사람의 주의를 끌기 쉽다. 그렇다면 갯과 동물인 여우가 낸 기묘한 울음소리가 사람을 놀라게 하여 이상한 소문의 단초가 되었다고 생각해 볼 수 있진 않을까. - page 66 ~ 67

사실 여우가 사람으로 변신해 산속에서 누군가를 홀렸다는 이야기를 이리 진지하게 생각해 보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따져보고 난 뒤 지금의 우리의 토종 야생 여우가 멸종해 버렸다는 사실을 접하고 나니 조금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여우에 대한 관심을, 단순히 지나치는 이야기로 그치지 않아야 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3년 만에 개최되는 '불꽃 축제'와 관련된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음력 1월 15일, 정월 대보름날 전남 순창에서는 액운을 쫓고 복을 비는 목적으로 새벽에 첫닭이 울면 대나무에 불을 붙여 대나무 터지는 소리로 잡귀를 물리치는 '댓불피우기'가 성행하였다고 합니다.

이후 기술이 발전해 화약이 개발되면서 불꽃 또는 화약의 폭발 그 자체가 악귀를 물리치는 효과가 있다 생각한 조선 사람들 사이에 퍼지게 되면서 『조선왕조실록』에도 무섭고 괴이한 것을 쫓기 위해 총이나 대포를 쏘는 '방포사'를 했다는 기록이 여러 차례 나온다고 하였습니다.

정말 총을 쏘아서 유령을 무찌를 수 있을까?

유령은 아니겠지만, 실제로 조선 전기에 화약을 이용하는 성대한 불꽃놀이가 나라를 위협하는 자들을 제압하는 현실적인 효과를 거두었다고 합니다.

『조선왕조실록』 1399년(정종 1년) 6월 1일 자 기록에 조선의 불꽃놀이를 본 일본 사신의 반응이 남아 있다.

일본국 사신이 대궐 안으로 들어가니 술과 음식을 하사하고, 날이 이미 저물게 되자 군기감으로 하여금 불꽃놀이를 베풀게 하여 구경시켰다. 일본국 사신이 놀라서 말하였다. "이것은 사람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천신이 시켜서 그런 것이다."

이제는 귀신을 쫓는 조선의 총잡이들이 발붙이기 어려운 과학의 시대이지만 그들을 조금 관점을 달리해서 보면,

조선 궁중에서 유령을 쫓아내고자 총을 쏘는 방포사는 무속인이나 종교인이 아니라, 화약 무기를 만드는 기술자인 화포장이 담당했다. 그런데 1984년 영화 <고스트버스터즈>에서도 유령과 맞서 싸우는 주인공들은 영매나 주술사, 초능력자가 아니라 양자역학과 전자공학을 응용해 기계를 개발하는 과학자다. 이렇게 놓고 보면 400년 전 조선의 유령 총잡이들의 모습은, 공교롭게도 <고스트버스터즈>의 유령 퇴치업자들과 무척 비슷해 보인다. - page 231

멋지지 않은가!

허구에서 과학적 사실을 찾아가는 과정이 너무나 흥미로웠습니다.

이렇게 읽을 수도 있구나!

특히나 우리의 옛이야기에 큰 관심이 없었는데 흥미롭고 다채로운 이야기가 가득한 줄 몰랐습니다.

과학과 고전문학의 만남.

저자는 우리에게 이 점을 일러주고 싶었던 것이었습니다.

나는 이런 식으로 작은 이야기를 과학을 활용하여 더 풍성하게 따져 보면서, 더 재미난 이야기로 상상해 보는 일을 좋아한다. 그 자체로는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라 할 수도 없고 명확한 과학이라 할 수도 없는 내용이지만, 역사와 과학이 동시에 나타나기 마련인 옛문학에서 상상력을 통해 이야기가 연결되는 모습은 아름답다. 특히 소설을 쓰면서 이야기 속에서 흥미로운 사연을 찾아내고, 그 사연을 더 재미있게 꾸미는 일을 해 오다 보니, 이렇게 짧은 옛이야기의 소재를 다양하게 살펴보는 시도가 즐거웠다. 이렇게 보면 과학은 문학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틀이고, 한 사람의 생각을 넘어서서 더 넓게 세상을 보게 해 주는 도구다. 이런 일에는 다양한 주변 정황을 따져 가며 사실을 추측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떠올려 보는 추리소설 속 탐정 같은 재미도 있다. - page 10

그 재미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던 이 책.

한번 읽어보고 문학과 과학, 역사 속 상상에 빠져보는 건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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