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신예찬 - 라틴어 원전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45
에라스무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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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게 된 건 이 문구 때문이었습니다.

『돈키호테』 저자 세르반테스, 그리고 셰익스피어에게 영감을 준 역작

이렇게나 위대하고 영향력 있는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다는데...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지 기대가 되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를 상징하는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의 대표 저작

종교 권력의 최정점에서도 유머와 진실의 힘으로,

중세를 끝내고 르네상스 부흥기를 열다

우신예찬



우신이 말한다.

세상 사람들은 우신인 나에 대해 온갖 말을 해댑니다. 어리석은 자들조차 우신에 대해 나쁘게 말한다는 것을 나도 잘 압니다. 하지만 장담하건대 신들과 사람들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능력을 가진 자는 나말고는 없습니다. 내가 여기 구름처럼 모여든 군중 앞에서 연설하기 위해 연단에 오르자마자, 어떤 새롭고 예사롭지 않은 기쁨으로 모두의 얼굴이 갑자기 밝아지고 이마의 주름이 금세 펴지며 환한 웃음으로 내게 환영의 박수갈채를 보내는 것이 그 사실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입니다. - page 19

나 자신, 즉 어리석음의 신인 우신을 예찬하는 연설.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하기를 좋아하고 또 말하는 그녀.

해학에서 풍자로, 풍자에서 역설로 진행하면서 '어리석음'의 어두운 면과 밝은 면을 모두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씨를 뿌리지 않고 밭을 갈지 않아도' 모든 것이 저절로 자라나는 행복의 섬에서 웃으면서 태어난 '어리석은 신' 모리아, 우신.

만취와 무지의 보살핌을 받는 젊음과 부의 딸이었습니다.

생명 탄생의 주역이자 삶의 유익한 모든 것을 제공하는 우신.

정말 우신 없이는 인간관계도 사회도 유지될 수 없음을 이야기하고 있기에 더없이 고마운 존재인 듯이 예찬하고 있지만 그 속엔 '가짜 현자들'-학자, 저술가, 법률가, 변증가, 수도사, 귀족, 군주, 성직자 등-의 부패와 죄악을 속 시원한 풍자와 해학으로 그려지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불쾌한 부분이었을지라도 웃음을 가져다줄 유쾌한 것들로, 그렇지만 반드시 짚고 가야 할 문제들에 대해선 지나가는 말로 요점만 간추려 이야기한 부분이 마냥 가볍지 않은 이야기였고 5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닐까 생각 들었습니다.



솔직히 어리석음을 예찬한 동기와 이유가 무엇인지, 저자는 왜 이 책을 썼는지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었다면 난해하지 않았을까란 생각도 해 봅니다.

하지만 이 책에선 그런 저 같은 독자를 위해 해제를 통해 당시의 사회 종교 및 문화 배경에 대한 설명이 있었기에 읽고 난 뒤에 조금씩 이해해 나갈 수 있었고 풍자와 해학의 묘미도 맛볼 수 있었습니다.

『우신예찬』은 어리석음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포괄하여 인간의 모든 행복이 어리석음에 달려 있음을 보여주는 책입니다. 그러하기에 최고의 직위에 있는 왕과 교황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류의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성경에서 일종의 어리석음을 갖고 있다고 말하는 사도들은 물론 그리스도에 대해서도 이야기합니다. 사도들이나 그리스도가 진정한 의미에서 어리석다고 사람들이 착각할 위험은 전혀 없습니다. 사도들과 그리스도도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의 성정에 따른 연약함이 있어 그것을 일종의 어리석음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들이 지닌 어리석음은 세상의 모든 지혜를 이기지만, 저 영원하고 순수한 지혜에 비하면 어리석다고 할 수 있습니다. - page 273

우신이 자신을 최고 신으로 소개하는 이 이야기로부터 범상치 않게 흘러가리라 생각되었었습니다.

현자들이 늘 하던 대로 먼저 결혼생활의 득실을 세심히 따졌다면, 어떤 남자가 자청해서 자기 입에 결혼이라는 재갈을 물리려 하겠습니까? 출산의 위험과 산고, 양육의 괴로움을 알고 있거나 짐작이라도 했다면, 어떤 여자가 남자를 받아들이려 하겠습니까?

생명이 결혼에서 비롯되고, 결혼은 나의 시녀인 '경솔'에서 비롯되므로, 결국 생명이 내게서 비롯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게다가 여자들이 이런 일을 한번 경험하고 나서 또다시 반복하는 것은 나의 시녀인 '망각'이 곁에서 도와주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

이렇게 나로 말미암아 술에 취해 웃고 떠들고 논 덕분에 저 콧대 높은 철학자들, 오늘날 그들의 자리를 계승한 이른바 수도사들, 자주색 옷을 걸친 군주들, 경건한 사제들과 그들보다 세 배는 더 거룩한 교황들이 태어난 것입니다. - page 40 ~ 41

그리고 선생, 시인, 수사학자, 저술가, 법률가와 변증가, 철학자, 신학자, 수도사, 군주, 궁정 귀족, 주교, 추기경, 교황, 사제 들을 차례로 소환시킨 뒤 전한 이 이야기.

그러니 좀 더 즐겁고 부유하게 살고 싶다면, 무엇보다 현자들을 피하고 좀 더 짐승 같은 이들과 어울려야 합니다. 요컨대 어디를 둘러보아도 교황이나 군주, 재판관, 방백, 친구, 고관대작, 말단관리 할 것 없이 그들 가운데 돈이 있어야 모든 일이 돌아갑니다. 그런데도 현자들은 돈을 멸시하니 그들을 만나면 여러분은 얼른 피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겠습니다. - page 211

묘하게 뼈 때리는 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오지 않나요!

자화자찬하며 연설하는 모습이 그야말로 '돈키호테'와도 닮아있었습니다.

아니, 우신이 먼저이겠군요.

아무튼 병맛 히어로가 날린 따끔한 일침이 통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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