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행복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병률 지음 / 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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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글을 좋아합니다.

다정히 건네는 안부 인사에,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따스한 위로에 지치고 외로울 때면 그의 책을 펼쳐 읽곤 합니다.

그래서 전작 『혼자가 혼자에게』 이후 3년 만에 신작을 내놓았을 때 얼른 구매를 하였지만...

뭐가 그리도 바빴던 걸까...

이렇게 시간이 흘러 이번에야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지금 읽게 된 것이 다행이었을까.

몸과 마음이 시렸던 요즘.

특히나 나이의 앞자리 숫자가 바뀌면서 싱숭생숭했던 요즘.

더할 나위 없이 따뜻했고 행복했습니다.

오래 만나세요.

셀 수 없고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최고의 기억을 담으세요.

중요한 건 사랑한 만큼의 여운일 테니.

그 여운으로 힘이 드는 건 아무것도 아닐 테니.

그리고 행복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사랑'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기에 더 어려운.

그럼에도 사랑은 사람의 일이기에 이끌리듯 하고 마는 것.

그렇게 사랑을 하다 보면 어느새 주인 되는 것.

이 책을 읽으면서 '주인공'이 되었다면 책을 덮으면서 '주인'이 되고자 했던 마음이 컸습니다.

갈 수 없는 곳에 도달할 수 있으며, 얼마나 걸리는지 알 수 없으며, 그럼에도 시종 가슴이 울렁거리는 일, 넘치는 그것은 사랑이다. 그 길에 흐드러지게 꽃이 열리고, 귓가에 큰물이 굽이쳐 페달을 굴리고, 모든 시야에 걸려드는 사소함을 환각하는 일, 배고픈 그것은 사랑이다.

사랑을 배운 적이 없어서, 사랑을 하지 못하는 당신이 사랑을 하지 못하고 있을 때도, 세상은 사랑의 풍경을 보여주며 페이지를 넘긴다. 그러니까 당신아, 우리는 그 페이지를 따라 여행해야 하고, 그 길에서 나 자신을 에워싼 모두를 괴롭혀서라도 영혼을 다 소모할 수 있을 때만 이번 생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주인공 말고 주인이. - page 49

45가지 사랑 이야기.

시인의 시선으로 바라보았기에 더 애틋하게 감성적으로 다가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좋았던 이야기 <좋아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었습니다>.

누군가, 당신을 좋아하고 있습니다.

그걸 당신은 모릅니다.

...

당신을 좋아하는, 바로 그 누군가가 당신에게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으냐고 물었을 때도 당신은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말했을 뿐입니다. 당신을 좋아하고 있는 그 누군가는 그 대답에 맥이 빠졌지요. 그 사람이 지닌 사랑의 감정은 세상 그 무엇보다도 치열했으니 막연히 행복이나 바란다는 말은 그저 나무늘보가 늘 하는 잠꼬대 같은 것으로 들렸을 테니까요. - page 87

짝사랑하는 이의 마음.

이에 대한 표현이 시적으로 다가왔던 이 문장들.

새 한 마리가 하늘을 장악할 수 있다면 과연 그 면적은 어느 정도나 될까요? 정확히 백 마리가 모여야 남쪽으로 이동할 수 있는데, 아흔아홉 마리가 마지막 한 마리의 새를 기다리면서 먼 비행 준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한 마리가 보태져 무리가 완성될 때만 하늘을 한번 출렁, 흔들어놓을 수 있을 테니 마지막 한 마리가 차지하는 배열은 무대의 전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그 한 마리 새입니다. 한번 더, 당신 마음에 전부를 실어보세요. 그 무게로 당신 마음의 단단한 가죽이 찢어져 마음을 쏟아내게 될 겁니다. 그렇다고 흘린 것을 주워 담으려고 하지는 마세요. 저 푸르고 높은 하늘을 단숨에 가로질러 지금 얼른 그 사람에게 도착하세요. - page 89

직접적이지 않기에 더 표현이 풍부하게 해주는 시적인 비유.

사랑하는 일.

