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초록을 내일이라 부를 때 - 40년 동안 숲우듬지에 오른 여성 과학자 이야기
마거릿 D. 로우먼 지음, 김주희 옮김 / 흐름출판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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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기적을 본 적이, 아니 읽은 적이 있습니다.

폐허의 땅에 끊임없이 나무를 심은 한 노인이 만들어낸 기적이 그려진 『나무를 심은 사람』.

40여 년 동안 나무를 심은 결과 황폐했던 땅이 아름다운 거대한 숲으로 뒤덮이며 메말랐던 땅에 물이 다시 흐르고 새들이 돌라와 지저귀며 사람들도 하나둘 찾아오며 다시 살아 숨 쉬는 땅이 되었던 이 소설.

최근 들어 또 한 번 읽어보게 되었는데...

이번에 읽게 된 이 책도 비슷한 맥락이었습니다.

나무에 대한 사랑 하나로 40년 이상 나무를 연구해온 과학자 '마거릿 D. 로우먼'.

그녀가 지구상에서 가장 경이롭고 복잡한 대륙, 숲우듬지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

지구 건강이 숲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었다는 사실은 새삼스럽지 않다. 숲우듬지는 산소를 생산하고, 담수를 여과하고, 햇빛을 당분으로 전환하고,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공기를 정화하며, 무엇보다 이곳에는 지구에 발을 딛고 사는 모든 생물의 유전자 도서관이 자리한다. 전기 배전망이나 정수장과 달리 지구 건강을 지키는 이 복잡한 삼림 기계를 유지하는 과정에는 막대한 세금이나 자금이 소요되지 않는다. 다만 이 기계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인간의 파괴 행위가 철저히 배제되어야 한다. - page 16

앞으로 해결해야 하라 과제는 부족한 정보를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 세대가 곤충 창궐이나 도시 우듬지 같은 개념과 전체적인 맥락을 명확하게 인식해 생태계 보전에 책임 의식을 느끼도록 동기 부여하는 일이다. 건강한 생태계를 인간의 건강과 경제에 연결하는 일은 하나의 중요한 디딤돌이다. - page 309

세상에서 숲이 사라진다면...

그렇게 되지 않도록 우리는 그녀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야 했습니다.

한 사람이 지구의 미래를 바꿀 수도 있다

숲은 산소를 만들고,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공기를 정화하며,

지구에 발 딛고 사는 모든 생물의 유전자 도서관이 자리하는 곳이다

우리가 마시는 숨은 이곳에서 온다.

세상에서 숲이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한 과학자가 숲 가장 높은 곳에서 이 질문에 답한다.

우리가 초록을 내일이라 부를 때



어린 시절부터 '자연'이 친구였고 '자연'을 좋아했던 아이.

자연에서 식물을 발견하고, 만지고, 냄새 맡고, 식별하는 등 오감을 발달시키며 만끽했던 즐거움은 그녀가 대학교에 다니고, 대학원생이 되어 연구하고, 그녀와 같은 길을 걷는 소수의 여성에게 조언하는 과정에 영감을 주었습니다.

그로부터 배운 2가지 소중한 교훈.

첫째는 '한 사람의 힘'이라는 교훈으로, 나는 대개 혼자서 자연을 관찰해 지역 야생화는 물론 새알에 관해서도 아마추어 전문가가 되었으며, 그 시절 내디딘 걸음마가 현장 생물학 전문가가 되는 길로 이어졌다.

둘째는 '지역에서 출발해 세계로 나가라'라는 교훈으로, 처음에 뒤뜰에서 자연을 배우고 나중에 지구 생태계로 시야를 넓힌 덕택에 나는 한층 더 유능한 현장 생물학자로 성장할 수 있었다. - page 43

생물학, 생태학, 식물학을 전공하며 시행착오 끝에 숲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선 나무 가장 높은 지점으로 올라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열대로 향하게 됩니다.

1980년대 이전까지 삼림학자는 나무의 95퍼센트를 그냥 지나쳤고, 누구도 나무 꼭대기에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는데 1978년 젊은 식물학자가 호주에 도착해 열대림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일하면서 쓴맛을 몇 차례 보고 난 뒤 숲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가장 높은 지점까지 올라가야 한다는 점을 깨닫고 최초로 나무 상층부 숲우듬지를 연구하기 시작합니다.

