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신예찬 - 라틴어 원전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45
에라스무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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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게 된 건 이 문구 때문이었습니다.

『돈키호테』 저자 세르반테스, 그리고 셰익스피어에게 영감을 준 역작

이렇게나 위대하고 영향력 있는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다는데...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지 기대가 되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를 상징하는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의 대표 저작

종교 권력의 최정점에서도 유머와 진실의 힘으로,

중세를 끝내고 르네상스 부흥기를 열다

우신예찬



우신이 말한다.

세상 사람들은 우신인 나에 대해 온갖 말을 해댑니다. 어리석은 자들조차 우신에 대해 나쁘게 말한다는 것을 나도 잘 압니다. 하지만 장담하건대 신들과 사람들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능력을 가진 자는 나말고는 없습니다. 내가 여기 구름처럼 모여든 군중 앞에서 연설하기 위해 연단에 오르자마자, 어떤 새롭고 예사롭지 않은 기쁨으로 모두의 얼굴이 갑자기 밝아지고 이마의 주름이 금세 펴지며 환한 웃음으로 내게 환영의 박수갈채를 보내는 것이 그 사실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입니다. - page 19

나 자신, 즉 어리석음의 신인 우신을 예찬하는 연설.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하기를 좋아하고 또 말하는 그녀.

해학에서 풍자로, 풍자에서 역설로 진행하면서 '어리석음'의 어두운 면과 밝은 면을 모두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씨를 뿌리지 않고 밭을 갈지 않아도' 모든 것이 저절로 자라나는 행복의 섬에서 웃으면서 태어난 '어리석은 신' 모리아, 우신.

만취와 무지의 보살핌을 받는 젊음과 부의 딸이었습니다.

생명 탄생의 주역이자 삶의 유익한 모든 것을 제공하는 우신.

정말 우신 없이는 인간관계도 사회도 유지될 수 없음을 이야기하고 있기에 더없이 고마운 존재인 듯이 예찬하고 있지만 그 속엔 '가짜 현자들'-학자, 저술가, 법률가, 변증가, 수도사, 귀족, 군주, 성직자 등-의 부패와 죄악을 속 시원한 풍자와 해학으로 그려지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불쾌한 부분이었을지라도 웃음을 가져다줄 유쾌한 것들로, 그렇지만 반드시 짚고 가야 할 문제들에 대해선 지나가는 말로 요점만 간추려 이야기한 부분이 마냥 가볍지 않은 이야기였고 5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닐까 생각 들었습니다.



솔직히 어리석음을 예찬한 동기와 이유가 무엇인지, 저자는 왜 이 책을 썼는지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었다면 난해하지 않았을까란 생각도 해 봅니다.

하지만 이 책에선 그런 저 같은 독자를 위해 해제를 통해 당시의 사회 종교 및 문화 배경에 대한 설명이 있었기에 읽고 난 뒤에 조금씩 이해해 나갈 수 있었고 풍자와 해학의 묘미도 맛볼 수 있었습니다.

『우신예찬』은 어리석음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포괄하여 인간의 모든 행복이 어리석음에 달려 있음을 보여주는 책입니다. 그러하기에 최고의 직위에 있는 왕과 교황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류의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성경에서 일종의 어리석음을 갖고 있다고 말하는 사도들은 물론 그리스도에 대해서도 이야기합니다. 사도들이나 그리스도가 진정한 의미에서 어리석다고 사람들이 착각할 위험은 전혀 없습니다. 사도들과 그리스도도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의 성정에 따른 연약함이 있어 그것을 일종의 어리석음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들이 지닌 어리석음은 세상의 모든 지혜를 이기지만, 저 영원하고 순수한 지혜에 비하면 어리석다고 할 수 있습니다. - page 273

우신이 자신을 최고 신으로 소개하는 이 이야기로부터 범상치 않게 흘러가리라 생각되었었습니다.

현자들이 늘 하던 대로 먼저 결혼생활의 득실을 세심히 따졌다면, 어떤 남자가 자청해서 자기 입에 결혼이라는 재갈을 물리려 하겠습니까? 출산의 위험과 산고, 양육의 괴로움을 알고 있거나 짐작이라도 했다면, 어떤 여자가 남자를 받아들이려 하겠습니까?