그 아름답고도 슬픈, 나아가 위대하고도 숭고함에 오늘 제가 가진 사랑은 작더라도 그 사랑에 기대어보려 합니다.

한 사람이 한 사람에게 미지근한 감정의 부스러기만을 건네려 할 때도, 어떤 힘있는 표현은 그 한 사람을 살게도 합니다. 사랑이 그렇습니다. 짧게 줄여진 말이나, 직접적으로 하지 않은 말들 속에는 마치 뭔가가 발견되기를 기다렸다는 듯 우주가 꿈틀거리기 시작합니다. 사랑이 그렇습니다.

사랑은 죽은 사람을 깨우기도 합니다. 정신 못 차리는 사람을 정신 차리게도 하고, 제정신인 사람을 정신 못 차리게도 하는, 세상 모든 축제를 한데 몰아넣고 끓이는 용광로가 사랑인 겁니다.

그렇더라도 내 사랑은 작습니다. 비틀비틀 빛나는 별처럼 작습니다. 내 사랑은 말줄임표일지도 모르며, 직접 말하지 않는 그놈의 메타포 중독일 수도 있습니다. 단 한순간도 씩씩할 수 없어서 포스트잇에 몇 줄을 적어 건네지도 못하는, 그만큼 내 사랑은 작습니다. - page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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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황보름 지음 / 클레이하우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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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이라는 공간이 주는 느낌.

그 느낌을 좋아라하는 1인이기에 이 소설 역시도 나오자마자 읽어보고자 했었는데...

어쩌다 보니 책장에 고스란히 간직만 하고 있었습니다.

뭐라고 설명할 순 없지만 갑자기 이 소설이 읽어보고 싶다는 충동이 생겼었고, 그래서 책장에서 이 책을 꺼내들게 되었습니다.

표지만으로도 뭔가 힐링 되는 느낌.

벌써부터 가슴 한구석에서부터 따스함이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과연 이 서점에서는 어떤 이야기들이 펼쳐질지 기대를 해 보며...

서점이라는 공간에 있으면,

우린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되니까요

휴남동 가정집들 사이에 문을 연 평범한 동네 서점,

이곳에 크고 작은 상처와 희망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둘 모인다.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휴남동 가정집들 사이에 문을 연 평범한 동네 서점 '휴남동 서점'.

서점이 뿜어내는 은은한 분위기가 동네 사람들을 끌어들였지만, 이내 발걸음이 줄어들게 됩니다.

그 이유는 몸속에 피가 한 방울도 남아 있지 않은 사람처럼 하얗게 앉아 있는 '영주' 때문이었습니다.

주인이지만 마치 손님인 듯 어색하게 서점에 가만히 앉아 책만 읽는 영주.

그런 영주에게 민철 엄마의 이야기는

"병자였는데 병자처럼 굴면 안 되니까 더 힘들었던 거지. 아픈 걸 말하지 못하는 게 억울해서 밤마다 울었어. 만약 그때 나도 영주 사장처럼 맥없이 앉아 ㅅ간을 보낼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싶어. 그러면 조금 더 빨리 울음을 그칠 수 있었을 거야. 나 정말 오래 울었어. 울고 싶을 땐 울어야 해. 마음이 울 땐 울어야 한다고. 참다 보면 더디게 나아." - page 16

민철 엄마 말처럼 몇 개월 동안은 자신도 모르게 자주 울었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 순간 눈물이 흐르지 않았을 때 비로소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더 많은 손님을 끌어들이려 하기보다 우선 휴남동 서점이 서점의 꼴을 갖추는 데 주력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책도 늘고, 독서 모임도 생기고, 글쓰기 강의도 시작되면서 서점은 서점 다운 모습을 갖추게 되고 이곳에 모여드는 사람들로부터 서점이 완성되게 됩니다.

저마다 크고 작은 상처를 지닌 이들이 모여 진솔하고 깊이 있는 대화를 통해 앞으로 나아가는 법을 깨닫게 되는 이곳으로부터의 초대.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이 '서점'의 의미를 찾아보자면...