바로 그 식물학자가 바로 '마거릿 D. 로우먼'이었습니다.

나무 꼭대기 탐사가 시작된 지 몇 년이 지나자, 지구 생물 중 절반은 이전에 과학자들이 추정한 것처럼 지표면이 아니라 우리 머리 위 최소 30미터 높은 지점에서 살아간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나무 수관 상층부에 서식하는 생물종 대부분을 발견하게 되었으며 6만 종이 넘는 나무 곳곳에서 거의 모든 생물은 독특한 공동체를 형성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경각심을 가져야 할 점이 지난 60여 년 동안 아마존 우림의 황폐화는 변곡점을 지나 급격히 진행되었으며 화재와 가뭄, 도로 건설과 개간으로 전 세계의 파편화된 숲이 심각한 위험에 빠져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지구가 지속되기 위해선 반드시 숲이 건강해야 함을, 나무 꼭대기가 사라지기 전 나무에 대한 관심과 나아가 자연환경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필요함을 저자는 나무탐험가로 40년 동안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에겐 무엇보다 '여성'이기에 남성 중심인 과학계에서 소수자로서 겪은 폭력과 차별이 안타까웠습니다.

나는 평등을 추구하는 새로운 세대의 여성이었지만 아들을 데리고 병원에 가기 위해 퇴근을 허락받기 두려웠고, 교수 회의에서 커피를 타달라고 부탁받았을 때 감히 거절하지 않았다. 나는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 빨래하고, 저녁 차리고, 아들 숙제를 돕는 것이 인생의 성공이라고 믿었지만 많은 남성 동료는 죄책감 없이 늦게까지 일하고, 술집에서 동창들과 어울려 인맥을 쌓고, 승진을 목적으로 골프를 쳤다. 나와 여성 동료들이 현장 생물학 분야를 선도한 것은 맞지만 우리는 예상에서 벗어나는 지점에 도달할 때마다 유리 천장에 부딪혀 멍 들었고, 그래서 나는 멍이 든다는 걸 예상하고 더욱 부당한 일도 참게 되었다. 동료들이 상기시켜주었듯 '멍'이라는 말은 너무 순화한 단어이며 실제로는 '베일 상처'였다. 과학계 여성들이 결국 '유리 우듬지'를 산산조각 낸 결과는 혁신적이었지만 우리는 그 개진 유리 조각에 베여 피를 흘렸고 여성은 그런 고통을 가볍게 여기도록 훈련받았다.- page 225 ~ 226

그럼에도 나무 우듬지가 회복력이 강했듯이 그녀 역시도 꿋꿋이 살아남았고 어느새 나무처럼 우뚝 선 그녀의 모습은 여성 과학자라는 숲을 만들었고 지금의 여성 과학자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활약을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미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자연의 위대함을, 그리고 그 소중함을.

알면 이젠 실천을 해야 할 때였습니다.

나부터!

우리가 초록을 '내일'이 아닌 '내 일'이라 불러야했습니다.

p.s. 이 책을 읽고 나니 호프 자런의 『랩 걸』도 읽어보아야겠습니다.

왠지 연장선에 있는 것 같기에 책 읽기를 이어가면서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보려 합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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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초록을 내일이라 부를 때 - 40년 동안 숲우듬지에 오른 여성 과학자 이야기
마거릿 D. 로우먼 지음, 김주희 옮김 / 흐름출판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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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초록이 영원하기를 바라는 절박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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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로마 신화 - 세상을 다스린 신들의 사생활
토마스 불핀치 지음, 손길영 옮김 / 스타북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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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로마 신화'를 좋아해서 이와 관련된 책이 여러 권 있을 정도입니다.

매번 읽어도 새롭고 재미난 것이...

신 이름이 가물가물해질 때쯤이면 꺼내 읽게 되는 책이 바로 '그리스 로마 신화'였습니다.

이번에 그리스 로마 신화 책이 새로이 나왔는데...

전 세계에 신화의 바람을 일으킨 '토머스 불핀치' 오리지널 완역본!

이라 하였습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검색하면 단연 돋보이는 작가였던 '토마스 불핀치'.

이젠 본격적으로 전 세계에 신화의 바람을 일으킨 그의 원작에 빠져들어보겠습니다.

