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문학가였던 할아버지 서재를 제 방처럼 드나들던 유년 시절부터 아버지를 따라 프랑스에서 학교를 다니며 미술에 눈을 뜨게 된 청소년기를 거쳐 대학생이 되어 다시 찾은 한국에서 불문학과에 진학하기까지.
그녀의 생애에는 글과 그림이라는 '창작물'이 바짝 붙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혼, 출산, 육아는 그녀의 꿈을 앗아가게 되었고...
지금까지 나는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내 안에 잠재되어 있을지도 모를 예술성의 흔적을 지우는 데 썼다. 잠자는 것까지 잊고 끼적이던 글들도, 친한 친구에게 언젠가 꼭 글을 쓰고 싶다고 전한 진심도 주정으로 덮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신병 같은 것이었나 보다. 늦은 나이에도 결국 문학의 길을 밟은 할아버지처럼, 대를 이어 도망가기도 끊기도 어려운. - page 85
입덧이 끝났는데도 느껴지는 멀미와 헛헛함이 세상에 나의 것을 배출하고 싶은 욕구 때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무시했던 그녀.
끊임없이 소창 기저귀를 만들어내며 조각가 루이즈 부르주아가 늦은 나이에 거대한 거미 조각을 만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가슴 깊이 와닿았지만 모르는 척했던 그녀.
그러다 『마당을 나온 암탉』의 저자 황선미 작가에게 글쓰기 수업을 듣고 난 뒤 본격적인 글쓰기를 시작하게 됩니다.
'나에 대한 이야기'를 쓰면서...
나는 가장 어두운 순간은 늘 '결정적인 순간' 앞에 온다고 생각한다. 동이 트기 전, 세상은 가장 어두우니까. 어둠 속을 헤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 속에서 우리는 참 많은 것을 내려놓게 된다. 처음에는 뾰족구두를, 가죽 가방을, 예쁜 옷 그리고 알량한 자존심을. 마지막으로 죽어도 포기하지 못할 소중한 '단 하나'가 덜렁 남았을 때 우리는 비로소 태양과 마주하게 된다. 내가 포기하지 못한 마지막 한 가지는 '나'였다. 나는 이제 겨우 나를 덮고 있던 흙 너머의 글쓰기라는 여린 빛줄기를 본 듯하다. "모든 우거진 나무의 시작은 기다림을 포기하지 않은 씨앗"이라는 호프 자런의 말처럼 나의 기다림도 이제 싹을 틔울 준비를 마친 것 같다. - page 206 ~ 207
무엇보다 이 이야기가 참 인상적이었는데...
전업주부가 어린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다는 행위에는 아직도 딱지가 붙는다. 업무태만, 아니 '엄마태만' 같은. 나는 부정적인 주위 시선에 무너지지 않으려고, 나를 위해 처음 시작한 이 공부를 취미로 끝내지 않으려고 눈만 마주치면 아이들을 붙들고 '꿈' 이야기를 했다.
"엄마는 다 컸는데 왜 아직도 꿈이 있어?"
수업을 갈 때마다 헤어지기 싫어 울어대던 첫째가 물었다. 나는 어떤 꿈은 나이가 들면 더 선명해지기도 하고 더 간절해지기도 한다고 이야기해주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나도 믿지 않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엄마는 꿈이 뭔데?"
"엄마 꿈은, 엄마의 이야기를 세상에 남기는 거야." - page 115 ~ 116
이 글을 자꾸만 되뇌게 되었었습니다.
저 역시도 아이가 '꿈'에 대해 물었었고 거기에 대답을 제대로 못했기에...
내 꿈이... 뭘까...
그래서 방황하는 것이었을까...
그녀의 이야기는 책이 되었고 이제는 '작가'로 자신의 꿈을 펼쳐나가고 있었습니다.
그 글을 통해 저에게도 '꿈'의 씨앗을 심어주었으니 이제는 싹 틔울 시간이 되었습니다.
단단한 껍질을 깨고 나올 나의 꿈.
한 줄기 꽃으로 완성될 때까지 저도 힘을 내보려 합니다.
인생에 시기라는 것이 있을까? 늦고 이르고의 기준이 헷갈린다. 봄에 폈다면 다른 화려한 꽃에 묻혀 평범하게 져버릴 동백이 겨울에 핀다는 이유만으로 환영을 받는 것은 동백에게는 좋은 일이지만, 봄에 꽃을 피우지 않았다고 해서 동백이 봄에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글을 쓰지 않은 동안에 살면서 경험했던 모든 것들이 글을 쓰는 것만큼 중요한 것처럼 말이다. 봄을 계절의 시작이라고 하지만 관점에 따라 겨울이 계절의 시작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동백은 빨리 피는 꽃인 셈이다. 게다가 사랑의 종착지가 결혼이 아니듯 인생이라는 것의 목표가 꽃을 피우는 일만은 아닐 텐데 신동이니 늦깎이니 하는 것도 결과 지향적으로만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다.
늦게 피고 빨리 피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본인의 정서로 피기만 하면 그만이다. 동백은 동백만의 정서로 자라고 있을 뿐이다. - page 205 ~ 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