하루 중 이 시간만 확보하면 그런대로 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야. 우리 인간은 복잡하게 만들어졌지만 어느 면에선 꽤 단순해. 이런 시간만 있으면 돼. 숨통 트이는 시간. 하루에 10분이라도, 한 시간이라도. 아, 살아 있어서 이런 기분을 맛보는구나 하고 느끼게 되는 시간. - page 195

그러자 갑자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느낌. 휴남동 서점을 처음 찾은 날 받았던 느낌이었다. 왜 이런 느낌이 또 드는 거지. 정서는 이 집에서도 자기가 받아들여지는 것만 같다고 느끼는 자체가, 이 느낌을 자기가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자체가, 놀라우면서도 슬펐다. 하지만 그녀는 이 슬픔이 좋은 슬픔이라고 생각했다. 이제야 무엇이 문제였던 건지 이 감정을 통해 확실히 알게 되었으니까. - page 205

이런 시간을, 이런 기분을 맛볼 수 있는 곳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바쁜 일상에서 잠시나마 한숨을 돌릴 수 있는, 다른 이와의 연대를 느낄 수 있는 곳이 '서점'이란 공간이기에 저 역시도 서점을 찾는 이유였습니다.

책과 사람과 공간이 따스했던 휴남동 서점.

저도 그곳으로부터 직접적인 위로를 받아보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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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삭제소 커피페니 청담
이장우 지음 / 북오션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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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상을 해 본 적이 있었습니다.

기억을 자유자재로 삭제하고 복원하면 좋지 않을까...

아프거나 슬픈 기억은 지우고 좋은 기억은 잊지 않게 오랫동안 간직하고픈...

아마 모두가 이런 상상을 해 보지 않았을까...?!

이 소설이 바로 '인간의 기억'을 소재로 이야기를 한다고 하였습니다.

기억을 마음대로 저장한다면 모두 행복하지 않을까...?

그 진실은 어떨지 궁금하였습니다.

# 기억을 자유자재로 삭제하고 복원할 수 있다면?

# 무한한 상상력으로 과학과 역사를 넘나드는 기억 세계의 판타지

# 기억을 매개로 인간의 탄생과 진화, 우주의 질서로 뻗어나가는 방대한 서사

기억삭제소 커피페니 청담



"당신은 이제부터 709번째 딜릿스타로 임명되었습니다. 앞으로 당신의 인생은 모두 저희 기억삭제소와 함께합니다. 보상으로는 행복한 시간들이 주어지며 평생을 즐겁고 행복하게 살게 될 것입니다. 축하합니다." - page 11

벌써 10년이란 세월이 흐른 커피페니 청담의 점장 에이미.

"시간 참 빨리 가네. 나도 내 10년을 다 기억하지 못하는 건, 후후. 나조차도 기억을 삭제당하기 때문일까?" - page 12

미소를 띠며 닥터 제닝스의 문자를 다시 바라본 후 숙제를 해야 하는 학생처럼 분주히 업무를 시작합니다.

커피페니 청담에는 에이미를 비롯해 인간 참새이자 귀여워서 큐트까미로 불리는 까미, 까미의 오랜 동료이자 모든 힘든 일을 다 해버리는 멋쟁이 현이 의뢰인의 아프고 힘든 기억을 삭제하고 잊고 있던 행복한 기억을 복원하는 일을 합니다.

에스프레소 샷을 주문하면 기억을 삭제하고 복원할 수 있었습니다.

인간의 뇌를 전송체로 하여 인간의 기억을 저장, 편집, 가공, 재생산하는 뉴클레아스 심해기억저장소.

그런데 최근에 곳곳에서 기억이 조작된 기억 파편들이 발견되게 됩니다.

그 원인이 바로

"자, 위원 여러분들의 의견에 감사합니다. 저희가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은 지난 1년간 전송되어 온 기억 파편들의 품질이 형편없이 떨어진 이유가 지구상에 발병한 COVID-19라는 호흡기질환 때문이라는 사실입니다. 저희가 인류의 미래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으로 인해 저희는 이번의 중대한 질병의 확산에도 인류가 이를 스스로 퇴치학 방어시스템을 만들 것으로 예상하고 지난 1년동안 인류가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질병과 싸우는 동안에도 저희는 개입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온 분석 데이터에 의하면 인류는 이번에 발생한 코로나바이러스를 절대로 제압할 수 없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 page 170

코로나바이러스라는 질병 때문임이 밝혀지게 되고 심해기억저장위원회의 핵심 지도자 닥터 제닝스가 코로나 총사령부의 최고 지휘자인 술탄코로나와 교신하게 됩니다.