생명이 결혼에서 비롯되고, 결혼은 나의 시녀인 '경솔'에서 비롯되므로, 결국 생명이 내게서 비롯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게다가 여자들이 이런 일을 한번 경험하고 나서 또다시 반복하는 것은 나의 시녀인 '망각'이 곁에서 도와주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

이렇게 나로 말미암아 술에 취해 웃고 떠들고 논 덕분에 저 콧대 높은 철학자들, 오늘날 그들의 자리를 계승한 이른바 수도사들, 자주색 옷을 걸친 군주들, 경건한 사제들과 그들보다 세 배는 더 거룩한 교황들이 태어난 것입니다. - page 40 ~ 41

그리고 선생, 시인, 수사학자, 저술가, 법률가와 변증가, 철학자, 신학자, 수도사, 군주, 궁정 귀족, 주교, 추기경, 교황, 사제 들을 차례로 소환시킨 뒤 전한 이 이야기.

그러니 좀 더 즐겁고 부유하게 살고 싶다면, 무엇보다 현자들을 피하고 좀 더 짐승 같은 이들과 어울려야 합니다. 요컨대 어디를 둘러보아도 교황이나 군주, 재판관, 방백, 친구, 고관대작, 말단관리 할 것 없이 그들 가운데 돈이 있어야 모든 일이 돌아갑니다. 그런데도 현자들은 돈을 멸시하니 그들을 만나면 여러분은 얼른 피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겠습니다. - page 211

묘하게 뼈 때리는 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오지 않나요!

자화자찬하며 연설하는 모습이 그야말로 '돈키호테'와도 닮아있었습니다.

아니, 우신이 먼저이겠군요.

아무튼 병맛 히어로가 날린 따끔한 일침이 통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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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툰! 짐승친구들 - 돌격! 사람과 4마리 짐승들의 싱글벙글 대환장 스토리
짤태식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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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잘 몰랐는데...

우리 아이는 유튜브에서 봤다면서 무척이나 반가워했습니다.

이미 '짐승친구들'은 구독자 수 230만 유튜브 채널 '짤툰'의 가장 인기 있는 시리즈로, 4년 동안 연재 중인 짤툰의 장기 콘텐츠이자 대표 콘텐츠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나 오랫동안 했다는 건 그만큼 두터운 팬층이 있다는 사실일 테니 궁금했습니다.

어떤 매력을 지니고 있기에...

유수민과 짐승친구들.

그들의 일상 속으로 저도 한 번 가 보았습니다.

오늘은 누구 인생 조질까

오늘은 누구에게 엿 멕일까

유수민과 짐승친구들의

파란만장한 일상을 담은 '병맛' 코미디 만화!

짤툰! 짐승친구들



앗!

그림체부터 심상치 않았습니다.

이건 코미디의 스멜이 스멀스멀~

웃을 준비는 되었고 첫 장을 펼쳤습니다.

우리의 주인공들 소개가 있었습니다.



자기소개를 짧게 요약해 보자면

오로지 팻말로만 소통하는 슈퍼 인싸견 '김현식'

"찌발럼아!!!"를 달고 사는 고양이 '땅땅이'

팩 폭하는 (고자) 비둘기 '새대갈'

실험쥐 출신 귀여운 마스코트 '슘댱이'

그리고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모솔찐따' '유수민'

이들의 파란만장하고 유쾌한 일상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정말 간만에 크게 웃어보았습니다.

병맛인데 점점 그들에게 스며든다고 할까.

왜 사람들이 좋아하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웃을 일 없는 요즘 찐웃음 터지게 하는 매력!

유튜브로 보면 더 재미나지 않을까.

(실제로 유튜브를 찾아보았는데... 책보다 더 재미났었습니다. 한 번만 보고 끝낼 수 없었던...)

책 속엔 11개의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개인적으로 <사이버 추석>에서 너무 웃다 눈물이 찔끔 났었습니다.

'추석'이 뭔지에 대해 설명하는 유수민

추석이 뭠걍?

있어~

뭐 친척들 다 모여서

자식 대학이나 직장

비교한 다음에, 잔소리

오지게 듣고 사촌 동생한테

닌텐도 뺏기는 날~ - page 58

코로나 시국이라며 어떻게든 안 가고 싶었던 유수민.

그 해결책으로 할아버지는 화상채팅으로 추석을 보내자고 하시는데...

하... 삼촌이 옳았어...

차라리 화나게 해서

강퇴당하는 게 낫지...

