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식당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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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책장에도 『달팽이 식당』이란 책이 있습니다.

몇 년 전쯤에 읽었었고...

따뜻한 위로를 얻었었고...

그리곤 시간이 흘러...

다시 새롭게 만나게 되었습니다.

'일본 힐링 소설의 원조' 오가와 이토의 장편 데뷔작이자 대표작으로 100만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 소설.

그 식당으로 문을 열어봅니다.

"이 소설을 번역하는 동안 참 행복했다.

그 행복이 고스란히 독자 여러분에게도 전해지면 좋겠다."

- 권남희(번역가)

달팽이 식당



음식점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돌아오니 집이 텅 비었다. 아무도 없는 빈집이었다. 텔레비전도 세탁기도 냉장고도 형광등도 커튼도 현관 매트도 모조리 사라지고 없었다. - page 11

남자 친구와 함께 지낸 삼 년 치 추억과 귀중한 재산이 빼곡하게 차 있었던 방이었는데...

어느 날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돌아와보니 남자 친구는 자신이 사용하던 열쇠를 텅 빈 거실 한복판에 남기곤 사라져 버리게 됩니다.

그리곤 정신적 충격에서 오는 일종의 히스테리 증상일지 모르겠지만 말이 나오지 않게 된 주인공 '링고'.

빈털터리 외톨이가 돼 버린 링고는 할 수 없이 십 년 전 스스로 달아나듯 떠나온 고향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다행히 할머니의 소중한 유품인 겨된장 항아리를 가슴에 꼭 껴안고...

가재도구도, 조리 기구도, 돈도, 갖고 있던 것은 모두 잃어버렸지만 솜씨 좋은 외할머니에게 물려받은 귀중한 레시피들과 다양한 음식점에서 쌓아 온 경험을 바탕으로 설령 옷을 벗겨 알몸이 된다 해도 요리를 만드는 일이라면 할 수 있었던 링고.

조용한 산골 마을에서 요리사가 되기로 결심하게 됩니다.

'달팽이'는 어떨까?

몇 초도 지나지 않아서 나는 새로 열 식당 이름은 '달팽이'밖에 없다고 확신했다.

좋았어!

롤케이크처럼 이불을 둘둘 만 채 혼자 손가락을 딱 튕겼다.

그 작은 공간을 책가방처럼 등에 메고, 나는 지금부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나와 식당은 일심동체.

일단 껍데기 속에 들어가 버리면 그곳은 내게 '안주의 땅'이다. - page 75 ~ 76

정해진 메뉴는 없고 손님은 하루 한 팀만 받는 '달팽이 식당'.

사전 조사를 철저히 해서 손님의 성격과 사연에 딱 맞는 요리를 내놓고 그 음식을 먹은 이들은 새로 태어난 듯 벅찬 마음으로 식당 문을 나서게 됩니다.



죽은 남편을 잊지 못해 수십 년째 상복 차림으로 슬픔에 잠겨 지내는 할머니, 거식증에 걸린 토끼를 구하려는 소녀, 은밀한 사랑의 도피처를 찾아온 커플, 가출한 아르헨티나인 아내와 딸을 그리워하는 구마 씨까지.

저마다 다양한 사연을 지닌 이들에게 링고는 정성스런 음식을 대접하지만 정작 자신에게, 특히 엄마만큼은 도저히 진심으로 좋아하지 못했던 링고.

그런 그녀와 엄마의 화해의 장면은...

내게 요리란 기도 그 자체다.

엄마와 슈이치 씨의 영원한 사랑을 비는 기도이고, 몸을 바친 엘메스에게 감사의 기도이고, 요리를 만드는 행복을 베풀어 준 요리의 신에게 올리는 기도이기도 했다. 나는 이때만큼 무한한 기쁨을 느낀 적이 없었다. - page 245 ~ 246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요리'라는 행위.

위대하고도 숭고함에 또다시 '음식'에 마음을 기대어봅니다.

인스턴트식품에는 감정이며 생각이 전혀 없어서, 과민해진 내게 아주 적당한 음식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엄마도 아무것도 느끼지 않고, 생각하지 않고 싶어서 인스턴트식품만 먹었을지도 모른다.

가끔 요리를 만들어도 맛이 나지 않았다. 문어가 자기 발을 먹고 배를 채우는 것처럼, 고양이가 자기 성기를 핥는 것처럼 뭔가를 먹고 있다는 실감이 전혀 나지 않았다. 요리는 자기 이외의 누군가가 마음을 담아 만들어주기 때문에 몸과 마음의 영양이 되는 것이다. - page 266 ~ 267

소설을 읽고 난 뒤 문득 엄마의 부엌이 떠올랐습니다.

자식들을 위해 반찬을 만드시고 국을 끓이시고...

어릴 적엔 그저 차려주는 것에도 투정을 부렸지만 되돌아보니 그 음식들이 있었기에, 엄마의 사랑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존재함을.

이제는 제가 그 자리에 서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어떤 음식을 해야 할까...

아이들과 오순도순 마주 앉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저녁이 무엇일지 고민하며 앞치마를 둘러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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