"술탄코로나요?"

"하하. 일단은 그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킹코로나, 왕코로나, 황제코로나, 1번코로나, 오야지코로나, 보스코로나, 바구스코로나 등등 온갖 명칭들이 있었지만 위원회는 일단 술탄코로나로 통일하기로 했습니다. 제가 시그널 도 교수님의 AI 알고리즘을 이용한 모듈체어에 앉아서 전송 메시지를 보낸 이후에 코로나바이러스가 보낸 송신 신호를 포착한 것은 프로스트 박사님 연구소였습니다. 신기하게 바로 옆 건물인 프로스트 박사님 연구실로 송신되었습니다. 제가 교신 신호를 보낸 곳은 미국 최초로 전화선을 개통한 보스턴 전신국의 케이블 라인을 통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왜 응답은 MGH 에테르 돔의 프로스트 박사님 연구실 기계로 송신되었을까요? 이 의문은 아직 풀지 못했습니다." - page 214 ~ 215

그리고 밝혀진 코로나바이러스 종족이 절대복종하는 다섯 가지 탄생 신물들.

이에 대해 다섯 가지 탄생 신물을 찾아나서는 뉴클레아스 요원들.

"그걸 아니까 내가 화를 내는 거야. 할아버지는 덜컥 인간 접촉자에게 우리 세계의 다섯 가지 탄생 신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주셨다는 거지. 다섯 가지 탄생 신물이 다 모여서 그 신물을 통해 코로나 세계의 명령을 내리면 어느 누구도 그 명령을 거역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지? 우리 코로나족의 생명 창조의 원천이자 모든 바이러스의 원천을 제공한 다섯 바이러스가 제시하는 탄생 신물의 권위는 절대로 어느 누구도 거역할 수 없어. 지금 우리는 인간들의 몸을 숙주로 삼는 전쟁 중이야. 인간들은 우리 코로나족을 막기 위해 수많은 방법들을 동원하고 있지. 백신, 바이러스를 죽이는 살상제, 치료제 그리고 봉쇄를 통한 인간 숙주와 숙주 사이의 이동 금지까지. 이런 상황 속에서 올겨울에 다가오는 인간과의 2차 대전을 준비하기 위해 전 코로나족이 지금 전투태세를 갖추고 각 대륙별 사령부들과 긴밀하게 협조하는 마당에 덜컥 다섯 가지 탄생 신물이 등장해서 우리가 납득하지 못하는 명령코드가 나온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겠어? 대혼란이 오는 거지. 난 그걸 걱정하는 거야." - page 292

과연 그들은 임무를 완수하고 인류에게 닥친 위기를 해결할 수 있을까?

소설은 우리네 현실과 상상의 세계 속에서 스펙터클하게 이야기를 펼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오직 우리 코로나족의 안전한 번영과 인간과의 평화로운 공존이라는 단 하나의 주제만을 생각했을 뿐이네. 앞으로 수많은 어려운 난관이 있을 것이야. 인간들은 지구상에서 다른 생명체를 가장 많이 해치고, 다른 생명체의 영역을 가장 많이 파괴하고, 다른 동물들을 멸종시키고, 스스로도 파괴하는 종족이거든. 아마 뉴클레아스 어쩌고저쩌고도 공격당할지 모르겠네. 내가 오히려 인간을 걱정하다니, 나 참..." - page 645 ~ 646

큰 울림을 주었던 이야기.

지금의 우리에게 전한 메시지였습니다.

'바이러스'라 하면 없애야 하는 존재로만 생각하다가...

'공존'이란 말을 듣자마자,

'맞아! 우리 역시도 '위드' 라 하지 않았나!'