저렇게 8시간 동안

쉬지 않고

얘기하실 줄이야... - page 74

다음 날 사이버 차례를 하게 되는데...

ㅋㅋㅋ

상상 그 이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이 책을 보지 않았다면 제 개인적으론 굳이 이 그림체의 만화를 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제 편견을 깨주었다고 할까!

앞으로 그들의 활약이 기다려졌습니다.

시기적절하게 이 책을 만나서 좋았습니다.

머리 복잡했었고 가슴 답답했었고...

한껏 지쳤었는데 덕분에 리프레시 되었습니다.

우린 오늘부터 친구입니땅!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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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인간적인 미래
윤송이 지음 / 웨일북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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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우리는 AI와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니, 이제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라 할까.

특히 팬데믹을 기점으로 개인 정보 활용에 따른 프라이버시 침해, 디지털 격차로 벌어지는 사회적 불평등, 통제 불능의 사이버 범죄 문제 등 AI 기술의 '편향성'이나 '공정성'과 같은 AI 윤리 문제가 뜨거워지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현시점에서 'AI'에 대해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이슈로 다루어야 하는 건 당연한 문제였습니다.

왜 일론 머스크는 AI를 북한의 핵보다 훨씬 더 인류를 위협하는 문제로 꼽았을까?

왜 빌 게이츠는 AI가 자칫 인류의 마지막 기술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을까?

대한민국 대표 인공지능 전문가인 '윤송이' 박사가 세계적 화두인 '인간과 AI의 새로운 공존'이라는 주제를 꺼내 이 한 권에 AI와 인류의 미래를 고민하는 철학자, 사회학자, 윤리학자, 공학자 등 다양한 분야의 세계 석학들과 인터뷰를 통해

앞으로 닥칠 변화와 문제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세계는 지금 어떻게 지혜를 모으고 있는지

등을 통해 우리에게도 성찰과 모색하게 해 주었습니다.

정답이 없는 AI 시대,

우리는 어떻게 답을 찾을 것인가!

과학 너머의 인류 미래를 향한 거대한 질문과 성찰

가장 인간적인 미래



총 다섯 번의 대담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1장 인간과 인공지능,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

2장 인류 역사상 경험해보지 못한 문제들이 온다

3장 인간의 '생각하는 힘'이 없다면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

4장 인공지능이 디스토피아를 만들지 않으려면

5장 옳고 그름의 경계가 사라진 시대, 선을 다시 세우다

과학 영역인 AI를 인간과 사회의 영역, 나아가 인류 미래로의 넓은 시야와 새로운 관점으로의 해석을 선사해 주었기에 한 번은 짚고 넘어가야 했습니다.

"AI가 이제 더 이상

컴퓨터 과학 분야 틈새에 있는

고립된 하위 영역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아주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AI에 관련된 질문은 정답이 없기에 이를 둘러싸고 수많은 의견이 쏟아지면서 불편과 혼란을 야기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AI 기술 자체는 인류에게 기회일 수도, 위기일 수도 있다는 것, 기술 개발 과정을 잘 다루지 못하면 위협이 되겠지만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이라는 보편적 가치에 초점을 둔다면 AI는 인류 사회 진보에 이바지하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AI와 관련된 모든 이들의 지속적 참여와 연대, 협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

어쩌면 당연히 아는 사실이겠지만 다시금 되짚어 보면서 새겨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기술이란

특정 전문 분야에만 속한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일부입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것에 개입되어 있어요."

수많은 편견과 모순으로 가득한 인간.

그런 인간을 모방해 정보를 습득하고 학습하도록 프로그래밍된 AI.

이 얽히고설킨 관계 속에 저자는 마지막에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우리가 맞이할 미래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이루고 이해도를 높이기 위한 사회적 담화는 무엇이며, 철학자와 윤리학자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네. 말씀하신 질문은 철학자의 역할에 대한 것이 하나의 문제고, 또 다른 문제는 우리가 얼마나 많은 의사 결정을 AI나 슈퍼컴퓨터에 떠넘길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대부분 AI는 데이터에서 다양한 패턴을 찾아내거나 데이터를 다양한 차원에 따라 정렬하는 도구로 활용됩니다. AI를 통해 추출한 데이터와 관련해 의미 있는 의사 결정을 내리는 것은 바로 인간이죠. 그러니까 매우 추상적인 문제는 '우리 인간은 과연 어떤 상황에서 기계가 의사 결정을 내리도록 할 것인가'입니다. - page 263

결국 우리 인간으로부터 시작과 끝이라는 것을.