사랑과 질투와 증오, 권력의 힘에 의한 무자비한 살인의 현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 로마 신화의 즐거움은 끝이 없다!!

그리스 로마 신화



우선 <신화란 무엇인가?>에 대해 짚어보고 가야 했습니다.

신화란 인간의 역사와 밀접히 관련되어 인간들의 희망과 두려움과, 열정을 투사하여 공상적으로 창조해 낸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오랜 시기를 거치면서 개변 또는 첨가되어 완성된 형식을 갖추게 되고, 그 이야기에 등장하는 신화적 인물 또한 전형성을 지니게 된다. - page 5

인간과 다름없이 웃고, 울며, 성내기도 하는 인간적 감정과 행동을 하는 그들.

존재 자체만으로도 상상력과 호기심의 불씨에 바람을 불어넣어 타오르게 하는 매력이 있는 '신화'.

이 신화는 공상적으로 창조해 낸 이야기라 할지라도 도시나 가문에 있어 고귀한 유래가 될 수도 있고, 또한 서사시로 발전하기도 하며 종교의 예식이나 신앙에 권위를 부여하고 그를 설명하는 것이 되기도 합니다.

또한 조형미술, 문학, 기타 그리스 문화의 모든 영역에 차용되어 있기에 신화에 대한 이해는 어쩌면 당연히 밑바탕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 쉬운 예로 바다의 신인 '세이렌-매혹적인 목소리로 항해자들을 유혹한 존재-'은 '인어공주'로, 세계적인 커피 전문점 '스타벅스'의 로고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또한 스포츠 용품 대표 브랜드 '나이키'는 승리의 여신인 니케의 미국식 발음을 따 브랜드 이름을 지었고 니케의 영혼과 날개를 상징하는 로고를 사용하는 등

우리의 생활 속에서도 신화가 스며들어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는 독자들에게 지혜의 용광로이자 지적 호기심과 상상력의 원천인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마음껏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도록 명작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음...

다른 책들과 비교하면 안 되는데...

컬러 도판으로 되어 있는 책들 속에 이 책은 흑백 도판이었다는 점이...

뭐... 오리지널 느낌을 살리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그래도 아쉬웠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과 함께...

그리고 내용이 그리 부드럽게 받아들여지지 않은 건 나의 문제인 걸까...

아무튼 각자가 해석하기 나름이기에 저에겐 다른 책들과 비교하며 같은 것이라도 색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오디세우스의 아내인 '페넬로페'.

이 책에서는 짧게 나왔지만...

유명한 '페넬로페의 직물'이란 속담의 기원이 된 이야기.

용모의 아름다움보단 성격이나 행실의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그녀.

저에겐 단연코 예뻤습니다.



인류 최초 여성 시인 '사포'.

그녀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습니다.

특히나 그녀의 시가... 어떤 노래를 불렀을지...



뭔가 아쉬움이 남는 건...

아마도 고대 그리스 로마의 종교는 소멸되었고 이제 이 신들은 신학의 부문에 속하지 않고 문학과 취미 부문에 속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여전히 그 지위를 유지할 것이고 앞으로도 계속 그러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잊지 않아야 하고 잊히지 않길 바랄 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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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맛있는 하루를 보내면 좋겠어 - 츠지 히토나리가 아이에게 들려주는 인생 레시피
츠지 히토나리 지음, 권남희 옮김 / 니들북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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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과 열정 사이 Blu』, 『사랑 후에 오는 것들』.

이 책들과 인연을 맺었던(혼자만의 생각이지만...) '츠지 히토나리' 작가.

그의 10여 년 만의 신작 에세이로 돌아왔습니다.

싱글대디로 돌아온 츠지 히토나리의 가슴 뭉클한 가족 에세이로.

그가 프랑스 파리에서 싱글대디로 홀로 아이를 키워 온 지 어느덧 10년이 되었다고 합니다.

혼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닌데...

자신을 돌보기도 벅찬 때였지만 아이와 자신을 지키기 위해, 가정에 다시 온기를 불어넣기 위해 만들었던 30가지 요리를 아이에게 알려주듯 친절하게 담아내고 있었습니다.