며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별로 놀랄 일이 아니야. 생명의 관점에서 보면 모두 같은 거지. 자신들이 사용하고 있는 생명 유지의 시스템과 운영이 다를 뿐이라네. 우리 코로나족이나 인간이나 지구상의 모든 동물이나 인간 몸속의 세포나 미생물까지도 모두 생명의 영속성이 시작되면 그 생명의 마지막까지 계속 분화해 나가야 하는 달리는 자전거와 같은 영원한 생명의 고리에 들어가게 되는 거라네. 인간이 다른 생명에 비해 위대했던 것은 생각이라는 도구를 기억과 재생, 조합, 확대, 재생산, 가공, 편집 등의 전송기능을 통해 언제든 도서관처럼 사용하는 시스템을 구축한 것과 학습이라고 하는 아주 위대한 교육의 과정을 만들어 낸 집단이라는 것이지. 물론 우리도 지금 그러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네. 우리뿐만 아니라 인간의 몸속의 미생물이나 세포들도 인간과 같이 진화를 해왔지. 왜냐면 우리가 지구라는 행성에 사는 공동 운명체인 것처럼 모든 바이러스와 미생물 그리고 세포는 인간의 몸속에 정착하는 순간 인간의 몸속에 같이 사는 운명 공동체로 바뀌기 때문이지." - page 636

경이로웠던 이들의 이야기.

하지만 어디선가 씁쓸한 에스프레소 향이 아련히 맴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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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청 - 잃어버린 도시
위화 지음, 문현선 옮김 / 푸른숲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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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허삼관 매혈기》 《제7일》의 작가, 대륙 최고의 거장 '위화'.

저는 그의 작품 중 『허삼관 매혈기』만 읽었었는데...

가족을 위해 피를 팔아 살아가는 한 남자 '허삼관'이 지금 다시 떠올려도 진한 감동이 있었는데...

이번에 8년 만의 신작이 나왔다고 하였습니다.

무엇보다 위화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보지 않았는데 왜 이 작품만은 꼭 읽어보고 싶었는가 하면 장강명 소설가의 추천글을 읽고 나서였습니다.

그의 책을 읽고 나면 늘 마음 깊숙한 곳에서 저절로 다짐하게 된다. 주변 사람들에게 잘하자. 불행을 담담히 받아들이자. 잔인해지지 말자. 전쟁을 말자. 《원청》에는 위화적인 순간이 무척 많았다. 책장을 덮고 눈을 감았다가, 인물들의 운명을 알고 싶어 다시 펼치기를 여러 차례 반복했다.

_장강명(소설가)

한 해를 마무리하게 되고 새로운 해를 맞이할 준비 중인 요즘.

그가 이 책을 읽고 다짐했던 그 마음, 그리고 '위화적인 순간'을 맞이하고 싶었습니다.

삶은 그저

정해진 운명을 따라가는 것에 불과한 것일까?

시작만 있고 끝은 없는 여정 위에 선 인간의 숭고한 발자취.

원청



"제발 불쌍한 제 딸에게 젖 좀 먹여주십시오." - page 12

당시 시진에서 젖먹이가 있던 여자들은 대부분 '린샹푸'를 만났었습니다.

돌도 안 된 딸을 안고 언제나 엽전 한 닢이 놓인 오른손 손바닥을 앞으로 내밀며 쉰 목소리로 젖동냥을 하는 그.

그리고 그는 강한 불쪽 말씨로 물었습니다.

"여기가 원청입니까?"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지명이라 천융량은 고개를 저었다.

"여기는 시진입니다." - page 14

그는 왜 원청을 찾고 있는 것일까...?

소설은 린샹푸의 어린 시절부터 되짚어가고 있었습니다.

부유한 집에서 태어났지만 다섯 살 때 갑작스런 아버지의 죽음과 열아홉 살에 어머니의 죽음을 맞이한 린샹푸.

그의 집은 침묵에 잠겨 있었는데 그가 스물네 살이 되었을 때 젊은 남녀 한 쌍이 그의 집 앞에 찾아오게 됩니다.