가장 인간적인 미래를 위해선 많은 이들의 관심과 사회적 합의가, 끊임없는 성찰이 필요함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한 번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를 저자를 통해, 이 책을 통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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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하리의 절규
델리아 오언스.마크 오언스 지음, 이경아 옮김 / 살림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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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다큐멘터리를 좋아합니다.

재미있고 감동적인, 모든 감정과 인생이 그려져 있기에, 특히나 '자연'과 관련된 이야기는 자연의 섭리에 따라 살아가는 이들에게서의 묵직한 한 방이...

공존과 상생, 그 이상의 화두를 던지기에 지금을 살아가는, 앞으로 살아갈 이들을 위해 지녀야 할 마음가짐을 다잡아볼 수 있기에 되도록 찾아보거나 읽는 편입니다.

이번 이 책은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의 초기 대표작이자 오언스 부부가 아프리카 칼라하리에서 7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사자, 갈색하이에나, 자칼 등 온갖 동물의 행동과 생태에 관하여 연구한 과학보고서이자 그들과 자연을 공유하며 겪은 이야기들을 묶은 휴먼드라마라 하였습니다.

이미 『가재가 노래하는 곳』에서도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화두를 던졌기에.

특히나 이 책은 그 전제가 될 수 있는 초기작이기에.

꼭 읽어봐야했습니다.

"동물을 사랑하고, 야생의 삶을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책을 읽어야 한다"

_제인 구달

칼라하리의 절규



아프리카에 대한 동경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아프리카에서 야생이 사라져가는 현실에 아프리카의 육식동물을 연구함으로써 환경 보호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데 도움을 주고 싶어서였을까.

아무튼 아프리카에 가겠다는 결심으로 젊은 생태학자 마크와 델리아 오언스가 아프리카 칼라하리에 가게 됩니다.

아프리카에서도 원시의 자연을 간직한 곳 '그레이트 서스트'.

이곳은 아일랜드보다 더 넒은 야생 지역으로 구석기 시대 부시맨들밖에 가본 사람들이 없을 정도로 오지 중의 오지.

마실 물도 부족하고 살인적인 무더위는 말할 것도 없고 변변한 은신처조차 없기 때문에 매순간이 생사의 갈림길에서 헤매기 일쑤였습니다.

그럼에도 사자, 하이에나, 자칼 등을 연구하며 전한 이들의 이야기가 저에게도 많은 화두를 남겨두었습니다.

특히 인간에 대해서...



자연의 섭리대로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

특히나 갈색하이에나로부터 우리는 어떠한지 되짚어보기도 하였습니다.

암컷은 평생 태어난 무리에 남아 있기 때문에 무리가 클수록 이롭다. 하지만 수컷은 성장하면 무리를 떠난다. 게다가 무리에서 떠나 떠돌이 생활을 하거나 다른 무리에 들어가기 때문에 태어난 무리가 커져도 직접적으로 득이 될 일도 없다. 평균적으로 아버지가 다른 형제는 사촌보다 유전자를 두 배나 더 공유한다.

이런 이유로 갈색하이에나 새끼들은 무리의 암컷 보두와 가장 가까운 피붙이 수컷들의 손에서 자랐다. 언뜻 보기에 이타적으로 보이는 동물의 행동이 진화해온 상황에는 자연선택이 작용하고 있음을 이해함으로써 동물들의 이타적 행동은 결국 자신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자연스러운 요소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새끼를 낳은 적이 없는 더스티가 삼 남매에게 먹이를 주는 모습을 보면서 여러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과연 이 자연계에 순수한 이타주의가 존재하기는 할까? 사람이라고 그게 가능할까? 우리는 왜 아프리카에 와서 혹독한 환경에서 몇 년 동안 고생을 했을까? 순수하게 동물만을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우리 자신을 위한 마음도 약간은 있었을까? - page 396

무엇보다 마음이 아팠던 '본즈' 이야기.

첫 번째 환자였다가 친구가 되었고 어느새 마스코트가 되었던 사자 본즈.

하지만...

