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순서는 이러했습니다.
꿈을 재발견하는 여행
장류진 「탐페레 공항」
실패했지만 성공한 여행
윤고은 「콜럼버스의 뼈」
위로와 치유의 여행
기준영 「망아지 제이슨」
이해와 화합의 여행
김금희 「모리와 무라」
또 다른 '나'를 찾는 여행
이장욱 「절반 이상의 하루오」
누군가 떠오르는 여행
김애란 「숲속 작은 집」
외로움을 던지는 여행
천선란 「사막으로」
여행마다 뭉클함이, 아쉬움이, 아련함이 묻어나곤 하였는데...
누구나 한 번쯤 경험을 해 보았거나 생각해 봄직한 것이었기에 저마다 색깔로 칠해지면서 마침내 여행이란 '무지개'가 아지랑이 피어났었습니다.
첫 장을 장식했던 장류진의 「탐페레 공항」은 다큐멘터리 피디 지망생인 주인공이 자신의 스펙을 높이기 위해 워킹 홀리데이를 하러 떠나던 중 핀란드 탐페레 공항에서 만난 노인과의 짧은 만남, 그리고 회상을 그린 소설이었습니다.
사진작가였던 이제는 시력을 조금씩 잃고 있는 노인.
그와 나눈 대화가, 그동안 잊고 있었던 노인에게 다시 안부를 물었을 때의 안도감과 좌절했던 꿈을 다시금 떠올리게 해 준 점이 저의 지난날도 떠올리게 하고...
나는 다큐멘터리 피디가 되고 싶다고 했다. 노인은 어쩐지 크게 기뻐했다. 자기도 시력을 잃기 전에 다큐멘터리 보는 것을 좋아했다는 것이었다.
"언제-부터 다-큐멘터-리를 좋아-했나요?"
"글쎄요, 언제부터였을까요."
...
나는 왠지 모르게 긴장하면서 입을 열었다. 이때만큼은 틀린 영어 문법을 쓰고 싶지 않아 오래오래 문장을 머리에서 굴리다 말했다. 아주 오래전부터 다큐멘터리를 좋아해 왔다고.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은, 오직 이것밖에 없는 것 같다고.
"사-랑에 -빠졌-군요."
"네, 사랑. 아마도요." - page 20 ~ 22
"히- 이스- 리빙."
"뭐라고요?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겠어요?"
"히- 이스- 리-빙."
리빙? living인가? leaving인가? 어디로 떠났다는 거지?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다시, 다시 한 번만 말해 주시겠어요?"
"히- 이즈-! 슬-리-핑!"
그가 있었다. 자고 있었다. 나는 울먹이며 말했다.
"저는, 한국 사람입니다. 육 년 전에 탐페레 공항에서 얀을 만난 적이 있어요." - page 35
그리고 뒤이은 윤고은의 「콜럼버스의 뼈」는 친부모를 찾기 위해 스페인 세비야로 떠나게 됩니다.
주소가 적힌 종이를 들고 찾아간 그곳엔 콜롬이란 남자를 만나게 되고 그제야 핏줄을 찾는다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인가에 대해 되짚게 된 이 소설.
"아버지는 늘 말했지. 시에스타는 도둑처럼 온다고. 정말 도둑처럼 갑자기 시에스타가 왔고, 아버지는 아주 편안한 모습으로 잠든 걸 나는 한참을 지켜봤어. 꼭 아버지는 '그럴 줄 알았어. 우리 사이에 차이가 있을 리가 없잖아.'라고 생각하는 듯했어." - page 64
내가 찾던 주소, 그러니까 내 아버지의 집은 노래 안에 있었다. 나는 그 이국의 언어를, 그러나 아버지에겐 이웃 같았을 그 노랫말들을 선 굵은 가락 위에서 꼭꼭 씹어 삼켰다. 아버지는 그 밤, 거기에 있었다. 노래 속에 살았다. 그 노래 가사가 일회성의 임시 간판이었다고 하더라도, 그 밤의 전율은 사라지는 게 아니었다. 그 노란 식탁보 앞의 조그마한 무대, 그 밤의 타블라오를 떠올리면 여전히 나는 포만감을 느낀다. - page 67
그리고 천선란의 「사막으로」는
사막에 대해 글을 써 보는 건 어떠니? - page 215
사막에 가 본 적이 없는 나에게 아버지는 자꾸만 사막에 대해 글을 써보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사막에 가 본 적이 없어요.
사람이 보는 것을 쓰는 건 아니잖니. 본다고 믿는 것을 쓰지. - page 217
옛날에는 아버지가 해외에 나가기 싫은데 억지로 나가 있는 거라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요즘은 아닌 것 같아. 요즘에는 그 반대같아. 나가고 싶은데 한국에 묶여 있어야 하는...... 욕망들의 거리가 너무 멀어서 동시에 끌어안을 수 없고, 그래서 그 틈으로 외로움이 쌓이는 거 같아. - page 228
건설 업체에 일하시는 아버지는 해외로 일하러 가시면서 나에게 그 풍경들을 얘기해 주지만 알고 보니 아버지가 만들어낸 이야기였음을 깨닫게 된 나.
나는 이곳에 오기 전까지 아버지에게 카림한테서 들었던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설령 보지 않은 것을 보았다고 거짓말했더라도, 내 출발지가 그곳이었음은 변하지 않으니까. 나는 아버지에게 보지 않은 것은 쓸 수 없다고 말했지만 결국 보지 않은 우주를 꿈꿨다. 나는 아무도 가 보지 않은 곳을 향해 가고 있고, 긴 주행을 마친 아버지는 현재만이 존재하는 세계에 정착했다.
우리가 갈 수 있도록 그 행성에 텔레포트 설계도를 보냈고,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 끝에야 그 행성에서 우리의 숙제를 완수했다. 우리는 그곳에서 지구가 잃은 공기를 다시 찾기 위해 노력하겠지. 내 메시지가 닿는 속도만큼 나는 그 행성으로 나아갈 것이다. 침전되지 않도록 우주 밖으로 외로움을 내던지면서.
그곳에 아직 별이 뜬 사막이 있을까.
당신은 여전히 사막을 꿈꿀까. - page 239 ~ 240
이 소소설을 통해 '여행'의 의미를 깨달았다고 할까.
마지막을 장식한 만큼 그 여운마저 오랫동안 남았습니다.
설레임 안고 떠났던 여행.
이젠 또다시 마주하게 된 일상에서 차 한 잔으로부터 그 향기에 지난 여행들을 묻어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