때로는 아빠로서,

때로는 인생 선배로서

삶을 대하는 태도와 관점, 응원, 조언 등을 건넨 이 책.

그 따스한 온기에 잠시 마음을 기대어 봅니다.

인생은 쓰지만 요리는 언제나 맛있다!

삶의 가장 추웠던 날들을 요리라는 온기로 데운

츠지 히토나리의 맛있는 한 끼

네가 맛있는 하루를 보내면 좋겠어



공지영의 『딸에게 주는 레시피』처럼 엄마가 건네는 인생 레시피들은 종종 접하게 되는데...

'아빠'라서 그럴까.

더 뭉클하게 다가오는 건 뭘까.

쉬이 넘어갈 수 있는 문장도 하나하나 가슴에 새겨지면서 눈물이 나오는데...

감정을 추스르기도 조금은 벅찼었습니다.

"맛있어?"

"응, 맛있어."

이 반복되는 대화가 이리도 행복을 전해주는지 이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가 왜 요리를 하냐고 묻는다면

요리를 하고 있으면 나쁜 기억을 잊을 수 있기 때문에,

게다가 맛있는 음식이 완성됐을 때 네가 먹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흐뭇하고 행복해지기에

마음을 평온하게 만드는 최적인 장소인 '주방'을 좋아하고 '음식'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네게 요리를 가르치고 싶은 건 인생에 도피처 하나쯤은 만들어 주고 싶어서야.

힘들 땐 언제든 이곳으로 도망쳐 오렴. 있잖아, 주방은 절대 배신하지 않아. - page 23

영양가를 생각한 토마토 파스타부터 아이가 채소를 잘 먹길 바라며 만든 라타투이, 허한 마음을 부풀리며 달랬던 기슈로렌, 아이와 처음으로 함께 만들었던 살몬 크루테, 매일 떨어지지 않게 유리병에 채워 놓는다는 아빠표 쿠키까지.

그만의 비법으로 완성된 레시피뿐만 아니라 인생에 대한 조언까지 어우러진 한 상이 거창하진 않겠지만 그 속엔 '사랑'이란 진하고도 강력한 온기가 가득하였습니다.

네가 처음으로 내게 배우고 싶다고 했던 것도 음악이나 일본어가 아니라 요리였잖아. 왜였을까?

아마 마음 어딘가에, 내가 직접 맛있는 요리를 만들고 싶다, 언젠가 누군가에게 그걸 먹이고 싶다, 그리고 그 사람의 웃는 얼굴을 보고 싶다, 그런 마음이 있어서가 아니었을까? - page 63

그렇게 해서 만든 요리가 프랑스 가정식, 타르티플레트 였습니다.



언젠가 분명 네가 네 여자친구나 혹은 너만의 가족에게 요리를 해 줄 날이 틀림없이 올 테니까 네게 그 마법을 전수해 줄게. 사람들에게 웃는 얼굴을 선물하는 요리라는 이름의 마법을 말이야. - page 64

아빠는 아들에게 네가 독립하게 되면 가장 많이 만들어 먹는 게 파스타 요리일 거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아무래도 조리과정이 그리 복잡하지 않기에 그럴 텐데 그가 아들에게 당부(?) 아닌 당부를 하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페델리니에는 삶는 시간이 6분이라고 표기돼 있는데 내가 좋아하는 시간은 정확히 3분 45초야. 집착의 알덴테!

너는 그동안 정확히 3분 45초 익힌 페델리니를 먹고 자란 거라고. 기억해 둬. 자기가 좋아하는 파스타 면 삶는 시간을 찾는 게 파스타를 제패하는 지름길이니까. - page 103 ~ 104

조금씩 레시피가 쌓이면서 이들의 '행복'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할 무렵 타이밍 맞게도 행복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고통을 외면하지 말고 살아가자.' 나는 늘 이렇게 스스로를 타일러 왔어. 항상 나 자신을 훈계하며 살아왔지. 그랬더니 그 고통의 근원이 이해가 되더라. 하루하루의 소소한 감동을 기쁨으로 느끼게 됐어. 이를테면 요리나 식사나 너와의 대화 같은 것들......

이제는 네가 조금씩 어른이 돼 가는 매일을 바라보면서 '이런 게 행복이구나.' 하고 생각해. 그래서 지금은 내 주변에 있는 놓치기 쉬운 작고 소소한 행복을 긁어모으며 살고 있지.