과학자로서 우리는 본즈의 죽음에 대해 그 누구도 탓할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본즈는 합법적인 사냥 전리품이었다. 자연보호구역을 제 발로 떠난 것이지 사냥꾼이 끌어낸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사냥을 세심하게 잘 조절하면 자연보호구역에서 특정 동물이 과도하게 번식하는 것을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정부가 사냥이나 관광 등, 돈벌이 수단으로 돈을 벌어들일 때만 야생의 자연을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주장한다. 보츠와나의 현실을 잘 알기 때문에 우리는 본즈의 죽음에 대해 감정을 배제한 채 이성적으로 판단하려고 노력했다. - page 290

하아...

그야말로 실질적인 방책 마련이 시급한 것임을.

지금 이 순간에도 목숨을 잃는 그들에게 면목이 없었습니다.

안타깝게도 하우 호수에는 아직도 사냥금지 캠프가 설치되지 않았다. 이동하는 누에 대한 밀렵과 학대는 여전하다. 현지인들은 차를 타고 누를 쫓으며 사냥개를 풀고 총을 쏘거나 때려 죽인다. - page 454

무턱대고 야생은 사납고 무서우며 무질서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은 우리보다 더 지혜롭고도 경이롭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위치에서 생태계를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생태계를 파괴하는 건 결국 '인간'이라는 사실.

총 맞은 것처럼 가슴이 아파왔습니다.

그렇기에 최재천 교수님의 말씀을 깊이 새겨야했습니다.

인류 역사 내내 자연이 우리를 먹여 살렸고, 이제 또 다시 우리는 자연의 품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다. 나는 21세기를 맞으며 우리 인간이 스스로 '현명한 인간(Homo sapiens)'이라 부르는 자만을 반성하고 자연과 더불어 살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며 '공생인(Homo symbious)'으로 거듭날 것을 제안한 바 있다. 우리 인간이 자연계에서 가장 우수한 두뇌를 지녔다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나는 우리가 현명하다는 점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진정으로 현명하다면 우리의 삶의 터전까지 망가뜨리며 살지는 말았어야 했다. 우리는 제 꾀에 넘어가는 헛똑똑한 동물일 뿐이다. 하나뿐인 이 지구에서 자연과 공생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생명의 보고 칼라하리를 어떻게 보전하는가는 우리의 의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지금도 칼라하리는 절규하고 있다. 그 절규가 우리의 절규가 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_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교수, 생명다양성재단 대표

이토록 좋은 책을 만나게 되어 다행이었고, 더 이상 칼라하리가 절규하지 않도록 저 역시도 함께 고민해 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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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가는 직업 - 단절된 꿈을 글로 잇는 삶 마음산책 직업 시리즈
유성은 지음 / 마음산책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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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육아를 한지가 8년 차가 된 요즘.

만 가지 생각으로 복잡하곤 합니다.

몇 번이나 찾아왔던 육퇴기와 지금...

무너지지 않기 위해 책을 잡았었고 읽으면서 스스로를 다잡아보곤 합니다.

그러다 이 책이 눈에 띄었습니다.

책 소개글을 읽는데...

10여 년간 수학자의 아내로, 두 딸의 엄마로 가정을 꾸리는 데 충실해 온 삶. 그러나 생활의 안정은 요원해 보이고 '나'라는 존재는 지워져만 가는 듯한 초조함. 저자는 전업주부에게 곧잘 '엄마태만' 같은 딱지를 붙이는 사회의 시선에 위축되는 자신을 위로하고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벌써부터 공감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잃어버린 꿈을 좇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저도 잊혀졌던 꿈을 되찾아보고 싶기에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글쓰기로 삶을 재설정하다

잃어버린 꿈을 좇는 사십대 전업주부 분투기

나를 찾아가는 직업



아동문학가였던 할아버지 서재를 제 방처럼 드나들던 유년 시절부터 아버지를 따라 프랑스에서 학교를 다니며 미술에 눈을 뜨게 된 청소년기를 거쳐 대학생이 되어 다시 찾은 한국에서 불문학과에 진학하기까지.

그녀의 생애에는 글과 그림이라는 '창작물'이 바짝 붙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혼, 출산, 육아는 그녀의 꿈을 앗아가게 되었고...