자잘한 꽃무늬 치파오를 입은 여자 '샤오메이'.

그는 샤오메이라는 여자가 마음에 들었고 혼례도 했지만 여전히 샤오메이는 넋 나간 표정으로 떠나간 오빠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봄이 다 되었는데도 오빠가 오지 않는다며 근처에 절이나 사당의 부처님께 오빠를 보살펴달라고 빌면서 향을 좀 피워야겠다고 말하는 샤오메이.

"음식은 부뚜막에 차려두었고 옷은 옷장에 있어요. 왼쪽은 기운 옷이니 밭에 나갈 때 입고 오른쪽은 깁지 않은 옷이니 성에 들어갈 때 입으세요. 또 지난 며칠 동안 만든 새 옷 한 벌과 새 신발 두 켤레도 옷장에 넣어두었고요."

린샹푸가 대꾸했다. "그냥 하루 다녀올 거잖아요. 1년 6개월이 아니라." - page 51 ~ 52

그렇게 샤오메이는 가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그녀의 뱃속엔 아이가 있었습니다.

딸을 낳고 잘 살아갈 줄 알았지만 또다시 사라진 샤오메이.

린샹푸는 이번에 딸을 포대기로 싸고 등에 커다란 봇짐을 짊어진 뒤 길을 나서게 됩니다.

"아버지, 어머니, 두 분께 죄송하고 조상님께 송구합니다. 대대로 내려오는 땅을 저당 잡혔습니다. 하지만 저는 샤오메이를 찾아와야 해요. 아버지, 어머니, 두 분 손녀는 젖을 먹어야 해서 어미가 없으면 안 되니 샤오메이를 데려오겠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맹세코 반드시 돌아오겠습니다......" - page 91

샤오메이를 찾아 원청으로 떠나게 된 그.

아창은 샤오메이의 고민이 뭔지 모르고 여전히 걱정한다고만 생각해 말했다.

"점점 멀리 갈 거야. 원청을 찾아갈 테니까."

아창이 원청을 언급해 샤오메이는 다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원청이 어디 있는데?"

"어딘가에는 있겠지."

그 뜬구름 같은 원청은 샤오메이에게 이미 아픔이 되었다. 원청은 린샹푸와 딸의 끝없는 유랑과 방황을 의미했다. - page 558 ~ 559

그리고 겪게 된 전쟁 이야기.

참으로 잔혹한 전쟁과 그럼에도 그 속에서도 인간다운 사람들이 있음에 그야말로 전쟁 속에서도 살아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기도 하였습니다.

천야오우가 말했다. "왜 굳이 묶어요? 잔인무도한 토비니 둘 다 죽여요."

천융량이 고개를 저었다. "절대 안 돼. 우리는 사람을 죽이려는 게 아니라 구하려는 거야." - page 333

한 남자를 통해 살펴보았던 대서사.

시작은 있었지만 이 여정의 끝은 없었습니다.

어디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

이에 대한 답은 우리 각자의 몫이 아니었나 싶었습니다.

가슴 먹먹함...

쉽게 헤어 나올 수 없었습니다.

앞서 서문에서 얘기했던

"모든 사람의 가슴에는 원청이 있다"

라는 말.

이 말이 제 가슴속에서도 울리고 또 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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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서 온 탐정
이동원 지음 / 스윙테일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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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 미스터리 소설러버인 저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이 소설.

카페?

형사와 목사?

도통 이 조합으론 갈피를 잡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더 흥미로웠던 이번 소설.

어떤 사건이 펼쳐질지...

'신학대를 자퇴한 형사' 성요한

x

'법의관을 그만둔 목사' 유진신

온도도 감성도 생각도

정반대인 두 남자의

합동수사가 시작된다!

천국에서 온 탐정



"종교탄압 자행하는 폭력 경찰 물러나라!" - page 11

교회에서 나온 시위대가 경찰서 앞 인도를 점거한 상황.

한 남자가 경찰서 정문으로 나와 순경들 뒤쪽으로 지나갑니다.

힐끗 시위대를 보고는 횡단보도 건너 골목에 들어서게 됩니다.