그건 멋진 일이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 그거야말로 행복이야. 그래서 주방에 서서 '자, 맛있는 걸 만들자.' 하고 기합을 넣을 때, 나는 행복하다는 걸 자각한단다. - page 187 ~ 188

나 역시도 내 일과 중 주방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데...

이 공간이 위로와 행복을 만들어내는 곳일 줄은 미처 몰랐었습니다.

그리고 가족이라 하더라도 같이 앉아서 밥 먹는 게 별거겠어?!라고 여겼었는데... 아니었음을...

오늘은 다 같이 앉아서 밥을 먹어보고자 합니다.

진짜 얼마 만일까...

아직 아이가 어린데도 왜 그동안 못한 거지...

모처럼 식탁에 둘러앉아서 저도 이 질문을 건네고 싶어졌습니다.

"맛있어?"

상상만으로도 입가에 미소가 번져오고 가슴이 따스해졌습니다.

오늘은 다들 가족과 함께 식사해 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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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는 소설 창비교육 테마 소설 시리즈
장류진 외 지음, 백순구 외 엮음 / 창비교육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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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두 번째 '여행' 테마책.

그전에 유시민 작가님과 인문학적 유럽으로의 여행을 떠났었다면 이번엔

우리 시대 작가 장류진, 윤고은, 기준영, 김금희, 이장욱, 김애란, 천선란 작가와 함께

각자의 시선에서 여행을 매개로 인간을, 나아가 세계를 그려낸 작품

속으로의 여행이었습니다.

'소설'이다 보니 저번 여행보다는 한결 수월하고도 가벼운 이 느낌.

그렇게 떠나게 되었습니다.

지금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이곳에도

언젠가는 밤이 찾아오고 또 오로라가 넘실대겠지

떠나지 못하고 머무는 우리의 지금을 위로하는 이야기

여행하는 소설



여행 순서는 이러했습니다.

꿈을 재발견하는 여행

장류진 「탐페레 공항」

실패했지만 성공한 여행

윤고은 「콜럼버스의 뼈」

위로와 치유의 여행

기준영 「망아지 제이슨」

이해와 화합의 여행

김금희 「모리와 무라」

또 다른 '나'를 찾는 여행

이장욱 「절반 이상의 하루오」

누군가 떠오르는 여행

김애란 「숲속 작은 집」

외로움을 던지는 여행

천선란 「사막으로」

여행마다 뭉클함이, 아쉬움이, 아련함이 묻어나곤 하였는데...

누구나 한 번쯤 경험을 해 보았거나 생각해 봄직한 것이었기에 저마다 색깔로 칠해지면서 마침내 여행이란 '무지개'가 아지랑이 피어났었습니다.

첫 장을 장식했던 장류진의 「탐페레 공항」은 다큐멘터리 피디 지망생인 주인공이 자신의 스펙을 높이기 위해 워킹 홀리데이를 하러 떠나던 중 핀란드 탐페레 공항에서 만난 노인과의 짧은 만남, 그리고 회상을 그린 소설이었습니다.

사진작가였던 이제는 시력을 조금씩 잃고 있는 노인.

그와 나눈 대화가, 그동안 잊고 있었던 노인에게 다시 안부를 물었을 때의 안도감과 좌절했던 꿈을 다시금 떠올리게 해 준 점이 저의 지난날도 떠올리게 하고...

나는 다큐멘터리 피디가 되고 싶다고 했다. 노인은 어쩐지 크게 기뻐했다. 자기도 시력을 잃기 전에 다큐멘터리 보는 것을 좋아했다는 것이었다.

"언제-부터 다-큐멘터-리를 좋아-했나요?"

"글쎄요, 언제부터였을까요."

...

나는 왠지 모르게 긴장하면서 입을 열었다. 이때만큼은 틀린 영어 문법을 쓰고 싶지 않아 오래오래 문장을 머리에서 굴리다 말했다. 아주 오래전부터 다큐멘터리를 좋아해 왔다고.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은, 오직 이것밖에 없는 것 같다고.

"사-랑에 -빠졌-군요."

"네, 사랑. 아마도요." - page 20 ~ 22

"히- 이스- 리빙."