지금까지 나는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내 안에 잠재되어 있을지도 모를 예술성의 흔적을 지우는 데 썼다. 잠자는 것까지 잊고 끼적이던 글들도, 친한 친구에게 언젠가 꼭 글을 쓰고 싶다고 전한 진심도 주정으로 덮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신병 같은 것이었나 보다. 늦은 나이에도 결국 문학의 길을 밟은 할아버지처럼, 대를 이어 도망가기도 끊기도 어려운. - page 85

입덧이 끝났는데도 느껴지는 멀미와 헛헛함이 세상에 나의 것을 배출하고 싶은 욕구 때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무시했던 그녀.

끊임없이 소창 기저귀를 만들어내며 조각가 루이즈 부르주아가 늦은 나이에 거대한 거미 조각을 만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가슴 깊이 와닿았지만 모르는 척했던 그녀.

그러다 『마당을 나온 암탉』의 저자 황선미 작가에게 글쓰기 수업을 듣고 난 뒤 본격적인 글쓰기를 시작하게 됩니다.

'나에 대한 이야기'를 쓰면서...

나는 가장 어두운 순간은 늘 '결정적인 순간' 앞에 온다고 생각한다. 동이 트기 전, 세상은 가장 어두우니까. 어둠 속을 헤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 속에서 우리는 참 많은 것을 내려놓게 된다. 처음에는 뾰족구두를, 가죽 가방을, 예쁜 옷 그리고 알량한 자존심을. 마지막으로 죽어도 포기하지 못할 소중한 '단 하나'가 덜렁 남았을 때 우리는 비로소 태양과 마주하게 된다. 내가 포기하지 못한 마지막 한 가지는 '나'였다. 나는 이제 겨우 나를 덮고 있던 흙 너머의 글쓰기라는 여린 빛줄기를 본 듯하다. "모든 우거진 나무의 시작은 기다림을 포기하지 않은 씨앗"이라는 호프 자런의 말처럼 나의 기다림도 이제 싹을 틔울 준비를 마친 것 같다. - page 206 ~ 207

무엇보다 이 이야기가 참 인상적이었는데...

전업주부가 어린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다는 행위에는 아직도 딱지가 붙는다. 업무태만, 아니 '엄마태만' 같은. 나는 부정적인 주위 시선에 무너지지 않으려고, 나를 위해 처음 시작한 이 공부를 취미로 끝내지 않으려고 눈만 마주치면 아이들을 붙들고 '꿈' 이야기를 했다.

"엄마는 다 컸는데 왜 아직도 꿈이 있어?"

수업을 갈 때마다 헤어지기 싫어 울어대던 첫째가 물었다. 나는 어떤 꿈은 나이가 들면 더 선명해지기도 하고 더 간절해지기도 한다고 이야기해주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나도 믿지 않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엄마는 꿈이 뭔데?"

"엄마 꿈은, 엄마의 이야기를 세상에 남기는 거야." - page 115 ~ 116

이 글을 자꾸만 되뇌게 되었었습니다.

저 역시도 아이가 '꿈'에 대해 물었었고 거기에 대답을 제대로 못했기에...

내 꿈이... 뭘까...

그래서 방황하는 것이었을까...

그녀의 이야기는 책이 되었고 이제는 '작가'로 자신의 꿈을 펼쳐나가고 있었습니다.

그 글을 통해 저에게도 '꿈'의 씨앗을 심어주었으니 이제는 싹 틔울 시간이 되었습니다.

단단한 껍질을 깨고 나올 나의 꿈.

한 줄기 꽃으로 완성될 때까지 저도 힘을 내보려 합니다.

인생에 시기라는 것이 있을까? 늦고 이르고의 기준이 헷갈린다. 봄에 폈다면 다른 화려한 꽃에 묻혀 평범하게 져버릴 동백이 겨울에 핀다는 이유만으로 환영을 받는 것은 동백에게는 좋은 일이지만, 봄에 꽃을 피우지 않았다고 해서 동백이 봄에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글을 쓰지 않은 동안에 살면서 경험했던 모든 것들이 글을 쓰는 것만큼 중요한 것처럼 말이다. 봄을 계절의 시작이라고 하지만 관점에 따라 겨울이 계절의 시작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동백은 빨리 피는 꽃인 셈이다. 게다가 사랑의 종착지가 결혼이 아니듯 인생이라는 것의 목표가 꽃을 피우는 일만은 아닐 텐데 신동이니 늦깎이니 하는 것도 결과 지향적으로만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다.

늦게 피고 빨리 피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본인의 정서로 피기만 하면 그만이다. 동백은 동백만의 정서로 자라고 있을 뿐이다. - page 205 ~ 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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