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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나무가 있는 국경
김인자 지음 / 푸른영토 / 2017년 7월
평점 :
책 표지의 사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담배를 물고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선.
그는 과연 무엇을 바라보며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책의 첫 장을 펼치지 그녀가 말하는 '여행'을 알 수 있었습니다.
내가 노마드란 생각이 들 땐 혹독한 공간 속에서 누구의 도움 없이 홀로 나를 바라보고 나와 대화하며 나의 내면으로 걸어 들어가 기꺼이 내 손을 잡을 때다. 이제 나는 그곳이 어디든 길을 잃을까 봐 두려운 것이 아니라 길을 잃지 않을까 봐 두렵다. 일상일 땐 그것이 여행인 줄 몰랐다. 길 위에 있을 때만이 일상도 여행이란 걸 알았다. 그렇게 여행은 몸을 앞세워 꿈을 현실로 만드는 것이었다. - page 5
늘 새로운 순간을 살고자 했기에 더는 잃을 것이 없다는 안도감과 자유, 여행은 오직 나 자신과 눈 앞에 펼쳐진 대상과의 관계로 이루어지며 어떤 경우라도 어제와 다른 나를 발견하는 것에 있다. 생각해 보면 감동이나 놀라움도 오직 그 자리에 있는 자의 몫,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것, 목표 없음이 목표요 화두 없음이 화두였던 여정들, 오랜 여행으로 얻은 것이 있다면 '가장 안전한 삶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삶'이라는 것, 이상적인 여행이란 자신의 컨디션을 최상으로 끌어올린 후 방랑이든 방황이든 모든 것은 안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옳다. - page 6 ~ 7
그녀의 짧지만 긴 여행 기록 속엔 일상의 여행 이야기, 인종을 초월한 우리의 이야기, 그리고 신으로 향한 인간 이야기가 담겨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끝은 자신으로 돌아와 또다른 여행의 시작을 알려주었었습니다.
<나는 간신히 울지 않았다>를 읽다보니 인상적인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몽골 유목민들의 이야기.
그들의 주식인 양고기에 대한 이야기.
대지에 피를 흘리는 일을 금기시하는 건 날짐승들을 부른다는 이유도 있지만 내 친구의 피를 한 방울이라도 헛되지 않게 하려는 뜻이 더 크다고. 그들은 아무리 배가 고파도 고통스럽게 죽은 가축은 먹지 않는다. 집에서 직접 기른 가축은 가족이나 친구 그 이상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 page 43
언제나 떠날 수 있고 언제나 돌아올 수 있는 유목, 유목민. 그들은 모으고 소유하는 것에 의미를 두지 않으며 어디에도 머물지 않고 설령 뜻하지 않은 재해로 모든 것을 잃는다 해도 그것이 삶이라는 걸 순순히 받아들인다. 진정한 노마드란 육체를 자유롭게 함으로써 영혼이 자유로워지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 page 44
우리는 '소유'에 집착하기에 사회는 발전하지만 정신적으로 퇴보를 향해 가는 것은 아닌지, 저마다 구멍난 항아리는 아니었는지 생각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삶이 왠지 부럽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과연 나는 그런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또다시 '소유'가 제 발목을 잡는 것 같았습니다.
책 제목과 관련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국경'이라하면 우리 역시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철조망 하나를 경계로, 서로를 검열하는 그 곳.
이는 인간의 이기심임을 대변해 주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런 국경을 저자는 철조망 대신 '사과나무'로 대신하고 싶다고 전하였습니다.
장총을 든 경비병 말고, 뭔가 꼬투리를 잡으려는 그 탁한 눈빛도 말고, 카메라를 꺼내도 안 되고, 함부로 말을 걸어서도 안 되며, 내 나라를 방문해 줘서 고맙다는 인사까지는 아니어도 나는 사과나무에 사과가 빨갛게 익어가는 국경을 넘어보고 싶은 간절한 소망이 있다.
...
특히 해외여행이 처음인 여행자에게 자신의 나라를 알리고 사과는 얼마든 따먹어도 좋다는 그 어떤 조약보다 마음이 끌리는 평화협정, 하늘과 땅을 공유하고 그늘과 열매를 나눌 수만 있다면 훈자마을을 천상으로 만드는 살구나무 같은 것도 좋겠지만 상상해 보라. 사과 꽃이 필 때 입국하여 사과를 딸 때쯤 출국하는 일정은 얼마나 낭만적인가. 그 나무의 사과향기 잘 간직해 두었다가 훗날 기억의 창고에서 야금야금 사과를 꺼내먹어도 좋으리. 자연의 간섭을 피해 살 수 없는 우리에게 사과 꽃 피는 내년 이맘 때 다시 오리라는 약속은 얼마나 희망적인가. - page 140
잠시 저 역시도 '사과나무가 있는 국경'을 꿈꾸어 보았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철조망과 총을 든 경비병이 있는 국경.
그 곳에 사과나무가 심어져있다면......
지금의 우리의모습도 많이 바뀌어져 있지 않을까......
과연 그 날은 언제쯤 올지......
그녀의 발자취를 따라 다니다보니 그 속엔 사람이 있었고 자연이 있었고 신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토록 바라는 '행복'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서울의 아침은 분주하다. 카페에 들어가 조각케이크 한 쪽과 커피 한 잔을 시켰을 뿐인데 9천8백원이다. 잉카 여인이 그렇게 갖고 싶은 라디로 한 대 값이다. 어디에 사느냐에 따라 같은 돈이라도 향유품목과 행복의 색깔은 이렇게 다르다. 커피집을 나서며 내게 묻는다. 첨단을 달리는 문명과 물질이 정신을 지배하는 대한민국에서 현재를 살고 있는 내게 행복이란 뭘까. - page 358
결국 '행복'은 상대적이었고 다양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책 속의 그들에겐 자신의 행복을 찾은 듯 하였습니다.
그들의 눈빛에서, 미소 속에서, 그들의 얼굴에서......
저 역시도 스스로 물어봅니다.
내게 행복이란 뭘까......
그녀의 이야기의 끝에 적힌 이야기가 그 해답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어디든 나를 온전히 맡기므로 일체감과 충족감을 동시에 느끼는 내 여행의 멘토는 역시 사람이고 길이다. - page 366
사람과 길 속에 제 행복을 찾아봅니다.
다시 그녀의 이야기를 되새기며......