"뭐라고요?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겠어요?"

"히- 이스- 리-빙."

리빙? living인가? leaving인가? 어디로 떠났다는 거지?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다시, 다시 한 번만 말해 주시겠어요?"

"히- 이즈-! 슬-리-핑!"

그가 있었다. 자고 있었다. 나는 울먹이며 말했다.

"저는, 한국 사람입니다. 육 년 전에 탐페레 공항에서 얀을 만난 적이 있어요." - page 35

그리고 뒤이은 윤고은의 「콜럼버스의 뼈」는 친부모를 찾기 위해 스페인 세비야로 떠나게 됩니다.

주소가 적힌 종이를 들고 찾아간 그곳엔 콜롬이란 남자를 만나게 되고 그제야 핏줄을 찾는다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인가에 대해 되짚게 된 이 소설.

"아버지는 늘 말했지. 시에스타는 도둑처럼 온다고. 정말 도둑처럼 갑자기 시에스타가 왔고, 아버지는 아주 편안한 모습으로 잠든 걸 나는 한참을 지켜봤어. 꼭 아버지는 '그럴 줄 알았어. 우리 사이에 차이가 있을 리가 없잖아.'라고 생각하는 듯했어." - page 64

내가 찾던 주소, 그러니까 내 아버지의 집은 노래 안에 있었다. 나는 그 이국의 언어를, 그러나 아버지에겐 이웃 같았을 그 노랫말들을 선 굵은 가락 위에서 꼭꼭 씹어 삼켰다. 아버지는 그 밤, 거기에 있었다. 노래 속에 살았다. 그 노래 가사가 일회성의 임시 간판이었다고 하더라도, 그 밤의 전율은 사라지는 게 아니었다. 그 노란 식탁보 앞의 조그마한 무대, 그 밤의 타블라오를 떠올리면 여전히 나는 포만감을 느낀다. - page 67

그리고 천선란의 「사막으로」는

사막에 대해 글을 써 보는 건 어떠니? - page 215

사막에 가 본 적이 없는 나에게 아버지는 자꾸만 사막에 대해 글을 써보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사막에 가 본 적이 없어요.

사람이 보는 것을 쓰는 건 아니잖니. 본다고 믿는 것을 쓰지. - page 217

옛날에는 아버지가 해외에 나가기 싫은데 억지로 나가 있는 거라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요즘은 아닌 것 같아. 요즘에는 그 반대같아. 나가고 싶은데 한국에 묶여 있어야 하는...... 욕망들의 거리가 너무 멀어서 동시에 끌어안을 수 없고, 그래서 그 틈으로 외로움이 쌓이는 거 같아. - page 228

건설 업체에 일하시는 아버지는 해외로 일하러 가시면서 나에게 그 풍경들을 얘기해 주지만 알고 보니 아버지가 만들어낸 이야기였음을 깨닫게 된 나.

나는 이곳에 오기 전까지 아버지에게 카림한테서 들었던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설령 보지 않은 것을 보았다고 거짓말했더라도, 내 출발지가 그곳이었음은 변하지 않으니까. 나는 아버지에게 보지 않은 것은 쓸 수 없다고 말했지만 결국 보지 않은 우주를 꿈꿨다. 나는 아무도 가 보지 않은 곳을 향해 가고 있고, 긴 주행을 마친 아버지는 현재만이 존재하는 세계에 정착했다.

우리가 갈 수 있도록 그 행성에 텔레포트 설계도를 보냈고,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 끝에야 그 행성에서 우리의 숙제를 완수했다. 우리는 그곳에서 지구가 잃은 공기를 다시 찾기 위해 노력하겠지. 내 메시지가 닿는 속도만큼 나는 그 행성으로 나아갈 것이다. 침전되지 않도록 우주 밖으로 외로움을 내던지면서.

그곳에 아직 별이 뜬 사막이 있을까.

당신은 여전히 사막을 꿈꿀까. - page 239 ~ 240

이 소소설을 통해 '여행'의 의미를 깨달았다고 할까.

마지막을 장식한 만큼 그 여운마저 오랫동안 남았습니다.

설레임 안고 떠났던 여행.

이젠 또다시 마주하게 된 일상에서 차 한 잔으로부터 그 향기에 지난 여행들을 묻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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