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8년의 여름.
어쩌면 오늘날엔 흐릿해진 장소들 속의 희미한 실루엣이나, '공연 없음', '한밤중 지하실에서 벌어진 검둥이들의 싸움' 따위의 그들이 좋아하던 농담 같은 것으로 쪼그라들어 있을 1958년 여름에 대해 그들의 기억 속엔 오른 지방의 S 캠프에서 그녀와 가깝게 지냈던 이들 중 그녀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열여덟 살 여자아이...
그 아이에 대한 회상? 기록?
50년이란 세월의 간극에도 갑자기 나타나, 마음을 와해시켜버리고 만 1958년의 그 여자아이데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1958년의 끝까지 가는 것, 그것은 수년에 걸쳐 내가 축적해온 여러 해석들을 산산조각 내겠다는 걸 받아들이는 것이다. 아무것도 윤색하지 말기. 나는 허구의 인물을 축조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나였던 그 여자아이를 해체하는 것이다. - page 74
처음으로 부모의 울타리를 떠나 자유를 맛보게 된 여자아이.
어른이 된 듯 잡지와 소설 속에서만 접한 사랑을 꿈꾸던 여자아이는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H라는 대표 지도강사와 밤을 보내게 됩니다.
여자아이는 그와의 관계가 진정한 사랑이라 믿으며 그날의 사건을 합리화하지만, H를 비롯한 다른 이들은 '창녀'라 부르고 '그래도 되는 아이'라 희롱하며 온갖 수모와 굴욕을 당하게 됩니다.
어째서...
그렇다면 굳이 왜? 이 글을 쓰는 것일까?
캠프에서의 밤 이래 일어난 모든 일들이, 추락에서 추락으로 이어져, 이 최초의 글쓰기로 귀결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러니까 이것은 글쓰기라는 안식처에 다다르기까지의 위태로운 횡단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결국 중요한 것은 일어난 일이 아니라 일어난 일을 가지고 우리가 무엇을 하는가라는 깨달음을 증명하는 이야기. 이런 것은 모두 우리를 안심시켜주는 믿음의 영역에 속한 일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더 깊이 우리 안에 뿌리내리게 되어 있으나 그 진실을 밝혀내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믿음. - page 202
작가는 '그녀'라는 3인칭 대명사를 사용해 현재의 '나'와 마주하며 우리 역시도 여자아이에게서 우리 자신을 발견하고, 어쩌면 기억 속 자신을 이해하고, 위로를 받기를 바라며 이 책을 써 내려간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작가의 글을 읽다 보면 고통이 고스란히 느껴져 쉬이 읽히지는 않았습니다.
자신이었던 그 여자아이를 해체하는 일.
나 역시 그 여자아이를 잊고 싶었다. 정말로 그녀를 잊기를, 그러니까 그녀에 대해서 더 이상 쓰고 싶은 욕구를 갖지 않기를. 그녀와 그녀의 욕망과 광기, 그녀의 어리석음과 오만, 그녀의 허기와 말라버린 피에 대해 써야만 한다고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를. 나는 끝내 그렇게 되지 못했다. - page 16
다정한 손길을 구걸했지만 발로 걷어차이는 개처럼 비참했던 그 느낌을 치열하게 써 내려간 글쓰기.
하지만 이 문장이 그녀가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 바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나는 말할 수 있다. 그녀는 나고, 내가 바로 그녀라고. - page 109
책을 덮고 나서야 느낄 수 있었던 감정.
고통스러운 기억을 위로하고, 같은 시기에 거의 비슷한 일을 겪은 다른 이들의 경험을 통해 우리가 경험한 것이 지닌 고유성과 고독을 산산조각 내러 상상력이 찾아올 때 느끼는 이 회고적 위안의 기이한 달콤함. - page 127
내 안에 있던 기억의 조각도 새삼 마주하는 시간도 갖게 되었습니다.
사실 한 번 읽었을 땐 큰 감흥이 없었습니다.
초반엔 도통 이해도 할 수 없었고...
두 번째 읽으면서 서서히 문장들이 눈에 들어왔었고...
이 책은 저에게 '조개 속 진주'와도 같았습니다.
다음에 다시 읽게 된다면...
그때의 난 어떤 감정일지......
자꾸만 읽게 될 것 같은 책을 만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