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간 '막막한 독서'라는 독서 모임을 이끌어오며, 300여 권의 책을 다뤘고 1000회가 넘는 모임을 가졌던 독서모임진행자
'시로군(이시욱)'
그는 오래 독서 모임을 진행해오면서 자연히 '책을 읽는다'라는 말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나 이 책 읽었어"
는 무슨 뜻일까...?
모든 페이지의 모든 글자를 다 읽었다는 뜻일까?
내용을 완벽히 이해했다는 뜻일까?
모든 페이지를 다 읽긴 했지만 내용을 잘 이해 못했다면 그 책은 '읽었다'고 할 수 있을까?
완벽하게 이해한 건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어려운 철학서 한 권을 완독하고 내용도 잘 이해했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오역들로 가득한 책인 경우는 어떨까?
책의 줄거리와 핵심을 요약할 수도 있고 이야기로 들려줄 수도 있는데 실제로는 책의 일부분만 읽은 경우는 어떤가?
......
그래서 그는
"책은 꼭 읽어야 할까? 우리가 살아가는 데 책 읽기는 필요할까?"
라는 근본적인 물음으로부터 출발하게 됩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책이 있고 다양한 독자가 있다. 읽기의 방식도 모두 다르다.
『말테의 수기』를 통해 얻은 교훈을 우리에게 전해주었는데...
책은 펼쳐두는 것으로 충분하다. 읽지 못해도 좋다. 문학 읽기는 매일 정해진 진도를 나가야 하는 학교 수업이 아니니까. 일단은 그게 내가 『말테의 수기』를 통해 얻은 교훈이다. 하지만 읽지 않아도 괜찮다고 해서 펼쳐두지조차 않으면 곤란하다. 가능한 한 자주 책을 펼쳐두도록 하자. 전혀 읽지 않고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가 다시 덮게 되더라도.
중요한 것은 책을 펼치고 덮는 이 과정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것이다. "책에는 쓰여 있지 않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무언가"를 읽는 일은 바로 그러한 반복, 일견 무익해 보이는 반복을 통해 비로소 가능해질테니 말이다. - page 12
그렇게 릴케, 버지니아 울프, 나쓰메 소세키를 포함해 스물 한편의 소설을 통해 독서에 대한 부담감을 덜어내고 읽기의 즐거움을 알려주었습니다.
사실 고전이라 불리는 작품들을 접할 때면...
저에겐 쉽지 않았었습니다.
시대와 장소가 다르고 이슈와 관심사가 다르기 때문에, 때론 명문장에 대해 공감을 하지 못하기에...
남들과 다른, 아니 자꾸만 뒤처지는 듯해 책을 읽더라도 배제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 책은 명문장이 아닌 '장면'에 주목하고 있었습니다.
책을 읽다가 끌리는 장면으로부터
'나는 왜 이 장면에 끌렸을까?'
하며 생각을 발전시키면서 맛보게 되는 독서의 재미.
(책 속엔 영화화된 작품은 그 장면을 엿볼 수 있게 QR코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자의 이야기를 읽으며(아니 보았다고 해야 할까...!) 고전 읽기의 새롭고도 그럼에도 조금은 갸우뚱하기도 하고...!
아무튼 책 속에 나온 고전을 읽게 된다면 그가 이야기했던 부분에 더 눈길이 가며 나만의 장면을 찾기 위해 끝까지 읽어 내려갈 것 같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에서 그는 '여성의 책 읽기'와 '여성의 노동'이란 키워드로 해석하였습니다.
제인 에어의 책 읽기는 여성의 언어를,
노동은 태도를
만들어낸다는 측면에서 읽으면 로맨스 소설로 읽혀온 이 작품이 한층 흥미롭게 읽힌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주목할 점이 제인의 자기 존중이었습니다.
내가 나 자신을 소중히 여기지. 더 외로울수록, 친구가 없으면 없을수록, 의지할 데가 없을수록 나는 더욱더 나 자신을 존중할 거야.
- 『제인 에어』 27장
로체스터와 그가 제안한 사랑의 약속(청혼), 정든 손필드(로체스터의 저택), 가정교사 자리 등 모든 것을 버리고 황야로 떠남이야말로 당시 독신 여성을 둘러싼 사회적, 경제적 관계를 고려해 보면 이것은 단순한 반항심을 넘어선 자기 인식이고 자기주장, '나를 소중히 여기는 건 나'라는 점이었습니다.
다시금 『제인 에어』를 만나면 보다 당찬 여인으로 마주할 것 같습니다.
'고전'또는 '걸작' 읽기를 하는 이유는 아마 그 책들을 통해 이전보다 더 나은 삶, 더 발전된 삶, 더 깨인 삶, 더 주체적이고 자유로운 삶을 사는 법을 배우고자 합니다.
하지만...
문학 읽기가 우리에게 그런 것을 선사해 줄 수 있을까?
아닙니다.
그럼 책은 우리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그저 어떤 페이지를 펼쳐놓고 지금까지의 삶을 멍하니 생각해 보는 것, 무거운 철학책에 누군가 휘갈겨 놓은 낙서를 보며 현재 나(우리)의 위치와 모습을 두고 곰곰이 생각에 잠기는 것, 낯선 외국 작가의 쉽게 소화가 안 되는 난해한 문장들을 읽으며 답답함을 느끼는 것.(그 답답함 속에서 낯선, 그러나 고대부터 현대까지 누구나가 깊게 고민했을 주제인 죽음에 대해 잠깐이나마 절실하게 생각해 보는 것.) 이런 것들이 책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경험들일 것이다. 책은 우리로 하여금 평소에는 느끼지 못했을 것을 느끼게 한다.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딴생각에 빠지게 한다. - page 379
책은 우리에게 딴짓과 딴생각을 할 시간을,
그걸 할 심적 여유를
마음의 빈자리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이것이 '독서 경험'이었고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였습니다.
저도 오늘은 잠시 딴짓을, 딴생각을 해볼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