단층으로 된 '천국에서 온 커피'라 적힌 카페 안으로 들어선 남자는 '오늘의 커피'를 주문합니다.

남자가 맛을 음미하는데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집니다.

남자가 고개를 들자 주인이 심각한 얼굴로 그를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형사님은 거의 매일 우리 가게를 찾아 주시는 단골이시고 여기서 큰길로 나가면 바로 보이는 곳이 경찰서니까요. 형사님이 경찰서에 드나드는 모습을 몇 번 봤지요. 심지어 오늘도 횡단보도 앞에서 계신 것을 봤습니다." - page 15

주인은 남자의 사정을 마치 바라본 듯이 풀어내는 모습을 보곤

"이제 보니 탐정이셨네요. 의사가 아니라 형사를 하셨으면 미제 사건 좀 해결했겠어요."

"과찬이십니다. 성요한 형사님처럼 훌륭한 경찰분들 어깨너머로 배운 거죠. 법의학을 전공했거든요." - page 17

그랬습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바로 신학대를 자퇴한 '성요한' 형사와 법의관을 그만둔 카페의 바리스타 '유신진' 목사 이 둘.

이들이 의문의 죽음을 통해 거짓에 감춰진 진실을 파헤치고 있는 모습이 그려지고 있었습니다.

교회 간증을 앞두고 자살한 노인 사건부터 실종된 스물아홉 청년 사건, 늦은 밤 방화 사건, 데이트 폭력 사건까지 각각의 사건에 대해

'법과 제도'

'심판과 용서'

로 범죄를 바라보는 시선은 달랐지만 결국 이 둘은 '죄의 뿌리'를 뽑고자 함은 같았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목사나 형사나 하는 일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무슨 소리예요?"

성요한의 얼굴이 더 구겨졌다.

"형사나 목사나 죄인을 상대한다는 말입니다. 형사님이 만나는 죄인은 대놓고 죄를 저지르는 범죄자들이지요. 그에 비해 목사인 제가 만나는 죄인들은 교양 있는 얼굴로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다고 기도하는 사람들이지요."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유진신과 성요한이 올라탔다.

"하지만 예배가 끝나면 주차장에서부터 싸움을 시작하지요. 저녁을 먹으러 간 식당 종업원에게 진상을 부리면서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다음 주일에 나타나 아름다운 목소리로 찬양을 하지요." - page 34

커피의 향처럼 향긋했으면 좋으련만 커피의 색과도 같이 더럽혀진 사회의 부조리, 쓰디쓴 맛의 추악한 진실은 결국 남은 향기마저 진한 응어리처럼 남곤 하였습니다.

흥미로웠고 재미있었지만 결코 가볍지는 않았던 이 소설.

'죄'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도 되었습니다.

"흉악한 범죄자라도 가족이나 친구에는 좋은 사람일 수 있지요. 반대로 의인처럼 보여도 막상 겪어 보면 형편없는 인간도 있다는 겁니다."

유진신이 빈소로 걸음을 옮겼다. 성요한이 유진신을 따르며 말했다.

"만약 양재익이 범인이라면 완전범죄네요. 양재익의 죄는 방우린과 임치수가 짊어지고 죽어 버렸으니까요. 범인이 죽었으니 수사는 종결되었고요."

유진신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감춰진 것은 결국 드러나고 숨겨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입니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니까요."

유진신은 확고하게 말했지만 양재익의 죄를 밝히기는 확실히 어려웠다. 장례 일정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 유진신은 양재익의 불완전함이 남겼을 죄의 흔적을 알아내려 노력했지만 결국 스스로의 불완전함을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 page 351

설마 이렇게 이 둘의 케미가 끝이 나는 건 아니겠지요...

이 답답한 현실 속 두 남자의 공조 수사를 더 보고 싶었습니다.

"천국에서 온 커피요?"

"가면 꼭 마셔 봐. 정말 맛있어."

"근데 커피가 무슨 도움이 돼요?"

"커피만 있는 게 아니거든." - page 442

문을 열면 두 남자가 반갑게 맞이해주지 않을까!

부디 다음에 만날 날을 기약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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